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의 일들

from 서재를쌓다 2012. 7. 7. 20:01

 

    소설가 김연수는 언젠가 <폭풍의 언덕>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도입부의 목소리에 전율하지 못하고 이십대가 됐다면 그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폭풍의 언덕>을 "십대시절에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 "열병의 소설"로 설명하는 한편 "왜 숱한 대중적 멜로드라마는 고전이 되지 못했는데 <폭풍의 언덕>만은 고전이 되었느냐, 대학 시절부터 나는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문학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생각도 털어놨다.

- 씨네21 860호, '사랑은 어떻게 끝내 극렬하게 결렬되는가' 중에서

 

 

   지난 토요일, 하루종일 잠을 자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자 보문역에 있는 친구집에 갔다. 친구는 회사에서 20여 분 거리의 집에 최근 이사를 했다. 집들이였다. 친구는 내 바램대로 하이네켄 생맥주통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소시지를 구워두고, 자두를 씻어뒀다. 나는 이번 여름 한정판 맥스와 튼튼한 맥주잔 두 개와 내가 사랑하는 연어와 파인애플을 가지고 갔다. 아, 와인도 있었는데 이건 결국 개봉도 못했다. 따개도 없었고, 그 밤 우리가 깨달은 건 우리가 생각만큼 술에 강하지 못하다는 것. 집에서 가져간 잠옷으로 갈아입고 친구와 마주보고 앉아 다시 시작된 우리의 서울생활에 건배했다. 어디선가 건배를 자주하면 행복해진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냥 맥주만 따라 마시다가, 조금 있다 음악을 틀었다. 조금 있다 통닭을 배달시켰고, 조금 있다 노트북으로 <화양연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친구가 잠들고, 내가 잠들었다. 중간에 깨서 친구는 상을 치우고, 이불을 펴주고, 설겆이를 했다. 친구가 설거지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다. 친구는 설겆이를 끝내고, 노트북으로 다른 영화 한 편을 보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다음 날, 내가 먼저 깼다.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잠이 안 와서, 읽고 있던 책을 꺼내 읽었다. 권여선의 새 장편을 읽고 있었다. 제목은 <레가토>.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어서 약간 흥분하면서 읽고 있던 책이었다. 누워서 책을 읽는데, 친구가 깼다. 눈을 반쯤 뜨더니 뭐 읽고 있냐고 물었다. 내가 소설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도 다시 잠들고, 나도 다시 잠들었다. 정오 즈음 일어나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하이네켄 생맥주통에 남은 맥주가 꽤 많아서, 낮술을 마시기로 했다. 어제 남긴 것들을 다 꺼내놓고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함께 봤다. 둘이서 남은 통닭 다리를 뜯으면서 <화양연화> 같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이렇게 술마시면서 보면 분명 끝까지 못 본다, 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 <화양연화>를 보기 시작한 건, 마지막에 캄보디아의 씨엠립이 나오는 부분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씨엠립까지 가기는 커녕. 읔. <코쿠리코 언덕에서>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싫어졌다면, 싫어졌다고 말해줘요." 내가 정말 좋은 대사라고 말하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구가 다시 잠들었다. 나는 다시 <레가토>를 읽기 시작했다. 남은 맥주도 마셨다. 낮술이니까, 당연하게, 금새 취기가 올랐다. 8장이었다. '꽃 핀 오월의 목장'. 광주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정연은 그 날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다시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날이 펼쳐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광주에 갔다. 광주에 갔다 서울로 갈 참이었다. 인하 선배를 만날 작정이었다. 모든 것을 말할 작정이었다.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그 날 광주에서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8장을 읽으면서 조금 울었다. 낮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낮술 때문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연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유인물을 돌리면서 무서웠던 것. 무섭다고 얘기한 것. 그 날, 그 방에서 나오지 '않은' 것도 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통닭집에서 친구들에게 했던 말들도. 그래서 8장에서 정연이 용기 내서 광주를 빠져나오지 않았을 때, 인하형이었으면, 오난이었으면, 재현이었으면, 진태였으면, 경애와 명식이었으면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 흘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에르베 교수와 동행했던 최씨도 무섭다고 했다.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했다. 정연도 대학에서 유인물을 돌리면서 무섭다고 했다.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그들이 '그 날'의 광주에서 살 떨리게 무서웠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8장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광주 이야기구나 생각했다. 권여선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구나 싶었다.

