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김영하 작가님 <퀴즈쇼> 하드코어 낭독회에 다녀왔어요. 이번 낭독회에도 깔끔하게 녹음을 해서 정직하게 정리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성능이 좋은 동생의 엠피쓰리를 가져갔습니다. 이번에 샀는데 녹음이 제 것보다 잘 되더라구요. 그런데 왠걸. 동생한테 작동법을 배울 때부터 아리송했던 게 문제였어요. 룰루랄라 녹음버튼을 누르고 편안하게 낭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끝나고 확인해보니 낭독회 시작하기 전 친구와 저의 잡담 소리만 1분여동안 웅웅거리며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허탈하고 아쉬웠는지 몰라요.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역시 김영하 작가님은 예상대로 달변가라. 그리하여 녹음에 실패하고 저의 안 좋은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더 달아나기 전에 잠이 몰려오는데도 불구하고 끄적거립니다.

   장소는 동국대 중앙도서관이였구요. 신청할 때 동국대와 한양대가 있어서 고민했었는데 멀어도 동국대를 선택한 게 결국엔 더 좋았어요. 오늘은 특별손님이 있었거든요. 이적씨요. 김영하 작가님과 절친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양대에서 낭독회하고 만나서 술 한잔 하다가 자기 써 먹을 때 있음 불러달라고 하셨다고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오늘 함께 하셨어요. 사회자라고 할까요, 낭독을 하는 틈틈이 담소를 나누면서 낭독회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셨지요.

   하드코어 낭독회냐면요. 배경음악도 없는 상태에서 1시간 내내 책의 여러 부분 낭독을 하는 거라서 그렇게 붙였다고 하시더라구요. 중간중간 내용에 대한 설명과 짧막한 담소의 시간들이 있었지만요. 배경음악 없이 낭독을 하고 다들 책 속 글자들을 따라가고 있으니까 꼭 고등학교 국어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저는 책을 아직 못 읽었는데요. 그래서 친구가 페이지를 찾아서 집어줬어요.

낭독한 부분들은요.

p.82- . . . 민수와 지원이 채팅방에서 귓속말하면서 호감을 느끼는 부분.
   이 낭독이 끝나고 작가님의 예전 하이텔 통신 시절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채팅방의 귓속말이 얼마나 짜릿하고 위험한지를 말씀해주셨어요. 당시 동호회 사람들과 여러 명이 함께 채팅을 하고 있었는데, 조용한 두 명이 있었대요. 물론 남자와 여자. 그런데 갑자기 여자분이 '니가 나랑 한번 잤다고 그런 말할 자격은 없어'라고 귓속말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 한 문장의 실수로 채팅방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는. 맞아, 라고 대꾸도 할 수도 없는 그런 침묵의 시간이였다고요. 아무튼 이 이야기 정말 웃겼어요. 저도 통신, 채팅방, 귓속말 다 경험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그 때 생각이 났었어요.

p.109- . . . 민수가 편의점에서 잘리는 부분.
   이 부분 낭독하시는데 많이 웃었던 거 같애요. 민수의 태도 말투와 태도 때문에요. 특히 잘한다, 파수꾼! 부분. 나중에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자신은 소설을 쓰면서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20대때에는 거친(?) 성격이셨다고. 술 마신 다음 날 보면 백미러가 머리맡에 있고 그랬대요. 전날 술에 취해 그런 데 화풀이를 하시고, 다음날은 백미러로 얼굴 보고 막 그러셨다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성격도 온순해지고 사람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셨대요. 소설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니깐 그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해하면서 써 나가다 보니까 <퀴즈쇼>의 편의점주도 이해가 되고. 뭐 그런.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으면 순해지니깐 조심하라고요.  

p.168- . . . 민수와 지원이 홍대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걷는 부분.
   이적씨가 나중에 민수가 늦게 이메일을 받게 된건 아무래도 지원이 민수에게 채팅방에서 만난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서 어떠냐는 질문에 아주 잠시 머뭇거린 것 때문인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니까 작가님도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남자 분들에게 절대 이런 식의 질문은 머뭇거리는 시간이 잠시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셨어요. 지금의 니가 더 좋다고 당장, 냉큼 말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흐- 그리고 이런 질문은 지원이 참다참다못해 꺼내게 된 건데 만나자마자 먼저 말해주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결국 사랑이란 뜨거워졌다가 식어가기 마련인데 그걸 얼마나 천천히, 덜 식게 만드느냐인 거 같다고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죠. :)
  
p.210- . . . 지원과 민수가 코엑스에서 만나는 부분.
   <퀴즈쇼>에 두 여자가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연애 초기의 모습이 지원이고, 나중이 빛나로 생각하면 될거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연애 초기에는 다들 너는 잘 될거야, 틀림없어, 라고 붕 뜨게 만드는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지만 결국에는 빛나처럼 변하는 거라구요. 책을 못 읽어서 빛나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왠지 대충은 알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적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빛나랑 민수랑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였다고요. 막 궁금해져요. 어떤 장면인지 빨리 읽고 싶어지구요.

p.436- . . . 소설의 제일 마지막 부분.
   이 부분은 일부러 책을 덮고 듣기만 했어요. 그리고 한 문장만 또렷하게 들렸죠. 잘 될거야, 잘 될거야.


    뭐랄까. 제가 읽은 작가님의 책들은 대부분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구석들이 있어서 작가님도 그런 느낌으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예상 외로 부드럽고(독자들 질문 하나하나에 굉장히 길고 상세하게 대답해주셨어요), 섬세하고(친구는 마이크를 잡은 손이 너무나 섬세했다고 했죠), 달콤했어요(카카오 56% 초콜릿을 계속 드시더라구요). 그리고 정말 많이 위안이 되었어요. 질의 응답 시간에 작가님의 20대 시절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였어요. 자신의 20대도 마찬가지로 복잡했다고. 돈도 없어서 읽고 싶은 책을 못 살 때도 있었고, 김영하매혈기라고 피를 팔아서 책과 맥주를 사 먹었던 때도 있었고, ROTC를 그만두겠다고,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안정적인 삶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던 그 때의 막무가내의 결심이 자신을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2-3년동안 돈도 없고 해서 친구들 만나기도 피하고 집에만 있었다고, 그렇게 소설을 써 나갔다고, 습작 시절에 쓴 어떤 단편소설을 친구에게 정말 기막힌 소설을 썼다며 전화로 40여분동안 읽어준 적도 있었다고, 20대에는 성공하기가 힘들고,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고, 꿈만은 높고 넓은 때인 것 같다구요. 여전히 20대의 실수투성인 제게 이 한마디 한마디는 꼭 끌어안고 싶어졌죠.

    소설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지금의 20대들에게 친척 어른들은 명절 때면 너 뭐가 될거냐, 하면 20대들은 모르겠는데요, 되고 싶은 거 없어요, 그러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모르겠고, 되고 싶은 게 없는 거 같지 않다고요. 지금의 어른들이 생각하는 한심한 20대는 결코 아닌 거 같다고요. 20대들이 가상공간인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현실의 모습과는 반대로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냐고요. 그런 걸 말하고 싶어서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구조를 쓰셨다구요. 오늘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어디선가 작가님이 <퀴즈쇼>를 통해서 20대, 너희 지금 잘 해나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읽었어요. 이 말, 정말 힘나지 않나요? 지금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언젠가 가상공간의 당당하고 치열한 나처럼 현실에서도 그렇게 될 거라구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제 기억력은 여기까지예요. ㅠ 생각보다 질의 응답 시간이 짧았어요. 30여분 정도. 마지막에 앞으로의 계획은 12월은 이렇게 낭독회 행사를 다니느라 바쁠거라고, 그러고나면 또 1년동안 열심히 다음 장편을 쓰실 거라고 하셨어요. 곧 <여행자 도쿄편>도 나온대요. 아, 이적씨도 새 소설이 나온대요. 완전 기대되요. <지문 사냥꾼>도 재밌게 읽었거든요. 그러고나면 이런 작가 아직 잊지 않으셨죠, 라면서 내년 12월에 또 이렇게 독자들과 만날 거라구요. 문학을 한지 12년짼데 이런 순간들이 참 좋으시대요. 아,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이렇게 생기셨구나, 하시면서 이런저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요.

   순전히 제 기억에 의존한거라 틀린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양해하고 읽어주세요. ㅠ 사진은 못 찍고 사인만 받아왔어요. 히히- 그럼 저는 내일부터 <퀴즈쇼>에 빠져볼랍니다. 지금 비 와요. 그래서 지금 제 앞 창가를 타닥타닥 때리는데, 이 소리 너무 좋으네요. 그럼 모두들 굿 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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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38호 - 2007.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창비(창작과비평사)


   신경숙 작가님의 새 장편 연재가 시작됐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갔다가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는 단숨에 첫번째 이야기를 다 읽었습니다. '이건 어머니가 아닌 엄마에 관한 이야기'라는 작가님의 들어가는 글을 읽은 그때부터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눈물 한방울이 눈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결국엔 또르르 굴러 떨어집니다. 어쩔 수 없어요. 엄마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집 떠나서 서울서 생활하면서부터 엄마나 아빠 이야기에 관한 글을 읽으면 어김없이 눈물 한 방울쯤은 꼭 흘리기 되요. 늘 그립고,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 투성이예요.

   연재소설은 일부러 읽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예요. 감칠맛이 나서요. 언제든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는 단행본이 좋아요. 이제 첫번째 이야기를 읽었는데, 이 추위가 다 가셔야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아휴.

   이 소설에서 신경숙 작가님은 주인공을 '너'라고 표현해요. 너의 엄마, 너의 오빠. 하지만 작가님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여기서 설정되어 있는 '너'가 작가님 자신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요. 십년 전 소설에 관한 이야기나, 약사 여동생 이야기, 그리고 직업도 글을 쓰는 사람이구요. 읽다보면 작가님 자신이 확실한데 자꾸 '너'라고 해요. 너의 아버지, 너의 그 남자. 독자들은 우매하게도 소설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거라 생각하며 읽어나가는데 그게 아니라고 한 <열세번째 이야기>의 윈터 여사 이야기처럼요. 저는 이 엄마에 관해 쓴 이야기를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읽었지만 어쩌면 그건 그냥 작가님 고도의 설정일 뿐일지도 모르겠어요. 나처럼 보이는 너. 그래도 좋아요. 저는 어리석은 독자라서 작가의 이야기라고,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는 게 소설 속에 푹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게 더 좋거든요.

   어머니가 아닌 엄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린지 일주일째 된 너. 글을 읽지 못하는 엄마를 가진 너. 아무도 모르게 뇌졸증을 앓았던 엄마를 둔 너. 자식들 챙겨먹이고 공부시키는 게 제일 큰 행복이라 생각했던 엄마를 둔 너. 이제는 두통때문에 무도 문어도 제대로 칼질하지 못하는 엄마를 가진 너. 그런 너의 엄마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아, 저는 정말 신경숙 작가님이 좋아요. 그녀가 있어서, 그녀의 글을 읽고 울 수 있는 감수성이 제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스무살 때 서로의 등만 바라보는 삼각관계의 이름도 외자여서 예뻤던 <깊은 슬픔>에 빠져서 며칠을 헤어나오지 못했어요. 이제는 그 소설을 다시 읽으면 사랑 이야기에 그렇게 가슴이 아릴 것 같지 않아요. 그 시절의 저는 그랬어요. 이제는 지금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엄마에 며칠을 헤어나오지 못하겠어요. <리진>에서도 콜랭과의 사랑을 그리 담백하게 끝내고, 어미라 여겼던 명성황후의 죽음에 더 가슴저리게 만들었던 지금의 작가님이 좋아요.

