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1. 진주 직통 2 2019.02.27
  2. 1월과 2월 8 2019.02.13
  3. 6 2019.01.29
  4. 잉어빵 2 2019.01.22
  5. 미역국 7 2019.01.14
  6. 2019 2 2019.01.01
  7. D-9 4 2018.12.23
  8. D-12 2 2018.12.20
  9. D-13 2 2018.12.19
  10. 휴가 2 2018.12.09

진주 직통

from 모퉁이다방 2019. 2. 27. 00:25


 

   통영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쓰려고 간만에 꺼내 충전을 했다. 저장공간이 부족해 지울 사진이 없나 첫 사진부터 쭉 봤다. 왠지 모르겠는데, 클라우드에 따로 옮겨놨는데도 지우질 못하겠다. 간만에 오래된 사진들을 보는데 뭔가 뭉클했다. 그곳에 리스본이, 포르투가, 바르셀로나가, 삿포로가, 오타루가, 강릉이, 울릉로가 있었다.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트래블러>에서 류준열이 그러더라. 사진을 원래 찍지 않았는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기록이 없으니까 기억이 자주 변형되더라고.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류준열의 사진기 속에 쿠바의 풍경이, 거리에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게 담겼다. 올해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좋은 풍경도 많이 담고 싶고, 모르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싶다. 그러다 용기가 생겨 류준열처럼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하고도 싶다. 내 미러리스 카메라에 더 많은 곳의 사진이 담기고, 내 마음과 기억 속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더 깊어지고 싶고, 더 넓어지고 싶다. Boa viagem :)


   출산을 앞둔 사촌동생의 집에 분유포트 선물을 보냈는데, 건네받은 주소를 보다 깜짝 놀랐다. 이번에 새로 이사한 동생의 집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금령로에 있었다. 세상 모를 일이다. 세상은 넓디 넓으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내 이름으로 된 거리 하나쯤 존재할 지도. 그러니 여행을 가면 표지판을 잘 읽어보자. 금령로에 흠이 가지 않게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



* 금령(昑玲) : 맑을 금에 옥소리 령. (할아버지 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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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과 2월

from 모퉁이다방 2019. 2. 1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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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에는 만나는 사람의 아버지를 만났고, 2월에는 만나는 사람이 우리 부모님을 만났다. 1월에는 호수 근처에 있는 밥집에서 옻닭을 먹었고, 2월에는 이영자가 티비에서 추천해준 중국집에서 코스요리를 먹었다. 1월의 나는 몹시 긴장했는데, 2월의 그 사람은 그리 긴장해 보이지 않고 씩씩해서 대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물병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더라. 1월의 아버지와는 막걸리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그 사람은 운전을 해야해서 물만 마셨다. 아버지는 나를 유심히 보지 않으시는 것 같았는데, 막걸리를 반쯤 나눠 마셨을 때 인상이 좋다며 칭찬해주셨다. 앞으로 함께 맛있는 걸 자주 먹자고도 하셨다. 2월의 아빠는 그 사람을 가만히, 유심히 바라보더라. 자주 웃었고, 그 사람 명함을 한 장 받아갔다. 아빠는 전화로 우리 딸이 남자 보는 눈이 있더라고 후일담을 전하셨다. 


   어느 날 밤, 통화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30대 초반에 엄청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운전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큰 사고가 날 뻔 했다고. 간신히 사고를 피했다고. 사고가 났다면 아마도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거라고. 그때 죽지 않은 게 너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이런 말은 오래 기억한다. 작년 내내 서로 마음에 생채기 내며 싸웠던 것들은 금새 잊어버리고, 좋은 말 좋은 마음만 담아두려고 한다. 나의 바닥을 잔뜩 보이고 나니 그렇게 해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고맙다는 생각이 올해 더 깊어졌다. 아버지와 대게를 먹기로 했고, 통영에 둘이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봄이 되기 전에. 



