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요일(5일)에 와우북페스티벌 행사로 김애란 작가의 낭독의 밤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황병승 시인과 함께 새 작품을 낭독하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는 자리였는데요. 제가 김애란 작가를 너무 좋아해서 이번 새 단편집도 잔뜩 기대하면서 기다렸구요. 나오자마자 주문하고서 이 행사를 신청했는데 다행스럽게 초대받았어요. 시간에 맞춰서 카페로 갔는데, 홍대근처에서 출판사측에서 보내준 너무나 엉성한 약도만 믿고 갔다가 결국 시작시간에 늦어서 굉장히 불편한 자리에서 낭독회를 들었어요. 자리가 멀고 작가님들의 목소리도 나즈막하게 굉장히 조곤조곤, 소곤소곤 말씀하셔서요 낭독하는 목소리들을 녹음을 하긴 했는데 올릴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작아요. 정말 좋았는데 아쉬워요.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나눈 대화들을 올릴려고 했는데 녹음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최대한, 최선으로 귀를 활짝 열고 반복반복해서 올려봅니다. 김애란 작가의 낭독 후 질문과 답변이예요. 실제로 김애란 작가는 생각했던 것보다 여성적이여서 놀랬어요.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목소리도 낮고 조곤조곤하세요. 개인적으로 목소리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살짝 긴장하시는 듯 했지만 생각보다 달변가시더라구요. 좋은 말씀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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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소설집을 보니까 책이 마음에 드세요?

- 네. 마음에 들구요. 무엇보다도 사진이 마음에 듭니다.

얘기를 하실거라 예상을 했었습니다. (웃음) 너무 저한테 그 얘기를 했기 때문에. 사진의 어떤점이 마음에 드세요?

- 제가 첫번째 단편집을 내고 짓궃은 리플들을 많이 봤어요. 80년생같지 않다, 소설쓰기 생겼다. 그래서 영혼의 스크래치를 받고 신문같은 데에 많이 났는데도 어떤 첫사랑한테도 연락이 오지 않더군요. 두번째 소설집 사진작가들이 약간 너무 여성작가처럼 나올까봐 불만족스러워하셨는데요. 제가 제발 여류작가처럼 찍어달라고 그랬어요. 굉장히 만족스러운 단편집이라고 생각하구요. 문학과 지성사, 정말 사랑합니다. (웃음)

문학과 지성사 좋겠습니다. 소설가처럼 생겼다는 말이 대개 뼈 아픈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소설가는 여성적이여서는 안되는 그런 통념이, 아픈 통념이. 김애란 작가께서 너무 이 사진에 대해 흡족한 나머지 책이 나오던 날, 이게 저예요라고 얘기했었습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이 띠지에 '다시 김애란이다' 이렇게 되어있는데 이거보다는 '이게 저예요' (웃음) 자신이 이야기하는 톤이나 이야기거리가 변화했다고 생각하세요?

- 예. (김애란 작가가 이 대답만 딸랑 하자)

그렇게 말하시면 제 영혼에 스크래치가.. (웃음)

- 목소리가 좀 낮아졌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가난이 더 문학적이지 않을까 해서, 가난을 애호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지는 않아요. 다만 첫번째 단편집을 냈을 때 상상력이라는 게 저는 엉뚱한 건줄 알았거든요. 괴물이 나온다든가 우주로 나간다든가, 이런 게 상상력인줄 알았고 또 가끔 기분이 좋기도 했고 그게 사실이기도 한데 두번째 책 나올때면 생각이 바뀐 게 진짜 상상력이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그리고 타인의 삶, 타인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는 게 상상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말 괜찮네요. (웃음)

진짜 괜찮네요. 생각보다 말씀을 너무 잘하셔서. 준비한 말이예요 혹시? 지금 생각한 말이예요?

- 지금 생각난 거 같애요. (웃음)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게 진짜 상상력이다. 집에서 질문 받을 거 준비해 오신 거 없죠? (웃음)

- 예.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거라고 했는데 혹시 소설책을 읽으면서 뭐랄까 흔히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이거 자기 얘기 아니야, 그런 것이 가장 평범한 독자들이 상상하는 거거든요. 이 소설에서 타인의 고통과 자신이 경험한 부분이 물론 그걸 나누는 것도 사실 말이 안되는 거지만, 만약에 진짜 평범한 독자들이 물어본다면 어느 정도 타인의 고통을 상상했다고 말씀하시겠어요?

- 어.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질문 중의 하난데요. (웃음) 왜냐면 아마 그런 생각들이 작가들이 어디까지가 내 얘긴지 이야기하는 것이 신비감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두번째 단편집에 분명 제 얘기가 많이 들어갔구요. 제가 멋있어 보이는 걸 포기하고 솔직하게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가장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단편은 '칼자국'인 거 같애요. 최근까지는 남의 얘기를 쓰는 게, 남이라 함은 일단 제 주위 가까운 사람들 친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있어서 두번째 단편집까지는 제 얘기가 많이 들어가긴 했는데요. 요새 또 생각이 바뀐게 미안함이나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 얘기를 하는 거 안에도 또 다른 (이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장편을 쓰고 있습니다.

아, 지금 장편을 쓰고 계세요?

- 어.. 흠.. 2년전부터 쓴다고 해서 양치기 소년이 된 거 같은데 조금 시작한 상태예요.

그러면 벌써 세번째 책 얘기하는 건 좀 이르지만 김애란 작가 첫 장편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는 독자들이 많으니까 조금만 힌트를 주면? 이런 이야기일 거다?

- 처음 장편을 구상할 때는 모범되는 다른 책을 많이 읽고 감탄하고 그럴 때마다 전략이 바뀌었어요. 연애소설을 읽을 때는 그래 역시 모든 장편은 연애소설이야 그랬다가, 추리소설을 읽었을 때는 아무렴 추리소설이지 그랬다가, 아니야 성장소설이야 이랬다가, 맨 먼저 첫 장면에 누가 죽었다고 시작할까,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는데요. 지금 뼈대는 잘 안 갖췄지만 택시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까 생각중이예요. 택시들 밤에 서울에 많잖아요. 돌아다니는 거 보면 반짝반짝 나비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 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들이 많지 않을까 해서.

(낭독) 세 편을 선택했는데. '칼자국'이 더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했는데, '네모난 자리들'이 자전소설로 아예 타이틀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자국'에 더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는 거죠?

- '네모난 자리들'은 자전소설로 청탁을 받은 거여서 막상 쓸 때 제가 쭈빗거렸었구요. 자전소설이라서 좀더 용기를 내지 못했던 부분도 있고 그랬는데요. 타이틀이 없어지니까 좀 더 편안하게 쓸 수 있었던 거 같애요.

이번 소설집은 더 가난한 청춘들이 많이 나오죠. 청춘은 사실 다 가난하죠. 가난하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애요. 그래서 지금 가난한 청춘인 사람들은 어쩌면 위로를 받고 어쩌면 그 때를 추억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자기 젊은 날의 이야기를 작가가 소설화하는 것에 대한,  작가 자기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젊은이의 얘기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동시대적이라고 할까요 너무 거창할 지도 모르겠는데, 젊은이들이 소설을 어떻게 봤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해 보죠.

- 아무래도 제 주변 이야기와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쓰다보니까 또래 사람들의 눈이나 그런 것들을 많이 쓰게 되는 거 같애요. 지금 시대가 성인식이 유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안락하기도 하지만 고통스런  부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을 했구요. 그런 상황에 있는 제 또래들한테, 흠.. 위로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따뜻하게 위로해주면 머쩍거나 난데없이 창피해지나 위로를 받았는데도 수치감을 느끼는 일이 있잖아요. 가끔 화도 나고.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면서, 농담으로 그 사람이 창피해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 위안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소설들을 쓰게 된 거 같애요.그렇게 위안받았으면 좋겠구요.

소설가가 됐다는 거를 후회했거나, 왜 됐을까,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을 때는 어떤 때인지.

- 후회하기에는 아직 제가 출발한지 얼마 안 되서 많지는 않았구요. 그냥 사진보고 마음에 스크래치 났을 때 후회가 됐구요. (웃음) 길을 가면은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김애란씨 아니냐구. 속으로 이 놈의 인기 막. (웃음) 거만 개그구요. 너무 겸손하면 보기 싫어 보일까봐 준비한 농담이구요. (웃음) 이야기를 써서 그 이야기를 제가 쓰기도 하지만 내가 살면서 나랑 만나야 되는 이야기들, 소설을 쓰면서 만나게 되는구나 생각이 들구요. 물론 이게 상품으로 팔리는 거기도 하지만 제도 이 소설 쓰면서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위로받는다는 느낌 받을 때 소설가가 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구요. 팔자에도 없이 소설가가 되서 여러분들과 얼굴 맞대고 이런 좋은 데가 만나게 된 것도 소설가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자기 자신이 인터넷에서 작가 자신의 검색을 언제 하는지?

- 식후 30분마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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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황병승 시인과 김애란 작가 서로의 작품을 바꿔서 낭독하는 시간이 마련됐구요. 서로의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도 하셨구요. 황병승 시인은 긴장하셨는지 원래 말씀이 별로 없으신지 답변들이 굉장히 짧막했어요. 그리고 거기에 온 독자들의 질문들을 받았는데요. 그대로 받아 적고 싶었지만 이 부분의 녹음상태는 더 엉망이여서요. 김애란 작가의 이야기 중에 굉장히 좋았던 두가지 이야기만 옮겨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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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소통이 안 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우리 이렇게 소통이 단절된 시대에 화해하며 살아가자, 이런 것보다는요 가끔 소통의 단절이 없는 세상을 사는 건 너무너무 끔찍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오해도 없고 드라마도 없고 표정도 없고 여러가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거 같애요. 어쩌면 그런 소통이 안 되는 조건 하에서 소설을 쓸 수 있는 거 같구요. 어느 산문에선가 ' 언어가 순결하지 않아서 너무 좋고 인간끼리 소통이 안 되서 참 다행이다'라는 말을 썼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런 태도가 좋은 점도 있구요. 그렇지만 무작정 우리는 인간이니까 서로 사랑해,라고 들어가는 것보다 한번 견뎌보자,가 진짜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독서에 대해서 게을렀다가 최근에 단편집을 내고 여유가 생겨서 이런저런 책들을 보는데. 실제로 키득거리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면서 요새는 되게 많은 것에서 자극을 받곤 하지만 책을 읽고 반할 때가 되게 많고, 그렇게 감탄할 때 짜릿한 게 중독되는 거 같구요. 책을 읽다가 멋진 문장들을 보면 적어놓고 그러는데요. 최근에는 커트 보네거트 산문집을 읽고서 되게 감동을 받았는데. 이야기 서사에 대해서 그래프가 나오는데 햄릿, 카프카...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그 선이 아름답게 느껴져서 오려서 작업실에 붙여놨어요. 그래프 곡선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가는 거, 행복에서 불행으로 가는 거 그런 것이 있는데 햄릿이 일직선이거든요. 일직선은 이야기꾼으로써 형편없어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인생에서 칠판에 어떤 것이 좋은 소식이고 어떤 것이 나쁜 소식인지 그릴 수가 없다, 그런 걸 보고 감탄해서 그래프를 붙여놓았어요. 이미지지만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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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가 구석이라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낭독회 장소인 홍대 이리카페는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였던 거 같애요. 다음에 그냥 한번 가 보고 싶어졌어요. 마음에 드는 안락한 의자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는. 김애란 작가의 사진도 함께 찍고 싶었지만 저의 너무나 번들거리는 얼굴과 땀들로 인해 찍지 못했어요. 싸인만 받았는데요. 공들여서 정성스럽게 한 분 한 분 싸인을 해 주시고 눈을 맞추며 웃어주셨어요. 귀엽게 웃는 표정과 함께 '한 손을 높이 들어 사랑의 인사를!'이라는 메시지를 적어주셨구요. 이번에 직접 김애란 작가를 보고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떠올랐는데요. 계속 좋은 작품 써 주세요. 첫번째 장편 완전 기대하고 있을께요. 1980년생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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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과 그 속의 작가사진이예요. 저도 이 사진들 마음에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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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와 롯데시네마에서 주최하는 정이현 작가 강연회에 다녀왔습니다. 저번 황석영 작가 강연회도 정말 가고 싶었는데 다행스럽게 당첨되었고, 이번 정이현 작가의 강연회도 당첨되어서 두번째 작가 강연회였어요. 강연회는 주로 이번에 발간된 <오늘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였구요. 아직 구입을 못했는데, 다행스럽게 경품추첨으로 <오늘의 거짓말> 책을 받았어요.싸인도 받았구요. :)

   저번 황석영 작가님 강연회처럼 녹음기로 녹음을 해서 나름 옮겨 적어보았는데 정확하게 옮기려고 노력했으나 저의 부실한 청력과 너무나 방대한 양이라 실수가 많을 거예요. 일단 올려봅니다.

   정이현 작가님은 떨린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초반에는 그런 느낌이였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하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맛깔나게 잘 하시더라구요.

