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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테이크
    티비를보다 2022. 10. 31. 22:01

     

       일요일 밤 넷플 <원테이크>를 봤다. 동생이 꼭 맥주를 마시며 유희열 편을 보라고 했기 때문에 김치냉장고에 있던 크라운 맥주 캔을 꺼냈다. 최근 엄청 좋아하게 된 살라미도 얇게 잘랐다. 지안이 덕분에 예정에 없던 월요 휴가가 생겨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죽기 전 딱 한 곡을 할 수 있다면? 유희열은 고심 끝에 한 곡을 골랐고 그 곡이 시작되자마자 내 찌질했던 이십대 연애담이 머릿 속에 펼쳐졌다. 아니다 삼십 대까지네. 연애담 뿐만이 아니다. 찌질했던 업무담, 찌질했던 친구담, 찌찔했던, 찌찔했던. 다시 그 찌질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렇게 사십대가 된, 초등학생의, 청소년의 엄마아빠가 된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 어떤 남자는 펑펑 울었다. 어떤 여자는 마이크를 들고 울면서 말했다.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 관객들이 진심으로 웃었다. 나도 웃었다. 같이 티비를 보던 남편도 웃었다. A는 그냥 나쁜 남자였고, B는 나의 허상을 본 거였다. C는 끝내 나를 버렸고 그걸 후회하지 않았다. D랑 사귀었더라면 내 이십대는 어떠했을까. 내가 도망친 수많은 자리들이 생각났다. 내가 즐겼던 수많은 만취의 밤이 생각났다. 이상하게 그때는 그렇게 밤새 술을 먹고 들어와 따뜻한 온돌방에 몸을 지지며 순식간에 잠들기 시작한 아침이 좋았다. 철이 없고 책임감도 없고 자신감도 없던 시절들. 그 시절을 지난 사람들이 토이의 7년만의 공연에 앉아 있었다. 그때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그때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노라 말하면서. 지난 토요일, 그러할 미래를 한순간에 잃은 청춘들의 뉴스를 티비에서 봤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어야 했는데. 그렇게 사십 대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어떤 가수가 용기를 내 간만에 여는 공연 한 구석에 앉아 그 가수가 노래하는 첫 구절을 들으며 이십 대의 나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경험을 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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