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1. 일년 6 2018.12.04
  2. 마루 2018.11.27
  3. 태국카레 2 2018.11.20
  4. 2018.11.06
  5. 한화 2 2018.10.25
  6. 시월의 시옷 4 2018.10.23
  7. 구월 2018.10.01
  8. 말복 6 2018.08.16
  9. 아부지 2 2018.08.03
  10. 질투 2 2018.08.02

일년

from 모퉁이다방 2018. 12. 4. 22:19



   G가 H에게 물었다. 왜 결혼이 하고 싶지 않았어? H는 평생 연애만 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었다고 했다. 연애는 둘의 관계만 생각하면 되지만, 결혼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나의 가족과 상대방의 가족, 그 속의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G는 그렇지, 라고 대꾸했다. 몇달 전만 해도 그런 현실적인 말들이 서운했는데, 이제는 그 말들을 여러번 곱씹어본다. H의 그 말을 곱씹고 곱씹고 곱씹어 보니 G도 그랬다. G에게도 어려운 일이고, 낭만적이지만 않은 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정말 '그렇지' 였다. H는 한참 뒤에 말했다. 그런데 너랑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H의 동네에 맛있는 돼지갈비집과 정말 맛있는 마른오징어를 파는 슈퍼가 있다. 어느 주말 저녁, 고깃집에 가서 마주보고 앉아 돼지갈비를 맛나게 구워먹고, 맥주를 나눠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오징어와 캔맥주 하나씩을 샀다. 골목길에서 H가 말했다. 이런 게 결혼이라면 하고 싶다고. 평일에는 일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맛있는 곳에서 외식을 하고. 그때도 G는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 싸우고, 애정을 나누면서 맞춰 나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결이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만나고, 얘기하고, 손을 잡다보니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나를 좀더 밝게 만들어 주고, 힘이 되어주고, 달라지게 만들어 준다는 게 느껴진다. 아직 많이 멀었지만 우리 둘이 어떤 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게 느껴지는 요즘, 더듬어보니 만나기 시작한 뒤 일년이 되었다. 이맘 때쯤 만나기 시작했다. 만날 때마다 뚱한 얼굴로,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술도 한동안 못 마신다고 하고, 어색하게 식사와 차를 하던 시절, 그는 이 사람이 왜 자신을 만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매번 저렇게 뚱한 얼굴을 하고서. 그런데 어쩐지 더 만나보고 싶어 이번주에 볼까요? 하면 쌩하게 거절할 것만 같던 그 여자가 매번 그래요, 하면서 나오더란다. 그러다 아, 이 사람은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러면 내가 말해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결심을 했던 저녁에 마음이 전달되었다. 느리고, 표현을 잘 못하고, 말하지 않고 다 알아주길 바라던 까탈스런 사람을 일년동안 만나주어 고맙습니다. 


   서른아홉,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다. 여름 즈음인가 뭔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는데, 가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느리게 느리게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부러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과 느끼는 것을 온전히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렇게 계속계속 생각을 하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좋은 십이월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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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from 모퉁이다방 2018. 11. 27. 22:28



   지난 주에는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한 친구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 대전 쪽에서 지내던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가족은 세종시에 있고, 자기만 이직을 해서 서울에 올라와 있다고, 같이 있다 혼자 있으려니 외로운 느낌이 든다고, 언제 한 번 얼굴 보자고. 우리는 반 년 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퇴근 후 합정역에서 만나 곱창을 먹으러 갔다. 실은 그애가 결혼한 뒤 한참 만에 만난 거면서. 애가 벌써 둘이니까. 옛날 얘기를 하면서, 예전 친구들 얘기를 나누면서, 곱창을 먹었다. 2차를 가서는 먹태와 라면땅도 먹었다.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때 왜 그렇게 니네들이랑 대면대면 하게 지냈을까. 그때 친하게 지냈으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을 거 같은데.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냈지만, 대학교에 와서야 제법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그 때 좀 더 재미나게 놀고, 공부했더라면 좀 더 개성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친구가 전해준 예전 친구들 소식은 놀랍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기특하기도 했다. 우리의 소식이 닿지 않는 곳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친구는 최근에 연락을 하지 않는 누나 이야기를 하면서, 대전에서 고향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시간에 대해 말했다. 평소에는 누나 생각을 하지 않다가 이상하게 그때에 생각이 난다고. 고성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옆과 뒤에 아이들과 아내가 잠들고 나면 혼자만 깨어 운전을 하는데, 그때 누나 생각이 난다는 거다. 나는 조용한 차 안에서 우애가 참 좋았던,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누나를 생각하는 친구를 생각해봤다. 순간 나는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시간 동안의 친구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잘 모르는데도 그럴 것 같았다. 


