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의 계획은 하루종일 집 안에서 뒹구는 것이었다.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막내 동생에게 자장면을 사달라고 졸랐다. 막내 동생은 언니가 어린이냐고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곧 내게 돈이 들어오는 날이 가까워지는 것을 깨달은 동생은 빨리 중국집에 전화를 걸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어린이날, 어린이도 아닌 주제로 자장면을 얻어먹었다. 주소를 말하자 중국집 아저씨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가 광분한 그 중국집의 여직원처럼 아, 거기 알아요, 라며 껄껄거리셨다. 미리 삶아놓은 게 분명한 면발은 불어있었지만, 동생이 사준 자장면은 맛있었다.

   친구의 연락을 받고 대충 앞머리만 씻고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지만, 친구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그래서 대학로의 약속이 있는 막내 동생과 집 앞 파리빠게뜨에 가 천원짜리 아이스티와 천원짜리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거기서 나는 책을 읽고, 동생은 공부를 약간 한 후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약속도 없고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영화라도 보러 갈까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마트에 맥주를 사러 가기로 했다. 요즘 다시 <연애시대>를 보고 있는데, 좋아서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맥주를 사서 창문을 잔뜩 열어놓고 <연애시대>를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마트에서 맥주를 사서 돌아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의 초등학교 교문이 열려있는 거다. 늘 나는 늦은 시간 이 길을 지났으니 어두운 학교와 닫혀있는 교문만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밝은 학교와 열려있는 교문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망설이다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정말 오랜만이다, 라는 생각에. 구석구석 구경하고, 운동장 한 쪽 벤치에 앉았다.


   아, 오늘 날 초등학생들은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가져보지 못한 텃밭을 가지고 있었다. 따 먹으면 뒤지는 텃밭. 엠피쓰리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노래들을 들으며 그 곳에서 한참을 있었다. 아이들은 누우런 운동장에서 야구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뜀박질을 했다. 엄마, 아빠와 나온 아장아장 걷는 조그마한 여자아이도 있었고. 모두들 행복해보였다. 덕분에 나도 행복해졌다. 그러다 읽다 만 책이 생각나 가방에서 꺼내 펼쳐들었다. 정한아의 첫 번째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나는 휴일날 오후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이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 '휴일의 음악'을 읽었다. 이 단편은 문예지에서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소설이었다. 유부남을 사랑하는, 사랑했던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 어떤 구절을 읽고 있는데, 쨍-하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운동장 한 구석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쇠방망이에 테니스공이 쨍-하고 맞았다. 안타였다. 아이가 뛰었다. 1루를 지나, 2루를 지나, 3루까지 갔다. 그 때 내가 읽고 있던 구절은 이 부분이었다. "요양원까지는 길이 멀어서 서두르지 않으면 온종일 도로 위에 서 있어야 했다. 새벽공기에서 잉크 냄새가 났다."  그리고 운동장 한 구석에서 다시 읽은 소설의 이 구절에서 마음이 찌릿했다.

   장한아의 소설집은 이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이다. 따스한 책이고, 따스한 계절이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든 건 4월에서 5월으로 넘어가는 때였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이 소설집의 어떤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이건 이 계절에 맞는 느낌이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겨울에도 좋겠다. 추운 계절이니,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할 테다. 이 책의 소재들은 따스할 게 없는 것들인데, 작가의 기운 때문인지 소설은 모두 따스하다. 2미터 넘게 자라는 거인병에 걸린 엄마, 아프리카를 꿈꾸며 몸을 파는 나, 거기에서는 모든 걸 다 소진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에 있는 협동농장으로 향하는 나, 할머니의 의자를 비밀을 알게 된 나, 모든 걸 다 잃어도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아빠, 생일에 비가 오면 자신과 꼭 닮은 귀신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그는 봤다. 그 날. 반으로 쪼개진 돌),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나. 

    전생이 있다면, 정한아는 적도 근처의 따뜻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그녀가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는 아프리카며, 아르헨티나며, 이스라엘이며는 모두 우리가 사는 곳보다 적도 가까이 있는 나라들이다. 그녀는 아마도 그 나라를 꿈꾸거나, 그 나라를 다녀온 뒤 이 소설을 썼을 거다. 그녀는 따스한 기운으로 충만한 사람. 또 정한아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은 할머니, 가정이 있는 남자, 돌. 왠지 그녀의 소설보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기분이다. 또랑또랑하게, 밝고 맑게 웃고 있는 커다란 사진 속의 작가.

   흠. 그러니깐 나는 2009년의 어린이날에 자장면을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앉아있었으며, 정한아의 소설을 읽으면서 보냈다. 아, 지금은 맥주를 마시고 있고. <나를 위해 웃다>의 마지막 소설 '휴일의 음악'에는 휴일에 무얼하고 보냈냐고 조사를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 '나'는 모래사장의 들어올린 모래와 같은 표본의 어떤 이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지난 주말에는 무얼 하셨나요?" 그러니까, 그 소설에서처럼 누군가 모래사장에서 들어올린 모래와 같은 표본이 되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지난 어린이날에는 무얼 하셨나요?"라고 묻는다면, 내가 좀 할 이야기가 있다는 이야기다.  


