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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울 때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마을에서 탱고 배우기, 지친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영종도 선녀바위 옆 낡은 배들이 놓인 해변을 찾아가기, 삶의 중요한 선택 앞에 섰을 때는 불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 마을에 머물다 오기, 미운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는 새벽이 아침과 닿는 시간에 광안리 해변을 걷기,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힘겨울 때는 낡은 도시 나가사키를 방문해 목적 없이 오래 걷기, 내 안의 아픈 상처를 묻고 싶을 때는 하늘계단에 도착해 버려진 것들의 산을 오르기,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는 아프리카 하얀 사막 아틀란티스 샌듄을 걷기.
여름의 끝.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나는 이런 문장을 읽었다. 어떤 책을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이 문구들이 좋아 따로 프린트해뒀다. 나도 어딘가 낯선 곳에 가서 오랫동안 걷고 싶었다. 그래서 다녀왔다.
밤기차 타기. 밤기차 안에서 캔맥주 마시고 잠들기. 빗소리 들으며 포장마차에서 조개탕에 소주 마시기. 파라솔 의자에 앉아 바다를 앞에 두고 해뜨길 기다리기. 흐린 새벽하늘을 올려다보기. 동해바다에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 듣기. 코 앞에서 버스 놓치기. 삼십여 분 기다려 만차 버스 타고 서서 30여 분 가기. 서서 자기. 버스 방향을 잘못 타 거꾸로 종점까지 가기.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여 가서 커피 마시기. 11시 마감인 모닝세트를 10시 50분에 주문하기. 멀리 보이는 바다를 앞에 두고 정말 맛있는 커피 마시기. 해변 마을 걷기. 맨발로 해변 걷기. 바다를 앞에 두고 회에 소주 마시기. 싱싱한 회를 기껏 매운탕 국물에 샤브샤브해 맛나게 먹기. 뭉쳐졌다 흩어졌다 하는 늦여름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몸은 고단했지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하기.
밤기차. 밤바다. 늦여름 바다. 이번 여행은 버릴 것에 대해 생각하는 여행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것을 버렸고, 괜찮아졌다. 이렇게 2012년 여름을 보낸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