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여행'에 해당되는 글 31건

  1. 비에르네스 2 2017.07.01
  2. 후에베스 6 2017.06.30
  3. 미에르꼴레스 2017.06.29
  4. 마르떼스 6 2017.06.29
  5. 루네스 2017.06.29
  6. 도밍고 2017.06.28
  7. 싸바도 2 2017.06.27
  8. 비에르네스 4 2017.06.26
  9. 부에노스 디아스, 비에르네스 3 2017.06.25
  10. 올라, 후에베스 2 2017.06.23

비에르네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7. 1. 07:22


   그런 순간이 있었더랬다. 포르투갈에 혼자 가게 되었을 때, 같이 가지고 하기로 한 동생이 출발을 몇일 앞두고 다리뼈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을 때, 누군가 말했다. 금령씨, 이건 운명같아요. 응, 정말 운명 같았다. 포르투갈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 혼자 와보라고. 그러면 내가 보여줄 것들이 있다고. 지금도 그 포르투갈의 말들을 믿고 있다. 오늘 아침의 바르셀로나도 그랬다. 어제는 너무 외로워서 힘들었는데, 그래서 다운받아와서 여기서 본 영화 <바르셀로나 썸머 나잇>을 보고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렸더랬다. 비가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친구가 준 초에 불을 붙이고 하루종일 숙소에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 일기예보에는 매일 비 그림이 있었는데 (심지어 번개 그림도) 비가 오지 않거나, 와도 조금 오다 말았다. 어제는 일찍 잠이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새벽에 몇번을 깼다. 잤다 깼다 잤다 깼다 하다 새벽 6시 즈음에 눈을 떴는데, 커튼 밖이 깜깜했다. 이상해서 테라스에 나가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번개도 쳤다. 아.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지금 바르셀로나가 내게 말을 걸고 있구나 생각을 했다. 힘 내라고, 나는 니 편이라고. 말도 안되게 그런 상상을 했다. 그러다 또 잤다 깼다 잤다 깼다를 반복했다. 비는 어느새 그쳤다. 매일매일 나가서 걷고 있으니, 힘든 건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도 그러지 않는데. 오늘은 늦게까지 침대에서 뒹굴다가 오후 늦게 준비를 하고 왕의 광장에 가거나 봐두었던 재즈 바에 가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오늘은 타월 안 갈아줘도 된다는 메모를 문 밖에 붙여두고 조식을 가져와 먹었다. 원래 해변에서 깔 일이 있을까 해서 가져온 마후라인데, 조식 먹는데 사용을 해봤다. 아, 편한데 진작 이렇게 먹을 걸.

    오늘은 크로와상은 남겼다. 아무래도 아침 빵 2개는 무리다. 어제는 정말 맛있게 다 먹었지만.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면서 생각했다. 이런 시간들을 위해 값이 나가는 숙소를 예약했던 거야. 그러니 하루쯤 나가지 않고 뒹굴어도 괜찮아. 보경이와 메시지를 주고 받게 됐는데, 보경이가 이런 말을 해줬다. 난 언니 여행 방식이 좋아. 언니가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곳 가줘. 짧고 굵은 대화들을 나누고 나니 씻고 싶어졌다. 씻고 나가서 다시 걷고 싶어졌다. 어딜 갈까 뒤적거려보다 그래, 카탈루냐 미술관을 못 갔어, 생각했다. 여행 오기 전 책을 읽다가 무척 감동을 했더랬다. 이 미술관의 이야기들에. 그래서 해가 질 적에 계단에 앉아 해지는 풍경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했더랬는데. 그래 가보자.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55번 버스를 타면 한번만에 갈 수 있다. 씻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챙겨 입었다. 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꽉 채우고 방을 나섰다. 붙여 놓았던 쪽지는 없어졌고, 복도에 사용 중인 청소 도구들이 있었다. 아, 내 방은 청소 안하고 정리만 해주고 나가는 거 같은데, 바닥 청소 같은 걸 한 거 였을까 이딴 생각들을 하며 길을 나섰다. 55번 버스는 늦게 왔지만, 나는 시간이 많으니 괜찮았다. T-10 티켓은 미술관 가는 게 마지막 사용이었다. 아, 정말 알뜰하게 잘 썼구나. 대부분 걸어다녀서 티켓 사용할 일이 별로 없었다.

