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이성미 지음/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 들렀다. 시를 잘 읽지도 않는 주제에 시를 읽고 싶은 날이란 생각에 시집을 빌렸다. 이성미 시인의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라는 시집이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시간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 제일 빠른 길은 이렇게 가는 길이다. 대문을 나서 '오이마트'에서 좌회전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내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컷트머리로 잘라달라고 한 미용실'에서 좌회전해서 2분정도 걸어가면 도서관이 있다. 4층이 내가 늘 가는 종합자료실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도서관 가는 길에 우리 자매가 종종 이용하는 술집이 즐비해 있다. '황룡성'이라는 중국집을 닮은 치킨집은 얼마 전 '푸닥푸닥'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하며 떡이며, 머릿고기를 돌렸다. 이 집은 조명이 푸른 색이다. 역시 '황룡성'이란 중국집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뒷모습
 

   번데기 안주가 3000원도 안 하던 술집이 있었다. 술집 이름은 원샷. 우린 늘 이 집에서 생맥주를 시켰기에 원샷하지는 못했지만 저렴한 안주 가격 때문에 이 집이 망하지 않길 바랬는데, 이 집도 곧 문을 닫고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이사올 즈음부터 돼지갈비 전문점이었던 그 곳은 얼마 안 가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그 길고 긴 공사 끝에 이제야 5층짜리 건물로 재정비되었으니. 그 돼지갈비집은 아마도 3층짜리 가게로 재개업하는 듯하다. 오픈하면 이번에는 꼭 가봐야지. 맛있으니깐 넓힌 것일테니깐. 돼지갈비엔 맥주가 최고지. 


   나는 쓴다


   새로운 동네 맥주집을 발견했다. 이 집은 고래고기를 파는 집인데, 시험삼아 먹어본 고래고기에는 비릿맛이 강해 한 점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대신 이 집은 맥스 생맥주가 정말 맛있다. 그러니 2차로 가기 좋은 곳. 


   여기 시들을 만들어준 모든 이에게


   이 모든건 이성미 시인의 시이다. 여름이 간다. 가을이 온다. 모두들 아는 사실이지만, 무더운 여름 다음에 서늘한 가을이 온다. 여름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내겐 정말 반가운 일이다.



,
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문학과지성사


   돌아보니 시퍼런 마을이 있다. 하나의 저수지(첫째, 둘째, 셋째가 산다), 하나의 아파트(그 곳엔 개구리비가 내린다), 하나의 맨홀(임신한 어른의 배를 가진 아이가 있다), 하나의 동굴(빨간 터틀넥을 입은 여자의 시체), 하나의 세탁소(그는 하얀 양말을 신은 발로 금붕어를 터뜨려 죽인다), 하나의 박람회(개와 아이가 피를 흘리며 싸운다), 하나의 숲(고양이를 약으로 먹는 할머니가 있다), 하나의 방(친척의 아이를 낳은), 하나의 강(토막난 시체들이 차례로 낚여지는)으로 구성된 아오이 마을. 그런데 희안한 일이다. 피와 쥐, 구더기들이 난무하는 이 마을을 굽이굽이 지나쳐온 내 몸에 한 방울의 피도, 한 마리의 구더기도 옮겨 붙지 않았다. 깨끗하다. 배를 갈라 자궁을 싹뚝 잘라내 베란다 너머로 버리는 수술대 바로 옆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있는대로 숙이고 들여다봤는데도 내게는 피 한방울 튀지 않았다.

   그런 꿈을 계속해서 꾸었던 적이 있다. 도망가야 하는 꿈. 달아나야 하는 꿈. 그런데 내 몸이 꼭 매트릭스의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던 꿈. 모두가 슬로우 모션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꼭 그런 꿈에서는 나만 슬로우 모션이다. 지각하는 꿈. 꼭 입어야 할 옷이 없어 내내 그 옷만 찾으며 발을 동동 굴리다가 끝이 나는 꿈. 그러니까 시작도 못한 꿈.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꿈. 그런 꿈을 꾸다보면 하도 답답해서 어느 순간 이게 꿈이구나, 느껴지게 된다. 그렇다고 이건 꿈이니깐 지금 일어나버리자, 고 마음먹고 깨어날 수도 없다. 계속해서 옷을 찾아야 하고, 계속해서 슬로우 모션으로 도망가야 한다.