   작가님에 대해서 좋은 인상 듬뿍 받고 돌아왔습니다. 미흡한 옮겨쓰기라도 그 자리에 안 계셨던 분들이 읽으시고 그 분위기를 느끼셨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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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정이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정이현입니다. 제가 극장의 무대 위에 올라오는 일이 평생 있을줄 상상도 못했는데요.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보니까 너무 많이들 와주셨어요. 명절 지난지도 얼마 안 됐고, 또 금요일 저녁이 가장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잖아요. 또 즐겁고 재밌는 곳에서 약속도 많으실텐데 저를 보러 여기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끔씩 자연인이 아니라 작가 정이현으로 이렇게 무대 비슷한 곳에 올라와야하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그런 순간들마다 굉장히 떨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상당히 무대공포증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겉으로는 굉장히 멀쩡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막 와들와들 떨고 있거든요. 저는 어색할 때 주로 그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뭔가 개그를 해야할 것 같은 그런 욕망이 들기도 하구요. 아니면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제가 못하는 춤이나 노래라도 보여드려야 되나 (웃음) 아니면 판토마임이라도 한 판 벌어야 되는지. 지금 태연을 가장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의 이런 어색함은 작가는 말이 아니라 글로써 독자들과 소통하는 존재라는 그런 자의식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미 세상에 내놓은 자기 소설에 대해서 작가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부연설명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변명처럼 들릴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미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에 이미 그 작품은 저의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들의 것이고 당연히 불완전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이잖아요. 그래서 언제나 지난 소설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저를 부끄럽게 하고 곤욕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의 세번째 책이예요.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이 7월15일경에 나왔어요. 지금 9월말이니까 두 달 반 정도 얼추 됐는데요. 저의 세번째 책이예요.

    책이 나오면 항상 어떤 일종의 진공상태에 빠지는 거 같애요. 좀 우울해지기도 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곤 하고 그러는데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누가 제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듣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고 저도 제 소설 <오늘의 거짓말>에 대해서 말하는 자리들을 가능하면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그렇게 온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저의 어떤 조급함때문인 거 같애요. 빨리 지나온 시간들, 지나온 소설들 세계를 좀 벗어버리고 어서 빨리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그런 제 안의 조급함과 조바심이 있어서 그런 거 같은데요. 그런데 사실 또 생각을 해보면 더 멀리 먼 길을 앞으로 가려면 지난 시간들, 지나온 길들을 차근차근 돌아보는 것도 꼭 필요할 거 같거든요. 차근차근 돌아보고 성찰하는 그런 시간도 필요할 거 같애서요 오늘 저한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소설들에 대해서 그냥 편안하게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 가져보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말씀 드릴께요.

   먼저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말씀 드릴께요. 어떤 작가나 그렇겠지만 저도 이 표제작을 선정하는데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여기 저희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 직원분들도 몇 분 와계신데요. 직원분들이 웃으실수도 있을 거 같애요. 제가 제목 고르기 위해서 너무너무 속을 많이 썩였거든요. 처음에는 이런 제목으로 했다가, 처음엔 '비밀과외'라는 제목을 생각했었고 타인의 고독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굉장히 섹시한 제목으로 하리라, 생각했었는데요. 처음에 '비밀과외'로 하겠다고 다 말씀드려놓고 표지디자인 들어간 거 뻔히 알면서 다음날 또 전화를 걸어서 죄송한데 '타인의 고독'이 좋을 거 같거든요, 하고 말씀드리구요. 또 며칠 지나 전화 걸어서 생각해봤는데 그거 아닌거 같거든요. 그러면 무슨 대안이 있으시냐고 그러면 아직 대안 없거든요, 이렇게 속을 많이 썩였어요.
유난히 안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한테 문자메세지로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요. 1번 '삼풍백화점', 2번 '타인의 고독', 3번 '비밀과외' 해서 어떤 게 좋냐 그랬더니 압도적인 몰표가 하나 나오면 그쪽으로 가면 될텐데 제가 귀가 무지 얇은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다들 강력하게 1번이야, 역시 타인의 고독이 최고야, 딴 거 하면 절대 망해, 이렇게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너무 강력하게 무슨소리야 '삼풍백화점'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은 무슨 소리야, '비밀과외'가 제일 섹시해. '비밀과외' 아니면 다 망해. 이렇게 너무나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해줬기 때문에 나중에는 배가 산으로 가서 제가 막 혼란상태가 오더라구요. 그리고 결국엔 소설집에 꼭 제목이 필요할까, 정이현 두번째 소설집으로 하면 안 될까, 이런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었어요. 그런데 자포자기 상태로 어딘가 놀러가다가 고속도로 화장실에서 너무나 우연히 정말 거짓말처럼 섬광처럼 스쳐가는 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거짓말>이였어요. 그래서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서 이런 제목은 어떠실까요, 라고 했었던 그런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 이 곳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서 소설을 씁니다

    <오늘의 거짓말>이라고 그런 문장을 만들고 나니까 그 두 단어, '오늘'이라는 단어와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지금 제가 추구하고 있는 어떤 미학적 세계를 어쩌면 조금 적확하게 표현하는 두 단어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구요. 먼저 '오늘'이라는 걸 말씀을 드리면, 가끔은 당신은 왜 소설을 쓰세요, 이런 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당신은 왜 밥을 드세요, 혹은 왜 사세요, 이런 질문을 할 때 황당한 거처럼 저도 왜 소설을 쓰세요, 이러면은 대답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는데요. 그럴때마다 결국 머리를 쥐어 뜯다가 드리는 대답은 일정한 거 같애요. 지금 이 곳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서 소설을 씁니다, 라는 대답이예요.

   저는 지금 이렇게 무대 위에서 달달 떨면서 얘기하고 있지만, 조금 있다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또 10월 1일날 세금 마지막 내는 날인데 오늘 9월 28일이더라구요. 금요일인데. 어, 벌금 내겠네, 그런 것때문에 고민하는 정말 평범한 생활인이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는 선택하고 갈등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은지. 저 사람이 1차를 샀으니까 내가 지금 여기 2차를 사는게 맞을까, 그런데 2차가 1차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이 나올 거 같은데. 이런 수준의 저급한 갈등부터 내가 과연 이 결혼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같은 커다란 것, 혹은 내가 과연 그런 일을 계속할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인생의 좀더 커다란 문제와 직결된 고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정말 숨가쁘게 순간순간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면서 살잖아요.

   그런데 문득 밤이나 저녁시간에 지하철타고 흔들리면서 집에 들어가면 지하철 안의 행인들, 저와 같이 지하철 타고 쭉 집에 가다보면 너무 평화로워보여요. 저의 머리 속은 복작복작 터질 것 같은데 너무나 평화롭게 졸고 술 한잔 하시고 술 냄새 풍기면서 졸고 있는 아저씨도 계시고 또 이어폰 삐져나오라 커다란 음악을 듣는 그런 아가씨도 있고 저들은 인생이 너무 평화로와보이는구나, 부럽다, 이렇게 그들을 관찰하다가 문득 혹시 저들도 스스로만 아는 어떤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무엇인가 영혼이든 무엇이든 자신만 아는 느낌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걸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어요. 아마 여러분들 다 그런 순간을 느껴보셨을 거 같은데요. 그런 의문이 들 때  문득 그런 분들이 낯선 분들이지만 반갑고 뭔지 모를 친밀감도 느껴지고 그렇죠.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결국은 저와 함께 어딘가로 실려가는 분들, 지금 이곳에서, 내일, 우리 너무나 불안한 내일이지만 너무나 불안한, 그래서 어쩌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를거라 기대하게 하는 그런 내일로 실려가는, 저와 같이 이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당신만 흔들리는 거 아닙니다, 저도 흔들리고 있고 사실은 우리 모두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는 비밀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소설을 쓰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지금 이 곳, 오늘이라는 화두를 마음 속에 담고 있구요.


소설가는 생리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늘 해요. 

    그리고 오늘의 거짓말이니까요, '거짓말'이라는 단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오! 수정>이라는 영화 많이들 보셨죠? <오! 수정>이 재밌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보면 반을 나눠서 한 쪽은 여자의 기억, 한 쪽은 남자의 기억, 똑같은 사실을 놓고 재현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요. 너무나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서 여자는 포크, 숟가락 떨어진 걸 기억하고 있고 남자는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건 자신의 머리속에서 지워져버린 사건이죠. 그리고 어떤 대화를 할 때도 남자는 다른 맥락을 기억하고 있고, 여자는 또 전혀 엉뚱한 걸 기억하고 있고 이렇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똑같이 겪은 사실, 팩트더라도 전혀 다른 기억으로 그렇게 재현되는 거 같습니다.

    소설은 언제나 과거형 시제로 쓰여지잖아요.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들을 여러분들이 소설로 옮기신다고 해도 그녀는 말한다가 아니라 제가 말하는 것과 여러분들이 쓰는 시간에는 1초, 혹은 10초의 시간차가 있기때문에 그녀는 말한다,가 아니라 그녀는 말했다,라고 하죠. 이런게 바로 소설의 시제고 그렇다면 소설은 언제나 현재를 쫓는다고 하지만 현재를 그대로 쫓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반 발자국 뒤에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런 숙명이 있는 것이 소설인 거 같애요. 그렇다면 소설가가 언제나 내가 쓰는 소설은 현실이야, 라고 우겨도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없겠죠.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니까 진실에서 반발자국 떨어진 거짓말일 수 밖에 없는 그런 명시적 운명을 타고 난 거 같구요. 그래서 소설가는 생리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늘 해요.

    그렇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진실은 뭐고 거짓말은 또 뭘까, 이렇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이게 진실이고, 어떤 사람은 이게 거짓말인데 그냥 이른바 진실이라는 것, 혹은 이른바 거짓말이라는 것만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 진실이라는 것과 거짓말이라는 것 차이는 아주 작고 사소하고 반짝이는 그냥 조그만 틈새같은 것만 있는 거 아닐까.
그 틈새를 뭐라고 이름 붙여야 될지 모르겠지만 문학이라면 응당 그 진실이나 거짓말, 그 화려하고 커다란 것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 있는 작은 틈 사이에 대해서 주목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역할이고 문학하는 사람이라면 그 작은 틈새를 찾아내고 드러내고 여러분들한테 보여드리는 일, 응시하게 하는 일, 이것이 문학하는 사람의 책임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서 '거짓말'이라는 화두 역시 제 마음에 언제나 들어 있는 거 같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주었던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 그렇거든요. 

    <오늘의 거짓말> 많이 보셨나요?<오늘의 거짓말> 보시면 첫번째 있는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는 소설이예요. '타인의 고독'은 어머니들이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저는 가끔 거짓말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꼭 그런건 아닌 거 같애요. 용돈 많이 주는 자식이 좋고 (웃음) 공부 잘하는 자식이 좀 더 예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소설가한테 열 편 중에서 어떤 소설이 제일 좋으세요, 참 짓궃은 질문인데요. 저는 아마 망설이다가 '타인의 고독'에 마음이 조금 더 갑니다, 라는 대답을 할 거 같애요. 왜 그러냐면 제가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주었던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 그렇거든요.

    '타인의 고독'은 2004년 봄호의 문예지에 발표했던 작품이예요. 2004년 봄호면은 2004년 6월 정도에 마감을 했었던, 굉장히 오래됐죠. 3년이 넘은 소설인데요. 그때가 저 개인적으로 어떤 시기였냐면은 2003년 9월에 첫 소설집인 <낭만적 사회와 사랑>가 세상에 나오고 정이현이 누구구나, 정이현이라는 작가가 있구나, 이렇게 세상에 좀 알려지기 시작했었던 그 때예요. <낭만적 사회와 사랑>을 제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분들이 많이 사랑해주시고 많이 읽어주시고 그랬어요. 그런데 작가한테는 당신의 소설이 어떻습니다, 라고 그렇게 호명되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축복이기도 하죠. 누군가가 호명해 준다는 것은. 그렇지만 어떤 선입견이 생긴다는 측면에서는 어떤 일종의 부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낭만적 사회와 사랑> 그 작품들을 꼭 의도해서 여성들의 이야기만 쓴 건 아니였어요. 우연히 묶고 보니까 그때 저의 관심사가 여성이였던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그것들이 나쁜 여자들이라거나, 악녀들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쿨한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이런 이야기들이 저에게 부담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낭만적 사회와 사랑> 다음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였는데요. 정말로 소설이 한 줄도 쓰여지지 않았어요. 아까 조바심과 조급함이 마음 속에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과연 <낭만적...> 이후에 내가 뭘 보여줘야 되나, 어떤 걸 쓸 수 있을까, 너무 고민을 하다보니 약 열 편 정도의 소설을 한 다섯줄 썼다가 덮어버리고 또 다섯줄 썼다가 덮어버리고 그러다 결국 아, 나 이러다 소설 못 쓰겠다, 영원히 못 쓰는 사람이 될거야, 펑크를 낼 수밖에 없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찾아와준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 저한테는 정말 고마운 소설이예요.


우리 정말 외롭잖아, 그런데 우리 외로운 건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을까.

   
대개 친한 친구가 있어요. 성별은 남성인 저랑 동갑인 친구인데요. 그 친구가 굉장히 체격도 좋고, 제가 혈액형 신봉자거든요. 저는  O형이예요. 그 친구도 전형적인 O형의 너무 사교성도 좋고 싹싹하고 듬직하고 어딜가나 붙임성도 좋고 영업사원에 딱 맞는 체질을 가진 그런 친구예요. 그런데 그 친구가 혼자살고 있는데요. 저는 항상 그 친구는 씩씩하고 뭘 해도 재밌고 즐겁겠거니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그 친구를 만났는데 자기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대요. 좀 안 어울린다, 고양이는 왜? 그랬더니 자기가 어느 날 혼자 퇴근해서 밤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 어둠 속에서 혼자 너무 외롭더래요. 그래서 그 안에 다른 생물체라도 하나 더 있으면 덜 외로울까 싶어서 고양이를 분양해왔다고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대요. 고양이 밥 줘야 되니까 빨리 들어간대요, 그래서 가라고 축하한다고 고양이랑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라고 그렇게 얘길 해줬는데요. 그 다음 또 며칠 후에 또 만났어요. 너의 고양이 잘 있니,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저번보다 약 두배정도 쓸쓸한 표정으로 갖다줬어,하더라구요. 왜, 그랬더니 어느 날 또 현관문을 열고 깜깜한 방 안으로 들어갔대요.

