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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마해금이는 예쁘다
    서재를쌓다 2009. 6. 4. 23:27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표지를 봤을 때 공선옥스러운 표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청보리밭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공선옥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표지가 아니었다. 이건 너무 예쁘잖아, 색도, 일러스트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투박한 이미지에 비해서 너무 팬시적인 표지라고.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표지가 너무 예뻤다. 이건 공선옥이 '쓴' 이야기지만, 스무살 아주 예쁜 해금이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표지 속 민들레를 예쁘게 후-하고 부는 볼이 발그레한 아이는 해금이. 해금이는 예쁜 아이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이 표지가 이해가 되었다. 해금이에겐 아주 예쁜 표지가 필요하다. 예쁜 색이 필요하고, 예쁜 얼굴이 필요하다. 마해금이니까. 아주 예쁜 스무살이니까. 슬픈 나이이기도, 슬픈 시절이기도 하니까. 아, 마해금이 이쁘다. 분홍빛으로 물든 볼도 예쁘고, 살짝 감은 속눈썹도 예쁘고, 동그랗게 모은 토실토실한 입술도 예쁘다. 마해금이 참 예쁘다.

        그 분을 떠나보낸 뒤,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지만, 그 두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리뷰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 어젯밤 뉴스에서 쌍용차 고공 농성자는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있는 부인에게 바람이 많이 불어 굴뚝이 흔들려서 밥을 올려줘도 못 먹는다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의 멘트, '내려오라고 할 수도, 그냥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가족들은 그저 가슴만 타들어갑니다.' 다음 날, 천 명 넘는 쌍용차 직원들이 해고 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어제까지 서울광장은 32대의 전경버스에 촘촘히 가로막혀 있었다. 이건 2009년의 일인데, 마해금이 살았던 80년대의 일들과 달라진 게 없다. 마해금이는 80년대에 20대였으니, 지금은 50을 바라보는 40대 후반이 되었겠다. 이제 여사라 불릴 나이. 그럼 다시, 2009년을 살아가고 있을 마해금 여사는 여전히 변함없이, 바람에 휘청휘청 흔들리는 세상을 두고 뭐라고 이야기할까. 바람은 불고, 튼튼해 보이기만 하는 굴뚝은 자꾸만 바람에 흔들리고,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세상에서 마해금이는 스무 살 때 그러했던 것처럼 씩씩하게 다시 봄밤길을 나설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80년에 스무 살이었던 해금이에게, 봄의 밤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 해금이에게, 2009년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2009년 6월 2일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을 찍은 사진 뿐이다. 해가 길어져 저녁인데도 날이 훤했다. 담장 너머 붉은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그 꽃잎들이 담장 아래 가득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붉은 꽃길을 따라 걸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냥 피었다 진 꽃잎들일 뿐이었는데, 꼭 누군가가 나를 위해 뿌려놓은 꽃길 같았다. 그 날의 꽃길을 마해금이에게 바친다.




        그래요,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요. 그 날, 해금이랑, 정신이랑, 승희랑, 진만이랑, 승규랑, 태용이랑, 수경이랑, 경애랑 그리고 그 분이랑 다 같이 만납시다. 좋은 날이 오면은요. 우리는 모두 만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각자 존재하고 있지만,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은, 다 같이 만날 수 있겠지요. 그럴 겁니다. 분명히 그럴 거예요. 좋은 날이 언제고 오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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