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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뜻한 고독 4 2009.02.02
  2.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6 2009.01.24
  3. 서른이 오는 소리 2 2008.12.31
  4. 언니, 2 2008.12.30
  5. 메리 크리스마스! 10 2008.12.24
  6. 11월의 일 8 2008.11.15
  7. 사랑이 메아리 칠 때 4 2008.09.20
  8. 나는야 서정중시형 인간! 19 2008.09.03
  9. 올림픽이 끝났다 10 2008.08.25
  10. 나츠이치 2008 8 2008.08.14

따뜻한 고독

from 모퉁이다방 2009. 2. 2. 21:44

    저녁 7시즈음. 지하철 안에 있었다. 뭔가가 마음 속에 툭 걸린 느낌. 내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몇 가지 생각들을 한 번, 두 번, 세 번 곱씹어낼수록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다 7시 반 즈음이었겠지.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매일 걸어다니는 그 길. 초등학교가 있는 한적한 길을 걸어오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잘 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건 잘 살고 있는게 아니다는 생각. 슬펐다. 마음이 아프고. 언젠가 내게 니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냐고 물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너는 잘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해주던 책들이 생각났다.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꾸짖던 신문 기사들이 생각났다. 제발 좀 잘 살아보라고 소리치던 음악. 아니. 그래 음악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한 순간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음악을 들었다. 이소라의 8번째 노래. 죽은 그가 부르는 노래. 스위트피의 너의 의미.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내가 너무 '센서티브'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내게 예민하다거나, 민감하다고 말하지 않고 '센서티브'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다시 7시 반 즈음. 한 정거장 먼저 내려 초등학교가 있는 한적한 길을 걷고 있을 즈음. 이소라의 8번째 노래와 스위트피의 너의 의미를 듣고 있을 즈음. 어떤 표현이 떠올랐다. '따뜻한 고독'. 오늘 아침 내가 읽었던 문장 속에 있던 표현. 따뜻한 고독. 따뜻한 고독. 이 단어를 마음 속에 집어 넣고 곱씹었다. 아. 조금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따뜻한 고독.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사람 얼굴을 닮은 개가 지나가고, 그 길에 일방통행의 표지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면서, 나도 따뜻한 고독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눈물이 날 뻔 했다. 따뜻한 고독,이란 말이 너무 따스해서. 고독,이라는 쓸쓸한 단어가 들어가는데 쓸쓸하지가 않아서. 외롭지가 않아서. 그야말로 따뜻하기만 해서.

    그리고 그 문장들을 옮겨본다. 울지 않기 위해서. 

 
   그 문장들을 옮겨는데 키보드에서 들리는 따딱따딱 소리. 내가 틀어놓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 토닥토닥. 토닥토닥. 토닥토닥. 스이카. 섹시보이스앤로보가 생각나는 밤. 벌써 9시 반이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푹 자야지. 행복한 꿈을 꿔야지.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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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는 <나무>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지난 여름 즈음에 이벤트로 받은 책인데, 마음에 드는 책이에요. 일단 표지 전체가 나무 사진이예요. 튼튼해보이는 까만 나무 기둥과 싱싱한 초록잎이 그득한 사진이예요. 표지만 보고 있어도 이 나무들의 기운이 내게 전해지는 듯한 기분, 산림욕하는 듯한 기분이에요.

    어제는 아주 추운 날이었잖아요. 자판기 옆에 서서 화장실 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창 밖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그 책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책 속 어떤 나무 생각이었죠. 여름에 그 나무들을 한참 들여다보다 사진도, 짧은 글귀도 너무나 예뻐 노란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들여다보았던 나무가 있거든요. 그래서 화장실을 다녀온 누군가에게 말했죠. 오늘 집에 가면 그 나무를 찾아봐야겠어요.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요.

    저는 오늘 밤차로 할머니 댁에 내려가요. 게으른 탓에 버스 예매는 당연히 못 했고, 부랴부랴 뒤져보니 그 근처가는 차가 다행히 심야로 있어서 그걸 타고 내려갈 거예요. 아침에 도착할 거고, 그럼 바다가 있는 고향에서 달려온 엄마가 마중을 나와 있을 거예요. 작년 추석 때도 그랬거든요. 만나서 함께 김밥에 장국을 나눠 먹고 할머니댁으로 갔어요. 만일 엄마가 늦게 도착하면 우린 지친 몸을 이끌고 빨리 연 커피가게를 찾아 커피 한 잔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숙모들과 함께 할머니의 땡땡이 바지를 입고 전을 부칠 거예요. 막내 숙모는 꼭 명절 음식 만들 때 냉동실에 살짝 얼려둔 콜라를 마셔줘야해요. 그 맛이 기가 막힌다고 매번 감탄하며 말씀하세요. 올해도 그 맛난 콜라를 마실테죠. 아. 이번 설날에는 밀가루를 빼먹지 않겠어요. 고구마 튀김을 하는데 작년에 밀가루를 버무리는 걸 깜빡한 거예요. 그래서 모양이 예쁘지 않게 되었어요. 할아버지가 드실 건데 말이예요.