   그럴 때의 내 몸, 땅으로부터 1센티미터만큼 공중부양한 채 달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괴로운 내 몸을 아오이 마을에서처럼 토막내본다. 텍사스의 전기톱을 닮은 아오이가든의 녹이 슨 톱을 빌려 내 팔을, 내 다리를, 내 자궁을 쓰삭쓰삭 잘라본다. 어느새 나는 도망가야 하지만 도망가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양새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조각난 팔 두 개, 다리 두 개, 몸 하나, 자궁 하나, 눈 알 두 개로 분리되어 있다. 누군가 나를, 아니 나라고 할 수 없게 보이는 내 부분들을 아오이 마을의 강에 내다버린다. 풍덩, 질퍽한 소리가 난다. 잠시 후 한 낚시꾼이 다리 하나를 낚았다. 형사는 내게 전화를 한다. 나는 개구리 비가 내리는 아오이 마을까지 운전해서 간다. 이게 당신 다린가요? 나는 내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고 그 테이블 위의 다리를 다시 올려다봐도 그게 내 다린지 아닌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왼쪽 무릎이 간지러워 긁적긁적거릴 뿐. 제일 마지막에 발견된 내 눈 알을 입 속에 넣고 쪽쪽 빠는 상상도 해 본다. 입 안 가득 지린내가 진동할 거다. 나는 보지 않아도 좋을 많은 것을 봐왔으니. 나는 그걸 삼킬 수 있을까. 우걱우걱 씹어 넘길 수 있을까.

    이건 소설이니까, 이건 상상이니까 가능한 거다,고 생각한다. 아오이 마을따위는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버리고 싶다. 그러니까 내 옷에 피가 하나도 묻지 않았고, 나는 이 끔찍한 이야기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내려갔다고 말해버리고 싶다. 그런데 이 소설집을 읽고 나서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아오이 마을이 단지 편혜영의 머릿속에서만 손 끝에서만, 내 꿈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아오이 마을이기 때문에. 나는 매일 그 강을, 그 저수지를, 그 맨홀 위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고 또 다시 나만 슬로우 모션인 꿈을 꿀 것이기 때문에. 꼭 입어야 하는 옷이 없어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꿈을 꿀 것임을 알고 있기에. 꼼짝달싹 못하는 꿈에서 깨어났을 때 멀리서 개골개골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그곳이 아오이 마을이다. 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내 몸 구석구석을 참 많이도 긁적거렸다. 눈알을 손가락 끝으로 돌리면 뽀드득 소리가 났다. 목욕탕에 가야겠다. 때도 밀어야겠다. 무더운 여름에 읽기 좋은 책이다.


     

,

   네이버 검색창에 '김연수'라고 치면 오른쪽 연관검색어에 김중혁, 박민규, 김현수, 미스코리아(미스코리아 김연수가 있는 모양이지?)가 뜬다. '김중혁'이라고 치면 간단하게 딱 한 사람과 연관된다. 김연수. (문태준 시인은 연관검색이 아예 없구나) 그러니까 김연수와 김중혁은 연관검색의 관계. 김중혁 작가의 <악기들의 도서관>과 <펭귄뉴스>를 읽었다. 역시 김천. 1970년의(1971년까지, 김중혁 작가는 71년생이니깐) 김천에는 어떤 문학적 태동의 기운이 넘실거렸던 게 틀림없다. 얼마 전,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져 검색창에 문태준만 다섯 번 쳐대며 그의 인터뷰 기사들을 읽었다.

