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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연휴
    모퉁이다방 2017. 2. 3. 08:10



















       장유에서 고성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엄마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고성에서 내려 보니 키가 아담하고 선하게 생긴 젊은 캄보디아 남자였다. 이전에 엄마는 이 캄보디아 남자와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숙모가 싸준 가방에서 커다란 사과 하나를 찾아 건넸다. 이거 집에 가서 묵어라. 남자는 괜찮다고 거절을 하다 엄마가 계속 사과를 내밀자 고맙다고 받아서 자기 가방에 넣었다. 터미널을 나가면서 엄마와 남자는 요즘에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느냐 등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사투리 가득한 엄마의 말을 남자는 용케 다 알아듣고 대답을 했다. 엄마는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말했다. 참 성실하고 착하다고. 여기서 일한 돈을 모아 집에 보낸다고. 언젠가 캄보디아 집 사진을 보여줬는데, 참 근사하더라고. 엄마는 내게 없는, 캄보디아 친구가 있다.


       엄마가 일을 하는 동안, 동생들과 아버지와 통영에 갔다. 엄마가 서피랑을 가보라고 추천했는데, 동피랑과 달리 올라가는 도중에도 그렇고 올라가서도 그렇고 풍경이 한적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는 거였다. 엄마는 혼자서 그 길을 올라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아버지가 박경리의 글에 나온 우물이 서피랑 근처에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우물을 글로만 접했는데, 풍경이 예전부터 궁금했다면서 꼭 한번 들르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아녀자들로 복작복작했을 우물은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웠다. 아버지는 그리 넓지 않은 우물가를 천천히 둘러봤다. 서피랑 올라가는 길에 박경리 생가가 있어 골목길을 박경리 글귀들로 꾸며 놓았는데, 아버지는 하나하나 멈춰서서 소리내어서 읽어보았다. 동생은 박경리의 시 '산다는 것'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골목길에서 아버지는 박경리의 지독하게 고독했을 삶과 이를 버티게 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다찌집 화장실에서 법정 스님의 구절을 보았다. (처음 가본 다찌집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토록 푸짐한 한 상이라니.) 거기에 '맑은 가난'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맑은 가난. 맑은 가난. 맑은 가난. 나는 이 표현을 곱씹고 곱씹었다. 나도 그러한 삶과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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