 

    친구가 일어났다. 친구가 씻는 동안 내가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이대역에서 내려 모모로 갔다. <폭풍의 언덕> 표를 두 장 샀다. 화장실에 들렀다 극장에 들어갔다. 낮술 기운 때문인지 영화의 처음 조금 잤다. 영화는 내내 어두웠다. 배경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믿어질 축축함이 그 곳, 폭풍의 언덕에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생수를 사서 한 통을 다 마셨다. 어지럽고, 답답하고 해서 일찍 헤어졌다. 나는 2호선을 타고 건대까지 쭉 왔고, 친구는 중간에 6호선으로 갈아탔다. 일요일에는 이런 어두운 영화 보지 말자고 둘이서 다짐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옷 갈아입고 그대로 누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계속 잤다. 동생이 <신사의 품격>한다고 깨웠는데, 기운이 없어서 보는 둥 마는 둥 실눈을 뜨고 약간 보다가, 계속 잤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

 

    아, 맞다. 건배 이야기는 이번주에 본 <해피해피 브레드>에 나오는 대사였다. 네이버에 나쁜 평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건 거짓말이었다. <안경>이나 <카모메 식당>을 기대하고 간 내게는, 정말 '아닌' 영화였다. 내내 예쁜 풍경에, 예쁜 생각에, 예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안 예쁜 영화였다. 오늘은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러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 동네 극장에서 이 영화가 하루에 딱 두 번 하는데, 밤 9시대가 첫 상영이다. 고걸 보고 걸어서 집에 오면 딱일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준환은 수첩을 넘기며 예전에 적어놓은 문장들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술 마실 때와 죽을 때'라고 적혀 있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게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그는 끝까지 참아낼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감당 못할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금방이라도 발작을 일으킬 줄 알고 황황히 임종의 자리를 뜰 것이다. 그와 꼭 닮은 그의 할아버지가 죽을 때도 그랬다. 눈만 조금 부릅뜨고 콧김만 세게 내뿜어도 일가 친척들은 할아버지가 곧 경련을 일으키거나 괴성을 지를 줄 알고 공포에 떨었다. 그는 '혼자'라는 부사를 첨가했다.

   '혼자 술 마실 때와 혼자 죽을 때.'

   한결 안정감 있는 문구가 되었다. '혼자'라는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들끓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열어놓은 차창으로 인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준환은 수첩과 펜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신이 바라는 게 어쩌면 평생 인하 곁에서 이렇게 혼자 비밀을 간직한 채 무익한 기다림만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37-38

 

   "다녀올게."

   "재밌게 놀다 와."

   언니는 은수가 누릴 몇시간의 유흥에 대한 질투와 혐오를 조금도 감추지 않은 채 메마르게 말했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은수는 언니의 어깨는 탁 풀리고 뜨개질감이 손에서 툭 떨어지리라는 걸 알았다. 이혼하기 전의 용호도 그랬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루어지는 법이니, 혼자 남겨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겨진다. 그럼 난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나, 하고 은수는 자문했다.

p. 279

 

   은수는 경애를 일으켜 발목에 걸린 팬티를 올려주고 벽에 붙들어 세워놓고 휴지로 치마를 닦아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경애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모든 시간이 첫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은수는 생각했다. 이십대도 처음이었지만 오십대도 처음인 것이다. 인생에 두번째란 없다. 그래도 만약 두번째의 이십대가 온다면 링에 모인 이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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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는 날이었다. 연차를 썼는데, 병원에 가야지 싶었다. 일주일 전쯤 술을 마시고 크게 넘어졌는데 계속 팔이 욱신거려서 혹시 이상이 있는 건가 싶어서. 원래 조바심 내는 스타일이 아닌데, 나이를 먹으니 이것저것 걱정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비오는 날이라 디스크에, 깁스에 동네에 있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병원에 죄다 모였다. 그 날 세 시간 넘게 기다리고 엑스레이 찍고 진료를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론. 불친절한 의사의 고 진단이 필요했던 거지. 다음날 욱신거렸던 증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날, 병원에서 할머니들 사이에 앉아 읽었던 책이다. 책장이 빨리 넘어가 금새 다 읽었다. 사고 싶은 책들을 고르다, 어젯밤에 이 책을 중고로 올려놨다. 이상하게 한번 더 읽지 않을 것 같아도, 팔려고 하면 아쉽고 아쉬워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지난 봄에 내가 만난 건축가가 둘 있었는데, 둘다 '좋은' 건축가였다. 이 책 <집을, 짓다>의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그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의 부제는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 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이 부제에 이끌려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집들 중에 '파인하우스'라고 있다. 이 집을 의뢰한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미혼의 편집자 마쓰야 씨. 두 사람은 의뢰하는 집의 구체적인 요구상황들, 진행되어 가는 과정들을 메일로 주고 받는데 이 메일들이 굉장히 따듯하다. 이를테면,

 

"저희 집이 부근의 한적한 거리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해주세요. 사생활은 보호되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폐쇄적이진 않았으면 합니다. 10년 후엔 푸른 나무가 집을 가득 감싸면 좋겠구요. (...) 키가 185센티미터(저는 179센티미터입니다만.)인 사람도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만들어 주세요. "

 

"저는 따뜻한 물에 장시간 몸을 담그고 목욕하는 타입입니다. 더불어 자연광이 적당히 들어오는 파우더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산 내에서는 어렵더라도 앞으로 방음실이 될 수 있는 방이 필요합니다. 이미지 상으로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살짝 어두운 반지하 같은 공간으로, 소음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 놓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의 요구사항. 나카무라 요시후미 씨는 이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진행상황을 메일로 다정하게 알려주고, 그렇게 완성된 집에 어느 날 초대받는다. 자신이 설계한 집을 방문한 후, 마쓰야 씨에게 보낸 메일.

