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이었나보다. 맙소사, 벌써 작년이 되어버렸다. 도서관에서 <2007 올해의 좋은 소설>을 읽었다. 책상이 부족해 벽에 나란히 여분의 나무 의자를 붙여 놓은 그 의자 위에서였다. 공선옥의 '폐경전야'도 읽었고, 김애란의 '도도한 생활'도 읽었지만, 역시 내가 좋아한 소설은 김연수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이었다. 나는 그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곱씹으며 올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날, 이 소설을 꼭 한번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다. 따뜻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에.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7 
이청준 외 지음/현대문학


    지난 주말에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대출했다. 그리고 주말내내 이 짧은 소설을 음미해가며 읽었다. 그야말로 '당신에게 복된 새해를'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몇년 전 동네에서 만난, 동남아시아 어디즈음에서 돈을 벌기 위해 날아온 것이 분명한 여자는 내게 자기가 문자쓰는 법이 서툴러서 그렇다면서 문자 하나를 부탁했다. 언니, 내가 잘못했어. 술 한 잔 어때, 식의 문자였다. 그리고 내가 작년에 만난 사람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한 사람들. 만나지 않았어도 만난 것만 같은 사람들.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모두 떠올랐다. 그들에게 복된 새해를.

    소설을 읽다 어떤 문장은 작은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반복해서 읽었다. 내가 새해에 이 소설을 읽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니까. 따뜻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생각한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의 '말하자면 친구'의 뒤로 눈이 솔솔솔 내리고 있는 풍경을. 그런 창가를 배경으로 두 사람이 캔맥주를 맞대고 짠,하는 모습을. 그 캔맥주를 마시고 주인공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두 개 더 꺼내오고, 다시 두 사람이 손을 뻗어 서로의 캔을 맞부딪히는 소리를. 말하자면 나는 나의 복된 새해를 스스로 빌어주기 위해 이 소설을 읽은 것이다. 어제를 용서할 수 있는 오늘이기를. 비로소 조율되어지는 완전한 소리이기를. 그럴듯한 음악을 연주해낼 수 있는 사람이기를. 나에게 복된 새해가 찾아오기를.


    아. 오늘 김연수의 이상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아주아주 기뻐서 나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어졌다.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정말 그랬다. 축하해요. 김연수와 이상이라니. 말하면 입이 아플정도로 잘 어울리잖아. 그 소설에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 같았는데. 빨리 읽어보고 싶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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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04-305


    오늘 이 문장들을 다시 읽었다.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따뜻해졌다. 12월에 나는 윤대녕의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를 읽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내가 윤대녕을 읽은 계절이 거의 겨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울과 윤대녕. 이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조합이다. 소설은 겨울이 한창일 때 시작되었다가, 봄이 오기 직전, 그러니까 겨울이 가기 직전에 끝이 났다. 아주 깜깜한 어둠이 아니라 파랗게 어스름이 깔려오는 새벽녘이라는 뜻이다. 요즘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라는 노래를 듣고 있는데, '유자차' 노래가사에 비유하자면, 과거를 유자 사이에 켜켜이 넣고 뜨거운 눈물을 부어 마시는 거다. 그리고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소설을 읽으면서 언젠가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윤대녕의 작업실을 생각했다. 복층 구조의 깔끔한 작업실.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 구석에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던 풍경. 작가는 그 계단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옛날 영화를...>의 남자가 사는 집이 작가의 작업실과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소설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남자, 남자의 옛 친구 E, 남자의 부인, 남자의 장인, 레코드 가게의 여자, 그리고 그 여자. 외로워서 약을 먹고, 쓸쓸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평행선을 생각했다. 소설에는 삼각형이 언급된다. 남자와 E, 누에고치의 여자는 삼각형이다. 지하철 2호선의 순환선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삼각형 각각의 꼭지점에 서 있다. 그리고 2호선 어딘가의 역에 떨어져 있다. 그러니까 만날 수도 있고, 결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관계다. 삼각형 중심을 향해 같은 시간에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 한 삼각형의 세 사람은 만날 수 없다. 도착했다 떠나고 도착했다 금세 떠나고 마는 초록색의 2호선을 올라타지 않는 한, 혹은 내리지 않는 한 타원형의 세 사람은 결코 만날 수 없다.

   내게는 평행선의 남자가 있다. 점을 봐 주던 할아버지가 내게 너와 그 남자는 평행선이라고 했다. 영영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엉엉 울었다. 그 어떤 단언의 말보다 아프고도 확실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니 그와 나는 삼각형도 타원형도 아닌 평행선일 뿐이므로,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이제 평생 만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다. 바라볼 수는 있겠다.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아주 멀리서. 아니다. 이건 아주 가까운 평행선일 수도 있다.

   주드 로가 나오는 <태양은 가득히>가 아닌 알랭 드롱이 나오는 <태양은 가득히>를 챙겨봐야겠다.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도 봐야지. 옛날 영화를 간간히 틀어주었던 경사도 낮은 코아아트홀에서 눈 오는 날 혼자 보러 가면 좋겠지만, 이제 코아아트홀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 '블루문'도, 벌레구멍 입구도. 어느 쓸쓸한 주말 저녁에 불을 다 꺼 놓고 집에서 혼자 보아도 좋겠다.

   연락이 없던 친구는 책 4권을 보내줬다. 보고 싶은 언니는 새벽 2시에 문자를 보내왔다. 이건 내가 평행선이 아닌, 삼각형 꼭지점에 서 있다는 거다. 멈추지 않는 타원형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겨울은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갑자기, 불현듯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계절임이 분명하다. 내가 얼마나 외로움을 잘 타고, 여리고 약한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계절. 그래서 겨울에는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는 수밖에 없다. 윤대녕을 읽을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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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엄마를 부탁해>로 신경숙 작가님을 만나는 자리에 다녀왔다. 강연회라고 하기도 그렇고, 낭독회라고 하기도 그렇고, 신작을 가지고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단, 표현이 딱 적당한 자리였다. 백가흠 작가도 함께였는데, 무척 목소리가 좋으셨다는. 1시간동안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그 시간이 정말 후다닥 가버렸다. 작가님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하셨을 때 자리가 파했다.

