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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빨개지는 아이 - 나도 잘해줄게요
    서재를쌓다 2008. 7. 24. 22:55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열린책들


      '금령씨에게 잘해줄게요'로 끝나는 메일을 받았다. 나는 내가 아끼는 김연수의 낭독 파일을 첨부해 보냈다. '난 이걸 우울할 때마다 꺼내 들어요. 슬픈 날에도요.' 라고 쓴 메일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성기완 시집의 낭송 파일을 보내왔다. '기분이 조금 좋아지더라구요. 솜사탕도 사탕일까, 솜솜솜.' 어제 오늘 나는 여러번 이 파일을 꺼내 들었다. '솜은 왜 솜이 되었을까. 솜솜솜. 솜사탕도 사탕일까. 솜솜솜.' 나는 그녀의 메일을 받고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거기다 어제부터 시작된 이 비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장맛비는 도대체 언제오는거야, 노래를 불렀었는데. 가끔씩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쏴아쏴아 쏟아져준 덕분에 오늘 하루 아주 자알 보냈다.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빌렸다. 신간도서코너에 이언 매큐언의 새 책이 놓여져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복잡한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았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촉촉한 이야기였으면 했다. 얼마전 자주 들르는 블로그에서 이 책에 관한 짧은 글귀를 봤는데, 오늘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읽을 더할나위없는 날이라는 생각에 도서관 검색창에 '얼굴 빨개지는'이라고 친 뒤 청구기호 'NB863-ㅅ194얼'를 쪽지에 옮겨적고 책들 사이에서 얼굴이 빨간 요 녀석을 찾아 대출했다. 도서관 1층에서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며 크림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불솜 틀어드립니다' 파일을 꺼내 들었다.

       들어오는 길에 집 앞 슈퍼에서 밀가루와 서울쌀막걸리를 샀다. 막걸리는 누가 뭐라해도 서울쌀막걸리다. 톡 쏘며 새콤달콤한 서울쌀막걸리의 맛. 나는 이 맛에 반했다. 그래서 비오는 날은 혀가 먼저 반응을 한다. 서울쌀막걸리를 사. 신김치를 꺼내 사각사각 썰고 냉동실에서 오징어도 꺼내 길쭉하게 썰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후라이팬에 식용유 약간 두른 뒤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 동생이랑 예쁜 잔에 막걸리를 따라놓고 맛나게 먹어치웠다. 먼저 한 장 구워 먹고 있는 사이에 후라이팬 위에 반죽을 얹어놓고, 먹고 있는 김치전이 반쯤 사라지면 가스렌지로 가 노릇노릇 익고 있는 전을 한 번 뒤집었다. 그렇게 한 7장 정도를 먹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조금 더 좋아졌다.

       그리고 배 깔고 누워 9시 뉴스를 기다리며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읽었다. 술 기운이 올라오는지 이 작고 귀여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특히 이 부분들.


    그러나 (이 글자는 좀더 까만색이다. 왜냐하면, 이어질 이야기들이 조금은 슬픈 것이기 때문이다.)
    65페이지.
    그리고 (이 글자가 왜 분홍색으로 씌어졌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98페이지.


       마지막장을 넘기고 나서 나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장 자끄 상뻬가 <꼬마 니콜라>를 그린 이라는 걸 발견하고 난 뒤에 더더욱. 나는 니콜라는 사랑했었다. 아, 그 책들 고향집에 가면 아직도 있을텐데. (동생과 최근에 니콜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 니콜라 나 그 아이 너무 좋았어' 라고 말한 동생이 사랑한 건 스누피의 찰리 브라운였다는 게 이런저런 대화 끝에 밝혀졌다. 동생은 찰리 브라운을 니콜라로 기억하고 있었다. -_-) 그리고 배를 두드리며 천장을 향해 돌아 누으며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꺼내 '이불솜 틀어드립니다'를 다시 들었다. '나는 솜이라는 글자를 생각보다 오래도록 쳐다봅니다. 솜 솜 솜사탕.' 이 파일을 보내준 그녀는 메일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다정하게 내 진짜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아, 나는 서울쌀막걸리에 취해 얼굴이 빨개졌다. 예전엔 술을 마셔도 빨개지지 않았는데 요새는 자주 그런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재채기를 하고 있을까.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까 오늘밤 나는 아주 많이 행복하다는 말씀.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궃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58페이지.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5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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