 

"자신이 설계한 집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즐겁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설계자로서 더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집 전체에 고요한 생활의 질서가 숨 쉬고 있어 따듯한 <생활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축에 인간이라는 생명이 깃들면 이렇게도 달라지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정기용. 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말하는 건축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들을 담은 영화. 나카무하 요시후미는 개인의 건축물을 주로 설계하고, 정기용은 공공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축물은 무주의 등나무 운동장. 행사때 마다 땡볕에 앉아 있어야 했던 주민들을 배려해 등나무가 자리잡을 수 있는 건축물을 운동장 관중석을 따라 쭉 설치했다. 건축물을 설치 하고 몇 년 뒤 등나무들이 성큼성큼 자라 관중석에 시원한 등나무 그늘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영화 속에서는 보랏빛 등꽃이 흐트러지게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등꽃들이 샤르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등꽃향을 한번도 맡아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등꽃향을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그 장면. 봄, 이었다. 이 두 건축가를 만난 건. 그리고 내게 '좋은' 건축가가 한 명 더 있다. 삼십 삼 년 째. 그 분은 '남향'에 있다. 내일도 비가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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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홍대의 한적한 커피집에서 이 책을 끝냈다. 저녁이었고 해가 지고 있었다. 일이 끝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고,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한참을 가만히 밖을 내다봤다. 이 책은 좋아서, 정말 좋아서 빨리 읽어버리고 싶기도 했고, 아껴 읽고 싶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많아 자주 멈췄다. 책이 두꺼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루키가 아내와 함께 3년 여동안 유럽에서 지낸 이야기이다. 그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지에 집을 빌려 그곳에서 단기, 혹은 장기적으로 '생활'했다. 장을 봐 와서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싱싱한 연어를 사와 회로도 먹고, 초밥으로도 만들어 먹고 머리쪽은 국으로 끓여 먹는다는 이야기에서 침이 꿀꺽) 주변의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과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며 (아주 자주 유럽의 맛있는 포도주를 마셨다!) 그 곳에서 여행을 한 게 아니라, 살았다. 매일 동네 주변을 뛰고, 집에서 소설을 쓰고, 번역을 하고, 에세이를 쓰며 지냈다. 이 책은 그 3년 동안의 기록이다. (<상실의 시대>도 유럽에 있는 동안 쓴 소설이었다.) 하루키는 계속 투덜거린다. 그 곳의 못 말리는 날씨에 대해, 그 곳의 천하태평인 사람들에 대해, 그 곳의 이해할 수 없는 체계에 대해. 그런데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그게 행복한 투덜거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 이 사람. 이 때 행복했구나, 그렇게 행복하게 이때를 추억하고 있구나, 하고.

 

   오늘은 갑자기 생각이 나서 <투스카니의 태양> DVD를 꺼냈다. 이 영화의 배경도 이탈리아. 영화의 주인공 또한 토스카나를 잠깐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300년도 더 된 오래된 저택을 '운명의 계시를 받은 것마냥' 무언가에 이끌려 구입하고 그 집을 수리해가며 살아간다. 내가 아끼는 영화다. 이 영화에 다이안 레인도 예쁘고, 이탈리아 토스카나도 예쁘다. 정말 이탈리아는 축복받은 땅이라는 걸 이 영화에 나오는 풍경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냈다.

 

 

    <먼 북소리>에서 밑줄 그은 구절들. 아주 아주 많다.

 

...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내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일본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그냥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하자면 정말로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런 생활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p.15-16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일도 일반화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목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17

 

....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야, 하고 그들은 내게 말한다. 아무리 멀리 가도 소용없어, 붕붕붕붕. 어디로 가든 우리는 끝까지 따라갈 거야. 그러니까 당신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흔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렇게 나이만 먹어갈 거야. 아무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테고, 그건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질 거야 ...

p.35

 

... 추운 밤에는 난로에 불을 지핀다. 난롯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은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기분 좋게 지나간다.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마감 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서 타닥타닥하고 불꽃이 튈 뿐이다. 기분 좋은 침묵이 사방에 가득하다. 포도주를 한 병 비우고 위스키를 한 잔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슬슬 잠이 온다. 시계를 보니 이제 10시다. 그대로 포근하게 잠 속으로 빠져든다. 뭔가를 열심히 했던 하루 같기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 같기도 하다.

p.125

 

   여행지에서 그 동네의 길을 달리는 일은 즐겁다. 주변 풍경을 보며 달리기에는 시속 10킬러미터 전후가 이상적인 속도이다. 자동차는 너무 빨라서 작은 것을 놓치기 쉽고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기가 있고 달릴 때의 기분도 각각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길모퉁이의 모습, 발자국 소리, 보도의 폭, 쓰레기 버리는 습관 등도 모두 다르다. 정말 재미있을 정도로 다르다. 나는 동네의 그런 정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도 살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자주 잊어버린 채 살고 있지만.

p.207-208

 

... 그 조깅화는 아무도 잊어주는 사람이 없는 과거의 작은 실수처럼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할 수 없이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종이꾸러미를 받아 든다.