   다른 친구는 생일이었다. 조금 늦은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친구네 집에 모였다. 친구가 아이를 낳은 뒤부터 우리의 모임 장소는 항상 친구의 집이다. 친구는 신기하고 요긴한, 그러면서도 저렴한 살림살이들을 늘 사곤 하는데, 이번에도 집에 가서 새로 산 좋은 물건이 없나 살펴보고, 어디서 샀는지, 어떤지 물어봤다. 친구의 아가는 지금까지 몇 번 봤는데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자기를 쳐다도 보지 말라고 손을 절래절래 젓더니 헤어질 때 쯤에는 제법 친해져서 여러 번 꺄르르 웃어줬다. 우리 셋은 정말 반 년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울어버렸는데, 나는 언젠가 내가 그랬던 걸 떠올렸다. 언젠가 내가 또 그러면, 친구는 이번의 자신을 떠올리겠지 생각했다.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잘 놀고, 작별 인사를 하고 집에 왔다. 다음 날 아침,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마루에서 니가 준 선물꾸러미를 하나하나씩 열어봤다고. 나는 친구가 일요일 아침 일어나 아이와 남편을 방에 두고 나와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마루에서 잘 여미어둔 봉투를 다시 열어 내가 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천천히 엽서도 읽어보는 상상을 했다. 조용한 아침, 잠옷바람의 친구 뒷모습을 생각해봤다. 이상하게 외로워 보였는데, 그게 또 좋더라. 사람은 다 외로우니까.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우리는 고독하다. 뇌 속에서는, 우리는 특히 고독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는 않는다. 

- 132쪽,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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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카레

from 모퉁이다방 2018. 11. 20. 20:39



   간만에 보경이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샤브샤브집에서 만났다. 이를테면 우리의 단골집인데, 샤브샤브집에 간 것도 오랜만이었고, 우리가 만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내가 오픈시간을 알아보지도 않고 약속시간을 정해서 근처 커피집에서 샤브샤브집 문이 열 때까지 기다렸다. 보경이가 종이가방을 건넸는데, 거기에 태국에서 사온 선물들이 있었다. 어유 언니 말도 마, 로 시작하는 보경이네 부부 태국 여행담에는 이보다 틀어질 수가 없다, 싶을 만큼 여러 일들이 있었다. 공항에서 픽업 택시를 예약해뒀는데, 날짜를 잘못 예약해서 택시는 전날 이미 왔다 갔고, 좋은 마사지숍을 예약해뒀는데, 예약변경요청 메일이 왔지만 받지를 못 해 이미 취소되어 있었고 등등.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여행담을 듣는데, 나는 들으면서 고생했겠다, 고단했겠다, 라는 생각보다 이번 여행은 두 사람에게 평생 기억에 남겠다, 생각했다.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면 깔깔거리며 그땐 그랬지, 하면서 웃을 수 있는 여행이 되었네, 하고. 나도 동생도 이제 오사카에서 비행기 놓친 이야기를 매번 깔깔대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경이가 준 물건 중에 태국카레 페이스트가 있었다. 정확한 이름은 타이 그린 커리 페이스트. 얼마 전에 <나혼자 산다>에서 헨리 아버지가 태국카레를 아주 맛나게 만드시길래, 그리고 친구들이 그 카레를 아주 맛나게 잘 먹길래 이 페이스트 생각이 나 마트에 다녀왔다. 해산물을 잔뜩 넣고 싶었는데(막 진짜 게살 이런거), 마음에 드는 해산물이 별로 없어서(비싸서) 새우만 사왔다. 닭안심도 사고, 빨간 파프리카도 샀다. 시금치도 한단 사고, 새송이버섯, 양파도 샀다. 집에 약간의 당근이 있었다. 양파를 길게 썰어 버터를 넣고 갈색빛이 날 때까지 오랫동안 볶았다. 거기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은 야채와 새우, 닭고기를 넣고 노릇노릇 맛있는 냄새가 날때까지 볶았다. 아, 마트에서 처음으로 코코넛밀크를 사봤다. 코코넛밀크를 넣고, 카레 페이스트를 쪽 소리가 날 때까지 짜서 넣었다. 그리고 가끔 저어주면서 보글보글 끊였다. 나는 카레고 미역국이고 물을 많이 넣고 듬뿍 졸이는 걸 좋아한다. 국물이 제법 줄어들었길래 먹어봤는데, 밍밍했다. 어쩌지 하면서 후추도 갈아 넣고 파슬리 가루로 휙휙 넣어보다가, 집에 사놓고 딱 한번만 써본 치킨 파우더 가루가 있는 게 떠올랐다. 치킨 파우더 가루를 넣고 보니, 어디선가 태국카레에 피쉬소스를 넣으라고 한 게 생각났다. 집에 피쉬소스가 있을 리 없으니 멸치액젓을 한 숟가락 넣어봤다. 그리고 조금 더 끓이니 아아, 맛이 난다. 