   무슨 얘기를 하셨더라. <깊은 슬픔>이 94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라며, 다음 작품으로 아름다운 연애소설을 한 편 써 볼까하는 생각을 어젯밤에 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소설가는 늘 소설을 구상하고, 죽이고, 또 구상하는 것이라며, 살아남는 것만이 소설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자신의 엄마이기도 하고, 여러분의 엄마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폭신폭신한 극장 의자에 앉아서, 작가님 얼굴이 아주 잘 보이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내가 읽었던 그녀의 소설들을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는 <외딴방>. 그 소설을 읽으며 울었던 기억. 부석사가 등장했던 단편도 기억이 났고, <리진>도 생각났다. 차마 다 읽지 못하고 남에게 줘버린 <바이올렛>도 생각났다. 그리고 <깊은 슬픔>. 완과 세와 은서. 겨울이 가기 전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도. 이제 반 정도 남았다. 이 소설때문에 매일 아침 훌쩍거렸다. 이 소설은 작가가 되기도 전에 구상했던 아주 오래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자신에게 많은 것을 하게끔 해준 엄마를 위한 소설이라고.
 
    그리고 낭독한 부분. 작가님은 딸의 입장에서 쓴 1부보다, 첫 아들의 입장에서 쓴 2부가 훨씬 집필할 적에 집중력도 좋았고, 잘 쓰여졌다고 했다. 역시 그 2부에서 고른 부분이다. 나도, 나도 정말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혼났었다.

p.93-94

   이 부분을 낭독하시는데, 작가님이 자꾸 피식 웃으셨다. 아니, 센 콧바람을 마이크 위로 자주 뱉어내셨다. 아니, 그건 사실,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고여서 당황하신 거였다. 그래서 이 부분의 낭독이 참 좋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눈 앞이 흐릿흐릿해졌으니까.

   또 무슨 말을 나눴더라. 눈이 보이지 않는 이의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고도 하셨고, 자신은 행복하라고 글을 쓴다고 하셨다. 언어영역에 작가님의 소설이 지문에 나왔다던 한 대학생 아이가 일어나서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 슬퍼져요,라고 했을 때였다. 어떤 계단에 저자며 제목이며 표지가 다 찢어진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 아, 이건 신경숙이 소설이구나,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작가가 되었을 적부터 생각했다는 이야기. 거리감을 두기 위해 '너'라는 호칭을 썼는데, 읽는 이들이 모두 '나'로 바꿔서 읽는다는 이야기. (이건 정말 백번 천번 만번 동감) 백가흠 작가는 자신이 '엄마를 부탁해 효과'라 명명한 여운이 아주 오래가, 엄마 생각이 계속 나고,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에 오늘이 무척 즐겁고, 행복했다고, 특히 자신에게 그랬다고. 다음 이 말이 정말 좋았다. 이제 많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나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책이 있으니까요. 책으로 다음 번에 다시 만나요. 아. 이런 이야기도 해주셨다. 얼마 전에 엄마와 보름동안 동거를 한 적이 있었다고.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냈다고. 밤이면 엄마가 주무시나, 방을 들여다보면 늘 엄마는 주무시지 않고 계셨다고. 그러면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고. 주로 예전의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그러다 다퉈 등을 돌리고 씩씩대기도 했다고. 어느 날은 엄마가 작가님 품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고. 그러면 작가님은 아주 행복해졌다고. 그건 친구, 애인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고. 아주 완전한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이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좀 벅찼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완전한 행복의 느낌을.

   자꾸만 <작가의 방>에 소개된 작가님의 서재가 생각이 났다. 길고 넓은 나무 책상, 두껍고 튼튼한 책장, 그 속의 책들, 무릎을 껴안은 조각상,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던 창가까지. 이번 주말엔 남은 부분을 다 읽어야지. <감자 먹는 사람들>을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사인 받을 때 두 권을 내밀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사인본이었는데, 사인이 되어있던 것 위에 내 이름을 예쁘게 적어주셨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도 똑같은 사인을 받았다. 꿈을 이루세요.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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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랜덤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톨킨이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동기때문이었다. 톨킨의 둘째 아들 마이클에게는 굉장히 좋아한 나머지 밥 먹을 때도, 손 씻을 때도 놓지 않는 바둑이 인형이 있었는데, 어느날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뜬다고 잠시 자갈밭에 놓아두고는 잃어버렸다. (이걸 보면 마이클은 인형보다는 물수제비가 더 좋아한 건데) 이 인형은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납인형이었는데 자갈밭에 놓아두었으니 찾기는 다 글렀다. 며칠을 울며 바둑이 인형을 그리워하는 아들을 위해 톨킨은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로버, 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는데, 요 장난꾸러기가 마법사의 바지를 물어뜯은 거야. 마법사는 화가 났겠지. 그래서 로버를 아주 작은 인형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리고 인형가게에 전시해 놓았는데, 그걸 마이클 니 또래의 아이 엄마가 사 가서, 그 아이의 인형이 되어버린 거지. 그 아이는 간청하는 자세로 앞발을 내밀고 있는 그 인형을 너무 좋아해서 밥 먹을 때도, 손 씻을 때도 놓지 않았어. 하지만 물수제비를 인형보다 더 좋아했던 아이는 아주 잠깐 그 인형을 자갈밭에 내려놓았지. 그러곤 잃어버린거야.

   로버 강아지, 아니 지금은 인형이지. 그 인형은 얼마나 답답하겠어. 자기는 원래 강아지였잖아. 크기도 컸고,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인형의 모습으로는 간청하는 자세밖에 못 취한다고. 그래서 다른 마법사를 찾아가 간청을 하지. 간청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로버의 사정을 들은 마법사는 로버를 그냥 달나라로 보내. 자기는 그만큼 능력이 없다는 거지. 아무튼 달나라에서 강아지로 되돌아가서 달 사나이와 달 강아지와 신나게 뛰어 놀아. 거기엔 달의 뒷면이라고 꿈의 세계가 있는데, 어린이들이 꿈을 꿀 때 거기로 오는 거야. 그러니깐 로버는 거기서 자신의 주인(물수제비 좋아하는 애 있잖아)을 만나게 되는 거지. 그러다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고 달의 뒷면에서 뽕-하고 사라지고 나니깐 로버는 그 아이가 그립고, 지구도 그리워진 거지. 그래서 또 간청하는 자세를 취해.

