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1. 주말의 일기 5 2010.04.18
  2. 3월 25일의 일기 2010.03.25
  3. 법정 스님 2 2010.03.12
  4. 월요일의 파스타 8 2010.03.01
  5. 봄이 왔다 3 2010.02.25
  6. 1월 마지막 날의 일기 14 2010.01.31
  7. 오래간만의 일기 2010.01.24
  8. 나의 독서 취향 6 2010.01.14
  9. 1월 2일, 길상사에서 8 2010.01.03
  10.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 14 2009.12.31

주말의 일기

from 모퉁이다방 2010. 4. 18. 20:19

    
    4월. 일주일에 한 번씩 일산에 있는 퍼즐카페에 간다. 평일에는 사람들이랑, 토요일에는 혼자서. 토요일 근무 끝나고 (거의 약속이 없으므로) 일산으로 건너가서 과장님과 중국음식으로 점심을 거하게 해결하고, 나는 퍼즐카페로, 과장님은 DVD방으로. 둘.둘씩 편을 짜서 천 피스 퍼즐을 맞추는데, 어제는 그 천피스 퍼즐을 꺼내서 했다. 테두리만 맞춘 상태였는데, 3시간 동안 끙끙거리다 테두리 옆에 살만 조금 붙이고 왔다. 수채화풍의 그림이다. 하늘에는 갈매기들이(기러기일까) 날고,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 가득하다. 높은 건물들이 많고, 건물들 사이에 호텔 간판이 있고, 성조기가 날린다. 자동차 전조등들이 켜져 있고,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으니 시간은 저녁 즈음. 그걸 3시간 동안 가만히 들여다보다 돌아온다. 

    이제 일산 번화가 지리를 대충 알게 됐다. 두 번 술을 마시러 갔고, 네 번 퍼즐을 맞추러 갔다. 사람들 바글거리는 거리를 지나 정발산역으로 가선, 거기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매번 앉을 수 있고, 창 밖으로 번화가와 전혀 다른 일산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두 번, 토요일에 퍼즐카페에 갔는데, 돌아올 때마다 지하철 창밖으로 노을이 졌다. 과장님은 찹쌀탕수육을 먹으며 이게 외로운 건가. 근데 외롭다고 전혀 생각되지 않거든, 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다. 저두요. 저도 그래요. 아, 중간에 있던 사람 그림자가 보이던 파란 자동차 퍼즐은 거의 다 맞출 수 있었는데. 다음주에는 목요일에 간다. 꼭 맞춰야지, 그 부분. 이상하지. 둘이 있으면 빈둥거리며 잘 못 맞추겠다면서 빨리 맥주 마시러 가자고 하는데, 혼자 있으면 오직 맞춰버리고 말겠다는 일념 뿐이다. 혼자 있음 이상하게 그렇다. 

                                                                             *

    어제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는데, (요즘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드라마) 태섭이가 유민이에게 결국 커밍아웃을 했다. 유민의 대사는 작가의 말을 대변하는 아주 설교적인 말들이었지만,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슬퍼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유민은 태섭이를 많이 사랑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몇 번 태섭이의 집에 들러 집안 식구들을 만났고, 오늘도 바닷가를 보며 스테이크 먹을 데이트 약속에 들떠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고백을 들었다. 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야. 유민이가 그런다. 좀 더 일찍 말해주지 그랬어. 맞다. 그랬으면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이 고백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아픈 고백이 되지 않았을 텐데. 태섭이도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울었다. 그리고 문자로 말한다. 나도 조금 울었어. 

                                                                        *

    오늘은 하루종일 누워서 잠만 잤다. 중간에 일어나서 김치랑 돼지고기를 볶고, 감자조림을 해서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주말이 가는구나. 보고 싶은 시집을 발견했다. 다음 주에는 시집을 읽어야지.