   이거 또 작가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되어버렸잖아요. 헤헤. 이번 <엄마를 부탁해> 장편 연재 열혈 팬으로 기다리고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글 계속 전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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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온전한 김연수를 읽은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단편 한 두 편을 읽었고, 동생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청춘의 문장들은 동생이 읽지 않을 때 틈틈이 훔쳐봤는데 다 읽기도 전에 반납되었구요. 그러니까 온전한 김연수 작가님의 장편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연수 작가님의 책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쉽지는 않은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저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글은 아니였어요. 한 문장을 읽고 조금 쉬고, 한 문단을 끝내고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는 시간들이 많았어요. 우선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뭔가 저를 포근하게 보듬어주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첫 장의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라는 시도 좋았어요. 직접 번역하셨다는데 왠지 시어 하나하나에 작가님의 체취가 묻어있는 듯 했죠.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테니. 그리고 소설의 처음을 읽어내려갈 때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감성, 이 구절, 정말 좋구나, 라고 생각하며 지하철 안에서 혼자 비밀스럽게 행복해하기도 했습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별들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한 사람의 인간은 이를테면 하나의 별이예요. 반짝반짝 빛내며 나의 절망을, 나의 외로움을 표시하는 거죠. 그럼 그걸 본 또 다른 별은 그 빛을 온전히 받고선 이제 자신의 절망과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때로는 외로움의 빛은 넓고 깊은 우주 속에서 다른 별에게 도착하지 못한 채 사그라들기도 하고 무언가에 반사되어서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외로움을 마주하게 될 때 별은 깊고 어두운 우주 속에서 서럽게 엉엉 울거나 다시 더 크게 자신의 외로움을 반짝거리는 수밖에 없어요. 언젠가 내 절망이 너에게 도착하기를. 나의 외로움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소설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설레임, 사랑, 광주의 피, 투쟁과 무력함, 그 속의 치열함, 비틀비틀 1991년을 걷고 있는 불완전한 청춘들. 작가님 스스로 말한 라운지 소설처럼 끝도 없이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다보면 마지막에 끊임없이 빛을 반짝거리는 외로운, 절망의 별들이 모여있는 우주의 세계로 도달하게 되요. 그 넓고 깊은 우주를 한 눈에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이 얼마나 외로운지, 또한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알 수 있어요. 결국 우리들은 외로움으로 연결되어 있구요. 그래서 별들은 빛나는 거구요. 이런 생각들을 라운지 생각처럼 끊임없이 하게 되었던 소설이였어요. 한번 더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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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지음/문학동네


    지난 낭독회에 갔을 때 <혀> 표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낭독회에 참석했던 어떤 분이 표지가 참 마음에 듣다고 하셨어요. 연주빛이며 보라빛들도 마음에 들고 그림도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제목과 달리 익살스런 그림이라면서요. 그러자 조경란 작가님께서 아, 그렇게 느끼셨나요, 저는 이 눈을 보고 너무 슬퍼보였는데, 라고 나즈막하게 말씀을 하셨어요.

    저도 이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요즘 읽을 때 불편한 띠지가 많은데 이 책은 띠지인 것 같은데 하나의 표지가 접힌 거예요. 그래서 접혀있는 표지종이를 쫙 펼치면 예상외의 그림이 펼쳐져요. 꼭 껴안고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뜨거운 스튜 냄비 안에서 펄펄 뜨겁게 달구워지고 있고 슬픈 눈을 한 요리사는 마지막 향신료를 넣는 거예요. 코는 이 요리의 냄새를 잔뜩 들이 마시고 있는 듯 살아있구요. 이 책은 마지막 결말에 반전이라면 반전이랄 수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데 이 접혀져 있는 표지 속의 그림이 힌트가 될 수도 있어요.

    작가님의 말씀대로 <혀>는 벼랑 끝까지 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혀>는 사랑이 끝난 남자와 여전히 그 사랑이 진행 중인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정원은 그것을 요리로써 극복하려고 해요.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열었던 쿠킹 클래스를 접고 예전에 일했던 레스토랑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요리를 만들어요. 이 이야기는 이별을 한 차가운 겨울 1월에서 시작해서 그를 위해 마지막 요리를 준비하는 더운 여름 7월에 끝나요.

    1월에 그녀는 남자에게 버려지고, 2월에 그녀는 더이상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는 순간들을 견뎌요. 3월에 그녀는 남자와 남자의 새 여자를 위해서 요리를 하고, 4월에 그녀는 그래도 좋은 순간들이 있었을 거라고 다독여요. 5월에 그녀는 아끼던 개의 죽음과 마주하고, 6월에 그녀는 사랑으로 가득 찬 남자의 새 여자의 부엌을 마주해요. 7월에 그녀는 남자에게 마지막 요리를 해 줘요. 영원히 잊지 못할.

    책 구석구석에는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요리들이 많아요. 먹어보지 못했지만 왠지 맛이 그려지는 그런 고급스런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들이요. 푸아그라, 캐비어, 우설 요리 등등. 그것들은 조경란의 손 끝에서 그저 씹어서 식도로 넘겨지는 음식이 아니라, 혀 끝에서 시간을 두고 음미해가면서 먹어 넘어야 할, 재료들 저마다 한 가지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사과가 사각거리면서 말을 건네고 거위의 간은 고통스럽게 노려보고 바질은 뚝뚝 눈물을 떨어뜨려요. 그리고 그것들이 작가의 손 끝에서 어우려져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아프고 슬프고 아린 요리 한 접시를 만들어내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혀 끝으로 음미해가며 맛있게 먹어 치우구요.

   이 책에서 사랑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달은 정원과 삼촌이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사랑하는 행위를 마주한 여자와 사랑하는 사람이 대롱대롱 줄에 의지해 세상을 등진 모습을 마주한 남자요. 어쩐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사랑이란 거요. 한 때는 보잘 것 없지만, 한 때는 우리에게 전부인 그거요. 왠지 혀 요리만큼 징글징글해져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극한의 행복과 극한의 슬픔을 동시에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다고 깨달은 어느 순간처럼요. 극한의 행복도 극한의 슬픔도 시간을 따라가다보면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이 지나고 보면 분명한데 왠지 그 순간만큼은 그걸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찔해져요.

   빠르게 읽히고, 마지막에 무척이나 놀랬고, 입과 머리가 무척이나 즐거웠던 소설이였어요. 읽으면서 내내 작가님이 차려주신 요리들로 배불렀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냉장고를 열어서 지금 있는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시작했어요. 냉동실에서 다진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꺼내고 마늘을 다지고 청량고추도 하나 잘게 썰었어요. 양파 하나도 가늘게 다진 후에 가스 불을 크게 올리고 냄비 위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그것들을 달달 볶아요. 물에 카레가루를 풀고 그 물을 잘 볶은 재료위에 부어요. 찌찌찍. 맛있는 소리가 나요. 그리고 가끔씩 저어주면서 완성된 카레를 공기에 꾹꾹 눌러담은 밥을 접시 위에 공기모양 그대로 놓고 그 위에 잔뜩 뿌려요. 그리고 쓱쓱 비벼서 잘게 썬 깻잎과 함께 우걱우걱 씹어서 넘겼어요. 이번 요리는 소설 <혀>를 위한 요리니까 먹는 내내 소설의 이야기를 생각해요. 결국 벼랑 끝에 떨어진 정원과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가 겨우 올라와 한 발 내딛는 삼촌을요. 나는 정원이 잘 살아나가주기를 바랬는데. 최고의 요리들을 만들어내면서 행복하게 그 시간들을 극복해주길 바랬는데. 왠지 그렇게 되어버린 정원이가 가엽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가득했던 접시가 깨끗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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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3 - [서재를쌓다] - 조경란 작가님의 <혀> 낭독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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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월요일에 홍대 이리카페에서 조경란 작가님의 신작 <혀>의 낭독회가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이벤트에 초대해주셔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조경란 작가님은 지난 백일장 강연회에 이어서 두번째 뵙는 거였는데요. 확실히 이번에 다시 한번 뵙고 더 좋아져버렸어요. 첫인상은 왠지 새초롬하고 무언가 한 겹 쌓여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번 낭독회에서 그런 편견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어요. 그녀는 어떤 독자의 한 질문이 자꾸만 마음에 쓰여 결국 다른 질문들 뒤에 한 마디를 더 붙이는 자상하고 배려심 깊으며 굉장히 솔직하기까지한 사람이였어요. 그리고 낭독회를 마치고 이런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며 작가님의 한자한자 정성들여 쓴 사인을 받아들고 지하철을 타서 신작 <혀>를 펼쳐서 몇 장을 읽고는 그녀가 더 좋아져버렸습니다. 낭독회에서부터 침이 고였는데, 소설을 읽고 있으니 배가 고프고 침이 자꾸만 맛나게 고여서 혼났어요.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들구요. 빨리 읽어버릴 것 같아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이번 낭독회에는 또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 배해선씨가 함께 참여하셨어요. 낭독회를 편안하게 이끄시고 소설 속 한 꼭지를 낭독해주셨어요. 노래도 두 곡 불러주셨구요. 두 번 가본 주제에 완전히 빠져버린 이리카페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목소리와 좋은 이야기와 함께 한 정말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감사했어요. 녹음을 해 왔어요. 다시 가만히 낭독이며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좋으네요. 함께 하지 못한 분들과 저를 위해서 정리해 봤어요.  


지금부터는 모두 조경란 작가님의 말씀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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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라는 소설은 1월부터 7월까지의 이야기예요. 정지원이 하는 가장 마지막 요리가 육류요리인데, 육류요리를 하기 가장 어려운 달이 바로 여름의 절정인 7월이거든요. 그래서 7월의 정지원이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그리고 3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제가 여러분께 처음 두 파트를 읽어드릴께요.



첫 번째, 조경란 작가님의 낭독
첫번째는 7년동안 같이 동거를 하던 정지원과 한석주가 헤어지는 장면이예요. 한석주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서 같이 살던 집으로 짐을 찾으러 옵니다. 그때 정지원이 짐을 챙겨서 떠나는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p.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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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조경란 작가님의 낭독
두번째 파트는 사랑이 떠나간 후에 슬픔과 동요와 그리고 모든 회한의 감정이 지나간 후에 맞게된 분노의 감정. 정지원이 분노를 느꼈을 때의 심리를 그린 장면을 읽어드리겠습니다. (p.24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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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뮤지컬 배우 배해선님의 낭독
   해선씨가 읽어주실 부분은요 챕터 14번입니다. 그 부분은 한석주와 정지원이 헤어지고 한석주가 이세연한테 갔는데요. 이세연은 정지원이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 노베에 오랜 단골손님이였어요. 어느 날 그들이 손님으로 와서 정지원에게 요리를 주문하는, 정지원으로서는 정말로 하기 싫은 불행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거죠. 바로 그 부분. 레스토랑의 오너이자 정지원에게 요리를 가르쳐줬던 총주방장이 정지원한테 요리를 하라고 설득하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p.10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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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조경란 작가님의 낭독
제가 마지막으로 읽어드릴 부분은요. 정지원이 7월의 뜨거운 폭염 속에서 한때 모든 것이였던 한석주를 위해서 마지막 성찬을 준비해서 그와 함께 그에게 그 요리를 먹여주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읽어볼께요. (p.30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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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경란 작가님과 나눈 카페의 독자들과 나눈 질문과 답변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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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혀>에 대해서 작가님이 카페에 계셨던 독자분들에게 직접 물어보셨어요. 제목이 어떠냐고.

