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주디스 세인트 조지 지음, 김연수 옮김, 데이비드 스몰 그림/문학동네어린이


    지난 가을, 내가 속삭이듯 이야기했던 걸 기억해준 사람이 있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지나고, 봄, 여름이 왔을 때에도 그 사람은 나의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분에게 이 책을 선물받았다. 이건 자랑이라지. 감사해요- 동화책은 아주 오랜만이라, 세로 300mm에 가로 233mm의 이 책을 받자마자 1분동안 꼬옥 끌어 안았다. 얇지만, 커다랗고 단단한 책의 충만한 기운이 마구마구 느껴졌다.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이 책을 내가 지금까지 두 번 읽어봤는데, 이건 꿈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말한다.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탐험가가 된다는 건 말이야. '아무도 가 보지 못한 바다를 건너서 미지의 대륙을 발견하는 일'이야. 탐험가란 말이야. '눈보라를 뚫고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내 말 듣고 있지? 탐험가란 말이야.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빠져나오는 일'이야. 어젯밤에, 그러니까 오늘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이 책을 다시 뒤적거렸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불을 끄고, 모시 이불을 끌어안으며, 이건 꿈에 관한 이야기구나, 생각했다.

    꿈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 의하면, 탐험가란 말이다. 꿈을 꾸는 사람이다. 꿈을 만들어, 그 꿈을 쫓는 사람이고,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꿈에 도달하지 못한, 실패한 사람도 탐험가다. 이 책은 확실히 그 사실을 알려준다. 이 얇지만 커다랗고 단단한 그림책에 의하면, '어니스트 섀클턴 경'은 세 번이나 남극점에 도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대신 함께한 탐험대 스물일곱 전원을 구했고, 남극점에 도달하리라는 꿈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영웅이 되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도 있다. 그녀는 여성 비행사로서 처음으로 세계 일주 비행에 나섰다가 태평양에서 실종되었다. 그녀는 세계 일주라는 꿈에는 실패했지만, 또 다른 영웅이 되었다. 어니스트 섀클턴 경, 아멜리아 에어하트, 그들은 꿈을 꾸었고, 꿈을 만들었고, 꿈을 쫓았지만, 그 꿈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 또한 탐험가다.

    사실 어제 잠이 안 와서 이 그림책을 다시 뒤적거린 건, 25페이지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서였다. 어젯밤은 무슨일인지 자꾸 이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25페이지에는 탐험하다가 생겨난 스포츠들의 이야기가 있다. 1760년, 무서운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유럽에서 제일 높고 험한 몽블랑 산에 오를 사람을 모집한 오라스 드 소쉬르 때문에, '암벽 등반'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1869년, 된여울, 바위옹두라지, 물너울이 이어지는 수천 킬로미터의 그랜드 캐니언을 탐험한 존 웨슬리 파월 소령 덕분에, 래프팅이라는 스포츠가 생겨났다는 사실이 25페이지에 새겨져 있다. 

   나는 불을 끄고 누워서 생각했다. 양을 세는 대신 생각했다. 1700년대에, 1800년대에 목숨을 걸고 시작한 위험천만한 일이, 2000년대에는 위험하긴 하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재미있는, 짜릿한 놀이거리가 되어 있었다. 목숨 걸고 할 만큼 재밌는 일, 목숨을 잃는다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일, 꿈을 찾는 일, 꿈을 쫓는 일, 그 꿈에 도달하는 일, 혹은 그 꿈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 잠이 오지 않는 나는 그런 생각들을 이어나갔다. 내게 그런 일이 있는가. 그런 일을 목숨 걸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는가. 할 수 있겠는가. 내게 목숨 걸고 몽블랑 산을 오를 용기가 있는가. 내게 목숨 걸고 그랜드 캐니언을 탐험할 배짱이 있는가. 얇지만 커다랗고 단단하고, 탐험가들의 이름과 업적과 그림으로 꽉 차 있는 이 그림책은 이렇게 끝난다. '꿈은 이뤄질 수 있어요. 바로 지금 시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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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여름을 싫어하는 나지만, 집에 콕 처박혀 있길 좋아하는 나지만, 어쩐 일인지 유월이 마무리되는 시점부터 칠월이 시작되는 시간들까지 많이 돌아다녔다. 게으른 내 기준에 의하면 말이다. 그런데 요 저질 체력때문에 자꾸만 집에만 들어오면 바로 눕게 된다. 금방 골아떨어지고. 오늘은 몇 자라도 꼭 남겨야지, 하는 마음에. 요시다 슈이치 책 이야기. 


