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1. 삼월의 길상사 2013.03.25
  2. 새해 복 14 2013.02.11
  3. 다시, 책 나눔 11 2013.01.20
  4. 안녕, 2013년 :) 6 2013.01.01
  5. 이천십삼년에도, 굿트립 10 2012.12.23
  6. 26년 2012.12.05
  7. 8월이 오면, 2 2012.07.19
  8. 6월의 일 10 2012.06.12
  9. 오키나와 8 2012.06.04
  10. 10 2012.04.15

삼월의 길상사

from 모퉁이다방 2013. 3. 25. 23:52

 

 

 

 

   성북동 길상사에 다녀왔다. 꽃이 피기 시작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더라. 가벼워 보이는데 꽤 무거운 녀석이다. 봄이란 녀석. 개나리는 조금 피어 있었다. 내려와서 꽃집에서 후리지아를 샀다. 우리 동네는 한 단에 오천원인데, 여기선 두 단에 오천원이다. 법정스님이 쓰셨던 필립스 면도기, 소니 라디오, 조그마한 연필깎이도 보고 왔다. 오월에는 연등꽃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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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from 모퉁이다방 2013. 2. 11. 14:44

 

 

 

   이사 때문에, 혹은 이사 덕분에 이번 설에는 집에 내려가지 않고 조용히 보냈다. 연휴 첫 날, 이사를 하고 동생이랑 이마트에서 피자와 와인을 사서 축하했다. 이 집에서 좋은 일이 많기를. 회사 사람이 이사하는 날 눈까지 내려서 좋은 일이 많을 거라는 메세지를 보내줬다. 명절 날에는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고, 오후 늦게 친구와 광화문에서 영화를 봤다. <문라이즈 킹덤>. 영화는 좋았는데, 초반에 갑자기 잠이 미친듯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았다. 아무래도 다시 봐야할 듯. 포스터가 너무 예뻐서 한 장 갖고 싶다. 친구랑 둘이서 치맥을 하는데, 옆 테이블에 여자 둘이 들어왔다. 한 사람이 거의 이야기를 다 했는데, 결혼식 직전에 파토난 자신의 이야기를 정말 신이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나와서 커피집에 갔는데, 모히토를 팔았다. 커피 대신 모히토를 마셨는데 싱싱한 라임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한 잔씩 더 마셨다. 집에 와 <사이드 웨이>를 보려고 했는데, 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오늘은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커피집을 발견했다. 핸드드립 커피집. 밤에 오면 조용하게 책 읽기 좋을 것 같다. 근심걱정이 많았던 1월이 지나고, 이사를 무사히 끝냈다. 집에 가는 길에 어제 친구가 말한 다이소 매직블럭을 사서 청소해야지.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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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 나눔

from 모퉁이다방 2013. 1. 20. 23:35

 

 

 

 

    짐을 줄여야 해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팔 수 있는 것들은 팔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가지고 갈 것은 따로 묶어두고. 그렇게 정리하기 시작하니까 책 속에서 예전 영화 티켓이 발견되고, 2005년에 걸었던 광화문 가을길도 어렴풋이 생각나고. :) 

 

    버려야 하는 것들 중에 혹시 필요한 것들 있을까 해서 목록 올려보아요. 이번에는 지인들과 저와 이야기 나누신 분들로 한정해서 나누고 싶어요. 저번에 기억이 있어서. 비밀댓글로 가지고 싶은 것들 있으면 달아주세요. 편의점 택배 착불로 배송 예정. 목록은 곧 더 추가될 예정. 씨네21 잡지 모은 것이 제 허리 높이 만큼 있는데, 다 버릴 거거든요. ㅠ 최근에는 안 사서, 예전 것들인데 혹시 원하는 호가 있으면 보내드릴게요. 이것도 댓글로.

 

 

- 캐러멜 팝콘 / 요시다 슈이치 / 왜 그랬을까. 책 맨 뒷장 색지를 반으로 잘랐음.

- 13 x 2 / 알라딘 13주년 추천 컬렉션.