   제가 이 소설을 쓴 사람으로써는 막상 책을 내기 전까지는 제목때문에 정말 갈등을 많이 했어요. 혀가 가장 중심적인 이미지니까 제목에는 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앞에 형용사를 붙이자는 의견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친밀한 혀, 뜨거운 혀, 차가운 혀, 뭐 이런 형용사를 붙일까 하다가 그냥 혀로 했거든요. 그런데 단행본으로 이렇게 나오고 보니까 그냥 '혀'로 밀고 가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 음식에 관련된 내용이나 제목들의 소설들을 쓰시는 동기를 알고 싶어요.

   저의 첫번째 장편소설이 <식빵 굽는 시간>이잖아요. 그 소설을 12년 전에 썼죠. 그 소설을 쓰기 전에 사실은 요리 소설을 먼저 쓰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1996년도였는데요. 동아일본에 신춘문예 단편소설이 당선이 되고. 당선이 됐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불러주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백수와 마찬가지예요. 백수로 지내고 있다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고 있다가 뭘 좀 해보자,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소설이 쓰고 싶어지고 쓰고 싶은 것이 생길거야,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요리 학원을 다니려고 했어요. 요리보다 빵 먼저 배울까. 빵은 더 빨리 배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제빵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해서 쓰게 됐던 소설이 <식빵 굽는 시간>이였죠. 그러니까 처음부터 빵에 대한 소설, 요리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작정을 한 것은 아니였어요. 언제나 저는 먹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마 태어난 순간부터 그랬을 거예요. 사실 작가라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제가 잘할 수 있고, 관심이 있고, 호기심을 느끼는 어떤 대상에 관해서만 목소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2년 전에 쓰고 싶었던 음식에 대한 소설을 여태 가슴 속에 갖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어느날 불쑥 많은 이야기들이 제 안에서 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가장 간절한 것이 먼저 튀어나오거든요. 올해에는 12년전에 쓰고 싶었던 이 요리에 관한 소설, 그 소설을 써야겠다는 간절함이 다른 이야기들을 모두 눌러버린거죠. 처음부터 요리에 관한 소설을 쓰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제 무의식을 가만히 들어다보면 작가가 되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첫번째 소설은 내가 가장 관심이 있는 먹는 것에 관한 소설이 될 것이다. 여러분들 먹는 게 관심 없으세요? 저도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은 제가 12년전부터 꿈꿔오던 소설이였습니다.


- 사람들은 소설을 왜 읽는 걸까요?

   저는 위로받고 싶어서 소설을 읽습니다. 여러분들 소설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많이 읽으실 거예요. 저는 사실 소설 쓰는 일말고는 다른 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요 책을 좀 많이 읽는 사람에 속하는 편입니다. 작가가 되어서도, 아마 앞으로도 끊임없이 책을 읽을텐데요. 저는 그래요. 책이란 건 아무데서나 펼쳐도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책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제가 하고 많이 하는 소리라서 다 아실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왜 학번이 늦어졌냐면 스무 살에서 스물 다섯살까지 집에서 책만 읽었거든요. 그때는 한가지 믿음이 있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랐고,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찾질 못해서요 그 길은 책 속에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년동안 책을 읽었는데.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 권의 좋은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적인 문체는 어떤 작가에게 영향을 받으신건가요?

   제가 지금 여기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 한시간동안 이야기를 할 거 같구요. 제가 소설이 안 써지면 하는 특별한 두가지 것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시집을 50-60권쯤 쌓아놓고 한꺼번에 읽는 것이구요. 두번째는.. 음.. 두번째는 잊어버렸네. (웃음) 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할께요. 저는 시 쓰는 분들이 소설을 많이 봐야하고 소설 쓰는 분들이 시를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는 저는 아직도 저의 정수라고 믿는 사람이예요. 문장이 잘 안 되거나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야 할 때 시집을 읽는 다는 것은 저에게 소설쓰기를 가르치는 가장 빠른 교과서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사실 좋은 단편 소설을 습작하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습작은 하지 않고 좋은 시집을 며칠내도록 읽는 것. 그래서 시에 온 몸을 담그는 것. 저는 그 상태에서 소설을 시작하면 시적인 감수성과 소설의 서사, 이 두가지를 동시에 안고 소설을 시작할 수 있어요. 그게 저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시를 많이 읽으세요.


- 소설을 읽으면 사랑이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지금 끝나신건지?

   지금 시작을 할까말까 갈등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저 너무 솔직하죠? (웃음) 솔직하게 안 생겼잖아요. 솔직하거든요. 농담이구요. 사실은 돌아보니까 소설을 가장 열심히 쓸 때가 가장 열심히 사랑하고 있었을 때였던 거 같아요. 머리속이 텅 빈채 사랑하고 사랑할 때 막 뜨거워지잖아요. 뜨거운 상태에서 소설 쓰고, 그러다가 사랑이 끝나면 한 2-3년동안 물 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그런 상태가 계속 되고. 사실 이 <혀>라는 소설을 처음 생각하게 된 건 12년전이지만 써야겠다라고 생각한건 그 후 4년 후예요. 4년 후에 인생의 첫번째 사랑이 끝났거든요. 이 소설 속의 정원이라는 인물은 여러분들 그렇지 않나요? 끝까지 가보지 못한 사랑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아프죠. 사랑을 벼랑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랑을 벼랑 끝까지 몰아친 여자는 어떤 심리 상태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주인공 정원이를 넣게 된 것입니다. 사랑을 하지 않으려고 하나 뜻대로 되지 않고 영원히 사랑하려고 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과 같죠. 사랑이라는 게. 그래서 그런 사랑을 벼랑 끝까지 한번 몰아부쳤습니다. 예전의 저로 돌아가서요. 그래서 제가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저의 한 청춘시절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그러면 혹시 사랑 이야기가 저의 자전이예요, 궁금해하실 분들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에 대한 대답은 이렇게 드리면 될 것 같아요. 여러분들 좋아하시는 화가 르느와르 있죠? 르느와르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자연에 흰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흰 눈이 떨어지더라도 그것은 파란 하늘에 붙어있던 것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흰 눈을 그릴 때에도 요만큼의 파란색이 끝에는 묻어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의 모든 소설 속에는 제가 이만큼씩은 매달려 있습니다.


-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여러분들 <혀> 이전에 나온 책이 사실은 2004년 12월에 나왔던 <국자이야기>입니다. 아까 해선씨가 제 약력을 읽어주실 때 저도 아니 내가 언제 저 많은 책을 썼지, 했는데. 사실은 1996년 등단한 이후 해마다 책을 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2004년 12월 이후에 책을 3년동안 내지 못했어요. <혀>는 6년만에 나오는 저의 장편소설이지만 단행본으로도 3년만에 나온 책입니다. 3년동안 정말 깊은 슬럼프였어요. 그래서 사실 트렁크를 끌고 여기저기 이국의 도시를 떠돌기도 했구요. 술도 많이 마셨고 울기도 많이 했고 멀쩡한 척 보이려고 멀쩡하지 않은 짓도 가끔 하기도 했고 그랬습니다. 슬럼프였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지금 슬럼프구나,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든 상태였을 거예요. 왜 흔히 하는 말로 슬럼프는 바닥까지 내려가면 차고 올라올 수 있다고 하죠. 차고 올라오는 데까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실은 차고 올라가야 한다는 노력이 없으면 그건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우리한테 이 팔이 있다는 건 넘어졌을 때 짚고 일어나라는 뜻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래,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책상을 떠난 작가는 작가가 아니지.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책상이야. 그래서 돌아가서 지난 5월, 6월, 7월, 8월 중순까지 쓴 책이 바로 이 <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저 지금 굉장히 이 시간이 뜻깊고 소중합니다.


- 소설 속 레스토랑 '노베'의 모델이 된 곳이 있는지. 그리고 취재하는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네. 노베의 모델이 되었던 음식점 두 군데 있구요. 사실 저에게 큰 도움을 주셨던 쉐프들은 세 분이 있습니다. 정원이가 마지막에 준비하는 요리가 육류요리죠. 그 중에서도 우설, 소의 혓바닥이라고 말하는 게 좋겠죠? 스포일러는 되고 싶지 않거든요. 이 소설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셨던 요리사분께서 제가 먹을 수 있는 4가지 종류의 소 혓바닥을 이용한 요리들을 해 주셨어요. 요리의 과정도 보았고 처음 소의 혓바닥을 가져온 순간부터 그것을 만지고 삶고 하는 과정을 주방에서 그 주방장들과 저와 함께 했어요. 제가 사실 먹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못 먹는 음식들이 더러 있거든요. 소 혓바닥 요리 4가지를 다 먹어봤어요. 스테이크, 삶은 거, 향신료를 이용해서 소스를 이용한 두 가지 음식. 다 먹어봤는데 토하려고 했어요. 너무 동물적인 냄새, 정말로 입 안을 후려치는 듯한 육감적인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맛을 느끼지 못하면 도무지 묘사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막 토할 것 같구 꾹 참으니까 눈에서 눈은 시뻘개지고 눈물은 쏟아질 것 같고.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다른 테이블들은 우아하게 커플들이 밥 먹고 있는데 저 혼자 소 혓바닥 요리를 앞에 놓고 눈물을 참아가면서 먹어봤던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였어요. 그 소 혓바닥 요리를 먹느라고 혼자서 와인 한 병을 다 마셔버렸어요.


-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음식 소개해주세요.

   너무나 많지만. 여러분 저는 하루에 두끼 먹어요. 여러분 하루에 세끼 드세요? 저는 두끼 먹는데 여러분들 세끼 먹는 양만큼 두끼를 먹어요. 최근에 인터뷰가 끝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그 식당 사장님이 저를 처음 보는 분이셨어요. 그러다 저를 보시더니 와, 정말 보기보다 많이 드시는군요, 하고 놀라시는 거예요. 왜 두끼를 먹냐면 늦게 일어나니까 아침 겸 점심으로 한번 먹고 저녁으로 한번 먹는데 두번밖에 못 먹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두 번 먹을 걸 남들 세 번 먹을만큼 먹죠. 양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와 가지나물과 참기름과 마늘 깨소금만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서 무치는 시금치와 가지나물, 그리고 두부 이런건데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밥상이요. 그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밥상입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그것을 못 먹는 상황이 올 때가 있어요. 외국에 나가 있을 때나 아니면 다른 곳에 있을 때. 그 때 제가 날마다 먹는 음식 두 가지가 있죠. 빵과 맥주. 저는 맥주를 날마다 마셔요. 맥주만큼 맛있는 물이 없어요.


- 무슨 질문인지 너무 멀고 내용도 길어서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질문을 일단 다 이해하질 못하겠구요. 극복을 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글쎄 여기 많은 분들이 모인 자리니까 제가 한 말씀만 드리면 소설을 한번 집요하게 써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본인이 가진 문제를 조금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혀>를 읽을 독자에게 어떻게 느끼면서 읽어주실 바라는지.

   <혀>는 제가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청춘 소설이예요. 그리고 청춘이라고 하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죠. 저는 여러분들께서 이 책을 사가지고 돌아가시면서 정지원이라는 한 여자, 청춘을 막 통과한 한 여자가, 사랑이 있다는 걸 믿었던 한 여자가 사랑과 청춘을 통과하는 한 시절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께서 정지원이 되어서 읽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분들은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라고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작가로써 제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은 사실 소박해요. 제가 소설을 위로받고 싶어서 읽는다는 건, 위로를 받는다는 건 우리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거고 여기에 있던 마음이 이만큼 움직인다는 뜻이거든요. 여러분들께서도 이 소설을 읽으시면서 그래 이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사랑이 있지. 아, 이 소설 정말 여러가지 음식이 나오는데 입에 군침이 막 돌고 어떤 음식을 먹을까, 이 음식을 누구와 같이 먹을까, 하는 생각을 소설 맨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여기에서 요만큼만 움직여줘도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


- 전업작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오셨는데 장단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사실 한국에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많이 있지는 않아요. (웃음) 어려운 일도 있고 타협해야 되는 일도 있지만 내가 정말 어떤 소설을 원하는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가, 하는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한 권 써서 횡재를 하거나 여러분들이 짐작할 수 없는 많은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장단점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 그리고 단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다는 거죠. 사실은 학생을 가르칠 기회도 있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소설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백수 소설가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면?

