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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부지
    모퉁이다방 2018. 8. 3. 17:06



      위가 안 좋아 병원에 다녀왔다는 아빠는 의사를 탓했다. 진찰실이 너무 좁고, 진찰을 하고 있으면 다음 환자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의사도 성의가 없다는 것. 젊은 의사가 아빠에게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단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아빠가 이번에는 무슨 소리를 그렇게 많이 했을까 생각했다. 서울의 병원에 함께 가 본 바, 아빠는 확실히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 젊은 의사를 잘 신뢰하지 못했고, 종합병원의 지위가 있는 의사에겐 유명하신 분이라 들었다, 는 말부터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혹여나 아빠를 하찮게 볼까봐 진료실에 나와서 신신당부를 했다. 아빠, 너무 많이 말하지 마. 의사가 싫어해. 할 말만 하고, 못 믿겠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마. 기분 나빠하잖아. 


      엄마의 말에 의하면 진주에서 유명한 병원이라고 했다. 아빠는 내시경을 1월에 했는데 또 하자는 말을 듣고는 이전 기록을 보고 진찰해주면 안되나, 약국에서는 내시경은 1년에 여러 번 하면 안 좋다고 하던데, 서울 병원에서는 종이컵에 후하고 불기만 했다 (이건 헬리코박터균 죽일 때였는데) 등의 이야기를 했고, 젊은 의사가 칠십이 넘은 아빠에게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다는 거다. 아빠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병원에 가서는 중요한 것만 물어보라고, 너무 많이 말하면 바쁜 의사들이 싫어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갑자기 내가 병원에서 겪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친구가 최근 강남의 병원에서 들었다는 핀잔들이 생각났다. 병원에 가면 우린 다 약자가 되고, 큰 병이 있을까봐 잔뜩 주눅 들어 있고, 궁금한 것들이 A부터 Z까지 있는데, 자연스레 강자가 되는 그들이 우리가 약자라는 이유로 너무 무례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아빠는 예전에 알고 지냈던 약사 이야기를 했다. 그 약사는 의학공부를 할 때 의사들이 심리학 수업도 함께 듣는다고, 간혹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 환자가 병원을 나서면서 의사에게 선생님 이 약만 잘 먹으면 낫는 겁니꺼? 라고 물었을 때, 의사가 이 약만 먹으면 바로 낫습니더, 라고 힘을 주는 것도 또 하나의 처방이라는 것이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어쩌면 약보다 더한 효력을 발휘한다고.


      아빠에게 그 못된 의사와 마찬가지로 주눅을 준 것 같아 내내 불편해하다 어제 퇴근을 하고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는데, 오늘 문자를 하니 어제 일찍 잠이 들었다는 답이 왔다. 나는 그때 그렇게 말한 거 미안하다고, 아빠 말이 맞다고, 그렇게 의사가 말한 것은 분명 잘못된 거라고, 아빠의 지인이었던 약사 분 말이 맞다고 문자를 다시 보냈다. 아빠가 문자를 보내왔는데, 울보인 나는 아침 출근길에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엔 참 참았다.


    아빠의 문자 : 

    옛날 우연히 알았던 그 약사형이 가끔씩생각히고 그리워 

    (아빠에게도 형이 있다!)


    뒤이은 아빠의 문자 : 

    이젠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않지만 

    A good man으로내마음속에 자리하고있어

    (아빠는 칠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은 문자를 길게 주고 받았다, 아빠의 문자 : 

    어제 니전화 못받아 미안

    There's nothing to worry about

    (Okey! 라고 보냈다가, 철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문자를 왔다;; Oops! Sorry, Okay!)


      강자가 더 너그럽고 다정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병원은 정말이지 무섭다구요. 금요일이고, 좀더 꾸준한 일기를 쓰자는 이 주의 결심이 지켜지고 있어서 기쁘다. 날씨는 죽을 것 같이 덥지만, (스페인 남부가 44도라는 뉴스를 오늘 아침에 보았다. 사람이 살 수 있나요? ㅠ.ㅠ) 좋은 일들이 많은 팔월이 되었음 좋겠다. 오늘 여섯 권의 책을 (무이자 오개월 할부로;;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주문했고, 팔월에는 좀더 많이 읽고 좀더 많이 웃고 싶다. 모두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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