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31

풋, 2008년 봄호 - Foot,이 아니라 풋, 풋 2008년 봄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문학동네 Foot,이 아니라 풋,이다. 풋사과할 때 풋. 풋사랑할 때 풋. 풋풋하다할 때 풋. 빠알갛게 여물기 전 단단한 연두빛의 아삭한 접두사. 더 열심히 물을 빨고, 햇살을 쬐면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영글 글자. 풋,하고 웃는 수줍은 소리. 그 풋,이다. 그러니 내가 이 따스한 봄에 연두빛 청소년 잡지 풋,을 만난건 당연한 일이다. 을 산 건 김연수 작가의 새 연재물 때문이다. 늘 그렇듯 김연수 작가의 글은 따스했다. '원더보이'라는 놀라운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소설의 첫번째 이야기에서 아버지를 잃고 초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첫번째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소년은 창 밖의 내리는 눈을 마주한다. 눈을 묘사한 마지막 장을 읽고서 나도 모르게 아, 탄.. 2008. 4. 27.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내 꿈의 서점, 팝앤북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시공사 이름은 팝앤북. 북앤팝보다 왠지 더 부르기 편한 것 같다.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그리 크지도 그리 작지도 않은 너비에 1층은 서점. 이야기가 있는 소설만 파는 서점이다. 나무로 된 책장들 사이사이 나무 의자가 놓여져 있다. 책을 살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책의 배열은 작가별로. 영화 에서 보았던 것처럼 손으로 쓰거나 글자를 오려붙인 친근한 팻말의 작가 이름이 책장 사이사이 붙여져 있다. 훌륭한 책의 표지들이 영화 포스터처럼 벽 사이에, 책장 사이에 무심한듯 멋드러지게 붙여져 있다. 2층은 음반가게. 말랑말랑한 팝 위주의. 영화 처럼 사랑의 눈빛을 훔쳐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역시 나무로만 이뤄진 테이블에 나무 의자가.. 2008. 4. 26.
체실 비치에서 - 서늘하고 아득한 이언 매큐언의 결말 책을 다 읽고 양장 위에 덮여진 파아란 표지를 빼냈다. 4면으로 접혀져 있었던 표지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푸른 체실비치 풍경이 길다랗게 펼쳐졌다. 아니, 푸르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뭐랄까. 아득해지는 빛깔이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표지를 펼쳐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릴게 분명하다. 해가 거의 진 후, 바닷가에 홀로 서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서글프다는 말로도, 시리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아득하다는 말로도, 저리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저기 앞에 하늘하늘 걸어가는 여인. 플로렌스. 나는 에드워드 대신 그 뒷모습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단번에 달려가 말해주고 싶다. 당신 마음은 그게 아니잖아요. 에드워드 마음도 그게 아니예요. 이렇게 끝내고 평생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2008. 4. 14.
기다림 -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 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시공사 "매년 여름 쿵린은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 어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의 첫 문장이다. 하진의 은 이 첫 문장으로 간단히 요약될 수 있다. 부모가 정해준 배필과 결혼해 도시에서 혼자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쿵린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여름 휴가 때마다 이혼 하러 고향에 내려가지만 매번 실패하고 돌아오길 17년. 별거 생활을 한 지 18년이 되면 배우자 동의 없이도 이혼할 수도 있다는 그 기다림으로 버틴다. 영어로 소설을 쓰는 미국의 중국인 소설가 하진은 18년동안 지속된 어떤 기다긴 기다림을 간결한 문체로 덤덤하게 이어나간다. 지난 가을, 소설을 번역한 김연수 작가는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서 은 굉장히 '좋은' 소설이라고 말했다. 무려 18년이다. 실제로 소.. 2008. 4. 1.
알라딘 중고샵에 책 내어놓기 알라딘에 중고샵이 생겼다. 어떤 종류의 것들을 사람들이 내어 놓는지 확인만 하다가 나도 한번 내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책장을 살폈다. 얼마 전에 읽은 에서처럼 혹시나 내 책이 전설의 고서가 되어 나의 메모를 시작으로 이리저리 이어나갈지도 모를 일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일조했다. 어떤 책을 내어 놓을까 책장을 둘러봤다. 책이 많지도 않는데, 내어 놓을 거라 생각하니 더 적게 느껴졌다. 내가 제일 아끼는 소설들은 밑으로 빼놨다. 내 책장 속에서 평생 한번 더 읽히지 않고 고이 꽂혀 있는다고해도 절대 내어놓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이래서 안 되지, 이 책은 왠지 한번쯤은 더 읽을 것 같은데, 이 책은 내용이 왜 기억이 안 나는거지, 다시 읽어봐야지, 이런저런 이유로 한 권도 빼 놓을 수가 없었다. 모.. 2008. 3. 28.
사육장 쪽으로 - 이 책의 열 가지 장점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문학동네 작년 겨울,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렸다는 김애란 작가가 쓴 편혜영 작가에 관한 '작가의 초상 - 그녀에게 휘파람'의 일부분을 twinpix님 블로그에서 읽었다. 첫 책이 나온 편혜영 작가가 너댓번 만난 김애란 작가와 마주 앉아 이 책의 장점에 대해 열 가지씩 돌아가면서 말해보자는 글귀에서 피식 웃어버렸다. 이 글을 쓴 김애란 작가도, 그 말을 한 편혜영 작가도 귀여웠다. 두 사람이 돌아가며 책의 장점 하나씩을 이야기할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편혜영 작가의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다. 며칠 전 도서관에 들러서 한국소설 코너를 기웃거리는데 그 곳에 내가 언젠가 찜해두었던 소설들이 서로 멀지 않은 자리에 꽂혀 있었다. 천명관의 , 한유주의 , 그리.. 2008.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