   그러니까 마법사는 이번엔 바닷속으로 보내. 처음에 바지 뜯어서 인형으로 만든 그 마법사가 예쁜 인어 아가씨랑 결혼을 해서 바닷속에서 사는 거야. 가서 직접 용서를 빌라는 거지. 그래야 인형에서 강아지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또 바닷속 여행을 시작하는 거야. 복도 많은 놈. 달이며 바닷속이며 말이 되냔 말이지. 아무튼 이번에도 로버는 신나게 즐겨. 바닷속에서도 친구를 금방 사귀고. 사교성이 뛰어난 녀석이야. 마법사는 너무 바빠서 로버를 강아지로 만들어주는 걸 자꾸 잊어버리다가 어느 날 잘려서 쫓겨나고 한가해지니깐 그때서야 로버의 간청을 들어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간청 인형 로버는 쾌발랄한 강아지 로버로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야. 그런데 달도 여행하고 바닷속도 여행한 주제에 그대로겠어? 어른스러워 진거지. 생각도 깊어지고, 더이상 말썽꾸러기 로버가 아닌 거야. 

    뭐 대충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책 속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유쾌한 한 편의 동화지만,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이 너무 예뻐서, 너무 따스해서 나는 이 책이 좋아졌다. 그런 아빠는, 아이의 슬픔을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위로해주는 아빠는 너무 근사하다. 나는 우리 아빠가 지금 충분히 좋으니까, 그런 아빠가 되어줄 수 있는 남편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봤다. 

    이 책에는 동화니까, 싶을 정도로 예쁜 표현들이 세 군데 있었다. 나는 노오한 표지에 맞춰 노오란 포스트잇을 그 페이지들에 붙여놓았다. 첫 번째 페이지는 51쪽, 아침의 해를 묘사한 부분이다. 

   아,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어릴 적에 스케치북에 그려 넣었던 새빨간 동그라미에 직선의 햇살을 그린 해가 눈, 코, 입을 가지고 방긋 웃는 그림을 생각해 냈다. 귀여워, 귀여워.

   이건 두 번째 페이지. 달빛을 귀찮게 하고, 이 구절을 읽고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달 사나이는 로버에게 달에서 꼭 하지 말아야 할 몇가지를 일러준다. 달빛을 귀찮게 하지 말고, 흰 토끼들을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집으로 와라. 지붕 창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 한참을 웃었다. 그래, 토끼 죽이면 절대 안 되지. 너무나 예쁜 상상력. 

    기억해야 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달의 반대쪽에 있다. 달 사나이가 있다면, 그래서 그가 꿈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 꿈을 꾸면 달의 반대쪽으로 단숨에 날라갈 수 있다면, 그 곳에서 꿈에도 그리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나면 그 사람과 다시 헤어지는 거라면, 나도 꿈 속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반지의 제왕>도 영화로밖에 보지 않았지만, 그래서 톨킨의 글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톨킨이 다정다감하고, 감상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며, 모험을 즐기는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겠다. <로버랜덤>은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읽기에는 좀 시시한 동화다.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를 것 같다. 읽으면서 점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있긴 했다. 그런데 마음. 이 이야기를 만든 톨킨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 동화는 한없이 따스해진다. (실제로 내 친구는 아이를 위해 동화 몇 십 편을 직접 만들었다는 지인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아, 그런데 이 이야기는 톨킨의 둘째 아들 마이클보다는 첫째 아들 존이 더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었단다. 마이클은 초반부 이야기에 만족하고 흥미를 잃었다나. 하여튼 부모 마음 알아주는 건 첫째가 최고라니까.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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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지성사 낭독의 밤에 다녀왔다. 어젯밤, 영화를 보고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묵직한 개똥을 밟았다. 운동화 밑창에 똥냄새가 그득했다. 그걸 샤워기로 씻어내며, 어쩜 그렇게 묵직한 걸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밟아버렸을까, 한치 앞도 못 보는 나를 탓했다. 그런데 문자로 누군가 똥을 밟으면 운이 좋다고 말해줬다. 다행이었다.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주 좋은 밤을 보냈다. 낭독의 밤에 다녀왔고, 친구와 술을 마셨고, 우린 좋은 이야기를 나눴다.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아슬아슬하게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다.

    홍대 4번 출구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구에서 장미꽃과 수국을 파는 아저씨와 분홍색 물티슈를 나눠주며 헌혈을 하라고 외쳐대는 아저씨를 만났다. 그 앞에서 10분 넘게 서 있었는데, 아가씨가 와서 3000원치 빨간 장미를 사 갔고, 아줌마가 와서 1500원치 노란 수국을 사 갔다.헌혈을 하러 아저씨를 따라가는 아가씨도 아줌마도 없었다. 나는 4번 출구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허삼관을 생각했다. 

    친구와 나는 이제 이리카페를 잘 찾아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잘 찾아가는 거다. 친구는 여전히 길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서야 홍대 지리를 알 것 같다. 우리는 행사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서 따뜻한 커피와 차가운 커피를 시키고, 탁자가 있는 푹신푹신한 쇼파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 사이 까만 뿔테 안경을 쓴 김혜순 시인이 도착했고, 투명한 무테 안경을 쓴 문태준 시인이 도착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슬쩍 시인들의 자리를 훔쳐 보았는데, 문태준 시인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인들은 각각 세 편씩 자신의 시를 낭독했다. 김혜순 시인은 '양파', '불가살', '전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를 읊었다. 나는 시인이 '양파'를 낭독할 때 눈물이 날 뻔 했다.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옆에 앉은 친구를 쳐다봤는데, 친구의 눈도 촉촉했다.