p.274

 

  누군가가 우리를 그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을 멀리 떠나온 서른여덟 살의 작가와 그의 아내. 테이블 위의 맥주, 그저 그런 인생, 그리고 때로는 오후의 양지바른 곳을.

p.304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며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p.502

 

 

 

 

 

   오늘 <신사의 품격>에서 김정란이 다른 거는 필요없고, 자기가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 해 달라고 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라고. 팔베개를 해주는 것 (이건 좀 힘들듯), 토닥토닥해주는 것, 아침에 잠든 얼굴을 보이는 것. 그러면서 그랬다. "당신 미워하다 한 계절이 다 갔네." 김하늘은 이제서야 자신이 장동건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장동건의 친구들 앞에서 장동건에게 한 행동은 정말 잘못된 거였지만, 어쩌면 나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만 같다. 김하늘의 행동은 분명 이기적이었지만, 그걸 장동건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 같다. 그런데 장동건은 차가워진 얼굴로 짝사랑의 종결을 선언했다. 그러자 김하늘은 불현듯 깨닫는다. 벚꽃비 내리는 길에서 키스를 하고 돌아와 반신욕을 하며 물방울이 방울방울졌던 그 로맨틱했던 욕실 안에서 김하늘은 엉엉 운다. 내가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거였어. 이제 어떻게 해. 그 장면, 너무 슬퍼서 나도 같이 울 뻔 했다. 이상하다, 이 드라마. 뭔가 무지 사치스럽고 무지 과잉되어 있는데, 이런 감정들은 사치스럽지 않고 과잉되어 있지 않다. 백퍼센트 그대로 공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내게 좋은 드라마. 케이블에서 <연애의 목적> 해준다. 이거 보고 자야지. 오늘은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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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내내 에피톤 새 앨범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 내내 이 소설을 생각했다. 서머셋 몸의 '레드'. 결국 금요일 퇴근길, 교보에 들러 이 책을 샀다. 토요일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대학교 때 처음 읽고, 몇 년의 시간을 두고 다시 읽고 있다. 또 몇 년 뒤에 생각이 날 테고, 그러면 나는 네번째인가, 다섯번째로 이 소설을 읽게 되겠지. 내게 몇 년의 시간을 두고 결혼식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사람 생각을 했다.

 

    나이들고 뚱뚱한 선장이 있다. 선장의 배는 사업차 원주민 마을에 정박하게 된다. 일요일이었다. 선장은 그 마을을 거닐다 야자수를 이어 만든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 다리 너머 한 백인의 집을 발견한다. 그 집에 닐슨이라는 백인이 있었다. 닐슨은 선장을 집으로 들이고 위스키를 대접한다. 닐슨의 집에는 책이 아주 많았다. 선장은 이 책을 다 읽었냐고 물어본다. 닐슨은 거의 다 읽은 책이라고 말한다. 선장은 말한다. 조금 외로울 것 같군요. 닐슨은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닐슨은 선장에게 오래된 전설과도 같은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레드'라는 이름의 백인과 '샐리'라고 불리던 한 원주민 여자의 이야기. 3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고, 사랑했고, 이곳에서 함께 살았고, 행복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남자가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 뒤 남자는 돌아오지 못했고 (혹은 않았고) 여자는 그리움의 정도야 옅어졌겠지만 아직도 그 남자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이십대 초반에 내가 생각했던 '사랑'은 이런 게 아니었거든. 그런데 삼십대가 되고 보니 이 소설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도. 그 뒤 서머셋 몸을 좋아하게 된 나는 몇 편의 소설을 더 읽었는데,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죄다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그들에게 남은 것은 늙은 모습뿐이었다."

   -p.264

 

  

    에피톤의 새 앨범을 들으면서, 예전 노래들도 찾아 듣고 있다. 하루에 다섯번 이상씩 듣고 있는 노래들. 심규선이 부른 '부디'와 에피톤의 '눈을 뜨면'.

 

 

 

 

    내게도 '샐리'처럼 그 정도야 옅어졌지만 오랫동안 그리워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사람을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결혼식장에서 몇 년에 한번씩 만나게 되는 사람은 있지만, 그 아이는 없다.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듯, 그 사람도 그때의 그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에피톤의 '눈을 뜨면'을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나와 그때의 그 아이가 있다. 지금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그 두 사람이 웃고 있고, 행복해하고 있다. 그때, 참 좋았지 저 두 사람,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저때로 돌아갈 수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늙어버려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때는 참 좋았어, 라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모든 것이 희미한 옛꿈이 되어버린 지금도 나는 그 젊고 아름답고 순수한 두 사람과 그들이 꽃피운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껴요. 마치 가끔씩 구름도 없는 밤에 보름달이 산호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볼 때처럼 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만 같소. 완전한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것은 항상 고통스러운 일이거든요.