,

3월 25일의 일기

from 모퉁이다방 2010. 3. 25. 14:35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꿈을 꿨는데, 이상했다. 이상했다. 그 말밖에. 이불을 개고, 얼큰한 맛 생생우동을 끓여 먹었다. 방을 쓸고, 운동화 두 켤레를 빨았다. 좋아하는 비누를 잔뜩 묻히고 칫솔로 빡빡 문질러 닦았다. 시커먼 흙탕물이 한 가득. 4월 한 달도 잘 부탁한다, 운동화야. 세탁기도 돌렸다. 창문도 활짝 열어뒀다. 분명 날이 환했는데, 청소를 하다보니 어둑어둑해졌다. 비가 쏟아졌다.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들어있는 모든 곡을 랜덤으로 재생해 놓았는데, 갑자기 김갑수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K양, 행복해지고 싶죠? 행복해지기가 쉬운줄 아십니까?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법입니다. 은호야, 행복해져라. 은호야.' 노력해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인데. 그런 법인데. 친구랑 영화를 보기로 했다. 햄버거도 먹고, 커피도 마셔야지. 오늘 날씨에 딱 어울리는 영화도 봐야지.


   
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3월에 <재와 빨강>도 읽었다. 읽고 나서 왜 제목이 재와 빨강, 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예전에 어떤 기사를 읽었다. 작가 지원 프로그램의 일종인데, 작가들을 해외로 보내준다고 했다. 편혜영 작가가 가는 곳은 일본이었다. 그 곳, 그 기간 동안 완성된 소설인가, 그 곳, 그 기간 동안의 기억으로 완성된 소설인가. 마지막이 섬뜩했다. 그리고 앞 장으로 돌아가, 작가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예쁜 얼굴. 역시 작가란, 대단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들이다. 이리카페에서 작가의 낭독을 들을 수 있는 이벤트가 있더라. 신청하면, 갈 수 있을까. 듣고 싶다. 예쁜 얼굴에서 나오는 섬뜩한 문장들.



심야식당 5
아베 야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심야식당 5권도 나왔다. 캬오. 드라마를 다 끝냈어야 했는데. 중간쯤 보다 다운받고, 엠피에 넣고 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못 보고 있다. 통조림으로 먹을 수 있는 꽁치구이 덮밥이 신기했는데, 비리지 않을까 모르겠다. 조만간 도전! 햄버그 스테이크와 맥주도 맛나겠고, 김 솔솔나는 군만두도. 쩝쩝. 아, 5권에 특별등장하는 만화가 아베 야로씨. 너무 그리지 어려운 메뉴를 주문하지 말라능. 흐흐. 6권은 여름에 나오다는데, 얼른 여름아 오시오. :D



    오늘 아침에 누워서 티비를 돌리다 <키친>을 봤는데, 오글거려서 혼났다. 어쩜. 그래도 끝까지 봤네. 영화 내내 화면에 있는 자막처럼 봄을 닮은 신민아 때문에. 아, 그 아이는 왜 이렇게 예쁜거야. 좋은 영화 했으면 좋겠다. 두 달 동안 영화를 못 봤더니 볼 영화 투성이다. 일단 지태님 영화도 보아주어야 하고. 비가 그쳤다. 흐리기만 한 날씨. 내가 딱 좋아하는 꿀꿀한 날씨. 아까부터 내내 연애시대 쏭북을 듣고 있다. 손예진이 말한다. 사랑은 언제 끝나는 걸까. 이 드라마, 너무 좋았어. 다시 보고 싶은데 역시 다운받고 넣고. >.< 그나저나 오늘의 꿈은 정말 이상했어. 좋았는데, 이상했어.



,

법정 스님

from 모퉁이다방 2010. 3. 12. 00:59

   예전에 근무시간에 손톱을 깎는 분이 계셨다. 일을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톡톡거리는 뚜렷한 손톱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분이 손톱을 깎는 오후면, 생각했다. 도대체 왜, 저 분은 집에서 손톱을 깎지 않는가. 집에서 손톱 깎을 시간도 없단 말인가. 오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그 분 생각이 났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집에서 손톱 깎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하루의 시간을 일하느라, 밥먹느라, 출퇴근하느라, 서글퍼하느라, 힘겨워하느라, 슬퍼하느라 바빠 집에서는 도저히 손톱 깎을 시간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그러다 환하고 따듯한 오후가 되면 길고 더러운 손톱이 보이는 거다. 그럼 그걸 그 시간, 그 순간에 자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톡톡. 지금 내 손톱이 너무 길다. 그런데 집에서는 자를 시간이 없다.