   나의 음식 마루타 동생은 맛있다고 평하며, 똠양꿍 비슷한 맛이 난다고 했다. 헨리 아버지가 카레에 두부를 넣었던 게 생각이 났다. 국물이 걸쭉하지 않고, 국 같아서 이 국물에 밥을 먹으려면 꼬돌꼬돌한 밥을 해서 말아 먹는 수 밖에 없겠더라. 왠지 밥보다 두부가 더 어울릴 것 같아 후다닥 나가서 두부가게에서 막 만든 두부를 사가지고 와 썰어 넣었다. 첫 태국카레인데 괜찮게 완성했다. 동생은 전날 술을 많이 마셨는데, 해장이 된다며 두 그릇이나 먹었다. 언젠가 태국에 가서 태국카레를 먹어보리라. 보경아, 컵쿤 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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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모퉁이다방 2018. 11. 6. 22:31



   2월에 만났으니 9개월 만이었다. 문래동 곱창집에서 만나 모듬구이 하나와 곱창 하나, 대창 둘을 시켜놓고 소맥을 마셨다. 2월에는 나도 어색했는데, 이번에는 편안해서 좋았다.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새우튀김과 감자튀김, 삼치구이를 시켜놓고 2차를 하는데, 산내의 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의 남편, 그 아이도 내 친구다, 그러니 친구가 올해 초에 너무 가고싶어 연락을 해봤는데, 이제 안한다고 했다고. 나는 그럴리가 없다며 얼마전에도 아궁이에 불을 때우는 인스타 사진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친구와 나는 그해 여름 산내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있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 갈 생각으로 내려왔는데, 친구가 하루인가 이틀 있다가 따라 내려왔다. 각자 과제를 한다고 방도 두 개로 잡아놓고서, 결국 한 방에서 잤다. 동네 통닭집에 가서 통닭에 맥주도 마시고, 주인 언니에게도 초대 받아 셋이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복숭아 꽃잎을 뜯어다가 손톱에 물을 들이고 잤는데, 군불을 넣은 방바닥이 뜨거워 뒤척이다 꽃잎 싸맨 것을 빼버려서 물이 제대로 들지 않았었다. 그런 추억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친구는 남편이랑도 가고, 또 다른 친구랑도 갔다. 나는 엄마와 하룻밤 또 자고 왔다. 그곳 이야기가 나와서 다같이 놀러가서 커다란 방 하나를 빌리고 하룻밤 자면 좋겠단 이야길 했다. 모두가 탈 수 있는 커다란 차를 빌리자고 했고, 운전은 할 수 있는 사람 둘이서 앞좌석에 앉아 번갈아 가면서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아가를 세시간 동안 봐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어제 게스트하우스 언니에게 연락을 해 물이 어는 한겨울 빼고는 운영을 한다는 이야길 듣고, 상상해봤다. 우리 모두가 커다란 차에 차례차례 타고 휴게소에서 간식을 한 가득 사 먹는 장면, 산내에 도착해 짐을 풀고 편한 옷을 입고 동네를 어슬렁 산책하는 장면, 세시간 봐주는 약속을 지키느라 함께 달리기를 하고, 풍선을 불어대고, 흙으로 두꺼비집을 만드는 장면, 함께 바베큐를 해 먹고, 맥주를 마시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 소리내서 웃고, 마음을 나누면서, 그곳에서의 또다른 시간을 쌓아가는 장면. 그냥 그렇게 상상해보는데 마음이 따듯해졌다. 언젠가 꼭 실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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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from 모퉁이다방 2018. 10. 25. 21:38