양파 
김혜순         


   시인은 이 시를 소개하면서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낮이 가는 것, 밤이 오는 것, 사랑하는 것, 헤어지는 것, 그런 걸 생각하면서 썼어요. 나는 생각했다. 낮이 가는 것, 밤이 오는 것, 사랑하는 것, 헤어지는 것, 니가 오는 것, 니가 가는 것.

   문태준 시인도 세 편의 시를 낭독했다. '그늘의 발달', '백년', '화분'. 나중에 바쁜 부인을 대신해서 온 아저씨 관객이 물었다. 혹시 상처하셨어요? 시인이 말했다. 아내는 잘 있습니다. 저 때문에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습니다만. 그럼 혹시 주변에 친한 분이 그런 일을 당하셨나요? 시인은 그렇지는 않지만, 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나중에 화장실에서 들었는데, 그 아저씨 아주 열심히 필기하시면서 낭독을 들었다고 한다.

   두 시인이 서로의 시 중 마음에 드는 한 편을 골라 낭독하기도 했다. 김혜순 시인은 문태준 시인의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을 낭독했고, 문태준 시인은 김혜순 시인의 '당신 눈동자 속의 물'을 낭독했다. 김혜순 시인은 그 시를 고른 이유를 문태준 시인이 이건 낭독 안 할 것 같아서,라고 했고, 문태준 시인도 웃으면서 자기도 그래서 골랐다고 했다. 아, 우리는 시인들이 반복해서 말하는 '모색'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큰소리로 웃었다. 아, 시도 잘 쓰고 유머감각도 뛰어난 시인들, 이거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문태준


   김혜순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당신도 팔, 다리가 있어 떠나는구나. 문태준 시인은 얼마 전 중국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곳에서 보았던 깊고 넓은 동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가 그 동굴 속에 흐르는 물을 두고 세상의 눈물이라고 했었나. 당신의 눈물이라고 했었나. 

   차분한 시인에 차분한 관객들이 함께 한 낭독의 밤이 끝났다.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친구는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오천원 주고 샀다. 우리는 문태준 시인의 사인을 받았다. 그는 우리들의 이름을 제일 첫 줄에 쓰고, '무거운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는 이 가을-'이라고 써 주었다. 멋진 말이다. 나는 이번 가을 내내 이 문구를 떠올릴 작정이다. 

   그리고는 친구와 나는 출입구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인도식 술집에 들어가서 와인을 마셨다. 우리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와인 한 병을 둘이서 거뜬히 마셔 냈다. 짭잘한 씬 피자도 시켜 먹었다. 내 얼굴만한(이건 거짓말이다) 와인잔에 보라색 와인을 따르면서 나는 화장실에서 들었던 '시집점'에 대해 친구에게 말해 줬다. 시집을 펼치고 나오는 페이지의 시로 지금 우리의 점을 보는 것. 내가 먼저 했다. 나는 친구에게 두 편의 시가 나오면 어느 게 내 시야? 물었고, 친구는 그럼 펴기 전에 오른쪽, 왼쪽을 말해, 라고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왼쪽이라고 말하고 시집을 펼쳤다. 오른쪽에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고, 왼쪽에는 백지였다. 우리는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말했다. 사랑이 북극에 있다면, 나는 남극에 있는거야. 친구는 니가 그럼 그렇지,라고 말해 주었다. 친구는 오른쪽이라고 말했다. 친구가 펼친 페이지에는 오늘 문태준 시인이 낭송했던 '백년'이 있었다. 아저씨 관객이 상처 경험이 있냐고 말했던 시다. 우리는 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웃고나니 어쩐지 조금 서글퍼졌다. 

    11시 30분에 술집에서 일어났다. 늦게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고 나란히 앉아서는 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들어있는 문태준 시인이 직접 낭송한 시 두 편을 들었다. '문장'에 있던 걸 녹음해두었던 거다. '바닥'과 '가재미'. 달리는 지하철도 흔들리고, 시도 우리 마음을 흔들었다. 가을의 바닥, 가재미의 한쪽 눈.김연수 작가의 황순원 문학상 시상식에 축사를 해준 문태준 시인의 파일도 함께 들었다. 지하철이라 깔깔거리지는 못하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 세상은 이렇게 찡하고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따스한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금요일 밤. 실은 토요일 새벽 2시지만, 내게는 금요일 밤이다. 너무 좋은 밤, 시인을 만나고 돌아온 밤, 와인과 친구에 흠뻑 취한 밤, 설레이는 밤, 아름다운 밤, 사랑스런 밤. 나는 이 밤을 길게길게 즐기다 잠들어서 달의 뒷면에 도착하는 꿈을 꿀 거다. 그 곳에서 나는 강아지 로버와 달빛을 쫓으며 토끼는 죽이지 않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거다. (이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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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주 오래 이 책을 기다려왔다. 1년도 더 된 것 같은데. <달의 바다>라는 소설이 있는데 아주 따뜻하다더라, 는 말을 듣고 도서관에서 기다리기를 몇 달. 인기 있는 이 소설은 늘 대출중이었고, 심지어 예약까지 되어있어서 그저 반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집에서 검색해봤을 때 '대출가능'으로 되어 있어서 룰루랄라 뛰어갔는데, 서가에 없어 한참을 찾다가 다시 검색을 해 보면 '대출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그러니까 <달의 바다>는 우리우리 도서관에서 아주아주 인기 있는 책. 그리고 돌고돌아 드디어 내게도 도착해주었다는 말씀. 나는 몇일을 품에 안고 다니며 이 푸른책을 아껴 읽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친구가 쌀국수를 사준다고 오라고 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내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바로 서쪽 하늘이 주황빛으로 환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 빛깔이 너무 예뻐서 나는 그 자리에서 1분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노을이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는데, 말할 필요도 없이 형편 없었다. 저 빛깔을 내 형편없는 핸드폰 카메라가 담을리가 없지. 우리는 쌀국수를 먹고, 커피도 마시고, 빨대를 꽂은 캔맥주를 또 두 캔 마시고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씩 들고 버스를 탔다. 행복한 밤이었다. 지하철로 갈아타면서 친구와 헤어졌다. 나는 7호선, 친구는 2호선. 7호선 안에서 푸른책을 꺼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읽었다. 이건 고무줄에 관한 얘기다.