     일산에서 집까지 긴긴 길을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앉을 수도 잠들 수도 없었다. 잠들어 버리면 종로3가에서 갈아타지 못할까봐. 그리고 금방 먹은 술 때문에 발이 퉁퉁 부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서서 졸고, 서서 책 읽다 말고, 서서 음악 듣다 말았다. 오늘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나는 종로 3가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서서 졸면서,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가다 길상사 생각을 했다. 지난 겨울, 그 추운 겨울에 찬바람을 뚫고 다녀온 곳. 법정 스님은 그 곳에 입적하셨다고 한다. 올해 초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 단단했던 마음을 잃을까봐 하루에 한 꼭지씩 법정 스님의 법문집을 읽었다. 그러다 중간쯤 놓았다. 플레이어를 돌려 시와의 '길상사에서'를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 마지막 세 번의 풍경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술 기운 때문인가. 발이 정말 잔뜩 부었다. 

    여름의 길상사를 생각했다. 가을의 길상사도 생각했다. 겨울이 지나, 봄의 길상사도 생각했다. 특히 초여름의 길상사. 연두빛들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났을 나무들. 그 나무의 잎들을 스치는 쉬이쉬이 바람소리. 오늘 서서, 졸며 읽은 책에 지눌 스님 이야기가 나온다. 지눌 스님은 땅에 향나무 지팡이를 꽂으며 너하고 나하고 생사를 같이 하자, 했다고 한다. 그뒤 지팡이에는 잎과 가지가 무성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이 입적하자 그 나무는 말라 죽었다고 한다. 스님은 이 나무가 자신이 떠난 뒤에 마를 것임을 확신했고, 자신이 떠난 뒤에 나무에 다시 잎과 가지가 무성하게 되면 자신이 환생한 것일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나무는 아직까지 살아나지 않고, 썩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법정 스님에게도 스님만의 나무가 있겠지. 내게도 나의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스님의 법문집을 펼쳐야 겠다.

,

월요일의 파스타

from 모퉁이다방 2010. 3. 1. 15:35


    삼월이다. 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지? 지난 주에는 버스 안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내 나이가 떠올랐다. 이런 숫자의 나이를 갖게 되다니. 그 날은 조금 서글펐다. 나이 드는 게 싫진 않은데, 가끔 그렇게 서글퍼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제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후배의 전화를 받았는데, 혼자가 편하다는 내 말에 그건 자기합리화라고 했다. 빨리 남자를 만나야 한다면서. 난 정말 혼자 있는 게 편한데. 그 후배의 말을 곱씹어보고 있는데, 기분이 좀 그렇다. 정말 내가 그런걸까.

    이건 보통날의 파스타가 아니라, 월요일의 파스타. 늦잠 자고 일어나서 뒹굴거리면서 케이블 파스타 재방송을 봤다. 동생이 스파게티가 급 땡긴다고 해서 시장가서 모시조개 삼천어치랑 스파게티 면을 사 왔다. 집에 올리브유랑 화이트 와인이 있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박찬일 쉐프의 레시피대로 만들어 본 봉골레 스파게티. 

   일단 마늘을 박찬일 쉐프의 방식대로 한번에 힘을 확 줘서 뽀개고,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볶는다. 그 다음엔 모시조개를 넣고 살짝 볶는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 한 컵 넣는다. 뚜껑을 닫고 조개가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렸다 불을 끈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꽃소금을 넣는다. 팬의 불을 꺼 두고, 끓는 냄비물에 스파게티 면을 넣고 익힌다. 다 익고 나면 팬의 불을 켜고 면을 넣는다. 그리고 올리브 유를 더 넣고, 후추랑 파슬리(요건 없었으니까 패스)를 넣는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면 끝. 아,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맛있었다. 종종 해 먹어야겠지. :)