   그런데 불을 딱 켰는데 고양이가 자기를 본척 만척 안 하고 혼자 벽을 보고서 무엇을 하는지 너무나 재미있게 잘 놀고 있더래요. 자기가 혼자 잘 노는 고양이의 등을 보는 순간, 혼자 있었던 순간보다 열 배정도 더 고독과 외로움이 밀려와서 혼자 괴로워하다가 그 날 밤, 잠을 한숨도 못자고 고양이를 갖다줘야겠다, 이러다 내가 폐인이 되겠다, 그러다 다음날 바로 고양이를 갖다 줬다고 하더라구요. 술 한 잔 하면서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정말 저의 너무나 편안한 10년된 친구가 저의 마음을 이렇게 싸-하고 아프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저는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다짐을 한 게 하나 있거든요. 나는 죽어도 내 얘기와 내 주변 얘기를 쓰지 않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낭만적 사회와 사랑>에 있는 그 소설들, 다들 모든 사람들이 그 유리가 너지, 이러면서 니 얘기 아니야, 그러는데 그거 제 얘기 아니거든요. 저 얘기 아니구요, 그냥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소설가는 이야기꾼의 한 사람으로 그 이야기를 채록해서 재미있게 윤색해서 세상에 내 보이는 그런 입장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애요. 그런데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아, 이제는 우리의 시대, 우리 세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번 솔직하고 허심탄애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우리 정말 외롭잖아, 그런데 우리 외로운 건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을까. 집에 오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애요. 그리고 친구가 고양이의 등을 보고 외롭다고 했듯이 저도 술 마시고 있는 친구의 등을 보면서 아, 쟤 등이 저렇게 생겼었구나, 언제나 앞에서 웃고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모습만 봤는데 저 친구한테 저런 뒷모습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그런 것도 대개 궁금해졌어요. 나는 언제나 세상에서 내가 제일 외롭다고 생각하고 제가 제일 우울하다고 생각하고 제 고통이 제일 큰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왜 나는 저 친한 친구의 외로움을 몰랐을까. 저 친구는 왜 즐거울거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왜 늘 자신의 고독만 중요할까. 그런 의미에서 제가 붙여본 '타인의 고독'이라는 제목은 타인의 고독을 통해서 자신의 고독을 역설적으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자신의 고독, 나의 고독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될 거 같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결국은 1995년의 이야기를 쓸수밖에 없겠구나

     그 다음에 '삼풍백화점'이라는 소설 있잖아요.  '삼풍백화점'은 역시 질문들 많이 하세요, 삼풍백화점과 관련해서. 자전소설이냐는 질문 많이 받고 정말 거기서 살아 나오셨냐는 질문 많이 받는데요. 예, 거기 갇혔었던 건 아니구요. 저 생존자 아니구요. 30분 전에 에어컨이 안 나와서 너무나 더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는데요. 제가 탔던 엘리베이터에 타셨던 분들 있잖아요. 그 분들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나요. 엘리베이터걸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타시면서 오늘 왜 이렇게 더워요, 라고 말씀하시니까 엘리베이터걸이 아, 에어컨이 고장이예요. 죄송합니다, 라고 얘기했거든요. 그게 아직도 언뜻언뜻 생각이 나는, 그것이 삼풍백화점입니다.

   자전소설은 맞구요. 이것은 문학동네라는 많이들 아시는 문예지죠? 그 문예지에 젊은 작가 특집이라고 매월 젊은 작가를 선택을 해서 작품들을 싣고 자전소설을 받고 하는 기획이 있거든요. 그 때 제가 2005년이였나요? 그때 젊은 작가 특집을 했을 때 자전소설로 발표했었던 소설입니다. 그런데 문학동네 젊은 작가 특집이라는 것이 제가 문학 공부할 때부터 쭉 봐왔잖아요. 많이 보셨겠지만 보면 자전소설 뿐 아니라 앞에 화보에 어렸을 때 사진도 실리고 그래요. 그래서 문학공부할 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그래, 우리는 무슨 사진을 실을까, 자전소설은 쓰면 어떤 얘기를 쓸까,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어쩌면 등단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꿈의 지면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그런 것인데요. 가끔은 꿈을 이뤘으니까 행복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 그런데 젊은 작가 특집을 한다고 청탁을 받았으니 얼마나 흥분했겠어요.너무 좋아서 드디어 자전소설을 한번 써 봐야지,라고 했는데 진짜 난감했어요. 무엇을 써야 내 개인과 내 문학을 연결시킬수 있을까, 내가 언제부터 과연 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을까. 자전소설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제 길지 않은 인생, 긴 인생인가요? (웃음) 인생을 쭉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기회였는데요. 마감이 5월초였다면 생각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4월말까지 한 줄도 쓰지 않았었어요. 일부러 막 다른 소설을 쓰고 머리속에서는 늘 자전소설을 생각하면서 다른 일들만 막 열심히 했었거든요.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결국은 1995년의 이야기를 쓸수밖에 없겠구나, 그런 결심이 섰는데.


여러분들 청춘은 어떤 곳에 고이 모셔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1995년은 저에게 너무 의미있는 한 해이기 때문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너무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 한 해였기 때문에 그 한 해에 대해서 선뜩 펜이 나가지 않더라구요.젊은 작가 특집은 펑크가 나면 책이 안 나오기 때문에 독촉과 애원과 읍소와 이런 것들을 받은 끝에 마지막으로 겨우겨우 힘을 내서 작업실 문을 걸어 잠그고 3일만에 썼던 소설이 '삼풍백화점'입니다. 정신 차려 보니까 하루에 한 끼나 두 끼, 생생우동을 끓여먹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구요. 저는 일할 때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해서 먹을려고 일한다는 생각이 들만큼 일할 때 정말 많이 먹거든요. 그런데 유일하게 '삼풍백화점' 쓸 때만 낮밤 구분이 없이 3일을 정말 꼬박 앉아서 썼구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가 계속 울고 있더라구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쓰고 있었는데요.

   저는 언제나 소설을 쓸 때, 특히 <낭만적 사회와 사랑> 소설을 쓸 때는 작가와 소설간의 거리는 멀수록 좋다, 작가는 소설 혹은 소설 속 인물에 대해 차가워야 한다, 그런 입장을 쭉 견지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때 3년차 4년차였으니까. 처음의 입장이라고는 온데간데없이 소설에 푹 빠져서 울고 있었는데요. 제가 눈물을 닦으면서 세상에 누가 자신의 청춘에 대해 쓰는데 울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면서 혼자 자위했어요. 그런데 그 청춘이, 여러분들 청춘이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여러분들 청춘은 어떤 곳에 고이 모셔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의 청춘은 삼풍백화점과 함께 어쩌면 폭삭 주저앉아버린 청춘같애요. 언제나.삼풍백화점과 함께 폭삭 무너져버렸고, IMF와 함께 거품처럼 빵 터져버린. 저의 20대를 생각하면 늘 그렇거든요. 그래서 웃으면서는 추억할 수 없는, 웃지만 뭔가 씁쓸한 느낌, 쓸쓸한 미소가 남는 그런 시절이 저에게 1995년인 거 같애요.


사람보다도 이 말하지 못하는 기계가 나를 훨씬 위로해주고 위무해주는구나.
 

   저는 1991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1995년에 졸업을 했거든요.  나이가 다 나오죠. (웃음)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이 그렇잖아요. 대학만 가면 무조건 다 된다. 일단 10대의 욕망은, 10대가 참 몸이나 마음이나 들끓는데 그 욕망을 잠재우게 하기 위해서 가끔은 사회적 음로로서 대학 입시라는 걸 강요하는 게 아닐까.10대들의 욕망을 고삐 풀듯이 쫙 늘어놓으면 사회가 주저할 수 없는 갈등과 혼란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는 대학입학에 매진하는 그런 게 있잖아요. 저도 당연히 모범생은 아니였지만 그나마 그냥 어떻게 어떻게해서 그럭저럭 겨우겨우 대학에 들어갔어요. 이제 장미빛 인생만 펼쳐지리라, 이런 멋진 예감을 품고 딱 학교에 갔어요.

   그런데 아직도 기억 나는데요. 91년 3월 4일 정도 됐을거예요. 입학식하고 처음으로 맞는 수업이죠. 첫 수업인데요. 저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첫 수업이 정치학 개론이였어요. 그런데 그 수업이 아침 10시였거든요. 아침 10시에 딱 갔는데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만 하잖아요. 교수님이 본인의 양복 단추를 어긋나게 끼우시면서 너희는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첫단추를 잘 끼워라, 이런 말씀을 하시더니, 자, 이제 수업은 끝났다. 10시반인데 다음 시간표를 봤더니 3시예요. 10시반부터 3시까지 도대체 어디를 가라는 건지 선생님이 말을 해줘야 되잖아요.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줘요. 다들 너무나 어색하고 뻘쭘한 사이인 과동기들끼리 서로 어색한 얼굴을 마주보며 우리 어떡하지, 이제 어디로 가야되지, 시간이 5시간이 뜨네, 이러면서 결국 어떻게 보냈냐면은요.
너무 어색해하는 동기들와 어색하게 학교 식판밥을 먹었어요. 서로 장식적인 미소를 띄우며 너는 뭐 어느 학교 나왔어, 너는 재수했어....요? 이렇게 하면서 아, 예.... 언니, 이렇게 하면서 보내니까 12시정도 됐는데요. 보니까 또 3시간이 뜨잖아요.

   그래서 마치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양 학교 앞을 쭉 나와봤어요. 학교 앞을 쭉 나오니까 정말 갈 데 없죠. 그 때 저의 눈길을 유혹하는 간판이 하나 있었는데 지하였구요. 명랑오락실이라는 간판이였어요. 이름도 너무 명랑하잖아요. 명랑오락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그래서 3시간동안 오락하면서 그 때 풍미했던 오락이 헥사와 테트리스였거든요. 헥사와 테트리스와 원더보이를 하면서 100원짜리 동전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그 3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냈었던 그런 기억이 나는데요. 그 때 느꼈었던 것이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보다도 이 말하지 못하는 기계가 나를 훨씬 위로해주고 위무해주는구나. 나는 기계 앞에서 훨씬 행복해질 수 있는 인간도 아닌 인간이였구나.그리고 결국은 나를 위로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나는 정녕 혼자 가야하는구나. (웃음) 그런 생각 들었구요.그리고 어쩌면 대학 가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말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굉장히 호되게 뒤통수를 맞았던 기분이 들었죠. 왜 그런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인가.그게 첫날이였는데요. 91년부터 95년까지 제 대학생활이 그 첫날로 상징될만큼 강의실에서 보낸 것보다 돈암동 바닥과 그 명랑오락실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답니다.


저는 주로 기계 앞에서 웅크리고 대학생활을 했던 거 같애요.

   저는 주로 기계 앞에서 웅크리고 대학생활을 했던 거 같애요. 명랑오락실 원더보이 앞에서 나중에 너무 잘하게 되서요. 정말로 대학교 4학년쯤 되니까 제가 원더보이를 100원을 딱 넣고 해요, 그러면 정말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20분 정도 지나면 다 제 뒤에 나서 구경을 했어요. 이게 저런 판이 있었나요? 도끼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날아다니기도 하나요? 할 정도로. 나중에는 오락실 주인 아줌마, 아저씨랑 너무 친해졌구요.

   그리고 PC통신 제가 첫 세대거든요. 하이텔과 나우누리. 그때는 집에 컴퓨터가 한대였는데요. 제 동생이 거의 독점을 하고 안 놔줬기 때문에, 동생 역시 게임을 하느라. 저희 집안이 좀 그렇거든요. (웃음) 그래서 어쩔수없이 전화국에 가면 통신만 되는 통신단말기라는 것이 있어요. 웃으시는 분들은 저와 같이 참 (웃음) 힘든 시기를 보낸 분들인데요.지금 보면 아직도 그게 집에 있어요.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아직도 장롱 위에 있어요. 차마 못 버리겠더라구요. 보면 정말 앙증맞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조그맣구요.오직 아무 것도 안되고 PC통신에 접속만 할 수 있어요. 그런 기곈데요. 다 아시는군요. 그런 기계에 혼자 웅크리고서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레포트 써요, 이렇게 말할 만발의 준비를 하고 채팅방에 들어가서 채팅을 하구요. 그 다음에 동호회에 글 올리고 동호회 모임은 나간 모임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가지 않았어요. 나가지 않고 대학로 KFC 모임이다 그러면 앞까지만 한번 가봤어요. 앞까지만 한번 가서 서로 뻘쭘하고 어색하게 인사 하는 걸 보면서 인사 할까말까 내가 누구라고, 아이디가 마이셀프였거든요. 내가 마이셀프라고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또 그런 숫기가 없거든요. 조용히 돌아오곤 하는 그런 힘든 세월을 보냈답니다. (웃음)


사소하고 자잘한 방황들을 하다보니 1995년이 닥치더라구요.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정말 4년이 뚝딱 갔어요. 한거 방황밖에 없는데요. 정말 제대로 된 방황, 뭐 어디가서 마약이라도 했거나 뭐 그런거나 했으면 소설을 쓸 거나 있지 그런 방황도 아닌 소설로 쓸 수 없는 사소하고 자잘한 방황들을 하다보니 1995년이 닥치더라구요. 그런데 그때는 거품시대였기때문에 다들 취직도 굉장히 잘됐어요. 어찌나 주위 사람들이 취직도 잘하는지. 그런데 취직이 안되더라구요. 참 이력서도 열심히 쓰고 서울에서 증명사진 가장 잘 찍는다는 사진관 찾아가서 증명사진 찍기도 했는데요. 정말정말 취직이 안됐어요. 안되고 오라는 데도 없고, 정말 갈 데도 없고 그래서 삼풍백화점과 서초도서관을 내 집처럼 왔다갔다 했던 그런 시간 95년 상반기예요. 실은 이거는 비밀인데요. 녹화되서 그러니까 말을 안 해야 되나

(작가님이 소설로 쓸 '영업비밀'이라는 걸 강조하셔서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갈께요.
다음에 작품으로 쓰신다고 하셨으니깐 소설로 만나보면 될 거 같애요. ^^)


왜 아무도 그 추억들,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까.

