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Media2.0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이 있다. 코 끝에 닿는 바람이 지독하게 차가운 겨울 날, 산이 있고 나무들이 보이는 노천 온천으로 들어가 차가운 몸을 따뜻한 물에 녹이는 순간. 아,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 라고 느끼는 순간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거다. 아니면 초저녁, 밤하늘의 별이 하나 둘씩 반짝이기 시작해도 좋을 거 같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지는 그 기분.
<첫사랑 온천>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이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때문이었다. 물론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고. 아직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일요일들>밖에 읽지 못했는데, 그의 사소하고 스쳐가는 듯한, 고요하고 가끔은 서글픈, 덤덤한 공기의 이야기들이 좋다. 어제 거리에서 나를 스쳐간 사람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이른 새벽, 나와 마찬가지로 잠들지 못하는 이 도시 어딘가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인 것도 같은 그런 글들.
<첫사랑 온천>도 좋았다. 덤덤하고 고요하지만 무언가 마음 속에 행복하거나 쓸쓸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첫사랑 온천'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곧 떠나보내야 하는 외로운 사람이, '흰 눈 온천'에는 사랑이 고요하게 지속되고 있는 연인의 마음이, '망설임의 온천'에는 배우자 몰래 애인을 가지고 있는 불안한 사람들이,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에는 인생을 한참 달려와 뒤돌아보니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만 남은 쓸쓸한 남자가, '순정온천'에는 사람들이 없는 우리들만의 벽이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온천이여도 좋다. 벚꽃이 내리는 봄의 온천이든, 여름이 시작되는 싱그러운 온천이든, 낙엽이 바그락거리는 가을의 쓸쓸한 온천이든, 새하얀 눈이 희망을 품게 하는 겨울의 온천이든. 그 곳의 따스함에 내 차가운 몸을 녹이는 순간, 현실의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은 배가 된다.
언젠가 별이 총총한, 눈이 스르르 내리는 노천 온천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혼자여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좋을 테지. 상상만으로 행복한 이 느낌. 이번 겨울 즈음에 한번 더 읽어야겠다.
'서재를쌓다'에 해당되는 글 341건
- 첫사랑 온천 - 차가운 몸을 녹이는 순간 2 2007.08.16
- 바리데기 - 이런 세상이라서 미안해 6 2007.08.12
- 하이 피델리티 - 귀가 즐거운 소설 2 2007.08.10
- 형제 - 이광두, 이광두 어디간거야? 2007.08.04
-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 모두들 잘 살고 있습니까? 2007.07.30
- 식객2 - 휴일 아침 아빠의 토스트 2007.07.25
- 셜록홈즈 전집1, 주홍색 연구 - 셜록홈즈를 읽다 2 2007.07.20
- 편지 2 2007.07.19
- 시간을 달리는 소녀 -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해 12 2007.07.16
-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 눈물이 주룩주룩 2007.07.14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냉장고로 가서 물통을 꺼내 커다란 물컵에 가득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일요일 저녁의 집 안이 너무 조용한 것만 같아 라디오를 켰다. 그리고는 어젯밤에 널어놓은 빨래를 하나씩 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보니 밖이 주홍빛이다. 아니, 정확한 색을 대지 못하는 오묘한 빛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빛이 그렇다. 그러다 갑자기 1분동안 세차게 비가 내린다.
황석영 선생님을 한번 뵌 적이 있다. 학교에서 강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세세하게 기억 나진 않지만, 나는 그가 참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도 컸고, 체격도 컸다. 목소리도 컸고, 웃음도 컸고, 그가 하는 이야기들도 컸다.