   55번 버스는 개선문도 지나고, 카탈구냐 광장도 지나서 간다. 가면서 내가 갔던 곳들을 버스 안의 시선으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엠피쓰리 플레이어도 재생시켜 음악도 듣고,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버스가 신호로 잠시 정차했는데,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커피잔을 비워져 있었고, 막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 끄고 계셨다. 그리고 남은 맥주를 원샷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충만한 순간. 여행을 혼자서 하다보니 외로운 순간도 있지만, 그만큼 충만한 순간들도 있다. 버스 안에서 그랬다. 내려서 미술관까지 걸어가는데 말도 안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 너무나 화창하고, 너무나 밝고, 너무나 선명한 순간.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뭐라 말할 수 없이 속이 확 뚫리는 것 같았다. 좋구나. 일반 티켓을 구입을 하고 미술관 구경을 했다. 후기에 건물 자체도 아름답고, 전시되고 있는 것들이 풍성하고 꽉 차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너무 배가 고파서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고 구경을 시작했는데, 안 그랬음 큰일 날 뻔 했다. 볼 게 정말 많았다.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오디오 가이드는 안 들었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일일이 다 들으면 미술관에서 거의 하루종일 보내도 될 것 같았다. 현대미술관을 보기 전에 잠시 소파에 앉아 쉬었는데, 소파가 정말 편안했다. 나한테 같이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고 앉은 할머니는 앉자마자 너무나 편안해서 깜짝 놀라며 그렇지 않냐며 표정으로 내게 동의를 구했다. 계속 앉아 있으니 잠이 쏟아져서 빨리 보고 돌아가자 생각하고 현대미술관에 들어갔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리얼리즘 코너. '코리안'이라는 이름의 조각상이 있어서 빤히 들여다봤다. 현대미술관 앞에 들어갔던 중세 종교 미술을 전시한 관에서는 책의 내용들이 생각이 났다. 중세시대 산 중턱 즈음 있었던 묵직한 돌들로 간결하게 이루어졌던 성당 건축물들. 그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면 보이던 환한 그림들. 집에 가면 다시 읽어봐야겠다.

   지붕까지 올라갔다가 55번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4시에 가까워졌다. 오늘의 점심은 한식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에, 다시 숙소 근처로 가야 했다. 어제 시집을 읽다 여행지에서 먹는 김치찌개라는 시구가 나왔는데, 그걸 못 이후로 김치찌개를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인식당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오가면서 보았더랬다. 구글 지도 후기를 챙겨보니 조선족 부부가 하는 가게인 거 같은데, 이모님이 무척 친절하다고 했다. 진짜 그렇더라. 친절하시더라. 밥때가 지나 손님은 없었다. 식당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아, 한국말로 인사도 하고, 주문도 했다. 일단 맥주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보니 신기한 중국어 캔이 있어서 저것도 맥주냐고 물어봤는데 음료라고 한다. 김치찌개에 공기밥을 달라고 했는데, 찌개에는 공기밥이 포함이라고 했다. 주인 아저씨가 테라스에 있다 들어가시더니 얼마 안 있어 뚝배기에 김치찌개가 나왔다. 고봉밥이랑. 아, 맛있겠다. 처음엔 이 많은 밥을 어떻게 다 먹지 했는데, 다 먹었다. 찌개도, 밥도. 이모님이 치우시면서 이렇게 먹어야 설거지도 편한지,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내가 말을 먹는 사이 서양인 셋이 와서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갔다.