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노블마인

 

   벌써 5월의 일이다. 신림의 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 날 지하철을 잘못 타서 좀 늦었고, 표를 받기로 한 사람에게 미안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좀 놀랐다. (아무튼. 요시다 슈이치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다, 그를 만났다. 사진 속 모습 그대로였다. 벗겨진 머리가 저렇게 깔끔할 수 있다니, 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고. 사실 5월의 일이라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 날 나는 세 문장을 다이어리에 넣어뒀는데, 하나는 '장소도 성장해간다'. 두 번째는 '일상 속의 에피소드를 겹치는 것이 소설', 세 번째는 '물, 수영'이라는 단어. 어쩐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을 좋아하는 요시다씨.

    친구가 이 책을 선물해줬다. 사요나라 사요나라. 이 소설에는 자갈 소리가 난다. 정말 그렇다. 노오란 표지에 귀를 가만히 대고 있으면, 찌는듯한 여름날 햇볕에 바짝 말려진 자갈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나는 이 자갈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런 설정을 한 요시다씨가 더욱 좋아졌다.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한 때가, 막 더워지기 시작한 여름날 아침이었는데, 지하철을 갈아타는데 숨이 콱콱 막혔다. 비로소, 여름이구나. 2호선을 타고 자리에 앉았는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왔다. 창 밖으로는 여름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근사한 아침이었다. 나의 환경과 소설 속의 환경이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 그리고 요시다씨의 섬세한, 아주 디테일한 묘사들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싱크대 창문을 여는데, 식용유병이 놓여 있어 팔을 비틀어 열었다는 식의 표현들이 참 좋았다.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건데, 그냥 뭔가 진짜 같았다. 이 여름도, 이 소설도, 나도, 이 더위도 모두 진짜 같았다. 그리고 자그작자그작, 또 한 차례의 자갈 소리.

   친구랑 맥주를 마시면서 이 소설 이야기를 했다. 나는 요시다씨가 더 좋아졌다는 말을 했다. 친구와 나는 5월의 그 날, 신림의 극장에서 나란히 앉아 요시다씨를 만나고, 나란히 줄을 서고 기다려 사인도 받았다. 친구는 이 소설이 꼭 영화같이 자꾸만 '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이 소설이 일본에서 꼭 영화로 만들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필리핀 맥주를 마셨고, 친구는 미국 맥주를 마셨다. 한 병씩을 비운 뒤에는, 한국 맥주를 마셔댔다. 그 밤, 맥주를 마시면서, 그를 만나고 온 날의 이야기도 했고, 다른 밤의 이야기도 했고,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도 나눴다. 행복한 밤이었는데, 헤어질 때 친구에게 사요나라 사요나라, 라는 인사말이라도 해 줄 걸 그랬다. 한 번 하면 정이 없고, 두 번 하면 애틋하다. 어떤 말이든. 사요나라 사요나라. 