    1시간 걸리는 곳에 성묘도 갈 거예요. 올해는 아주 추운 설날이 될테니까 그곳에서 밥을 못 먹을 것 같아요. 늘 한 가득 비빔밥을 싸 가서 할아버지 옆에서 밥을 먹었거든요. 그 곳에서 먹는 밥이 아주 꿀맛인데, 올해는 그러기엔 너무 추울 것 같애요. 눈이 잘 오지 않는 고향에서도 눈이 온다니까. 그리고 부르마블과 루미큐브를 해 주고, 편안하게 누워서 티비를 보면서 연휴를 보내겠죠. 지금 막 연휴 마지막날 오전 차로 예매해뒀으니깐, 10시쯤 할머니댁에서 나올 거고, 할머니는 또 어김없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셔서 고생해라, 그러시겠죠. 난 무뚝뚝한 손녀라 그런 할머니를 안아드리지 못하는데, 저번 추석 때는 둘째 동생이 그런 할머니를 따뜻하게 안아드리는 거예요. 정말 좋았어요. 

    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긴 <나무>라는 책에 있는 물푸레나무 이야기였는데, 또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네요. 그 나무가요 이름이 물푸레 나무예요. 이 책은 나무 사진이 월별로 있는데, 물푸레나무 사진은 3월 사진이예요. 봄이요. 아, 봄. 물푸레나무의 설명은 이래요.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과



   이름의 느낌처럼 푸른 잎이 얼마나 푸르고 싱그러운지 눈이 부실 지경이지만, 정작 이름은 가지를 꺽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난다고 해서 붙여졌다. 봄이 되면 새로 자란 어린 가지 끝에 작은 꽃이 피는데 워낙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갈색의 열매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아. 몇 번을 읽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예요. 사진도 그렇구요. 정말 그래요. 지금은 아주 추운 겨울이지만, 제가 30여 년을 지켜본 결과 시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고, 어제보다 오늘이, 작년보다 올해가 더 빨리 가는 법이니까 곧 봄이 올 거예요. 눈이 오지 않고, 따듯해지고, 꽃이 피는 계절이 올 거예요. 전 그 눈부심을 한 때는 무척 싫어했지만, 이제는 좋으네요. 나이가 들수록 봄도 좋고, 가을도 좋고, 겨울은 더더욱 좋아요. 여름은 아직까지는 좋다고 말하긴 그렇고, 괜찮아지긴 했어요. 그래도 더운 건 너무 싫어요. 아무튼 봄이 오면 이 나무들을 길가에서 산에서 볼 수 있겠죠.

    이 책을 자꾸 들여다보는 이유는 나무의 푸른 잎에 머무는 햇살때문이에요. 사진에 햇살들이 잔뜩 머물러 있거든요. 그 느낌이 좋아요. 따스하고. 위로해주는 느낌이 들어요. 햇살과 나뭇잎이 정말 잘 어울리는 거죠. 봄이 오면, 인간극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남난희씨처럼 산에 올라가 커다란 나무 기둥을 붙잡고 물 흐르는 소릴 들을 거예요. 올해는 꼭 그렇게 해 볼래요. 그 기운을 받을래요. 그러니까요. 이렇게나 말이 길어졌지만, 제 말은 새해 복 많이많이, 아주 듬뿍, 넘치게 받으시라는 거예요. 아주 많이. 맛난 것도 많이 먹구요. 행복한 설날 보내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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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오는 소리

from 모퉁이다방 2008. 12. 31. 22:38

    크리스마스 이브날에는 공연장엘 갔다. 무대의 오른쪽 좌석에 앉아서, 아니 거의 서서 노래를 들었다. 그들은 노래하고, 나는 듣고. 그 날은 공연을 보러 온 김동률도 봤다. 물론 아는 척은 안 했지만. 1시간도 채 안 된 것 같은 2시간동안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새 노래도 듣고, 헌 노래, 아니 예전 노래들도 들었다. 토마스가 바운스, 라고 외치면 그를 따라 무릎을 까딱거렸고, '내가 손을 높이 치켜 올리면'이라고 노래부르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쉬지않고 박수를 치고 고함을 질렀다. 같이 간 친구는 오래간만에 행복하다고 했다. 공연장에 와서야 행복해지는 우리가 조금 서글프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그럴 나이인가 하는 이야기도. 마이앤트메리의 새 앨범이 아주아주 좋아서 매일매일 듣고 다닌다. 그때마다 나는 행복해진다. 여전히 음악 하나로 행복해지는 나이라서 행복하다. 아직도 내가 그런 나이라서 참 좋다. 