   그 질문을 약간 바꿔볼께요. 만약에 다음 생에 태어나면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될지. 작가 안 될거예요. 이렇게 골치아픈 일을 어떻게 또 하고 싶겠어요. 전 정말 부러운 직업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예요. 다음 생에 태어나면요. 그런데 저는 솔로가수는 싫구요. 소설, 사실 혼자 쓰는 일이거든요. 너무 고독하고 외로울 때도 많고 믿고 의지하고 언제나 기댈 수 있고 배신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다음 생에 태어나면 저는 밴드를 조직할 거예요. 그래서 밴드 구성원은 남성, 여성 비율이 일정했으면 좋겠고 그리고 물론 리더는 제가 하죠. 노래는 제가 부를 겁니다. 그것이 다음 생에 태어나면 하고 싶은 일이예요. 여러분들 그때 또 만나요.


   아까 질문하셨을 때 아오리 이야기 하셨는데요. 마지막 인사 드릴께요. 저를 임신하고 계셨을 때 어머니께서 가장 많이 드셨던 게 시퍼런 아오리였어요. 제가 사과를 좀 닮았나요? 농담이예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는 사과하면 이상하게 행복한 느낌이 듭니다. 어머니가 드셨던 건 파란색, 이런 연두빛 나는 아오리였는데요. 여러분들 이 책 들고 돌아 가셔서 그거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과를 가로로 한번 잘라보세요. 그 안에요 별모양의 씨앗이 들어있답니다. 확인해보세요.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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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제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를 읽은 건 순전히 곡예사님 때문이예요. '울지도 몰라요' 요 한 문장때문이였죠. 요절복통으로 웃기다가 마지막에 더욱 쓸쓸해진다는 강추 멘트때문이였어요. 그리고 정말 곡예사님 말처럼 읽는 내내 히죽거리다가 마지막에 정말로 쓸쓸해져버렸어요. 울지는 않았지만요.

   예전에 하루종일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극장에서요. 시네큐브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특집으로 하루종일 좋은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던 날이 있었는데 상영작 모두 보고 싶어서 다 예매를 해 버렸어요. 다행히 쉬는 틈이 길어서 중간중간에 나와서 커피도 마실 수 있었고 밥도 먹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하루종일 조그맣고 어두운 극장에서 앉아서 이웃집 토토로며 원령공주며 인랑이며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다섯여 편의 영화를 줄줄이 이어서 봤죠. 밥 먹고 들어와서는 초반부에 나도 모르게 졸기도 하면서요. 돌아오는 길에는 하루종일 좋은 영화를 줄줄이 봤다는데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지만 조금 지나서 생각해보니 영화의 내용들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줄거리는 이건데 제목이 이거였나? 이 영화는 분명히 봤는데, 내용이 뭐였지? 지금은 절대 그렇게 영화 안 보려고 해요. 내용도 뒤죽박죽이 되고, 영화마다 느껴지는 감흥이 제각각인데 그것들이 제 속에서 마구잡이로 뒤섞여버리는 거예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음미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거죠.

    <나는 훌리아...>를 읽으면서 그 때의 뒤죽박죽된 감흥의 영화감상 시간이 떠올랐어요. 소설은 18살 소년이 32살의 친척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주인공인 마리오의 방송국에서 일하는 인기 라디오 작가 페드로 카마초의 단막극 이야기가 한 챕터씩 번갈아가면서 나와요. 일본 소설도 그렇고 남미 소설도 왜 이렇게 등장인물 이름이 헷갈리는지 모르겠어요. 가끔 우리 소설도 그러는 거 보면 이름 외우기에는 제가 젬병인가봐요. 등장인물 이름 외우기도 힘든데 페드로 카마초의 단막극에는 매번 한 챕터씩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니까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리오 이야기와 단막극 이야기가 한 챕터씩 번갈아가면서 이어지니까 또 헷갈리고. 소설은 재밌는데 자꾸만 뒤죽박죽이 되어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까지 시간이 조금 오래걸렸어요.

    그런데 실제로 소설의 내용도 뒤죽박죽이 되어가요. 마리오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까지 골인하는데 척척인 반면 페드로 카마초의 단막극은 등장인물들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요. 실제로 그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타자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일만 하고 있었거든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다보니 전편의 경찰의 이름이 이번에는 도둑으로 등장하고, 전편의 죽은 이름이 이번에는 당당히 살아있는 식이예요. 이로 인해서 책에서는 페드로는 당장 방송국에서 잘릴 지경이고 작가 자신도 미칠 지경인데 그걸 읽고 있는 저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처음에 읽었던 단막극의 재밌었던 캐릭터가 갑자기 등장해서는 전혀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고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고. 이렇게 저렇게 헷갈리기는 한데 너무 낄낄 웃음이 마구 새어나와요.

    그리고 마지막이요. 그로부터 꽤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챕터요. 이 챕터의 첫 단락을 읽는 순간, 곡예사님 말처럼 정말 쓸쓸해져요. 맥주 한잔쯤 하다가 이 챕터로 넘어갔으면 정말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혹시나 읽으실 분이 읽으실까 스포일러로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좀 찡해요.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부터 그렇잖아요. 마리오의 나이처럼 '성장'한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지만요. 페드로나 훌리아의 나이처럼 '늙어'간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조금 쓸쓸한 일인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실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남미 문학 작품이 그런건지 인물들이 굉장히 열정적이고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닥팔닥 뛰어요. 이 글을 쓰면서 그 두권의 책에서 만난 마리오며 훌리아며 페드로며 그의 친구들이며 단막극 등장인물들이며를 하나하나 떠올려보는데 갑자기 안부가 궁금해지네요. 다들 무사한지. 이 책은 곡예사님의 댓글 보고 바로 읽으려고 했는데, 1권이 품절이예요. 괜찮은 책인데 더이상 찍지를 않나봐요. 저도 멀리 부탁해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거든요. 그게 조금 아쉬워요. 소장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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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비채


    제목이 뜻하는 바는 이래요.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우는 주인공이 있어요. 마가렛 리. 마가렛은 책방을 도우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미 죽은 인물들의 전기를 써요. 어느날 비다 윈터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부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는 편지를 받아요. 마가렛은 살아있는 작가의 전기를 써보지도, 쓰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비다 윈터라는 작가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이 작가의 사생활에 관련해서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어 거절을 하기로 마음을 먹어요. 그런 마가렛이 그녀의 전기를 쓰기로 한 건 순전히 쌍둥이 이야기 때문이예요. 마가렛에게는 허리즈음에서 잃어버린 쌍둥이 자매가 있었거든요.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가렛에게는 영원히 존재하는. 흐릿한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창가로 나타나는 나랑 꼭 닮은 사람. 비다 윈터는 그렇게 마가렛의 흥미를 끌었고, 이제부터 비타 윈터의 이야기가 시작되요. 쌍둥이를 지독하게 사랑한 사람. 버림 받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이야기요. '열 세번째 이야기'는 비타 윈터가 어떤 책에 싣지 않은 이야기예요. 끊임없이 책으로 읽는 이들에게 이야기해왔지만 정작 이야기하지 않은 열 세번째 이야기. 이 책의 정식 제목은 <변형과 절망의 이야기>였지만 처음에 <열세번째 이야기>로 출간되었고 이내 모두 회수되었어요. 그 중 회수되지 않은 한 권의 책을 마가렛의 아버지가 구입했었구요. 실제 그 책에는 열두번째 이야기까지만 들어있고 열세번째 이야기는 없었어요. 모두가 열세번째 이야기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열세번째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들어있어요.
 
    모두들 진실을 원한다고 하지만 과연 정말로 진실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진실은 어쩌면 생각보다 시시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 베일에 쌓여져 있는 진실은 정말 그럴 듯해 보이죠. 어떤 로맨틱한 추측도 가능하고, 어떤 추악한 상상도 가능하잖아요. 정작 진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나면 사람들은 진실이 그렇게 시시할 수는 없다고 실망할 지도 몰라요. 진실은 별 게 없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꽤 멋지잖아요. 근사하고.

   이 책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예요. 작가 소개에 보면 다이안 세퍼필드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많은 책을 탐독해왔다고 해요. 그런 작가의 느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어요. 책의 이야기에 빠져 지냈던 어린 시절의 느낌, 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책 속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환상을 사랑하는 느낌이요. 그런데 이건 또 저의 상상일 지도 몰라요. 진실은 알 수 없잖아요. 책 속에서 작가는 이런 구절로 경고를 해요.

(p.70)

   그리고 500페이지가 넘는 이 긴 책을 시작하는 시점에 작가는 이렇게 말해요. 이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많은 매체들을 보기에 앞서 우리들이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며, 특히 이 책을 볼 때 꼭 지켜달라는 부탁같은 것인거 같은 구절이예요. 

   (p.77)

    책은 두껍지만 술술 넘어가요. 그리고 반전이 있어요. 그러니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도, 질문을 해서도, 마지막 장을 훔쳐보아서도 안돼요. 얼마나 남았는지 분량을 체크할 수 있는 끝이 보이는 이야기니까 한자 한자 천천히 읽어나가면 되요. 이 책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것이 이야기를 위한 진실인지, 진실을 위한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어쩌면 굉장히 시시하고 뻔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건 이것인 거 같애요. 이야기를 즐겨라. 이야기를 읽는 순간을 즐겨라. 진실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뭐가 진실인지 거짓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지 본인이 아닌 다음에야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진실보다 그 겉에 묻어 있는 희망을 주는, 달달한 거짓말일지도 모르니까요. 중요한 건 그녀의 열세번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열세번째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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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에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번 참여하고 싶었는데, 올해 큰 마음을 먹고 신청을 하고 백일장에 참여를 했어요. 백일장은 어릴 때의 추억이 전부인데,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 백일장을 한다고 원고지를 받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제법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면서 몇시간을 글을 쓴다고 앉아있으니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예전 생각도 나고, 늘 자판에 익숙해져 있어 펜으로, 더군다가 원고지에는 영 못 쓰겠고. 시제가 있었는데, 바가지, 쉼, 소문, 눈썹이였어요. 이렇게 시제에 맞춰서 산문을 쓰는 것도 오랜만이구요. 아무튼 오래간만에 추억어린 경험이었어요. 참가하신 분들 연령층도 다양했어요. 제 또래의 젊은 분들도 많으시고, 또 저희 엄마 또래의 아줌마들도 많으시고, 특히 백발의 정정하신 할머니께서 마로니에 볕이 드는 공원 한 구석에서 원고지에 또박또박 글을 써내려가시는 모습을 봤는데요. 보기만 해도 정말 좋더라구요. 아, 그 분은 상까지 타셨어요. 수상하실 때 박수소리가 장난이 아니였죠. 나이가 들어도, 아이때문에 시달려도 문학소녀의 꿈은 쉽게 수그러드는 건 아닌가봐요. 제 곁에 계셨던 어느 아주머니는 1년을 기다려왔다면서 옆에 떠드는 아이한테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깜짝 놀랐어요.
   수상하면 상금도 있고, 상장도 있고. 이런저런 욕심에 참여했었는데, 그냥 기념품 받고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돌아왔어요. 이 땅에 여전히 문학을 꿈꾸는 감수성을 지닌 우리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행복해하면서요. 글을 쓰고 심사를 하는 동안 조경란 작가님의 강연회가 있었어요. 목소리 톤이며 이야기들이 소설 문체처럼 또박또박하고 부드러우시더라구요. 그리고 문학에 대한 강연이 마치 하나의 글처럼 서론, 본론, 결론이 정확했어요.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대학교 때 문학수업을 받는 느낌이였어요. 나름 정리해봤는데요. 1시간이 넘는 긴 강연이라서 받아 적기가 힘들었어요. 헥.
    아, 그리고 끝나고 잠깐 관계자분이 문장 사이트 소개를 해주시고 질문을 받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때 순식간에 장기자랑 무대가 펼쳐진거예요. 어떤 예쁜 모자를 쓰신 아주머니는 나오셔서 그 긴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줄줄 한번도 끊기지 않고 끝까지 낭송을 하시구요. 어떤 분은 문학을 전공했지만 어린시절부터 희망했던 음악을 시작했다며 노래를 들려주시고, 소설을 공부하고 계시다는 어떤 아주머니는 앞에 나오셔서 예전부터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이런 장기자랑 시간이 이어져오고 있었다면서 다함께 할 수 있는 '고향의 봄' 율동을 가르쳐 주셨어요. 아, 정말 대단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돌아와서 수상작들을 읽어보는데 마음이 찡해오더라구요. 진솔하고 연륜이 있는 투명한 이야기들이었어요. 아, 나는 멀었구나, 했지요.