. . . 그럴 때 거짓말처럼 무너져버린 것이 삼풍백화점이였어요. 삼풍백화점은 저한테 너무너무 일상의 공간이였거든요. 집이 근처였기 때문에 삼풍백화점은 저희 어머니가 저녁 준비하시다가 두부 떨어졌다 사와라, 이러면 삼풍백화점 슈퍼에서 샀구요. 어버이날인데 그냥 술 먹고 집에 들어가다가 어버이날이였네, 하면서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들어갔구요. 친구들 만나서 지하 스넥코너 떡볶이 집이 맛있잖아요. 떡볶이랑 아이스크림도 정말 많이 먹었고. 그냥 그런 제가 늘 많이 다니는 학교나 교회나 교회 다니진 않지만, 극장이나 뭐 그런 저의 너무나 일상의 공간이였어요. 그런데 그 공간이 무너지고 무너진건 둘째치고 무너지고 나서 텔레비전에 매일 그 분홍색 건물이 나오는데 그 분홍색 건물은 제가 알던 저의 일상의 공간이 아닌 너무나 엉뚱하게 둔갑되서 명명이 되고 있더라구요. 사치와 향락의 강남의 백화점이라든가 한국 건축 부실 산업의 모든 걸 보여주는 사건이라든가. 그런데 저는 그 개인적인 공간과 갑자기 사회적인 어떤 것으로 탈바꿈한 그 삼풍백화점 사이에서 한동안 너무 낯설고 너무 곤혹스럽고 참 힘들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처음으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일수도 있구나. 사람들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백화점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무너진 곳에서의 추억이 있는데 왜 아무도 그 추억들,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까. 내가 언젠가 그것이 어떤 형식이 되든 소설이든 영화든 무엇이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꼭 삼풍백화점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리라, 그런 다짐을 저도 모르게 10년동안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애요. 그리고 그런 결과가 3일동안 생생우동을 먹으면서 전무후무한 일이예요. (웃음) 제 소설 역사상. 그 다음부터는 왜 이렇게 안 써질까. 한 줄 쓰고 30분 놀고, 두 줄 쓰고 1시간 놀고 이러면서 쓰는데요. '삼풍백화점'의 작업 경험은 저에게 정말 많은 얘기를 해주는 그런 기억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상상해보는 일이 재미있어요.

   그리고 표제작인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도 있죠.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은 원래는 문예지에 '1979년생'이라는 원제로 발표가 됐었던 작품이예요. 전직 대통령 나오는 이야기죠. 사람들 만나면 몇년생인지가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저보다 나이가 많나 적나 서열을 따지려고 하는 것도 약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요. 그 사람이 몇년생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떤 궤적을 따라서 성장해왔을까 하는 과정이 보이잖아요. 그 사람이 초등학교를 나왔는지 국민학교를 나왔는지. 그리고 수능을 봤는지 아니면 학력고사를 봤는지. 아니면 선지원후시험인지 선시험후지원인지, 그거 엄청나게 다르거든요. (웃음) 그 사람이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상상해보는 일이 재미있어요. 그래서 몇년생인지가 참 궁금한 거 같은데요.

   얼마전에 모 대학에 갔더니 대학교 1학년 분들이 88년생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저 너무 놀랬어요. 88년생. 저는 88학번이랑 미팅은 많이 해봤는데. (웃음)88학번이 저랑 세살차이니까. 88학번들이 자기들 꿈나무 88이라면서. 91학번이세요? 72년에도 사람이 태어났나요? 이런 거를 당하다가 88년생이라고 하니깐 화들짝 놀랐어요. 왜냐면 88년에는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였거든요. 그래서 체조경기장 가서 동원돼서 응원했던 생각도 나구요. 제가 용산에 남산에 있는 학교를 나왔는데 몰래 숙대 앞에 나름 번화가였거든요. 동시상영 극장에 가서 몰래 영화 봤던 생각도 나구요. 이름도 생각나네. 파라솔이라는 카페에서 몰래, 저 미팅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웃음) 다른 학교 축제 다니고 이랬던 기억도 나구요. 저 중학교 때 너무 짝사랑했던 선생님이 전교조때문에 해직당하셨다는 얘기 듣고 울면서 찾아가고 했던 기억도 나구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애요.

   이렇게 한 사람안에 어떤 연도, 시간의 기억이 굉장히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경험 이것이 꼭 개인적이다, 사회적이다 나눌 수 없는 그런 혼재된 경험들이 한 사람 안에는 꼭 들어있는 거 같애요. 제 안에도 72년의 기억은 물론 없죠. (웃음) 76년의 기억이 첫 기억인데요. 76년의 기억. 79년의 기억. 88년의 기억. 91년, 95년의 기억. 또 어제의 기억까지 한 사람 안에도 여러가지 기억들이 막 섞여있잖아요. 그래서 그 주인공을 1979년생으로 명명을 하고, 1979년생이 지금 29살인가요? 스물 여덟, 스물 아홉, 이 세대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 같애요. 어떤 분들은 그 소설 읽으시고 이게 무슨 정치적 알레고리냐 너의 정치적 입장이 박정희를 옹호하는거냐,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 사람이 박정희가 맞느냐 그러시는데요. 사실은 저는 그 소설 쓰면서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 없었구요. 그것이 그런 식으로 읽힌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구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애요.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 예전에는 참 어른인 줄 알았어요.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 그런데 지금 이 나이 생각하면 참 애죠. 죄송합니다. (웃음) 애인거 같애요. 지금 스물 여덟, 스물 아홉으로 돌아가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요. (웃음)언제나 참 괴리가 있는 거 같애요. 어렸을 때 생각하는 나이와 막상 그 나이를 통과해보고 나면 나이가 참. 스물 여덟, 아홉 저도 지나왔지만 그 나이, 예전에는 다들 어른이라고 생각했었을까요? 저희 어머니 세대에서는?모르겠는데 제가 그 나이 통과하고 있을 때 저는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 못했어요. 남들이 나를 어른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내가 어른답지 않을까. 나는 왜 아무것도 책임지기 싫고 책임지는 게 두렵고 앞날이 두렵기만 할까.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세상이 여태까지 가라는 데로만 가서 여기에 도착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 그런 게 옳은 일일까. 그런 혼란에 막 부딪쳤었던 그런 날과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었고 지금 79년생 나이를 통과하고 계시는 그런 분들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소설에도 나오는데, 마지막 문장에 있는데요. 주인공 생일이 1979년 7월 7일생이예요. 1979년 7월 7일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그런 얘기를 해요.


어쩌면 세상에는 더 거대하고 더 큰 거짓말로 둘러싸여 있을지 모른다는 거.
 

   우리는 사실은 본인의 근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늘 내가 드러내고 싶은 것만 드러내고,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세상에는 더 거대하고 더 큰 거짓말로 둘러싸여 있을지 모른다는 거. 그리고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과 인식하지 못하는 것 차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진짜 비밀의 공포는 진짜 비밀과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진짜 비밀의 공포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스물 아홉이든 서른 아홉이든. 그 때는 정말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이야기들을 '1979년생'이라는 소설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질문은 시간이 없어서 딱 한 분만 받았어요.)

질문 : 안녕하세요. 80년생 누구입니다. 일단 만나뵙게 되서 반갑구요 소설 잘 읽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궁금한 건 두 가진데요. 하나는 소설을 읽다보면 삼십대 초반의 여성이라든지 삼십대 중반의 남자 같은 그런 사람들의 일상이라든지 감정선 같은 것이 상당히 디테일 하다고 느꼈거든요. 공감도 많이 가구요. 그런 경험해보지 않은 많은 디테일들을 어떻게 얻어내시는지 궁금하구요. 두번째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많은 분들을 위해 조언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정이현 : 80년생 반갑습니다. (웃음) 30대 초반 일상을 제가 왜 경험하지 않았겠어요. 30대 초반을 지나서 중반이라고 팍팍 우기는 나이까지 왔는데요. 저 정말 일상사는 생활인이라니까요. 정말 저 평범하게 살아요. 요새 사람들이 뭐하세요, 라고 많이 물어보면 드릴 말씀이 없을만큼 백수로 편안하게 살고 있거든요. 그냥 그런 감정선 같은 것들은 제가 그렇게 느끼는 제 주변 사람들, 제 주변에는 굉장히 평범한 친구들이 많아요. 직업 얘기하면 자영업과 회사원, 주부로 요약이 되는데요. 어찌나 요새는 자영업들을 많이 하시고 사장님들이신지. 쇼핑몰 사장님들 어찌나 돈들 잘 버시는지 부러운데요. 그런 친구들하고 수다 많이 떨구요. 서로 상담도 많이 해주고 그냥 정말 일상적으로 그런 시간들 많이 가져요. 그런 것들이 소설에 도움이 되나는 잘 모르겠구요. 그리고 사실은 사람들 관찰을 좀 많이 하는 거 같기는 해요. 커피숍 같은 데서도 저의 일행들 대화보다는 저희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더 주의깊게 듣고 있구요. 가끔은 옆자리 분들이 그 영화 뭐지? 그러면 제가 너무 얘기해주고 싶어가지고. (웃음) 그게 뭐거든요. 8월의 크리스마스거든요. 이렇게 막 참견한 적도 있고 그래요. 주위 관찰하고 상상하는 습관들 같은 데 좀 있긴 해요. 어떤 사람 행인이 있으면 저 사람은 어떤 데서 와서 뭐하는 사람일까, 상상을 하고 가끔 상상하다 오버를 하기도 하죠. 그런 버릇이 있는 거 같구요.

  
그 다음에 소설 쓰실 분들 위해서 제가 감히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습작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딱 한가진데요. 그냥 정말 열심히 쓰시라는 거 (웃음) 이거 너무 당연한 말인데 열심히 쓰시라는 거 말고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구요. 열심히라는 말 안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거 같애요. 무작정 벽만 보고 열심히 쓰라는 말은 아닐 수도 있구요. 본인한테 가장 어울리는 것이 뭔지 스스로는 잘 알거든요. 가끔 습작하시는 분들 보면 유행처럼 어떤 것들을 따라하곤 하세요. 제가 한창 공부했을 때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그럴 때였는데요. 그럴 때는 하성란 선배님이나 묘사 많이 하는, 친구들의 소설을 보면 다들 마이크로 묘사로 소설이 이루어져 있었어요. 바람이 분다가 아니라 커튼과 방 안의 풍경을 묘사하느라고 몇 페이지를 확확 넘어가고 그랬는데요. 어쩌면 그것이 꼭 자신만의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런 생각 한번 해보시고 정말 자신의 스타일이 뭔지를 한번 스스로 자기에게 가장 맞는 스타일이 뭔지 그러나 스타일은 곧 주제가 나온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스타일이 뭔지를 고민한다는 것은 내가 과연 이 세상에 무슨 말을 던지고 싶은가, 나는 왜 소설을 쓰고 싶은가하는 근본적인 고민에 맞출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나는 무슨 이야기를 세상에 걸고 싶고 그런 이야기는 무슨 형식에 가장 어울린다는 고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본인만의 무엇인가가 완성되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아직 할 얘기 굉장히 많구요. 저는 질문 많이 하시면 대답해 드릴려고 말 많이 아꼈었는데. 아쉽습니다. (웃음) 나중에 또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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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에는 '오늘보다 즐거운 내일을'이라고 써 주셨어요.
작가님도 오늘보다 즐거운 내일이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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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이번주에 추천된 두 권의 책.
'육체와 영혼의 병'이라는 주제로 소개된 <빌리 밀리건>과 <푸른 알약>.

다니엘 키스의 <빌리 밀리건>
 
이 책은 예전에 어디서 소개된 거 보고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도서신청까지 해 놓고
책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아직 대출을 못했다.
오늘가서 대출해야겠다.
얇은 책인줄 알았는데 600페이지 가량의 두꺼운 책이란다.

빌리 밀리건이라는 실제 인물을 소설화한 것인데
다중인격장애로 24개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란다.
강간과 강도 사건으로 체포되었는데, 그 당시 자신이 정말 그런 끔찍한 일을 한 거냐며
전혀 모르는 일처럼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는 24명의 인격이 있는데, 모두들 이름도 있고 성격도 다르단다.
어린 시절에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면 이런 다중인격장애가 발생하기 쉽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성폭행을 당하거나 폭행적인 죽음을 목격하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하는.
그때의 어린 자아는 끔찍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것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또 다른 자아를 한 명 만들어서 그 일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인다는 거다.
'해리장애'라고 하는데 보통 4-6명의 자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재 연구된 바로는 26명의 자아를 가진 사람이 최대라고 한다.