   친구들도 만났다. 친구는 아주 좋은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넓고 깨끗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우리는 다같이 입을 모아 이 집에서 살고 싶어,라고 종알거렸다. 새 집에서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와인도 마셨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 옛날 이야기도 하고, 지금의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조금씩 취해가고,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여전한 우리들이 좋았다. 그래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서른 살을 코 앞에 둔 세 명이 케익에 큰 초 두 개를 꽂아두고 우리의 이십대를 위해, 라고 외치며 촛불을 껐다. 그리고 또 한 번. 우리의 서른 살을 위하여, 라고 외치고 또 한번 촛불을 껐다. 우리는 모두 스무 살에 만났다. 나는 스무 살에 장미꽃 백 송이를 선물로 받아봤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남자를 짝사랑 했다. 밤을 새워 술을 마시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줬고, 어떤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별명을 지어줬다.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들렀고, 이제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작은 것에 행복했던 스무 살. 우리는 그 때 만났다. 

   크리스마스 날에는 롯데월드에 갔다. 아니, 롯데월드 볼링장에 갔다. 푸짐한 감자탕도 먹고, 맛있는 술집에 들어가 맥주도 한 잔씩 했다. 노래방에 가선 슬픈 노래만 골라 불렀다. 그리고 26일이 지나고, 27일이 지나고, 28일이 지났다. 29일이 오더니, 30일이 오는가 싶었다. 30일에는 줄리아 하트,를 좋아하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유령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뜨니 31일이었다. 2008년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 그 날이 왔다. 스물 아홉의 마지막 날. 

    나는 스물 아홉 전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 마음이 아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가슴 아픈 멜로디와 가사를 마음 속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른이 될 수 있을까, 늘 걱정했다. 제발, 그 서른이 내게는 오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데 스물 아홉의 나는 '서른 즈름에'를 들으며 조금 실망했다. 오랜 시간동안 내가 생각했던 서른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노랫말 속의 서른도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서글픈 서른이 아니라서, 아픈 서른이 아니라서, 버텨내기에 버거운 서른이 아니라서. 

    나는 내일 서른이 된다. 정확히 두 시간 후다. 그래, 만으로는 스물 아홉이예요, 라는 말을 달고 살 게 분명한 서른이다. 그런데 이건 '서른즈름에'의 서른이 아니다. 여전히 노래 한 소절에 가슴 설레는 서른이다. 아침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단 한 줄 때문에 행복해지는 서른이다.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를 꿈꾸고,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길 꿈꾸는 서른이다. 매일 실수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내뱉지만, 내일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서른이다. 맛난 밥을 먹으면 행복하고, 좋은 영화를 보면 잠을 설치고, 별 것 아닌 칭찬 한 마디에 하루종일 웃고 있는 바보같은 서른이다. 이루지 못한 것, 이루고 싶은 것 투성이지만, 그래서 늘 남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뒤처지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 다시 힘이 내는 서른이다. 그러니까 아직 어린애라는 소리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소리. 난 그런 서른이 썩 마음에 든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맥주를 가득 샀다. 예전에 사다놓은 와인도 있고. 오늘 밤은 집에서 조용히, 따뜻하게 즐길 거다. 눈을 감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스물 아홉이 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밤이다. 스물 아홉은 눈가가 촉촉해져 있겠지. 어떤 이별이든 헤어지는 건 슬픈 법이니까. 스물 아홉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꾸만 뒤돌아볼지도.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살며시 뒤돌아보며 씩- 웃는 표정을 잊지 못할지도. 그 눈가에 그득한 아쉬움도. 그렇게 금세 헤어진 스물 아홉이 그리워, 아쉬워하고 있으면 앞에서 저벅저벅 서른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릴 거다. 아주 예쁜 얼굴로, 아주 시원한 걸음걸이로 내 앞에 쓰윽 다가와 안녕, 1년동안 잘해보자,라고 커다란 손을 턱하니 내밀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눈물을 닦고 그 손을 얼른 내밀어 그 아이와 악수를 해야지. 나야말로 잘 부탁해, 라고 말해야지. 1년동안 힘든 순간이 많을텐데 니가 내 옆에서 힘이 되어줘, 부탁해야지. 내가 이렇게 쓰러질 일 없이 튼튼해보이긴 하지만, 가끔 툭하고 돌부리에 걸려 자주 넘어지니까 그 때마다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달라고, 눈물을 닦아달라고 당부해야지. 넌 참 예쁘다고, 스물 아홉의 아이만큼 예쁘다고. 우린 더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스물 아홉에겐 좀 미안하지만 속삭여야지.