 (p.41)

   아. 나는 그 날 지하철 7호선 안에서 나도 모르게 또 한번 탄성을 내뿜었다. 세상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도 같았다. 어느 시의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그러니까 7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 때 당시 내 곁에 나를 떠나려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잡고 싶었다. 나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고 있었다. 그 책에서는 남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두 가지 이론이 나온다. 고무줄 이론과 동굴 이론. 남자는 가끔 동굴 속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 끄집어 내려 하지마라. 끄집어 낼수록 남자는 더 깊숙히 들어간다. 내버려두면 아무렇지도 않게 저절로 나온다. 이게 동굴 이론이다. 고무줄 이론도 비슷한데, 남자는 때론 끝까지 잡아당겨진 고무줄처럼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동굴 이론과 마찬가지로 평생 고무줄에 힘주고 있을 순 없으니깐 언제고 놓을 거고 그러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그 책을 맹신했었다.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는 동굴 이론과 고무줄 이론을 고스란히 그 사람에게 대입시켰다. 나는 동굴로 이 책을 보냈다. 몇 페이지를 읽어봐, 라는 메모도 남겼다. 뭐 결과는, 흠, 이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책 따위 읽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고무줄 이론. 나는 착각했었다. 그 때 나는 고무줄도 있는 힘껏 잡아당기면 다시 원상태 그대로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돌아오겠지만 처음보다 훨씬 헐거워질 것을. 그건 처음의 고무줄이 아닌 것을. 1.5배쯤 늘어난 고무줄이 되어 있을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밤, 7호선 안에서 저 문장들을 읽고는 더는 저 명랑한 푸른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책을 덮고 아주 오래 전 그 고무줄에 대해 생각했다.

   
    흠. 다시. 그러니까 <달의 바다>를 다 읽었다. 1년치를 기대한 탓에 조금 싱거운 기운도 있었다. 모두가 얘기한 것처럼 고모의 편지가 좋더라. 따듯한 편지들이었다. <달의 바다>를 읽기 전에 올해의 좋은 소설에서 정한아의 '마떼의 맛'을 읽었는데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소설을 읽는동안 따스한 기운이 온 몸에 돌았다. 다 읽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꼭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달의 바다>를 읽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잽싸게 낚아챈 거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 우주를 생각했다. 과학적인 우주가 아니라 감성적인 우주를 생각했다. 짙은남색의 우주. 헤엄치듯 유영하는 우주비행사. 저기 멀리 보이는 알사탕같은 지구. 무채색의 달. 그 곳에서 무거운 우주복 없이, 우주선을 빠져나와 헤엄치듯 유유히 우주를 떠다니는 나를 생각했다. 외롭지만 고독하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주에 있다! 로 힘껏 소리쳐도 아무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을 것같은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물개처럼 손을 휘젓고, 돌고래처럼 다리를 흐느적거리는 상상을 했다. 아, 우주는 따스한 곳이었다.

   나는 다시 지하철 7호선 안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 때 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선 존 마크의 'Signal Hill'이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듣곤 좋아서 저장해두었던 노래다. 사람이 많은 퇴근길의 지하철 안이었는데 이 노래와 소설의 마지막이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그래서 나는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노래를 다시 들었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한번 더 읽었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p.160)