이 책을 소개받고 패널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다중인격장애를 단지 정신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린시절의 충격으로 이것을 자신의 일로 믿지 않으려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평생을 치유받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게.

우리 모두도 늘 똑같은 모습으로 살지는 않는다.
A를 대할 때의 나와 B를 대할 때의 내가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데 정상인과 해리장애를 겪는 사람의 차이는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란다.
A를 대할 때 했던 내 행동을 B를 대할 때 기억을 아예 못한단다.

꼭 읽어봐야지.

패널 중 이 말이 정말 마음이 아팠다.
다중인격에 대해 좀더 깊이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푸른 알약>

두번째 추천책은 만화책.
작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엮어진 이야기란다.
실제 만화가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아니 HIV 바이러스 보균자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
고맙습니다나 너는 내 운명처럼 눈물을 쏙 빼놓는 감동스토리라기 보다는
HIV 바이러스 보균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고.

실제로 에이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이 많지 않나.
그래서 에이즈라는 말만 들어도 손가락 하나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실제로 에이즈가 전염될 확률은
이 방을 나가 길 거리에서 하얀 코뿔소를 만날 확률이라는 표현이나
조심해서 섹스를 했는데 갑자기 콘돔이 터져버려 남자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밤,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이 이 만화의 장점인 듯 하다.

한 패널이 금방 읽어서 두 번이나 봤다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는데
다른 패널들이 이 만화책은 빨리 읽기보다 대사 하나, 장면 하나 음미해가면서 읽어야 그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왠지 <헤이, 웨잇>이랑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그리고 한 패널이 이야기하면서 언급된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무튼 점점 푹 빠져들게 만드는 TV, 책을 말하다.
매주 닥본사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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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님께.

   대학교 3학년때였던 거 같아요. 국문과에서 신경숙 작가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벽보를 보고는 그 날을 기억해뒀다가 강의실에 들어가 앉아 있었죠. 그 날은 친구들이 모두 다 약속이 있어서 혼자 우두커니 국문과 학생들로 꽉 찬 강의실에 앉아 있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작가님이 도착하시질 않으셨어요. 과대표가 지금 오시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서도 한참이였죠.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면 그 강의실에 있던 백여명의 학생들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어요. 그리고 작가님이 허겁지겁 들어오셨죠. 자리에 앉으시자마자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며 연거푸 사과를 하셨죠. 제게 휴대폰이 하나 있는데, 그 휴대폰을 거의 안 써요. 받지를 않고 걸때만 가끔씩 쓰는데, 로 시작하는 말씀이었던 거 같아요.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고 하시면서 다이어리에 오늘 약속을 꾹꾹 눌러 써 놓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까맣게 잊어버리고 집 앞에 온 손님과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원래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를 않는데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오늘은 받았다고. 그리고 아차, 싶었다고. 그 걸음에 달려와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씀하셨어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해요. 강연회치고는 좀 특이했잖아요. 그 날 아끼고 아끼는 <깊은 슬픔>을 들고가서 제일 앞 장에 사인을 받았죠. 너무나 좋았어요. 좋아하는 책에 좋아하는 작가님이 직접 새겨준 내 이름이 담긴 사인이라니.

   작가님의 책을 처음 본 건 대학교 1학년때였어요. 작가님의 책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를 대학 들어와서 만났는데, 그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었죠. <깊은 슬픔>말이예요. 그 친구는 <깊은 슬픔>을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책을 그냥 덮어버릴 수가 없어서 수업시간에 책상 밑으로 펴놓고 야금야금 읽어나갔다고 했어요. 그리고 며칠을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지냈다고 했어요. 사실 그 친구가 그 때 <깊은 슬픔>의 은서를 닮았던 거 같아요. 여렸고, 언제든 부서져버릴 것같은 감정을 언뜻언뜻 보였거든요. 그 때 나는 그 친구가 어느샌가 말도 없이 도망가 버릴 것만 같아서 항상 불안했던 거 같아요. 학교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가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도 그 친구가 '나, 갈래.'라면서 일어나 저만치 가버리고는 다시는 안 와 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 감정들이 너무 두려웠던 스무 살이었어요.

   그리고 <깊은 슬픔>을 읽고 아득했지요. 좋은 구절들을 다이어리에 고대로 베껴쓰면서 나는 은서가 부러웠어요. 그 나이에는 응당 그러잖아요. 여리고 여린 은서를 닮고 싶었죠. 그녀에게 완과 세가 있는 게 질투가 났죠. 왜 세를 사랑하지 않고 완을 사랑하는지, 세를 사랑한 뒤엔 왜 세가 그녀를 보질 않는지 알 수 없고 아득한 마음뿐이었어요. 나는 친구의 고등학교 시절, 그 때처럼 아득해지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며칠을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라니. 그 친구와 똑같은 감정의 깊이를 가지고 싶었어요. <깊은 슬픔>을 읽고 나서 말이예요.

   그런데 제가 정말 작가님의 글을 읽고 아득해졌던 건 <외딴방>을 읽고 난 후였어요. <깊은 슬픔>을 읽고 작가님의 글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었는데, <외딴방>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저렸어요. 아팠고 아득했어요. 읽는 내내 마음이 욱신거려서 자꾸만 책장을 덮었죠. 덮었다 펴서 읽고, 또 덮었다 펴서 읽었어요. 그리고 며칠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자꾸만 책 속의 글귀들이 생각이 났어요. 구더기가 바글거렸던 언니가 골방에서 죽었던 것, 옥상에서의 놀이. 좋은 구절들이 정말 많았지만, 한 문장도 다이어리에 베껴 적을 수 없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이올렛>을 읽었어요. 사실 <바이올렛>은 끝까지 읽지를 못했어요. 아직까지도. 책을 서점에서 샀었는데, 그 책을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기도 버거웠어요. 자꾸만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들을 읽어내려갈 수가 없었어요. 나는 스무살 때보다 좀 더 밖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다 읽지 못한 책은 아는 언니에게 선물을 했어요. 빌려줬었던 건지, 선물을 한건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은데 책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니 선물을 한 거 였던 거 같아요. <바이올렛>을 다 읽지 못하면서 나는 이제 한동안 작가님의 책을 읽지 않겠다 다짐했어요. <깊은 슬픔>을 닮은 제 친구도 작가님의 글들이 이제 마음을 버겁게 한다고 했어요. 아, 그 친구는 이제 <깊은 슬픔>의 은서를 닮지 않았어요. 그 친구와 나는 둘이서 무슨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지 않게 되었어요. 물론 작가님이 그 뒤로 장편소설을 발표하지 않으신 이유도 있지만요. 아, 그 친구가 <바이올렛>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그리고 <리진>이군요. 작가님의 말씀대로 저도 작가님과 역사소설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리진>을 읽게 된다면 출간되고 아주 오랜 후일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매번 도서관에서 대출 중이던 책이 어쩌다 제 손 안에 들어왔어요. 꽤 많은 사람의 손을 타 벌써 손때가 많이 묻은 책 <리진>을 그렇게 읽게 되었어요. 두권을 단숨에 읽어내려갔어요. 그리고 친구가 <깊은 슬픔>을 읽었던 그 때처럼, 제가 <외딴방>을 읽었던 그 때처럼, 저는 또 아득해져버렸어요.

   책을 읽기 전에 KBS에서 해준 역사스페셜 형식의 리진 편을 본 적이 있어요. 재연을 한 리진역의 배우가 파리에서 외국인들에 둘러싸여 시선을 떨어뜨린 채 쓸쓸한 얼굴로 앉아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왕의 여자가 프랑스 외교관과 함께 파리로 떠났지만, 그 프랑스 외교관의 남아있는 여러 기록들 중에서 조선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나 그에 관련된 기록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수집한 조선과 동양의 물건들이 조그만 박물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영상들을 보았지요.

   작가노트에 작가님이 그렇게 쓰셨죠? 작가님이 하신 건 리진을 아기나인의 신분으로 궁궐에 들여보낸 것까지만인 것 같다고. 그 뒤로 리진은 제 스스로 소설 속의 리진으로 움직였다고.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리진이 어릴 때 궁궐을 들락날락한 뒤로 책을 읽고 있는 제 옆에 가만히 앉아서 함께 이 책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여쁘고 가련한 여인이 옆에서 불어를 노래하기도 하고, 팔을 곱게 뻗어 춤을 추는 동작을 하기도 하고, 어느 구절에서는 책을 읽고 있는 저를 빤히 들여다보기도 했어요. 그리고 파리에서의 리진은 가만히 제 옆에 앉아 티비의 재연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선을 떨어뜨린 채 쓸쓸한 얼굴로 저를 보아주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지요.

   제 마음이 아득해진 건 주로 왕비와 함께 있는 리진을 볼 때였어요. 콜랭과의 사랑이 끝났을 때보다 왕비의 고립무원 마음을 마주했을 때의 리진, 왕비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했을 때의 리진의 마음이었죠. 콜랭의 <레미제라블> 속 향낭과 같은 사랑보다 왕비의 속이 새하얀 배를 숟가락을 퍼 먹여주는 사랑에 더 마음이 갔어요. 그래도 콜랭이 리진에게 보낸 마지막 서신과 리진이 보낸 마지막 서신을 찢어 없애버린 콜랭의 마음은 이해하기야 하지만 결국 그는 타인이었다는 씁쓸한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네요. 정녕 남녀간의 사랑이란 그리 허망한 것일까요? 홍종우의 사랑도 그랬듯이요.

   작가님. 이 말도 안되게 길기만 한 편지글에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을 보냅니다. 사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었는데, 괜한 말들로 이렇게 길어져 버렸네요. 어제 비가 내렸고, 저는 달거리를 시작했어요. 아랫배가 시큰거리게 아프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책장을 마쳤습니다. 집 앞 도서관의 큰 책상 앞에 앉아서 읽었는데, 시간이 다 되어서 그런지 늘 꽉 찼던 도서관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작가노트는 집에 가서 읽을 요량으로 남겨두고 책을 덮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왕비가 시해당할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는데, 콜랭의 에필로그까지 읽으니 참을 수가 있어야죠. 밑으로 내려가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꺼내 마시면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양을 보고 있었어요. 순간 아득해지는 마음이 편안해지더니 행복해지더라구요. 작가님께 고맙다는 생각뿐이었죠. 리진은 정말 작가님의 몸에 꼭 맞은 옷이었어요. 저는 비록 허구이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리진을, 작가님의 리진으로 기억할래요. 김탁환 작가님의 <리심>도 언젠가 읽어보고 싶지만, 리진은 작가님과 더 닮아있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일찍 <리진>을 읽었으면 출간 후에 있었던 여러가지 행사에 참석해서 <리진>의 첫 장에도 제 이름이 새겨진 작가님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요. 그래도 가을이 오는, 이 쓸쓸해지는 계절을 맞이하는 이 즈음이 제게는 더할나위없이 리진을 읽기에 좋았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만나게 되면 <리진>의 앞 장에도 사인 부탁드릴께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반납하고, 제 책으로 사서 두려구요. 지내다 리진이 보고 싶어질 때면 책장에서 꺼내서 읽으려구요. <깊은 슬픔>을 한번 꺼내서 읽기가 왠지 망설여지는데, <리진>은 그렇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럼 작가님의 사인 앞 글귀처럼
    작가님, 좋은 일 많으세요.

2007년 9월 6일
작가님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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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네

