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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퉁이다방 2021. 1. 17. 18:12

     

     

        퇴원을 하자마자 안방 침대 위치를 옮겼다. 침대 양옆에 작은 사이드 테이블이 있는 구조였는데 한쪽을 분리하고 침대를 벽쪽으로 붙였다. 남편은 자면서 온갖 몸부림을 치는 내가 침대에서 떨어질까 정말 불안하단다. 침대에서 떨어진 건 주문진으로 놀러가 만취했던 그 날 딱 한 번 뿐이었지만, 지금은 떨어지면 정말 큰일나니까 침대를 옮기자고 했다. 당연하게도 내 자리는 벽쪽이다. 벽 아래 두 개짜리 멀티탭을 두고 하나는 핸드폰 충전기, 하나는 집게 스탠드를 꽂아 두었다. 요즘은 배 때문에 옆으로 돌아눕는 게 편해 벽쪽으로 빵빵한 베개 하나를 두고 두 발을 휘감고 잔다. 이번주에는 배 한쪽이 단단하게 튀어나오는 증상이 있어 깜짝 놀랐는데, 찾아보고 물어보니 배뭉침이라고 한다. 처음 겪는 증상이라 이상이 있는건가 많이 놀랬는데 가만 누워 있으면 자연스레 가라앉는다고 하더라. 크게 숨을 쉬며 아가야 괜찮아, 괜찮아 중얼거리고 있으면 진짜 괜찮아지더라.

     

        남편과 둘이 재택근무를 한 지 꽤 되었다. 남편은 주방 식탁을 옮겨와 노트북, 모니터, 티비까지 활용해 거실에서 일을 한다. 나는 책방에서 데스크탑으로 일을 한다. 재택근무를 하며 엉덩이가 불편해 방석을 두 개 샀고, 남편은 그렇게도 바라던 게이밍 의자와 발받침대를 샀다. 신기하게도 하루종일 둘이 같이 있어도 싸우지 않는다. 아침은 일어나는 시간이 달라 따로 먹고, 점심과 저녁은 같이 먹는다. 외식은 하지 않고 직접 하거나 배달을 시켜 먹는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직접 한 적은 없지만, 연애할 때보다 결혼하고 난 뒤에 남편에게 더 반하고 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이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다. 할 수 없는 건 처음부터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행복하다고 느껴질 때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고 꼭 표현해준다. 달달한 면이 부족했던 사람인데 아주 천천히 달달해지고도 있다. 좋아하는 것이 많이 달랐던 우리인데 조금씩 비슷해지고 있다. 과소비 하는 면이 있었던 내가 남편을 따라 점점 소비를 줄이고 있다.

     

        재택근무를 할 때 처음에는 라디오를 틀어두었는데, 요즘에는 멜론에 좋아요 해둔 음악들을 랜덤으로 듣고 있다. 총 662곡인데, 가만히 듣다보면 그 시절 그 노래를 좋아했던 그때의 마음이 되살아난다. 남편이 친구에게 얻은 스피커는 검은 색에 부피가 크고 구성품이 세개나 된다. 그동안은 책상 위 공간이 부족하다며 하나는 책상 위에 두 개는 바닥 아래에 쌓아두고 썼다. 바닥에 두다보니 아무래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스피커 삼총사를 책상 위로 옮겼다. 데스크 탑 옆에 삼총사를 바짝 붙였다. 그 위에 네모난 화분의 스투키와 탁상용 선풍기, 2021년 달력을 올려두었다. 생각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는 않더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보니 당연하게도 소리가 더 잘 들린다. 남편이 전 회사에서 쓰던 컵에는 연필을 가득 꽂아 책장에 두었다. 책방의 테이블 야자와 홍콩야자도 잘 자라고 있다.

     

        응암동 오피스텔로 이사했을 때 친구는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을 선물로 가져왔었다.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조카의 파란 눈동자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 내게는 어쩐지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그림. 그리고 곧 더욱 만개할 봄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 응암동에서는 키가 높은 책장 위에 두고 올려다 보았었다. 해가 많이 드는 집이었던지라 눈동자를 닮은 파란 배경의 빛깔이 옅은 하늘색으로 바랬지만. 군포로 가져와서는 바닥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벽에 붙이지 않아도 나름의 멋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져 저렴하지만 성능이 좋다는 로봇청소기를 마련했는데 이 아이도 편하지만은 않은 게 청소시키려면 바닥에 있는 것들을 치워주어야 한다.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려면 일단 화장실 앞의 발매트를 치워주어야 하고, 거실의 체중계도 치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복도의 아몬드 그림도 어딘가로 올려두어야 한다. 그림은 계속 치우기가 그래서 꼬꼬핀으로 벽에 안착해 두었다. 검색해보니 아몬드 나무는 아주 강한 나무였다. 보호막이 되는 잎이 없는 나무. 추운 겨울바람을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겨내고 이른 봄에 다른 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우는 나무. 특징을 찾아보고 나니 볼 때마다 내가 더 단단해질 것만 같다.

     

        내일 또 폭설이 예보되어 있지만, 아주 천천히 봄이 오고 있는 중일 거다. 올 겨울에는 외로웠던 루시가 겨울을 지나는 동안 행복해지는 한겨울 시카고의 이야기를 아직 보질 못했다. 몇달 전에 넷플릭스에 있어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이 되면 다시 보아야지 했는데 없어졌더라. 다행히 네이버에서 오천원에 구매할 수 있더라. 구매해둬야지. 보고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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