   우리가 오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진짜라는 걸. 조경란의 말처럼 순정만화에 나올 뻔한 인물들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힘이 없지만, 이 소설은 충분히 따뜻한 소설이다. 우주를 꿈꾸게 만들고, 사랑을 꿈꾸게 만들고, 오해를 꿈꾸게 만드는. 그녀의 다음다음다음다음다음다음다음번 소설이 기대된다. 그러니까 난 그녀의 조그만 팬이 될테다. 다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야기. 남자에게 고무줄과 동굴 이론이 있다면, 여자에겐 파도 이론이 있다. 결국 같은 얘기다. 살아가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 그건 여자, 남자 구분이 따로 필요 없다는 이야기.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진짜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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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문학사상사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아니. 이건 이를테면 프롤로그고, 실제 시작하는 문장은 이렇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학교 1학년 때 내게 꽤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를 소개시켜준 선배가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나이가 부담스러워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선배는 메일이라도 주고받아보라고 했다. 선배는 내게 그 남자가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소개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는 내게 종종 메일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이건 어젯밤 야경이 아름다운 남산 꼭대기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이건 어제 새벽 안개로 뒤덮인 논가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나는 그 남자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내 성년의 날에 만났다. 남자는 점퍼를 입고 차를 끌고 나왔고 나는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남자와 나는 서로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내 기억으론 그 남자와는 딱 한 번 그렇게 만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뒤로 문자 연락은 간혹 했었다. 남자는 하루키 커뮤니티의 운영진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하루키를 읽어 볼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내가 도서관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빌리고 문자를 보냈더니 당장 전화가 왔다. 하루키는 그렇게 무턱대고 <노르웨이의 숲>부터 읽으면 안 돼. 당장 <상실의 시대>를 반납하고 자기가 말하는 책을 빌리라고 했다. 그 책을 다 읽고 남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책을 다 읽었어요. 그러면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어땠니, 나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감상을 주절거렸다. 그러면 남자는 다음 책을 추천해줬다. 나는 그 책을 다 읽고 또 문자를 보냈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을 더 연락을 했었는데, 아마도 내 기억으론 <노르웨이의 숲>까지 못 가고 연락이 끊겼던 것 같다. 아니면 <노르웨이의 숲>까지 딱 갔을 수도 있고. 그 뒤로 나는 하루키를 혼자 읽었다. 혼자 읽고 혼자 곱씹고 혼자 다음 책을 골랐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남자의 하루키 추천 순서는 발간 순서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제일 처음 읽은 하루키의 책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일 것이다. 일기라도 써 뒀었더라면 기억해낼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오래간만에 하루키의 초창기 소설을 읽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지난 주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읽고 싶어졌다. 읽으면서 내내 읊조렸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무슨 까닭이였는지 몰라도 나는 이 책에서 위안 받고 싶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잘 될 거야. 스무살 그 때처럼 용기낼 수 있을 거야.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꼼꼼히 읽어나갔다. 한창 내가 하루키에 빠져있을 때의 문장들이 펼쳐졌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항상 샤워를 하고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쓸쓸했지만 외롭진 않았다. 공허했지만 절망스럽진 않았다. 세상의 끝을 생각하고, 일각수의 두개골을 상상했었다. 스파게티 같은 이국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깊이 잠들고 싶었다. 그 때, 하루키를 읽을 때마다 그랬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맥주를 마시고 바닷가 도로를 운전하는 '나'와 어느새 친구가 된 술집에서 책을 읽는 돈이 많은 부잣집 아들 '쥐'와 새끼 손가락이 없는 여자 아이가 등장한다. 딸국질을 하는 라디오 DJ와 감자튀김을 열심히 만드는 술집 주인 제이도 간간이 등장한다. '나'와 잠을 잔 과거의 여자친구들 이야기도 있다. '나'가 레코드를 빌리고 돌려주지 않은 여학생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나'와 쥐, 새끼 손가락이 없는 여자 아이의 세계에는 존재하는 작가 데릭 하트필드도 있다. 줄거리를 말해 보라고 한다면 내가 이렇게 문장을 나열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저 '나'가 있었고, '쥐'가 있었고, 바람이 있었다. 어느 날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래, 작가의 말이었다. 내가 이 공허하고 쓸쓸한 이야기를 읽으며 잘 될거야, 다소 터무니 없는 주문을 외웠던 이유가 바로 책의 뒤, 작가의 말에 나왔다. 이 책의 작가의 말에는 언제 하루키가 처음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는지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어느 야구팀이 승리한 걸 보고 모두들 열심이군, 나도 열심히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써 내려갔단다. 그렇게 써 내려간 소설이 바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하루키는 이 작품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작가의 말을 읽고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이 책이 다시 내게로 온 거구나, 생각했다. 올림픽을 보면서, 유도 경기를 보면서, 핸드볼 경기를 보면서, 야구 경기를 보면서 나도 생각했다. 모두들 저렇게 땀 흘리며 열심히 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지. 가을이 올테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테니까. 스물 아홉의 나는 스물 아홉의 하루키에게 정말 감사했다. 이건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다잡은 사람들을 위한 작가의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스무 살 하루키를 좋아했던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는 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까. 벌써 오래 전에 결혼을 했을테고, 아이도 있을테지. 그는 여전히 남산 꼭대기 위에서, 새벽 안개가 몽글몽글 피어나는 논가에서 사진을 찍을까. 그 때 남자와 나는 꽤 긴 길을 드라이브 해서 스파게티를 먹으러 갔다. 창을 5센티만 살짝 내려놓고 크게 음악을 들었다. 나는 그 당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말 없이 음악을 들으며 도로 위를 달리는 시간이 좋았다. 여전히 그는 하루키를 읽을까. 이젠 하루키를 읽지 않는 일상에 찌든 가장이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아, 책을 읽는데 자꾸 김연수 작가의 <7번 국도>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쩐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다. 김연수 작가가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했으니 영 엉뚱한 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생각. 용기를 얻고 싶으면 이제는 꽤 유명해진 작가의 데뷔작을 읽자. 미숙한 면들이 여기저기 보이지만 열정만은 그득한 첫 작품. 그는 꾸준히 썼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괜찮은 작가가 되었으니. 어떤 사람에게도 위태로운 처음은 존재하는 것이니. 나도, 당신도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을테니. 아자아자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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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이성미 지음/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 들렀다. 시를 잘 읽지도 않는 주제에 시를 읽고 싶은 날이란 생각에 시집을 빌렸다. 이성미 시인의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라는 시집이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시간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 제일 빠른 길은 이렇게 가는 길이다. 대문을 나서 '오이마트'에서 좌회전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내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컷트머리로 잘라달라고 한 미용실'에서 좌회전해서 2분정도 걸어가면 도서관이 있다. 4층이 내가 늘 가는 종합자료실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도서관 가는 길에 우리 자매가 종종 이용하는 술집이 즐비해 있다. '황룡성'이라는 중국집을 닮은 치킨집은 얼마 전 '푸닥푸닥'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하며 떡이며, 머릿고기를 돌렸다. 이 집은 조명이 푸른 색이다. 역시 '황룡성'이란 중국집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뒷모습
 

   번데기 안주가 3000원도 안 하던 술집이 있었다. 술집 이름은 원샷. 우린 늘 이 집에서 생맥주를 시켰기에 원샷하지는 못했지만 저렴한 안주 가격 때문에 이 집이 망하지 않길 바랬는데, 이 집도 곧 문을 닫고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이사올 즈음부터 돼지갈비 전문점이었던 그 곳은 얼마 안 가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그 길고 긴 공사 끝에 이제야 5층짜리 건물로 재정비되었으니. 그 돼지갈비집은 아마도 3층짜리 가게로 재개업하는 듯하다. 오픈하면 이번에는 꼭 가봐야지. 맛있으니깐 넓힌 것일테니깐. 돼지갈비엔 맥주가 최고지. 


   나는 쓴다


   새로운 동네 맥주집을 발견했다. 이 집은 고래고기를 파는 집인데, 시험삼아 먹어본 고래고기에는 비릿맛이 강해 한 점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대신 이 집은 맥스 생맥주가 정말 맛있다. 그러니 2차로 가기 좋은 곳. 