    조경란 작가님의 강연회 내용이예요. 소설을 쓰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유익한 강의인 것 같아요. 문학이 죽었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여전히 설레이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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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일들 같은 것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여기 지금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오는데 문득 저 백일장 나갔던 생각이 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너무너무 문예반에 들고 싶었는데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문예반을 성적순으로 잘랐어요. 그래서 저는 문예반에 들어갈 수 없었거든요. 그게 17살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제 인생의 좌절이였습니다. 그랬는데 어떻게 국어 선생님께서 보시고 백일장이 있으면 문예반 학생들 대신 저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그래서 그 때 시를 막 써서 상 같은 것도 받아오고 그랬던 생각이 납니다. 아마 그런 뜻밖의 즐거움이 아니였더라면 학창시절을 잘 견뎌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뜻밖의 일들 같은 것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여기 앉아 계시는 분들 중에서 혹시 시인이 되기 위해서 시를 쓰고 계신 분들 한번 손들어 보시겠어요? 그러면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소설 열심히 쓰고 계시는 분들 한번 손 들어 보시겠어요? 아, 그럼 다른 분들은 무엇.. (웃음) 그냥 문학이 좋아서 문학 가까이 있는 삶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네. 저도 그런 심정으로 26살때 대학에 들어갔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언젠가 작가가 되는 거 같아요. 지금 굳이 작가가 되겠단 생각을 않더라도.


이 시대 문학이라는 게 동공 뒤처럼 막막한 것일까

  오늘 제가 짧게 이야기할 것은 무엇이 어떤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가, 하는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칠판이 없네요. 여러분들 우리가 오늘 문학의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백일장을 치뤘는데요. 여러분들 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좋아요. 이를테면 제가 칠판이 있었으면 '문학이란?' 해놓고 여러분들 그거 아시죠? 'Love Is' 사랑이란 뭐뭐뭐뭐, 왜 그런 거 한번 해 본적 있었잖아요. 그래서 문학이란? 이란 주제를 던져놓고 여러분들께 문학이란 뭐라고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제가 아는 선배가 한 평론간데 '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데요. 요즘 학생들은요, 저도 강의를 해서 아는데 사실 그렇게 문학적으로 보이는 선생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전공법을 쓰는 선생도 싫어하구요. 그래서 어떻게하면 학생들로 하여금 흥미로운 수업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 다음에 여러분 혹시 지금은 그 코너 없어진 거 같은데 개그 프로그램 중에 우격다짐이라는 코너 생각나세요? 이를테면 내 개그는 태양이야. 눈 뜨고 볼 수가 없지. 내 개그는 소매치기야. 튀지. 뭐 이렇게 했던 우격다짐이라는 코너가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문학이란?'이라는 주제를 던져봤대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문학에 대한 우격다짐인거죠. 그랬더니 학생들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래요. '문학이란?'하고 칠판에 썼더니 한 두명씩 손을 들고 문학이란, 등불이야. 어두운 밤을 밝혀주지. 또 문학은 14K야. 아무도 금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그런데 그 다음 학생의 말에 이 평론가 선배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그 학생이 뭐라고 했냐면 문학은 동공 뒤야. 막막하지. 여러분들 왜 웃으세요? 예, 저도 웃었어요. 그런데 막막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언젠가 그 선배가 일하고 있는 한 편지의 편집자의 말로 쓴 적이 있고, 제가 너무나 막막해서 그 선배한테 새벽에 문학이 정말 동공 뒤일까, 이 시대 문학이라는 게 동공 뒤처럼 막막한 것일까, 하고 엽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문학이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요. 문학이란 아까 어떤 분이 삶이다, 또 문학이란 종교다, 또 문학이란 산모의 진통과도 같다, 그 진통을 아시는 거죠? 또 문학이란 삶을 들여다보는 것. 예, 좋습니다. 또 문학이란 내면의 소통이다. 또 문학이란 탈출구다. 저한테도 그렇죠. 또 문학이란 친구다, 문학이란 두레박이다. 문학이란 우주를 읽는 거다. 문학이란 거울. 또 문학이란 비밀수첩이다, 일기장이다. 문학이란 희망이다. 여러분들 모두 작가가 되고 싶어하시는 군요? (웃음) 문학이란 또 저마다의 대답이 있을 거예요. 문학이란 언어도 되어 있다. 문학이란 허구다. 문학이란 쓸모가 있다. 문학이란 쓸모가 없다. 문학이란 구제불능이다. 문학이란 첫사랑과도 같다. 문학이란 헤어날 수 없다. 문학이란 마약이다, 헤어날 수 없죠.

 
제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아주 단순해요. 노력하면 된다.

  제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아주 단순해요. 노력하면 된다. 마치 꿈이 이루어지는 것처럼요. 자, 그럼 문학이 왜 노력하면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 한번 말씀을 들여볼께요. 제가 며칠 전에 사진작가 (제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첫번째, 제 1세대라고 꼽히죠. 제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제 새 책이 이번 달 말에 나와요. 그래서 프로필 사진을 찍느라고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고등학교 때 하고 싶었던 것은 문학이지만 상상만으로도 문학을 하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그리고 저한테는 너무나 과분한 것이고 그래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때만 해도 문학이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내가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포기를 했었어요. 그 다음에 무엇을 했냐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그림도 배워보고 사진도 좀 찍어보고 그랬었어요. 학원같은 데도 좀 다니구요.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문학 이외에, 문학은 접어두고 사진을 찍는 일이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젊은 작가들은 사진도 잘 찍고 글도 잘 쓰죠. 사진이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다큐멘터리 1세대 선생님을 저로써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분을 뵈었어요. 그래서 제가 여쭤봤어요. 사진을 다 찍고. 선생님, 제가 취미로라도 사진을 좀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선생님께서 조작가 지금 가방에 요즘 젊은 사람들 디지털 카메라 많이 갖고 다니는데 디지털 카메라가 있습니까? 그러시더라구요.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도 여러분들 갖고 계신 분들은 알겠지만 처음에 샀을 때만 열심히 갖고 다니면서 찍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밀쳐두게 되잖아요. 저도 한 3-4년 전까지만 해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열심히 사진 찍고 어떤 좋은 것, 이미지가 될 만한 것만 보기만 해도 아, 저거 사진 찍어야지, 저것을 컷에 담으면 어떻게 나올까, 그런 생각을 했다가 최근에는 아예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마치 아픈 데를 콕 찌르듯이 가방 속에 디지털 카메라가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요, 선생님, 그랬죠. 그랬더니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물어보시더라구요. 알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죠. 사진을 찍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뭐죠, 라고 물어보는데 뭐겠어요, 카메라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면서도 카메라가 가방에 들어있지 않은거예요. 꼭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제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진작가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미션을 내려주셨어요. 지금부터 돌아가서 한달동안 사진일기를 쓰라는 거예요. 하루하루 사진을 찍은 다음에 그 사진을 왜 찍었는지, 그 사진을 찍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를 길지는 않지만 짧은 문장으로 쓰라는 거죠. 그러니까 A4 종이가 있으면 사진을 한 장 붙이고 요즘은 사진을 쉽게 집에서 프린트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요기 짧게 일기를 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딱 듣는 순간, 아 내가 진작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만약에 이렇게 트레이닝을 계속 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됐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왜 숙제라는 게 혼자하면 재미없고 내기라는 것도 혼자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사진 작가 선생님께서 그러시는 거예요. 내가 당신 마음을 다 읽었지 하듯 씩- 웃으시면서 만약에 그 숙제가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흡족할 만큼 했다면 내가 카메라를 한 대 사주지,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숙제를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딱히 그 카메라 때문은 아니지만, 그래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 무언가에 대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사진 잘 찍고 싶다, 사진 배우고 싶다면서 단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선생님을 만난 이후에 사진일기를 날마다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새삼 문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초심이라는 거 있죠, 그때의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오늘 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타인과의 약속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잖아요. 내가 사진일기를 쓰기로 약속을 했지,라고 생각하니까 그 약속을 잘 지켜내고 싶고 잘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비록 좋은 사진은 아니지만 날마다 그 숙제를 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카메라가 늘 가방 안에 있겠죠. 제가 이렇게 길을 걷거나 카페 안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늘 가방 속에 카메라가 저한테 말을 거는 느낌이예요. 카메라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서 가만히 들어보면 찍을만한 것들이 틀림없이 있어요. 그러니까 제 머릿 속에는 언제나 내 가방 안에서는 카메라가 들어있구나, 라는 것이 인식이 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 날이 지금 일주일, 한 열흘 쯤 가까이 되고 있습니다.


단 한권의 좋은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늘 특강을 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인데요. 제가 지금은 나이가 좀 들었지만, 제가 보기보다 나이가 좀 많거든요. 제가 대학을 26살때 들어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시험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또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그랬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이 단 한번의 생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았더라면 어떤 원하는 일을 찾아서 취직을 할 수 있었고, 공부를 재수라든가를 해서 대학을 갈 수도 있었지만 그게 뭔지 몰랐어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대학을 갈 수도 없었고 취직을 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그 때 제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진 채 거의 책방을 다니는 시간을 빼놓고 20살에서 25살까지 집에만 있었어요. 그리고 했던 일은 책읽기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단 한권의 좋은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책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죠. 그렇게 책을 읽는데 사실 뭐 5년동안 책을 읽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여러분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의 큰 딸, 장녀가 아무도 안 만나고 말도 안 하고 밥도 잘 안 먹고 밤을 꼴딱꼴딱 새면서 얼굴은 새까매가지고 책만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못 받아들이겠죠? 아마 옆에 있던 가족들이 힘들었을거예요. 그런 시간이 5년쯤 지난 후에 깨달았죠. 시인이나 작가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그건 아직도 엄두도 안 나는 일이였고, 문학 가까이 있는 삶을 한번 살아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26살이 되던 해에 제가 수능 1세대예요, 수학능력시험을 치고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을 했죠. 그리고 여러분들처럼 열심히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런 저런 이야기 사실 많이 하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 이야기는 좀 해야 될 거 같아서 잠깐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러분들에게 독서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책 읽을 때 어떻게 읽으세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으시죠? 책 많이 읽으시죠? (웃음) 네, 책 많이 읽어야해요. 중요한 건 아무책이나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좋은 책을 많이 읽으셔야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독서를 할 때는 사고를 하고 집중을 해서 읽어야 합니다. 생각을 하는 것은 배우는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 무엇을 배워서 얻기 위해서는 감각이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기에는 관찰력도 필요하고 기억력도 필요하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은 상상력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 틈에서 바로 발견하는 능력이 생기는 거죠. 여러분들 가르침을 받는 것과 발견하는 것은 다릅니다. 발견하는 능력은 적극적인 독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어요. 읽는 것은 배우는 거죠. 독서를 하는 것은 바로 그 발견을 하기 위해섭니다. 그냥 활자들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예요. 그 발견은 나의 눈이 되고, 나만의 눈이 되고 나의 길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읽는 것, 가르침을 받는 것과 발견을 하는 것은 매우 다른 길이라는 생각을 여러분들이 염두에 두시고 독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 <독서의 방법>이라는 책에 모두 다 나와있습니다. 좋은 책이니까 나중에 한번 읽어보시길 바래요.


