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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월의 시옷
    모퉁이다방 2018. 10. 23. 22:31



       봄이가 충무로로 이사를 갔고, 시월에는 충무로에서 모였다. 우리는 골목길에 있는,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이 자주 올 법한 술집에 들어가서 먹고 싶은 안주들을 잔뜩 시켰다. 낙지떡볶이, 두부김치, 계란말이, 김치전. 낙지떡볶이에는 공기밥을 시켜 밥을 비벼 먹었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시고, 소맥도 마셨다. 테이블에서 떨어지고 있던 소주병을 잽빠르게 잡아내고 박수를 받았다. 하하하. 최은영의 새 소설집을 읽고 만나기로 했는데, 반 밖에 못 읽었다. 요새 왜 그런지 소설을 읽는 게 쉽지 않다. 읽은 소설 중에 자매의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뒤 대면대면해진 자매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였는데,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겪은 일도 아니면서, 겪은 것 마냥 마음이 시큰해졌더랬다. 솔이도 이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기석이는 평론가가 되었고, 병규는 조기축구에 여전히 열심히라고 했다. 솔이는 연애를 시작했고, 소윤이는 역시 서울 최고다, 라고 외치며 전주에서 올라와주었다. 봄이는 집으로 2차를 가자고 했다. 우리를 새집에 초대해줬다. 


       봄이네 새 집은 따뜻하고 깔끔했다. 근사했다. 우리는 사 가지고 간 쥐포와 조미된 오징어, 아이스크림을 꺼내 놓고 예쁜 잔에 각자의 맥주를, 각자의 소주를 따라마셨다. 음악도 함께 들었다. 봄이네 새 식구 땅콩이는 비닐봉지를 좋아라하고, 우리들의 옷을 좋아라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각자의 연애에 대해, 각자의 일에 대해, 유튜브와 신조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봄이의 생일을 앞두고 초에 불을 붙이고 축하노래를 함께 불렀고, 케잌을 나눠 먹었다. 예전처럼 늦게까지 놀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우리들의 충만한 시간이었다고 충무로역까지 함께 걸으면서 생각했다.   


       소윤이랑은 근처의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잤다. 방이 없어 늘 우리집에 재워주지 못하는 게 걸렸는데, 이렇게 함께 밤을 보내니 좋았다. 우리는 맥주 한 캔 씩과 컵라면 하나, 소시지를 사서 들어갔으나 너무나 졸려 맥주를 몇 모금씩만 마시고 누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금새 잠들었고,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차례대로 씻었다. 근처 할리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었는데, 일요일 아침 숙소에서 나와 한적한 카페 창가에 앉아 있으니 풍경들도 생경하고 기분이 약간 들뜨는 것이 꼭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그래, 이것도 여행이지.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니 그동안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는 내 말에 소윤이는 언니가 만일 돈을 많이 모았다면 지금의 언니가 아닐 거라고, 언니가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그렇게 돈을 쓰면서 쌓은 경험들이 지금의 언니가 되었다고, 그러니 후회하지 말라는 어른스럽고 눈물이 핑 도는 대답을 해줬다. 그래,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소윤이는 약속이 있어 고속터미널로 가고, 나는 영화를 보려고 광화문으로 갔다. 충무로역까지 함께 걸어가면서 우리 모두 행복했음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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