   너무나 배가 불러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기분으로 숙소까지 걸어왔다. 오는 길에 어제 들렀다 신세계를 발견한 마트에 다시 들렀는데, 어제 검색하다 알게된 초코우유도 사고, 염소우유로 만든 것 같은 요거트도 사고, 돼지고기의 어떤 부위를 말린 것 같은 맥주안주도 샀다. 돼지고기 맥주안주도 먹어보고 맛나면 맥주 좋아하는 친구들 선물로 사가려고 맛보려고 샀다. 그리고 풀을 사러 문방구에 들어갔는데, 들어가보니 풀이라는 단어를 영어로도, 스페인어도 모르는 거다. 주인 아저씨와 왠지 주인 아저씨의 손녀일 것 같은 알바생은 나를 계속 쳐다보며 뭘 찾냐고 스페인어로 물어보고. 파파고로 스페인어 '풀'을 검색해봤다. (이번에 메뉴판 검색에 자주 사용한 파파고는 흠, 별로인 걸로 결론 내림) 당연히 그 풀이 검색이 안되었겠지만, 일단 보여줘봤다.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해서 엽서를 꺼냈다. 사실 엽서의 주소를 잘못 썼는데, 엽서도, 이미 붙여버린 우표도 아까워서 주소를 종이를 덧붙여 쓰려도 했던 것. 덧붙이려고 한 종이를 꺼내 막 풀칠을 하는 시늉을 했더니, 친절한 손녀 아이는 엽서나 우표를 찾는 거냐고 물어봤다. 아니 아니고. 흠. 잇츠 롱 어드레스, 쏘- 그러니 아, 하며 뒤쪽에 있는 화이트를 꺼내려고 한다. 노노우. 하면서 풀칠을 또 막 하는 시늉을 했더니, 아아아. 하더니 풀을 꺼냈다. 나도, 소녀도 함께 웃었다. 라잇! 풀이 꽤 크길래 제일 작은 걸로 달라고 했다. 소녀는 종이에 0.90유로라고 적어줬다. 엽서를 가만히 보더니 한국? 이런다. 씨! 아무래도 아이돌에 대해 알 것 같은 소녀에게 그라시아스! 라고 말하고 나왔다.

    숙소에 들어와서 일단 침대에 누웠는데, 아 정말 아무 것도 못할 지경의 피곤함이 온몸에 몰려왔다. 티비를 틀었는데, 어쩌지 오늘 그날이다. FC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레전드의 자선경기가 있는 날. 거리에서 포스터를 보고 이날 갈 축구펍을 알아뒀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열광적으로 응원하는지 정말이지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싶었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나 일어날 수가 없다. 결국 전반전은 침대에서 시체처럼 누워 보는둥 마는둥 했다. 그러다 이제 이틀밤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근처 바르에 가서 맥주를 마시면서 보고 들어오자 생각했다. 쪼리를 챙겨 신고 천근만근 몸으로 숙소를 나섰는데, 마땅한 바르가 보이지 않았다. 이 곳은 티비가 아예 없고, 이 곳은 너무 흥분해 있는 남자들이 많고. 지나가니 이상한 소리를 내보인다. 결국 아저씨들이 몇 있는 바르에 들어갔는데, 아저씨들은 나를 힐끔거리며 보았지만 신경쓰지 않았고, 주인아저씨도 친절했다. 일단 맥주를 시키고 앉았는데 티비에서 하는 축구경기가 낯설다. 다른 유럽팀 경기였다. 아저씨들 왜 FC바르셀로나 경기 보지 않나요?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다 바르셀로나 축구에 열광하는 거 아니였나요? 나는 이 바르에서 세 병의 맥주와 하나의 안주를 시키고, 내가 할 줄 아는 모든 스페인어를 사용했다. 안녕하세요. 맥주 주세요. 맥주와 소브라사다(처음 시켜봄) 주세요. 화장실 어딘가요? 얼마인가요? 감사합니다. 잘 있어요. 책에서만 보면 바르 문화를 제대로 경험했는데, 여기서 한잔씩들 하고 본격적인 저녁을 먹으러 다같이 가는 듯 했다. 이를테면 이곳이 집합소인 듯. 주인 부부랑도 다 친하고, 누가 새로 들어오면 다들 인사를 하더라. 다 아는 사이인듯. 저녁 먹으러 가지 않는 사람들은 여기서 몇가지 코스로 저녁을 먹더라. 처음엔 스파게티가 나오고, 나중엔 갑오징어 인 것 같은 요리가 마요네즈와 함께 나왔다. 아, 침 나오더라. 맥주 세병에 안주까지 하나 시켰는데 9유로가 나왔다. 와우. 진작 많이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횡단보도를 건너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은 엽서를 한 장 썼고,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시집 한 권을 끝냈다.