    언제 고백을 했더라. 열렬한 야구덕후라고. 뭐라고 고백을 했더라.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시즌이 시작되면 첫 경기는 꼭 보러 가자고 했던 말은 생각난다. 고척에서 하는데, 돔구장이라 미세먼지도 없고, 춥지도 않다고. 물론 생맥주도 있다고. (야호) 내가 예매를 했는데, 야구장 좌석을 잘 몰라서 엄청난 중간 자리로 했더니 들어갈 때 고생해서 살짝 얼굴을 찡그린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맥주덕후인 내게 더 곤혹인 자리였다. 맥주를 마시면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나 화장실 가자고 옆 사람들을 다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 뒤로 좌석 예매는 그 아이 전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거다. 몇 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자신은 한화 팬이라고. 어릴 때부터 줄곧 팬이었다고. 아버지도, 동생도 한화 팬이고, 친구들도 한화 팬이라고. 그러니 저 유니폼을 사줄게, 입어보자, 라고. (사지 않았다) 그리고 만날 때 야구 결과를 슬쩍슬쩍 보게 되더라도 화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화 냈다) 그렇게 함께 고척에 가고, 잠실에 가고, 대전에도 갔었다. 한 사람은 야구를 보러, 한 사람은 야구장 맥주를 마시러. 야구장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맛이 좋았는데, 우리가 갈 때마다 지는 바람에 그만뒀다. (한화를 위해서) 그렇게 야구장 맥주에만 관심이 있고, 던지고 치고 달린다, 1루와 2루와 3루가 있다, 운동선수지만 살이 있는 선수들이 있다, 식의 발야구 경험 정도 밖에 몰랐던 내가 병살타, 불펜, 직관 등의 야구용어를 익혀가고 있다. 집에서 9회말까지 야구를 본다고 저녁 내내 티비를 차지하고 있어 동생을 괴롭게도 했다.  


