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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
    모퉁이다방 2020. 12. 30. 05:37

     

     

       아빠는 주례사에서 너희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커덩했다. 아빠는 딸의 중요한 날, 꾸미지 않고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것이다. 커오는 동안 나는 자주 아빠의 외로움과 마주했다. 아빠의 외로운 어깨를 뒷모습으로 마주하면 결혼식장에서처럼 가슴이 철커덩했다. <스토너>를 읽으며 가슴이 아리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던 건 아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빠, 아빠처럼 외로웠던 사람이 여기 또 있었네. 지금보다 젊은 시절 아빠는 과묵했다. 힘들고 외로워도 그 감정들을 잘 내뱉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신 바둑을 두고 밤시간 사무실에서 혼자 시간을 오래 보내셨다. 요즘의 아빠는 수다쟁이다. 그동안 못했던 말을 다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저 먼 옛날 얘기도 끊임없이 이야기하신다. 그래서 치매 초기증상을 의심한 적도 있다. 남편은 그래서 전화를 드려도 대화가 끊이질 않아 좋다고 하지만 했던 얘길 또 듣고 또 듣는 딸들은 조금 괴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빠가 수다를 왕창 떨고 나면 젊은 시절 외로운 아빠는 없다. 다행이다. 

     

       남편은 어제 술을 한 잔하고 침대에 누워 이야기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자기가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가족이 자신에게 기대고 상처주어서 물리적 거리로 인해 분리될 수 있는 곳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고. 너랑 친구들만 있는 곳에서. 어떤 상처는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가만히 들으며 어린시절 내 상처를 들여다봤다. 내게도 그런 상처가 있다.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생생한. 지금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상처가. 나란히 누워 우리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은 자신있다고 했다. 나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내가 주는 상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우리들의 어른들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었을 테니까.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줄 수 있는 상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사과하고 보듬아 주자고. 어제는 숙모가 집에서 만든 반찬을 가득 보내주셨다. 우리는 그걸 각자의 그릇에 담아 참기름을 넣고 슬슬 비벼 먹었다. 건강했고 든든했다. 속이 꽉 찬, 정성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단 티비 리모컨을 놓고 책을 읽어야지.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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