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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 작가님의 강연회를 다녀와서
    서재를쌓다 2007. 8. 25. 01:41

        8월 24일 금요일,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있었던 황석영작가 강연회에 다녀왔다. <바리데기>를 읽고 정말 좋아서 꼭 강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예스24에서 당첨이 됐다. 좋은 책 선물도 받고, 작가님의 좋은 말씀도 듣고, <바리데기> 첫 페이지에 싸인도 받아왔다. 작가님의 이야기들을 다 받아적을 수 없을 것 같아 녹음을 했다. 두고두고 가끔 꺼내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태해질 때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  

       역시 황석영은 시원한 여름철 폭포수 같다. 어찌나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잘 풀어내시는지 집에 와서 다시 들어봐도 버릴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말씀 중에 내 마음에 콕 박혔던 좋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정확하게 받아 적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부족하겠지만 이 글 보시는 분들이 강연회의 좋았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길 바라면서.



    전쟁을 겪은 자는 이미 젊지 않다.

    - 해병대를 갔습니다. 가서 베트남까지 끌려갔는데, 베트남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합니다. 제가 어딘가에 뭐라고 썼을 거예요. 전쟁을 겪은 자는 이미 젊지 않다. 젊은이가 아니다.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젊은 나가 아닌거죠. 그래서 그 때 전쟁의 상처가 굉장히 컸던 모양이예요.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마당에 가서 포복도 하고, 또 아우가 지나가면서 팔을 잠깐 밟고 지나가는데 그냥 화병을 집어 가지고 때렸는데 여기 한 이십바늘을 꿰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사님을 불러다가 안수기도도 하고. 하여튼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베트남에서 사회라든가 또는 아시아의 여러가지 상황이라든가 이런 데 눈을 돌리게 됩니다.


    장벽 옆에서 아름다운 개인을 발견합니다.

    - 11월달 됐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거예요. 장벽이 무너지던 날, 제가 장벽 입구에서. 인파가 몰려오는데 아시아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전부 다 백인들, 독일 사람들. 그 사람들이 서로 노래 부르고 샴페인을 막 터뜨리고 서로 주고 받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부르고 막 울구 이런 거를 보면서 그 때 장벽 옆에서 아름다운 개인을 발견합니다. 아, 개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때 세계가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죠. 세계는 분명 변할 것이고, 내가 하고 있는 예술 장르로써의 소설, 산문도 변화를 해야 할 것이다 생각을 합니다. 그 때 남긴 기록들은 모두 산문의 변화로 남아있죠.  


    굉장히 치열한 일상인데 상태는 죽음하고 비슷하죠.

    - 그리고 인제 돌아와서 어쩔 수 없이 망명을 한 5년 하고 나서 5년동안 독방에서 감옥살이를 하는데. 이때는 일상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제가 모험을 한다든가 여행을 다닌다든가 어려움을 겪는다든가 이런 거는 잘 참아요. 아주 재밌어하고.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 앉아 있어라 하면 거의 미칠정도가 됩니다. 성격상.  5년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있으래요. 집필도 하지 말고. 다만 이 일상이 지하철 타고 왔다갔다하는 일상이 아니고 굉장히 치열한 일상인데, 상태는 죽음하고 비슷하죠. 저만 세상에서 빠져있고, 제가 아무런 영향력도 세상에 끼칠 수 없고, 그리고 혼자 앉아 있는데 저에 대해서 누구도 욕하거나 신경쓰지 않고 이거 죽음의 형태하고 똑같아요. 나만 빠져있으니까. 그 때 자기 안에 있는 많은 것을 정리를 합니다. 정리를 하고 그리고 일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죠. 나는 평상심이라는 걸 그전에 잘 몰랐는데 감옥 안에서 그걸 봅니다.  

    다른 일상하고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읽어야지 진짜 독서지.