   봄비도 오고. (이거 봄비 맞지?) 오늘도 연휴도 끝나고. 커피나 마셔야겠다. 그리고 이불 깔고 누워있어야지. 모두들, 삼월에도 화이팅-


,

봄이 왔다

from 모퉁이다방 2010. 2. 25. 00:22

    봄이 왔다. 오늘 계속 겨드랑이에 땀이 찼다. 겨울이 갔다. 이번 겨울은 정말 추웠지. 정말 추웠어. 봄이 오는 건 어색하고, 징글징글한 추위였지만 겨울이 가는 것도 아쉽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딱 고 사이에 서 있는 나. 오늘은 늦게 끝났고, 좀 걸었다. 합정에서 홍대까지 걸었다. 공기는 따듯하고, 바람이 불었다. 봄바람. 아니, 초봄바람. 아니, 초봄 밤바람. 정말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초봄 밤바람이었다. 홍대까지 걸어가 컵케잌을 4개 샀다. 하나는 해피버스데이. 하나는 내일 날짜를 초콜렛으로 새겼다. 내일은 지인의 생일. 그녀와 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서로를 알지 못했는데, 같은 공간에 같은 노래를 듣고 있었다. 1월에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마시러 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가 그 날,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 나는 그녀에게 루시드 폴 인터뷰가 실린 무비위크를 건넸다. 이 인터뷰 사진이 진짜 마음에 든다니까. 그녀는 자주 내게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한다. 왜 이렇게 그 말이 어색하지. 그냥 고마워요, 라고 해 주면 좋겠는데. 내일 내가 이 컵케잌을 건네면, 그녀가 고마워요, 해 줬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에 카모메에 들러 구운명란 주먹밥 세 개를 샀다. 내일 우리집 아침밥. 영화를 못 보고 있다. 봄이 오면 날씨가 좋아서 더 못 볼텐데. 술을 일주일 넘게 안 마셨다. 봄이 오면 날씨가 좋아서 술도 자주 마시겠지. 아, 보고 싶은 영화들이 쌓였다. 편혜영의  장편이 나왔다. 주문하러 가야지. 

    아, 정말 봄이 왔다. 내일은 어떻게 입어야 하나.



,

 

                 


 
    벌써 1월의 마지막 날이다. 1월이 어떻게 갔지? 1월에는 몹시 추웠고, 새로운 일 투성이었고, 나는 버벅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하루하루 바랬던 1월. 1월에는 아주 일찍 일어났고,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버스랑 지하철에서 정신 못 차리고 꾸벅꾸벅 졸지만. 어제도 힘들었는지, 집에 들어와서 티비 보고 뒹굴었다. 저녁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 허기보다 잠이 먼저 왔다. 9시 넘어서부터 잤으니 11시간은 푹 잔듯.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놓고 잤더니 방이 후끈거린다. 아, 1월이 다 갔구나.

    어제는 2시 즈음에 합정역에 내려서 홍대까지 걸었다. 합정역에서 홍대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꼭 한 번 들어가고 싶은 카페들이 가득한데, 낮에 그 길을 걸으니 기분이 뭐랄까. 좋았다. 상쾌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고작 십여 분 동안의 산책이었는데, 게다가 전날 늦게까지 술 마셔서 몰골이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 골목길은 한적해서 참 좋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침 일찍 사 두었던 김밥 한 줄을 상콤하게 먹어주며 걸었다.

    그러다 수업 들으러 상상마당에 오는 B를 만나 틈새라면에 가서 빨개떡을 먹었다. 후루루 짭짭 후루루 짭짭. 3시 수업인 B와 헤어지고 역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500일의 썸머 생각이 나서 음반가게에 들렀다. 만사천원을 주고 OST를 샀다. 그리고 헌혈을 하거나, 영화를 볼 목적으로 롯데시네마 쪽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더라. 아무래도 홍대 롯데시네마 그 건물은 망했나봐. 이상한 종이 딱지들도 유리문에 붙어 있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실패. 지하철 역으로 가서 따끈따끈한 <씨네21>을 사고, 집으로 향했다. 이번주가 김연수 김중혁 칼럼 마지막이다. 흑흑. 그래도 마지막에 나를 무지하게 웃겨주심. 그렇게 집에 돌아와 씻고 컴퓨터 켜서 500일의 썸머 리핑해서 엠피에 옮기고, 누워서 하이킥 낄낄거리면서 보다가 저녁이 왔고, 밤이 왔고, 11시간 동안 잠들었다.