from 서재를쌓다 2007. 9. 4. 17:24
견딜 수 없네
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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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흐린 날
가만히 읊조리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견딜 수 없기에
견디고 있는 역설적인 세상과 시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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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동네에 생긴 조그마한 주점은 통영에서 직배송한 싱싱한 해산물들을 내어놓습니다. 어느 날 주점 앞을 지나가다가 원목의 기둥 위에 커다랗게 써져 있는 '활우럭구이+생맥주, 환상적인 조합'이라는 메뉴를 보고 동생과 입맛을 다지며 들어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바삭하게 구워지는 생선구이를 보면서 생맥주 500cc를 나란히 마셨습니다. 생선의 살점과 맥주의 조합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제법 통통해보였던 생선의 살점이 숯불 위에서 바삭하게 구워지면서 날씬해져버리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점점 줄어가는 살점을 아쉬워하며 맥주를 들이키고 있을 때, 주점의 주인이 와서 생선을 뒤집어주며 말합니다. 머리에 붙어 있는 살이 제일 맛있으니 꼭 챙겨먹어요. 나는 그만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을 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분홍 리본의 시절>을 읽으며 참 많이도 침을 삼켰습니다. 7편의 단편 속 인물들은 늘 무언가 요리를 하고 그것들을 맛깔스럽게 먹어 치웁니다. <가을이 오면>에서 밥과 김치만으로 아삭하고 물컹하게 만든 김치볶음밥,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서른이 된 주인공이 매일 프라이팬 위에 구워 먹었던 비릿한 조기 두 마리, <약콩이 끓는 동안>에서 순천댁이 매일 새벽 끊여대던 약콩물, <솔숲 사이로>에서 사내와 함께, 그리고 사내가 떠난 후 구워댔던 고기와 솔잎 술, <반죽의 형상>에서 주인공이 끊여먹던 흰죽은 책을 읽은 그 날 집에 돌아와 뚝배기에 긴 시간 들여 끓여 먹기도 했습니다. <문상>에서의 맥주와 곱창, 그리고 <위험한 산책>에서의 매콤한 뽈찜과 소주.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당장 소설 속 그네들 틈에 끼여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그네들이 먹고 마시는 그것들을 고스란히 나도 맛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음식들을 먹고 나면 세상이 좀더 편안해질까 하는 생각, 적어도 이 음식들을 먹는 순간에는 세상이 좀더 아늑할 거라는 생각, 그래서 이 음식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어 삼키고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소설들을 천천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들에서 어김없이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은 나를 불쾌하게도 만들고, 나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것들은 못난 나였기 때문이예요. 못난 내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어 나는 그런 나를 읽어나가는 것이 불편하고 불쾌했고, 그런 나의 모습이 작가에게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있을 거란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에서 변화가 싫어 대학원에 그대로 진학했고, 어느 순간 보니 곁에 아무도 없더라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랬고,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선배의 아내가 '내가 그렇게 만만했니, 니들?' 이라고 뱉은 후의 주인공이 말하는 건지, 선배의 아내가 말하는 건지,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말하는 건지 헷갈려고 뜨끔했던 긴 문장들이 그랬고,  <약콩이 끓는 동안>에서는 밑줄을 어중간하게 그었던 여학생이 그랬고, <솔숲 사이로>는 사내가 온 뒤 그를 질투하고 사내가 떠난 후 그를 그리워하던 단식원 식구들의 막막함이 그랬습니다. <반죽의 형상>은 정말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이 짧은 단편을 읽는 동안 지난 6개월 동안의 나와 내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대학시절을 생각했고, 우리가 함께 타고 다녔던 지금은 사라져 버린 725버스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재의 뒤편에서 내리는 일이 없기를 바랬습니다. 언젠가 소설 속 N와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늘 내리던 정류장이 아닌 집의 뒤편의 정류장에서 내려 오랜시간을 헤맨 적이 있어요. 집과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1시간 동안 헤매고 있었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서, 이제는 또렷하게 알고 있는 집 뒤편의 길을 오랜만에 한번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문상>에서의 선배니임도, 선배니임이라고 바짝 달라붙는 그녀도 모두 나와 같아요. 그리고 <위험한 산책>에서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도.

   나는 작가가 채식주의자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책을 읽는 틈틈이 앞장으로 넘겨 작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몇 년전, 한강의 소설집을 처음 읽을 때도 그랬어요. 고기를 먹지 않고 심지어 화분의 식물로 변해버리는 주인공이 담긴 글을 읽어나가면서 계속 앞장을 넘겨 작가의 얼굴을 자세하게 들여다 봤습니다. 한강도 그랬고 권여선도 조그마한 체구에 굉장히 말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빛이 아파보여요. 어쩌면 고기를 즐겨 먹고, 조그만 체구도 아니고, 무언가를 늘 탐하는 눈빛을 가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녀들과 같은 글은 쓰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젯밤 악몽을 꾸었어요. 괴물이 쫓아오거나 어딘가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그런 꿈은 아니었는데,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등장했고 그녀가 내 마음에 상처를 냈어요. 꿈 속의 나를, 아니 현실의 나를 치욕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깨어난 일요일 오전,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여전히 마음이 찢어지는 이런 날, 나는 <분홍 리본의 시절>을 다시 꺼내 들고 어떤 부분을 읽어내려갑니다. 이 문장들이 내게 위로가 됩니다. 조기의 검붉은 혀가 괜찮다고 잘 될거라고 말하면서 사라지는 것만 같은 아득한 느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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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내게는 소설보다도 작가의 말을 더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아마 <은어낚시통신>을 읽었을 때였을 거다. 은어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작가의 말이 있었다. 세세한 구절들이 떠오르진 않지만, 나는 한 장 남짓의 소설가의 시같은 작가의 말을 읽고는 책을 그냥 덮어버리지 못하고 그 구절들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뒤로 윤대녕의 예의 그 감성적인 글의 촉감들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작가의 말을 남겼을까 기대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소설을 끝나기 전에는 절대 뒤로 넘겨 먼저 읽지 않는다. 작가의 말은 소설이 끝난 다음에 읽는 것이 가장 빛나므로.

   사실 이러면서도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내가 읽은 그의 글들은 <은어낚시통신>, <눈의 여행자>, 그리고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했던 <열두명의 연인들>과 이번에 읽은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이다. 윤대녕은 적어도 내게는 그냥 마구잡이로 손이 가서 읽기 시작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는 조금은 별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가을이 오거나, 겨울이 한창인 어느 날에 읽거나 마음이 서늘하거나 누군가 내 어깨를 보듬아주는 꿈을 꾸고 싶은 깊은 밤에 읽는 것이 좋다. 지나치게 행복하거나 불행한 순간보다는 적당히 쓸쓸하고 스산한 마음이 드는 날 그의 글에 손이 가고 마음이 간다.

   이번 소설집도 계절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던 여름이었지만, 마음은 스산했던 그런 날에 읽었다.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을 나는 돌아오지 않는 제비를 기다리는 소슬한 마음으로 읽었다. 어쩌면 돌아왔으나 너무나 세월이 흘러버려 그의 모습이 맞는가 헤아려보는 모습이 안타까워 촉촉해지는 마음으로 읽었다. 시간은 늘 흐르고, 우리는 늘 돌아오지 않을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위로받고 살아가지 않는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돌아올 거라고 믿는 가혹한 희망으로.

   '연'의 정연은 해운을 기다린다. 해운이 미선과 함께 멀리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그가 다시 돌아와줄까하는 바램을 숨기지 못하고. 나는 '연'을 읽으면서 결국 정연은 해운을 마음 속에서 지웠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 속 '나'는 정연을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만나도 여전히 해운을 그리워하는 정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연을 통해서 해운을 생각한다. 하늘 위에 무수하게 띄운 연처럼 우리의 기억들과 인연들은 가느다란 실 한가락으로 이어져있고 끊어지기도 하고 얽혀 버리는 것이라고. 마지막 눈이 내리는 겨울 하늘의 연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제비를 기르다'는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듯 항상 집을 나가서 어딘가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던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를 그리워했던 내가 있다. 나는 주인공이 늘 두 명의 문희, 아니 세 명의 문희를 그리워했지만, 정작 그가 그리워한 건 유년기 시절 그가 느낄 수 없었던 어머니의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자신의 역마끼를 억제하지 못해 바깥으로 떠돌았지만 평생 남아있는 남자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생각하지 못한 어머니. 어머니가 외로웠기에 아버지도 외로웠고 '나'도 지독하게 외로웠던 것이다. 마지막, 문희의 선술집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던 '나'는 유년기의 '나'인 것이다. 그 때 외롭다고 고독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울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이 든 후에야 폭발한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외롭다고.

   '탱자'를 읽으면서 나는 계속 잔물결이 치는 통통배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어떤 때는 말할 수 없이 잔잔하고, 어떨 때는 금방 배가 뒤집힐 것만 같은 강한 파도에 휩싸이는 바다 위에서 고모가 말하는 거다. 내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인생이 이런 거더라. '탱자'속의 고모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를테면 '귤이 탱자가 되는 날, 돌아오겠소' 라는 따위는 무의미하고 기약없는 배신을 당했다. 결국 마음 줄 곳도, 늙은 육신 하나 추스릴 곳 없이 쓸쓸히 인생은 마감한다. 인생은 이런 거더구나.

   이번 소설집에서 누군가의 부재가 많았다. '제비를 기르다'에서는 어머니의 부재, '편백나무숲 쪽으로'에서는 아버지의 부재, '고래등'에서도 엄연한 아버지의 부재였다. 그리고 '낙타 주머니'에서도 동료의 부재로 끝난다. 그 부재로 인해 빈 자리가 생기고, 그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소설은 고독하고 쓸쓸해진다. 특히 '낙타 주머니'에서 죽은 동료가 참을 수 없이 그리워지던 어느 날, 그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하늘나라의 동료에게 전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주인공이나 그 메세지를 고스란히 듣고 있는 동생의 마음이란 우리는 고독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지만, 내 떨리는 어깨를 보듬아줄 사람 한 명쯤은 이 세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소설 속 '나'에 실제의 나 자신을 대입시켜본다. 지독하게 그립고 외로운 존재인 '나'에 나를 집어 넣고나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고독한 우리가 된다. 얼마나 나이가 들어야 우리는 고독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얼마나 그의 글들을 읽어야 고독하지 않은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을까. 이번 <제비를 기르다>의 작가의 말처럼. 그도 그립기 때문에 글을 써 나가고 있고, 우리도 무언가가 그립기 때문에 그의 글을 끊임없이 읽고 있다. 지금은 출렁이는 통통배 위지만 언젠가 그게 육지든 섬이든 하늘이든 어디든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움으로 우리도 작가도 살아가는 것이라고 작가의 말을 덮으면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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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4일 금요일,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있었던 황석영작가 강연회에 다녀왔다. <바리데기>를 읽고 정말 좋아서 꼭 강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예스24에서 당첨이 됐다. 좋은 책 선물도 받고, 작가님의 좋은 말씀도 듣고, <바리데기> 첫 페이지에 싸인도 받아왔다. 작가님의 이야기들을 다 받아적을 수 없을 것 같아 녹음을 했다. 두고두고 가끔 꺼내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태해질 때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  

   역시 황석영은 시원한 여름철 폭포수 같다. 어찌나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잘 풀어내시는지 집에 와서 다시 들어봐도 버릴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말씀 중에 내 마음에 콕 박혔던 좋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정확하게 받아 적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부족하겠지만 이 글 보시는 분들이 강연회의 좋았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길 바라면서.



전쟁을 겪은 자는 이미 젊지 않다.

- 해병대를 갔습니다. 가서 베트남까지 끌려갔는데, 베트남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합니다. 제가 어딘가에 뭐라고 썼을 거예요. 전쟁을 겪은 자는 이미 젊지 않다. 젊은이가 아니다.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젊은 나가 아닌거죠. 그래서 그 때 전쟁의 상처가 굉장히 컸던 모양이예요.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마당에 가서 포복도 하고, 또 아우가 지나가면서 팔을 잠깐 밟고 지나가는데 그냥 화병을 집어 가지고 때렸는데 여기 한 이십바늘을 꿰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사님을 불러다가 안수기도도 하고. 하여튼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베트남에서 사회라든가 또는 아시아의 여러가지 상황이라든가 이런 데 눈을 돌리게 됩니다.


장벽 옆에서 아름다운 개인을 발견합니다.

- 11월달 됐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거예요. 장벽이 무너지던 날, 제가 장벽 입구에서. 인파가 몰려오는데 아시아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전부 다 백인들, 독일 사람들. 그 사람들이 서로 노래 부르고 샴페인을 막 터뜨리고 서로 주고 받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부르고 막 울구 이런 거를 보면서 그 때 장벽 옆에서 아름다운 개인을 발견합니다. 아, 개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때 세계가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죠. 세계는 분명 변할 것이고, 내가 하고 있는 예술 장르로써의 소설, 산문도 변화를 해야 할 것이다 생각을 합니다. 그 때 남긴 기록들은 모두 산문의 변화로 남아있죠.  


굉장히 치열한 일상인데 상태는 죽음하고 비슷하죠.

- 그리고 인제 돌아와서 어쩔 수 없이 망명을 한 5년 하고 나서 5년동안 독방에서 감옥살이를 하는데. 이때는 일상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제가 모험을 한다든가 여행을 다닌다든가 어려움을 겪는다든가 이런 거는 잘 참아요. 아주 재밌어하고.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 앉아 있어라 하면 거의 미칠정도가 됩니다. 성격상.  5년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있으래요. 집필도 하지 말고. 다만 이 일상이 지하철 타고 왔다갔다하는 일상이 아니고 굉장히 치열한 일상인데, 상태는 죽음하고 비슷하죠. 저만 세상에서 빠져있고, 제가 아무런 영향력도 세상에 끼칠 수 없고, 그리고 혼자 앉아 있는데 저에 대해서 누구도 욕하거나 신경쓰지 않고 이거 죽음의 형태하고 똑같아요. 나만 빠져있으니까. 그 때 자기 안에 있는 많은 것을 정리를 합니다. 정리를 하고 그리고 일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죠. 나는 평상심이라는 걸 그전에 잘 몰랐는데 감옥 안에서 그걸 봅니다.  

다른 일상하고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읽어야지 진짜 독서지.

- 독서도 그렇습니다. 독서도 우리가 집에서 책 보다가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애인도 만나고 주부들 같으면 아이들 학교 데려가고 오고, 하여튼 그 무엇인가 다른 일상하고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읽어야지 진짜 독서지. 독방에 앉아서 책만 보면은 커뮤니케이션이 세상하고 끊기기 때문에 관념의 줄거리가 이렇게 남습니다. 대개 보면은 징역살이를 하다 나온 사람의 특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몸이 안 좋아지고, 두번째는 굉장히 신비주의라든가 일상에서 벗어난 어떤 것에 빠지다는 거. 관념화되죠.


한국교도행정의 일대승리구나.

- 내가 펑크도 잘 내고 작품도 쓰고 싶으면 쓰고 말고 싶으면 말고 했는데 제가 98년에 석방되서 나온 뒤로 펑크도 한번도 낸 적이 없고 약속도 꼭 지킵니다. 생산을 반드시 하는 거. 그래서 어느 선배편집자가 그런 얘길하더군요. 아, 황석영 케이스를 보니까 한국교도행정의 일대승리구나. (웃음)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할까요, 넓어졌다고 할까요.