    - 독서도 그렇습니다. 독서도 우리가 집에서 책 보다가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애인도 만나고 주부들 같으면 아이들 학교 데려가고 오고, 하여튼 그 무엇인가 다른 일상하고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읽어야지 진짜 독서지. 독방에 앉아서 책만 보면은 커뮤니케이션이 세상하고 끊기기 때문에 관념의 줄거리가 이렇게 남습니다. 대개 보면은 징역살이를 하다 나온 사람의 특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몸이 안 좋아지고, 두번째는 굉장히 신비주의라든가 일상에서 벗어난 어떤 것에 빠지다는 거. 관념화되죠.


    한국교도행정의 일대승리구나.

    - 내가 펑크도 잘 내고 작품도 쓰고 싶으면 쓰고 말고 싶으면 말고 했는데 제가 98년에 석방되서 나온 뒤로 펑크도 한번도 낸 적이 없고 약속도 꼭 지킵니다. 생산을 반드시 하는 거. 그래서 어느 선배편집자가 그런 얘길하더군요. 아, 황석영 케이스를 보니까 한국교도행정의 일대승리구나. (웃음)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할까요, 넓어졌다고 할까요.

    -  그리고나서 제가 물론 해외에 한 5년동안 망명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 때 남북으로부터 다 벗어나서 남북 어느쪽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처지였기 때문에. 망명이 완결되는 것도 아니고 지명수배자로써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이나 국가라든가 민족이라든가 이런 거로부터 다 왕따를 당해 있었죠. 그래서 아마 베를린 망명 시절에 국가주의라든지 민족주의라든지 이런 꾀죄죄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났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작가의 자유, 창작의 자유라든지 이런 거를 굉장히 이상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구요. 제가 그리구선 오는 10월달에 완전히 들어오는데, 지난 2년동안은 런던에 있었고, 그 다음에 1년 8개월 파리에 있었는데. 지난 번에 망명하고 있을 때보다 이번에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때보다 내가 훨씬 나이가 많았고, 그리고 지금이 그 때보다 훨씬 자유로운 입장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되고 교류도 하게 되고 해외문학과 교류를 하면서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할까요, 넓어졌다고 할까요. 그런 것을 느낍니다.


    다만 작가에게는 조국이 있다. 자기 모국어가 조국이다.

    - 저하고 아주 가까운, 나이가 저보다 두세살 위인데 르클레지오라고 불란서 작가가 있습니다. 요새 아주 유명한 작간데. 해마다 노벨상에 이름이 오르는 친군데. 그 친구하고 무슨 행사를 같이 하다가 아주 재밌는 얘길 들었어요. 그 친구가 뭐라고 하냐면 '작가는 국적이라든가 인류라든가로부터 구애받지않는 존재다. 다만 작가에게는 조국이 있다. 작가의 조국은 뭐냐, 자기 모국어가 조국이다.' 아, 그 얘기 근사한거야. 그래서 그거 내가 다음에 써 먹을게. 그러니까 아까 제가 세계시민이 되겠다 한 거는 한반도와 나의 문제를 세계사람과 공유하겠다,하는 의미와 더불어 나의 조국은 모국어다. 모국어가 나의 조국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야, 넌 내꺼 니가 써 먹고 니꺼 뭐 써 먹을 거 없냐, 그래서 한 수 가르쳐 준 게 그럼 지금 나는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제가 대꾸를 했죠. 세계는 지금 이런거다. 가령 이를테면 여러분들 철이 바뀔 때에 철새들이 날아갈 때, 제비가 온다든가 간다든가 특히 떠날 때 그런 걸 많이 보게 되는데, 떠나게 되면 철새들이 전봇대면 전봇대, 전기줄이면 전기줄에 이렇게 쫘악 모여서 앉죠. 일정하게. 무리를 이루어 앉는데, 계속 몰려들죠. 그러면 계속 몰려 앉는데, 그러다가 꽉 차죠, 그 공간이. 그런데 한 무리가 또 날라오면 옆에 이렇게 비켜서 앉으라고 옆으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이 새들이 일제히 같이 떠버립니다. 그래서 허공을 돌다가 다시 공간편성을 해서 쫘악 앉죠. 꼭 그러더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세계가 이렇게 새들이 떴다고 본다. 떴다고 보는데, 떠서 막 돌고 있다. 그런데 이게 탁 내려앉는 거, 내려앉는 데 나의 문학이 관계하고 기여하고 싶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그 친구가 아, 그건 내가 좀 써 먹어야 겠다, 그렇게 얘길 하더라고.