    소설에는 반전이 있는데, 반전이 있다는 말이 스포일러가 될 만큼. 소설을 읽다보면 그 반전이 뭔지 금새 알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그 반전이 시시하다 생각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반전을 눈치채게 되었을 때부터 마음이 아팠다. 자갈 소리, 여름날의 뜨거운 온천, 다리 위, 이 모든 것이 위태위태하다. 자갈 위에 뿌린 차가운 물도, 온천의 뜨거운 증기도 모두 곧 증발해져버릴 것만 같다. 다리 위의 너도 곧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그러니까 편안하다. 이제 '나'는 늘 위태롭고 불안해야 하니까. 요시다의 소설이 늘 그렇듯이 이 소설 또한 '사건'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니라,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일이 있기 전의 나, 그 일을 저지른 순간의 나, 그 일이 있은 후의 나. 이건 자그작자그작 자갈소리가 들리는 슬픈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이 소설을 떠올릴 때면 자꾸만 영화 <유레루>가 떠올랐다. <유레루> 속 다리 위. 그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사건들, 그들의 감정들, 눈빛들, 뒷모습.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유레루>의 감독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라면 자그작자그작 자갈소리며, 다리 위에 가만히 서 있었던 그녀의, 그의 마음이며, 마지막 사요나라, 사요나라라는 마지막 인사까지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유레루>의 음악도 좋았는데, 마지막에 울려퍼졌던 그 주제곡. 집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나. 그녀라면 <사요나라, 사요나라>에 맞는 좋은 음악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사요나라, 사요나라. 왠지 다음 여름에도 이 소설이 생각날 것 같다. 왠지. 햇볕에 잘 말려진 자갈밭 위로 커다란 차가 덜커덩거리며 지나가고, 자그작자그작 어디선가 자갈소리가 들려오면 슌페이와 가나코가 떠오를 거다. 슌페이, 가나코, 사요나라,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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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은
어떤 문장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맥주를 사버리는 바람에. 어제는 공선옥 작가님과 정한아 작가를 만났다. 역시 작가와의 만남 자리였다. 아주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있는 합정역 근처의 카페였다. 거의 2시간 동안 함께했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앉아 그저 무덤덤하게 들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받아적어두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아무 종이나 꺼내서 이런 저런 말들을 적어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종이가 마트 영수증이었다. 6월 10일 날짜의 영수증. 나는 그 날 역시 마트에서 카스캔을 하나 사고, 물도 사고, 껌도 샀다. 그 영수증 뒤에다 이런 말을 받아적었다. '친구가 없고, 외로웠어요.', '내 안을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지층이 꽤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10일에는 카스캔을 마셨고, 어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어젯 밤에 나는 왕십리의 광장에도 앉아 있었다. B씨와 나는 왕십리역에서 내려서 10일날에도 마셨던 카스캔을 하나씩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길다란 나무 벤치에 앉아, 캔을 땄고, 술도 못 하는 B씨는 한 모금 들이키더니 아, 시원하다,는 말부터 했다. 금새 얼굴은 빨개져 가지고.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6월의 바람이었다. 나는 술도 한 모금 마셨겠다, 바람도 불었겠다. 그제제야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을 비로소 만나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덤덤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대화가 몇몇 부분 얼마나 내 마음 속을 후볐는지 몸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이다. B씨와 나는 나란히 앉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그리고 내 옆의 사람이, 우리가 오늘 만나고 온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무척, 아주, 많이 아끼는 일본 드라마, 그러니깐 '스이까'나 '슬로우 댄스'가 절로 생각나는 밤이었다. 여름이니까. 아, 보고싶어라. 

    B씨는 오늘 이런 시를 내게 보내줬다. 최영미 시인의 시다. 시는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 나는 잊었다'로 시작해서,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로 끝난다. 그 시를 카스 병맥주를 컵에 콸콸 따라 마시면서 읽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제 그 나무향이 솔솔 나던 카페에서 세 사람이 낭독을 했다. 그 낭독은 모조리 좋았다. 서울의 밤을, 시골의 밤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들이었다. 그리고 '그냥 내 책'이 '작가에게 직접 사인받은 책'이 되었다. 오늘, 옆 사람에게 건네받은 시도 있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다. /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은 지푸라기처럼 따스하다.'. 마저 잔을 비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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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5월에는 정기승차권을 다 썼다. 정기승차권은 한 달 동안 지하철만 60번 이용할 수 있다. 한 달이 지나면, 횟수가 남아도 소용이 없다. 다시 한 달을, 60번을 충전해야 한다. 몇 달을 정기승차권을 샀지만, 어느 달도 60번을 다 쓴 적은 없었는데, 5월에는 다 썼다. 이건 내가 5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일. 발발거리면서 5월의 거리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는 증거다. 나는 5월에 공연장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고, 술집에도 가고, 카페에도 가고, 서점에도 갔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아, 5월에는 친구에게서 예쁜 하얀색 운동화도 선물받았다. 6월에는 더 많이 걸어야지.

   그리고 이건 6월에 생긴 습관. 아침마다 7호선 건대입구에서 2호선 건대입구로 갈아탄다. 특별히 아침시간에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7호선에서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날씨가 잔뜩 흐릴 때, 좋은 책을 읽고 있을 때. 거기다가 조금 빨리 갈아타는 곳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살짝 남을 때면 2호선 지상의 건대입구역 자판기에서 600원짜리 설탕없는 큰 컵 라떼를 뽑아 마신다. 맛나다. 그리고 나무벤치에 앉아, 그 라떼를 꿀꺽거리며 마시며, 읽고 있던 책 표지를 어루만져준다. 고맙다, 책아. 그리고 성수행 열차를 보내고, 다음에 오는 순환선 열차를 탄다. 이건 6월에 시작한 일이다.

