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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하 작가님의 하드코어 낭독회를 다녀와서
    서재를쌓다 2007. 12. 7. 10:15
    퀴즈쇼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김영하 작가님 <퀴즈쇼> 하드코어 낭독회에 다녀왔어요. 이번 낭독회에도 깔끔하게 녹음을 해서 정직하게 정리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성능이 좋은 동생의 엠피쓰리를 가져갔습니다. 이번에 샀는데 녹음이 제 것보다 잘 되더라구요. 그런데 왠걸. 동생한테 작동법을 배울 때부터 아리송했던 게 문제였어요. 룰루랄라 녹음버튼을 누르고 편안하게 낭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끝나고 확인해보니 낭독회 시작하기 전 친구와 저의 잡담 소리만 1분여동안 웅웅거리며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허탈하고 아쉬웠는지 몰라요.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역시 김영하 작가님은 예상대로 달변가라. 그리하여 녹음에 실패하고 저의 안 좋은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더 달아나기 전에 잠이 몰려오는데도 불구하고 끄적거립니다.

       장소는 동국대 중앙도서관이였구요. 신청할 때 동국대와 한양대가 있어서 고민했었는데 멀어도 동국대를 선택한 게 결국엔 더 좋았어요. 오늘은 특별손님이 있었거든요. 이적씨요. 김영하 작가님과 절친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양대에서 낭독회하고 만나서 술 한잔 하다가 자기 써 먹을 때 있음 불러달라고 하셨다고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오늘 함께 하셨어요. 사회자라고 할까요, 낭독을 하는 틈틈이 담소를 나누면서 낭독회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셨지요.

       하드코어 낭독회냐면요. 배경음악도 없는 상태에서 1시간 내내 책의 여러 부분 낭독을 하는 거라서 그렇게 붙였다고 하시더라구요. 중간중간 내용에 대한 설명과 짧막한 담소의 시간들이 있었지만요. 배경음악 없이 낭독을 하고 다들 책 속 글자들을 따라가고 있으니까 꼭 고등학교 국어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저는 책을 아직 못 읽었는데요. 그래서 친구가 페이지를 찾아서 집어줬어요.

    낭독한 부분들은요.

    p.82- . . . 민수와 지원이 채팅방에서 귓속말하면서 호감을 느끼는 부분.
       이 낭독이 끝나고 작가님의 예전 하이텔 통신 시절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채팅방의 귓속말이 얼마나 짜릿하고 위험한지를 말씀해주셨어요. 당시 동호회 사람들과 여러 명이 함께 채팅을 하고 있었는데, 조용한 두 명이 있었대요. 물론 남자와 여자. 그런데 갑자기 여자분이 '니가 나랑 한번 잤다고 그런 말할 자격은 없어'라고 귓속말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 한 문장의 실수로 채팅방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는. 맞아, 라고 대꾸도 할 수도 없는 그런 침묵의 시간이였다고요. 아무튼 이 이야기 정말 웃겼어요. 저도 통신, 채팅방, 귓속말 다 경험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그 때 생각이 났었어요.

    p.109- . . . 민수가 편의점에서 잘리는 부분.
       이 부분 낭독하시는데 많이 웃었던 거 같애요. 민수의 태도 말투와 태도 때문에요. 특히 잘한다, 파수꾼! 부분. 나중에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자신은 소설을 쓰면서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20대때에는 거친(?) 성격이셨다고. 술 마신 다음 날 보면 백미러가 머리맡에 있고 그랬대요. 전날 술에 취해 그런 데 화풀이를 하시고, 다음날은 백미러로 얼굴 보고 막 그러셨다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성격도 온순해지고 사람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셨대요. 소설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니깐 그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해하면서 써 나가다 보니까 <퀴즈쇼>의 편의점주도 이해가 되고. 뭐 그런.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으면 순해지니깐 조심하라고요.  