- BeSIDEs / 장르별한페이지단편소설 100

- 다빈치 코드 / 베텔스만

- 드라마 썸데이 DVD

- 잡지 싱클레어 32, 33, 34(2), 35, 36(2), 37, 39, 41호

- 별을 쫒는 아이들 / 루이제 린저

- 영화 유레루 OST

-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무라카미 류

- 잡지 오프 2010년 6월호 크라이스트처치 편.

- 잡지 오프 2010년 7월호 담양 편.

- 영화 69 화보집 / 일서

-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 문학의숲

- 고고학의 즐거움 / 살림

-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해주겠다 / 소울

- 맛있는 그림 / 바다출판사

- 히말라야 : 20년의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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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13년 :)

from 모퉁이다방 2013. 1. 1. 21:27

 

 

 

 

 

 

    새해가 되었다. 지난 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마음들이 있었고, 많은 후회들이 있었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이천십이년 십이월의 마지막 날에는 스물다섯개의 소소하고 커다란 소원들을 만들어 빙고칸을 채웠다. 거기에는 고전 12권 읽기도 있고, 특별한 공간에서 옆사람과 셀카 사진 60장 찍기도 있고, 봄날의 동물원 가기도 있다. 템플 스테이도 있고, 950페이지의 책 읽기도 있다. 그렇게 이천십이년을 보냈다. 이천십삼년에는 예정된 두 번의 결혼식이 있고, 변함없는 봄날의 내 생일도 있고, 이제는 두려운 두 번의 명절도 있다. 이천십삼년에 많은 목표들이 있지만 그 중 꼭 이루고 싶은 하나는 험담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그래야 좀더 근사한 서른넷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십이월에는 부지런히 공연을 다녔다. 노래 'FINE'의 마지막 가사 'Fine'을 부르지 않고 커다란 글자로 대신하는 세심하고 감성적인 두 공대청년 페퍼톤스의 공연도 다녀왔고 (정말 신나서 두 시간 넘게 방방 뛰어댔다), 관객들을 일으키기 위해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랗고 하얀 공을 객석으로 번쩍 넘기는 센스있는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도 다녀왔다. (막차 가사를 듣다가 울 뻔 했다.) 어느 일요일에는, 아주 추운 일요일이었는데, 광화문에서 빙판길을 종종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어가 '덕혜옹주전'을 봤다. 덕혜옹주가 어린시절 입었던 곱디 곱고 화려한 한복들을 보면서, 무슨 이런 서글픈 인생도 있나, 생각했다. 얼마나 외로운 인생인가 생각했다. 얼마나 고독한 생인가도 생각했다. 지하 2층까지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해가 져 있었다. 눈 내린 고궁에 내려앉은 어둠을 마주하고 가슴이 벅찼다. 왠지 내년은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푹푹 커지는 뽀송뽀송한 고궁의 눈길을 걸어나왔다. 잘 살아봅시다. 새해 복 많이 받구요. 반갑다, 이천십삼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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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동생 덕분에 십이월에 종로에서 2주동안 캘리 수업을 들었다. 마이크임팩트 윤히어로의 캘리그래피 수업. 마이크임팩트 이번에 알게 됐는데, 흥미로운 수업이 꽤 있는 듯. 강사 선생님도 밝고 열정적이고, 수업 분위기도 좋고. 그러니까, 십이월이 가고 있고, 이천십이년도 가고 있고,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이고, 이천십삼년에도 모두들 나름의 굿 트립을 하자는 이야기. 내년에도 변함없이 힘내자.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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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from 모퉁이다방 2012. 12. 5. 00:12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Y언니를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우리는 처음에 극장에서 만났으니까, 언제나 영화가 함께 하니까, 간만에 만나 멋진 에단 호크가 나오는 <살인 소설>을 보자 했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나니 극장에서 다 내렸더라. 그 날은, 그냥 영화없이 만났다. 다음에는 뭘 볼까 하다가 <26년>을 보기로 했다. 다행이 <26년>은 개봉 첫 주부터 잘 나가고 있었다. 합정에 새로 생긴 영화관에 처음 갔다. 이런저런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궁시렁거리며 연어 우동을 먹고 구운 명란 오니기리를 하나씩 먹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극장에 들어갔다. 어라. 엄청나게 좋은 커플석이 떡 하니 극장 중간에 줄줄이 있다. 누구를 위한 극장인가, 를 외치며 영화를 봤다. 평대로 지루하진 않았다. 중반까지는 푹 빠져서 봤는데, 후반부가 너무 실망스러워 이해영 감독 생각이 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계속 앉아 있었다. 혹시나 끝나고 뭔가 나올까봐. 영화를 후원한 사람이 몇 명이었더라. 아무튼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닉네임이 끊임없이 올라갔다. 나는 중간에 화장실이 너무 급해 나와버렸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언니가 안 나왔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고. 엔딩 크레딧을 다 본 언니는 한참 뒤에 나왔다. 뒤에 뭐 있었어요? 없었어. 어쨌든 정말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니 얼마나 좋던지. 주말에는 누워서 티비를 끼고 살았다. 무한도전도 보고, 무자식 상팔자도 보고, 키친 파이터도 보고.

