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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원
    모퉁이다방 2021. 1. 6. 13:40

     

     

     

        새해는 병원이었다. 1월 1일 밤, 갑자기 피가 왈칵 쏟아졌다. 말 그대로 왈칵. 연휴라고 동생이 와서 남편이랑 셋이 알찜을 포장해와 먹고 있었다. 화장실로 가는 그 짧은 순간에 몇번이나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흥건한 피였다. 덩어리도 나왔고 피가 계속 쏟아졌다. 동생과 남편이 달려왔고 나는 잘못된 것 같아, 어떡해를 연발했다. 남편이 119를 부르겠다고 했다. 동생은 언니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라고 토닥여줬는데 얼굴에 겁이 가득했다. 초기에도 한번 피가 난 적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갔는데 빨간 피가 묻어나왔다. 소량이라도 빨간 피는 좋지 않다고 했는데. 그 날도 나는 남편에게 잘못된 것 같아를 연발했고 남편은 응급실에 가보자고 했다. 팀장님께 연락하고 응급실에 갔다. 간호사가 많이 놀라셨나봐요, 라고 했고 초음파를 본 당직 선생님은 주사 한 대 맞고 집에 가라고 했다. 피가 또 나면 내일 와서 주사 또 맞으라고. 피는 더 나진 않았다. 정기검진일에 주치의 선생님께 얘기하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이 없다고 산뜻하게 이야기해주셨다.

     

        남편도 나도 구급차를 탄 건 처음이었다. 체온을 계속 재던 구급대원이 체온이 좀 높다고 패딩 지퍼를 열고 있어보라고 했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 멀미를 하는 것 같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머리도 지끈거렸다. 병원에서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아 혹시 다른 병원을 찾아봐야 할 수도 있다고,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병원은 열려 있었다. 전산장애로 인해 전화가 먹통이라고 했다. 간호사가 확인해보니 피가 더 나진 않는다고 했다. 조금 기다렸다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가만 누워 있는데 누군가 응급실에 침착하게 들어와 팬티를 봤는데 피가 굳어 있었다고, 자기는 겁이 매우 많은 사람인데 응급실에 벌써 세번째 오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말소리가 커튼 너머 들렸다. 초음파를 본 당직 선생님이 피가 물처럼 뚝뚝 떨어졌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 검사를 하나 더 했는데 양성으로 나왔다고 며칠 입원을 할 수 있냐고 했다. 그 날부터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음날은 마침 정기검진일이었다. 보통 날이었으면 남편과 아침일찍 준비를 하고 병원에 와 내 차례를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을텐데. 환자복을 입고 도우미 분이 끌어주시는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 앞에 갔다. 내내 내게 걱정말라던 남편도 긴장되어 보였다. 주치의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아직 주수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라고 이야기하셨다. 배와 질 초음파를 연달아 보더니 일단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 그러셨던 것 처럼 최악의 상황도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 상황만 계속 머릿 속에 맴돌았다.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라고 말하면 남편은 그건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잘 되면 별 문제 없다고도 말씀해주셨잖아, 라고 말해줬다. 전날은 보호자가 같이 있지 못하는 침상이라 남편은 집에 갔는데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잤다고 하니 입원실을 1인실로 잡아왔다. 3인실 가격은 물어보지도 않았단다. 내가 너무 비싸다고 하자 계획했던 겨울여행도 못 갔는데 병캉스한다고 생각하자고 했다. 남편은 나랑은 많이 다른 사람이다. 대부분의 일에 긍정적이고 긴급상황에서 침착하다.

     

        밥은 아침 7시 반, 점심 12시, 저녁 5시 반에 나왔다. 처음에는 국이 심심하더니 며칠 있으면서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맛있어졌다. 매 끼니마다 고기나 생선, 채소가 꼭 나왔다. 입맛이 없어 남편에게 계속 같이 먹자고 했다. 남편은 집에서 숙모가 보내준 반찬과 조미김을 챙겨왔다. 햇반을 데워와 침대 위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선생님 회진이 없던 일요일에는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등을 보이고 누워 검색을 하고 혼자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진료실에서 들었던 내 증상과 비슷한 상황들을 검색해봤는데 모두 부정적인 결말 뿐이었다.  남편이 병원 밖에서 부등켜안고 엉엉 울고 있던 남자와 여자를 봤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대번에 눈물을 쏟아냈다. 이럴까봐 말 안하려고 했는데, 라며 이제 울지 말고 좋은 생각만 하자고 했는데 잘 되질 않았다. 밤에는 낮에 잠을 자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침대도 딱딱하고 베개개도 불편했다. 침대 옆 커튼을 열어 작은 창문 위를 올려다봤는데 동그란 게 보였다. 처음엔 가로등인가 싶었는데 달이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잘 보이는 위치에 달이 있었다. 창문에는 "문을 여실 때 방충망을 이용하세요"라고 씌여 있었다. 너무 답답하면 방충망을 내리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찬바람이 들어오면 살 것 같았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이 왔고, 선생님 회진시간이 왔다. 선생님은 몸이 어떠시냐고 묻고 피가 아직 나냐고 물었다. 나는 패드에 묻지는 않는데 휴지로 닦으면 흐릿한 피가 살짝 보일 때가 있었다고 분비물도 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상태를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라는 생각에 매번 화장실 갈 때마다 냄새를 맡고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래서 팬티를 내릴 때, 휴지를 닦을 때 매번 조마조마했다. 제발 아무 것도 묻어나오질 않길. 선생님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 것도 안 나와야 한다고 했다. 답답하실 것 같아 괜찮으면 오늘 퇴원하라고 할랬는데 라고 하셔서 답답하지 않다고 몸이 괜찮아질 때까지는 언제까지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은 패드를 벗고 팬티만 입고 있어보자고 하셨다. 그래야 뭐가 나오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물도 많이 마시고 화장실도 자주 갔다. 매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팬티를 내렸다. 다행히 하루종일 아무 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화요일 아침이 왔고, 선생님이 다시 오셨다. 소식을 전하니 그럼 퇴원해볼까요? 라고 하셨다. 내가 퇴원 전에 초음파 다시 안 봐도 될까요 하니 그럼 오후까지 있다 아무 이상 없으면 외래로 초음파 보고 퇴원하자고 하셨다.