   아. 내게 서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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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from 모퉁이다방 2008. 12. 30. 00:29
     언니. 그저께 언니에게 가는 길에 루시드 폴 음악을 들었어요. 사람이었네. 물이 되는 꿈. 오, 사랑. 삼청동. 들꽃을 보라. 그건 사랑이었지. 사람들은 즐겁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노랫말도 멜로디도 고운 노래들이에요. 언니가 있는 곳이 어찌나 멀던지 나 이 곡들을 세,네번씩은 반복해서 들은 것 같아요. 지하철도 두 번이나 갈아타고 택시까지 탔으니까요. 나는 그냥 빨리 도착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언니가 있는 곳에 가까워지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응. 그랬어요. 그리고 언니에게 도착해서도 어떤 식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지 몰라서 머리가 뒤죽박죽이었어요. 실수하지 않으려고 발 끝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언니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언니가 나를 보고 울어버리니깐 나도 그렇게 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나. 언니가 너무 슬플까봐 밥도 많이 먹구요. 국도 다 긁어먹었어요. 전도 많이 집어먹구요. 응. 나 그랬어요.

    언니. 그런데 그 날 거기서 언니에게 새벽에 받은 문자 이야기를 하는데, 또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나는 그 문자가 내내 걸렸거든요. 그래요. 언니가 문자에 그랬던 것처럼 나 원래 늦게 자는 아인데, 그 날은 왜 그렇게 일찍 잤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언니 문자 받고, 답장을 보내고, 그 문자에 언니가 또 답장을 보내고. 그 밤이 그런 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요. 그 밤이 생각날 때마다요. 미안했어요. 마음에 걸렸구요. 응. 그랬어요. 나. 

    언니. 언니에게 가는 길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을 했어요. 음. 가는 길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함께 얼마나 많은 영화를 보았는지요. 와. 셀 수가 없겠더라구요.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만나면 영화를 봤잖아요. 부천에서 보았던 영화, 중앙시네마에서 함께 봤던 영화. 시네큐브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봐서 줄거리가 헷갈렸던 적도 있었잖아요. 그건 정말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최근에 옥션 공짜 영화 열심히 보러다닌 것까지. 영화제에서는 밥 먹을 시간 없어서 배 움켜잡고 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많이 먹어서 극장에서 꾸벅꾸벅 졸고. 생각해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똑같은 영상을 마음에 두고 있을지. 얼마나 똑같은 공기를 품에 안고 있을지. 얼마나 똑같은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지. 좋았어요. 언니. 언니랑 봤던 영화도, 우리가 먹었던 밥도, 술도, 우리가 나눴던 대화도, 그리고 언니도.

    언니. 돌아오는 길에는요. 그 생각이 나더라구요. 언젠가 아빠가 내게 해 준 말.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실 때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줬던 말. 할아버지가 저렇게 편찮으시니까 아빠는 커다란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 같아서 힘들고 무섭다는 말. 응. 맞아요. 언니.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정말 뿌리 뽑힌 기둥같았어요. 나는 그 야위고 야윈 등을 멀리서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자꾸만 고개를 숙였어요. 언니도. 그랬어요. 언니의 뿌리에 흙이 그득하더라구요. 그게 보였어요. 

    언니. 내가 그랬죠? 여름에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거기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어요. 며칠 전에 거길 처음 가 봤는데요. 너무 추워서 오돌오돌 떨면서 그 나무를 봤어요. 얼마나 큰지 몰라요. 덩치가 커다란 내가 둘이나 있어야 기둥을 감싸안을 정도예요. 아니, 셋일지도 몰라요. 넷은 아닐 거예요. 아니다. 넷일지도 몰라요. 아무튼 아주 큰 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가 어찌나 큰지 그 커다란 마당 넘어서까지 줄기가 뻗쳐있더라구요. 언니, 생각해봐요. 그 커다랗고 시꺼먼 나무의 여름을요. 얼마나 많은 잎들이 솟아날지, 그 그늘은 얼마나 시원하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는 또 얼마나 근사할 지. 거길 가요. 여름이 되면. 카페도 있으니깐 우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도 마셔요. 그리고 오후 내내 그 나무만 바라보는 거예요. 나뭇잎과 기둥과 저 아래 튼튼하게 박혀있을 뿌리까지두요. 질릴 때까지 보고 오는 거예요. 어때요? 그 때 같이 간 친구가 그러는데요. 저렇게 오래된 나무는 사실 99%는 죽은 거래요. 나이테가 100개가 있으면 가운데 하나에만 물이 흐른다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이 참 근사했어요. 1%로 저렇게 튼튼하고 근사하게 살아가는 거잖아요. 99%는 죽어있어도 1%만 살아있다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적어준 글귀처럼 우린, 여름나무처럼 꿋꿋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언니. 나, 또 이렇게 주절주절 말 많아지고 있어요. 언니 만나면 나 항상 이렇잖아요. 쓸데없는 말 늘어놓고. 아. 아. 나 이 말을 안 했다. 사실 이 노랠 전해주고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그 나무를 보러 간 날에요. 이런 노래를 들었어요. 나 사실 이 노래 들으면서 눈 끝이 조금 촉촉해졌어요. 노랠 불러준 사람이 노래 부르기 전에 한 멘트 때문일 거예요. 노랠 불러준 사람이 그랬어요. 베로니카,는 저희 할머니 세례명이에요. 저희 할머니는 저의 롤모델이시거든요. 저는 할머니처럼 살고 싶어요. 이 노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만든 노래예요.

