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안녕한,가
    서재를쌓다 2021. 8. 24. 00:51

     

     

      별것 아닌 나의 기록들이 자꾸만 좋은 사람들을 내 곁으로 데려다 준다. 그래서 계속 쓰게 된다.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가감 없이 나를 드러내며 솔직하게 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남는다.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 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 이름 모를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띄운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 여름 / 기록, p.57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근처 정류장에 앉아 살짝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여름에는 그늘 아래에서 맞는 바람을 사랑한다. 주어진 계절을 오롯이 느끼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콧등과 인중에 맺히는 땀을 스윽 닦아내고 다시 눈을 감는다.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멈췄다 하며 애간장을 태운다. 

    - 여름 / 그늘, p.89

     

      월세를 보냈는데 '받았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연희주인'이라는 문자가 답장으로 왔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는 것. 행복은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 가을 / 감나무, p.121

     

      낮에는 이불 빨래를 해서 널어두고 해가 질 때까지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그런 다음 여행지에서 사온 티백으로 물을 끓이고 통에 담아 잠깐 식혀두었다. 조금 귀찮지만 시간을 들여 우려낸 물이 고소하고 훨씬 더 맛나니까.

    - 가을 / 집, p.123

     

      오늘도 힘든 동작이 시작되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운동하는 안나가 그 마음을 읽었는지, 남은 한 세트는 혼자서 하라며 숙제로 남겨줬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다 끝까지 하겠다고 하고 정해진 운동을 모두 끝냈다.

      <알쓸신잡 2>에서 장동선 님이 들려준 갑각류 이야기가 요즘 자주 떠오른다. 탈피한 갑각류는 가장 연약한 상태를 버티고 나면 더 단단한 껍데기를 갖게 되는데 인간의 마음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성장하는 순간은 죽을 것 같고, 잡아먹힐 것 같고, 스치기만 해도 생채기가 날 듯한 순간일 거라고.

    - 겨울 / 성장, p.291

     

       어쩜 이리도 날씨가 포근한지. 뭉게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 들어 자꾸만 웃음이 난다. 바깥을 나서는 순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 발 두 발 경쾌하게 내딛는다. 문득, 지난겨울에 무엇이 그리도 힘이 들었는지 떠올려보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계절을 들여다보면 때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왜 나는 매번 피어있으려 그리도 애를 썼나 싶어 괜히 머쓱해졌다.

    - 봄 / 봄날, p.381

     

     

      무과수 님의 <안녕한, 가>에 포스트잇 붙여둔 부분들을 다시 읽어보며 다린의 '태양계'를 듣는다. 다린의 '태양계'는 <싱어게인> 음악 중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은 곡이다. 우주처럼 외롭고 물결만큼 따뜻한 곡 같다. 아이를 재우고 요즘 읽는 책을 가져가 반신욕을 했다. 오늘의 마지막 문장은 '멀리서 폭죽 터뜨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실 창문을 활짝 열고 머리를 말렸다. 얼마 전에 미용실을 다녀와 머리가 무척 가벼워졌다. 물을 끓여 허브차를 만들었다. 무과수 님은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책을 출간했다고 해서 주문을 했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글들이 짧아 처음에는 아쉬웠다. 여름에서 시작해 가을 겨울을 거쳐 봄으로 끝나는데, 지금이 여름이라서 그런지 여름 이야기들이 좋았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제일 생동감 넘치고. 읽다보니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기를 찾아보니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이 있더라.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을 양이 넘치지 않게 든든하게 먹은 느낌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