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 지난 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마음들이 있었고, 많은 후회들이 있었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이천십이년 십이월의 마지막 날에는 스물다섯개의 소소하고 커다란 소원들을 만들어 빙고칸을 채웠다. 거기에는 고전 12권 읽기도 있고, 특별한 공간에서 옆사람과 셀카 사진 60장 찍기도 있고, 봄날의 동물원 가기도 있다. 템플 스테이도 있고, 950페이지의 책 읽기도 있다. 그렇게 이천십이년을 보냈다. 이천십삼년에는 예정된 두 번의 결혼식이 있고, 변함없는 봄날의 내 생일도 있고, 이제는 두려운 두 번의 명절도 있다. 이천십삼년에 많은 목표들이 있지만 그 중 꼭 이루고 싶은 하나는 험담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그래야 좀더 근사한 서른넷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십이월에는 부지런히 공연을 다녔다. 노래 'FINE'의 마지막 가사 'Fine'을 부르지 않고 커다란 글자로 대신하는 세심하고 감성적인 두 공대청년 페퍼톤스의 공연도 다녀왔고 (정말 신나서 두 시간 넘게 방방 뛰어댔다), 관객들을 일으키기 위해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랗고 하얀 공을 객석으로 번쩍 넘기는 센스있는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도 다녀왔다. (막차 가사를 듣다가 울 뻔 했다.) 어느 일요일에는, 아주 추운 일요일이었는데, 광화문에서 빙판길을 종종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어가 '덕혜옹주전'을 봤다. 덕혜옹주가 어린시절 입었던 곱디 곱고 화려한 한복들을 보면서, 무슨 이런 서글픈 인생도 있나, 생각했다. 얼마나 외로운 인생인가 생각했다. 얼마나 고독한 생인가도 생각했다. 지하 2층까지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해가 져 있었다. 눈 내린 고궁에 내려앉은 어둠을 마주하고 가슴이 벅찼다. 왠지 내년은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푹푹 커지는 뽀송뽀송한 고궁의 눈길을 걸어나왔다. 잘 살아봅시다. 새해 복 많이 받구요. 반갑다, 이천십삼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