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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가또, 8월의 홋카이도
    여행을가다 2011. 9. 3. 20:05
     


       8월 마지막 주말에 나는카이도에 있었다. 늘 가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그 곳, 북해도에 다녀왔다. 치토세, 노보리베츠, 하코다테, 도야, 오타루, 삿뽀로. 한 달 전만 해도 그저 일본 북쪽 어느 도시에 불과했을 저곳들이 이제 내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저 지명들을 소리내서 발음해보면 그날의 풍경들이 절로 떠오른다. 깨끗했던 치토세 공항, 노보리베츠 도시 전체에 풍겼던 유황냄새, 도야호수의 바람, 하코다테의 야경, 오타루의 유리종소리, 삿뽀로의 맥주.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의 패키지 여행이었다. 같이 여행다녔던 일행 중에는 역시 북해도인지라 어르신들이 많았다. 부부가 함께 오고, 대학생 딸과 함께 오고, 친척분들끼리 함께 오고, 중학교 동창과 함께 오고. 그 틈에 친구와 나도 있었다. 카이도는 아주 넓은 곳이었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자주 탔고, 한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들어가면 눈 뒤집히는(예뻤으나 너무 비쌌다는 ㅠ) 오타루의 유리공예가게, 오르골가게 길을 1시간 안에 섭렵해야 했으며, 하코다테의 감탄사 절로 나오는 야경과 셀수 없이 많았던 별과 바람과는 만난지 30분 만에 이별해야 했다. 여행의 뒤로 갈수록 현지식이라는 식사는 별로였고, 마지막 일정의 말도 안 되는 면세점 (무려) 30분 방문은 기가 막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우리는 카이도에 있었다. 노보리베츠에 있었고, 하코다테에 있었고, 삿뽀로에 있었다.


    아이누족의 자장가를 들었고,

    유황냄새 가득한 노보리베츠 밤거리를 산책했다.

    아침 바다를 보았으며,

    백조가 많이 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백조대교를 건넜다.

    늪이 있는 길을 걸었고,

    이국적인 모토마치 거리를 걸었다.


    하코다테의 야경은 버스 안이 더 좋았다. 숲길 사이로 조금씩 도시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절로 터져나왔던 탄성들. 이 날 북두칠성도 보았다. 이 날의 바람은 어딘가에 담아오고 싶을 정도였다.

    유람선도 타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홋카이도는 우유가 맛있어서 아이스크림도 맛있고, 치즈도 맛있고.

    오타루에서는 과소비했지. 토토로 냉장고 좌석, 눈사람 핸드폰줄과 오타루 엽서를 샀다.

    오도리 공원에서는 옥수수를 사 먹었다.

    홋카이도는 멜론도 맛있고, 옥수수도 맛있다. 맛있는 거 투성.
    생옥수수맛은 놀라울 지경인데, 생옥수수에서 과일맛이 난다. 달고 시원하다.

     

    편의점에서 쇼핑도 하고,

    삿포로 맥주 공장에서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랑 삿포로 생맥주 한 잔씩 마셨다. 캬-

       우리의 목표 중 하나가 매일 다른 일본 맥주를 각각 세 캔씩 마셔보자는 거였는데, 실패했다. 왜냐면 삿포로 클래식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클래식을 이틀 연속 마셨다. 마지막 날은 전날 거하게 마신 탓에 두 캔씩만. 삿포로 클래식 맥주는 홋카이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북해도에서만 판다고. 그래서 그런지 더 맛있었다. 진하고 깊은 맛이다. 이거 6캔 사온다고 트렁크 정말 무거웠다. ㅠ 그래도 대만족!


       첫날 밤을 생각한다. 이 날이 가장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치토세 공항에 내려 시라오이에서 아이누족의 공연을 보고, 노보리베츠로 이동해 지옥계곡을 둘러봤다. 노보리베츠에는 어디에서나 유황냄새가 났다. 썩은 달걀 냄새. 이상하게 그 냄새가 좋았다. 창문을 열면 숙소 방 안까지 스며들던 그 냄새. 저녁을 먹고 옷 갈아입고 잠시 쉬다가 맥주 사러 나갔다. 마침 노보리베츠 지옥축제 기간이었다. 도시 곳곳에 홍등이 걸려 있었다. 축제 마스코트인 듯한 도깨비 그림은 귀여웠고, 도시는 조용했다. 이 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숙소를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면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모퉁이를 도니 버스 안에서 보았던 상가거리가 나타났다. 유카타를 입고 나온 사람들이 밤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길을 걷다 세븐일레븐에서 맥주와 안주와 커피를 샀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쑥스러운 인사를 건네고 나오자 또 다시 이어지는 유황냄새. 숙소로 돌아와 온천을 하고(무려 노천온천이었다고) 유카타로 갈아입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티비를 켜두고 맥주를 마셨다. 적당하게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도톰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누운 그 첫 날 밤, 다다미방이 계속 생각난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 8월의 홋카이도, 아리가또. 노보리베츠의 공기, 아리가또. 하코다테의 바람, 아리가또. 오타루에서 토토로 냉장고 좌석에 'GoldSoul'이라고 새겨넣어주었던 아저씨도 아리가또. 매일 밤을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던 맥주들, 아리가또. 사일내내 쾌청했던 날씨도 아리가또. 정말정말 맛있었던 우유, 아이스크림, 멜론, 옥수수도 아리가또. 무엇보다 내 친구, 니 덕분에 좋은 여행할 수 있었어. 언제나 함께 해줘서 아리가또 아리가또.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니 노곤해졌다. 창가자리였다. 몽글몽글한 구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착륙시간이 가까워지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올 때와 갈 때 모두 루시드폴의 국경의 밤 앨범을 들었는데, 노래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제 이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싶어졌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다시 한번 오자 생각했다. 집에 가면 사야될 책이 생각났다. 지금 그 책을 읽고 있다. 책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 이야기 뿐인데 나는 왠지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것만 같다. 이전에 읽었던 책인데, 별로여서 선물로 주었던 책인데, 이상하게 카이도에 다녀오니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책이 좋아졌다. 그녀와 함께 다시 카이도를 여행하고 있다. 카이도의 나무와 바람과 별이 떠오르는 책. 다음 책은 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집. 겨울의 카이도, 벌써부터 기대된다. :)


    2011.8.26-29 in 北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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