    고맙다, 책아. 그러면서 자주 어루만져 준 책. 6월 초에 나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그리고 아침에 자주 600원짜리 설탕 없는 라떼를 마셨다. 기분이 좋은 아침시간이 잦았다.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책을 읽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건 시,로 그득한 문장들이라고 생각했다. 김훈의 산문을 칭송하는 내게 H씨는 로쟈가 김훈의 산문들에 대해 말한 문장들을 보여줬다. 그는 김훈의 에세이를 숭배한다고, 김훈의 산문들이 국어교과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김훈의 문장은 고상하고 아름답다고 적어 놓았다. 물론 그는 그렇기에 김훈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전거 여행>의 문장들은 정말 아름답다. 풍경들도 아름답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름답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아침시간이 아름다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수 돌산도 향일암을 꼭 한 번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향일암의 벼랑 위의 절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싶어졌다. 쑥이 들어간 된장국 생각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군산의 옥구염전에서 '소금이 온다'고 중얼거리고 싶어졌고, 미천골 자작나무 숲 한 가운데 서서 'ㅅㅜㅍ'이라고 맑고 깊은 울림을 내고 싶어졌다. 산불이 났던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 가서 불 타 버린 숲이 스스로 숲을 이루어 가는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어졌고, 영일만 바닷가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아아아' 소리치고 싶어졌다.

    처음 60페이지 정도까지 포스트 잇을 덕지덕지 붙이다가, 60페이지를 넘어가면서 포스트 잇 붙이기를 관뒀다. 책이 300페이지 정도 되는데, 포스트잇이 100개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나를 울리는 문장들이 그리 많았다. 어젯밤에는 맥주를 마시고 2권을 주문했다. 친구에게도 한 권 보내줬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고 다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6월에는 모두들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생각들을 하고, 아름다운 아침을 보낼 수 있기를. 모두들에게 건대입구역 600백원짜리 설탕 없는 라떼를 한 잔씩 뽑아 건네주며,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어디선가 자작나무 나뭇잎들이 사르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거라고. 바닷물이 소금이 되는 묵직한 소리가 들릴 거라고. 언 땅을 제일 먼저 뚫고 나오는 쑥의 청록색 소리가 들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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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from 서재를쌓다 2009. 6. 8. 00:51

 



여보, 나좀 도와줘

노무현 지음/새터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가 이제 이 땅에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강했던 그가 스스로 바위산 위에서 몸을 던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 땅 위엔 없고, 그 날 새벽 바위산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책의 마지막, 238쪽에서 239쪽에는 지은이의 약력, 즉 노무현 대통령의 약력이 나와 있다. 경남 김해군 진영에서 출생한 1946년부터 1993년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해까지 기록되어 있다. 책은 1994년에 발간되었다. 그 뒤로 2009년까지. 이 책의 기록은 93년에 멈췄지만 그는 2009년까지 쉼없이 달려왔다. 그 기록들은 아마도 240쪽을 넘어 241쪽을 넘어 242쪽 너머까지 이어졌겠지. 그리고 243쪽, 244쪽, 245쪽까지는 이어졌어야 했을텐데. 2009년에 멈춰 버렸다. 멈춰 버렸다. 지은이의 약력이 245쪽 너머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면, 6월에 내가 읽고, 옮겨 적은 저 문장들이 이리도 마음 아플 리는 없었을 거다. 쓰라리지도 않았을 거다. 표지 그림에서마저 울고 있는 당신. 그 곳에선 조금 편안하신 거죠? 그러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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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오정희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친구는 요시다 슈이치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 책을 가지고 왔다. 나를 만나러 오다, 나를 기다리다 산 책이라 했다. 짧은 글들이 담긴 책인데, 내가 오는 동안 몇 편을 읽었다고 괜찮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비가 왔다. 우리는 요시다씨를 만나고, 우산을 펴고 우겹살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언제였더라. 김동영 작가를 만나는 날이었던가. 친구는 또 한 번 이 책 이야기를 꺼냈었다. 다 읽었다고, 아주 좋았다고, 너도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책 속의 어떤 한 소설의 느낌을 이야기해줬는데, 나는 요시다씨를 만난 뒤 잠깐 들른 커피숍에서 읽었던 이 책 속 작은 은점이(작고 강한 아이다)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내 친구가 말해준 그 이야기 때문에 이 책이 빨리 읽고 싶어졌다. 그건 오정희 작가가 쓴 이야기였지만, 오정희 작가의 이야기이고, 우리들의 훗날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 책의 거의 모든 소설이 그렇다. 제목은 '아내의 30대'. 소설의 처음,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새벽녘 아내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 화자인 남편. 이건 아내의 이야기인데, 남편이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더 서글펐고, 더 이해가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눈물이 핑 돌면서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새벽녘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내는 이불을 덮어 쓰고 울고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묻는다. 아내는 자신도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흐느끼며 말한다. 그리고 가끔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고. 숨도 못 쉬겠다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될 거라고.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인생이 뭔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남편은 연애시절, 신혼 초의 여린 아내의 눈물을 생각한다. 그 때는 그 눈물에 자신이 항상 졌다고, 그건 여자의 무기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의 눈물에 대해서도 말한다. 결혼 생활이 길어지고 이제 싸우는 중에도 울지 않는 아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제 남편은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고 항복하지 않는 것이다. 화해의 과정이 없어도 생활은 계속되는 것. 더이상 '이른바 눈물의 정화작용 화해 과정이 없'는 것. 남편에게 이제 아내의 눈물은 여자의 눈물이 아니다. 그저 이 상황을 어떻게 빨리 넘겨야 할지 궁리하는 위기상황일 뿐이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어디선가 빗소리가 들려온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거다. 그러자 아내는 눈물을 뚝 그친다. 아내는 빨래를 걷어야 한다. 이제 곧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아침밥도 해야 하고, 남편을 출근시켜야 한다. 다시 아내는 현실로 돌아오고,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 '아내는 30대 중반인 것이다. 새로이 시작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어려운.'