   그애는 프로 야구도 보고, 사회인 야구도 직접 하는데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했더랬다. 이십대 때 아주 많이 힘들었을 때,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을 때, 그때 자기한테 야구가 있었다고, 야구 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보고, 하고 있다고. 힘들 때 함께 해 준 아주 오랜 친구라고. 그전에는 만나서 몰래 야구를 보고 있으면 구박했는데, 그뒤로는 함께 본다. 함께 결과를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좋아라 한다. 한화팬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마침 올해 십 여년 만에 좋은 결과들이 나와 그동안 한화팬들이 홍길동과 같은 존재였다는 걸 알게 됐다. 팬이어도 팬이라고 말할 수 없는 존재. 너무 못해서 좀 부끄럽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존재. 언젠가 잘 할 거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믿고 응원하는 존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만. 세 번의 직관(하하)에서 그 아이는 그래도 응원은 한화가 제일 멋있어! 라고 뿌듯해하며 육성응원에 동참했다. 육성응원은 (내가 보기에) 경기 후반부 한화에게 힘이 필요할 때, 모두들 일어나 뒷짐을 지고 뱃속 깊이에서부터 무언가(이를테면 한 같은 것)를 끌어내, 그리하여 허리가 뒤로 꺽일 정도로,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끊어가며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다같이 오로지 육성으로. 최강 한화, 이런 거. 우연인지 내가 (그에게는) 행운의 여신인지 올해 한화는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했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 잘 하진 못했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잘못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옆에서) 몇마디 하니, 그애가 그런다. 그러지마. 못해도 우리팀이야. 마지막 경기까지 다 보고, 내가 댓글을 보니 막판에 감독이 잘 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던데? 그러니 또 그애가 그런다. 그런 애는 진정한 한화 팬이 아니다. 우리팀 잘했다. 정말 잘했다. 내년에 더 잘하면 되고, 더 잘할 거다. 우리팀인데. 내년에도 야구장 맥주는 맛나겠지. 올해 맥주보이가 쏴주는 생맥은 못 마셔봤는데, 내년에는 꼭 마셔야겠다. 내년 직관 때는 그애 팀이, 아니 우리팀이 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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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시옷

from 모퉁이다방 2018. 10. 23. 22:31



   봄이가 충무로로 이사를 갔고, 시월에는 충무로에서 모였다. 우리는 골목길에 있는,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이 자주 올 법한 술집에 들어가서 먹고 싶은 안주들을 잔뜩 시켰다. 낙지떡볶이, 두부김치, 계란말이, 김치전. 낙지떡볶이에는 공기밥을 시켜 밥을 비벼 먹었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시고, 소맥도 마셨다. 테이블에서 떨어지고 있던 소주병을 잽빠르게 잡아내고 박수를 받았다. 하하하. 최은영의 새 소설집을 읽고 만나기로 했는데, 반 밖에 못 읽었다. 요새 왜 그런지 소설을 읽는 게 쉽지 않다. 읽은 소설 중에 자매의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뒤 대면대면해진 자매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였는데,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겪은 일도 아니면서, 겪은 것 마냥 마음이 시큰해졌더랬다. 솔이도 이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기석이는 평론가가 되었고, 병규는 조기축구에 여전히 열심히라고 했다. 솔이는 연애를 시작했고, 소윤이는 역시 서울 최고다, 라고 외치며 전주에서 올라와주었다. 봄이는 집으로 2차를 가자고 했다. 우리를 새집에 초대해줬다. 


   봄이네 새 집은 따뜻하고 깔끔했다. 근사했다. 우리는 사 가지고 간 쥐포와 조미된 오징어, 아이스크림을 꺼내 놓고 예쁜 잔에 각자의 맥주를, 각자의 소주를 따라마셨다. 음악도 함께 들었다. 봄이네 새 식구 땅콩이는 비닐봉지를 좋아라하고, 우리들의 옷을 좋아라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각자의 연애에 대해, 각자의 일에 대해, 유튜브와 신조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봄이의 생일을 앞두고 초에 불을 붙이고 축하노래를 함께 불렀고, 케잌을 나눠 먹었다. 예전처럼 늦게까지 놀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우리들의 충만한 시간이었다고 충무로역까지 함께 걸으면서 생각했다.   


   소윤이랑은 근처의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잤다. 방이 없어 늘 우리집에 재워주지 못하는 게 걸렸는데, 이렇게 함께 밤을 보내니 좋았다. 우리는 맥주 한 캔 씩과 컵라면 하나, 소시지를 사서 들어갔으나 너무나 졸려 맥주를 몇 모금씩만 마시고 누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금새 잠들었고,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차례대로 씻었다. 근처 할리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었는데, 일요일 아침 숙소에서 나와 한적한 카페 창가에 앉아 있으니 풍경들도 생경하고 기분이 약간 들뜨는 것이 꼭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그래, 이것도 여행이지.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니 그동안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는 내 말에 소윤이는 언니가 만일 돈을 많이 모았다면 지금의 언니가 아닐 거라고, 언니가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그렇게 돈을 쓰면서 쌓은 경험들이 지금의 언니가 되었다고, 그러니 후회하지 말라는 어른스럽고 눈물이 핑 도는 대답을 해줬다. 그래,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소윤이는 약속이 있어 고속터미널로 가고, 나는 영화를 보려고 광화문으로 갔다. 충무로역까지 함께 걸어가면서 우리 모두 행복했음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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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from 모퉁이다방 2018. 10. 1. 20:27