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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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강

    이 소설집에는 모두 9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이혜경, 하성란, 권여선, 김숨, 강경숙, 이신조, 윤성희, 편혜영, 김애란의 소설이다. 모두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다. 서울에 머물고 있거나, 서울에 입성하려 하는. 각 소설의 앞에는 작가의 작은 사진과 함께 서울이란 공간에 대한, 서울이란 공간에 대해 쓴 이 소설에 대한 짧은 '작가의 말'이 있는데.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강이 없었더라면 당신과 나는 어떻게 만났을까', '나는 자주 서울에 간다. 영화를 보러 서울에 가고, 술을 마시러 서울에 가고, 어슬렁거리기 위해 서울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서울에 간다', '올해로 서울에 산 지 십 년이 됐다. 그사이 다섯 번의 이사를 다녔다'와 같은 글들이다. 그들을 흉내되어 나도 한토막. 
 
   올해로 서울에 산 지 십 년이 됐다. 이건 김애란과 내가 같구나. 그 사이 세 번의 이사를 다녔다. 처음 서울에 와서 나는 반지하의 하숙방에서 살았다. 아직도 기억 나는 건, 그 겨울 룸메이트 없이 혼자 그 방에서 겨울을 났고, 나는 언제나처럼 가난했지만 내겐 하얀색 오래된 어학전문용 라디오가 있었다. 나는 겨울방학동안 서울에 있는 내내 그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그 라디오를 들으며 가끔 걸레질을 할 때면 뭔가 충만한 기분이 들곤 했다. 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았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맞는 겨울이었다. 친구는 서울의 겨울은 끔찍하게 추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라고 그 겨울 내게 말했다.

   두 번째 이사는 같은 하숙집 2층의 방으로였다. 친구와 나는 그 때 함께 살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셨고, 그 술병을 내다 버리지 않고 커다란 창문 뒤 쇠창 앞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뒀었다. 둘이 아니라, 셋이 마실 때도 있었고, 넷이 마실 때도 있었다. 그런 밤이면 창가의 병 수가 더 늘어났다. 우리는 낮에 바깥에서 그 창문의 반짝거리는 술병들을 올려다보며 뿌듯해 했었다. 하숙집 할머니가 그 병들을 당장 치우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세 번째는 같은 동네의 작고 깔끔한 하숙집이었다. 그 곳에 친구들이 살았다. 다른 층, 다른 방에서. 그 하숙집에 살 동안 나는 실연을 당했고, 친구도 실연을 당했다. 집 앞 포장마차에 자주 들러서 여름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셨고, 처갓집 통닭집 아저씨는 둘이 오면 닭 반마리도 흔쾌히 튀겨 주셨다. 곧 동생이 올라왔고, 티비랑 앉은뱅이 책상, 작은 수압공간을 빼고 둘이 누으면 꽉 차는 그 방에서 몇 년을 살았다. 그 집에서는 빨래를 넣어놓으면 옷이 없어졌고, 신발장의 구두가 없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가끔있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둘이서 그 좁은 방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지만, 그 시절 나름대로 따뜻했고 행복했다. 친구들이 아침이며 밤이며 같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집이다. 처음으로 가지게 된 자취집. 세 자매가 함께 살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주택의 2층이지만, 나는 이 집이, 이 동네가 좋다. 햇볕도 잘 들어오고, 외지지 않고, 재래시장도 가까이 있고, 마트도 가까이 있고, 술집도 많고, 공원도 있고, 조금만 걸으면 중랑천이다. 걸어서 30분 거리에 약수터도 있고, 자그마한 산도 있다. 이 동네에서 산 지가 벌써 몇 년이지? 나는 그동안 이 동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어느 집 맥주가 맛있고, 어느 집 채소가 싱싱하고, 어느 집이 친절하고, 어느 길이 빠른지. 어느 길이 한적하고, 어느 길이 아름다운지, 어느 길의 바람이 시원한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동네를 산책할 때 행복하다. 그렇게 서울에서 산 지 십 년이 되어간다. 나는 그 십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많은 커피와 술을 마셨다. 어떤 사랑도 경험했고, 어떤 이별도 치뤘다. 행복했고, 부끄러웠으며, 아팠고, 비로소 편안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서울에서 걸어온 길들을 생각했다. 내가 살았던 동네들도. 아빠는 아직도 총각시절 잠시 살았던 서울의 어느 곳의 이야기를 곧잘 하신다. 그 곳에서 먹었던 자장면, 그 곳의 사람들. 명절 때마다 삼촌은 자신이 발을 디뎠던 서울의 그 곳이 잘 있느냐고 물으신다. 그 우리들의 서울이, 소설이 되어 이 팬시한 표지의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촌, 남산, 재개발 구역, 강이 보이는 오피스텔 등등. 내가 걸었던, 혹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창 밖으로 보았던 곳의 풍경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 풍경들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기억에 남았던 소설은 권여선과 윤성희, 편혜영의 소설. 권여선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왠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찔리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묘하게, 아주 얄밉게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이) 줄다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윤성희의 소설은 위독하신 친구 할머니를 위해 옛날 학창시절 때 흔적을 찾아 캠코더로 이런 저런 영상을 찍는 중년들의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키득키득 웃다가 마지막에 숙연해졌다.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중년이 된다는 거, 나이가 들어 먹고 산다는 거, 그런 친구들을 바라본다는 거, 그건 가슴 한 구석이 뜨끈해지는 일 같다. 새벽두시 삼십칠분에 육만사 천원을 계산하는 일과 같은. 편혜영의 소설은 또렷하게 이미지가 남는 작품. 서울이 코 앞인 도로 위에서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마침내 칠흑같이 깜깜해졌을 때 찾아오는 공포. 서늘함. 두려움. 희망으로 가득찼던 낮의 활기찬 기운이 저녁이 되면 서늘해질 때. 그 모습의 이미지. 

