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from 모퉁이다방 2018.08.16 21:19




   세상에나.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올라왔는데 바람이 분다. 큰 바람이 분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세상에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올 여름이 가고 있다. 절기라는 것이 어쩜 이리 신기한지. 말복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올 여름 우리들 무척이나 수고했다며 바람을 보내주셨네. 집에 와 동생이 틀어놓은 에어컨을 껐다. 여름내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고, 맞바람이 불 수 있게 현관문도 걸개를 채우고 열었다. 세상에, 바람이 분다. 


   지난 주였나. 지지난 주였나. 오늘보다 덜했지만 바람이 분 날이 있었다. 그날 연신내로 콩물을 사러 갔었다. 바람이 불어 걷기도 할 겸 간 거였는데, 그날따라 두꺼운 청바지를 입었고 조금 걷다 보니 땀이 주르륵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간간이 바람이 불어주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하늘이 무척 예뻐서 시장에서 콩물과 두부를 사고 응암역까지 지하철 두 정거장을 땀을 흘리며 걸었다. 요즘은 음악을 통 듣지 않고 있는데, 간만에 음악도 들었다.


   그 전 주에 메시지를 받았는데,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 발견했다는 거였다. 차 안에서 늘 걸그룹 음악만 듣는 사람인데, 이유는 신이 나서. 우울한 노래는 듣기 싫고, 경쾌하고 즐거운 노래가 좋다고 했다. 그래야 졸리지도 않고, 힘도 나고. 차에 타면 늘 함께 걸그룹 음악을 연이어 들었다. 그 중에 '해피'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팝도 있었는데, 엄청 신나게 불러대더니 말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랗고 조그만 아이들이 행복한 보금자리를 향해 우르르 이동을 하는 장면이 생각나서 막 행복해진다고. 영화 <미니언즈> 이야기란다. 


   라디오를 듣다 발견한 노래는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내가 지난 몇년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 결국 최백호의 공연까지 다녀오게 한 곡. 한번도 가본 적 없고, 겪은 적 없는 어떤 장면과 마음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곡. 그 메시지는 핸드폰의 오른쪽과 아랫쪽 버튼을 눌러 저장해뒀다. 신기했다. 영화고 노래고 접점이 없는 우리가 조금씩 서로의 취향을 이해해 가고 있다는 게. 아, 바람이 이리도 시원하게 분다. 이제 땀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겠다.



 

  1. BlogIcon wonjakga 2018.08.17 02:5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늘 하늘이 이리 이뻤나요? 놓친 하늘을 여기서 보네요! 고마워요 :)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8.17 18:51 신고 BlogIcon GoldSoul

      앗! 이 하늘은 땀을 뻘뻘 흘리고 콩물 사왔던 날의 하늘이에요. 엄청 예뻤어요. 헤헤- 어제 하늘도 분명 이뻤을 거예요! 그리 고운 바람님이 와주셨으니. :-)

  2. 2018.08.17 10:0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8.17 17:35 신고 BlogIcon GoldSoul

      저도 완전 좋아하는 노래예요!
      지금의 실연으로 너무나 힘든데, 그래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곡-
      오늘 저녁에도 바람이 불어준다면, 간만에 들어봐야겠어요. 바람이 분다~
      쓸쓸해지지 마세요! 우리가 지난 한여름, 얼마나 원했던 바람인가요! :-)
      흑흑- 올 여름은 정말이지 더웠어요. 바람이 분다~

  3. 2018.08.22 00: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8.22 22:22 신고 BlogIcon GoldSoul

      언니, 축하해요! 출퇴근은 괴롭지만, 행복한 일이기도 하니까.
      월급을 생각해보아요. 때론 그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니, 자주. 흑-
      민결이 떼어놓고 나오는 길이 힘들겠어요. ㅠ.ㅠ
      언니, 언니에게 출근 축하 기념 치맥 1회권이 생겼어요. 헤헤-
      행복할 때나 쓸쓸할 때 언제든 사용해주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