    2차대전 이후에 당신같은 작가가 서구에는 없다.

    - 내가 200  한씨연대기하고 삼포가는 길 등등의 단편집이 불란서에서 처음 나왔는데, 그 때 얘기 들었던 것은 이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2차대전 이후에 당신같은 작가가 서구에는 없다. 뭐냐면 한번 겪기도 힘든 전쟁을 두 차례씩, 한번은 유년기때 한국 전쟁, 청년기때 베트남 전쟁, 이렇게 두차례 전쟁을 겪고, 그리고 수십년동안 군사독재에 시달리고 싸우고, 방북하고 징역을 가고 말이지. 광주에서 광주항쟁을 겪고 이런 등등의 이를테면 현장과의 또는 현실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서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없죠. 제3세계에서는 있는 일이예요.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그런 작가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서사의 힘, 이런 거에 서구문학은 감탄을 하는거죠.


    나하고 다른 것을 알기 위해서 읽는다

    - 내가 가서 겪어보면 서구의 독자들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왜 내 작품을 읽습니까, 라고 되물어보면 대부분이 나하고 다른 것을 알기 위해서 읽는다, 그리고 서사의 힘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고전 속에서 그런 걸 보는데, 현대작가들 속에서 그런 작가를 찾아내기가 매우 드물어졌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물론 그러나 그 중에 아주 좋은 작가 몇은 아주 번쩍이는 서사의 힘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전사회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는 거는 사실입니다.

    - 최근에 와서 한국 문학이 끝났다, 한국 문학 위기다, 이렇게 하는 위기론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고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고 한 10년 단위마다 이런 얘기를 해 왔어요. 뿐만 아니라 서구 문학은 20세기 초부터 문학예술의 위기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건 뭐냐면 시대 상황이 변화하고 어떤 시대가 확 변하고 그럴 때 미처 적응하지 못한 문화예술적인 자기 위기감을 스스로 고백하는건데, 변화할려고 그러는 와중에 대부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엄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그런 경향의 와중에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변화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우선 미디어가 변화하고 있구요. 책 읽는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금년에 들어와서 우리가 전사회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는 거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야.

    -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야.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시집이 서점에 꽂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집이 몇 만 부씩 또는 가끔 가다 교통사고씩으로 한 백만부씩 정도 판매실이 나올 정돕니다. 우리나라가 참 이상한 문화적인 열기를 가진 나란데, 어디 지금 대학이 아니고 강제로 대학이 학점준다 다나와라, 어디 독자와의 대화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나오는지 없습니다. 전 세계에. 굉장히 우리 문화적인 역량이나 열기가 있는 나랍니다.  저는 말이죠. 프랑크프루트 도서전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얘기하다가 나는 지금도 보통 몇십만부씩 나간다. 지금도. 지금 책 안 읽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러면 거기 출판인들이나 작가들이 깜짝 놀랍니다. 어유, 몇십만부나, 그것도 대중소설도 아니고. 나는 얘기하죠. 글쎄,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나라 출판종류가 연말에 교보
    에서 나오는 출판연감이 전화번호부만큼 나온다. 그 해 나온 책이. 깜짝 놀라죠. 우리나라가 출판 세계 7윕니다. 엄청난거죠.