    p.168- . . . 민수와 지원이 홍대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걷는 부분.
       이적씨가 나중에 민수가 늦게 이메일을 받게 된건 아무래도 지원이 민수에게 채팅방에서 만난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서 어떠냐는 질문에 아주 잠시 머뭇거린 것 때문인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니까 작가님도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남자 분들에게 절대 이런 식의 질문은 머뭇거리는 시간이 잠시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셨어요. 지금의 니가 더 좋다고 당장, 냉큼 말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흐- 그리고 이런 질문은 지원이 참다참다못해 꺼내게 된 건데 만나자마자 먼저 말해주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결국 사랑이란 뜨거워졌다가 식어가기 마련인데 그걸 얼마나 천천히, 덜 식게 만드느냐인 거 같다고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죠. :)
      
    p.210- . . . 지원과 민수가 코엑스에서 만나는 부분.
       <퀴즈쇼>에 두 여자가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연애 초기의 모습이 지원이고, 나중이 빛나로 생각하면 될거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연애 초기에는 다들 너는 잘 될거야, 틀림없어, 라고 붕 뜨게 만드는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지만 결국에는 빛나처럼 변하는 거라구요. 책을 못 읽어서 빛나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왠지 대충은 알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적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빛나랑 민수랑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였다고요. 막 궁금해져요. 어떤 장면인지 빨리 읽고 싶어지구요.

    p.436- . . . 소설의 제일 마지막 부분.
       이 부분은 일부러 책을 덮고 듣기만 했어요. 그리고 한 문장만 또렷하게 들렸죠. 잘 될거야, 잘 될거야.


        뭐랄까. 제가 읽은 작가님의 책들은 대부분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구석들이 있어서 작가님도 그런 느낌으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예상 외로 부드럽고(독자들 질문 하나하나에 굉장히 길고 상세하게 대답해주셨어요), 섬세하고(친구는 마이크를 잡은 손이 너무나 섬세했다고 했죠), 달콤했어요(카카오 56% 초콜릿을 계속 드시더라구요). 그리고 정말 많이 위안이 되었어요. 질의 응답 시간에 작가님의 20대 시절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였어요. 자신의 20대도 마찬가지로 복잡했다고. 돈도 없어서 읽고 싶은 책을 못 살 때도 있었고, 김영하매혈기라고 피를 팔아서 책과 맥주를 사 먹었던 때도 있었고, ROTC를 그만두겠다고,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안정적인 삶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던 그 때의 막무가내의 결심이 자신을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2-3년동안 돈도 없고 해서 친구들 만나기도 피하고 집에만 있었다고, 그렇게 소설을 써 나갔다고, 습작 시절에 쓴 어떤 단편소설을 친구에게 정말 기막힌 소설을 썼다며 전화로 40여분동안 읽어준 적도 있었다고, 20대에는 성공하기가 힘들고,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고, 꿈만은 높고 넓은 때인 것 같다구요. 여전히 20대의 실수투성인 제게 이 한마디 한마디는 꼭 끌어안고 싶어졌죠.

        소설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지금의 20대들에게 친척 어른들은 명절 때면 너 뭐가 될거냐, 하면 20대들은 모르겠는데요, 되고 싶은 거 없어요, 그러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모르겠고, 되고 싶은 게 없는 거 같지 않다고요. 지금의 어른들이 생각하는 한심한 20대는 결코 아닌 거 같다고요. 20대들이 가상공간인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현실의 모습과는 반대로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냐고요. 그런 걸 말하고 싶어서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구조를 쓰셨다구요. 오늘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어디선가 작가님이 <퀴즈쇼>를 통해서 20대, 너희 지금 잘 해나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읽었어요. 이 말, 정말 힘나지 않나요? 지금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언젠가 가상공간의 당당하고 치열한 나처럼 현실에서도 그렇게 될 거라구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제 기억력은 여기까지예요. ㅠ 생각보다 질의 응답 시간이 짧았어요. 30여분 정도. 마지막에 앞으로의 계획은 12월은 이렇게 낭독회 행사를 다니느라 바쁠거라고, 그러고나면 또 1년동안 열심히 다음 장편을 쓰실 거라고 하셨어요. 곧 <여행자 도쿄편>도 나온대요. 아, 이적씨도 새 소설이 나온대요. 완전 기대되요. <지문 사냥꾼>도 재밌게 읽었거든요. 그러고나면 이런 작가 아직 잊지 않으셨죠, 라면서 내년 12월에 또 이렇게 독자들과 만날 거라구요. 문학을 한지 12년짼데 이런 순간들이 참 좋으시대요. 아,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이렇게 생기셨구나, 하시면서 이런저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요.

       순전히 제 기억에 의존한거라 틀린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양해하고 읽어주세요. ㅠ 사진은 못 찍고 사인만 받아왔어요. 히히- 그럼 저는 내일부터 <퀴즈쇼>에 빠져볼랍니다. 지금 비 와요. 그래서 지금 제 앞 창가를 타닥타닥 때리는데, 이 소리 너무 좋으네요. 그럼 모두들 굿 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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