* 인상(印象) : 1. 어떤 대상에 대해서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 무뚝뚝한 ~ / ~에 남다 / 좋은 ~을 남기다.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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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모퉁이다방 2019. 1. 29. 23:15



   주말에 병규와 한나에게 요즘 낙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나의 요즘 낙은 무엇인지 어제오늘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요즘 나의 낙은 뚝배기 밥이었다! 밥솥이 고장난 상태이고, 집에서 밥을 잘 안 해먹고 있었는데, 자주 가는 블로그에 냄비밥 이야기가 계속 올라왔다. 냄비밥을 해먹기 시작했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 젊은 부부인데, 그때그때 2인분씩 해서 누룽지까지 알뜰하게 먹는다고 했다. 냄비 브랜드를 알려주길래 찾아봤다. 그 분이 쓰는 냄비는 색이 파란 것이 무척 예뻤는데, 값이 나갔다. 그래서 그 브랜드의 자그마한 뚝배기를 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뚝배기(냄비)밥은 흰쌀밥을 할 경우 쌀을 한 시간 이상 불려두고, 쌀과 물을 1:1 비율로 넣는다. 자, 그럼 밥을 해보자. 불을 제일 센불로 두고 밥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중간불로 낮춘다. 그렇게 5-6분을 둔다. 그러면 뚝배기 뚜껑 사이로 밥물이 마구마구 흘러나온다. 아직까지는 기술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뚜껑을 한번 열었다 닫고 흘러나오는 밥물을 닦아주고 있다. 그렇게 뚝배기가 중간불에서 점차 진정이 되면, 밥물도 더이상 새어나오지 않고 밥이 되는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불을 완전히 끄고 다시 5-6분 정도 뜸을 들인다. 그렇게 20분도 안돼 갓 지은 윤기나는 밥이 완성! 적당히 익은 먹음직한 누릉지까지. 이번 설 선물로 광천김을 받았는데, 딱이다. 햅쌀도 샀다. 갓 지은 뚝배기 밥에 짭잘한 김을 싸서- (침 꿀꺽) 부지런히 연마하여, 능숙한 뚝배기밥 능력자가 되어야지.


* 낙(樂) : 즐거움이나 위안. 인생의 ~ / 고생 끝에 ~이 온다 / 꽃 가꾸기가 유일한 ~이다. <-> 고(苦)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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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빵

from 모퉁이다방 2019. 1. 22. 21:09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J씨가 차장님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해지셨다고 했다. 잠시 뒤 들어온 차장님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택시를 타기 직전까지 차장님은 울고 울고 또 우셨다. 오후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친구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마지막 인사 따위 차분하게 나눌 새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소중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일을 하면서 계속 눈물이 나서 모니터 아랫쪽에서 눈물을 닦아댔다. 


    케이블 채널을 뒤적거리다 <외식하는 날>이라는 프로그램 재방을 보게 됐는데, 배순탁 작가 편이었다. 배순탁 작가는 밤새 원고마감을 하고 자주가는 순대국집에 갔다. 맛집인 것 같았다. 밥이 따뜻하게 토렴되어 나오는 순대국집이었다. 배순탁 작가는 아버지에게 순대국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순대국을 먹을 때면 늘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 이야기에 스튜디오에 있는 작가의 눈이 금새 촉촉해졌다. 아버지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집은 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토렴한 따듯한 순대국을 먹는 작가의 모습이 느리게 나오고 그 위에 음악이 깔렸다. 작가가 아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했다. 댄스 위드 마이 파더. 


   네이버의 도움을 받은 이 노래 가사 중 가장 울컥했던 부분은, "난 사랑받고 있음을 분명 알았어요." 옛날에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아빠는 나를 높이 들어 올리고 엄마와 함께 춤을 추곤 하셨죠. 그리고 나서 내가 잠이 들 때까지 날 안고 흔들어주었고, 위층 침대에 데려다 눕히셨죠. 그렇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았던 나날들의 가사. 그리고 이 부분. "아빠와 다시 춤을 출 수 있다면, 난 절대 끝나지 않을 노래를 부를 거예요. 얼마나 좋을까. 아빠와 다시a 춤을 춘다면." 절대 상상도 못했어요. 아빠가 내 곁을 떠날 거라고는. 마지막으로 아빠를 한번 더 볼 수 있다면, 아빠와 한번 더 춤을 출 수 있다면. 