<바리데기>. 두번째로 그의 작품을 읽었다. <오래된 정원>을 읽을 때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 놀랐다. 이러다가 하루도 안돼 다 읽어버릴 것만 같아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갈 때마다 바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시려, 목에 턱턱 걸렸다. 책 속에서 누군가가 죽게 되면 나는 책장을 덮고 그들을 오래 생각한 뒤 다시 읽어나갔다.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들 같아서 그들을 그냥 읽으면서 흘러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한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책을 읽은 후의 황석영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니 책의 묘사가 실제인 것이 많았다. 중국 등지에서 답사와 취재를 철저히 한 것이며, 런던의 이주민들과의 인터뷰들, 바리할미가 나타나는 부분은 그가 직접 꿈을 꾼 것을 묘사한 것이고,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 2세 청년들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혔다가 돌아온 사건도 실제로 있었단다.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직접 겪은 9.11 테러사건이나 런던버스 폭발 테러사건까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현재'의 이야기들이여서 마음이 더 시린 것이었다.
<바리데기>는 바리의 이야기다. 북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중국으로 탈출했고, 그러는 동안 가족을 잃었고, 런던으로 밀입해서, 파키스탄 남자와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잃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하는지 버리고 살아나가야 하는지 막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바리, '우리'의 이야기다.
<바리데기>에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북한, 소외받고 위협받는 사람들, 런던에 모여사는 여러 민족들, 그들의 종교, 그들의 삶, 그들의 고통. 설화에서와 같이 바리는 아이를 잃은 후, 보름동안 꿈을 꾸면서 힘들고 절망적인 나 자신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지옥을 지나가게 된다. 피바다, 불바다, 모래바다로 이루어진 지옥의 바다를 건너갔다가, 결국 설화와 같이 생명수를 찾지 못한 채 돌아오는 길에 바리가 우리들을 향해 말한다. 그 말들은 너무 직설적이고 정확해서 마음을 콕콕 찌른다. 전쟁을 일으키고, 각자 자신의 종교만 소리 높히고, 고통을 주고 받는 이 세상 너희들은 이제 양보하든지 목소리를 합하든지 침묵하라고. 이 모든 고통은 모두 너희들의 욕망 때문이라고. 너희들은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승리한 적도 패한 적도 없다고. 모든 것은 너희들의 절망에서 비롯된 거라고.
그렇지만 희망을 버리면 안된다고 말한다. <바리데기>에 등장하는 압둘 할아버지는 우리 모두가 철없는 것들이라고, 전쟁은 우리들이 만들어낸 절망이라고. 하지만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것은 믿음과 희망이라고. 책 읽으면서 압둘 할아버지가 작가 자신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켜보거나 침묵하고, 절망적인 세상이지만 우리 희망만은 버리지 말자고 토닥여주는.
소설의 말미에 남편이 돌아오고, 다시 일상의 행복으로 돌아갔을 때 바리가 느끼는 것. 너무나 평화로워서 하마터면 세상이 달라졌다고 느껴졌다는 그 때. 런던의 버스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그 가까이 있었던 바리는 눈물을 흘리며 뱃속의 아이에게 말한다. 아가야, 미안하다. 우리도 계속 태어나고 있는 또 다른 바리에게 이런 세상이라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절망을 버리지 말자고 말해야하겠지? 그리고 이런 세상이 아닐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들 모두를 살릴 생명수는 가까이 있다지만 우리 마음은 너무 어두워져서 찾을 수가 없다.
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Media2.0 |
나는 그 아이랑 헤어진 후 어떻게 할 지를 몰랐다. 그래서 술을 마셨고, 매일 울어댔고, 내 생활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같은 하숙집에 있었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내 넋두리를 하는 거였다. 그럴리야 없어. 니가 더 잘 알잖아. 얼마나 나한테 잘해줬던 아이였는데. 한순간 이렇게 모질게 변해버릴 순 없는거다. 친구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여줬고 술잔을 내밀어줬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항상 비가 왔다. 그 여름, 내가 흘린 눈물만큼 많은 비가 왔다.