 

 

   지난주는 좋지 않았다. 놓쳐버릴까 조마조마한 순간이 있었다. 지난주의 끝, 다짐했다. 시월에는 좋은 시간만 보내겠다고. 단단한 것을 굳게 믿고,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서늘한 길을 오래 걷겠다고. 시월이 되고 공기가 차가워지니 살 것 같다. 이제 코끝이 바알갛게 시려지는 계절이 오겠지. 두터운 목도리도 하고. 토요일에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울적해하는 내게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이야기들을 해줬다. 모든 건 장단점이 있어. 그 이야기들은 내 태도를 바꿔주고,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우리는 짙은 파란색 두툼한 목도리를 함께 봤다. 추석에 만난 숙모는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마음이 무척 괴로울 때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부엌으로 가서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 칼질을 하고 불을 지피고 음식들을 볶아내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나는 탁탁탁 칼질 소리가 나즈막하게 퍼지는 조용한 오후의 부엌을 생각해봤다. 살짝 열어놓은 문으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햇살이 좋은 날의 부엌. 음악도 틀어놓지 않고, 그저 음식 다듬는 소리만 나는 부엌. 그 소리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구월에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샀다. 옅은 골드빛인데 속은 하얗다. 오른쪽 문을 열고, 왼쪽 문도 열면 하나의 완벽한 키보드판이 된다. 처음에 한 번 설정해놓으니 그 다음번에는 열기만 하면 핸드폰과 연결이 된다. 고향집에서 나는 오지은의 책을 다 읽고, 좋았던 구절을 키보드를 펼치고 탁탁 소리를 내며 기록해뒀다. 음악도 없었고, 키보드 소리만 가득했다. 구월의 마지막 날 들은 말들은 오래오래 기억해둬야지. 그 말들이 있어 시월을 잘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첫 붕어빵을 함께 먹기 위해 천원짜리 지폐 두 장은 남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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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

from 모퉁이다방 2018. 8. 16. 21:19




   세상에나.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올라왔는데 바람이 분다. 큰 바람이 분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세상에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올 여름이 가고 있다. 절기라는 것이 어쩜 이리 신기한지. 말복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올 여름 우리들 무척이나 수고했다며 바람을 보내주셨네. 집에 와 동생이 틀어놓은 에어컨을 껐다. 여름내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고, 맞바람이 불 수 있게 현관문도 걸개를 채우고 열었다. 세상에, 바람이 분다. 


   지난 주였나. 지지난 주였나. 오늘보다 덜했지만 바람이 분 날이 있었다. 그날 연신내로 콩물을 사러 갔었다. 바람이 불어 걷기도 할 겸 간 거였는데, 그날따라 두꺼운 청바지를 입었고 조금 걷다 보니 땀이 주르륵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간간이 바람이 불어주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하늘이 무척 예뻐서 시장에서 콩물과 두부를 사고 응암역까지 지하철 두 정거장을 땀을 흘리며 걸었다. 요즘은 음악을 통 듣지 않고 있는데, 간만에 음악도 들었다.


   그 전 주에 메시지를 받았는데,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 발견했다는 거였다. 차 안에서 늘 걸그룹 음악만 듣는 사람인데, 이유는 신이 나서. 우울한 노래는 듣기 싫고, 경쾌하고 즐거운 노래가 좋다고 했다. 그래야 졸리지도 않고, 힘도 나고. 차에 타면 늘 함께 걸그룹 음악을 연이어 들었다. 그 중에 '해피'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팝도 있었는데, 엄청 신나게 불러대더니 말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랗고 조그만 아이들이 행복한 보금자리를 향해 우르르 이동을 하는 장면이 생각나서 막 행복해진다고. 영화 <미니언즈> 이야기란다. 


