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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딘 중고샵에 책 내어놓기
    모퉁이다방 2008. 3. 28.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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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 중고샵이 생겼다. 어떤 종류의 것들을 사람들이 내어 놓는지 확인만 하다가 나도 한번 내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책장을 살폈다. 얼마 전에 읽은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서처럼 혹시나 내 책이 전설의 고서가 되어 나의 메모를 시작으로 이리저리 이어나갈지도 모를 일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일조했다. 어떤 책을 내어 놓을까 책장을 둘러봤다. 책이 많지도 않는데, 내어 놓을 거라 생각하니 더 적게 느껴졌다. 내가 제일 아끼는 소설들은 밑으로 빼놨다. 내 책장 속에서 평생 한번 더 읽히지 않고 고이 꽂혀 있는다고해도 절대 내어놓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이래서 안 되지, 이 책은 왠지 한번쯤은 더 읽을 것 같은데, 이 책은 내용이 왜 기억이 안 나는거지, 다시 읽어봐야지, 이런저런 이유로 한 권도 빼 놓을 수가 없었다. 모두 제각기 내 볼품 없는 책장에 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 조립식 책장은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라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몇 번 방 구조를 옮긴다고 들었다 놓았다 했을 뿐인데도 나사가 몇 개 풀려 너덜너덜해졌다. 역시 비싼 게 장땡인거야?

       아무튼 1차 방출 책들을 모았다. 선물받은 책은 모두 뺐다. 거기엔 책 이야기뿐만 아니라 선물해준 이의 마음까지 담겨져 있다. 더욱 소중한 것. 그렇다고 방출하는 책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아니다. 한 권 한 권 빼어 놓으면서 이 책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일들이 거짓말처럼 또렷하게 떠올랐다. 기억력이 별로 없는 내게 신기한 일이다. 한 번 읽은 것도 있고, 여러 번 읽은 것도 있다. 사실 한 번 읽지 않은 것들도 있다. 왜 읽지 않았노라고 한다면, 흠. . 그래, 그런 책도 있다. 아무튼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 되길 바라며 골라낸 것들이다.

       이걸 빼어내고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중고샵에 등록을 했다. 과연 팔릴까 싶었는데 바로 첫 주문이 들어왔다. <리버보이>와 <장국영이 죽었다고?> 두 권을 한 사람이 주문했다. <리버보이>는 독후감 써본다고 샀다가 독후감 공모에서 냉큼 떨어졌다. 의도가 좋지 않아서 그런건가. 이야기는 건강했다. <장국영이 죽었다고?>는 드라마 시티를 보고 산 책이다. 원작이 읽어보고 싶어서.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이다.

       택배사에 배송 요청을 하고 밤에 이마트에 들렀다. 서류봉투를 사고 포장할 테이프를 샀다. 그리고 요즘 내가 좋아하는 작은 초도 샀다. 집에 와 노란색 종이를 찢어내 주문자의 이름을 쓰고 짧은 손메모를 남겼다. 당신에게 좋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내 책장 속 책을 구입해줘서 고맙다고. 그냥 보내기 그래서 초를 보낸다고. 투명한 컵에 넣어 촛불을 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내가 좋아하는 토마스 쿡이 인터뷰에서 한 말도 적었다. 이 말을 생각하면 우울한 새벽에도 위로가 된다고. 그리고 집에 있는 뽁뽁이로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정성스런 헌 책을 받아들고 그 사람이 아주 많이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다. 내 마음도 하루에도 수십번 오락가락한다. 요즘은 뉴스를 열심히 본다. PD수첩, 100분 토론도 열심히 본다.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중에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도 확실하지 않지만 언젠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따뜻하고 당당하고 확신있고 또렷하고 깊고 넓은 사람. 좀 더 많은 책을 내 놓아볼려고 한다. 책장 속에 썩어 머물고 있는 책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줘야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생각들을 만나보라고. 이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그 예치금을 모아 내 책장에 잠시 고이 모시고 싶은 것이 생겼다. 조금만 기다려. 우리 곧 보자. 거품이 자글자글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일이 점점 즐거워진다. 오늘도 롯데리아에 들러 동생이랑 한 잔을 시켜 리필해서 마셨다. 그 거품을 크레마라고 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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