    언니. 오늘 여긴 눈이 왔는데. 언니가 있는 곳에도 왔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곧 만나요. 언니. 눈이 다시 내리기 전에. 오랜만에 같이 영화 봐요. 나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어요. 나와 함께. 그리고 함께 울어요. 보고싶어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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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from 모퉁이다방 2008. 12. 24. 00:43
    그러니까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예요.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말이죠. 그래서 오늘 힘든 일을 겪었고, 컨디션 제로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내일이 온다는 사실 하나로 버텼어요. 잘했죠?

    어제는 눈이 왔어요. 네. 눈이 왔어요. 일기예보를 아침에 나갈 때 꼭꼭 챙겨보는데, 어제는 웬일인지 건너뛴 거예요. 그래서 어제 눈이 더 반가웠어요. 생각하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한 느낌이였거든요. 좋았어요.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어요. 우린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했거든요. 네. 요즘 매일 술이예요. 그래도 조금씩 마시고 있으니깐 괜찮아요. 술이 없음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겠어요? 그렇죠?

    친구가 20분쯤 늦는다고 해서 먼저 술집에 들어가 있으려고 나왔는데, 눈이 스르르 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주 예쁜 눈이였어요. 펄펄 쏟아지다 스르르 녹는 눈이었거든요. 그래서 지하의 술집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20분동안 걸었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요즘은 '브로콜리 너마저' 1집을 듣고 있어요. 나는 이 노래들을 혼자서 듣다가 너무 좋아서, 동생한테도 소개시켜주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소개시켜줬는데. 동생이 갑자기 방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나오는 거예요. 언니, 유자차 너무 좋다! 유자차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제목이예요. 내가 소개해준 누구는 계속 이 노래만 듣고 있대요. 친구는 아침에 문자를 보냈어요. 우는 표시의 이모티콘으로, 정말 좋다고. 아. 그리고 나의 메리메리, 마이앤트메리 새앨범도 듣고 있어요. 좋냐구요?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렇게 친구를 만나 우리가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술집에 갔어요. 거기서 옛날 가요도 듣고, 병맥주도 마셨어요. 즐겁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지만, 그리운 사람에게 문자도 보냈어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전화를 해 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스무살 즈음에 만난 아이예요. 나는 그 아이가 전화해준 게 너무 반가워서, 앉아서 다리만 폴짝폴짝 뛰었죠. 그리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러니까 내일이예요, 만나기로 했어요. 정말 신나요.

    함께 맥주를 마신 친구의 남편은 동생에게 주라고 치즈케잌을 사 줬어요. 그것도 신났죠. 친구는 며칠 전에 큰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니가 먼저 와서 봐야되는데, 라고 말해줬죠. 그것도 신났어요.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만날 거예요. 다 같이. 여럿이. 오랫동안 못 본 사람들을 보는 날이예요. 그것도 친구의 큰 집에서 밤새 파티를 할 거예요. 와인도 마시구요. 맥주도 마실 거예요. 음악도 듣고, 크게 수다도 떨거예요. 크게 웃구요. 어쩌면 살짝 울지도 몰라요. 우린 다같이 늙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걸쭉하게 취하면 노래방도 갈 거예요. 가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를 거예요. 나이 드니깐 노래방 가면 꼭 춤을 추게 되요. 네. 맞아요. 막춤이예요. 춤이라고 할 수 없는. 읔.

    우린 지하의 술집을 나왔어요. 눈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기분이 아주 좋았죠. 친구는 2호선을 타고, 나는 7호선을 타요. 우리는 2호선쪽으로 가서 자판기 커피 한 잔씩 뽑아 마셨어요. 그건 술 마시고, 기분 좋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 중 하나예요. 생각했죠. 매일매일 오늘같았음 좋겠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일 끝나고 내 편을 만나 술 한 잔하는 오늘. 그래서 기분 좋아지는 오늘. 내일 버틸 힘을 주는 오늘.