   라디오를 듣다 발견한 노래는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내가 지난 몇년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 결국 최백호의 공연까지 다녀오게 한 곡. 한번도 가본 적 없고, 겪은 적 없는 어떤 장면과 마음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곡. 그 메시지는 핸드폰의 오른쪽과 아랫쪽 버튼을 눌러 저장해뒀다. 신기했다. 영화고 노래고 접점이 없는 우리가 조금씩 서로의 취향을 이해해 가고 있다는 게. 아, 바람이 이리도 시원하게 분다. 이제 땀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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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from 모퉁이다방 2018. 8. 3. 17:06



  위가 안 좋아 병원에 다녀왔다는 아빠는 의사를 탓했다. 진찰실이 너무 좁고, 진찰을 하고 있으면 다음 환자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의사도 성의가 없다는 것. 젊은 의사가 아빠에게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단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아빠가 이번에는 무슨 소리를 그렇게 많이 했을까 생각했다. 서울의 병원에 함께 가 본 바, 아빠는 확실히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 젊은 의사를 잘 신뢰하지 못했고, 종합병원의 지위가 있는 의사에겐 유명하신 분이라 들었다, 는 말부터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혹여나 아빠를 하찮게 볼까봐 진료실에 나와서 신신당부를 했다. 아빠, 너무 많이 말하지 마. 의사가 싫어해. 할 말만 하고, 못 믿겠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마. 기분 나빠하잖아. 


  엄마의 말에 의하면 진주에서 유명한 병원이라고 했다. 아빠는 내시경을 1월에 했는데 또 하자는 말을 듣고는 이전 기록을 보고 진찰해주면 안되나, 약국에서는 내시경은 1년에 여러 번 하면 안 좋다고 하던데, 서울 병원에서는 종이컵에 후하고 불기만 했다 (이건 헬리코박터균 죽일 때였는데) 등의 이야기를 했고, 젊은 의사가 칠십이 넘은 아빠에게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다는 거다. 아빠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병원에 가서는 중요한 것만 물어보라고, 너무 많이 말하면 바쁜 의사들이 싫어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갑자기 내가 병원에서 겪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친구가 최근 강남의 병원에서 들었다는 핀잔들이 생각났다. 병원에 가면 우린 다 약자가 되고, 큰 병이 있을까봐 잔뜩 주눅 들어 있고, 궁금한 것들이 A부터 Z까지 있는데, 자연스레 강자가 되는 그들이 우리가 약자라는 이유로 너무 무례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아빠는 예전에 알고 지냈던 약사 이야기를 했다. 그 약사는 의학공부를 할 때 의사들이 심리학 수업도 함께 듣는다고, 간혹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 환자가 병원을 나서면서 의사에게 선생님 이 약만 잘 먹으면 낫는 겁니꺼? 라고 물었을 때, 의사가 이 약만 먹으면 바로 낫습니더, 라고 힘을 주는 것도 또 하나의 처방이라는 것이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어쩌면 약보다 더한 효력을 발휘한다고.


  아빠에게 그 못된 의사와 마찬가지로 주눅을 준 것 같아 내내 불편해하다 어제 퇴근을 하고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는데, 오늘 문자를 하니 어제 일찍 잠이 들었다는 답이 왔다. 나는 그때 그렇게 말한 거 미안하다고, 아빠 말이 맞다고, 그렇게 의사가 말한 것은 분명 잘못된 거라고, 아빠의 지인이었던 약사 분 말이 맞다고 문자를 다시 보냈다. 아빠가 문자를 보내왔는데, 울보인 나는 아침 출근길에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엔 참 참았다.


아빠의 문자 : 

옛날 우연히 알았던 그 약사형이 가끔씩생각히고 그리워 

(아빠에게도 형이 있다!)