   소설을 읽고 5월에는 경복궁에 가야지, 생각했다. 북촌에도 가야지, 생각했다. 어린이 대공원에도 가야지, 생각했다. 봄의 서울은 활기차다. 지난 목요일에는 시청 잔디밭에 앉아 징거버거랑 커다란 캔맥주를 마셨다. 금요일에는 친구 집에 가는데 늘 가던 2호선 시청 방향이 아닌, 2호선 잠실 방향의 전철을 탔다. 낮이었고 햇살이 밝았다. 자리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책을 읽었다. 음악도 들었다. 그 길이 따스했다. 지난 주에는 누군가 내게 물었다. 좋은 일 없을까요? 나는 없어요, 라고 단번에 말해버리곤, 아, 라고 말을 이었다. 남산에 걸어 올라가서 캔맥주를 마시면 좋아요. 그 사람이 그랬다. 그건 좋겠네요. 또 있어요. 뚝섬에서 돗자리 깔고 맥주를 마셔도 좋아요. 그리고 내가 말했다. 그런 것들 뿐이예요. 그 사람이 말했다. 그 말 좋네요. 그런 것들 뿐이예요, 라는 말. 남산도, 한강도, 서울에서 가능한 일. 서울이 징글징글할 때도 있지만,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런 두서없는 글을 이렇게 길게도 쓰고 있구나.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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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2
아베 야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언젠가의 크리스마스 이브. 단골들이 모두 심야식당에 모여 있다. 모두들 각자의 메뉴를 먹으며 크리스마스 따위,라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거리의 커플들 때문에, 불교신자라서, 가난한 어린시절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브가 더이상 기다려지지 않는 사람들. 모두들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들 앞에 '오늘'만큼은 산타가 나타난다. 우리의 조폭 류씨. 그가 선물로 받은 게를 품 안에 가득 들고 나타났다. 마스터는 오늘은 화끈하게 게를 구워먹어볼까요, 말한다.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게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그 냄새가 식당 가득 퍼지고, 모두들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분위기. 그만하고 빨리 달라고 난리들이시다. 그리고 게를 먹는 시간. 쩝쩝- 게 먹는 소리와 슥슥- 게살 발라내는 소리만 가득한 심야식당. 어느 누구도, 무슨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게에만 집중하는 시간. 누군가 식당 문을 드르르 열고는, 뭐야 있었네? 라고 말한다. 너무 조용해서 손님이 없는 줄 알았다는 말에 마스터는 게를 먹고 있거든요, 대답한다. 한 컷 가득 심야식당의 전경이 비춰진다. 예쁜 눈이 샤르르 샤르르 내리고 있는 풍경. 누군가 말한다. '이게 진짜 사일런트 나이트지.'

    심야식당의 뒷표지에는 에피소드의 제목들이 씌여져 있다. 그러니까 음식 이름들. 15화 회에 곁들인 무채, 16화 냉국, 17화 달걀 샌드위치, 18화 꽁치 소금구이, 19화 차밥, 20화 화장실 손님, 21화 어니언링, 22화 바삭바삭한 베이컨, 23화 굴튀김, 24화 고기감자조림, 25화 소스 야키소바, 26화 나무젓가락, 27화 게, 28화 잘 먹겠습니다, 29화 푸딩. 이것 때문이다. 살까말까 망설이며 서점에 갔다가 결국 계산하고 나오게 되는 것은. 두 번째 이야기 중 단연 최고는 게 요리. 이 에피소드가 계속 생각나서 오늘만 2번을 봤는데, 그때마다 행복해졌다. 그야말로 사일런트 나이트. 어쩌지? 나 계속 심야식당에 빠져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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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언니는 터키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언니가 터키에 가기 전, 겨울의 홍대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 날 우리는 소문난 맛집 앞에서 몇 십분을 기다린 뒤, 일본식 덮밥을 먹었고, 튀김을 파는 술집에서 맥주와 바삭바삭한 튀김을 안주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날, 언니가 내게 추천해준 책이다. 언니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좋다더라는 말을 듣고 내게 추천해줬다. 언니는 항상 무슨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이름을 길-게, 끈적하게 부른다. 아무개야. 심야식당이라는 만화책이 있대. 밤 12시부터 아침이 될 때까지만 여는 식당인 거야.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가는 곳이래.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언니는. 겨울의 일이니까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워낙에 난 기억력이 없으니까. 이건 추측인데, 언니는 그 곳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가서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생각한 말일 수도 있고. 

    언니는 터키에서 돌아왔지만 아직 만나지는 못한 봄. 교보에서 이 만화책을 샀다. 그 날은 뭔가를 꼭 사야만 할 것 같은 날이라, 그냥 들른 서점에서 빈손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 샀다. 그리고 금방 읽어버리지 않고, 적당히 묵혀두었다. <심야식당>에 나오는 '어제의 카레'처럼 묵혀두고 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더 괜찮았다. 사실, 그림도 내용도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는 아니었다. 오히려 좀 실망했다. 난 이 만화책이 좀 더 감성적이고, 좀 더 그림이 풍성할 줄 알았는데. 그림은 썩 잘 그리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내용도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난다. 30분 안에 다 볼 수 있는 내용인데, 3일 내내 드문드문 <심야식당>의 손님들이, 마스터가 생각나서 집에 오면 괜히 한 번씩 들춰보곤 했다. 뭔가 있다. 이 만화에. 