   아, 맞다. <마더 이야기>. 난 영화 <마더>를 글로 읽었다.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는데, 내 주위 사람들이 스포일러를 아주 자세히 말해주는 바람에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책으로 나왔길래 이번에 시나리오로 읽었는데, 그러니까 어제 아침 지하철에서 마지막 장을 넘겼는데, 으스스하더라. 원빈의 대사. 그 때 김혜자는 어떤 표정으로 연기했을까. 아무래도 영화 봐야겠다. 아, 1월이 간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가 서울극장에서만 하는구나. 시간대가 늦은 오훈데. 고민이다. 보고 싶은데, 너무 멀고. 가면 광화문 알탕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쩌지.


,

오래간만의 일기

from 모퉁이다방 2010. 1. 24. 01:48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부지런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1월 초반에는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곤 했다. 지금은 거의 여섯시. 때때로 일곱시. 야행성 인간이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잠들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도 일어나는 순간만 힘들지, 씻고 깜깜할 때 집을 나서면 왠지 뿌듯해진다. 버스 안에서 잘 수 있으니 다행이지. 하루에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은 넉넉히 두 시간. 지하철 안에서 책 읽을 때 제일 집중이 잘 된다. 책 읽는 속도가 더딘 내가 1월에만 다섯 권의 책을 읽었다. 두 권은 편지글이고, 한 권은 백석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은 소설책. 

    이번주에는 냉장고가 고장났다. 오늘 에이에스를 받았는데, 혼자 있을 때라 아주 혼났다. 에이에스 하시는 분들은 지극히 사무적으로만 대해줬으면 좋겠다. 긴장한 거 생각하면 아주 그냥. 간만에 냉장고 청소를 했다. 에이에스 끝난 뒤에는 상한 음식 버리느라 20L짜리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가득 채웠다. 온 몸이 쑤셨지. 평생에 청소 잘 안 하고 사는데, 닦고 씻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뻗어버렸다. 쿨쿨 자고 일어나니 여섯시 남짓. 다행히 동네 친구가 맥주 마시자고 그래서 나갔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홍색 예쁜 목도리도 생겼고, 'JUST POP'이라고 예쁘게 새겨진 마이앤트메리 티셔츠도 생겼다. 우리는 맛난 소금구이와 맥주를 배불러 먹었고, 맥주 이만씨씨를 먹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은 멋진 거 같애. 맥주 이만씨씨 정도는 먹어줘야지. 분발해. 우리는 막차 시간에 맞춰 나왔고, 친구는 아무래도 돈을 더 낸 것 같다면서 통닭집으로 다시 갔다. 아, 꽉 찬 토요일을 보냈네. 행복하다. 청소는 힘들지만, 맥주는 시원하다니까. 닭가슴살은 어떻고. 그 맛난 통닭집은 소금구이에 신김치도 함께 준다. 찰떡궁합. 오늘부터 <시핑뉴스>를 읽을 거다.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는, 외롭고 쓸쓸한 계절에 읽어주어야지. 봄에는 꼭 따뜻해져야지.
,

나의 독서 취향

from 모퉁이다방 2010. 1. 14. 21:56

나의 독서 취향이라는 테스트를 해 봤다. 그 결과로 나온, '서안 해안성' 독서 취향.
내가 꿀꿀한 날씨 좋아하는 거 딱 알아맞추었음. 추천 작가는 글쎄.
온다 리쿠는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읽어봐야겠다.
테스트 하고 싶다면, http://book.idsolution.co.kr/index.php



대륙의 서안 지역, 위도 45°에서 55° 사이에서 발생되는 서안 해양성 기후대. 편서풍과 해류의 영향으로 일년 내내 수더분한 기온을 유지하지만, 비가 자주 내리고 구름이 많은 편이라 우울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 특징. 세계 최대 낙농업, 현대 유럽 문명, 그리고 울적하고도 아름다운 문학 작품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우아한, 고상한, 우수에 젖은. 서안 해양성 기후의 특징들은 당신의 책 취향과 크게 닮아 있습니다.