     이 짧은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여자라면, 친구처럼 가정을 가졌거나, 나처럼 가정을 가지지 않은 여자라면. 그리고 우리처럼 30대로 접어들었다면. 그리고 나처럼 가끔씩 인생이, 아니 자주, 때때로, 이따금 허무할 때면, 쓸쓸할 때면, 외로울 때면. 친구와 나처럼,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경우라면 읽어 볼 만한 이야기다. 아니, 읽어보았으면 하는 이야기다. '여자'의 경우를 '남자'로 바꿔도 마찬가지. 1분 1초의 쓸쓸함을 견뎌내고 있는 당신에게, 그리고 30대도, 여자도, 엄마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소나기가 쏴악- 하고 내리는 날에 커피를 내리고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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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표지를 봤을 때 공선옥스러운 표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청보리밭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공선옥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표지가 아니었다. 이건 너무 예쁘잖아, 색도, 일러스트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투박한 이미지에 비해서 너무 팬시적인 표지라고.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표지가 너무 예뻤다. 이건 공선옥이 '쓴' 이야기지만, 스무살 아주 예쁜 해금이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표지 속 민들레를 예쁘게 후-하고 부는 볼이 발그레한 아이는 해금이. 해금이는 예쁜 아이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이 표지가 이해가 되었다. 해금이에겐 아주 예쁜 표지가 필요하다. 예쁜 색이 필요하고, 예쁜 얼굴이 필요하다. 마해금이니까. 아주 예쁜 스무살이니까. 슬픈 나이이기도, 슬픈 시절이기도 하니까. 아, 마해금이 이쁘다. 분홍빛으로 물든 볼도 예쁘고, 살짝 감은 속눈썹도 예쁘고, 동그랗게 모은 토실토실한 입술도 예쁘다. 마해금이 참 예쁘다.

    그 분을 떠나보낸 뒤,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지만, 그 두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리뷰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 어젯밤 뉴스에서 쌍용차 고공 농성자는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있는 부인에게 바람이 많이 불어 굴뚝이 흔들려서 밥을 올려줘도 못 먹는다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의 멘트, '내려오라고 할 수도, 그냥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가족들은 그저 가슴만 타들어갑니다.' 다음 날, 천 명 넘는 쌍용차 직원들이 해고 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어제까지 서울광장은 32대의 전경버스에 촘촘히 가로막혀 있었다. 이건 2009년의 일인데, 마해금이 살았던 80년대의 일들과 달라진 게 없다. 마해금이는 80년대에 20대였으니, 지금은 50을 바라보는 40대 후반이 되었겠다. 이제 여사라 불릴 나이. 그럼 다시, 2009년을 살아가고 있을 마해금 여사는 여전히 변함없이, 바람에 휘청휘청 흔들리는 세상을 두고 뭐라고 이야기할까. 바람은 불고, 튼튼해 보이기만 하는 굴뚝은 자꾸만 바람에 흔들리고,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세상에서 마해금이는 스무 살 때 그러했던 것처럼 씩씩하게 다시 봄밤길을 나설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80년에 스무 살이었던 해금이에게, 봄의 밤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 해금이에게, 2009년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2009년 6월 2일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을 찍은 사진 뿐이다. 해가 길어져 저녁인데도 날이 훤했다. 담장 너머 붉은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그 꽃잎들이 담장 아래 가득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붉은 꽃길을 따라 걸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냥 피었다 진 꽃잎들일 뿐이었는데, 꼭 누군가가 나를 위해 뿌려놓은 꽃길 같았다. 그 날의 꽃길을 마해금이에게 바친다.