가끔 그 아이한테 전화를 했다. 그 아이는 받지 않거나, 받게 되면 화를 냈고, 나는 그런 그 아이가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전화기에 대고 무슨 말들을 내뱉었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추억들은 모조리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박살났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문제는 나 혼자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는 거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을 때, 매일 흘러나왔던 눈물이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이제 너와 나, 우리의 추억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걸. 나만의 추억.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사실 봤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보았다면 그 때 그아이와 함께였다. 그 때 우린 꽤 많은 영화를 함께 봤었으니까. 내가 무의식에 잊으려고 노력한걸까, 아님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걸까. 그 시절의 기억들은 너무나 단편적이라 내 기억들이 온전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보지 않고,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를 읽었다. 그리고 오늘 술을 몇 병 사서 들어왔다.
<하이 피델리티>를 소개하는 잡지의 기사 중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이 책이 좋게 느껴진다면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작은 부분에도 강박을 느끼거나 큰 감수성을 드러낼 수 있는 '쪼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 고백한다. 나는 이 소설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쪼다'일 수도 있겠다.
<하이 피델리티>는 '로브'라는 서른다섯의 남자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로브는 서른다섯이지만, 여전히 서툴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사회적인 면에도, 사랑에 대해서도. 로브는 '챔피언십 비닐'이라는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입은 있는둥 마는둥이다. 어울리는 사람들은 가게에서 일하는 딕과 베니, 그리고 몇 명의 친구들. 그리고 소설이 시작되면서 로브는 말했다. 방금 '로라'와 헤어졌다고. 로브는 로라와 헤어지고부터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 전부터 생각해왔다. 왜 내가 그 때 너희들과 헤어져야 했는지, 너는 왜 결국 나를 뻥 차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로브는 그녀들에게 찾아가 묻고싶어진다. 그리고 묻는다.
모든 이별이 쿨하지 않다.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랑에 빠졌듯이 동시에 사랑이 끝나면 좋겠지만 사랑이란 걸 대단히 그렇지 않다는 걸 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모두들 쿨하게 사랑하고, 이별해야하고 싶어하지만, 사실 쿨하게 이별하는 방법은 없다. 두 사람이 한 날 한 시각에 서로 정이 떨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이별을 통보받은 한 사람은 우리의 이별이 믿을 수 없고, 이별을 통보한 사람 또한 나의 사랑이 이렇게 끝나버린 걸 외면하고 싶을 거다. 그렇게 '이별들을' 통보 받은 로브는 문득 왜 내가 늘 이렇게 사랑했던 누군가와 지금까지도 이별하면서 지내야하는지 궁금했던 거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녀들이 잘 살고 있는지. 속으로는 나와 이별한 후로는 못 살기를 바라면서.
성장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로브가 소설 속에서 대단히 성장한 건 아니다. 그는 그저 서른다섯에서 서른여섯이 되었고, 자신을 떠났던 로라는 다시 자신을 찾아 돌아왔고, 여전히 사랑이란 건 때때로 힘들고, 인생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로브는 자신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 로라를 통해서 사랑이란 건 늘 열정적이고 육체적일 수는 없다는 걸, 누군가가 옆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지를 알게 되고, 세상에는 나와는 음악적 취향이 달라도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많고, 그들과 나눌 이야기 또한 음악 말고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그래, 세상이 그렇게 냉랭하지 않고 꽤 따뜻한 곳이라는 걸 알아간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늘 음악이 있다. 세상은 음악과 통하고, 음악과 연결된다는 그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변두리의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도 그 속에서는 온전한 내가 되는 곳, '챔피언십 비닐' 레코드 가게. 거기에 서른 여섯이 됐지만, 여전히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음악이 있어 풍요로운 곳. 나는 그 곳이 좋다. 돈이 있어 육체가 풍요로운 것이 아닌, 음악이 있어 영혼이 풍요로운 곳. 그래서 나는 '쪼다'일 수도 있겠다.