   왜 중요한 것들은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서야 깨닫게 되는 걸까. 얼마나 좋을까. 아빠와 다시 춤을 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빠 : <소아> 아버지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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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from 모퉁이다방 2019. 1. 14. 22:23


   

   물이 끓는다. 똥과 머리를 떼어두고 냉동실에 보관해 온 국물용 멸치와 지난해 주문진에서 잘못 사온 황태껍질을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완도산 미역을 잠시 불린 뒤 잘게 잘랐다. 미역국의 미역은 잘게 씹히는 게 좋더라. 냉동실을 뒤져보니 대구포가 있어 잘라뒀다. 멸치황태껍질물이 누우렇게 우려났다. 참기름도 들기름도 없어 잘게 썬 미역을 그냥 냄비에 넣고 다진마늘과 함께 볶았다. 길게 썰어둔 대구포도 넣었다. 쏴아-하고 냄비가 들뜨는 소리가 나자 멸치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누우렇게 우려난 미역황태껍질국물을 아낌없이 부었다. 이제 맛이 우려날 때까지 끓이면 된다. 미역국은 오래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나니까. 


   이번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겨우내 참 많이도 쳐먹고 참 적게도 움직였다. 추운 겨울에 꽁꽁 싸매고 걷는 걸 좋아하는데, 하루건너 뿜어져나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전혀 걷지도 못했다. 러닝머신을 일주일만 해도 몸이 달라진다는 동생의 조언에 퇴근 후 지난 여름 3개월 끊어두고 열 번도 채 가지 않은 헬스클럽에 갔다. 가기 전까지 그냥 내일부터 할까, 하는 내 안의 빠른 포기와 징글징글 게으름 세포들이 마구 활동했지만, 어찌되었든 갔다. 이번에는 심플하게 한달만 끊었다. 비싸더라도 이게 나랑 맞지. 이번에는 한 달을 꽉 채우고 다음달도 등록할 수 있기를. 뉴스를 보면서 열심히 걷다가 오늘이 오지은 일본여행 프로그램 첫방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이어폰이 없는데.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격려세포들도 활성하다는) 헬스장을 나왔다. 헬스장이 집 앞에 있어 금방 들어와 본방사수를 했다. 오지은의 단단한 황토색 등산화를 보고 있자니 나도 저런 단단한 신발을 신고 일본 어딘가를 여행하고 싶어졌다. 올해는 후쿠오카를 꼭 가보고 싶은데. H오빠가 말한 취향 저격 모츠나베도 꼭 먹어보고. 흠. 결론은, 여행기를 보고 배가 고파져 무언가 내일 먹을 만한 걸 만들어놓고 자자, 생각이 들어 집에 있는 재료들로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내일 가래떡을 넣고 후루룩 후루룩 따뜻하게 먹어야지. 


   사진은 미역국과 전혀 상관없는 치킨 반반. 지난주 인덕원에서 인생통닭집에 갔다. 나는 저런 옛날 스타일의 바삭바삭 튀겨진 통닭을 좋아하는데, 아 정말정말정말 맛있었다. 손님들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아, 지금 당장 또 먹고 싶다! 바삭바삭한 닭살을 크게 베어 먹고 연이어 탄산이 많은 차가운 생맥주를 벌컥벌컥. 캬- 내일은 꼭 이어폰 가져가서 헬스장에서 세계테마기행을 봐야지.



* 다이어트(diet) : 체중을 줄이거나 미용.건강을 위해서 먹는 음식의 양과 종류를 조절하는 일. 식이 요법. 지나친 ~는 건강을 해친다.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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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from 모퉁이다방 2019. 1. 1. 08:37



  마흔이 되었다. 어제 Ss는 이제 백세시대이니 마흔도 청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포티가 되리라 다짐해본다. 어제 일찍 잤고, 오늘은 일찍 움직인다. 새해 새책을 책장에서 골랐고, 이번 다이어리는 끝까지 쓸 수 있게 얇은 것으로 골랐다. ​​​​​엄마아빠에게 새해맞이 용돈을 보냈고, 떡국을 함께 먹기 위해 그 사람에게 가는 중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할 거다. 이렇게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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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

from 모퉁이다방 2018. 12. 23. 21:41



   데이트를 하고, 병원에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금요일과 주말을 보냈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읽고 있던 책 한 권을 끝냈다. 친구는 최근에 J.D. 샐린저의 이야기를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더이상 책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했는데, 죽을 때까지 평생 글을 썼대, 라고 친구가 말했다. 내가 전철에서 마친 책의 작가도 십년동안 발표할 기약이 없는 글을 꾸준히 썼다고 했다. 이 책을 읽고 엘프리데 옐리네크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보아야지 생각했다. 친구가 추천해 준 <호밀밭의 반항아>도 꼭 봐야지. 친구는 자신의 깊이가 이 정도면, 그것보다 훨씬 못한 글이 쓰여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만큼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 자신의 깊이를 늘이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내 깊이가 늘어나야지 훨씬 못한 글이 그만큼 더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데이트를 하는 중에는, 이렇게 중년의 초입에 너를 만나서 좋아,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도 그랬다. 중년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중년에도 좋은 것을 기록하고,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친구의 말처럼 더 깊어지고 싶다. 