세계적인 작가 폴 오스터를 만든 것은 연필 한 자루였죠. 

   여러분들 어떤 작가들 좋아하세요? 한번 말씀해 보시겠어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시인이나 소설가들. 예, 한강씨요. 좋은 작가죠. 전경린 선배요? 경숙 선배요. 손택수 시인. 네, 책 잘 쓰죠? 오늘 신문 보니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받더라구요. 아주 잘 됐다고 이 시간이 끝나면 문자 메세지 한 통 보내야 될 거 같습니다. 또 누구요? 네, 나희덕 선배도 좋은 시인이죠. 또 네, 은희경 선배요. 또 어떤 분들 좋아하세요? 안도현 선배요. 네. 국내에 좋은 작가들 많죠? 제가 여러 차례 해외에 나가서 낭독회도 해보고 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우리나라 작가들이 시를 잘 쓰고 단편소설을 아주 잘 쓴다는 생각을 합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늘 그런 자부심을 갖고 돌아와요. 외국 작가들 작품은 혹시 안 읽으시나요? 카프카. 폴 발레리요?  가와카미 히로미요? 뱀을 밟다? 네, 좋은 작가예요. 저도 그녀의 책이 나오면 다 읽습니다. 또? 여러분들 혹시 폴 오스터라는 작가 아시나요? 폴 오스터 미국 작간데 어머 제가 그 작가 이야기를 잠깐 할려고 하는데 여러분들 모르시나봐요. 달의 궁전, 배고픔의 예술, 또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라는 현대 미국 작가가 있어요. 굉장히 세계적인 작가인데 오늘 그 작가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해요. 나중에 안 읽어보신 분들은 한번 그 작가 책 일독을 권합니다. 훌륭한 작가예요. 폴 오스터가 지금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데, 그 폴 오스터가 8살때 뉴욕 자이언츠라는 야구팀을 좋아했어요. 선수들 중에서도 윌리라는 선수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시합이 끝난 후에 락커룸 근처에서 서성거리면서 윌리라는 선수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래서 윌리를 만났죠. 8살짜리 폴 오스터가 윌리에게 용감하게 다가가서 저 사인 좀 해주실래요? 윌리, 난 당신의 팬이거든요, 라고 말을 걸었어죠. 그랬더니 그 윌리라는 선수가 이렇게 꼬마를 내려다보면서 물론, 물론이지. 너한테 사인을 해 줄께. 그런데 꼬마야, 너한테 연필 있니? 그런데 8살짜리 폴 오스터가 연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뒤에 마치 든든한 후원자처럼 서 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구원의 눈빛을 보내면서 어머니, 아버지 연필이 있습니까, 그랬어요. 그랬더니 엄마, 아빠 아무도 필기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거예요. 그러더니 윌리라는 선수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꼬마야, 나 너한테 사인을 해 주려고 했는데 정말 미안한다. 아무도 연필을 가지고 있지 않구나, 그러면서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뚜벅뚜벅 사라져 버렸어요. 8살짜리 폴 오스터가 그가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뚝뚝뚝뚝 흘리기 시작했죠. 그날밤 이후 폴 오스터는 8살때 이후 주머니 속에 연필 한자루를 언제나 넣어가지고 다녔다고 해요.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그가 정말로 좋은 작가가 된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죠. 다른건 몰라도 세월은 이것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렇게 해서 작가가 되었다, 라고 말입니다. 결국은 세계적인 작가 폴 오스터를 만든 것은 연필 한 자루였죠.


쓰지 않을 때의 상태는 쓸 때보다 훨씬 좋지 않거든요.

   그런데 문득 이 시점에서 궁금해지기도 해요. 작가가 되고나면 왜 쓰지, 왜 쓰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기도 하고 혹은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습작을 열심히 하고 계신 분들은 내가 왜 문학에서 못 벗어나고 있지? 왜 쓰려고 하지?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쓰는 것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 일으키지? 라는 질문만 하시게 될거예요. 그렇죠? 그러면 잠도 못 자고 애들 울면 짜증도 내고 그러시죠? 저만 그런가요? 저는 소설을 쓴지 10년이 좀 넘었지만 아직도 제가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시는 분들 중에서 만약에 실제로 그렇게 되신다면 여러분들이 피해갈 수 없는 첫번째 질문일 거예요. 왜 쓰는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고전 작가 프루스트는 "그 밖의 다른 일에서는 이만한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쓴다"라고 말을 했죠. 그리고 서머셋 몸은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에 쓴다"라고 말했어요. 또 헤밍웨이는 "강제적이면서도 즐겁기때문에 나는 쓴다"라고 말했죠. 또 여러분들이 매우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이청준 선생님께서는요. "욕망때문에 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아까 누가 신경숙 작가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경숙 선배는 언제나 그렇게 이야기하죠.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저도 그런 질문에 시달릴 때가 있는데요. 글쎄, 그런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여러분들 몸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어깨나 등허리같은 데에 푸른 점같은 데 있을지도 몰라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점 하나가 있어서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사실 글을 쓰는 일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저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행복하지는 않아요. 행복해서 쓰는 것도 아니구요. 그러나 문제점은 뭐냐면요. 쓰지 않을 때의 상태는 쓸 때보다 훨씬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마 책상을 오랫동안 떠나 있는 것이 두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폴 오스터의 연필 한자루 이야기를 하다가 왜 쓰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네요.


이제는 뇌가 손 끝에 달린 거 같아요.

   저는 폴 오스터의 연필 한자루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 그의 산문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였지만 제가 26살 때 대학을 들어가면서 문학 가까이 있는 삶을 살자고 결심을 한 후부터 제가 몸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바로 노트와 연필입니다. 만약에 불이 났는데 방에서 한 가지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면 아마 저는 팔을 제가 할 수 있는만큼 벌려서 제 책장 한 칸을 채우고 있는 빽빽한 노트들을 들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 노트에 저의 모든 기록과 습작과 아이디어와 잊지 말아야 할 단어들과 영감들과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거든요. 가방 속에 언제나 가지고 다니면서 메모했던, 기록을 남겼던 것들이요. 그 노트들이 책장 한 칸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어쩌면 스무살 때 저를 작가로 만든 것은 스무살에서 스무 다섯살까지 방 안에서 틀어박혀서 책 읽기였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그 노트들이 아닐까. 그리고 제 가방 속에 들어있는 펜 한자루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는 말이예요. 나이가 들면 욕심을 버리고 온화해지고 나누어줄줄도 알고 그래야 하는데 이상하게 갖고 싶은 게 생겼어요. 제가 갖고 싶은 게 뭐냐면 여러분들 혹시 6.5인치짜리 아주 작은 초소형 노트북 아시나요? 그런 게 있어요. 제가 교보갔다가 깜짝 놀랐는데요. 그거는 정말 핸드백 안에도 들어갈 수 있는 노트북이예요. 키보드도 들어 있구요. 난 저거 사야돼,라는 생각을 했냐면 이제는 뇌가 손 끝에 달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머리가 여기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손 끝에 붙어 있어서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일단 글이 나오지 않고 손 끝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여요. 그러니까 연필로 노트에 기록을 한다는 게 점점 더뎌지고 그리고 생각을 쫓아가지 못하고 그러다보니까 일기를 쓰는 일도 줄어들고 노트에 메모를 하는 일도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아,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반성을 하고 있던 찰나에 그 초소형 노트북을 보게 된거죠. 무거운 노트북은요 가방에 넣고 다니기 부담스러워요. 아, 저 작은 초소형 노트북을 사야겠구나. 저걸 사서 내가 스무살 때 노트와 펜을 이용했던 것처럼, 그러니까 21세기형 노트와 펜을 새로 마련하는 거죠. 갖고 싶은 게 생기니까 살고 싶어지는 거 있죠. 그리고 정말 좋은 소설을 써서 저걸 꼭 가져야지, 하는 욕망이 최근에 생겼습니다. 여러분들도 갖고 싶은 게 있다면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사세요. 그리고 욕심이 있다고해서 저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욕심이 있으면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소설 쓸 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치미를 떼는 거죠.  

   여러분들 가방에 지금 연필이 들어있나요? 그렇죠. 오늘이 백일장이니까. (웃음) 그렇다면 여기 계시는 분들 모두 그 연필과 그 연필을 쓰고 싶다는 욕망,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면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언젠가는 미래의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세요? 자, 여러분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셨네요. 아까 시인이 되고 싶으신 분, 소설가가 되고 싶으신 분들이 계셨고, 다른 분들 손 안 드신 분들은 문학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겠다 했을 때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글을 쓰는 일만 남았는데요. 글을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우선 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제가 학생들 수업할 때 제일 첫시간에 하는 건데요. 숙제를 내주기 전에 맨 첫시간에 하는 이야긴데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죄송해요. 오늘 시 얘기를 많이 못하고 제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대부분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한 가장 좋은 첫번째 방법을 말씀해드릴까요? 첫번째 방법은 바로 여러분들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시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쓰세요. 그러나 누가 읽어도 나인줄 모르게. 소설 쓸 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치미를 떼는 거죠. 시치미를 떼고 그 작중 화자와 쓰는 나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힘들어요. 그래서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실패한다면, 시치미를 떼는 데 결국 실패한다면 그게 바로 소설이 아니라 일기가 되어 버리는 거죠. 그러나 습작을 하시는 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심리학책 읽어보시면요. 제일 앞에 그런 구절 나와있을 거예요. 당신의 구두에 발이 눌리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습작을 시작하세요. 물론 시도 마찬가지겠죠. 피츠 제랄드라는 작가가 소설가 지망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맨 처음 소설을 쓸 땐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해라,하는 말을 했죠. 그래서 여러분들 실제로 어떤 한 작가의 등단작품을 보면요. 그 작가의 경험, 대부분 그 작가의 모습이 들어있거나 거의 작가의 원형이라고 할수 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평론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바로 그 작가의 등단작이죠. 그 등단작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니까요.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이퍼 리라는 작가 있잖아요. 그 작가는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헤밍웨이가 쓴 소설이죠. 그 소설은 스페인 내란 대전 중에 헤밍웨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제 등단작이 뭔지 알고 계세요? 첫번째 책은 <식빵 굽는 시간>이지만 저를 소설가로써 만들어준 작품은 <불란서 안경원>이죠. <불란서 안경원>은 시를 쓰다가 저한테 시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서 '경란아 너는 시는 안되겠다' 라고 하셔서요 (웃음) 얼른 소설로 돌아서서 열심히 습작을 하던 때에 쓴 소설입니다. 여름방학때 썼는데 실제로 인천의 안경점에서 한 2주동안 숙식을 하면서 일을 배웠어요. 내가 안경점의 주인공이다, 라고 일을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물론 그녀가 했던 고백 중에 일부분도 저의 이야기죠. 여러분 모든 데뷔작들이 실제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구요. 그리고 제 소설을 예로 들자면 실제 저의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그 속에는 제가 조금씩 묻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좋아하시는 르느와르라는 화가 있죠? 르느와르라는 화가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이 세상에 흰색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흰 눈을 그릴 때도 그 흰 눈은 파란 하늘 끝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흰 눈을 그릴 때에도 이만큼의 파란색이 그 끝에는 묻어있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 소설 속에는 제가 이만큼씩 매달려 있죠. 여러분의 소설 속에서 모든 작가분들의 삶이 이만큼은 매달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시치미 떼면서 작품 안에서 화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 두가지만 기억하신다면 여러분들이 바로 (불우)에 눌리고 있는 그 아픈 부분에 대해서 쓰신다면 일기가 아니라 좋은 소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 만약에 아픈 부분도 없고, 나는 경험도 없어 하다면 여러분들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 있잖아요. 작가는 그렇게 해서 쓰는 거죠. 서머셋 몸은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화가 고갱의 이야기를 듣고 <달과 6펜스>라는 걸작을 만들어냈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맨 첫번째 시나 소설의 이야기는 여러분들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세요. 그것이 실패를 줄이는 가장 첫번째 방법입니다.