  • 흘러가는 편서풍처럼:
    뭔가 계획적이고 열심히 꾸며진 내용에 거부감. 지적인 강박관념 같은 것도 싫어함. 그보다는 물 흐르듯, 바람 불듯, 섬세하고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내용을 선호함.

  • 일년 내내 안정적인: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같은 취향. 너무 뻔하고 틀에 박힌 내용에도, 너무 극단적이거나 거친 표현의 글에도 거부감. 그러나 그런 거부감마저도 돌려서 점잖게 표현하는 편.

  • 귀부인 같은 문학성:
    격식을 갖춘 표현력, 고상한 스토리, 수준높은 완성도를 갖춘 주류 작품을 선호함. 값싸고 조악한 글에 본능적인 반감을 느낌.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책에 관심이 많으며, 일류와 삼류를 분별하는 선천적인 능력을 갖고 있음.

출판업계의 관점에서 볼때 당신 취향은 출판 소비 시장에서 2-3번째로 많은 인구 수를 차지하는 부류로, 책에 대한 취향이 다분히 '여성적'인 소비자 층입니다.

다음은 당신의 취향에 어울릴만한 작가들입니다.

은희경
어느날 아침 아내는 비명을 질렸다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말라 버려요!' 그녀의 손에 든 그릇 속에는 모래처럼 뻣뻣하게 마른 밥이 들어 있었다. 간장 접시 좀 보세요. 과연 간장은 죄다 증발해 버리고 검게 물든 소금 알갱이뿐이었다. 사과도 하룻밤만 지나면 쪼글쪼글해져요. 시멘크 벽이 수분을 다 빨아들이나 봐요. 이러다가 나도 말라비틀어질 거예요.자고 나면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 몸이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구요.
- 아내의 상자 中

생텍쥐베리
언젠가 다리 건설 현장에서 부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한 기사가 리비에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다리가 한 인간의 얼굴을 이렇게 으깨지게 만들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이 다리를 이용하는 농부 중에 다른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이렇게 끔찍한 얼굴을 만들어도 좋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리를 세운다. 기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보편적인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정당화할 것이 없습니다.'
- 야간 비행 中

온다 리쿠
도오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야말로 그 경계선에 앉아 있다. 낮과 밤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여러 가지 것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른과 아이, 일상과 비(非)일상, 현실과 허구. 보행제는 그런 경계선 위를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어가는 행사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냉혹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갈 뿐. 고교생이라는 허구의, 최후의 판타지를 무사히 연기해 낼지 어떨지는 오늘밤에 정해진다.
- 밤의 피크닉 中


