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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자 도쿄 - 김영하의 사진집
    서재를쌓다 2008. 8. 8. 02:59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지음/아트북스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뒀다. 왠지 이번 책은 사서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에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편이랑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여행자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하이델베르크 편에 나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책이 생각보다 너무 얇네, 글이 너무 적네, (이건 확실히 좀 실망스러웠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확실히 이번 도쿄편은 이전보다 책이 두꺼워졌다. 묵직하다. 그만큼 가격도 상승. 역시 글은 너무 적다. 하이델베르크 편에 비해 산문이 더 늘긴 했다. 나는 왜 하이델베르크를 담은 책처럼 도쿄를 담은 책을 그럭저럭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이런 결론까지 내렸다. 아무래도 앞으로 쭉 나올 여행자 시리즈를 좋아하긴 힘들 것 같다는.

       그게 있었다. 음악 씨디. 작가가 하이델베르크에서 들었다고 했던가, 하이델베르크를 생각하며 골랐다고 했던가. 내가 산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편에는 그 씨디가 보너스처럼 실려 있었다. 물론 이건 내가 부지런해서 얻은 것이다. 당시 예약주문한 사람들에게만 공짜로 끼워 주었으니까. 나중에는 따로 음반을 판매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음악들이 좋았다. 씨디를 리핑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옮겨두고 '김영하'라고 입력한 폴더에 넣어뒀다. 책을 읽을 때 잠깐 듣고는 내내 잊고 있었는데, 어느 저녁 꽉 막히는 도로 위 버스 안에서 심심해 플레이어를 뒤적거리다 찾아내곤 들어볼까하고 재생시켰던 음악들. 그 때 나는 버스 제일 맨 뒷 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버스가 한강 다리 부근에서 거의 정차되어 있었다. 노을이 슬며시 지고 있었고, 버스 안이며 버스 밖이며 옴짝달짝할 수 없어 짜증나는 얼굴을 한 사람들이며 차들뿐이었는데 그 음악들을 들으며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만 그 속에서 생기있게 느껴지는 거였다. 나만 달리는 것 같고, 나만 즐거운 것 같았다. 나만 행복한 것 같았다. 3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걸려 왔는데도 내리기가 싫었다. 이 버스를 타고 이 음악들을 계속 들으며 앉아 있고 싶었다. 맨 뒷 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서 나른한 기분으로.

       그러니까 나는 그 때 하이델베르크가 배경인 아주 짧은 소설과 카메라와 도시 이야기가 담긴 짧은 산문과 도시를 담은 사진들, 작가가 직접 고른 14곡의 음악을 9,800원을 주고 샀다. 인터넷으로 산 거니 몇 백원은 더 할인 받았을 거다. 그리고 이번에는 14곡이 음악을 빼고, 도쿄가 배경으로 짧게 등장하는 단편 소설 한 편과 도쿄와 카메라 이야기의 산문, 도시의 사진들을 주고 13,800원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2,420원, 마일리지 1,250원 플러스) 지불해야 된다는 건데. 흠.

        뭐랄까. 여행자 시리즈라는 이름이 있지만 '소설가 김영하의 사진집'이라고 소개하는 편이 더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글은 보너스같다) 소설과 에세이, 사진의 결합이라고는 하지만 글을 쓰는 소설가의 여행책을 기대하는 나같은 독자에겐 여행자 시리즈의 글은 너무 적다. 사진을 좀 더 줄이고 글을 더 늘여도 좋으련만. 산문이든, 소설이든. 사실 도쿄편의 소설은 내겐 좀 별로였다. 풍선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다. 차라리 앞으로 여행할 도시들에서 끌어낼 각각의 도시를 담은 단편소설을 한 책에 묶어내는 편이 독자들에게는 더 알찼을거라는. 아무래도 나는 소설가의 사진보다는 소설가의 글을 기대하는 거였나보다. 그럴려면 이 책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1-2시간이면 후루룩 읽을수 있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건 거품 가득한 일본의 맛있는 생맥주와 캔맥주 이야기. 침이 고였다. 그 옆에 있는 생맥주 사진에 한번 더. 아무튼. 김영하의 하이델베르크를 보고나서는 도쿄가 기다려졌는데, 도쿄를 보고나니 다음 도시는 별로 기다려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러면서 나오면 또 궁금해서 볼 거면서) 그러니까 아무래도 나는 사진 찍는 소설가보다 글 쓰는 소설가가 더 좋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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