소설을 쓰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시를 많이 읽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빨리빨리 지나가는데요. 제가 말을 굉장히 느리게 하는 사람인데 제 말이 좀 빨라지네요. 소설 쓰고 싶으신 분들께 제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선배로써 한가지 팁을 더 드릴까요? 시 쓰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인데요. 시도 마찬가진데요. 시를 잘 쓰고 싶다면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쓰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시를 많이 읽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설이나 시에 있어서 중요한 여러가지 것들중에 우선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요. 소설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비유, 그 비유에 대한 감각을 익히시기 위해서 바로 시를 읽으세요. 그리고 한 인간의 운명을 파악하려면 역사책을 읽으세요. 그리고 인간의 행위, 혹은 심리에 관한 지식을 넓히고 싶으시다면 심리학책을 읽으세요. 그리고 인간의 캐릭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다면 자서전을 읽으세요.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가능성, 불가능성에 대해서 알고 싶으시다면 위대한 작품들을 읽으세요. 이것이 바로 썩 괜찮은 소설을 쓰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이고 매우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실천하는 것이 좀 어렵죠.

   한가지 더 이야기를 드릴께요. 제가 대학을 들어갔는데 현역에서 활동하시는 아주 좋은 강사분들이 많으셨어요. 어떤 강사분께서 수업시간에 그러시는거예요. 이미 그 분은 훌륭한 작가이자 평론가셨죠. 그런데 수업시간에 그러시는거예요. 나는 아직도 24시간동안 문학을 생각한다, 라고 말을 하시는 거예요. 그 날 그 말씀을 듣는데 어떻게 그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 선생님을 사랑하다가 1년이 흘러갔죠. 웃으라고 하는 이야기였는데. (웃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반성을 했어요. 이미 무언가 이루신 소설가 선생님께서도 아직까지 24시간, 하루종일 문학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시작하려는 사람인데 나는 내가 하고 싶다는 문학에 대해서 알맞은 노력을 하고 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반성들은 내가 왜 이것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깨달음, 혹은 인식같은 것이 있어야 겠죠.


나한테는 그런 내 인생의 토스트같은 게 무엇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여러분들 자신이 달걀프라이라고 생각한 어느 남자가 있었어요. 달걀프라이 아시죠? 자신이 달걀프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찢어질까봐, 혹은 노른자가 터질까봐 어디 마음대로 외출도 하지 못하는 남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의사를 찾아갔죠. 선생님 저는 이러저러해서 불안해 죽겠습니다. 믿고 의지할만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랬어요. 그러자 그 의사가 자신이 달걀프라이라고 생각하는 남자한테 이제부터 당신은 외출을 하거나 어디 앉고 싶은 의자가 생기면 토스트를 한 장 가지고 다녀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외출을 할 때, 앉고 싶은 의자가 생기면 토스트를 올려놓고 토스트 위에 자신을 앉혔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찢어질까봐 노른자가 터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그래서 그 남자는 인생을 결국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한테는 그런 내 인생의 토스트같은 게 무엇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문학이라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해봤습니다. 여러분들께는 과연 문학이라는 것이 토스트 한 쪽 같은 언제나 믿고 의지하고 기댈 수 있고 변심하지 않고 내 삶의 진실에 되어줄 수도 있고 축복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들이 문학을 하기 위해서 하셔야 할 첫번째 일은 바로 아까 말씀드렸지만 주머니에 연필 한자루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일입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마시고 내 가방에, 내 주머니에 언제나 연필 한 자루가 있다는 걸 의식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의응답시간.

인생을 바꿀만한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실 수 있는지.

- 제가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데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해드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같은 경우면 개인적으로 시를 쓰고 싶다, 학생들에 맞춰서 시를 쓰고 싶은 학생, 소설을 쓰고 싶은 학생들한테 개인적으로 추천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그런 대답을 해 본 적은 없구요. 대부분 필독 도서라는 거 말고, 지금 읽고 계시는 책이 뭐죠? 내 인생을 뒤바꿔놓을만한 책은 스스로 찾으셔야 할 거 같애요. 왜냐하면 제가 어떤 책을 권해드려도 그것은 마치 질문 주신 분께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겉돌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시간되시면 개인적으로 말씀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뒤바꿔놓을수 있을만큼의 책을 찾는 것은 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찾기까지의 긴 독서의 과정, 이 여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생활의 경제적인 면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

- 저도 지금도 배가 고픈데요. (웃음) 그러니까 작가가 되어서 배가 고프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은 소수죠. 그리고 매우 어려운 일이예요. 물론 대중소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중이라는 말은 바로 대중과 소통을 의미하는 거잖아요. 공모를 뜻하는 건데,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글쎄.. 대중소설을 쓰지 않는 이상은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들은 배가 고픕니다.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상황이 많이 좋아졌죠. 하지만 문학을 해서 큰 무언가를 가지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하시는 것이 덜 실망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침을 떼는 방법을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 가장 시침을 떼는 방법은 바로 감정을 조절하는 거죠. 이를테면 그런 거예요. 슬프다, 슬프다해서 펑펑 우는 것보다는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고이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거기까지만 묘사를 해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픔을 현실감있게 묘사할 수 있죠. 그리고 어떤 한 대상에 대해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꾹 참는 것, 바로 절제죠.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시침떼기의 첫번째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 제가 슬럼프 온 거 알고 계셨어요? (웃음) 작가 생활을 한지 올해 12년채가 되는데요. 책을 9권, 산문집 한 권 포함해서 소설집을 8권을 냈다는 건 거의 해마다 책을 냈다는 뜻일거예요. 어떤 해에는 2권씩 낸 적도 있었고. 그런데 제 새 책이 이번 달 말에 나오지만 제가 가장 최근에 책을 낸 것은 2004년도 10월이였습니다. 그러니까 한 3년동안 책을 내지 않았던 거죠. 3년동안 공개석상에서 슬럼프였어요, 라고 고백하는 건 오늘이 처음인 거 같은데요. (웃음) 네, 슬럼프였어요. 어떻게 극복을 했냐면 그것이 꼭 대상이 문학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 사시면서 이런저런 슬럼프들 겪어보셔서 아실 거예요.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냥 끝까지 내가 떨어질 데까지 떨어져보고 그리고 그런 거예요. 밀려났다는 것, 어떤 그런 것도 인정하고.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도 인정하고. 달라졌다는 것도 인정하고. 사실 인정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되는 거예요. 그럼 아무 것도 안 할 건가. 다 손을 놓아버릴 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버렸어요. 제 방이 책상하고 침대하고 딱 달라붙어있어서 정말 한발짝만 움직이면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는데, 그 한발자국의 거리가 백마일보다 멀었던 3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책상 앞에 앉는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가장 깊은 슬럼프고 가장 어려운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더니 그것은 역시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내가 아직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한번 보여줘볼까, 라는 생각으로 5월부터 책상에 앉아서 3개월동안 원고를 끝냈고 지금은 새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수)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슬럼프를 극복했습니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어려운데 점점 10년 전보다는 점점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저는 예전에는 더 시니컬하고 아주 냉소적인 사람이였는데요. 어떤 큰 고통이 왔을 때 그것이 나를 긍정적인 사람, 나를 희망적인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소설이 다소 어둡고 우울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세상의 어둡고 우울한 측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거죠. 빛을 찍을 때도 최소한의 어둠은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어두운 부분을 부각시켜야 밝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차리게 되잖아요. 저는 제 문학으로써 그것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슬럼프라는 것을 통해서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 내가 어떤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긴 시간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박수)


두 가지 쓰고 싶은 소설이 있는데, 어느 것을 먼저 써야할지.

- 그 질문은 마치 저에게는 이렇게 들려요. 작가란 무엇인가, 혹은 작가란 누구인가 라는 질문처럼 들리는데요. 저는 작가란 무슨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제가 아까 말씀 드렸죠. 노력하면 이루어 진다구요. 작가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들이 속삭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말이 되게끔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여러분들 몸이 아프시면 몸이 하는 말을 가만히 귀를 기울이셔야 해요. 그래서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 몸이 원하는 방법을 채워줘야만 하죠. 작가가 되겠다라고 생각하면 여러가지 목소리가 들리고 내 마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요. 그것을 막 끌어안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가장 열정적인 이야기,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이야기가 폭발할 때가 있어요. 폭발해서 나오면, 왜 어느 분들 이야기 들으면 자다가 일어나서 쓰기 시작했다, 저도 시를 쓸 때는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참을 수 없는 목소리, 가장 간절하고 뜨거운 목소리가 먼저 몸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서 나로 하여금 소설이나 시를 쓰게 만들거든요. 제가 보시기에는 어쩌면 그 두가지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도 있구요. 지금은 두 가지를 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똑같이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있어도 어떤 한 사람이 조금 더 좋아요. 그 두가지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가장 간절한 것부터 쓰기 시작하세요. 그것을 아마 삶이 묻어나는 그 이야기, 질문 주셨던 분이 겪으셨던 그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요즘 일본 소설이나 젊은 작가의 소설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