 

    이천십이년이 간다. 십일월에는 아무 것도 못했지만, 인상깊은 문장 몇 개를 마음에 담았다.

 

- 눈 내리는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다. <금서의 재발견>

 

- 술은 말의 예비자이며, 말의 부피를 불리는 희한한 공기이다. - 김현

 

- 작가는 자신이 인생에서 발견한 것을 글로 쓰는 사람, 아무리 무참한 실패작이 될지라도 작가는 그것을 써서 발견자로서의 책임을 진다. - <지옥설계도> 이인화

 

   남은 날들, 좀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열심히 쓰기로 했다. 그것이 남은 올해의 목표. 그나저나 <살인소설>을 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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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오면,

from 모퉁이다방 2012. 7. 19. 22:02

 

 

http://youtu.be/gU-AiPLWhiI

6분18초. 근데 내무반에서 잘려고 그러는데-

 

언젠가 술 마시고 이 장면 보고 엉엉 울어버린 적이 있다.

팔월이 오면 다시 꺼내봐야지.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사먹어야지.

요즘 집에 오면 하루에 한번씩 꼭 보고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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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일

from 모퉁이다방 2012. 6. 12. 22:20

 

    6월 12일 화요일. 비가 왔다. 6월이 되고 나는 중랑천을 두 번 걷고, 한 번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세 편의 영화를 보고, 한 편의 뮤지컬을 봤다. 그리고 에피톤과 존 메이어의 새 앨범을 번갈아 듣고 있다.

 

   세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전에서 못 본 영화를 다 보고 싶었는데, 실패. 딱 한 편만 봤다. <원더풀 라이프>. 예전에 이비에스에서 해주는 거 보다가 초반에 잠들어 버렸는데, 이번에도 역시 잠들어 버렸다. 좌석과 좌석 사이가 너무 가까워 졸면서도 아, 쪽팔리게 졸면 안 되는데 그랬는데, 나중에 내가 정신 차렸을 때 옆에 앉은 남자가 헤드뱅잉하면서 막 졸고 있어서 안심했다는. 영화는 참 좋은데, 왜 항상 이 영화를 보면서 조는지 모르겠다. 초기작이기 때문에, 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짝수 영화는 다 보았다는 뿌듯함에 극장을 나섰던 유월 유일의 기억.

 

   <블루 발렌타인>도 봤다. 미셸 윌리암스가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조금 우울하게 생긴 얼굴도 좋고, 히스 레저의 부인이었다는 것도 좋고, 히스 레저를 꼭 닮은 딸을 키우고 있다는 것도 좋고.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좋았다. 그런데 영화는 생각보다 좀 별로였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랬던 건지, 우울한 내용이라서 그랬던 건지. 영화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계속 한숨을 쉬게 되더라. 영화를 보고 나니 비가 왔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다 맞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온 유월 팔일의 기억. 