    이 희안한 식당의 주인장님이시다. 모두들 이 분을 두고 마스터라고 부른다. 마스터 계란말이 하나 줘요. 마스터, 그 카레는 뭔가요? 마스터 고양이 맘마 되요? 이런 식이다. 얼굴을 보면 무슨 사연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야말로 심야 식당.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여는. 메뉴에 상관없이 뭐든 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집에서 만들어먹는 그런 음식들. 간단하지만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집밥스런 음식들. 이 식당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분명 마스터는 나는 간장계란밥을 주문했을 거다. 따끈따끈 김이 올라오는 새 밥에 간장이랑 참기름 듬뿍 넣고 계란 반숙으로 후라이해서 비벼 먹는. 딱 그런 식의 음식이 마스터의 손에서 만들어져 손님들의 식탁 위에 오른다.

   책의 표지에 메뉴판이 적혀져 있다. 14개의 음식 이름들이 적혀져 있는데, 만화책을 보고 나면, 이 메뉴들이 그냥 음식 이름처럼만 보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이 음식들을 시켜 맛나게 먹었던, 식당을 거쳐갔던 손님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떠오르는 거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따스해진다. 신기하게도 그렇다. 그러니까 이런 손님들이다.

   조폭 류씨는 심야식당에 와서 문어모양의 비엔나소시지를 시킨다. 언제나. 그리고 언제나 계란말이를 시키는 게이바를 운영하는 코스즈씨와 친해진다. 류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란말이를 시키지 않고, 코스즈씨도 비엔나소시지를 주문하는 일은 없다. 서로의 것을 먹을 때, 가장 맛있다며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이건 그야말로 '어제'의 카레. 마스터는 말한다. 카레란 자고로 하루를 묵혀둔 뒤에 먹어야 제 맛이라고. 따뜻한 밥에 적당히 식은 카레를 얹어 비벼먹어야 제 맛이라는 아는 사람만 아는 '어제'의 카레.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잘게 썰고 (나도나도!), 야채는 많이 넣은 맛난 카레다. (카레, 완전 좋아하는 나 ㅠ)

   내가 좋아하는 에피소드. '소힘줄, 무, 달걀이 들어간 어묵'. 매번 사랑에 빠져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마유미씨는 미식가에 대식가. 마유미씨가 심야식당에서 즐겨먹는 음식은 '소힘줄, 무, 달걀이 들어간 어묵', 소힘줄로 맥주 한 잔, 무로 두 잔, 달걀 노른자를 소스에 풀고 공기밥 2그릇과 같이 세 잔을 먹는 게 마유미씨의 방식. 매번 이번이 마지막 만찬이라고 애원하지만, 늘 더 쪄서 이 식당을 찾는 마유미씨. 흐흐

    그리고 심야식당을 찾는 정겨운 단골들. 가다랑이포를 따뜻한 밥에 얹어서 간장을 뿌려서 먹기를 좋아했던 잘 안 팔'렸'던 엔카 카수 미유키씨, 낫토 국물을 좋아했지만 새로 사귀게 된 준씨 때문에 늘 국물 뺀 낫토를 주문했던 사랑하기에 체력이 너무 약한 당신, 요시다씨, 김을 먹어야 머리카락이 튼튼하다고 매번 주장하는 대머리 마야모토씨, 미디엄으로 구운 명란젓을 제일 좋아했'던' 신주쿠의 마릴린, 복싱에서 이긴 후에 항상 카츠돈을 먹으러 왔던 카츠씨, 나폴리탄을 먹는 나폴리 아이, 후리오, 남자 에로계의 최강 배우 일렉트 오끼씨가 즐겨먹었던 포테이토 샐러드, 오이절임을 씻어 통째로 씹어먹으며 맥주 마시기를 즐겼던 왕년의 프로레슬링 챔피언 료마씨, 한밤 중의 라면이 어울리는 복 없는 여자, 사치코씨까지.


   '심야'식당이지만, 절대 심야에 보면 안 된다. 뭔가 미친듯이 먹고 싶어지기 때문에. '수박' 에피소드에는 1권에 나오는 모든 손님들이 나온다. 여름이고, 우리의 단골들은 옛 생각이 난다면서 일부러 마스터에게 일부러 모기향까지 피워달라고 한다. 때마침 정전이 되어 주시고, 그렇게 앉아 도란도란 귀신 이야기를 나눈다. 수박을 한 통 사서 냉장고에 재워놓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심야식당의 수박 한 통을 나눠 먹는 장면. 그 정다움. 이 에피소드를 두 번 읽을 때, 나도 이들 틈에 끼여 앉아서 수박을 시원하게 한 입 깨물어 먹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최고 무서운 귀신 이야기가 뭐더라? 드라마 <스이까> 생각도 나고. 이제 여름이 다가올 테니까, 다시 봐줘야지. 그리운 식구들. <심야식당>은 3권까지 나왔다는데, 언제 한번 교보에 들러야겠다. 그냥 들어가서 빈 손으로 나오기 싫은 날, 2권을 사들고 나와야지. 마스터, 기다려욧.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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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씨, 이거 봐요

from 서재를쌓다 2009. 4. 10. 00:36

분홍 설탕 코끼리
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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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 - 당신의 처음,

from 서재를쌓다 2009. 3. 28. 03:12


    나는 그 분에게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아주 추운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분이 마이앤트메리 앨범을 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마이앤트메리를 더 좋아해요,라고 말했던 것 같다. 역시 술자리였겠지? 그리고 여전히 추웠을 거다. 그러자 어느날, 그 분이 내게 그럼 <벡>을 좋아할 거예요,라며 만화책을 추천해주셨다. 역시 술자리에서였겠지? 그렇게 <벡>을 보게 됐다. 물론 '그 분'이 빌려주셨다. 완결까지 모두 다 소장하신, 동생의 표현에 의하면 대단하신 분.