뒤이은 아빠의 문자 : 

이젠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않지만 

A good man으로내마음속에 자리하고있어

(아빠는 칠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은 문자를 길게 주고 받았다, 아빠의 문자 : 

어제 니전화 못받아 미안

There's nothing to worry about

(Okey! 라고 보냈다가, 철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문자를 왔다;; Oops! Sorry, Okay!)


  강자가 더 너그럽고 다정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병원은 정말이지 무섭다구요. 금요일이고, 좀더 꾸준한 일기를 쓰자는 이 주의 결심이 지켜지고 있어서 기쁘다. 날씨는 죽을 것 같이 덥지만, (스페인 남부가 44도라는 뉴스를 오늘 아침에 보았다. 사람이 살 수 있나요? ㅠ.ㅠ) 좋은 일들이 많은 팔월이 되었음 좋겠다. 오늘 여섯 권의 책을 (무이자 오개월 할부로;;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주문했고, 팔월에는 좀더 많이 읽고 좀더 많이 웃고 싶다. 모두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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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from 모퉁이다방 2018. 8. 2. 15:08



  어떤 이야기 끝에 차장님이 그러셨다. 질투를 하지 않아서 그래. 점잖은 사람인 거야.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점잖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며칠 뒤에 사전 검색창에 '질투'라고 쳐봤다. 두번째 설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죄다 자랑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혈연이 가진 것도 있었다. 아니, 저런 것까지 자랑을 하나.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에 대한 험담도 있었다. 그 자리가 무척 불편했는데, 자리에서 빠져나오자 나도 그에 대한 험담을 시작하는 거였다. 그게 싫었다. 정말 싫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질투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나는 어떨 때 질투를 하고, 어떨 때 질투를 하지 않는 걸까 생각해봤다. 


   주말, 티비에서 예전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아주 긴 변명>이 방영되는 걸 보았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던, 잘 나가는 작가인 남편이 아내를 사고로 잃고 함께 사고로 죽은 아내 친구의 딸과 아들을 자발적으로 돌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남자주인공은 죽은 아내의 친구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 집에 가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고, 밥도 먹고, 집안일도 함께 했다. 그렇게 나이가 든 남자가 성장해간다는 이야기였다. 중간에 큰 위기와 갈등, 마지막 화해의 순간도 있었고. 다시 본 그 영화에서 내가 최근 골몰했던 '질투'에 대한 어떤 답을 제시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를 처음 본 작년에도 이 대사들이 마음에 와 닿았었나. 이래서 좋은 작품은 시간을 두고 두번이고 세번이고 볼 필요가 있다. 


   남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죽은 아내의 친구 남편 가족이 함께 해변으로 물놀이를 하러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대로 행복하다고 느낄만한 그런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의 중간에 남자어른들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멀찌감치 지켜보며 나누는 대화다.


- 지킬 게 있어서 부러워.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 아냐. 두려워. 저 애들이 없으면 편할 거라는 생각도 했어. 나 혼자면 사고로 지금 죽어도 상관없는데. 

-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애들이 있어서 살아가는 거면서. 

- 그건 그렇지만.

- 자네는 바보야. 


  그리고 며칠 전에 읽은 이 말. 소설가 닐 게이먼의 말이라고 한다. "정말 의미있는 것은 자신의 아픈 곳을 드러낼 줄 아는 솔직함과 정직함이다. 어렵고 고된 경험을 하던 순간에 자신이 인간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직하게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지만, 내 주위에도 나보다 잘 되고, 좋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건 사회가 보는 관점에서. 내가 가깝게 지내는 이 사람들에게 나는 잠시 부러워할 지 언정 질투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하거든. 새로 얻게 된 것에 이야기할 때, 잃게 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새로 얻게 되어 그것이 없는 너보다 행복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국 진심으로 소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질투를 하나보다, 는 결론을 얻었다. 이 질투라는 것은 쓰잘데기 없는 감정소비여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 현자가 아닌 나는 그런 사람과의 만남을 아예 없애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질투 따위 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혹은 가지지 못한 것을 귀중히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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