-  그리고나서 제가 물론 해외에 한 5년동안 망명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 때 남북으로부터 다 벗어나서 남북 어느쪽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처지였기 때문에. 망명이 완결되는 것도 아니고 지명수배자로써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이나 국가라든가 민족이라든가 이런 거로부터 다 왕따를 당해 있었죠. 그래서 아마 베를린 망명 시절에 국가주의라든지 민족주의라든지 이런 꾀죄죄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났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작가의 자유, 창작의 자유라든지 이런 거를 굉장히 이상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구요. 제가 그리구선 오는 10월달에 완전히 들어오는데, 지난 2년동안은 런던에 있었고, 그 다음에 1년 8개월 파리에 있었는데. 지난 번에 망명하고 있을 때보다 이번에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때보다 내가 훨씬 나이가 많았고, 그리고 지금이 그 때보다 훨씬 자유로운 입장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되고 교류도 하게 되고 해외문학과 교류를 하면서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할까요, 넓어졌다고 할까요. 그런 것을 느낍니다.


다만 작가에게는 조국이 있다. 자기 모국어가 조국이다.

- 저하고 아주 가까운, 나이가 저보다 두세살 위인데 르클레지오라고 불란서 작가가 있습니다. 요새 아주 유명한 작간데. 해마다 노벨상에 이름이 오르는 친군데. 그 친구하고 무슨 행사를 같이 하다가 아주 재밌는 얘길 들었어요. 그 친구가 뭐라고 하냐면 '작가는 국적이라든가 인류라든가로부터 구애받지않는 존재다. 다만 작가에게는 조국이 있다. 작가의 조국은 뭐냐, 자기 모국어가 조국이다.' 아, 그 얘기 근사한거야. 그래서 그거 내가 다음에 써 먹을게. 그러니까 아까 제가 세계시민이 되겠다 한 거는 한반도와 나의 문제를 세계사람과 공유하겠다,하는 의미와 더불어 나의 조국은 모국어다. 모국어가 나의 조국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야, 넌 내꺼 니가 써 먹고 니꺼 뭐 써 먹을 거 없냐, 그래서 한 수 가르쳐 준 게 그럼 지금 나는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제가 대꾸를 했죠. 세계는 지금 이런거다. 가령 이를테면 여러분들 철이 바뀔 때에 철새들이 날아갈 때, 제비가 온다든가 간다든가 특히 떠날 때 그런 걸 많이 보게 되는데, 떠나게 되면 철새들이 전봇대면 전봇대, 전기줄이면 전기줄에 이렇게 쫘악 모여서 앉죠. 일정하게. 무리를 이루어 앉는데, 계속 몰려들죠. 그러면 계속 몰려 앉는데, 그러다가 꽉 차죠, 그 공간이. 그런데 한 무리가 또 날라오면 옆에 이렇게 비켜서 앉으라고 옆으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이 새들이 일제히 같이 떠버립니다. 그래서 허공을 돌다가 다시 공간편성을 해서 쫘악 앉죠. 꼭 그러더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세계가 이렇게 새들이 떴다고 본다. 떴다고 보는데, 떠서 막 돌고 있다. 그런데 이게 탁 내려앉는 거, 내려앉는 데 나의 문학이 관계하고 기여하고 싶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그 친구가 아, 그건 내가 좀 써 먹어야 겠다, 그렇게 얘길 하더라고.


2차대전 이후에 당신같은 작가가 서구에는 없다.

- 내가 200  한씨연대기하고 삼포가는 길 등등의 단편집이 불란서에서 처음 나왔는데, 그 때 얘기 들었던 것은 이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2차대전 이후에 당신같은 작가가 서구에는 없다. 뭐냐면 한번 겪기도 힘든 전쟁을 두 차례씩, 한번은 유년기때 한국 전쟁, 청년기때 베트남 전쟁, 이렇게 두차례 전쟁을 겪고, 그리고 수십년동안 군사독재에 시달리고 싸우고, 방북하고 징역을 가고 말이지. 광주에서 광주항쟁을 겪고 이런 등등의 이를테면 현장과의 또는 현실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서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없죠. 제3세계에서는 있는 일이예요.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그런 작가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서사의 힘, 이런 거에 서구문학은 감탄을 하는거죠.


나하고 다른 것을 알기 위해서 읽는다

- 내가 가서 겪어보면 서구의 독자들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왜 내 작품을 읽습니까, 라고 되물어보면 대부분이 나하고 다른 것을 알기 위해서 읽는다, 그리고 서사의 힘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고전 속에서 그런 걸 보는데, 현대작가들 속에서 그런 작가를 찾아내기가 매우 드물어졌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물론 그러나 그 중에 아주 좋은 작가 몇은 아주 번쩍이는 서사의 힘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전사회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는 거는 사실입니다.

- 최근에 와서 한국 문학이 끝났다, 한국 문학 위기다, 이렇게 하는 위기론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고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고 한 10년 단위마다 이런 얘기를 해 왔어요. 뿐만 아니라 서구 문학은 20세기 초부터 문학예술의 위기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건 뭐냐면 시대 상황이 변화하고 어떤 시대가 확 변하고 그럴 때 미처 적응하지 못한 문화예술적인 자기 위기감을 스스로 고백하는건데, 변화할려고 그러는 와중에 대부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엄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그런 경향의 와중에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변화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우선 미디어가 변화하고 있구요. 책 읽는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금년에 들어와서 우리가 전사회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는 거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야.

-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야.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시집이 서점에 꽂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집이 몇 만 부씩 또는 가끔 가다 교통사고씩으로 한 백만부씩 정도 판매실이 나올 정돕니다. 우리나라가 참 이상한 문화적인 열기를 가진 나란데, 어디 지금 대학이 아니고 강제로 대학이 학점준다 다나와라, 어디 독자와의 대화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나오는지 없습니다. 전 세계에. 굉장히 우리 문화적인 역량이나 열기가 있는 나랍니다.  저는 말이죠. 프랑크프루트 도서전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얘기하다가 나는 지금도 보통 몇십만부씩 나간다. 지금도. 지금 책 안 읽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러면 거기 출판인들이나 작가들이 깜짝 놀랍니다. 어유, 몇십만부나, 그것도 대중소설도 아니고. 나는 얘기하죠. 글쎄,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나라 출판종류가 연말에 교보
에서 나오는 출판연감이 전화번호부만큼 나온다. 그 해 나온 책이. 깜짝 놀라죠. 우리나라가 출판 세계 7윕니다. 엄청난거죠.


서사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회복되는 서사를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내려는 노력

- 한국 문학이 위축된 건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이 독자들보다 작가들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90년대 이후의 현실로부터 멀어져서. 개인이랄지 내면이랄지 어떤 작은 하찮은 개인의 행동이랄지 일상, 이런 것들 굉장히 중요한 가치인데 그전에는 그걸 대단히 무시했죠. 무시하고 집단, 공동체, 책임, 조직, 의무, 도덕성. 그런데 이게 가치 있어야 된단 말이예요. 가치. 개인의 행복, 개인의 일상, 개인의 내면 중요하지만 이들이 서로 만나서 이루는 사회적 관계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거는 놓치지 말자, 우리가. 이게 제 지론입니다. 그래서 90년대 청산주의처럼 한참 진행이 되니까 그만 지루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독자들이 떠나죠. 독자들이 많이 떠났습니다. 지금 옛날에 10분의 1밖에 안되요. 옛날에 출판이 십만부 나갔으면, 지금은 백만부 나갑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느냐. 다 미디어나 다른 매체로 떠났죠. 특히 영화쪽으로 많이 간 거 같아요. 영화가 손쉽고, 그러니까 영화는 가만 보세요. 그동안의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는 영화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라, 열개에 한 여덟편은 서사와 현실을 가지고 있어요. 서사와 현실, 이 두가지 요소가 그래도 영화에서는 갖춰져 있단 말이예요. 한데 이 두개를 다 무시했던 거 같애요. 한국 문학이. 처음엔 서사를 무시했고, 그 다음엔 현실에서 멀어졌습니다. 자기하고 상관이 없는데, 아니 이 여자와 이 남자가 만나서 이렇게 해서 삼각관곈데 이게 언제 해결될까 하는 게 지금 젊은 사람들 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생활현실하고 거리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점점점점 책 안 보고, 그 다음에 다른 인터넷이라든가 위력적인 매체들이 나오기 시작하죠. 그래서 서사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회복되는 서사를 현실하고 접점을 찾아내려는 노력, 이게 둘 다 필요하다고 보는데. 저는 그런 노력을 징역에서 나온 뒤로 지금까지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이렇게 먹고 살만하게. 많이는 안 생깁니다. (웃음) 그저 품위유지하면서 살아갈 정도로 생기니까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서 다 팔아 때려 치워 가지고, 소설 때려 치우고 더 재밌게 낚시질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이러면서 살텐데, 적당히 먹고 살만큼만 돈이 생기니까 글을 열심히 쓰게 되요. (웃음) 사실은 도스트예스스키니 발자크니 다 빚 갚을려고 평생 그러다가 꼴까닥하니까 빚도 다 못 갚고 죽고 그런 식인데. 뭐 하여튼 저는 작가로서는 굉장히 다행이였다고 보고, 소비가 막 피어나던 시기에는 망명을 갔거나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었다. 작가로서 굉장히 운이 좋은 거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가 사라졌느냐. 사라지지 않았어요.

- 시적서사의 특징이 뭐냐면 지금 시가 현대사회에서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는 전통이 있어서 읽고 그러는데, 서구에서는 서점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래예요. 시 독자는 없습니다. 있죠. 있긴 있는데 그게 우표수집 동호회 이런 식으로 있는거죠. 그래서 한 이삼백명. 저희끼리. 그래서 대학이라든가 연구소, 또는 재단 이런데서 이천유로 삼천유로 지원이 나가면 그걸로 팜플렛처럼 만들어서 자기네들끼리 돌려봅니다. 그런데 시가 사라졌느냐. 사라지지 않았어요. 시가 이동해서 어디론가 간거죠. 그래서 보니까 시가 광고카피라든가 또는 시적영상이라든가 이런 데로 옮겨간거예요. 시적 이매지네이션의 홍수 속에 있는 거예요. 시적 이미지의 홍수에 우리가 있는데 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죠. 시인들이 만약 이런 현상을 적극화할 수 있다면 시가 또다른 매체에 뛰어들어서 살아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어느 외국현장 강연회장에서 그랬더니 나중에 그걸 따로 인터뷰를 하자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얘길한 적이 있습니다. 광화문에 지나가다 보면 교보빌딩 위에 시 구절이 한 계절에 한번씩 바뀌고 있는데 그거 굉장히 위력적이예요. 그런 거 느끼지 않으세요? 아, 좋다. 가령 이를테면 전광판 흔한데 그냥 두지 말고 저걸 우리가 사회적으로 약속을 해서 짧은 시 한 두 세줄짜리를 쫘악 흐르게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출근하면서 보고 인생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고. 오래 말고 잠깐 생각하고 지나가고. 시적영상도 많이 만들 수가 있죠. 그렇게하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하여튼, 어쨌든. 그래서 시가 가지고 있는 함축성, 메타포, 그리고 긴장, 짧게 하고 길지 않아서 생기잖아요. 길면 긴장이 안 생기죠. 자세하게 보긴 하는데 가만 있어 이게 무슨 소리지? 긴장하는 거죠. 이거하고 산문의 여러가지 스토리로서의, 줄거리로서의 디테일을 결합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건 우리가 어렸을 때, 문학청년일 때 이런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가령 시에서의 산문시, 시에서의 서사시라든가.


산문이 영상으로 가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아하, 산문이 영상으로 가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자기 장르 내에서 산문이 변화하는데 이거 영상화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또는 대본. 우리가 보세요. 카메라를 갖다대면 렌즈가 프레임이 딱 생기잖아요. 이거는 마차에서 내리면 탁 한 컷만 보여주면 프레임 바깥에 있는 건 안 보여줘도 되죠. 왜, 프레임 바깥에 있는 건 시청자 또는 독자가 머리 속에서 상상하니까. 씬에서의 이미지를 딱 하면 된다말이죠. 그러면 이 씬과 이 씬이 만나 연관이 안돼, 연관이 왜 안돼, 이 문장이 이 문장이 만났는데 연관이 안돼? 연관이 왜 안돼요. 영상을 해서 그 사이의 여백은 작가의 이미지가 채워준다 이 말이예요. 우리가 시를 읽는 것도 그렇거든요. 그런 식으로 진행을 할 수 있다, 시적산문이라는 것은. 그래서 바리데기같은 저런 대서사는 아마 옛날같으면 최소한 다섯 권은 써야되죠. (웃음) 이북에 있을 때 한 권, 중국에 있을 때 한 두 권, 밀항하는 과정에서 반 권, 또 정착하는 과정에서 또 반 권, 런던... 한 다섯 권은 써야 양이 차는건데 저거 딱 보면서 섭섭하다고 그래요. 옛날식의 독법, 옛날식 습관이 있던 사람들은 아, 섭섭해. 우리가 시 한 편 읽고 섭섭하다고 그러니까 외우기도 하고 남고 그러는거죠. 이게 말하자면 장면과 장면이 부딪쳐서 말하자면 독자가 자기 이미지 속에서 여백을 채운다, 이걸 뭐라고 그래요? 영화에서. 이걸 몽타주라고 그러죠. 미장센, 몽타주라고 그러죠. 그런식으로 영상화되어가는 과정에 있지않나. 영상의 컨텐츠화에 서 있지 않나. 이게 시적서사의 비밀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직업작가로서의 젊은 작가, 나는 보고 싶습니다.