   주말에 읽은 글귀. "한마디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때. 몇 가지 문제를 진득하게 붙들고 있다 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의 능력이나 소망, 잊고 있었던 꿈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발견으로 비상한 도약이 가능할 수도." 내년 쌍둥이자리 별자리 운세이다. 오늘 저녁에는 내일 아침으로 먹으려고 멸치로 국물을 낸 된장국을 끓였다. 내일 아침에 찬밥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 된장밥을 먹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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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

from 모퉁이다방 2018. 12. 20. 22:03



   지금까지 열한 줄을 썼다가 모두 지웠다. 모두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동생은 요즘 수영에 빠졌는데, 잠수함이라고 놀림을 받다가 결국 배영에 성공했다. 오늘부터 평영을 시작했단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면 역시 성공하나 보다. 이 쉬운 진리를 나는 왜 늘 잊어버리는 걸까. 나는 포기가 쉬운 아이다. 수많은 포기가 있었다. 방금 동생이 크리스마스 때 강습은 없고 자유수영을 하는데, 수영장에 캐롤을 틀어준다고 했단다. 갈 거야, 크리스마스 날에, 라고 방긋 웃는다. 오늘은 혼자 남아 야근을 했다. 칼퇴를 하지 못한 날은 뭔가 깊은 감정이 드는데, 그건 업무시간에 쉴 틈이 정말 1분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계속되어도 괜찮을까, 가끔 생각한다. 내년에는 포기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나 이상 꼭 만들어보아야지. 그래서 무언가 꼭 성공해보아야지. 


   친구는 다음 날 회식 때 먹은 회로 인해 자신이 식중독에 걸릴 줄도 모르고, 내게 연말 택배를 보냈다. 따뜻해서 자꾸 손이 간다는 잠옷 두개와 직접 뜬 똑딱이 자석이 있는 쁘띠 목도리와 친구네 집에서는 아무도 안 먹는다는 연어캔, 목도리 착용법을 자세하게 적은 엽서까지. 짜증났던 야근은 친구의 택배를 더욱 기쁘게 받기 위한 신의 전략이었을까. 조만간 친구네 집에 가서 코바늘을 배우기로 했다. 주말 오전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바느질을 하고, 친구의 아가가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시켜주고,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동물 얼굴의 컵홀더를 만들어보고 싶다. 


   오늘 저녁은 매운야채호떡이었다. 늘 나오는 지하철 출구 앞에 호떡과 오뎅을 파는 곳이 있는데, 매번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얼마 전 너무 배가 고파 호떡 하나를 사먹었다. 야채호떡이랑 씨앗호떡이 있었는데,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야채호떡을 시켰다. 아주머니가 옅은 쑥 빛깔의 밀가루 반죽을 능숙하게 뜯어내 야채 속을 넣고 커다란 철판 위에서 기름을 적당히 얹히고 누르개로 꾹꾹 눌러 맛나게 만들어주셨다. 호떡 안에 잡채랑 깻잎(!), 당근, 양배추가 들어있고 카레맛도 조금 난다. 남대문에서 먹은 튀긴 잡채호떡이랑 비슷한 맛인데 또 다르다. 우리 동네 호떡이 내 입맛에 좀더 맞았다. 온도도 딱 먹기 좋은 온도다. 남대문은 너무나 뜨거웠다. 오늘은 야근한 나에게 야채호떡 하나랑 오뎅 하나를 상으로 주었다. 호떡은 천원, 오뎅은 칠백원. 단돈 천칠백원에 행복해진 나. 내일은 불금이니 힘내잣. 