    그래. 정말 5권까지는 심드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빌려 보면서도, 뻔뻔스럽게 오래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5권이 넘어가니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잠 들기 전에 한 권 해치우고, 출퇴근 길에 지하철에서 두 권씩 봤다. '그 분'이 다음 권을 늦게 가져다주시면, 그 분과 나는 그리 친하지 않은데도 막 원래의 내 성격대로 큰 소리로 버럭거리며 재촉하고픈 느낌까지 전해준 나의, 아니 우리의(나로 시작해서 지금 2명이 '그 분'의 <벡>을 빌려 보고 있는 중) 벡. 벡. 벡.

    <벡>은 기타 코드 하나 잡을줄 몰랐던 유키오가 유명한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아주 작았던 꼬맹이가 34권이 되면 어른스런, 그렇지만 열정은 처음 기타를 잡을 때 못지 않은 뮤지션으로 성장해 있다. 기특한 유키오. 응. 그 아이의 이름은 유키오. 까만 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착한 아이다. 진심이 통할 거라고 믿는 아이. 음악에도, 사랑에도. 그 아이가 노래하면,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그 노래를 듣고 있는 무대 밑의 관객들도, 관계자들도, 밴드 멤버들도, 에디도. 만화책이라 유키오의 노래소리를 직접 들을 순 없지만, 그 표정들을 보면 그건 착하고, 부드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렬한 음색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새 내가 아끼게 된 아이. 

   이 만화책에 반한 건, 유키오가 처음 가사를 쓰게 되었던 장면에서부터였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똑같은 복장과 표정으로 쏟아져나오는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그 전철역에서 빠져나와 공허한 도로 위에 혼자 서 있는 순간, 유키오의 머리에 영감이 스쳐간다. 유키오는 생각한다.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정상이 아닌 건 오히려 나일지도 몰라'. 그렇게 완성된 가사는 물론 좋았다. 그 전의 가사처럼 어떤 그럴싸해 보이는 기교가 잔뜩 들어간, 화려하기만 수식어가 들어간 가사가 아니였기에. 유키오의 마음에서 우러난 솔직한 가사였기에.

   22권에는 이런 독백이 나온다. '바닥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지. 오른쪽으로 가 본 적이 없으면, 왼쪽으로 갈 수 없어. 절망해 본 적이 없으면, 정말로 소중한 게 뭔지 몰라.' 누가 한 말인지는 기록해두지 않았다. 그저 이 말이 좋아서 다이어리 귀퉁에 BECK 22권 중,과 함께 적어두었던 말. 어쩌면 굉장히 통속적인 말일 뿐인데, 그걸 읽는 내 마음이 찌릿했다. 그래, 맞아. 정말 그래. 맨 밑바닥을 치지 않으면, 오른쪽으로 가지 않으면, 절망해 본 적이 없으면 알 수 없어, 라고. 만화책을 보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제 마지막 34권을 따끈한 방에 누워서 보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 이제 이 멋진 녀석들을 만날 수가 없다니. '벡'의 새 노래를 들을 수 없다니. 신기하게도 처음엔 그저 종이책에 불과했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유키오의 노래소리도, 류스케의 기타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유키오가 노래만 시작하면 관객들이 뭔가 나사 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와-'하는데 뭐야, 하고 웃음부터 났던 나였다. ㅠ) 이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정말.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으면, 어디선가 기타소리가 들리고, 유키오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으면, 어디선가 정말 듣자마자 손발이 오그라들고, 닭살이 돋는 최고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그래서 애니메이션도 보지 않을 생각이다. 내 머릿 속엔 이미 최고의 노래가 있기에. 이게 종이만화책 <벡>이 내게 해 준 최고의 선물 '상상'이다) 

   모두에게 'Devil's Way'가 있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Devil's Way'는 세계적인 밴드의 멤버였던 에디가 어느 날 일본에 있는 류스케에게 전화를 했다가, 유키오가 받자 그래 네게 들려주지, 하고 들려주었던 그의 마지막 노래였다. 그러니까 그 노래는 악보도 없고, 어떠한 기록도 남겨지지 않은, 유키오의 머리 속에서만,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선율이었다. 에디는 당시 최고의 뮤지션이었고, 그의 마지막 노래 'Devil's Way' 또한 무척 좋았다. 유키오가 더듬거리며 원더풀,이라고 반복해서 외쳤던 노래. <벡>은 에디가 남긴 그 미완성의 'Devil's Way'를 완벽하게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내서 현실의 무대 위에서 연주한다. 그리고 <벡>의 멤버 모두가 꾸었던 꿈. 이미 죽은,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뮤지션(존 레논 등등)들이 등장해 <벡>의 어마어마한 무대가 끝난 뒤 남겨진 쓰레기를 줍는 꿈은 현실이 된다. 드림즈 컴 트루.  'Devil's Way'.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그런 'Devil's Way'가 있다. 나는 그렇게 아직까지도, 여전히, 변함없이 그렇게 믿고 있다.