    친구와 헤어지고 7호선을 타고 가다가 아까 화장실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전화를 해주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 친구도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구요. 잠에 취하고 술에 취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어요. 왜 전화했냐고 하니까, 그냥 생각나서 했대요. 우리는 계절이 바뀌면 한 번씩 통화해야 되는 사이래요. 그러고보니 친구는 가을에 전화해주었어요. 깔깔거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벌써 가을이네요. 지금은 겨울. 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화해주는, 아주 오래 전에 본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그리곤 말했죠. 그럼 또 전화해달라고. 꽃이 피기 전에, 아니 눈이 녹기 전에. 이런건 술에 취했으니깐 말한 거예요. 무척 닭살돋는 표현인데. 그러니깐 친구가 그러겠다고 했죠. 나는 전화를 해주는 게 좋아요. 내가 하는 것 보다. 나를 생각해주는 게 좋아요. 내가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아. 지금 12시 12분. 12땡이예요. 그러니까 이제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24일. 나는 오늘 일하고, 마이앤트메리 콘서트에 가요. 그래서 오늘, 아니 어제 하루종일 새앨범을 들었죠. 마음이 쿵쿵 설레는 거예요. 나는 마이앤트메리 콘서트장에 있는 내가 좋아요. 설레이고, 즐겁고, 살아있는 느낌. 1분 1초씩 늙어가는 게 아니라 1분 1초씩 젊어지는 느낌. 아. 이번엔 그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흐흐흐- 그리고 친구들과의 파티가 있어요. 말했죠? 술 먹고 노래하는. 아.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 이브같았으면. 그걸 기다리고, 즐기는 하루하루였으면. 

    그러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요.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라구요.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이런 말, 며칠 전에 누군가에게 한 적이 있는데요. 내가 자주 가는 사이트인 루나의 웹툰에 보면요. 요즘 루나는 퇴근 후 창틀에 맥주를 한, 두캔 끼워넣고 홀짝홀짝 마시고 잠든대요. 그러니깐 나는 누군가에게(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창틀에 끼워넣고 마시는 맥주 한 캔. 그렇게 시원하고, 소중한 존재. 네네. 그러니까, 아주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엔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말이예요.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잘 보내요. 꼬옥. :D




    아. 루시드 폴의 노래가사와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어요. 신곡 2곡을 담은 CD도 함께 준대요. 제목은 <물고기 마음>. 이소라 앨범에는 노래 제목들이 없다죠? 제목을 직접 적어넣을 수 있게 앨범자켓이 디자인되었다면서요? 거기 토마스 쿡도 참여했던데. 아무튼 이러니까 내가 겨울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풍성하잖아요. 따뜻하고. 물론 외롭기도 하구요. 그래서 좋아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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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일

from 모퉁이다방 2008. 11. 15. 21:22

    11월의 일. 영화 <미인도>를 시사회로 봤다. 그 날, 아직 천오백원짜리 해장국이 서울 한 켠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날, 낙원상가 앞 헌책 리어카에서 김난주가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과 살림출판사에서 96년에 발간된 권여선의 <푸르른 틈새>를 이천원 주고 샀다.
 
    11월의 일. 나는 요즘 영화도 많이 보지 않고, 책도 많이 읽지 않고, 그 전보다 술을 더 마신다. 다행인건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자주 걷지도 않고, 뛰지도 않고, 그 전보다 음악만 많이 듣는다. 자주 우울해진다. 가끔 내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지낸다. 밥을 먹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져, 진한 라테를, 과자를, 파리빠게트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는다. 11월의 날씨가 이랬나, 생각한다. 11월의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겁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싸늘한 예전 11월의 날씨를 닮은 옛노래들을 찾아 따라부른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마지막 부분. 세 번은 읽었다. 이 부분만. 나는 누군가 이 말을 나보다 먼저 해버릴까봐 두려운 것처럼,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나는 권여선이 좋아. 정말 좋아. 나는 권여선이 좋다. 정말 좋다. '사랑을 믿다'를 읽은 그 날밤 나는 생각했다. 따라쟁이인 나는 또 언젠가 기찻간같은 술집에 가게 되면 이 소설을 생각하겠구나. 나물이 기본안주로 나오는 술집에 가면 이 소설을 생각하겠구나. 맥주에 소주를 섞어 소맥을 마시게 되면, '뽀족한 심처럼 독한 소주 맛을 느끼게' 되면 말이다. 그리고 결국엔 어느 순간 기억에 남는 거라곤 한마디도 없는 길고긴 수다 끝에 '그래,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면, 이 소설을 생각하겠구나. 권여선의 소설을 읽으면 어김없이 맛있는 술 안주가 땡기고, 술이 땡긴다. 