   이건 어젯밤 읽은 문장들. 역시 <사랑의 잔상들>에서. 92페이지에서 시작한다. "호세 루이스 게린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영화 <실비아의 도시에서>(2007)가 떠오른다. 감독은 예술학교를 다닐 때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십수 년이 지난 어느 외국의 거리에서 발견하고 따라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따라간 것은 자신처럼 나이든 여성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던 그때 그 나이의 여자아이였다." 94페이지에서 끝난다. 맛을 표현한 단어들이 가득한 우리말 사전이 있음 좋겠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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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

from 모퉁이다방 2018. 12. 19. 21:12



   미세먼지가 많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순히 일회용 마스크가 없어서. 사기 귀찮고. 미세먼지가 많다는 뉴스를 매일매일 들으면서 마스크 회사가 대박나고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어제 동생이 주문한 원두가 왔다. 경주에 있는 커피집에서 넉넉하게 주문해서 먹는데, 다른집 원두를 먹다가 이 커피집 원두를 내려 먹으면 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또 계속 먹으면 심드렁해지고. 그런 면에서 원두도, 일도, 사람도 비슷비슷한 것 같다. 늘 곁에 있음을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고 다짐해본다. 


   드라마를 통 보지 않았는데, 요즘 하나씩 보기 시작하고 있다. 제일 빠져 있는 건 <스카이캐슬>. 최근에 두 회 정도 연속으로 보고 푹 빠져 1회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퇴근 후 하루에 한 편만. 더 보고 싶지만 꾹 참고 하루에 한 편만 보자고 결심했는데, 3회부터 유료이다. 어제부터 하루 한 편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유료 결제를 해야 하나. 언제고 몰아서 해 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영화 <인 디 아일>과 <로마>가 무척 좋다는데, 상영관이 너무 작아서 이 또한 못 보고 있다. 젠장. 상암에 CGV 있을 때 좋았는데. 바뀐 메가박스에도 예술영화전용관이 있지만, 뭔가 상영작도 그렇고, 지나친 교차상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좌석은 엄청 좋다. 넓고 쾌적하다. 커피집이 하나 생겼는데, 거기 라떼가 엄청 맛있다. 2층에는 방배김밥이라는 김밥집이 생겨서, 지난주에 먹어봤는데 어마어마한 맛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조조로 <갈매기>를 봤다. 체홉의 희곡을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했고.


   퇴근길에 두 사람에게서 오늘 회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집에 곧장 들어와 어제 배송받은 패딩을 반품하려고 경비실에 맡겼다. 생각보다 길고 컸다. 왠만하면 반품은 잘 하지 않는데, 회사에 같은 패딩을 입는 이가 있어 여러모로 반품이 낫겠다 싶었다. 경비 아저씨의 기분이 요즘 좋지 않으시다. 왜 그럴까 생각하며 다시 올라왔다. 설거지를 하고, 계란 일곱개를 삶았다. 저번에 한 번 만들어본 마약계란장조림을 만들었는데, 집에 양파가 없어서 그냥 있는 재료로 파와 고추, 깨를 넣었다. 계란만 삶아 간장, 물, 설탕으로 만든 양념장에 하루 이상 숙성해서 먹는건데, 간단해 보여도 맛이 놀라웠다. 밥에 국물과 쪼갠 계란을 쓱쓱 비벼 먹으면 엄지 척! 설탕 대신 꿀을 넣고 뭔가 좀 부족한 듯 해 작년에 만든, 모과청이 되지 못한(ㅠ) 꿀모과를 잘게 썰어 넣었다. 내일 아침에는 오늘 산 누룽지에 계란 장조림을 먹어야지. 


   요즘 책을 거북이보다 더 더디게 읽고 있다. 티비와 핸드폰을 없애야 하는데! 그래도 오늘 한 페이지 이상은 읽었다. 좀더 읽고 자야지. 어젯밤에 읽은 페이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들은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를 곁으로 끌어들이기보다 그저 고독 안에서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이는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조차 지켜야 하는 거리가 있음을 아는 자의 태도를 뜻한다. (p.67, <사람의 잔상들>) 저녁으로 퇴근길 두부가게에서 산 손두부를 나무숟가락으로 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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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from 모퉁이다방 2018. 12. 9. 20:00




   휴가가 끝났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다. 영화를 세 편 보았고, 계획했던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질 못했다. 병원을 두 번 갔고, 담당 선생님이 병원을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허기가 자주 밀려와 이것저것 먹었고, 예능을 많이 보았네. 초대를 받고 딸기와 포도, 아가 그림책을 사들고 친구의 친구집에 가기도 했다. 즐겨보는 예능인 짠내투어의 부다페스트 편을 보다가 그래, 헝가리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갈 수 있었을텐데, 생각하다 나 돈이 없지,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이것저것 먹으면서 돈을 꽤 많이 썼다는 것이 눈물겨운 현실. 신서유기가 없는 일요일을 보내야 한다. 화이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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