    34권, 그러니까 완결편에서 유키오는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도 참 통속적이긴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심장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어줬다. '저기..... 한 마디 해도 될까?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고, 유우지도, 타이라도, 류스케도, 말할 것도 없이 치바도(여기서 울컥하는 거다. 속 좁은 치바. 그렇지만 제일 정 많은 치바. 아, 난 치바를 좋아했다우)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야. 그러니까... 으~음 저기... 어라, 갑자기 뒤죽박죽됐다... 내가 무슨 말 하고 싶어하는건지 알겠어?' (이건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샤바샤바샤바거리다, 아 씨. 횡설수설인데,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러면 내 친한 친구는 씨익, 웃으면서 알아, 그런다.) 그러니까, 류스케도, 타이라도, 유우지도, 말할 것도 없이 치바도 모두 알아 들었다. 그건 걔네들이 바로 <벡>이라는 이야기다. 

   또 다시 34권. 이런 장면도 있다. 타이라가 유키오의 등 뒤에 살포시 손을 올리며 나가자고, 하는 장면. 이들은 태풍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공연을 마친 상태였고, 관객들은 그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계속해서 목이 터져라 앵콜을 외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날, 유키오는 그야말로 '떼창'을 듣게 되는데, 그 순간 무대 위의 유키오의 표정을 잊지 못하겠다. 그건 보통 유키오가 노래하기 시작하면 쳇, 니가 하면 얼마나 하겠어,라고 표정으로 팔짱 끼고 서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짓는 표정인데. 그러니까 그런 표정이다. 마침내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어,라는. 타이라가 땀에 흠뻑 젖은 유키오의 등 위에 손을 올린 순간, 유키오의 심장은 찌릿한다. '촉감'이라는 독백이 나온다. 창피하게 눈물이 나올 정도로 따뜻한 '촉감'란 표현이겠지? 그건 그들이 영원히 <벡>이라는 거고, 고물차로 이동하며 생사를 함께 하는 멤버라는 거고, 서로의 'Devil's Way'라는 거겠지. 

    아. 아. 너무 근사한 만화였다. 유키오, 벡, 잊지 못할 거다. 내 앞에는 지금 그렇게 성장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많으니깐. 그들을 보면 그들의 처음,인 유키오와 벡이 생각날 테니까. 욕심도, 열정도, 욕망도, 질투도, 우정도, 믿음도 넘치도록 많았던 <벡>. 그네들의 최고의 노래들이 아직도, 아니 여전히 내 머릿 속에서 또렷하게 연주되고 있으니까. 누군가, 특히 성공해버린 누군가 자신들의 처음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 만화를 보시길. 당신의 처음이 또렷하게 기억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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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어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두 번 봤다. 한 번은 왕십리 CGV에서, 한 번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아트하우스 모모는 처음 가봤는데, 그 곳의 분위기에 반해버렸다. 근데 좌석이 좀 불편하긴 했다. 앞뒤 좌석의 간격이 좁고, 앞자리에서 보면 목 아프겠다는 느낌이. 아무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본 건, 예매권이 생겨서 한 번 더 본 거였는데, 보길 잘했다 싶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말이다. 두 번째 보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이건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두 번째로 볼 때 그 마지막 장면에서의 해석이 달라지면서 뭔가 가슴이 벅차왔다.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가져도 되겠구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윈슬렛 언니는 실패했지만, 우리는 꽤 괜찮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날 오후 내게 '다괜찮아질까요?'라고 문자를 보낸 그이에게 '괜찮아질거예요,분명히'라고 답했다. 괜찮아질 거예요. 정말.

    두 번째 영화를 본 건 소설을 읽고 난 뒤였다. 나는 이 소설을 한 달 가까이 들고 다녔다. 요즘 책이 잘 안 읽히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진도가 쉽게 나가는 종류의 소설도 아니였다. 분량의 반 정도가 지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케이트 윈슬렛, 에이프릴이 마지막에 행한 그 행위가 거의 자살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파리의 꿈이 날아갔다. 이제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이 계속 될 거고. 허무하고 희망이 없는 미래가 펼쳐질 거다. 무언가를 절실히 꿈꾸는 날도 없을 거다. 이건 그녀에게 절망적이다. 살아갈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에이프릴이 술집에서 셰프에게 한 말, 굳이 파리로 가고 싶었던 건 아니였어요. 이제 떠날 수도, 머무를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 날' 완벽한 아침식사는 마치 집 나가는 엄마가 그 사실을 애써 숨기며 차려주는 마지막 만찬처럼 서글프기만 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영화는 소설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소설의 압축본이라 해도 되겠다. 영화를 본 뒤, 소설을 읽으면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디테일한 묘사들을 읽을 수 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243페이지. 이 부분은 에이프릴도 프랭크도 아닌 기빙스 부인에 대한 묘사다. 기빙스 부인, 헬렌이 에이프릴에게 정신병원에 있는 아들을 한 번 만나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온 뒤, 남편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다 잠시 옷을 갈아입는다고 2층으로 올라와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 