    서사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회복되는 서사를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내려는 노력

    - 한국 문학이 위축된 건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이 독자들보다 작가들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90년대 이후의 현실로부터 멀어져서. 개인이랄지 내면이랄지 어떤 작은 하찮은 개인의 행동이랄지 일상, 이런 것들 굉장히 중요한 가치인데 그전에는 그걸 대단히 무시했죠. 무시하고 집단, 공동체, 책임, 조직, 의무, 도덕성. 그런데 이게 가치 있어야 된단 말이예요. 가치. 개인의 행복, 개인의 일상, 개인의 내면 중요하지만 이들이 서로 만나서 이루는 사회적 관계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거는 놓치지 말자, 우리가. 이게 제 지론입니다. 그래서 90년대 청산주의처럼 한참 진행이 되니까 그만 지루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독자들이 떠나죠. 독자들이 많이 떠났습니다. 지금 옛날에 10분의 1밖에 안되요. 옛날에 출판이 십만부 나갔으면, 지금은 백만부 나갑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느냐. 다 미디어나 다른 매체로 떠났죠. 특히 영화쪽으로 많이 간 거 같아요. 영화가 손쉽고, 그러니까 영화는 가만 보세요. 그동안의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는 영화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라, 열개에 한 여덟편은 서사와 현실을 가지고 있어요. 서사와 현실, 이 두가지 요소가 그래도 영화에서는 갖춰져 있단 말이예요. 한데 이 두개를 다 무시했던 거 같애요. 한국 문학이. 처음엔 서사를 무시했고, 그 다음엔 현실에서 멀어졌습니다. 자기하고 상관이 없는데, 아니 이 여자와 이 남자가 만나서 이렇게 해서 삼각관곈데 이게 언제 해결될까 하는 게 지금 젊은 사람들 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생활현실하고 거리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점점점점 책 안 보고, 그 다음에 다른 인터넷이라든가 위력적인 매체들이 나오기 시작하죠. 그래서 서사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회복되는 서사를 현실하고 접점을 찾아내려는 노력, 이게 둘 다 필요하다고 보는데. 저는 그런 노력을 징역에서 나온 뒤로 지금까지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이렇게 먹고 살만하게. 많이는 안 생깁니다. (웃음) 그저 품위유지하면서 살아갈 정도로 생기니까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서 다 팔아 때려 치워 가지고, 소설 때려 치우고 더 재밌게 낚시질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이러면서 살텐데, 적당히 먹고 살만큼만 돈이 생기니까 글을 열심히 쓰게 되요. (웃음) 사실은 도스트예스스키니 발자크니 다 빚 갚을려고 평생 그러다가 꼴까닥하니까 빚도 다 못 갚고 죽고 그런 식인데. 뭐 하여튼 저는 작가로서는 굉장히 다행이였다고 보고, 소비가 막 피어나던 시기에는 망명을 갔거나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었다. 작가로서 굉장히 운이 좋은 거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가 사라졌느냐. 사라지지 않았어요.

    - 시적서사의 특징이 뭐냐면 지금 시가 현대사회에서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는 전통이 있어서 읽고 그러는데, 서구에서는 서점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래예요. 시 독자는 없습니다. 있죠. 있긴 있는데 그게 우표수집 동호회 이런 식으로 있는거죠. 그래서 한 이삼백명. 저희끼리. 그래서 대학이라든가 연구소, 또는 재단 이런데서 이천유로 삼천유로 지원이 나가면 그걸로 팜플렛처럼 만들어서 자기네들끼리 돌려봅니다. 그런데 시가 사라졌느냐. 사라지지 않았어요. 시가 이동해서 어디론가 간거죠. 그래서 보니까 시가 광고카피라든가 또는 시적영상이라든가 이런 데로 옮겨간거예요. 시적 이매지네이션의 홍수 속에 있는 거예요. 시적 이미지의 홍수에 우리가 있는데 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죠. 시인들이 만약 이런 현상을 적극화할 수 있다면 시가 또다른 매체에 뛰어들어서 살아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어느 외국현장 강연회장에서 그랬더니 나중에 그걸 따로 인터뷰를 하자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얘길한 적이 있습니다. 광화문에 지나가다 보면 교보빌딩 위에 시 구절이 한 계절에 한번씩 바뀌고 있는데 그거 굉장히 위력적이예요. 그런 거 느끼지 않으세요? 아, 좋다. 가령 이를테면 전광판 흔한데 그냥 두지 말고 저걸 우리가 사회적으로 약속을 해서 짧은 시 한 두 세줄짜리를 쫘악 흐르게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출근하면서 보고 인생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고. 오래 말고 잠깐 생각하고 지나가고. 시적영상도 많이 만들 수가 있죠. 그렇게하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하여튼, 어쨌든. 그래서 시가 가지고 있는 함축성, 메타포, 그리고 긴장, 짧게 하고 길지 않아서 생기잖아요. 길면 긴장이 안 생기죠. 자세하게 보긴 하는데 가만 있어 이게 무슨 소리지? 긴장하는 거죠. 이거하고 산문의 여러가지 스토리로서의, 줄거리로서의 디테일을 결합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건 우리가 어렸을 때, 문학청년일 때 이런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가령 시에서의 산문시, 시에서의 서사시라든가.


