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from 모퉁이다방 2018.11.27 22:28



   지난 주에는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한 친구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 대전 쪽에서 지내던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가족은 세종시에 있고, 자기만 이직을 해서 서울에 올라와 있다고, 같이 있다 혼자 있으려니 외로운 느낌이 든다고, 언제 한 번 얼굴 보자고. 우리는 반 년 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퇴근 후 합정역에서 만나 곱창을 먹으러 갔다. 실은 그애가 결혼한 뒤 한참 만에 만난 거면서. 애가 벌써 둘이니까. 옛날 얘기를 하면서, 예전 친구들 얘기를 나누면서, 곱창을 먹었다. 2차를 가서는 먹태와 라면땅도 먹었다.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때 왜 그렇게 니네들이랑 대면대면 하게 지냈을까. 그때 친하게 지냈으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을 거 같은데.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냈지만, 대학교에 와서야 제법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그 때 좀 더 재미나게 놀고, 공부했더라면 좀 더 개성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친구가 전해준 예전 친구들 소식은 놀랍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기특하기도 했다. 우리의 소식이 닿지 않는 곳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친구는 최근에 연락을 하지 않는 누나 이야기를 하면서, 대전에서 고향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시간에 대해 말했다. 평소에는 누나 생각을 하지 않다가 이상하게 그때에 생각이 난다고. 고성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옆과 뒤에 아이들과 아내가 잠들고 나면 혼자만 깨어 운전을 하는데, 그때 누나 생각이 난다는 거다. 나는 조용한 차 안에서 우애가 참 좋았던,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누나를 생각하는 친구를 생각해봤다. 순간 나는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시간 동안의 친구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잘 모르는데도 그럴 것 같았다. 


   다른 친구는 생일이었다. 조금 늦은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친구네 집에 모였다. 친구가 아이를 낳은 뒤부터 우리의 모임 장소는 항상 친구의 집이다. 친구는 신기하고 요긴한, 그러면서도 저렴한 살림살이들을 늘 사곤 하는데, 이번에도 집에 가서 새로 산 좋은 물건이 없나 살펴보고, 어디서 샀는지, 어떤지 물어봤다. 친구의 아가는 지금까지 몇 번 봤는데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자기를 쳐다도 보지 말라고 손을 절래절래 젓더니 헤어질 때 쯤에는 제법 친해져서 여러 번 꺄르르 웃어줬다. 우리 셋은 정말 반 년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울어버렸는데, 나는 언젠가 내가 그랬던 걸 떠올렸다. 언젠가 내가 또 그러면, 친구는 이번의 자신을 떠올리겠지 생각했다.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잘 놀고, 작별 인사를 하고 집에 왔다. 다음 날 아침,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마루에서 니가 준 선물꾸러미를 하나하나씩 열어봤다고. 나는 친구가 일요일 아침 일어나 아이와 남편을 방에 두고 나와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마루에서 잘 여미어둔 봉투를 다시 열어 내가 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천천히 엽서도 읽어보는 상상을 했다. 조용한 아침, 잠옷바람의 친구 뒷모습을 생각해봤다. 이상하게 외로워 보였는데, 그게 또 좋더라. 사람은 다 외로우니까.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우리는 고독하다. 뇌 속에서는, 우리는 특히 고독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는 않는다. 

- 132쪽,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