 
   그 날 기빙스 부인은 에이프릴에게 기빙스 부부의 아들 존을 기꺼이 만나겠다는 말도 듣고, 훨러 부부가 곧 유럽으로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2층에 올라와 옷을 갈아 입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녀의 마음은 안정적이었다. 오히려 조금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시설이 좋은 집에 사는 날렵하고 유연하 소녀'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와서 차를 대접하는 오후의 무도회에 가려고 분주하고 드레스로 갈아 입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벗어놓은 옷과 자신의 벗은 몸을 보니 거기에 '두 마리의 두꺼비'같은 발이 있었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5분 후 그녀는 침대 기둥을 잡고 울기 시작한다. 영화에는 기빙스 부인에 대한 이런 묘사가 없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의 밀리의 반응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에도 밀리가 훨러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침실에서 울기 시작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던가? 예쁜 옷을 차려입고 기품있고 우아하게 앉아  우린 유럽으로 갈 거예요, 파리로. 거기 가서 꿈을 찾을 거예요, 라고 말하던 순간의 밀리의 표정(영화에서의)은 한동안 잊지 못할 거다. 나는 그 순간 밀리의 표정을 백퍼센트,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다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야기. 소설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프릴이 자살을 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에이프릴은 혹시나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서 프랭크에게 메모까지 남겨 놓았다. "친애하는 프랭크,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제발 당신 자신을 탓하지 마요." 이 메모는 원래 몇 장의 긴 편지였지만, 결국 이 짧은 메모 하나로 남았다. 에이프릴은 '다시' 잘 해보기 위해서, 여기에서의 '제대로' 된 새 삶을 시작해보기 위해서 그 일을 거행한 거다. 혹시나 잘못될 수도 있지만, 여기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기에, 그 일을 행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실패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 일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였던 거다. 하지만 아무 일 없이 성공하기를 바랬던 일인 거다. 그랬던 거다. 두 번째 영화를 보는 데 그게 보였다. 완벽한 아침 식사에서 에이프릴은 그런 표정을 여러 번 지어보인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정말 나를 미워하지 않는 거지?'라고 묻는 프랭크에게 '그럼요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라고 답한다. 

   소설에는 영화에 없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에이프릴을 잃은 프랭크는 셰프와 밀리 몰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에이프릴의 핏자국을 본다.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하고 있었던 그는 에이프릴의 메모를 본다. 그로 인해 나중에 그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을 거다. 메모를 보기 전, 프랭크는 에이프릴의 핏자국을 지운다. 순간 에이프릴의 목소리로 환청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세제를 묻혀서 닦아요. (아, 그런데 지금, 이 부분을 찾아보기 위해서 책을 뒤적거렸는데 에이프릴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난 '당신이' 저 타월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면 된다고, 그러고는 욕조를 깨끗이 씻어 내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괜찮죠?' 이 '당신이' 부분에 갑자기 혼란스러워지지만, 이건 프랭크의 환청이니까. 그녀는 분명 '새로' '잘'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고,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본 영화에서 에이프릴이 그 일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커다란 창 밖을 내려다보며 지었던 평온한 표정은 그걸 의미하는 거라고. 그리고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보여줬던, 에이프릴이 내려다보고 있었던 그 초록의 물결들이 그걸 의미하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이 글을 끄적거리면서, 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에이프릴은 어떤 마음이었나? 끝을 생각했나? 새로운 시작을 바랬던 건가? 아무래도 소설을 한 번 더 읽어야 겠다. 아니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어느 날 우연히 떠오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러는 편이 더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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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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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몇 구절을 옮겨 메신저로 보내줬다. 동생은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라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이건 시니까, 그냥 니가 느끼는 대로 이미지를 떠올리면 될 거라고 말했다. 1분이 지난 후, 동생이 말했다. 언니, 이건 그거 같아. 눈물이 날 때 있잖아. 눈물이 눈에 넘치도록 고일 때. 그 때 길을 보면 길이 막 휜 것처럼 보이잖아. 그거 같아. 난 그 말을 듣고 또 울어버렸다. 응. 그래, 동생. 그런 거 같애. 그게 맞다. 난 그런 니 말 덕분에 이 시를 더 좋아하게 되어버렸잖아. 오늘 오후엔 옆에 있는 이에게 이 시를 알려줬는데, 그 이가 감격하며 말했다. 슬픔이 없는 십오초라니요. 늘 슬프다가, 단 십오초 슬픔이 없는 시간이 오고, 그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하다니요. 그리고 사라지는 길이라니요. 그러면서 내게 이 시를 알려줘서 고마워요, 고마워요를 3번쯤 연발하다가 자기가 아껴두었던 시를 소개해줬다. 그건 장만호 시인의 무서운 속도. 나는 또 그 시를 보고 울뻔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이에게 고마워요, 고마워요를 5번쯤 말해줬다. 고마워요. 그이는 이 시를 어느 스터디 모임에서 낭송하다 끝까지 읊지 못하고 울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이가 끝을 맺어줬다고 했다. 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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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속도
장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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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사람이 내 주위에 있어서 다행이다. 시를 읽고 우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어서 다행이다. 처음 얼굴을 보게 된 내게 시집을 선물해주었던 사람도 있었다. 그 시집에는 내가 좋아했던 시가 들어 있었다. 내가 그들덕분에 시를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나와 당신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것보다 더 고마운 건, 그런 시를 써 주는 그네들이 있기 때문. 고마워요, 고마워요. 백만번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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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짜리 김밥 세 줄을 사들고 들어왔다. 김밥을 기다리던 동생은 자고 있다. 전화통에 대고 엉엉 울었던 동생도 자고 있다. 오늘 오후, 그래, 아주 추운 오후였다. <시인세계> 봄호 (봄의 계간지들은 진작에 나왔다) 에서 '사랑, 그 허리 끊어지는 말'이란 시구를 봤다. 권여선이 추천한, 소개한, 혹은 비판했을지도 모를 (권여선의 글은 읽지 못했다) 시의 첫 구절이었다. 이 시를 추천한, 소개한, 혹은 비판했을지도 모를 권여선의 글의 제목이기도 했다. '사랑, 그 허리 끊어지는 말' 뚝. 그 평온한 오후에 마음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을 멈추고 메모장을 열어 이 시를 옮겨 적었다.