   어제는 등갈비에 소주를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아저씨들만 오는, 그래서 주인아줌마가 항상 은근하게 술에 취해있는 동네 맥주집에 갔다. 여긴 안주도 맛있고, 생맥주도 맛있다. 그리고 멀리서 온 친구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홍순관의 '바람부는 날'을 찾아 들으시라. 패티킴의 '이별'을 술에 기분좋게 취한 날, 노래방에서 꼭 부르시라. 임상아의 '나의 옛날 이야기'는 골목길을 걸으며 혼자서 흥얼거리기에 좋다.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했던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의 주제곡 JM의 '사랑은 간다'를 찾아 들었다. 이 드라마, 정말 좋았는데. 이바디의 '그리움'도 좋고. 김광석의 '그날들'은 캬. 015B의 '모르는 게 많았어요'도. 이 모든 건 내 엠피쓰리 플레이어의 폴더명 '가을, 마음이 아픈 계절' 안에 들어있는 노래들이다. 유치하고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가을이 마음이 아픈 계절인 건 분명하니까. 그러고 보니 2008년의 가을도 간다. 나는 오늘 조그마한 새끼상어가 등장하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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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다성 노래. 사랑이 메아리 칠 때


비님이 오신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자장면과 볶음밥을 시켜먹고, 최민호 선수가 나온 무릎팍 도사를 봤다. 작은 방 창문을 열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비님 오시는 소리에 이 노래가 생각났다. 

자연주의 살림법이란 제목의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한 한복 디자이너가 천장의 등에 한지를 찢어 붙이며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고, 남편과 많은 시간 떨어져 지낸다. 이외수 선생을 찾아간 화천에서 그녀가 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자유주의 살림법이라고 하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은 전혀 따라할 수 없는 화려한 살림법이라 생각하며 방 안의 먼지를 손바닥으로 훔치고 있는 중이었다.

아 아 진정 이토록 못 잊을 줄은. 이 가사였던 것 같다. 이 가사가 좋아서 얼른 수첩을 펼쳐서 적어뒀다. 아 아 진정 이토록 못 잊을 줄은. 그리고 그 밤, 인터넷에서 이름이 오래된 산성(山城)과 닮은 옛 가수의  노래, '사랑이 메아리 칠 때'를 찾아내서 그 밤 내내 들었다. 40여 년 전에 보낸 사랑의 메아리가 이제야 내게 도착하는 듯, 마음이 시렸다.

오늘도 비님이 내리는 오후 내내 이 노래를 듣고 있다. 비 내리는 날에도 이사를 한다. 작은방 창문 밖의 풍경이다. 새하얀 장농이며 서랍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3층집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리고, 술 마신다고 못 본 세계테마기행 몽골편 2부와 4부를 찾아 볼 거다. 아마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겠지. 옛날 노래 가사들은 다 시 같다, 정말.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흥얼거리다 한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버린다. 한 순간.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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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해봤다. 나는 B와 A가 반복되는 BABAB 타입.



BABAB
서정중시형 인간의 대표 타입
▷ 성격

무리하게 기세를 부리거나 교활한 타산으로 치닫는 일도 없고, 허영을 부리거나 세상에 대한 체면을 차리는 일도 없습니다. 덕분에 개방적인 인생을 보낼 수 있어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타입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을, 자신에게는 즐거움을'이라는 쌍두마차를 타고 종횡무진 하는 타입으로 서정을 중시하는 인간형의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관리사회의출세경쟁에서는 뒤쳐지고 제3자가 보기에 하찮은 일생으로 끝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타입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런 식으로 흐름에 대해 기를 쓰고 거스르려 하지 않는 점이 이 타입의 매력이며 오로지 이들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타입은 어느 관점에서 보나 교활한 경제전쟁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유업, 특히 문예, 연예, 미술 등의 분야에서 길을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 대인관계 (상대방이 이 타입일 경우 어떻게 하연 좋을까?)

연인, 배우자 - 대표적인 낭만적 인간형인 이 타입과 결혼을 하고자 한다면 상대방에게 절대 많은 부와 권력 등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래처고객 - 교활하게 이윤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은 보통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기 때문입니다.

상사 - 회사의 일과 자신의 취미나 오락을 반반씩 갖추고 있는 타입입니다. 그런 만큼 업무관리는 순탄하겠죠. 너무 상대방을 재촉하지 마십시오.

동료, 부하직원 - 회사에서는 앞으로 이런 사원들이 유유히 헤엄치도록 풀어줄 줄 아는 문화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 요즘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반나절에 한 사람씩 생각한다. 그대들, 잘 지내고 있나요. 아무래도 가을을 탈 것 같다.

- 내가 연애하는 꿈을 대신 꾸어준 언니는 그게 예지몽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나는 내 옆에 키가 나보다 10센치가 더 큰 남자가 서 있는 상상을 했다. 언니는 그 남자가 분명 훈남이었다고 했다. 훈훈한 꿈이다.