- 한 권의 소설, 한 작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가 있죠. 그리고 언급해주신 작가들 저도 훌륭한 작가들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은 그 아래 세대 작가들의 소설이 가볍다라는 부분인데요. 예, 가벼운 소설도 있고 무거운 소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 독자들이 왜 일본소설에 대해서 열광하고 있고, 시내 가장 큰 서점에 일본소설책으로 한 벽을 차지하고 있던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학생들과 한번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무겁고 진지하고 엄숙한 것을 싫어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일본소설의 가벼움, 코믹함, 또는 사소설이 가진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일본소설이 절대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예요. 그 가벼움 속에 그 뒤에 묻어있는 진지함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진지함, 엄숙함, 무거움이라는 주제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을 진지하고 엄숙하고 무겁게 다룰 것이 아니라 어떤 좋은 일본의 작가와 어떤 좋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그것을 가벼움 속에 포장하는 거죠. 가벼움을 가볍게 보는 소설을 가볍게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다른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중요할 거 같애요.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 젊은 작가들이 가벼운 소설만 쓰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편과 장편으로 넘어갈 때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 쉽게 말하면 단편 소설은 100M뛰기다. 장편소설은 장거리뛰기다라는 말씀들을 선배들이 하셨는데요. 그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편 소설을 여러분들도 써 보셔서 알겠지만 상당한 노력과 집중력과 열정이 요구되는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장편은 그것의 한 10배쯤? 그러니까 아주 긴 여행을 시작하셨다고 생각하셔야 하죠. 저는 학생들한테는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단편 소설을 한 10편쯤 썼다면 그 다음에는 과감하게 250매짜리, 500매짜리 소설을 써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편 쓰고 나면 장편을 쓰는 거에 대한, 긴 호흡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좋은 단편은 어떻게 만들어지냐면 예를 들면 신춘문예를 보면 75매 분량이 정해져 있죠. 75매쯤 정해져 있으면 예를 들면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방법은 여러분들 이야기 쓰시다 보면 길어지잖아요. 특히 내 이야기할 때. 예를 들면 한 100매쯤 썼다가 마지막에 해야될 일은 지우는 거예요. 과감하게 지우세요. 지우고, 또 지우고, 불필요한 문장들, 감정들, 다 지우고 나면 한 75매쯤 나올 거예요. 뼈만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토대. 시를 쓸 때도 가장 중요한 건 쓰는 일 다음에 지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을 한 10편쯤 쓰셨다면 중편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한번 써 보세요. 그 이후에는 어떤 것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일주일짜리 여행이 아니라 한 한달짜리 여행을 간다라고 생각하시고 호흡을 크게 갖는 것, 그것이 장편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집중력이 요구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제가 예전에 시를 썼다고 했잖아요. 그때 제가 시를 포기했던 이유는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살게될 줄 몰랐었는데요. 열심히 쓰다가 보니까 소설가가 되기도 하고, 소설로 작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그렇게 됐어요. 저는 소설가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마 시 쓰기도 포기하지 않고 시를 계속 썼더라면 아마 지금 시집 한권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죠. 여러분들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사람들 있잖아요. 우리는 왜 그 사람들이 산을 오를까 궁금해하지만 그 사람들은 산이 있어서 오르잖아요.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없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구요. 두번째는 위대한 결단력이구요. 세번째는 인내심입니다. 바로 그 인내심이 기적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어떠한 삶을 사시든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위대한 결단력과 인내심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의 가방 속에 들어있는 연필 한자루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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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서 훔쳐온 작가님 사진.
좋은 말씀 감사했어요.
새 책 기다리고 있을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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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문학과지성사


   김애란을 읽었다. 첫번째 단편집의 첫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그녀와 나는, 작가인 그녀와 독자인 나는, 우리는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매일 가는 편의점 직원이 나를 모조리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하숙방도 자취방도 아닌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소통되지 않는 '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내가 그녀의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끼고 서울 땅 아래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였음에 위로받고, 그녀가 예민하고 예리하고 사람의 마음을 뭔가로 쿡쿡 찌르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애란을 만났다. 내가 만난 김애란은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인터뷰에 표현되어 있기를 그녀는 굉장히 조용하고 하나의 질문에도 여러번을 곱씹어 생각하는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한자 한자, 또박또박, 실수하는 말 따위는 내뱉지 않겠다는 듯 느릿느릿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이렇게 그대로 씌여져 있지는 않았지만, 나의 느낌은 그랬다. 인터뷰 사진 속  그녀의 머리는 쭈빗쭈빗 뻗쳐있었고. 나는 왠지 그녀가 조금은 시니컬하고 까다로운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홍대의 한 카페, 낭독의 밤에서 만난 그녀는 부드러웠다. 따뜻했다. 머리도 그 때보다 길어졌고 차분하고 빛났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낮고 나긋나긋하고 다정한 목소리. 나를 닮은 듯,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닮은 듯,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낯익은 목소리. 그리고 여러번 준비를 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라는 것이 준비한다고 그대로 내뱉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도 않지만, 그녀는 따뜻하고 깊은 말들을 사람들에게 건네고,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말들은 굉장히 유머러스했다. 나는 자신의 글로 인해 위로 받는다는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그녀의 말에 반했다. 소설가의 상상력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반했다. 커트 보네커트의 그래프에 반했다는 그녀의 말에 반했다. 이쁜 글씨는 아니었지만 정성스럽게 싸인을 해주며 눈을 맞춰주는 그녀의 따뜻함에 반했다. 그리고 점점 그녀와 나는, 서울 아래서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그녀가 글을 쓰고, 나는 그 글을 읽을 뿐인 사이지만 참 많이 닮은 시간들을 견뎌왔고, 살아나가고 있으며, 그려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애란을 읽었다.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첫번째 소설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동질감에 따스함이 더해졌다. 이렇게 따스한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따스한 글을 쓰는구나. 언제 어디서 이런 생각을 할까, 메모는 어떤 식으로 할까,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언니와 오빠라는 관계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그녀는 막내인 것도 같고,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을 것 같고, 어머니가 음식을 자주 만드셨을 거 같고, 몇 년동안 짝사랑한 선배가 있었을 것 같은 그런 무모하고 무례하고 의미 없는 상상들을 이어나간다. 그녀가 쓴 표현들이 좋아 그대로 따라해기도 한다. 마트에 가서 변기 청정제를 사서 변기 안의 파란 물을 깨끗하게 바라보고, 버리지 못한 델몬트 쥬스 병을 소독해 보리차를 끓이기도 한다. 샤워를 하면서 내가 뜨거운 물로 몸을 씻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거품을 잔뜩 만들어 샤워를 한다.

   나는 김애란에게 반했다.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의 글에 반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위로받았고, 또 위로받아갈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다음 장편에도, 다음 단편에도 나의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있을 거고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할 거다. 그냥 스쳐지나갈 뻔했던 기억들을, 감정들을 붙잡아 주어서 고맙다고. 좋아하는 잡지에서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에 대한 감상평에 그녀의 이름이 박혀있는 것이 고맙고, 그렇게 또 하나의 짧은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고맙고.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서 고맙고. 아, 나는 그녀에게 고마운 거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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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간 코미디언
김연수 외 지음/중앙북스


   일단 저는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 표지와 전체적인 책의 촉감이 좋아요. 전체적으로 은은한 파스텔톤이고, 작가 한 명 한 명의 캐리커쳐가 있어요. 직접 그려넣은 선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가들의 표정은 인자해 보이기도 하고, 무덤덤해 보이기도 하고, 또 새초롬해보이기도 해요. 표지는 까칠까칠하고 울퉁불퉁한 종이의 촉감으로 살아있고 내지도 가벼운 재질이라서 가방 안에 넣고 다녀도 무겁지가 않아요. 김훈 작가가 수상했던 지난해랑 비교해보면 파스텔톤의 전체적인 표지 색깔만 살짝 달라졌어요. 마음에 듭니다.


김연수 | 달로 간 코미디언
을 읽고 싶어서 구입했어요. 동생이 김연수를 좋아하는데 저는 사실 그의 작품을 산문 몇 개밖에 보질 못했거든요. 산문 몇 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굉장히 감수성이 짙고 지적이고 예민하고 섬세했어요. 소설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출간되자마자 구입했어요. 어려운 면이 없진 않았지만, 김연수 작가의 분위기를 알거 같애요. 눈물이 날똥말똥 촉촉하게 젖고, 머리까지도 촉촉하게 젖은 상태로 그의 글을 읽게 되는 것 같애요. 이번 장편도 구입했는데, 얼른 읽어야겠어요.

권여선 | 반죽의 형상
은 권여선 단편집에서 먼저 만났던 단편이예요.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제일 좋았던 단편이였는데. 일부러 다시 읽지 않았어요. 읽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한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이 단편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생각이 많이 났어요. 내가 타고 다녔던 세 자리 버스, 그리고 내 친구들. 그때는 어리고 질투도 많았고 서울 생활도 서툴렀었고 늘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었거든요. 그런 자유롭고 초조하고 긴장되던 그 시절들이 많이 생각났던 글이였어요.

칼자국 | 김애란
을 읽으면서 아, 김애란이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탄성을 질러요. 동갑내기라서 그럴까요? 김애란의 소설은 늘 저를 떠올리게 하고 제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요. 저번 낭독의 밤에서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했는데, 읽으면서 자꾸만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내가 생각이 나고, 우리 엄마도 생각이 나고. 그 때 누군가가 인천에서 자라 서울로 올라왔는데 자신은 서울에서는 늘 주변인인 것 같다면서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고 고맙다고 말한 독자가 있었는데 저도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정말. <침이 고인다> 바로 읽을 거예요.

박민규 | 깊
는 정말 좋았어요. 글 속에서처럼 제가 심해 속을 우주 위를 둥둥 유영하는 것만 같았어요. 아무도 소리내어 말을 하지 않는 그 깊고 먼 곳에서 둥둥 빛도 없고 머리도 없이 마음만 가지고 잠수도 하지 못하는 제가 오랜시간 잠수를 하는듯한 느낌. 적어두고 싶은 글귀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삼미..>를 읽고 단편 한 두개만 읽었는데, 못 읽은 박민규 소설을 다 찾아서 읽어야겠어요.

백가흠 | 루시의 연인
은 뭐랄까 그냥 조금 불편했어요. 주인공의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인간이 아닌 물건이여서 그런지, 그게 나 같아서 그런지,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었어요. 단편이 끝나는 곳에 찍혀져 있던 빡빡 문질러 지워야 하는, 거실에 찍혀진 두 개의 목발 자국처럼요.
 
성석제 | 여행
은 그 부분이요. 생난리를 치루면서 사이는 틀어질대로 틀어지고 몸은 지칠대로 지쳐버린 세 친구가 여행길에 만난 부유한 도련님들이 제공해준 진수성찬을 먹기 시작하는 그 부분이요. 파, 터뜨리면서 한참을 웃었어요. 눈 앞에 그 광경이 딱 펼쳐지는 거예요. 매일 물에 밥 말아 먹으면서 죽도록 걸어대던 세 사람이 고기와 술을 마구마구 몸 안으로 집어 넣는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서. 이게 성석제의 매력인 거 같애요.  
     
윤성희 | 이어달리기
도 역시 유쾌했어요. 자꾸만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져 나왔어요. 엄마와 세 딸의 대화들이, 엉뚱한 상황들도 그렇고 유쾌하고 명랑해서요. 저도 이제 우울해질 때면 제가 아는 사람 스무명을 등장시켜서 운동회가 벌어지고 있는 운동회 한 가운데서 줄다리기를 하는 상상을 해 보려구요. 저는 심판 보구요. 금방 즐거워질 거 같애요.

은희경 | 고독의 발견
은 오랜만이예요. 은희경. 마지막이 인상적이였어요. 모호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결말. 결국 모든 건 레스토랑 안에서 한 상상이였다는 거 맞나요? K도 외롭고, S도 외롭고, 난쟁이 여자도 외롭고, 가난한 기타맨도 외로운. 모두가 외롭다는 고독의 발견, 맞나요?

이혜경 | 한갓되이 풀잎만
은 흘러내보내는 우리들의 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줬어요. 그냥 내가 공기 중에 뱉어내어 어느 공기쯤에선가 사라져버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것이 어느 녹음기에선가 멈춰서 영원히 저장되어지는 소리. 그렇지만 소리의 주체는 그걸 모르고. 얼마나 많은 나의 소리들은 사라져버리거나 저장되었을까요. 예전에 아주 어릴 때 비디오테이프 속의 저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속의 나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같지가 않아서, 몇번을 돌려보면서 내가 저런 행동을 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던 적이 있어요. 단편의 마지막 구절이 좋았어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전경태 | 남방식물
로 몽골을 생각해 봅니다. 한번도 가지 않았지만, 글 속에서 느껴지는 공기, 그 공기를 양분삼아 키워나는 고구마 순, 가정을 버린 남자, 자신을 버린 북한의 여자. 이 곳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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