     

        고작 나흘 지났는데 아가는 몸무게가 더 늘어 있었다. 팔다리도 많이 자라서 양반다리도 하더라. 선생님은 제가 며칠 전에 성별 알려드렸나요? 물었다. 하늘색이라고 하셨다고 하니 다시 한번 그 부분을 보여주셨다. 남편이 바뀔 리는 없겠죠? 물었다. (남편은 딸을 간절하게 원했다) 아빠 이렇게 확실한데요? 바뀔 리가 없어요, 하고 남편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선생님은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을 초음파를 보며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내가 검색해본 건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아가도 변함없이 건강하고 양수양도 적당하고, 자궁경부 길이도 적당하다고. 걱정했던 자궁경부의 틈은 아무래도 점액질 인 것 같다고. 며칠 전보다 모양이 약간 달라져 있었다. 내가 피가 난 그 날 집안일을 평소보다 좀더 많이 했는데 그렇게 많이 한 것도 아니었다고 하니 아가가 없을 때의 몸과 아가가 있을 때의 몸은 전혀 다르다고. 무리 안 했다고 생각 들어도 아가가 있을 때는 무조건 조심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달 뒤 다음 검진 때 보면 될 것 같다고 그전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토요일 진료실에 나왔을 때는 곁에서 도와주시던 도우미 분이 회사 다니세요? 어떡해요, 라고 걱정해주셨는데 화요일 진료실에 나왔을 때는 퇴원하시라는 거죠? 축하드려요, 라고 환하게 웃어주셨다. 물론 두 분이 다른 분이긴 했지만.

     

        오늘로 아가는 늙은 애미 뱃속에서 17주 4일차가 되었다. 느낌이 이상해 임신 테스트기를 해 봤을 때 선명한 두 줄이 나온 날부터 마음이 조급해져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줄 알았으면서도 병원에 가서 실망하고 안 좋은 소리만 잔뜩 듣고 온 날,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한 날, 심장소리까지 무사히 확인하고 차가워보였던 선생님이 환하게 웃어보이며 연이어 축하한다고 말했던 날, 돌아누운채 움직이지도 않아서 1차 기형아 검사를 할 때 세 번이나 검사실을 나와 계속 걸어야 했던 날, 정상이라는 결과를 듣던 날까지. 믿기지 않지만 뱃속에 아가가 계속 함께 였다. 노산이고 걱정투성이 엄마인 덕에 혹시나 잘못될까, 나중에 남겨놓은 기록을 보면 너무 슬플까봐 일기도 제대로 쓰지 못했는데 이제는 매일매일 기록해둬야겠다. 이제야 진짜 새해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태명은 탕이다. 목욕탕 꿈을 꾸었기에 탕이라고 지었다. 조심성 없는 엄마라서 미안해. 세상에 나와도 아마 엄마는 계속 그럴 거야. 처음이고, 원래도 엄마가 그렇거든. 그렇지만 노력할게. 일단은 뱃속에서 더이상의 이벤트 없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자, 아가. 엄마가 더 조심할게.   

     

        "어제는 처음으로 배초음파를 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병원 안에도 함께 들어가지 못했는데 어제는 날씨가 추워졌다고 보호자도 함께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진료실 안에도 함께 들어갔다. 탕이는 그 사이 키가 자라 있었고 팔다리가 생겼고 탯줄도 생겼다. 선생님이 이제 좋은 것 많이 드시라고 했다. 엄마아빠 본다고 짧디짧은 다리도 살짝 움직여주었다. 피, 소변 검사도 다 정상이란다. 이제 다음 진료는 12주차 1차 기형아 검사. 그동안 불안한 마음에 다이어리도 제대로 시작하질 못했더랬다. 이제 뭔가 안심이 된다. 탕이도, 나도 건강할 거라는. 잘 먹고, 잘 지내보자, 탕이야. 우리 가족이 되어주어 고마워. 엄마아빠는 격하게 환영해."

    - 2020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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