  - p.244

 

    "그 레드와 샐리의 슬프고 열렬한 사랑을 이제 와서 돌이켜보며 나는 생각한다오. 사랑의 눈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두 사람을 영원히 헤어지게 한 잔인한 운명에 대해 그들은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요. 그들은 고뇌에 찬 삶을 보냈을 거요.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고통이었소. 사랑의 진정한 비극이 뭔지 알지 못한채 헤어졌으니 말이오."

   "무슨 뜻인지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선장이 말했다.

   "사랑의 비극은 결국 죽음도 이별도 아니란 말이오. 그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요? 지난날에는 하루만 만나지 않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여자를 지금은 다시 만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그보다 무서운 비극은 없소. 사랑에 있어 진짜 비극은 무관심입니다."

- p.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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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3 
김남희 지음/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없어도 되는 것들로 가득 찬 나를 텅 비워 돌아가는 날, 바람만 담은 깃발처럼 가볍게 나부낄 수 있기를...

  중국 저장 성 닝보에서 쓰다.

p.21

 

 

    이 부족은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자나 여자나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다가가 손바닥을 간질이면 좋아한다는 의미란다.

p.150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은 프랑스인들이 붙인 이름이고 원래 이곳의 이름은 위앙짠이라고 한다. 메콩 강을 따라 흐르던 달이 숨을 멈추고 잠시 쉬는 곳, 즉 '달이 걸린 곳'이라는 뜻이란다. 참 어여쁜 이름의 수도다.

p.232

 

 

   그들은 그저 느리게 섬 곳곳을 어슬렁거리고, 그물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강변에서 고기 잡는 이들의 그물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낸 후, 어둠이 내리면 일렁이는 촛불에 의지해 '오늘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짧은 일기를 쓰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닭 울음 소리에 잠을 깨는 시간을 보낼 뿐이다. 짧으면 며칠, 길면 몇십 일을.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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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반양장)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문학동네

 

 

    책이 아주 잘 읽히는 한 주를 보내고 있다. 짧은 두께의 책들을 읽고 있는 탓이긴 하지만. 독서욕구가 마구마구 샘솟는 요즈음. 그동안 뜸했었지. 어느새 일반회원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한 무더기의 책을 주문했다. 이걸 다 읽고 나면 여름이 와 있겠지. 이번주 월요일에는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아침 출근길에 시작해서 저녁 퇴근길에 연이어 읽고, 집에 와 씻고 누워서 마저 읽었다. 노인은 청새치와 싸우고, 상어떼와 싸웠지만, 나는 잠과 싸웠다. 요즘 하도 일찍 자는 습관이 들어서 10시 전에 자는 일이 부지기수. (오늘은 적도의 남자를 봐야 하므로 버텨야 한다!) 졸린데 기필코 다 읽고 자야겠는 거다. 졸다가 깨고 또 졸다가 깨서 책을 읽어 나가던 중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마지막 장을 덮고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하도 모퉁이를 접어서 꾸깃꾸깃해진 책. 여기에 그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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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바다를 나쁘게 말하긴 하지만 그런 때도 항상 바다를 여자처럼 여기며 말했다. (...) 하지만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사납고 약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바다는 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게 노인의 생각이었다.

-p.31

 

   그러다가 돌아서서는 미끼를 삼키겠지,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이 생각만은 소리 내서 말하지 않았다. 좋은 일을 미리 입 밖에 꺼냈다가는 한순간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45

 

   노인은 언젠가 청새치 한 쌍 가운데 한 놈을 잡은 일이 생각났다. 청새치 수놈은 언제나 암놈이 먼저 먹이를 먹도록 양보한다. 그래서 낚싯바늘에 걸린 암놈은 공포에 질린 채 필사적으로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 바람에 금세 기진맥진해버렸다. 수놈은 그동안 내내 낚싯줄을 넘어다니거나 암놈을 따라 수면을 빙 돌거나 하며 암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놈이 암놈 곁에 너무 붙어 있어서 노인은 놈이 꼬리로 낚싯줄을 끊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청새치의 꼬리는 큰 낫처럼 날카롭고 크기나 모양도 큰 낫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던 것이다. 노인이 암놈을 갈고리로 찍고 몽둥이로 후려쳤을 때, 그러니까 양날 검처럼 길고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사포처럼 깔깔한 주동이를 움켜잡고는 대가리 윗부분을 몽둥이로 마구 후려쳐서 몸통이 거의 거울 뒷면 같은 색깔로 변하도록 만들었을 때도, 그런 다음 소년의 도움을 받아 암놈을 배 위로 끌어올렸을 때도, 수놈은 배 주위를 떠나지 않고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노인이 낚싯줄을 정리하고 작살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수놈은 배 옆에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라 암놈이 있는 자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연보라색 가슴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활짝 펼친 채 연보라색 넓은 줄무늬를 내보이며 바다로 떨어져 깊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참 아름다운 놈이었지. 그리고 끝까지 암놈 곁을 안 떠나려고 했어. 노인은 기억을 되새겼다.