-  네. 아주 좋은 얘기예요. 저랑 생각이 똑같애서 저도 그렇게 보거든요. 말하자면 현실을 읽어내기는 읽어내는데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독자와 얘기할 것인가에서 걸리는 것 같애요. 그리고 요새 독자하고 작가를 연결시켜주는 평론가들도 문젠데, 너무 어려워. 내가 글을 45년 쓴 사람이예요. 45년 동안, 그 생활의 달인이라는 거 있잖아. 15년, 20년 짜리도 달인이 되더라고. 그러면 글 써서 여태까지 서바이벌 해 왔고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맨날 변화해왔고 개척해왔고 그런데 나도 달인이겠죠. 그죠? 그런데 이렇게 보면은 내가 뭔 소린지 모르겠어. 평론이 너무 어려워서. 일반 독자들은 더구나 모를거란 말이예요. 그런데 지금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현실을 삭여서 독자와 어떻게 대화를 할 것인지 이거를 보여줘야 되죠. 자기의 방법론으로.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양반들이 세태가 변해서 그럴건데 인문사회공부를 안 해. 맨날 소설책만 봐요. 역사책이라든가 사회과학책이라든가 봐야 되는데. 봐야 현실을 볼 거 아니예요. 현실은 그냥 널려있죠, 사진처럼. 그런데 거기서 뭔가를 탁 잡아내야 되잖아요. 잡아내는 그게 작가의 재간이자 작가관이고 작가윤리거든요. 다른사람들이 못 보는 걸 잡아내는 거. 요새는 논술도 그래. 무슨 문장 하나 끼워가지고.. 전체를 보고 전체를 가지고 니가 구성하고 니가 그렇게해서 써라. 외국은 독후감을 그렇게해서 시험을 치루는데 우리는 뭐 이만큼씩 띄어서 하니까 애들이 약아가지고 책 안 봐요. 띄어낸 거 모아본 거 보지. 그래서 내 작품 봤다, 어떤 아이가 이야기하는 걸 다른 디테일로 들어가서 보면 못 봤어. 띄어놓은 거 보고 그러지. 하여튼 문장이 어쩌고, 문단이 빛난다 서로들 그래. 그거야 기본이지. 문장이 잘 쓴다든가 감각이 있다 하는거는 구멍이 뽕 뚫려서 햇빛이 요렇게 들어오는 고 부분을 잘 그려냈다는 게 문장이 아니죠. 전체, 집을 짓고 얼개를 짓고 집이 주고 미각이 있잖아요. 컴포지션이라고 하죠, 구성. 모든 예술은 구성이 출발이죠. 그죠? 조형미술도 그렇고 다 그렇죠. 그러면 문장은 인테리어인데, 인테리어는 이렇게 바꿨다 저렇게 바꿨다 할 수 있는 거죠. 이를테면 작가의식이나 인생관이 딸려서 그러는 거 아닌가. 인문사회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어. 문창과를 모두 때려없애버리고 문 닫으라고 그러고 글 쓸 놈은 철학과라든가 역사학가라든가 이런 데 보내야되요. 문창과가 전국에 100개가 되고 말이야. 요새 작가들도 글 안 쓰고 다 기어들어갔잖아. 저는 프로작가가 좀 많이 나와서 겁내지 말고, 사실 먹고 살기 힘들거든요. 젊은 작가들은. 1년동안 막 썼는데 만부정도 팔리고 한 천만원됩니까, 만 부. 어쩌겠습니까. 그러면 정말 결심을 해서 머리를 박고 말이야 한 삼년 죽을 각오하고 말이야. 물론 우리 딸이 그런 남자 만나서 시집갈까 걱정이 되지만 말이야. (웃음) 아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는 거고. 한 삼년. 정말 머리를 박고 직업작가가 되겠다, 나는 이걸로 먹고 사는 프로가 되겠다, 좀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다 좀 취미로 쓰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단편 째각째각 쓰고 그래서 힘이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젊은 직업 작가군, 난 이걸로 먹고 산다. 직업작가로서의 젊은 작가, 나는 보고 싶습니다.


지금 예순 다섯인데 한 삼십년은 써야죠.

- 요즘은 명도 길어졌다 그러죠. 담배만 끊으면 좀 살 거 같은데. 지금 예순 다섯인데 한 삼십년은 써야죠. 그죠? 아흔 다섯살인데, 한 삼삽년 쓰면 자기의 그런 양식이 축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동아시아의 자기 세계, 자기의 문학을, 자기식대로 대척한 대가로서 죽고 싶은 겁니다.


   녹음기 상태가 안 좋아서 잘 들리지 않는 단어들이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기억에 의존해서 적었다. 헥헥.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합니다' 라고 표현하셔서 의아하기도 하고, 마치 소설을 듣는 것같은 느낌도 들기도 했다. 아무튼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좋은 작품 많이 써 주시길. 싸인해 주실 때도 독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면서 짧막한 인사를 건네주셔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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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김영사


    스티븐 킹의 소설은 한 권도 읽지 못한 채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다. 원작으로 한 영화는 몇 편 보았지만. 작법책을 한 권 읽고 싶었는데 딱딱해서 몇 페이지 넘기다 포기해버릴 책이 아니라 재밌어서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으면 싶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스티븐 킹이 유명한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자신의 '이력서'. 어려서부터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했는지, 신문을 발행한 일이나, 끊임없이 소설을 써서 잡지에 보내 잡은 거절쪽지를 보관한 벽 한쪽의 커다란 못 이야기며, 대학졸업 후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 그의 든든한 지원자 아내의 존재, 교사생활동안 꾸준히 썼던 소설 이야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에피소드들이 이력서에 모두 들어있다. 이력서에서 알 수 있는 건, 스티븐 킹이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으로 글을 잘 쓴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글 쓰기를 좋아했고 꾸준히 써 왔느냐다. 세탁소에서 힘든 육체노동을 한 후에도, 빡빡했던 학교생활 후에도 언제나 시간을 쪼개 글을 써 왔고, 그 시간들 때문에 정말 행복했다는 것. 글쓰기란 이렇게 고단한 현실을 잊게 만드는 마법같은 즐거움이여야 된다는 걸 스티븐 킹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말한다.  

   두번째, 연장통. 연장통은 좀 더 실질적이고 기본적인 작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러 예를 들면서 어휘력과 문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동태와 부사는 절대 쓰지말라는 등 구체적인 스티븐 킹의 지적들이 들어있다.

  세번째, 창작론. 스티븐 킹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은 '스토리'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플롯이나 주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소설을 마친 후에 보면 모두 뒤따라 온다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면서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필경험과 글을 예로 들어서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생론에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커다란 일이었던 교통사고의 기억에 대한 것이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당한 교통사고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고, 다행스럽게도 회복되었으며 건강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자신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무엇인지. 자신에게 글쓰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그래서 하루라도 빠질 수 없다고. 회복해서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되었을 무렵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집 안 어느 공간에 책상을 놓고 훨체어를 타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는 사실 특별한 작법강의는 없다. 단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성공한 스티븐 킹이 어떤 식으로 글을 써 왔고, 쓰고 있으며, 써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할 것이 없다. 즐거움.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은 글쓰기의 즐거움 뿐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글쓰는 행위를 얼마나 즐거워하고 행복해해야하는지 그가 직접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강요해서 억지로 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있는 척 하고 싶어서 쓰는 자기과시용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면에서 우러나는 글쓰기의 즐거움만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독자들의 마음 속에 '울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어느 작가의 홈페이지 방명록에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인데 글 쓰는 게 너무나 괴롭고 힘들다고.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냐고 물어보는 글을 봤다. 그 글에 달린 작가의 답변은, 정말 단 한번이라도 글을 쓸 때 즐거웠던 때가 없었냐면서 잘 생각해보라는 거였다.

   아, 이제 스티븐 킹의 책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나도 즐거운 글쓰기를 꾸준히 계속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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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안 읽으신 분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은행나무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숙을 했다. 내 첫번째 하숙방은 학교에서 최대한 가까운 반지하 하숙방이었는데, 미처 하숙방을 구하지 못한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그이상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내 친구의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였는데, 우리가 같은 학교에 같은 학부에 합격했다는 걸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너무 활발해서, 그리고 너무 얌전해서 서로를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우리가 친구가 되던 순간이었다. 친구의 하숙집에 방이 마침 하나 남아 그 곳으로 내가 들어갔다. 내 룸메이트는 약대를 다니는 4학년의 언니였다. 나는 생전 처음 다른 사람과 방을 함께 썼다. 언니는 내게 잘 대해줬다. 신입생인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줬다. 심지어 내가 그동안 펜팔을 했던 남자아이를 대면하러 나갈 때에 나에게 처음으로 화장을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게 세심한 언니가 참 좋았고, 아빠는 우리방으로 전화를 걸어 언니에게 나를 잘 부탁하노라고 부탁했다. 그 뒤였을 거다. 아빠가 우리방에 전화를 한 후부터 언니는 철저히 나의 보호자로 변했다. 그전보다 나를 더 간섭하기 시작했고, 더욱더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호기심 많았던 신입생이었던지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많은 알코올을 섭취했던 시기였다. 언니와 나는 내 친구와 친구의 룸메이트 언니(마침 친구의 룸메이트도 4학년 언니였다)와 자주 어울렸다. 함께 같은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밖에서 일부러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내 룸메이트 언니의 간섭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땀을 흘리며 친구의 방에서 자기도 하고, 가능하면 늦게 하숙방에 들어가고 일찍 나오곤 했다. 빨리 한 학기가 지나가버렸으면 했다. 길고도 짧은 한 학기가 지나가고, 언니는 하숙방을 나가 집에서 통학을 했다. 우리는 찐한 이별식도 못한 채 헤어졌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행동해버린 내 자신이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 가족도 아닌 누군가가 나를 속박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견딜 수 없었다. 다음학기부터 친구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룸메이트 언니들과 헤어졌다. 그 뒤로도 언니들은 졸업반이라 거의 만나지 못했고, 아주 가끔 어떻게 지낸다는 소식만 들었다.

   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그냥 <퍼레이드>를 읽으면서 그 때의 하숙집이 생각났다. 호기심이 많았던 신입생이었던 친구와 나, 그런 내게 보호자 역할을 해주고 싶었던  룸메이트 언니. 그리고 가족이 아닌 남과 함께 한 방, 한 집에서 생활하는 쉽지 않은 일. 사실 <퍼레이드>의 주인공들은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적당히 이어지고 적당히 끊어져 있는 동거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느슨한 끈이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끌어 당길 수 있고, 싫으면 물러날 수 있는 관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꼭 이런 집에서 한번 생활해보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관계의 동거.

   <퍼레이드>에 사는 다섯명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평범하다. 평범한 대학생 요스케(그가 선배의 여자친구를 뺏긴 하지만), 평범한 백수 고토(하루종일 유명배우 남자친구 연락을 기다린다고 꼼짝도 못하지만), 평범한 투잡녀 미라이(강간 당하는 영화장면만 편집해 놓은 비디오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평범한 방황하는 열 여덟 사토루(몸을 팔아 돈을 벌긴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 나오키(흠...). 다섯편의 옴니버스에 각각 존재하는 인물들이고, 각각 자신의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지만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철저한 조연 혹은 엑스트라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는 누구보다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고가도로 위를 아무 탈없이 위태위태하게 운전해가는 자동차들이지만,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엑셀을 밟아 언제든 연쇄충돌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아슬아슬한 이십대들이기도 하다. 실제 우리들이 그렇듯이. 지금은 가장 친밀한 그들이지만 언제든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해결되면 바로 집을 떠날 수 있는 짐을 싸놓은 이십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가깝다고 말하기고 멀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사이인 그들이다.

   이 소설에 반전이 있다고 말해줬으면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 내려갔을까 생각해봤다. 읽는 내내 무슨 반전일까, 생각해가면서 읽었겠지. 그리고 마지막에 오라, 이거였구나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평범하게 스쳐지나가며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느슨해보이지만 실은 단단한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 젊은이들의 동거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의 반전을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단단하지 않은 거였구나 생각했다. 우연히 이 맨션에 들어온 다섯명의 동거남녀이지만 함께 살아나가면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비디오를 보고, 각자의 빨래감을 같은 세탁기에 함께 돌리면서, 함께 드라마와 비디오를 보고, 함께 서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주면서 그렇게 무엇보다 끈끈한 하나의 또다른 대안 가족이 탄생하는구나 싶었지만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척만 한 것 같은 것이다. 몸을 팔며 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모르는 척, 아무런 목표없이 대학생활을 하지만 괜찮다고,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자친구만 기다리는 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그리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서 말해야 하지만, 또 때로는 서로를 위해서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다섯명의 동거 생활. 마지막에 나오키가 본 것처럼 두 방과 하나의 거실을 쓰고 있는 다섯 사람이 그 맨션에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올거고, 그 날을 위해서 모두들 자신의 이부자리 옆에 단단한 짐을 싸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이 짐을 들고 도망쳐버릴 수도 있고, 남은 사람들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맞이하든지 할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의 젊은 날들의 인연들은 끊어지고 이어지고 감추고 덮어주려 한다는 거라고.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생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책은 끝나고 날은 머물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라면 그건 내일이나 다음에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넘어가버릴지도 모르지만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해가 진 후에도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지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나 많이 주절거리고 있었다. 금요일 밤이니까 뭐든지 용서되리라 믿으면서. :) 요시다 슈이치 책을 다 읽어버릴테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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