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휴머니스트 |
몇달 전, 푸른숲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공지영 작가와 함께한 상해 대담 기사에 곧 위화의 새 소설이 한국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어서 언제쯤 출간되느냐고. 푸른숲에서는 이번 책은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장님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그곳에서 7월 안에 출판될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올해 봄, 나는 위화의 새 이야기가 너무 그리웠고 8월이 오기 전에 다 읽어버렸다. 책장이 너무나 빨리 넘어져서 다 읽어버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위화는 내게 봄과 여름의 경계선을 닮은 작가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계기가 된 연극 '허삼관 매혈기'도 그때 만났고, 연극이 너무 좋아서 원작을 찾아 읽었고, 그 원작이 너무 좋아서 다른 소설들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위화의 소설은 어두운 시절의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서술방식이나 문체가 전혀 무겁지 않다. 이번 '형제'의 작가노트에 있던 정여울씨의 글처럼 위화의 소설은 '즉시 이해되고, 생생하고, 직설적이고, 숨기지 않으며, 아무런 장막이 없다' 너무나 솔직한 이야기. 가볍게 책장을 넘기지만 깊이있게 작가 자신이 살아온, 살아가는 중국을, 사회를 이야기하는 작가. 나는 그의 소설들이 가벼워서 좋고, 가볍지 않아서 좋다.
<형제>는 류진에 사는 광두와 송강,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광두의 어머니와 송강의 아버지가 재혼을 하면서 두 사람은 형제가 된다. 문화대혁명으로 아버지가 개죽음을 당하고, 그 이후 어머니도 쓸쓸하게 늙고 병들어 돌아가시게 되자 이 세상에 가족이라고는 서로뿐이였던 두 사람, 형제. 서문에 보면 작가 위화는 이 두 사람을 통해 불균형의 삶을 살아가는 중국의, 우리 삶의 간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뻔뻔스럽고 거침없던 광두는 성장해서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되고, 지나치게 순수하고 정직했던 송강은 만신창이 떠돌이가 된다.
<형제>는 총 3권으로 나누어 출간되었는데, 다분히 위화'스러운' 부분은 1권이였던 것 같다. 1권은 광두와 송강이 형제가 되고, 어린 시절을 류진에서 함께 보내다 아버지 송범평이 죽고, 어머니 이란이 죽기까지의 이야기다. 이 1권은 몇 장을 읽으면 웃겨서 죽을 거 같고, 또 얼마 안가 몇 장을 읽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슬프다. 웃기고 울리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위화'스러운' 부분이다. 2,3권은 두 사람이 성장하고, 취직을 하고, 사랑을 찾고, 그 가운데 서로 감정이 상해 분가를 하고 인연을 끊기도 하면서 결국 각자 너무나 다른 길로 접어드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위화가 말했던 간극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광두와 송강은 많은 돈이 있고, 많은 돈이 없고. 사랑하는 아내가 없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진실한 마음이 없고, 진실한 마음이 있는 등 한 때 둘도 없는 형제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그들이였지만 여러 면에서 극과극을 보여준다. 뛰어나게 사업수완이 있고 대범했던 광두은 결국 중국 변화의 흐름을 타고 최고 졸부로 거듭나고, 지나치게 순수하고 소심했던 송강은 결국 그 흐름에 깔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위화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실제로 살아왔고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을 보여준다. '살아간다는 것'에서도 그랬고,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그랬지만, '형제'에서는 그 전보다 더 강력한 메세지를 전하는 것 같다. 그전의 작품들은 '삶'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를 했다면, '형제'는 '사회'에 대해 더 크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몇십년 사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중국 사회. 빠르게 성장했지만 몇십년 전에 소중히 간직해왔던 그것들을 자꾸만 잊어버리는, 아니 잃어버리는 지금의 현대 사회. 빽빽한 빌딩들이 들어서고 부유하고 풍요로워지고있지만 그것보다 더 풍요롭고 간절했던 어떤 마음들은 땅 밑으로 꺼지고 있지 않냐고. 그리고 그것은 비단 중국의 문제는 아니라고. 당신들의 사회도 그렇지 않느냐고.