- p. 51-52

 

   "반쪽짜리 물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물고기였던 물고기야. (....)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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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이숲

 

 

   운 좋게 그날 작업이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줄줄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언제나 한 대목을 완성하기 전에는 중간에 일을 멈추지 않았고, 또 다음번에 쓸 내용을 미리 생각해둔 다음에야 하루 일을 끝냈다. 그런 식으로 다음 날도 무난히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 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면 언제나 내가 알고 있거나, 어디에선가 읽었거나, 혹은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몇몇 진실한 문장이 있게 마련이었으니까. (...) p.18

 

 

    헤밍웨이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헤밍웨이가 죽은 지 50년이 되는 해. 저작권 보호기한이 끝나서란다. 쏟아지는 책 중에 <노인과 바다>를 주문하고,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주문했다. 책이 도착한 지는 꽤 되었는데 고이 두었다가 5월이 되자 읽기 시작했다. 읽는 동안 행복했다. 좋은 글을 읽을 때 느끼는 충만함. 20세기 초반 예술가들이 득실되었던 파리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속의 카페에서 글을 써나갔던 헤밍웨이를 상상하고, 가난한 그를 사랑한 한 여자를 상상했다. 그들은 파리에서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서로를 존중했고,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평생 네 번의 결혼을 했는데 파리의 그녀는 그의 첫번째 부인이었다. 이 책에는 그 시절 그가 사랑한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인, 가난, 책, 카페, 음식, 맥주와 포도주, 그와 교류했던 작가들 (특히 피츠제럴드!), 파리의 풍경들.

 

 

   그곳은 따뜻하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기분 좋은 카페였다. 나는 비에 젖은 내 낡은 외투를 말리려고 옷걸이에 걸어 놓고, 역시 비에 젖은 오래된 내 중절모를 긴 의자 위에 있는 모자걸이에 걸어 놓은 다음, 웨이터에게 카페오레 한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상의 주머니에서 공책과 연필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

   나는 공책을 상의 안주머니에 넣고 나서 웨이터를 불러 생굴 한 접시와 달지 않은 백포도주 반병을 주문했다. 글을 끝내고 나면, 마치 사랑을 나누고 난 것처럼 언제나 공허하고,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이번 글은 잘된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다시 읽어 봐야 얼마나 좋은 글인지 알게 되겠지만.

   약한 금속 맛과 함께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굴을 먹으면서 금속 맛이 차가운 백포도주에 씻겨 나가고, 혀끝에 남는 바다 향기와 물기를 많이 머금은 굴의 질감이 주는 여운을 즐기는 동안, 그리고 굴 껍데기에 담긴 신선한 즙을 마시고 나서 상쾌한 백포도주로 입을 헹구는 동안, 나는 공허감을 털어 버리고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p.13-15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았는데, 이 책은 헤밍웨이가 파리에 있던 그 시절에 쓴 글이 아니라 30여 년이 지난 뒤에 쓴 글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살하기 세 달 전에도 파리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한다. 화양연화. 30년이 지나고 젊은 날을 추억하는 헤밍웨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결코 돌아갈 수 없으므로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시절의 모습. 그는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내가 글 쓰는 걸 잊을 리가 있나."

   나는 전화를 걸려고 밖으로 나갔다. 물론이지, 하고 생각했다. 글 쓰는 걸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나는 글을 쓰려고 세상에 태어났고, 여태까지 글을 써왔으며, 앞으로도 다시 글을 쓸 거야. 장편이든 단편이든 내 글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 누가 쓴 글이냐는 등의 말에 나는 전혀 개의치 않을 거야. p.298

 

 

    이건 헤밍웨이가 자살하기 세 달 전에 썼던 글. 5월의 어느 날 밤, 이불 속에서 이 글을 읽고 뭉클했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61년의 헤밍웨이에게서 위로를 받고, 랩핑되어 있던 <노인과 바다>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헤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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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

from 극장에가다 2012. 2. 12. 11:14

나는 죽은 뒤에 뭔가 남는다거나, 다시 태어난다는 거, 믿지 않아.
왜.
믿고 싶지 않으니까.
어째서.
가혹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뭐가 가혹해.
예를 들어, 네가 죽어서 나한테 붙는다고 해도 나는 모를 거 아냐.
모를까.
모르지 않을까.
사랑으로, 알아차려봐.
농담이 아니라, 너는 나를 보는데 내가 너를 볼 수 없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쓸쓸하겠지.
p.56 대니 드비토

   너의 이름은 유라. 나의 이름은 유도씨. 황정은의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유라. 죽은 원령이다. 나는 죽었고, 유도씨는 살아가고 있다. 나는 죽었고, 원령이 되었다. 언젠가 두 사람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나눴던 말. 내가 먼저 죽으면 유도씨가 나를 붙여줘. 나는 죽어서도 쓸쓸할 테니까. 그러자 유도씨가 붙어. 얼마든지 붙어, 라고 한 그 대화 때문일 거다. 나는 유도씨가 살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무심코 부르는 모습을, 새로운 여자가 집으로 찾아오는 모습을,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모습을, 나와 유도씨가 함께 기르던 고양이 복자가 죽는 모습을, 유도씨에게 아이가 생기는 모습을, 새로운 여자 그러니까 미라씨가 죽는 모습을, 결국 유도씨가 죽는 모습까지. 쓸쓸하게, 오랫동안 지켜본다. 황정은의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 또한 무척이나 쓸쓸한데 따듯하다. 

