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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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취향서재를쌓다 2018. 8. 26. 23:07
어제는 시옷의 모임이 있었다.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읽었는데, 어제 을지로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마주앉아야 한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술이 아니라면 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리고 별 거 아닌 오늘 하루를 말해야 한다. 당장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쌓이면 견고한 '우리'가 되니까. '우리'는 함께 즐거울 것이다. 함께 어려움을 넘을 것이다. 오해가 쌓일 틈은 없을 것이다. 서운함이 쌓일 겨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앉아 오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상." 어제 우리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만선호프의 야외자리에 앉아 생맥주와 노가리, 닭똥집 튀김, 두부김치, 오징어 숙회, 김 안주를 차례대로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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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없이 살자서재를쌓다 2018. 8. 25. 16:20
의 한고은 편을 챙겨 보고 있는데, 이번주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포장마차에서 골뱅이탕에 레몬소주를 마시며 더위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고은이 말했다. 여보, 나랑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 말을 세 번쯤 한 것 같다. 그날의 대화에 의하면 평소에도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한고은은 여보가 없었으면, 이라고 말하더니 울컥해져서 술잔을 놓았다. 이를 본 남편이 한고은의 등을 토닥여줬고, 한고은은 울 것같은 표정으로 남편을 안았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한테 가장 쉬운 일은 죽는 거였어. 여보랑 결혼하고나서 가장 달라진 건 세상에서 죽는 게 제일 무서워. 한고은은 지난 날이 너무 힘들었고,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남편이 그동안 고생한 자기에게 수고했다며 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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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서재를쌓다 2018. 8. 21. 21:42
책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동생이 출근길에 이 책의 첫 글인 '눈물병'이 실린 페이지를 보내줬다. 서른 여섯살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가족 모두 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경미 감독 혼자서만 울었단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동생네와 식사를 하고 동생네는 돌아가고 엄마와 함께 뒷산을 실렁실렁 올랐던 시간에 대해 쓴 글이다. 감독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정말 다 짝이 있을까?" 그리고 말한다. "내 짝은 왔다가 갔어, 이미."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이 말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다. 흐흐-) 그리고 이 구절이 있다.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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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모퉁이다방 2018. 8. 16. 21:19
세상에나.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올라왔는데 바람이 분다. 큰 바람이 분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세상에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올 여름이 가고 있다. 절기라는 것이 어쩜 이리 신기한지. 말복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올 여름 우리들 무척이나 수고했다며 바람을 보내주셨네. 집에 와 동생이 틀어놓은 에어컨을 껐다. 여름내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고, 맞바람이 불 수 있게 현관문도 걸개를 채우고 열었다. 세상에, 바람이 분다. 지난 주였나. 지지난 주였나. 오늘보다 덜했지만 바람이 분 날이 있었다. 그날 연신내로 콩물을 사러 갔었다. 바람이 불어 걷기도 할 겸 간 거였는데, 그날따라 두꺼운 청바지를 입었고 조금 걷다 보니 땀이 주르륵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간간이 바람이 불어주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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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서재를쌓다 2018. 8. 15. 18:21
을 읽고 한수희 작가의 책은 챙겨 읽어야지 다짐했었다. 그녀의 글에는 시원시원한 면이 있었다. 솔직했고. 이번에 교토 여행 책이 출간되었다기에 바로 주문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을 잘 지었다는 걸 알겠더라. . 여행지가 사람의 기운을 달리 만드는 걸까. 그녀의 말대로 나이가 들어서 이전의 여행과는 달라진 걸까. 차분하고 고요하다. 30대가 된 후 작가는 해마다 교토를 찾는다고 한다. 교토를 위해 한달에 얼마씩 저축을 하고, 예정했던 돈이 다 모이면 1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고. 교토로. 책은 교토라는 장소보다 교토를 거니는 작가 자신에 집중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에 대해, 카페를 열었다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해, 밥벌이의 어려움에 대해, 글쓰기의 즐거움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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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밤무대를보다 2018. 8. 7. 17:18
그 주에도 이렇게 더웠던가. 긴팔 원피스를 입고 갔으니까, 아직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나와 동생, 그리고 친구는 6월 마지막 날에 정밀아를 만나러 갔다. 친구와 나는 두 번째이고, 동생은 첫 만남이었다. 공연장에서 셋이 보기로 했는데, 가는 도중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동생에겐 우산이 있었고, 나는 얇은 장우산을 샀고, 친구는 공연장 근처 스타벅스 처마지붕 밑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인사를 나누고, 공연장까지 우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비를 맞으며 나란히 걸어갔다. 예매자 확인을 하고, 책갈피로 쓰면 딱 좋을 예쁜 빛깔의 티켓과 가사 한 구절이 새겨진 나무연필 두자루를 건네 받았다.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친구, 동생, 나 이렇게 나란히 앉았다. 정밀아는 궂은 날,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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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모퉁이다방 2018. 8. 3. 17:06
위가 안 좋아 병원에 다녀왔다는 아빠는 의사를 탓했다. 진찰실이 너무 좁고, 진찰을 하고 있으면 다음 환자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의사도 성의가 없다는 것. 젊은 의사가 아빠에게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단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아빠가 이번에는 무슨 소리를 그렇게 많이 했을까 생각했다. 서울의 병원에 함께 가 본 바, 아빠는 확실히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 젊은 의사를 잘 신뢰하지 못했고, 종합병원의 지위가 있는 의사에겐 유명하신 분이라 들었다, 는 말부터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혹여나 아빠를 하찮게 볼까봐 진료실에 나와서 신신당부를 했다. 아빠, 너무 많이 말하지 마. 의사가 싫어해. 할 말만 하고, 못 믿겠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마. 기분 나빠하잖아. 엄마의 말에 의하면 진주에서 유명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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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모퉁이다방 2018. 8. 2. 15:08
어떤 이야기 끝에 차장님이 그러셨다. 질투를 하지 않아서 그래. 점잖은 사람인 거야.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점잖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며칠 뒤에 사전 검색창에 '질투'라고 쳐봤다. 두번째 설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죄다 자랑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혈연이 가진 것도 있었다. 아니, 저런 것까지 자랑을 하나.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에 대한 험담도 있었다. 그 자리가 무척 불편했는데, 자리에서 빠져나오자 나도 그에 대한 험담을 시작하는 거였다. 그게 싫었다. 정말 싫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질투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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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여자랑 결혼을 한 번 해봤는데요서재를쌓다 2018. 8. 1. 21:40
동생은 핸드폰 중독이다. 특히 인스타그램 중독. 출퇴근할 때 연락해보면 인스타를 보고 있고, 집에서도 엄청 일찍 이부자리를 펴는데 누워서 하는 건 인스타 보기. 그렇게 보면서 맛집도 발견하고, 괜찮은 커피집도 발견한다. 간혹 좋은 책도 발견하는데, 김민철 씨의 도 동생이 발견한 책이다. 그렇게 발견하면, 꼭 자기가 사지 않고 이거 재밌겠다! 하고 링크를 슬며시 건넨다. 나는 그렇게 좋으면 니가 사지! 하면서 링크를 열고, 결국 현옥되어 주문한다. 그렇게 동생도 읽고, 나도 읽는다. 이 책 도 그렇게 주문한 책이다. 부천에서 오키로북스라는 서점을 운영 중인 오사장님이 자신의 신혼생활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했고, 그것이 재미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이 기록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까지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