이광두. <형제>의 주인공인 본명이 이광이였던 이광두.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였던 이광두. 사실 가장 이상적으로 그려졌던 송범평보다 졸부로 전락하기 전까지는 이광두가 더 매력적이였다. 뛰어난 유머감각, 전혀 주눅들지 않는 베짱, 쾌활한 성격, 높고 넓은 앞날에 대한 포부,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마음, 자신이 신세진 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던 신뢰. 비록 연애는 지독하게 못했지만. 그런데 무엇이 이광두를 몰락하게 만들었을까? 돈? 명예? 사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걸까? 이광두가 우리의 모습인건 부인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나는 아직까지는 매력적인 이광두일까, 이미 몰락하기 시작한 이광두일까,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이광두일까?
나는 전봇대에 대고 이건 성욕이라구요, 라고 외쳐대던 꼬맹이 광두가 그리워서 3권 중 1권만 책장 안에 고이 꼽아두고 싶다. 하지만 1권만으로는 <형제>는 완전할 수 없으므로.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를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이가 든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는 작정인거다. 더군다나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였고. 그래서 이번 릴리 프랭키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망설였다. 실제로는 <도쿄타워> 이전에 집필했던 단편들이고 <도쿄타워>에서 너무 눈물을 빼버려서 이번 책에서 왠지 실망할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난 후, 반반이였던 것 같다. 괜찮았다에 반, 역시 <도쿄타워>에서 너무 많이 기대했었구나 반. |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는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대마농가의 신부'에서는 도쿄의 여자 다에코가 대마를 생산하는 어느 농촌의 대부호 기이치로와 선을 보는 이야기다. 기이치로의 집은 엄청나게 부자이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농촌의 환경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두번째 '사형'은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인데, 사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다.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죄에 따라서 어떻게 죽는냐가 결정된다는. 끔찍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쉽게 죽을 수 없다. 세번째 '둥근파꽃'은 육제적인 본능에 대한 이야기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남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아내지만 육체적인 본능의 쾌락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네번째, '오사비시 섬'.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제일 좋았다. 이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오사비시 섬은 남성적인 섬인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결국 누군가를 비난하지만 우리도 다른 바 없지 않냐고 말한다. 처음에는 충격적이고 그릇되었다는 생각하는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고 반복됨에 따라 익숙해지고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 다섯번째, 'Little baby nothing'은 하는 일 없이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던 세 친구에게 좀더 열심히 살아나가야겠다는 활력을 일깨워주는 어떤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 '너덜너덜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짧은 글이다. 발톱이 너덜너덜해지고, 삶이 너덜너덜해진 사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
전체적으로 소설들은 현재의 너덜너덜한 우리 사회를 말한다. 하지만 배경은 미래의 어떤 날인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농촌의 모습, 끔찍한 사형제도, 미래의 언젠가 내게 올 것만 같은 지금과는 다른 내 과거를 아는 어떤 남자, 일본 어디에도 지명을 찾을 수 없는 오사비시 섬, 지금은 너덜너덜하지만 언젠가 열심히 살아갈 희망을 찾을 우리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일어날 전쟁 중간에 서 있는 나 자신.
작가 소개란에 릴리 프랭키는 퇴고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점이 걸리더라. 한번 쓰면 두번 다시 자기 글을 돌아보지 않는 작가라니. 어쨌든 이제 릴리 프랭키를 스타일을 알았고 계속해서 어떤 작품들을 써 나갈지 기다릴 거다. 어쩌면 어떤 책은 '릴리 프랭키가 퇴고와 수정을 한 첫번째 작품'이라고 소개될지도 모르겠다. 퇴고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릴리 프랭키의 소설은 말 잘하는 친구가 옆에 다정히 앉아 한 시간, 두 시간씩 자신의 이야기나 언젠가 상상해본 이야기라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다. 뭐 나쁠 것은 없다.