    어제는 모모에 가서 <치코와 리타>를 보았다. 멀어서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지금 보지 않으면 못 볼 거 같아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가는 길에 이런 문장을 읽었다. "누군가 가슴속에 들어왔다고 인정하는 순간 너는 바보가 되는 거야.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널 이길 수 없어. 알겠니, 모얀?" 화장실을 다녀와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는 그 곳에 있던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 문소리 편을 읽었다. 그리고 <치코와 리타>를 보았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야기는 진부하고, 마지막 엔딩은 정말 참을 수 없었지만, 이 영화가 시종일관 풍기는 분위기, 그리고 음악이 꽤 좋았다. 극 중 리타의 목소리가 참 좋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 경연에서 우승한 곡도 좋았지만, 나는 치코와 리타,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불렀던 그 노래, 베사메 무초가 참 좋았다. 이 노래가 이런 가사를 가지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키스해 달라고. 오늘 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키스해 달라고. 당신을 잃을까봐 두렵다고. 항상 당신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해 보라고. 내일 내가 멀리 있어 보지 못하게 된다고. 그러니 키스해 달라고. 오늘 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나와 두세 정거장을 걸었다. 쓸쓸한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러자 이 밤이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다시 전철을 타고 집에 와 황정은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고, 꿈을 꿨다. 꿈에서 전철이 뒤집혔다. 그걸 나는 지켜봤다. 새로운 카페에도 갔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도 만났다. 그러다 새벽에 깼는데, 혼자였다. 티비를 켜고 리모콘을 돌리니 <악마를 보았다>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이병헌이 모든 것을 끝내고 텅빈 도로 위를 걸으며 엉엉 울기 시작하는 장면. 그걸 보다가 다시 베사메 무초를 찾아 들었다. 리타의 목소리. 당신을 잃을까봐 두렵다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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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아득한 청춘의 그림자들이 고요히 스며들던 한 생애의 뒷골목, 저녁이면 녹색의 별들이 뜨는 리스본 7월 24일 거리

    나는 7월 23일의 거리를 걸어 한없이 그대에게로 가고 있었는데 그대는 여전히 7월 24일 거리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

    우리의 청춘은 늘 시차가 다르던 생의 거리

- 리스본 7월 24일 거리 중에서


    이번 주 내내 장소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시작되고, 성장하고, 끝을 맺게 되는 장소들을 찾아 헤맸다. 여전히 찾고 있지만. 어제는 조금 늦게 회사에서 나와 Y씨랑 사람들이 꽉 찬 이천이백번을 타고 합정으로 왔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산책길을 걸어 떡볶이와 맥주를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누군가를 본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본 것 같아요. Y씨에게 말하니, 아 K요? 라며 그럼 따라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조심조심 그의 뒤를 쫓았는데 아무래도 뒤태가 그가 아닌 것 같았다. 그라고 하기엔 너무 살이 쪘다. 그를 못 본지 1년은 넘은 거 같으니 살이 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옆의 여자랑 너무 다정했다. 부인일까요? Y씨가 말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굵었다. 아무래도 그가 아닌 것 같았다. K가 맞다면 아무래도 패션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Y씨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는 Y언니가 보라고 한 장진과 장항준 감독이 나오는 놀러와를 틀어놓고 컵라면을 먹었다. 장항준이 그런다. 내가 장진보다 하루 더 살 거예요. 이번 생에서는 절대 장진을 이길 수가 없을 거 같으니까, 하루 더 살아서 씹을 거예요. 장진을. 장항준은 장진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문자를 받을 때 술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다 장진이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는데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장항준은 젠장, 이런 심정이었겠지. 왠지 그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데, 재밌고 슬프고 그렇다. 누군가 또 그랬는데, 장진이 군대 가기 전엔 바보였는데 군대 갔다 오니 천재가 되어서 돌아왔다고. 내가 본 장진 영화들이 모두 좋진 않았지만, 내가 본 장진 연극은 좋았다.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고 웃다보면, 어느새 슬퍼지는 그런 연극이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책상 주변 정리를 하고, 계속 앉아만 있다.



    작년 12월에 이 책을 읽었다. 어떤 글에서 '좋은 소설이지만 주목받지 못한 2011년의 책 베스트 10'을 꼽았는데, 거기에 이 책이 있었다.

"누구에게든 하나쯤 있기 마련인 '지워지지 않는 어떤 순간'을 회상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그 기억에 아파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편안한 언어로 그려냈다. 작가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법한 친근한 인물들을 통해 상처나 아픔으로 남은 기억이라고 해도 그 역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소중한 과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문득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기억들이 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잊으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되살아나서 가슴 한구석을 간질이는 삶의 어떤 순간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젊지만 과거의 그런 순간들을 잊지 못하고, 또 그것을 마주 보지도 못하며 살아간다."