   여기 시들을 만들어준 모든 이에게


   이 모든건 이성미 시인의 시이다. 여름이 간다. 가을이 온다. 모두들 아는 사실이지만, 무더운 여름 다음에 서늘한 가을이 온다. 여름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내겐 정말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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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릿파크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문학동네


    이 소설을 읽고 기억에 남은, 아니 마음에 남은 두 가지. 마법과 노란방. 이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 마음이 벅차 올랐다. 아, 이건 내가 찾아 헤맨 마법, 그리고 노란방이야. 미국 교외 중산층에 대한 반어적인 풍자와 코미디 이런 해석은 이미 멀리 보내 버렸다. 토니의 마법, 해머의 노란방. 어제 술자리에서 동생은 인생이란 살얼음판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튼튼해보여도 언제 내 밑의 얼음이 깨져 풍덩 차가운 물 속으로 빠져버릴지 몰라. 동생은 일주일 전만 해도 다닌지 한 달이 채 안 된 회사에서 돌아와 매일 울었다. 나와 동생의 남자친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내내 따라가겠다고, 그러다 니가 빠지면 재빠르게 밧줄을 휘둘러 구해주겠다고 안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소주잔을 채우고 살얼음판을 위하여, 라고 외친 뒤에 원샷했다.

   이 소설을 설명하자면 <위기의 주부들>을 떠올려봐, 라고 하면 될까. 언젠가 EBS에서 해 주는 걸 넋 놓고 보다가 울어버렸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보통 사람들>을 생각해봐, 라고 하면 될까. 진주에 처음 올라온 여름 방학에 집 앞 비디오 가게에서 매일 테잎을 빌려봤던 그 때, 우리 자매가 세네번이나 빌려 꼭 병에 든 코카콜라에 빨대를 꽂아두고 보았던 <나우앤덴>을 생각해봐, 라고 하면 될까. 배경은 그런 미국의 교외, 똑같이 생긴 2층집(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있는) 거리를 떠올리면 된다. 풍요로워 보이는 삶. 넘칠 것도 부족할 것도 없을 것 같은 가정들이 양 옆으로 가지런히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듯한 그런 동네. 그 곳이 불릿파크다. 탄환저장소. 모두들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듯이 물질적으로는 꽤 풍요롭지만 언제 튀어나갈지 모를 위험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 그곳에 살아가는 탄환들, 네일즈와 해머(못과 망치), 그리고 네일즈의 아들 토니. <불릿파크>는 이 세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에 네 개의 노오란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첫 번째 포스트잇에서 네일즈는 어느 흐린날 아침 타임스를 읽으며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p.99)  그는 어느 날 출근길의 기차역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는다. 어느 날은 두 정거장도 채 가지 못하고 기차에서 자꾸만 내린다. 도심으로 가는 출근길의 기차역. 모두들 바쁘게 기차에 뛰어오르는데 혼자 절망적인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중년의 남자의 모습을 생각하자 가슴이 저려왔다. 외롭다는 건 그런 풍경이니까.


   두 번째 포스트잇에는 내가 이 책에서 무척이나 좋아했던 마법이 등장한다. 네일즈의 아들 토니는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내려오지 못하는 병에 걸린다. 네일즈 부부는 하루, 이틀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했지만 그 병은 한 달이 넘게 지속됐다. 그런 토니에게 두 명의 의사가 다녀가지만 그들 누구도 토니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 그리고 마법. '힌두교 도사랄까 신앙요법사'라고 소개받은 스와미 루투올라가 마법의 집행자다. 그는 침대에 누워있는 토니 방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향을 피워도 될까 동의를 구하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볼티모어에서 태어났어,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는 또 토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제 그들이 함께 하게 될 기도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마법의 주문, 마법의 기도를 외기 시작한다. 그건 아주 간단한 주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행복해, 나는 괜찮아, 나는 행복해질 거야, 나는 괜찮아질 거야를 반복해서 외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나는 이 페이지를 읽으며 토니와 함께 스와미의 기도를 함께 외었는데, 하마터면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때론 서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나누며, 너는 잘 될 거야를 열 번 진심으로 외쳐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침대에서 박차고 나가 우울증을 떨칠 수 있는 일이다.

(p.209-210)


   세 번째 포스트잇은 해머의 어머니 이야기다. 그녀는 미국의 끔찍한 자본주의를 증오했다. 결국 그녀의 어떤 생각은 아들 해머로 하여금 소설의 말미에 끔찍한 살인을 계획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도는 호텔 생활을 했는데, 자신이 쓰기 전에 침대를 사용했던 사람의 특징들을 꿈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이런 말을 적어 아들에게 보냈다.

(p.236)


   내 네 번째 노란 포스트잇은 노란방 위에 붙였다. 해머는 술로 이 빌어먹을 삶을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술이 그의 하루의 전부였다. 그러다 어느 날 운명처럼 노란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첫 눈에 그 방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노란방의 따스한 기운. 그 안에 있으면 두통없이, 술 없이 꽤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머물게 된 노란방에서의 밤. 

(p.278-279)

 
    소설의 마지막은 비극으로 끝나는 듯 했다. 아니, 비극으로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자신의 마법, 자신의 노란방을 잘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노란 삶이라고. 그건 분명 남을 해치지 않는 마법이고 노란방이여야 한다. 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위기의 주부들>에서처럼, <보통 사람들>에서처럼, <나우앤댄>에서처럼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이 분명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 어느 단 한 사람도 외롭고 힘들고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위로를 나는 <불릿파크>에서 받았다. 퍼즐처럼 맞춰진다고 해야 하나. 지금 나는 우울증에 관한 아주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불릿파크>의 토니와 해머와 네일즈를 자주 떠올린다. 나도 토니도 해머와 네일즈도 모두 크고 작은 우울증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살얼음판. 내가 딛고 있는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살얼음판 위에서 이런 책을 만나는 일 또한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마법과 노란방에 좀더 가까워지는 일이니. (아니, 이건 나의 조그마한 마법이며, 노란방이다) 내게는 풍덩 빠져도 밧줄을 금세 던져줄 사람들이 있으니. 외로운 사람들이여, 우리 모두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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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
이순원 지음/굿북(GoodBook)