    그래요,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요. 그 날, 해금이랑, 정신이랑, 승희랑, 진만이랑, 승규랑, 태용이랑, 수경이랑, 경애랑 그리고 그 분이랑 다 같이 만납시다. 좋은 날이 오면은요. 우리는 모두 만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각자 존재하고 있지만,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은, 다 같이 만날 수 있겠지요. 그럴 겁니다. 분명히 그럴 거예요. 좋은 날이 언제고 오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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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요시다 슈이치의 <7월 24일 거리>는 작은 항구도시에 사는 주인공 사유리가 출근길 항구에서 나비의 시체를 보면서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본이었던 호랑나비가 항구 제방에 떨어진 것을 본 것이다. 사유리는 조금 특별하다. 이를테면 일본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꿈꾸는 여자다. 사유리는 자신의 고향의 거리들을 리스본에 있는 거리로 바꿔 부르기를 좋아한다. 물론 혼자 있을 때의 일이다. 예를 들면, 늘 버스를 타는 '미루야마 신사 앞'이란 정거장을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이라고 부르고, 제방과 나란한 현도는 '7월 24일 거리'라고 부른다. 재개발 덕분에 항구에 조성된 '물가 공원'은 '코메르시오 광장'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렇게 부르면, 사유미가 살고 있는 소박한 항구 도시가 리스본의 시가지와 완벽하게 겹쳐진다는 것이다.

    우선 사유리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태어난 곳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곳에도 바다가 있다. 강원도 고성에도 바다가 있지만, 경상남도 고성에도 바다가 있다. 나는 그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났다. 사유리와 같이 바닷가를 지나 등하교하진 않았지만, 늘 바다가 가까이 있었다. 자주 나들이가던 곳도 그 옛날 이순신 장군이 싸웠던 당항포였고, 집 근처 시장에는 갓 잡은 생선들이 그득했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서 서해바다도 가보고, 동해바다도 가 본 뒤에 안 사실이지만, 남해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자갈밭에 앉아 오후 내내 잔잔한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을 거다. 그 곳이 그립다는 것도, 아름답다는 것도 모두 떨어져 있은 후에 안 사실들이다. 그저 내가 그 시절 안 것이라고는 길을 가면 어디서든 아는 사람을 한,둘 만날 수 있는 좁은 동네라는 사실과, 바닷가 가까이 가면 언제나 굴껍질 더미가 그득했다는 사실 뿐.

    <7월 24일 거리>의 사유리의 생각도 비슷하다. 사유리도 자신이 살고 있는 항구도시를 그리 아름답다고, 근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스본의 거리로 자신의 고향 지명을 바꿔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유리는 평범하고, 소심하고,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멋진 남자에게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닮은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에게 너는 근사한 아이라고 칭찬해줘도 그걸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다. 너같이 멋진 아이가 어찌하여 나같이 볼 것 없는 아이는 좋아한다는 말이니, 식의 작디 작은 아이. 

    나는 이 소설을 정말 사랑하게 되었는데, 가장 커다란 이유는 178쪽부터 펼쳐지는 풍경때문이다. 사유리는 '너의 색을 뭐하고 생각하니?'라고 묻는, 이 도시에서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경비일을 하는, 그리고 서점에서 <포르투갈의 바다>라는 시집을 읽고 있던 한 남자를 몇 번 만나게 되는데, 소설의 후반부에 그 남자는 사유리를 자신이 경비를 서는 백화점 옥상으로 데려간다. 그 시간, 이 항구도시는 정전이었다. 영업하지 않는 백화점 내부는 어둡고 고요했다. 더듬더듬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가고, 찰그락거리며 어둠 속에서 옥상 문을 연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사유리가 옥상으로 발을 내민다. 그 순간,

178쪽.