   책소개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바로 주문했다. 좋았다. 좋은 소설들이 가득했다.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두 번 읽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다. 두번째 읽을 때는, 순전히 이 장면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로버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콜린이 수련의 생활을 시작하고 2년째, 그러니까 수련의 생활이 끝나가던 해였다. 사실 콜린의 동료를 따라간 저녁 파티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일을 모르고 지날 수도 있었다. 콜린의 동료는 젊었을 적 물리학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로버트가 림프종으로 죽었다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먹고 있을 때 말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충격과 슬픔을 숨기지 못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콜린이 잠시 뒤 양해를 구하더니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콜린이 아직도 그날 밤 바에서의 일 - 로버트와 내가 손을 잡고 있던 모습 - 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 안의 침묵 속에서 나는 거리감을,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우리집의 어둠 속에서, 우리 사이에서 자라고 있던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뜰로 나가 통곡했다. 나는 지금도, 콜린이 내 통곡 소리를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p.126

    이 소설집에서 내가 아끼는 인물들은 누군가를 질투하고, 어떤 감정에 절망하며, 그것을 애써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구멍'의 아버지, '아술'의 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헤더, '폭풍'의 누나. '폭풍'도 내가 아끼는 소설. '폭풍'에서 진짜 폭풍이 지나간 뒤, 저녁을 먹자는 '나'의 말에 누나는 술을 마시자고 한다. 취해보자고. 둘은 폭풍이 물러간 저녁 시원한 테라스에 나가 술을 마신다. 서로 잔을 채워주면서 취할 때까지 마신다. 그리고 행복했던 어린 날들을 추억해 나간다. 누나가 자기 잔에 술을 채우고, 담뱃불을 붙이고 말한다. "내가 그이를 버린 게 아니야. 그이가 나를 버렸어." 이 장면. 내가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장면 때문이다. 내가 그이를 버린 게 아니야. 그이가 나를 버렸어. 이 대사에 정말 마음이 철커덩했다. 폭풍은 물러갔다. 이제 한동안 평온한 여름날이 계속될 거다. 그리고 가을이, 겨울이, 봄이, 또 여름이 올 거다. 다른 이름을 가진 폭풍이 몰려 올 거다. "더 나쁜 일이야 있겠어?" 고요한 폭풍 뒤, 여름 밤바람이 불어온다. 남매는 테라스에 서로의 몸을 기대고 앉아 있다. '나'는 어린시절 불빛을 생각한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올 때의 불빛. 저 멀리 사랑하는 이가 내게 오고 있다는 불빛.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취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몇 년 전, 어떤 면접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가요? 나는 K라고 말했다. 왜 K를 좋아해요?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 위로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다고. 그건 K의 소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닌가요? 그 분이 그렇게 정리해줬다. 이 책은 2011년 나의 베스트에 꼽히는 소설이다. 힘든 때가 올 때마다 이 소설들이,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생각날 거다. 그런데 어제의 그는 K가 아니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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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문학동네


   한강의 소설은 시를 읽듯, 그렇게 읽게 된다. 지난해 십일월과 십이월에 천천히 읽어 나간 한강의 노래.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후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은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p.14


   나는 침묵했습니다. 대답을 기다리던 당신은 수첩을 덮어 도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우리는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허락된 것처럼.
p.36


   ...아침이면 그날 강독할 문장들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암기하고, 세면대 위의 거울 속에 어렴풋하게 비쳐 있는 내 얼굴을 곰곰이 바라보고, 마음이 내킬 때마다 환한 골목과 거리를 한가롭게 걷습니다. 문득 눈이 시어 눈물이 흐를 때가 있는데, 단순히 생리적이었던 눈물이 어째서인지 멈추지 않을 때면 조용히 차도를 등지고 서서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p.41


   시간이 더 흐르면...
   그의 목소리가 더 잦아든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꿈에서뿐이겠지요.

    ...장미.
   수박을 반으로 가르면 활짝 꽃처럼 펼쳐지는 붉은 속.
   연등회 날 밤.
   눈송이들.
   옛 여자의 얼굴.
   그때는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 세계가 감기는 거겠지요.
p.158-159


    소설은 두 사람이 어떤 교감을 하기 시작하면서 끝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한 여자와 한 남자, 각각의 이야기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어떤 이야기들이 아니라, 말을 잃어가는 세계를 살아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만나게 되는 찰나의 이야기이다.

    십이월 밤. 집으로 오는 7호선의 지하철에서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너를 생각했다. 너도 이 소설을 읽었을지. 이번 겨울, 니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새 소설이 연이어 출간되었는데 너는 그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을지, 아니면 구입해 읽기 시작했을지, 아니면 다 읽은 후일지, 아니면 니 방의 내가 탐나했던 스탠드 옆에 아직 넘겨지지 않은 채 놓여져 있을지. 니가 나를 집으로 초대한 날, 먹었던 닭도리탕과 멸치호두조림과 맥주를 떠올렸다. 엽서들이 가득 붙여져 있던 니 방 벽과, 책들과 폭신폭신했던 침대를 떠올렸다. 그 날도 무척 추웠었는데. 네게 아주 긴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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