프롤로그
김정환


    친구집에서 나는 좀 울었다. 친구집에서 걸어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나는 또 울었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조금 더 울었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인간이다. 어쩔 수 없다. 슬프면 눈물부터 나게 태어날 때부터 설계되어있는 그런 인간이다. 이런 이별도 있다. 이게 이별으로 이어질지, 다시 만남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런 이별도 있다는 걸 오늘 난 깨달았다. 나는 온갖 종류의 이별을 다 떠올려봤다. 지난 이별, 현재의 이별, 다가올 이별들, 마음의 이별, 몸의 이별. 아, 이별이 들어가는 온갖 행위는 모두 슬프다.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니까. 문자를 보내려는데, 그 문자가 상대방에게 가지 않고 내게로 되돌아왔다. 부메랑처럼. 그것도 슬프다. 사랑, 그 허리 끊어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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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민음사

 

   지난 주말에는 많이 아팠다. 목요일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는데, 금요일에는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바로 누웠다. 그 길로 주말내내 끙끙 앓았다. 누가 내가 아픈 걸 알아주지 못할까봐 일부러 소리내서 앓았다.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면서. 쥬스를 마시고 자고, 죽을 먹고 자고, 약을 먹고 잤다. 주말내내 큰소리 내며 잠만 잤다. 그리고 마침내 감기가 나았을 때, 그럼에도 가만히 누워있었을 때 이 소설을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2009년을 이 소설로 시작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섰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생각치도 못한 반가운 손님이었다. 아주 예쁜 눈이었다. 소리없이 펑펑 쏟아지는 아주 새하얀 눈이었다. 휴대폰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보는 눈의 풍경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나지 않아 지워버렸다. 그리고 따뜻한 지하철에 앉아 이 소설을 생각했다. 지하철이 뚝섬을 지나고 있을 때였을 거다. 새하얀 눈밭이 펼쳐졌다. 나는 머릿 속에 새하얀 눈밭을 하나 만들어냈다. 걸으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아주 새하얀 눈밭. 그리고 조명을 낮췄다. 밤이다. 어릴 때 티비에서 자주 봤던 슥슥 뭐든지 순식간에 그려내던 화가 아저씨처럼 나는 조명을 낮춘 밤하늘에 은하수를 그렸다. 그 아래, 저 멀리 낡은 2층 창고도 그렸다. 그 곳에 새빨간 불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작은 점을 두 개 찍어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설국>의 마지막 장면인 셈이다. 눈을 감으니 새하얀 눈밭 위로 은하수가 펼쳐졌다. 저 멀리선 믿기지 않는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 곳에 귀를 기울이니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났다.

 p.64

    <설국>은 아주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어떤 페이지를 펼치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대부분이 새하얀 눈밭이 펼쳐지는 겨울이었다. 여기저기서 노래소리가 들렸고, 한 겨울의 노천 온천에서 모락모락 솟아나는 물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건 눈의 온기이기도 했다. 그립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가엾고, 처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꽃에 꽃말이 있든, 눈에도 눈말이라는 것이 있다면, <설국>의 눈말은 슬픔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새하얀 눈밭 가득 슬픔의 지지미가 촉촉히 널려 있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제일 좋았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119페이지에서부터 시작한다. 시마무라가 요코의 노래소리를 듣게 되는 장면. 시마무라는 남탕의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탕 안에 있다. 그 때 건너 여탕에서 요코 목소리가 들리는 거다. 그녀는 아이를 씻겨주러 들어왔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탕 안에 울려퍼지는 맑은 요코의 목소리. 그 소리는 남탕과 여탕의 천장을 치고, 바닥을 치고, 벽을 치고, 사마무라의 몸을 친다. 사마무라는 따뜻한 물 속에 편안히 앉아 가만히 그 노래소리를 듣고 있는 거다. 온 몸의 기운이 스르르 풀리는 순간. '숲속의 여치는 무슨 노래 부르나' 요코가 아이를 씻겨주고 나가고 탕 안에는 여전히 벽과 몸 사이를 튕기며 여운을 남기는 요코의 노래소리가 울린다. 

p.120

   아픈 내내 요코가 떠난 후 울려 퍼지는 그녀의 노래소리를 듣는 시마무라를 생각했다. 아주 따뜻한 느낌이었다. 눈 속에서 실을 만들어 눈 속에서 짜고 눈으로 씻어 눈 위에서 바랜다는 삼 지지미를 생각했다. 겨울이 되면 새하얀 눈밭 바로 위에 새하얀 삼 지지미 수백개가 널리는 상상을 했다. 그걸 내가 하늘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생각. 생각만 해도 목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시마무라가 올라다 본 밤하늘의 은하수도. 아름다워서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을 그 은하수. 주말내 약에 취해 잠들기 전에 그런 풍경들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소설. 아름다운 문장.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고장. 나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그 속으로 풍덩 빠질 수 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겨울이 아니더라도, 땀이 뻘뻘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한여름일지라도, 언제든 한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떠날 수 있다. 내게 이 문장이 있기 때문에. 

 p.7

    아. 이 문장은 내게만 있는 게 아니다. 당신에게도 있다. 이건 우리가 가진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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