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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의 날들 - 외면해버린 지난 날
    극장에가다 2007. 8. 22. 04:29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대체적으로 무겁다. 즐겁고 행복한 실화도 있겠지만, 대부분 부조리한 현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본 <조디악>도 그랬고, 어제 보았던 <영광의 날들>도 그러했다. <영광의 날들>은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거나 외면해버린 상처입은 어떤 날들에 관한 이야기다.

     <영광의 날들>은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번도 본 적 없는 조국 프랑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독일군과의 전장에 뛰어들게 된 프랑스의 식민지, 북아프리카 토착민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최전방의 위험한 전투들에 거의 투입되었지만, 그들에게 남는 건 영광의 날들이 아니라 늘어가는 동료병사들의 죽음과 본토 프랑스 군인과의 차별뿐이었다. 식사 시간의 음식 차별부터 시작해서 편지를 사전 검열할 뿐만 아니라 진급에 있어서까지 그들은 프랑스 본국의 군인과 철저히 다른 차별대우를 받았다. 프랑스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고 싸우고 있는 프랑스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압델카데르의 말처럼 독일군의 총알은 아랍군이라고 해서 차별하며 날라오는 것이 아니며, 그들은 프랑스군과 같은 땅에서 같은 적을 두고 같이 싸우고 있을 뿐이었지만 모든 공로는 오직 프랑스 군인에게 돌아갔다. 승진을 하는 것도, 신문의 승리 사진을 장식하는 것도 죽을 힘을 다해 싸운 아랍군이 아니라 그들을 먼저 최전방으로 내세우고 그 뒤를 쫓아간 프랑스군인이었다. 아랍군은 전진할 때 가장 먼저였고, 후퇴할 때는 가장 늦었다.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 안에 자유는 없었다.

       <영광의 날들>은 전쟁의 중심에 있지만, 전쟁을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 전쟁은 배경일 뿐 그 속에 철저하게 차별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랑스를 위해 자진해서 입대해서 한 손을 잃은 사이드, 어머니가 남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는 마르티네즈 하사, 동생 결혼식을 위해 죽은 병사들의 지갑을 뒤지는 야시르, 아랍출신도 충분히 진급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압델카데르, 프랑스 여인과 사랑에 빠진 순수 청년 메사우드. 그들이 말한 건 자유와 평등 뿐이었지만, 프랑스를 그것을 위해서 그들을 전쟁터에 내몰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철저히 차별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감독은 말한다. 60여년이 지난 아직도 그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프랑스 병사들과 북아프리카 병사들이 받는 연금이 다르며 심지어 지급되어지지 않다고. 프랑스 정부는 그 때의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다행스럽게 <영광의 날들> 개봉 후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 잘못되고 불평등한 차별을 바로 잡도록 정책을 바꾸었단다. 외면해왔던 역사적 과오를 지금이라도 바로잡은 것은 잘한 일이지만, 뭔가 아쉽다. 영화 한 편이 상영되기 전에는 나 몰라라 했던 사실들이 영화가 인기를 얻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정책을 바로 잡는 행동이 아닌가 해서. 아무튼 이 영화는 많은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외면했던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 잡게 만들었고, 나같이 사건조차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진실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

       역시 우리도 식민지였고, 일본은 우리에게 많은 만행을 저질렀고, 상처와 아픔은 아직도 커다랗다. 계속해서 소리 높여 그들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귀를 막은채 외면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우리가 겪은 만행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지. <영광의 날들>이 합작이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라는 것을 상기시켜볼 때, 일본에서도 그들의 만행을 뉘우치며 바로잡으러는 영화 한편쯤 나와서 많은 세계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함께 보아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영광의 날들>의 감독은 파리 출신이지만 알제리계였듯, 일본에서도 문제의식을 제기할 누군가가 일본 내에서 외면하고 있고 세계의 많은 곳에서 왜곡되어지고 아예 알려지지도 않은 부조리한 우리 지난날의 상처를 용기있게 발언해줄 사람은 없는걸까, 라고.

       이 영화에 출연했던 실제 북아프리카의 후손이기도 한 5명의 주연배우는 5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모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들도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차별받은 아랍군의 과거에 대해 몰랐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알게 되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영화를 찍고 제작과 홍보에 참여했다고.

       영화는 주인공들이 참여하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그 지역의 넓은 땅을 보여준다. 어떤 땅은 비옥한 들판이고, 어떤 땅은 나무들만 무성한 산이다. 그리고 60년 후, 그 땅의 현재가 보여진다. 매일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 위에서 60여년 전,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고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 상처를 안고 그 땅을 디디고 있는 그날의 젊은 군인은 노인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 날과 그 사람들을 잊어버렸거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도 선명한 마지막 씬. 동료들의 무덤 앞에서 흐느끼던 이제는 너무 늙어버린 그의 눈물과 작고 좁은 방에서 힘겹게 구두를 벗던 구슬픈 그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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