식객 2 허영만 지음/김영사 |
어릴 때 아빠는 우리 세자매를 위해서 가끔 토스트를 구워 주셨다. 일요일 아침, 겨우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깨어나면 집 안에 울리는 마가린냄새. 아빠의 토스트는 별 게 없다. 마가린 가득 빵에 발라서 구워내고, 계란 하나를 깨뜨려 지글지글 후라이를 만들고, 빵 사이에 계란을 넣고 정확하게 4등분으로 나눈다. 접시 한 쪽에 마가린을 조금 퍼 담으면 끝. 요 간단하고 기름기 넘치는 토스트를 우리는 정말 좋아라했다.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런 것이 똑같은 요리법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면 그 때 그 맛이 안 난다. 아무리 마가린을 퍼 부어도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잠옷바람으로 마가린 냄새에 취해 아빠의 정성에 취해 먹어댔던 느끼한 토스트 한 조각.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뭐 그렇게 특별한 요리법이 없어도 누가 만들어주었느냐, 누구와 함께 먹었느냐에 따라 맛도 달라지고 추억도 달라지는 것 같다. 음식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혀 끝 가득 미각과 마음 속 가득 추억을 동시에 곤두서게 만드는 만화를 만났다. 짜짠 식객-
도서관에 갔는데 1권을 누가 대출해가서 2권부터 빌렸다. 에피소드 위주라 읽는데 별 무리는 없었다.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서 혼났다. 2권에 등장하는 음식은 각종 햄과 김치에 보글보글거리는 부대찌개, 겨울에 국물 넣어 말아먹는 평안도 김치, 소주 한잔 당장 생각나는 따끈한 맑은 생태탕, 적당히 식은 고구마와 목 메일라 시원한 동치미 한 그릇. 진짜같이 실감나는 음식들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으면 이 음식들을 당장 만화에서 끄집어내서라도 어찌나 먹고 싶던지. 특히 의정부 오뎅식당은 행선지를 당장 바꿔 찾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어찌나 보글거리는 찌개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던지. 나중에 꼭 한번 찾아가봐야지.
식객을 읽다보면 어디에 있든 그 곳에 만화에 등장하는 맛깔나는 음식 냄새가 코 끝을 찌르더라. 하악하악. 또 어떤 맛있는 음식들이 등장할지 내일 바로 도서관 가서 빌려봐야지. :) 우리 메리메리가 나오는데, 영화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셜록 홈즈 전집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황금가지 |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황금가지에서 셜록 홈즈 전집이 나왔을 때, 좋아라하며 전집을 금새 읽어내던 아이. 그렇게 재밌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였었던 아이.
아무튼 셜록 홈즈를 읽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는데 약속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었다. 가장 가까운 책장에 눈에 띄었던 책이 셜록 홈즈라 그냥 대출해서 나왔는데, 책을 읽다보니 내게도 셜록 홈즈에 관한 추억이 하나 있더라. 셜록 홈즈는 워낙 유명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한 둘씩은 꼭 있어서 읽지 않아도 마치 읽은 것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1권을 후다닥 끝내고 서평들을 찾아보니 이제 이어질 이야기들이 훨씬 더 흥미진진한 것 같다. 1권은 셜록 홈즈와 왓슨의 소개와 만남, 두 사람이 함께 맞게된 첫번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2부가 시작되면서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이야기가 번외 소설인 것처럼 갑자기 등장한다. 이것때문에 추리의 흐름이 살짝 끊기기는 했지만, 홈즈가 너무 천재적이라 인간미없이 느껴지던 중, 옛날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상투적이지만 비극적인 이야기가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살짝 한 발짝 물러나서 팔짱 낀채 눈알 몇번 굴리고, 머리 몇번 굴리다 보면 어느새 모두 해결해버리는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홈즈. 너무 인간미가 없는 거 아니예요? 혼자서 다 결론내려 놓고는 보통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 지켜보고선 '사실 난 다 알고 있었어' 하는 거. 흠. 얄미운 구석이 살짝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천재적인 추리 능력. 나야 가만 책장만 넘기면 셜록 홈즈가 모두 다 해결해주니 머리 쓸 필요도 없지요. 계속 기대하겠습니다아. : p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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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은 날,
종일 비가 내리고
종일 라디오를 듣는
오늘같은 날엔,
시 한 구절이
내 마음 한 구석을
찌릿하게 만들어 주곤 한다.