    산문이 영상으로 가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아하, 산문이 영상으로 가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자기 장르 내에서 산문이 변화하는데 이거 영상화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또는 대본. 우리가 보세요. 카메라를 갖다대면 렌즈가 프레임이 딱 생기잖아요. 이거는 마차에서 내리면 탁 한 컷만 보여주면 프레임 바깥에 있는 건 안 보여줘도 되죠. 왜, 프레임 바깥에 있는 건 시청자 또는 독자가 머리 속에서 상상하니까. 씬에서의 이미지를 딱 하면 된다말이죠. 그러면 이 씬과 이 씬이 만나 연관이 안돼, 연관이 왜 안돼, 이 문장이 이 문장이 만났는데 연관이 안돼? 연관이 왜 안돼요. 영상을 해서 그 사이의 여백은 작가의 이미지가 채워준다 이 말이예요. 우리가 시를 읽는 것도 그렇거든요. 그런 식으로 진행을 할 수 있다, 시적산문이라는 것은. 그래서 바리데기같은 저런 대서사는 아마 옛날같으면 최소한 다섯 권은 써야되죠. (웃음) 이북에 있을 때 한 권, 중국에 있을 때 한 두 권, 밀항하는 과정에서 반 권, 또 정착하는 과정에서 또 반 권, 런던... 한 다섯 권은 써야 양이 차는건데 저거 딱 보면서 섭섭하다고 그래요. 옛날식의 독법, 옛날식 습관이 있던 사람들은 아, 섭섭해. 우리가 시 한 편 읽고 섭섭하다고 그러니까 외우기도 하고 남고 그러는거죠. 이게 말하자면 장면과 장면이 부딪쳐서 말하자면 독자가 자기 이미지 속에서 여백을 채운다, 이걸 뭐라고 그래요? 영화에서. 이걸 몽타주라고 그러죠. 미장센, 몽타주라고 그러죠. 그런식으로 영상화되어가는 과정에 있지않나. 영상의 컨텐츠화에 서 있지 않나. 이게 시적서사의 비밀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직업작가로서의 젊은 작가, 나는 보고 싶습니다.