    그러니 사유리도 아름답다. 사유리도 멋진 남자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유리도 정말 굉장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이 소설의 배경은 겨울인데, 책의 표지색도 그렇고 읽는 내내 여름을 떠올리게 된다. 여름의 강한 햇빛, 열기. 여름의 그것들이 연상되는 소설이다. 아,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한 군데 더 있다. 나도 사유리처럼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이번에 나온 김동률 콘서트 실황 중에서 '걱정'을 듣고 있었는데, 그 곡과 그 페이지의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책을 읽으며 함께 한 번 들어보시기를. 126쪽에 있고, 소제목은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이다.

    소심하고 조용한 사유미는 이 날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바로 '너의 색을 뭐하고 생각하니?'라고 묻는, 옥상으로 사유미를 데리고 올라가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게 해 준 바로 그 남자에게. 그리고 밤의 버스는 7월 24일 거리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김동률의 '걱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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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신화
황경신 지음/아트북스



    5월 7일 목요일 저녁 7시 반에 나는 황경신 앞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이리카페였고. 황경신은 크게 갈 지자를 그리며 걸어가면 세 걸음이면 닿을 만한 거리에 앉아 내게 신화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쁘고, 슬프고, 아름다운 그림들도 보여줬다. 나는 황경신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발랄해서 (옷차림도 발랄했다) 놀랬고, 우리 만남의 초반부가 생각보다 지루해서 놀랬고, 어느새 내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것에 놀랬고, 살까말까 망설였던 책을 결국 사게 만들었던 그림 같은 신화 이야기에 놀랬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이 책은 12명의 신화 속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황경신이 그 인물들에 엮인 이야기들을 조근조근 들려주고, 그 신화 이야기를 그린 화가의 작품도 보여준다. 공부하기 위한 신화 이야기,라기 보다는 느끼기 위한 신화 이야기,라고 할까. 목요일의 만남의 마지막에 황경신이 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이 책과 잘 어울린다. 자신의 책으로 인해서 신화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속 어느 인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져서 다시 어떤 책을 뒤적거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어떤 화가의 작품이 좋아서 그의 작품들을 더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자신은 만족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녀의 꽤 괜찮은 독자다. 나는 표지 그림을 그리기도 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라는 화가의 작품을 더 많이 알고 싶어졌고, 언제나 사랑에 빠져 있어야 하는 새벽의 신, 에오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으니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여섯 개의 하늘색 포스트잇을 붙였다. 첫 번째 포스트 잇. 이 부분을 읽을 때의 상황은 확실히 기억한다. 지하철 안이었고, 5월 8일의 아침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그 맑은 아침에 눈물이 고였었다. 아마도 그 부분에 딱 맞는 음악까지 듣고 있었으면, 그 맑은 아침부터 나는 울었을 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에로스는 알고 있다. 이 부분. 신화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도 사랑이야기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이용하고 배신했다. 하지만 배신 당한 줄도 몰랐던 아리아드네. 저 글에서 언급된 워터하우스의 그림에는 평온한 표정의 아리아드네와 그 순간 그녀를 떠나가는 남자의 배가 저 멀리 보인다. 아니다, 다시 보니 그녀의 표정도 평온해보이지 만은 않구나. 혹시 그녀는 그 순간, 그가 그녀를 떠나버리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사랑의 시작은 찬란하나, 사랑의 끝은 언제나 어느 한 사람이 지독하게 아픈 운명이므로, 슬프고, 아리고, 시리다.   

    두 번째 포스트 잇. 이런 에로스의 화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이 둘도 없는 운명,이라 믿는 사람들의 코 앞에 대고 사랑에 대해 스물 네살 이후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내가 들려주고 싶은 구절.

    세 번째 포스트 잇.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사랑했고, 그래서 결혼을 했다. 신혼의 단꿈에 빠진 것도 잠시, 들판에서 길을 걷다 뱀에서 물린 에우리디케는 죽고,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지하세계로 향한다.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는 리라 소리는 지하세계를 감동시켰고, 결국 그는 그녀를 지상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결국 지상으로 완전히 나가기 전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을 어기는 순간, 그에게서 그녀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그러하다. 한 사람이 먼저 연기처럼 사라지고, 한 사람의 마음만이 온전히 남는 법. 오르페우스는 연기처럼 사라진 그녀를 더욱 사랑했고, 하늘이 이에 감동하여 어쩌고 저쩌고. 해피엔딩이니깐.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난 어쩌면 비극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봐.