오늘같은 날.
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북스토리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 가장 궁금했던 건 마코토의 이모 가즈코의 존재. 츠츠이 야스타카의 원작은 이모 가즈코의 이야기라고 해서 읽어봤다.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영화에서 박물관에서 복원사로 근무하는 가즈코 이모의 20여년 전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마코토가 타임 립을 처음 경험하고 놀라 가즈코 이모에게 달려가서 상담을 했을 때 가즈코는 전혀 놀라지 않고 당연한듯 마코토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 또래 여자애들한테는 종종 있는 일이야.
소설 속의 고등학생 가즈코는 어느 날 마코토와 마찬가지로 과학실에서 타임 립을 경험하게 된다. 호두같은 기계에 멀리, 높이 달려나가면 타임 립을 하게 되는 마코토와는 달리 가즈코는 라벤더향이 나는 한 액체의 향기를 맡고난 후부터 타임 립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가즈코는 위험한 순간에 닥쳐 곧 어떻게 되겠구나,고 생각을 하면 타임 립을 하게 된다.
영화와 소설 속의 주인공 자체는 다르지만 경험하게 되는 것은 비슷하다. 과학실에서의 우연한 계기로 타임 립을 시작하게 되는 것, 두 명의 남자친구와 친하게 어울렸던 것, 그 중 한 명의 친구가 타임 립으로 미래에서 왔다는 것, 그리고 그 친구가 주인공을 좋아하게 된 것.
그런데 마코토와 가즈코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마코토는 활달하고 명랑한 외향적인 성격. 치야키와 코스케와 함께 방과 후 캐치볼을 즐기고, 코스케를 짝사랑하는 후배의 마음을 알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타임 립을 하게 된 이후 그 사실을 너무나 즐겁게 즐긴다. 그런 반면 가즈코는 조심스럽고 부끄럼 많은 내성적인 성격이다. 타임 립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친구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생겼다는 이유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빨리 이 초능력이 내게서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영화 속 가즈코의 분위기와 똑같다.
영화 속 가즈코 이모의 마지막 두 줄의 대사. 넌 나와 다른 성격이라고 늦게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만나러 달려나가는 게 너라고. 가즈코를 좋아했던 미래에서 온 열한살의 친구 가즈오는 미래에서 처음 현재로 왔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억을 심어준 것처럼 미래로 떠날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억들을 모두 지우고 떠나야한다고 가즈코에게 말한다. 가즈코는 너의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고 나한테만 남겨놓아달라고 애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러 올 거라는 약속을 하고 가즈오는 미래로 사라진다. 사람들에게 심어진, 가즈코에게 심어진 자신의 기억들과 함께. 영화 속에서는 가즈코 이모가 모두 기억하고 있는 듯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가즈오가 미래로 갈 때 모든 기억을 가지고 가 버린다. 그래서 가즈코의 기억에는 가즈오가 없다. 다만 가즈오가 살던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풍겨져 나오는 라벤더향이 무언가 좋은 느낌, 좋은 사람을 언젠가 꼭 만날 거라는 확신을 가져다 준다는 것뿐. 영화 속 가즈코 이모의 학창시절 사진 옆에 라벤다 꽃이 함께 있는 것은 이런 이유다. 시계와 함께.
소설 속 가즈오는 약물실험을 위해 현재로 왔지만, 영화 속 치아키는 한 편의 그림 때문에 현재로 왔다고 말한다. 이 그림이 너무 보고 싶어서. 보고 마음 속에 간직해두려고.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치아키가 온, 가즈오가 온 미래는 아주 힘든 상황이라고.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졌던 참혹한 시기에 그려진 한 편의 따스한 그림 때문에 시간을 거슬러 올 정도로. 과거로 가는 실험을 하면서 과거로 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 시대의 무언가로 안정을 찾기는 힘든 세상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지금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걸까? 과거를 복원시키는 직업을 가진 가즈오 이모, 그리고 곧 그와 비슷한 일을 할 것 같은 마코토. 역시 과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그리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는 이야기.