,

   길상사에 다녀왔다. 오전에 가는 길을 검색해놓고서 빈둥거리다,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우선 사가정까지 걸어서 이층에 봄에 들러 라떼를 테이크 아웃했다. 적어온 낙서를 잘못 보고 태릉입구에서 무턱대고 내렸다. 거기서 6호선으로 갈아타서 보문역까지 가야 하는 거였는데, 태릉입구에서 1111번을 타야 되는 줄 알았다. 의외로 가깝네, 생각했지. 오뎅 하나를 먹다가 아저씨로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고는 다시 낙서를 봤다. 보문역, 이라고 정확히 적혀져 있었는데. 다시 지하철로 내려가 6호선을 타고 보문역을 가 1111번을 탔다. 한성대역에서 아주 가깝더라. 이제 한성대역으로 바로 와야지. 길상사까지 가는 길을 걷는데, 초행길이라 얼마나 멀고, 아득하고, 으스스한지. 길상사까지 올라가는 길이 다 부자동네더라. 그래서 다니는 사람도 얼마 없고, 해 지고 난 뒤에 도착한 터라 어둑하고 아득했다. 겨우 도착한 길상사. 아, 내가 왜 오늘 이 곳에 와야만 했는지 한 번에 깨달을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길상사에는 쌓인 눈이 있었고, 목탁소리가 있었고, 바람소리가 있었고, 그 끝에 들려오는 풍경소리가 있었다. 어두웠고, 고요했고, 고요했다. 언젠가부터 겨울의 절에 가고 싶었는데, 드디어 겨울의 절에 온 것이다. 멀리 도심의 불빛들이 보였고, 바로 코 앞에 절의 빛들이 있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뽀독뽀독 눈 소리가 났다. 멀리서는 목탁소리가 들렸다. 코 끝이 시리다 싶으면, 그 뒤에 이어 풍경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풍경소리가 들리는 절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바람이 불어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면 바람이 불어왔고, 풍경이 그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얼굴 전체가 바람때문에 흔들렸지만, 오리털 잠바에 장갑에 목도리로 무장했으니 괜찮았다. 봄이 오면, 초여름이 오면, 그리고 가을이 오면, 이 벤치에 앉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춥지 않은 날일테고, 시원한 바람이 불테고, 그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릴 테고, 그 바람의 끝에 풍경소리도 들릴테니. 그 풍경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고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길상사는 백석의 연인이었던 이가 한 때 요정으로 운영했던 곳이라 한다. 그는 백석을 사랑했고, 백석의 시를 사랑했다지. 그는 양반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해 기생이 되었고, 백석과 그는 사랑했으나 백석의 집안에서 반대해서 결국 이어지지 못했다지. 요정은 잘 되었고, 그이는 그 요정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겠다고 몇 해를 설득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결국 받아들였고, 그이의 법명은 길상화였다고. 그이는 그 돈이 아깝지 않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 돈은 백석의 시 한 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눈 오는 날 유해를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했단다. 그이는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고. 이 글을 어디선가 읽고 나는 오늘 길상사에 꼭 가야지 결심했다. 

    길상사로 올라가는 눈길 속에서는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소설 속 그 아이와 꼭 닮은 아이를 안다. 그 아이는 내게 항상 움츠린 어깨를 보였는데, 나는 늘 그 어깨를 감싸안고 싶었다. 정이현이 만든 세계에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그 아이가 있다. 그리고 시와의 노래와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었다. 겨울에 이 노래들이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다. 내려와서는 성신여대까지 걸었다. 그 근처에 한 때 내 친구들이 두 명이나 살았다. 그리고 미아까지 가서 통닭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난 언제나 그렇듯이 횡설수설했고, 그 아이는 내 말을 고맙게도 들어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종기와 루시드 폴의 편지를 다 읽었다. 내일, 아니 오늘은 1월 3일. 벌써 3일이 지났다. 길상사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도심의 불빛들을 내려다보면 되새겼다. 잘 될거야, 잘 될거야. 새해부터 새 일을 시작한다. 부디 좋은 사람들과, 많이 힘겹지 않기를. 꿈을 잃지 않기를.





길상사에서

,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그랬어요.
내 얼굴이 점점 맑고 밝아진다고. 
엄마에게 난 대부분 찡그리고 말 없는 얼굴일텐데,
엄마가 그리 말해주니 정말 그런가 싶었어요.  

아주아주 추운 이천구년 마지막 날이예요.
미래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숫자 2010년이 내일이라니.
저는 이제 서른 하나가 되구요.
오늘은 광화문까지 손이 얼얼한대도 열심히 걸었어요.

모두들 한 해동안 고마웠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붙잡고 안부 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마음 담아서 여기 보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새해에는 하시는 일들 모두모두 잘 되길 바래요.
그야말로,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

저의 이번 인사에는 흔적 많이많이 남겨주세요.
가끔 놀러와서 흔적 남겨주지 않는 당신이라도,
이번 글에는 남겨주세요.
왜냐면, 왜냐면
그냥요.
헤헤-
2010년에는 좋은 인사 많이 받았으면 좋겠으니까.
당신에게도 내가 많이많이 해주고 싶으니까요.

그럼, 안녕.
내년에도 잘 부탁해요.
: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