   이제 네 번째 포스트 잇. 

    메두사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겉모습에만 눈독을 들인 남자는 그녀를 범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겉모습만을 질투한 또 다른 여자는 그녀의 미모가 자신보다 빛나지 않도록 마법을 걸었고, 아주 먼 곳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고 있던 그녀에게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는 남자가 찾아와 눈을 감고, 그녀의 아름다운 눈조차 바라보지 않고 그녀를 죽였다. 그리고 그는 영웅이 되었다. 메두사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녀를 사랑하고, 질투하고, 죽였던 사람에게만 그녀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포스트 잇. 두 포스트 잇은 메아리에 대한 이야기다. 에코라도 불리는 수다쟁이 님프에 관한 이야기다. 에코는 헤라로부터 '다른 사람이 한 말의 마지막 말만 되풀이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아이였으므로, 질투의 여신 헤라는 바람피는 제우스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신 지가 하고 싶은 말만을 끝없이 늘어놓아 결국 제우스의 현장을 덮치는 것에 실패한 분풀이를 에코에게 한 것이다. 역시 헤라는 현명한 여자가 아니야. 그리하여 에코는 남이 한 마지막 말만 되풀이 하는 벌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고,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달콤한 사랑의 말로써 나르키소스에게 전할 수 없었기에,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졌다. 자신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열기로 인해 팔이 녹고, 다리가 놓고, 머리카락이 녹고, 두 눈까지 녹아버렸다. 그리고 남은 단 하나. 에코에겐 목소리뿐이었다. 

   정확히 다섯 번째 포스트 잇이 붙여져 있는 곳. 에코가 말한다 "우리가 그를 사랑했듯이, 그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그 사랑을 이룰 수 없게 해주세요. 그가 사랑의 아픔을 알도록 해주세요." 전할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한 이는 이렇게 집착한다. 그런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에코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신 그러진 않을 거다. 응.

   여섯 번째 포스트 잇. 마지막이다. 에코도 마지막이란다. 

    사실, 내가 이 책에 반한 건 여섯 개의 포스트 잇이 붙여진 구절이기 보다는, 처음에 있는 황경신의 프롤로그였다. 제목은 '안녕하세요?'이다.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난 신화를 읽어야겠어.' 어느 가을, 길을 걷는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봄이었을지도 모른다. 거리에는 투명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조금 외로웠던 것 같다. 단지 심심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네 번째 문단에 이런 문장들이 적혀져 있다. "신화를 읽고 났더니 겨울이 되어 있었다. 여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신화를 읽은 후의 나는 신화를 읽기 전의 나와비슷했다. 나의 생활도 그랬다. 나는 늘 그랬듯이 밥을 지어먹고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책을 읽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에 귀를 기울이고 밤이면 오래된 토끼 인형과 함께 꿈 많은 잠을 잤다." 그리고 신화를 읽은 후, 아주 작은 무언가가 바뀌었구나, 느끼는 그녀. 여덟 번째 문단과 아홉 번째 문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 살아 있구나,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에 연결되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밥을 지어먹고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책을 읽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에 귀를 기울이고 밤이면 토끼 인형과 함께 꿈이 많은 잠을 잤다. 토끼 인형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함께 꿈은 매일 달랐다. (...) 나는 가끔 울었고 자주 웃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꽤 많아 이런 생각을 했다. 5월 7일 수요일 7시 반의 이리카페에서 곧 내가 좋아하게 될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을 배경으로 그 문장들을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음악에 맞춰 황경신이 읽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그러면 난 그 시간을 한껏 더 사랑했을 거다. 그녀에게 언젠가 편지를 쓰게 된다면 말해줘야지. 다음번에는 그런 만남을 기대한다고. 아, 그 날 그녀는 책의 앞 날개에 있는 작가 사진과 똑같은 옷을 입고 우리를 만나러 와주었다. 앞 날개의 사진에는 그녀의 얼굴이 안 보이지만, 난 그 날 앞 날개의 옷 위 밝고, 생각보다 활달한 그녀의 얼굴을 두 시간동안 마주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는 내 이름 밑에 연필로 사각사각거리며, '가장 아름다운 신화는 살아 있는 우리라고'라고 써 주었다. 연필인가요?, 라고 내가 물었고, 그녀는 생각보다 활달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연필을 좋아해요,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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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にも負けず

from 서재를쌓다 2009. 5. 15. 01:56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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