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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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여행을가다 2012. 8. 26. 16:25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울 때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마을에서 탱고 배우기, 지친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영종도 선녀바위 옆 낡은 배들이 놓인 해변을 찾아가기, 삶의 중요한 선택 앞에 섰을 때는 불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 마을에 머물다 오기, 미운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는 새벽이 아침과 닿는 시간에 광안리 해변을 걷기,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힘겨울 때는 낡은 도시 나가사키를 방문해 목적 없이 오래 걷기, 내 안의 아픈 상처를 묻고 싶을 때는 하늘계단에 도착해 버려진 것들의 산을 오르기,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는 아프리카 하얀 사막 아틀란티스 샌듄을 걷기. 여름의 끝.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나는 이런 문장을 읽었다. 어떤 책을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이 문구들이 좋아 따로 프린트해뒀다. 나도 어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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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전주여행여행을가다 2012. 5. 6. 20:32
4월 마지막주 주말에는 전주에 있었다. 토요일의 전주는 무척 더웠고, 일요일의 전주는 흐렸다. 버스를 타고 내려가 세끼의 밥을 먹고, 10병의 맥주를 마시고, 차가운 커피를 한 번, 뜨거운 커피를 한 번 마셨다. 전일슈퍼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서 가게 맥주를 마셨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려 떡갈비를 먹었다. 언니는 가맥집에서 좋은 소식을 알려줬다. 언니가 내내 바라던 일. 우리는 건배를 하며 우리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빌었다. 한옥집 숙소의 이불에서는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아침에 문을 열어놓고 화장을 하는데, 마루에서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경기전의 벤치에 앉아 몇백년은 됐을 것 같은 나무들을 앞에 두고 따듯한 커피를 마셨다. 연두빛이 그득했던 전주의 4월. 함께해줘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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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대게 여행여행을가다 2012. 2. 26. 21:50
봄이 올 거다. 삼월이 올 거다. 봄이 오기 전에, 삼월이 오기 전에, 여자 셋이 경북으로 겨울 대게 여행을 다녀왔다. 후포항이라는 곳에서 머물면서 대게를 먹고, 대게를 보고, 또 대게를 먹고, 또 대게를 먹었다. 2월 17일부터 18일까지의 기억. 저녁의 기억. 아침의 기억. 그리고, 이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 봄이 오기 전에, 셋이서 어딘가 다녀오길 잘했다. 잘한 거 같아. 6시간 가까이 멀미 날 정도로 버스를 갈아타고 후포에 도착해 숙소에 짐 풀자마자 대게를 먹으러 갔다. 대게 한마리에 홍게 세마리에 두 병의 소주를 나눠 마시고, 살을 에이는 바람이 부는 기나긴 방파제를 걸어 등대를 보고 왔다. 너무 추워서 등대까지 달리기 내기를 했다. 꼴찌가 대게라면 끓이기. 숙소에서는 맥주를 마셨다. 신기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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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부산, 가을방학여행을가다 2011. 10. 20. 23:41
Y언니가 이런 귀여운 경비내역서를 보내줬다. 이런저런 일에 치여 부산에 다녀온 기억이 지워져가고 있었는데, 언니가 보내준 내역서 '덕분에' 그 날이 떠올랐다. 가을에 부산에 다녀왔다.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많이 걷고, 그 덕에 피곤했지만 꽉찬 주말을 보내고 올라왔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 가서 케이티엑스 타고 출발해서 다음날도 숙소에서 일찍 일어나 조식을 챙겨먹고 첫상영 영화를 봤다. 입장시간에 늦을까봐 엄청나게 뛰었지. 땀이 뻘뻘 났다. 영화도 못 보고 올라올까봐 자리 있는 거 아무거나 예매했는데 영화도 괜찮았다. 크레딧 올라갈 때 좋았던 배경음악 제목들을 적어뒀는데 아직까지 찾아보질 못했네. 광화문에 있는 통닭집에서였다. Y언니와 나는 카레냄새가 나는 바삭 튀겨진 닭튀김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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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가또, 8월의 홋카이도여행을가다 2011. 9. 3. 20:05
8월 마지막 주말에 나는홋카이도에 있었다. 늘 가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그 곳, 북해도에 다녀왔다. 치토세, 노보리베츠, 하코다테, 도야, 오타루, 삿뽀로. 한 달 전만 해도 그저 일본 북쪽 어느 도시에 불과했을 저곳들이 이제 내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저 지명들을 소리내서 발음해보면 그날의 풍경들이 절로 떠오른다. 깨끗했던 치토세 공항, 노보리베츠 도시 전체에 풍겼던 유황냄새, 도야호수의 바람, 하코다테의 야경, 오타루의 유리종소리, 삿뽀로의 맥주.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의 패키지 여행이었다. 같이 여행다녔던 일행 중에는 역시 북해도인지라 어르신들이 많았다. 부부가 함께 오고, 대학생 딸과 함께 오고, 친척분들끼리 함께 오고, 중학교 동창과 함께 오고. 그 틈에 친구와 나도 있었다. 홋카이도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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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경주여행을가다 2010. 6. 30. 00:57
경주에 다녀왔다. 두 밤을 자고 왔다. 그렇게 원하던 자전거도 탔고, 등이 축축해지도록 걷고 걸었다. 박물관에서는 안내 이어폰을 끼고 유물들을 관람했고,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들어가보니 다 맛집이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 누워 경주에 관한 책을 읽었다. 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 맥주로 반주도 하고, 와인도 마셨다. 햇볕이 따가웠고, 때때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불국사에 갔다. 그곳에서 울어버릴 뻔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설명할 수 없다. 편안했는데, 쓸쓸했다. 외롭기도 했다. 썩 괜찮은 외로움이었다. 어떤 불상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그 불상 옆에 새겨져 있던 글귀. 부처님과 중생은 하나다. 깨달음과 어리석음은 하나다. 깨달음과 어리석음이 하나라는 그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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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구년의 제천, 바람 불어 좋은 밤여행을가다 2009. 8. 17. 23:32
이건 2009년 8월 17일 오전 8시 38분 제천의 하늘. 제천 영화제에 다녀왔다. 어느 날, Y언니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년 전 내가 갔던 제천 이야기가 했다. 지금도 그 해, 그 여름, 제천 밤공기의 느낌이 생생하다. N언니와 나는 청풍호수에서 돌아와 각자 샤워를 하고 심야 영화를 보기 위해서 숙소에서 시내로 걸어갔다. 그 날 하루종일 정말 많이 더웠는데, 그 밤, 바람만은 시원했다. 찬물로 샤워를 갓 하고 나온 우리의 손이며, 발이며, 얼굴을 스쳐주었던 선선한 바람이 좋아서 그 해의 제천을 기억하면 영화보다, 바람이 먼저다. 그게 2006년의 일이다. 오늘 그 해의 연필 기념품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2006이라는 숫자가 씌여져 있었다. (그러니까, N언니 그건 3년 전의 일이예요. 그러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