소설, 영화 아직 모두 못 본 분이라면, 소설을 본 다음에 영화를 보는 순서가 좋겠다. 솔직히 소설보다 애니메이션이 훨씬 좋았다. 소설에는 타임 립에 대한 설명들이 좀 더 자세하고, 그리고 가즈코 이모의 과거를 먼저 보고, 현재를 보면 아득하고 아련하고 찡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
몇시였더나? 우리집은 요즘 독서열풍에 빠졌다. 늘 켜져 있던 티비를 끄고 라디오나 음악을 잔잔하게 켜놓고 세 자매가 나란히 누워 독서를 즐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한 9시쯤이였나? 한참 그렇게 각자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조용한 가운데 막내동생이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해서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줬다. 휴지로 코를 팽 풀고 눈가를 몇 번 훔치더니 쥐고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문 일이였다. 막내동생이 책을 읽고 엉엉 울다니. 언젠가 읽어둬야지 다이어리에 써 넣고 깜빡했었는데. 그렇게 읽게 되었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무딘줄 알았던 내 동생을 엉엉 울게 만든 이야기. 에쿠니 가오니의 연상연하커플의 애정이야기가 아니다. 릴리 프랭키의 이 소설은 확실히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이 꽤 오랜시간의 엄마와 나의 이야기, 그리고 때때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전철 안에서 읽는 건 위험하다'라는 광고문구를 보고 비웃었다. 그리고 몇 장이나 읽었나, 눈에 눈물이 고여 글자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한꺼번에 밥을 많이 해 보온으로 해 놓고 누런밥을 혼자 먹는 외할머니가 등장한다. 항상 나를 위해 희생하는, 고맙다, 고마워라는 말을 달고 사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언젠가 배의 한 면만 그려대는 나를 위해 나무를 깎아 모형 배를 만들어준, 그것이 단 한번 아버지다운 일이였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절대 닮지 않으니라 생각했던 아버지를 어느새 닮아가는 내가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눈물을 빼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우리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철이 없는 내 자신, 희생하고 자식을 챙겨주는 사이 어느새 늙어 너무나 작아져버린 우리의 부모님. 책 속 어느 구절처럼 효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이것도 해 드릴걸, 저것도 해 드릴걸 후회되는 것이 자식의 마음이라는 우리들의 이야기.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를 읽으면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다. 한 평생 자식을 위해 피를 팔아온 위화의 아버지 허삼관의 이야기와 철이 들기까지 자식위해서 자신은 잊고 살았던 릴리 프랭키의 어머니. 두 소설 모두 웃고 있는 중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더욱더 슬프다는 것. 한참을 울다 책을 끝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럴 것 같이 집에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 앞에서 무뚝뚝하고 말도 없지만, 그날만은 있는 힘을 다해 수다를 떨었다. 이런 저런 생각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얼마전에 사 먹었던 한 상자에 천원하는 감자 두 상자를 인터넷에 주문했다. 외할머니랑 같이 드세요. 불효녀인 나를 잠시동안이지만 효녀로 만들어 주었던 책. 눈물이 쉴 새없이 주룩주룩 흘러 주체할 수 없었던 책. 주위 사람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 읽게 되어서 고마웠다고 릴리 프랭키에게 메세지 전하고 싶은 책. 9월에 스폰지하우스에서 오다기리 죠가 주연한 영화로 국내개봉된다고 하니 꼭 봐야지. 스틸 사진 보고 있으니 벌써 눈물 나려고 한다. 다행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다기리 죠라서. :-) 소설 속에서 보았던 아버지가 만들어 준 미완성의 배 모형, 대를 이어온 어머니의 장아찌 항아리를 영화 속에서도 볼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