2천 5백만 년 전 당신에게


   이건 2천 5백만 년 전의 당신에게 보내는 글이지만, 2천 5백만 년 후의 당신에게 보내는 글일지도 몰라요. 겹겹이 쌓여있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 우리가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어제는 장맛비가 한참을 내리고 오래간만에 맑은 날씨였어요. 비 개인 뒤의 이런 날이라면 별들이 평소보다 1미터쯤은 가까이 다가와 있을거란 생각을 했지요. 나는 별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이예요.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어버렸지요. 어제는 고깃집이 즐비한 큰 길가를 지나 중랑천에까지 걸어 나갔어요. 이곳이 내가 사는 곳보다 별이 좀 더 보이는 곳이죠. 별을 자주 보지 않는 나도 그쯤은 알아요. 나는 선 채로 고개를 젖히고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작가의 말이 생각나 풀밭을 찾아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워 버렸어요. 아, 정말 밤이 한 눈에 넓게 들어오더군요. 서울이란 곳은 별자리를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밝은 곳이라 그저 몇 개의 별 뿐이였지만, 그럼 어때요. 나는 밤을 이렇게나 넓게 올려다보고 있는 걸요. 밤하늘을요. 별들을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어요. 모든 사랑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지요. 여자는 남자의 옛 친구의 부인이고, 남자는 여자의 남편의 옛 친구예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으레 이런 조건을 포함하고 있지요. 남자는 중국의 돈황까지 가서야 장거리 전화를 걸어 여자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여자는 누군가를 잊고 누군가와 시작할 수 있을까, 눈이 쌓인 은비령으로 가는 위태로운 고개들을 넘으며 생각을 해요.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사랑은 가질 수 없기에 더 간절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은비령>은 사랑이야기예요. 늦게 찾아왔지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고, 고민 없이 눈앞에 보이는 이 길에서 우회전을 해 함께 바다를 보고 싶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이 2천 5백만 년 전에도 반복되었던 시간이라면 2천 5백만 년 후에도 역시 당신과 그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나와 당신의 공전궤도가 닮아 일 년에 한 번쯤은 만나 후회 없이 사랑을 나눴으면 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중국의 길고 긴 사막길의 실크로드 위에서야 여자를 깊이 사랑한다고 느꼈던 남자나, 만날지도 모르면서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은비령으로 길을 나섰던 여자나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들이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어제 <은비령>을 읽었어요. 폭염주의보가 한반도 어디엔가 내려졌다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요. 어제 나는 소설 속 남자를 따라 강원도 한계령까지 갔어요. 도심의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운전석의 남자가 씨디 플레이어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엔야의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그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새하얀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은비(銀飛). 남자가 중얼거렸어요. 은비령으로 가지. 그렇게 은비령으로 가게 된 거예요.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 정상에서 인제로 빠지는 갈림길에서 나는 남자가 건네준 김이 모락모락나는 호빵과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눈이 소복이 쌓인 비밀스런 고개 마루가 나타났죠. 은비(隱秘). 그 곳에서 나는 남자와 남자가 나중에 데려온 여자와 함께 별을 보았어요. 77년 만에 나타난다는 핼리혜성. 이생에서 더 이상 이 혜성의 반짝이는 꼬리를 올려다보는 일은 없겠죠.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천 5백만 년 뒤에도 이렇게 핼리혜성의 반짝이는 꼬리를 올려다보며 이생에선 이게 다겠죠, 라고 생각 할 거라고. 우주를 생각하니, 그 까마득한 어둠을 생각하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더라구요. 한 여름인데도 말이예요.

   2천 5백만 년 전의 당신, 아니 2천 5백만 년 후의 당신. 나는 어제 한 여름의 풀밭에 벌러덩 누워 밤하늘을 넓게 올려다보는 동안 지금의 나와 어쩌면 2천 5백만 년 전의 나와, 그리고 2천 5백만 년 후의 나를 생각했어요. 강원도 어느 곳에 있다는 은비가 내리는, 비밀스런 고개 은비령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쩌지 못해 2천 5백만 년 후를 기약했을 가여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생각했어요. 그러자 외로워졌어요. 이렇게 혼자 풀밭에 누워있는 나도, 산 속 깊이 숨어있던 외로운 고개 은비령도, 어쩌지 못하는 사랑에 머뭇머뭇 손을 잡지 못했던 남자와 여자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혼자서 힘들게 타원형을 그리며 공전하는 별도, 내리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리는 3월의 눈도, 얼음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독이 가득한 예쁜 이름의 꽃, 바람꽃도. 우리 모두는 우주 아래 외로운 존재인 거예요. 그렇지만 다행이지요. 우리에겐 2천 5백만 년 전의 외로움과 2천 5백만 년 후의 외로움이 있으니. 그건 누구나 겹겹이 쌓인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외롭다는 거잖아요. 얼마나 다행이예요. 혼자 외로운 게 아니니.

   나는 2천 5백만 년 후에도 은비령을 만나고 있을 거예요. 밤하늘도 올려다보겠죠. 여전히 별이 별로 없는 도심의 무심한 하늘 아래일 지도 몰라요. 땀을 뻘뻘 흘린 뒤 강바람에 얼굴을 식히며 눈을 감고 은비령의 눈을 그릴지도 모르죠. 책 속에만 있었지만 이제는 땅 위에 존재하는 이름, 은비(銀飛)령. 작가 혼자 외롭게 스쳐 지나가는 별들의 이름으로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모두가 소리 내어 불러주는 이름, 은비(隱秘)령. 소리 내어 보면 참 예쁜 이름이예요. 나는 잔디밭에서 일어나 옷을 털면서 알았어요. 내 옷이 하얀색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오래 누워 은비령에 다녀오는 동안 하얀 티셔츠 가득 연둣빛 풀물이 올랐다는 걸.

    소설 속 별을 보는 뒷집 남자가 내게 해 준 말. 정말 위로가 되는 말 아닌가요. 나는 지금 엔야를 듣고 있어요. 정말 별들이 1미터쯤 위에서 속삭이는 것 같아요. 외로워하지 말아요.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럼, 2천 5백만 년 뒤에 다시 만나요, 우리. 안녕.

                                                                                                                          2008년 7월

 


 
- 이순원의 단편 은비령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일러스트나 지나치게 큰 글자크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다시 한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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