- 어젠 친구랑 청계천에 나란히 앉아 큰 카스맥주캔에 빨대를 꽂고 마셨다. 각자 두 캔씩을. 나는 친구에게 사람들이 분명 맥주캔에 빨대를 꽂아두고 마시는 우리를 원숭이들처럼 쳐다볼 거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우릴 신경쓰지 않았다. 거긴 모텔같은 주홍빛 조명 아래서 서로 끈적거리는 연인들 투성이었다. 그런 짓 하려면 모텔에나 가 버려! (요즘 개그야를 열심히 본다) 우리는 을지로 3가역의 맥심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으며 세상에서 제일 맛난 커피라고 칭찬해주고, 래미안 광고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쓰레기라고 욕해줬다. 지금도 청계천 바람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일요일 밤에 친구가 맘마미아를 혼자 보러 왔다고 문자를 보내줬다. 다음날 통화를 했는데, 아주아주 좋다고 말해줬다. 예매권이 있는데 맘마미아 봐야겠다.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도 보고 싶다. 나의 오다기리 죠의 텐텐도. 아오이 유우와 사토시가 나오는 콰이어트 룸에서 만나요도. 가을에는 영화도 많이 봐야지.

- 저런 걸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면 여기서 하면 된다. 짜잔.
http://byule.com/board/?mid=ego_start

- 모두에게 복된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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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다

from 모퉁이다방 2008. 8. 25. 10:53

   올림픽이 끝났다. 나는 이번 올림픽을 그야말로 아주 열심히 챙겨 보았다. (재방송까지) 세상에 이런 룰의 스포츠들이 다 있단 말이야, 희안해하면서. (나는 유도가 바닥에 등을 닿으면 점수를 얻는 경기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역도의 인상과 용상의 차이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육상 계주에서 프로들도 국민학교 때 우리들처럼 바톤을 놓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몸을 따라 움직이는 근육들에 감탄하고. 선수들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쓸어 내리면서 닦을 때는 사람이 저렇게 단시간에 많은 땀을 흘릴 수 있는 동물이었단 말이야, 감탄했다. 누워서 보다가 앉아서 보는 날이 많았다. 그것도 허리를 바짝 세운 꼿꼿한 자세로. 생각 같아서는 러닝머신 위에서 선수들처럼 땀 흘리면서라도 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나는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았구나, 내 몸은 그저 밥만 축 내는 몸뚱이에 불과하지 않았어, 올림픽이 끝나면 열심히 살자, 몸을 많이 움직이자, 뭐든 죽을만큼 힘들게 해보자, 라고 생각했다. 펠프스처럼. 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몰라요. 매일 밥만 먹죠,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그에게 반했다.)

   어제 폐막식까지 다 챙겨보고 나니 정말 올림픽이 끝나버렸다. 이렇게 허망할 때가.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TV에서 오래간만에 해주는 CSI를 보면서 잠이 들었다. 꿈을 꾸긴 꿨는데, 올림픽에 관련된 꿈이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올림픽이 시작할 때쯤 읽었던 현각스님의 뉴스 기사가 생각났다. 외국인 최초로 봉암사 하안거를 마친 뒤, 17일 서울의 무상사에서 가진 법문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큰 환희심이 생긴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떤가.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랬다. 생활로 돌아간 이들은 ‘오히려 우울해졌다’라고 하더라. 왜 그런가. 바깥의 빛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림자일 뿐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빛을 찾아야 한다. 그걸 위해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리고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빰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만행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물어도 물어도 머릿속을 맴도는 건 이제 올림픽이 끝났다, 무슨 낙으로 살지, 뿐. 나는 워낙 수행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어쩔 수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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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이치 2008

from 모퉁이다방 2008. 8. 14. 22:37

 오늘 올해들어 처음으로 포도를 먹었다.
통통한 포도알을 입 안에 넣는 순간 퍼지는 달짝지근한 기운.
우울했는데 덕분에 살았다.
포도 한 알. 그 안에 쨍쨍한 햇살을 가득 머금은 밝은 기운.

그리고 유투브에서 찾아낸 나츠이치의 2008년 광고덕분에.
나츠이치 광고는 매년 어쩜 이렇게 달달할까.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며칠 전 동화책이 보고 싶어 도서관의 3층 어린이열람실에 처음으로 가 보려고 했는데
그 곳은 신발을 벗고, 그 신발을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쪼리 신은 맨발의 시꺼먼 발가락들을 내려다보고는 그냥 4층 종합자료실로 올라갔다.

나는 요즘 누군가의 포도 한 알이 되고 싶다. 올해 처음 먹는 첫 번째 포도알.
당신에게 아리가또, 라는 말도 듣고 싶다.  
그리고 이건 정말 진심인데,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휠씬 더 다정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포도알이 되고 싶은 것과 아리가또라는 말을 듣고 싶은 소망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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