 

   세 편 중 제일 좋았던 영화는 <멜랑콜리아>였다. 제목부터 우울하다고 말하고 있고, 우울증을 앓는 커스틴 던스트가 주인공이지만 내겐 전혀 우울하지 않았던 영화. 현충일날 영화를 두 편 봤는데, <멜랑콜리아>를 먼저 봤다.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하고, 친구에게 혹시 이 영화 같이 볼래, 라고 하니 본 영화라고 했다. 우울할 거야, 라고 했다. 계속 보고 싶었던 영화고, 이 날이 아니면 못 볼 거 같아서 혼자서 보자 결심하고 많이 우울하냐고 다시 물어보니, 번쩍할 때 이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번쩍할 때, 울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결말은 나무도 사라지고, 꽃도 사라지고, 사랑하는 이도 다시 볼 수 없고, 무섭고 두렵기만 한 번쩍인데 그 장면이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보러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극장을 나서는데 거짓말처럼 친구가 극장 의자에 앉아 젤리를 먹고 있었다. 유월 유일의 기억.

 

 

   그리고 한 편의 뮤지컬 이야기. 조승우의 <닥터 지바고>를 봤다. 러닝 타임도 길고, 다소 지루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조승우여서 좋았어,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여운이 길었다.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장면 장면들을 이야기하는데 아, 그 장면은 정말 다시 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음날 도서관에 <닥터 지바고>를 빌리러 갔다. 이번이 아니면 읽을 수 없을 거라고, 여운이 남아 있을 때 읽어낼 수 있는 고전이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상권의 앞부분을 지금까지 계속 붙잡고 있지만. 어제는 이런 문장을 만났다.

 

   그들은 날이 새도록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찌뽀프의 생애에서 그날 밤보다 현저하고 뜻밖의 변화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아침에 그는, 어제까지와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거의 놀랐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일어섰다. p.122

 

    안찌뽀프는 라라의 남편. 첫날 밤, 라라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그건 라라의 잘못이 아니였다.

    뮤지컬에서는 이 부분에서 라라가 노래했다.

 

   흐르는 음악에 난 몸을 맡겼지. 행복한 꿈이야. 모든 것 괜찮아. 

   그래 음악은 날 굴복시켰어. 달콤한 멜로디는 내게 천국같았어.  

    - when the music played.

  

    김지우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거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특히 이 노래 부를 때. '흐-르는 음-악에' 이 부분의 멜로디는 정말 계속 생각나서 음원을 구할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웠다. 김지우는 무대 위 침대에 앉아 허리를 바짝 꺽고 몸을 낮추면서 이 부분을 불렀는데 그 몸짓이 자꾸만 생각났다. 이제 라라와 또냐가 만나는 장면을 읽어야 하는데 그건 하권에 나올 거 같은데, 그 부분까지 읽을 수 있겠지? 응? 유월 이일의 기억.

 

 

    그리고 한 번의 결혼식. 내가 안녕,이라고 먼저 인사했다. 유월 구일의 기억.

 

 

 

 

유월의 중랑천과 유월의 만년필 글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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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from 모퉁이다방 2012. 6. 4. 22:13

 

 

   점심시간에 '오키나와 여행'을 검색해 봤다. 봄에 메도루마 슌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과 <물방울>.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을 읽고 나서 번역된 책이 한 권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물방울>이 바로 출간됐다. 신나라 하며 바로 읽었는데,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이 훨씬 좋았다. <물방울>은 세 작품 뿐이고, 한 작품이 '리뷰' 형식의 글인데 고 작품이 그저 그랬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에는 여섯 작품이 있고, 모든 작품이 좋다. 적어도 내게는.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오키나와 이야기를 쓰는, 오키나와 작가이다.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되새기며, 어루만지는 작가. 이 두 권의 소설집을 읽고 오키나와에 가보고 싶어졌다. 오키나와의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어졌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바다거북이가 정말 나타날까.

 

    오늘은 중랑천을 오래 걸었는데, 내내 들었던 노래가 '오키나와 러브송'. 파도 소리와 우쿨렐레 소리가 가득한 노래다. 중랑천에 바람이 불었는데, 이어폰에서 파도소리가 쏴아쏴아 들렸다. 오키나와에도 바람이 불겠지. 6월 중순부터 우쿨렐레를 배운다. 이번 주에 친구랑 같이 우쿨렐레를 사러 가기로 했다. 아, 이번에는 열심히 해서, 오래오래 즐거워해야지. 수업이 끝나면 효자동을 걸을 수 있다. 고것도 좋을 것 같다.