   '자동피아노'를 시작으로 '펭귄뉴스'까지 김중혁 작가를 만난 동안에 느낀 점이란 이런 거다. 한 문장만 쓸 수 있는 작가의 말이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나는 쓰는동안 굉장히 재밌었으니, 당신도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랄뿐. 땡.' <펭귄뉴스>의 뒷부분에 수록된 작품은 (특히 '펭귄뉴스') 지루했으나, 대부분의 소설들을 나는 신나게,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재미나게 야금야금 읽었다. <펭귄뉴스>가 발표된 역순으로 수록된 것이라니 그는 '점점 잘 쓰고 있는 작가'라는 것. 그러니 지금 쓰고 있다는 장편도, 발표되어질 다른 소설들도 무척이나 기대된다는 것.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고 이런 메모를 했다. '만약 메뉴얼 잡지가 있다면? 만약 악기소리 대여점이라는 게 있다면? 재밌게 면접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10년을 같은 노선을 다닌 버스가 어느 날 노선을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그런 생각을 한 거다. 만약 무엇무엇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더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는 작가의 상상력이 이렇게 신나는 소설들을 만들어낸 거라고. 같은 방법으로 <펭귄뉴스>를 읽고는 이런 메모를 할 수 있겠다. '시각장애인에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세상의 물건들을 묘사해주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면? 개념발명가가 있다면? 나무로 만든 에스키모 지도가 있대매? 자전거 바퀴 회전수로 표시된 지도가 있다면?' 이런 식. 작가의 상상력에 이야기의 살이 붙여져 발명되어진 소설들.

   두 권의 책 중에서 마지막 장이 끝난 뒤에도 다음 장에 쉽게 침을 묻히지 못했던 소설은 '무용지물 박물관'이었다. 나는 정말 이런 라디오 방송이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밤 잠들기 전, 10분쯤은 눈을 감고 라디오를 듣는 거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물의 기억따위는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DJ가 들려주는 잠수함과 에펠탑, 암스테르담의 쉬폴 공항을 머릿 속에서 선을 하나씩 그어가며 쓱삭쓱삭 그려내는 거다. 어떤 날은 정말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가보지 못한, 사진으로조차 본 적도 없는 사물이 방송되어질수도 있겠지. 그러면 정말 이건 시각장애인용 라디오 방송이 아니라, 언제나 눈을 감고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방송이 되는 거다. 세상엔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것보다 눈을 감아야지 볼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일러주는 방송.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어 노랗고 노란 잠수함이 깊고 깊은 바닷속을 매끄럽게 유영하는 꿈을 기분 좋게 꿀 수도 있는 일. 물론 DJ는 목소리 좋은 김중혁 작가였음 좋겠다. '오늘도 돌아온 이 시간,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입니다'로 시작하는. 아, 언젠가 내 사진을 신청사연으로 보내 무용지물 박물관에서 소개시켜달라고 해 보는 상상을 해 봤다. 그는 어떻게 나를 표현해줄까. 뚜렷하고 아름다운 말들이면 좋겠는데. '면목동에 사는 골드소울님은 돌고래의 매끈한 피부를 가지셨군요. 눈은 고등어 눈알처럼 빛나고...' 이런 식이랄까.  

   흠. 결론이란 건 없지만, 굳이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결론을 써 보자면, 뭐 그거다. 당신은 계속 신나게 쓰시길, 다음 작품도 나는 신나게 읽어주는 독자가 기꺼이 되어드릴테니.

 
,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달콤한 나의 도시>에 이어서 두번째예요. 첫번째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은 읽을 생각만 하다가 아직까지 못 읽었어요. 지난 여름 강연회에서 새 책에 사인까지 받아와 놓고서는 고이 책장에 모셔두다가 얼마 전에 잃어버렸어요. 마침 동생이 이 책을 선물받아 왔던 게 있어서 바로 읽긴 했는데, 한 집에 같은 책 두 권이 뭐가 필요있냐고 그렇게 된건지. 누군가 주워서 읽고 있겠죠? 잃어버리니 <오늘의 거짓말>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마저 사라지기전에.