    -  네. 아주 좋은 얘기예요. 저랑 생각이 똑같애서 저도 그렇게 보거든요. 말하자면 현실을 읽어내기는 읽어내는데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독자와 얘기할 것인가에서 걸리는 것 같애요. 그리고 요새 독자하고 작가를 연결시켜주는 평론가들도 문젠데, 너무 어려워. 내가 글을 45년 쓴 사람이예요. 45년 동안, 그 생활의 달인이라는 거 있잖아. 15년, 20년 짜리도 달인이 되더라고. 그러면 글 써서 여태까지 서바이벌 해 왔고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맨날 변화해왔고 개척해왔고 그런데 나도 달인이겠죠. 그죠? 그런데 이렇게 보면은 내가 뭔 소린지 모르겠어. 평론이 너무 어려워서. 일반 독자들은 더구나 모를거란 말이예요. 그런데 지금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현실을 삭여서 독자와 어떻게 대화를 할 것인지 이거를 보여줘야 되죠. 자기의 방법론으로.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양반들이 세태가 변해서 그럴건데 인문사회공부를 안 해. 맨날 소설책만 봐요. 역사책이라든가 사회과학책이라든가 봐야 되는데. 봐야 현실을 볼 거 아니예요. 현실은 그냥 널려있죠, 사진처럼. 그런데 거기서 뭔가를 탁 잡아내야 되잖아요. 잡아내는 그게 작가의 재간이자 작가관이고 작가윤리거든요. 다른사람들이 못 보는 걸 잡아내는 거. 요새는 논술도 그래. 무슨 문장 하나 끼워가지고.. 전체를 보고 전체를 가지고 니가 구성하고 니가 그렇게해서 써라. 외국은 독후감을 그렇게해서 시험을 치루는데 우리는 뭐 이만큼씩 띄어서 하니까 애들이 약아가지고 책 안 봐요. 띄어낸 거 모아본 거 보지. 그래서 내 작품 봤다, 어떤 아이가 이야기하는 걸 다른 디테일로 들어가서 보면 못 봤어. 띄어놓은 거 보고 그러지. 하여튼 문장이 어쩌고, 문단이 빛난다 서로들 그래. 그거야 기본이지. 문장이 잘 쓴다든가 감각이 있다 하는거는 구멍이 뽕 뚫려서 햇빛이 요렇게 들어오는 고 부분을 잘 그려냈다는 게 문장이 아니죠. 전체, 집을 짓고 얼개를 짓고 집이 주고 미각이 있잖아요. 컴포지션이라고 하죠, 구성. 모든 예술은 구성이 출발이죠. 그죠? 조형미술도 그렇고 다 그렇죠. 그러면 문장은 인테리어인데, 인테리어는 이렇게 바꿨다 저렇게 바꿨다 할 수 있는 거죠. 이를테면 작가의식이나 인생관이 딸려서 그러는 거 아닌가. 인문사회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어. 문창과를 모두 때려없애버리고 문 닫으라고 그러고 글 쓸 놈은 철학과라든가 역사학가라든가 이런 데 보내야되요. 문창과가 전국에 100개가 되고 말이야. 요새 작가들도 글 안 쓰고 다 기어들어갔잖아. 저는 프로작가가 좀 많이 나와서 겁내지 말고, 사실 먹고 살기 힘들거든요. 젊은 작가들은. 1년동안 막 썼는데 만부정도 팔리고 한 천만원됩니까, 만 부. 어쩌겠습니까. 그러면 정말 결심을 해서 머리를 박고 말이야 한 삼년 죽을 각오하고 말이야. 물론 우리 딸이 그런 남자 만나서 시집갈까 걱정이 되지만 말이야. (웃음) 아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는 거고. 한 삼년. 정말 머리를 박고 직업작가가 되겠다, 나는 이걸로 먹고 사는 프로가 되겠다, 좀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다 좀 취미로 쓰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단편 째각째각 쓰고 그래서 힘이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젊은 직업 작가군, 난 이걸로 먹고 산다. 직업작가로서의 젊은 작가, 나는 보고 싶습니다.


    지금 예순 다섯인데 한 삼십년은 써야죠.

    - 요즘은 명도 길어졌다 그러죠. 담배만 끊으면 좀 살 거 같은데. 지금 예순 다섯인데 한 삼십년은 써야죠. 그죠? 아흔 다섯살인데, 한 삼삽년 쓰면 자기의 그런 양식이 축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동아시아의 자기 세계, 자기의 문학을, 자기식대로 대척한 대가로서 죽고 싶은 겁니다.


       녹음기 상태가 안 좋아서 잘 들리지 않는 단어들이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기억에 의존해서 적었다. 헥헥.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합니다' 라고 표현하셔서 의아하기도 하고, 마치 소설을 듣는 것같은 느낌도 들기도 했다. 아무튼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좋은 작품 많이 써 주시길. 싸인해 주실 때도 독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면서 짧막한 인사를 건네주셔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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