 

 

미리 찜해놓은 나의 올해의 책.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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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모퉁이다방 2012. 4. 15. 15:25

  

    살아가면서 막연하게나마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데, 불과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이런 소설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원래 다 그래요. 그냥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만히 고정된 눈들의 이미지가 떠올랐을 뿐이에요. 거기에 팔을 내밀어 허공에 매달린 그 눈을 만져보는 소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럼 그 이야기에 대해서 써볼까고 생각한 게 결국에는 <원더보이>가 됐습니다.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며칠 정신없이 쓰다보니까 이런 소설이 나왔어요. 쓰는 게 하도 즐거워서 더 쓰고 싶었는데, 곧 잡지가 나와야 한다고 해서 그만 여기서 멈췄습니다. 다음에는 마지막까지 다 써서 왕창 실을지도 몰라요. 마음 같아서는. 연재를 시작하는 마음만은 꼭 그렇네요.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럴 때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저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외롭지도 않구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써나갈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먼저 내미는 따뜻한 손 같은 게 됐으면 좋겠다고 바란답니다.

 

    멀리 지구 바깥에서 바라보면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사람도,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숙인 사람도, 끝이 없이 텅 빈 우주공간 속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들 같아 보이겠죠. 뭐라고 해도 이건 멋진 여행일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사랑은 할 테니까요. 우리는 다소 최소한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과 우주 최고의 여행을 한 거예요. 이게 제가 고통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랍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 좀더 쓰고 싶네요.

 

- <원더보이> 연재를 시작하며, 김연수.

 

 

    일을 하지 않았던 때. 집과 도서관을 주로 오고갔을 때가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도서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케이블에서 해 주는 옛날에 본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고, 요리를 하고, 학교에 간 동생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돈이 생기면 그 돈을 쪼개 동네 고기집에서 술을 마셨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쪼개 화분을 사던 때가 있었다. 매일 동네 꽃집 앞의 화분들을 구경하던 때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노원이며 건대에 있는 극장에 조조영화를 보러 가던 때가 있었다. 차비가 아까워 청량리까지 걸어가던 때도 있었다. 그때 나는 분명 가난했었는데, 가난하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풍요로웠던 시간들이었다.

 

    '연재를 시작하며'는 잡지 <풋> 2008년 봄호에 있던 글. 수납장과 벽 사이에 끼여져 있었는데, 오늘 청소를 하다 발견했다. 그 사이 벌써 네 번의 봄이 지나갔다. 네 번의 봄이 지나고, 다시 만난 2008년의 봄.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따뜻한 손이 되었다. 겨울이 길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이 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동안, <원더보이>를 읽었고, 그 전에는 작가님을 만났다. 싸인을 받을 때 내 나이를 적어달라고 했더니 작가님은 벌써 이렇게나 되었냐고 했다. 그 밤, 나는 내가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 작가님을 만나러 일산이며, 남산이며, 혜화동이며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내가 걸었던 그 길들이 생각났다. 그 길들이 그 밤, 내게 따뜻한 손이 되어주었다.

 

    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동안, 따뜻한 손들을 많이 만났다. 어느 날에는 혼자서 <말하는 건축가>를 보았고, 어느 날에는 혼자서 <건축학 개론>을 보았다. <흔히 있는 기적>도 이번 주말에 마쳤다. 커피소년 공연에도 다녀왔고, 효자동에서 맥주도 마셨다. 술을 마시고 넘어지기도 했고, 지하철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일요일 아침에 <비포선라이즈>를 다시 보았고, <언 에듀케이션>이라는 영화도 무척 좋았다. <울분>이라는 소설도 읽었고, <화성의 인류학자>라는 인문서적도 읽었다. 친구와 함께 버스커버스커 앨범을 사고, 하늘색 반팔 티셔츠도 하나씩 샀다. 새 운동화를 신고 어린이 대공원 동물원에 갔고, 머리 염색도 했다. 몇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 두고, 언젠가 주문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2주 넘게 착실하게 도시락을 싸 다니고 있다. 새 도시락통을 샀고, 매일밤 반찬을 만들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샤워하기 전에 취사 버튼을 눌러 매일 새로 한 밥을 먹었다. 양배추와 참치를 함께 볶으면 맛있는 반찬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서른 셋,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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