   정이현 작가는 서울내기 같아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을 한번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요. 실제로 프로필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구요. 제가 지방에서 올라와서 그런지 서울내기들은 딱 보면 알 수 있어요. 저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딱 보면 알 수 있구요. 사투리를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렇게 써져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데 그래요. 그런데 그녀를 닮은 그녀의 소설도 서울내기 같아요. 사투리 섞인 대화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소설 어딘가에 그런 딱지가 붙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책에서는 단지 종이와 글자 냄새만 날 뿐인데 그래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온, 그래서 지방에 잠시 내려갔다가도 서울 톨게이트 팻말이 보이기 시작하면 안심이 되는 서울내기의 소설 같아요.  

    재밌고 빠르게 읽었어요. '타인의 고독'과 '삼풍백화점'은 예전에 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좋았어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엉엉 울면서 썼다는 '삼풍백화점'. 저는 이 단편이 참 좋아요. 냉소적인 시선이 가장 많이 들어간 '어금니'의 무표정함도, 박정희 대통령이 윗집에 살고 있다는 '오늘의 거짓말'의 상상도, 자꾸만 내 몸을 킁킁대며 냄새를 맡아보게 되었던 '그 남자의 리허설'도, 자판기 밀크 커피에서 스무살의 맛을 느끼는 한 여고생의 '비밀과외'도,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빛의 제국'도, 둥그렇고 말아 뻣뻣하게 올렸던 그 때의 앞머리를 생각나게 했던 '위험한 독신녀'도, 소설가들은 늘 이렇게 메마르고 건조한 부부만 그린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결혼생활은 다 그런 거겠지, 라고 결론을 내어버린 '어두워지기 전에'도, 항문을 찍은 사진을 보고 흥분하는 '익명의 당신에게'까지. 재밌고, 공감했지만, 끄덕거렸지만,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어요. 가려운 부분을 긁긴 한데 시원하게 박박 긁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녀를 다음 번에도 꼭 다시 만날 거지만, 이번에 만나고 뒤돌아서는 순간 왠지 우리가 더 깊이 내려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 그런 허전함이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떠들어대야 하는 거 아닌가, 발라당 넘어지는 실수 한 번쯤 해서 무안하게 웃다가 같이 크게 웃어버리고 그런 순간들이 있어야 했던 거 아닌가 하구요.  

    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면서 새 친구들을 사귈 때 서울사람이라고 그러면 왠지 불편하고 쉽게 깊어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아, 지금 생각해도 이 생각 너무 촌스러워요.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끼리 '서울사람'이라는 호칭을 써가면서 이야기하고 그랬거든요. 물론 그러면서 친해진 친구들도 있었지만, 같은 지방 사람이라면 사투리를 쓰지 않아도, 인사를 하면서부터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좀 더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다, 이 사람에게는 내 부족한 면들을 보여줘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촌스럽게도 서울에서 생활하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그런 면이 남아 있어요. 아, 촌스럽다.

   아무튼 자꾸 만나고 싶어요. 자꾸 그녀에게 관심이 가요. 그리고 좋아지기 시작해요. 그녀의 새초롬해 보이는 이야기도 좋고, 조금 차가워 보이는 시선도 좋아요. 실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 것 같구요. 다음 번에는 우리의 관계가 좀 더 깊어지길 바래요. 실수 하나씩 하고, 이번보다 좀 더 크게 떠들면서 이야기 나눠요. 그 때는 소주 한 잔 어때요? 달큰하게 취해가면서. 헤헤. 오늘의 거짓말이 내일의 거짓말이 되지 않길 바래요. 두번째 만남, 즐거웠어요. 그나저나 잃어버린 책은 포기해야겠죠? 그 책이 가방에서 스르르 떨어져 나갔다는 게 오늘의 거짓말이길 바랬지만, 결국 오늘의 진실이였듯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