  

바르셀로나, 열번째 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금요일 깊디 깊은 밤 테라스 밖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이제 놀랍지 않고 정겹게 된 것. (아, 숙소 앞에 타파스 가게가 있는데, 지난 금요일 12시가 넘는 시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지어 왁자지껄하게 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했더랬다. 너무나 궁금해서 후기를 검색해보니, 일반 음식의 맛은 그냥 그렇거나 별로인데, 단체 손님에게 무척 인기가 좋았다. 여러가지를 시켜 다양하게 맛보기 좋은 듯. 지금도 그러하다. 즐거워하는 소리부터 길가에 고스란히 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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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베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30. 07:45


   밀린 일기는 꼭 쓸 것이다. 메모하지 않고, 사진으로만 남겨두고 있어 세세한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기록해야 한다. 이미 쓴 일기의 오타도 수정할 것이다. 오늘은 친구와 동생에게 외롭다고 징징댔는데, 친구는 이곳에서 보면 좋을 것 같은 영화를 다운받아 보내준다고 했고, 동생은 이런 글귀를 보내줬다. 혼자 살기 : 약간의 외로움을 지불하고 완전한 자유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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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르꼴레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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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떼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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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네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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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밍고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8. 06:42


 
   오늘도 새벽 일찍 일어나버렸다. 비가 내리길래 친구가 여행에 가지고 가라고 챙겨준 캔들을 켰다. 나무심이라 켜자마자 타닥타닥 소리가 났다. 비가 오니 왠지 라면이 땡겨, 가지고 온 컵라면 5개 중에 하나를 끓여 먹었다. 아침부터. 오늘도 그 느끼한 빵을 먹을 생각을 하자 라면 생각이 절로 났다. 사실 전날 방에 가져와놓고 너무나 피곤해서 못마신 맥주가 아쉬워 새벽에 한 캔 땄다. 비도 오고 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온라인으로 예매해뒀다. 금요일에 가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 오전 9시 45분 입장으로 예약해뒀다. 일찍 가서 맞은편 공원에서 성당을 가만히 올려다 보고 싶어 조식을 건너뛰고 걸어갔는데, 잠시 그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공원 벤치에 앉진 못하겠고, 어딜 들어갈까 계속 고민하다 츄러스를 파는 작은 가게 옆에 있는 또 다른 작은 가게 테라스에 앉았다. 주인 아저씨가 계란으로 만든 전과 비슷한 음식을 손님에게 내어 놓았는데, 너무 맛나 보여 뭐냐고 물어봤다. 뭐라고 말해줬지만, 알아들을 리가 없지. 아저씨는 너무나 바쁘시고. 그냥 전에 앉은 사람과 옆 테이블 사람이 모두 시킨 것 같은 커피를 시켰다. 유리잔이 마음에 드는 것. 파는 음식들이 맛나 보여 시키고 싶었는데, 입장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중국이나 대만 쪽인 것 같은 알바생이 있었다.

   드디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입성. 비는 그쳤지만 날이 흐려 좋아하는 스테인글라스로 들어보는 빛의 향연은 즐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흐린대로 운치가 있었다. 덕분에 너무 붐비지도 않고. 성당의 내부에서는 뭘 들으면서 구경하고 싶어 이비에스 가우디 다큐 영상을 들었는데, 흠. 별 감흥이 없었다. 성당 밖에 나와서 가우디의 탄생의 파사드와 수비라치의 수난의 파사드를 순서대로 둘러보았다. 가우디의 파사드는 훌륭해보였지만, 이상하게 나는 수비라치의 파사드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명성이 자자한 가우디의 뒤를 이어 파사드를 만들게 되었을 때, 수비라치는 영광스러웠겠지만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가우디와 수비라치의 파사드는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되어 오늘날에도 논란이 있단다. 수비라치의 피사드는 가우디에 비해 선이 단순해보이지만 거기에 느껴지는 울림이 있었다. 특히 베르도. 성당 바깥에 나와서 수비라치의 파사드를 둘러보다 갑자기 이소라 음악이 생각났다. '아멘'을 틀고 파사드를 둘러봤다. 베드로의 파사드를 올려다 봤다. 그 표정이며, 뒷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울뻔 했다. <침묵>의 기치지로 생각이 났다.

   그리고 숙소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납작복숭아도 사고, 체리도 사고, 올리브도 샀다. 길 가다가 너무 배고파 요기를 잠시 채우고자 바르의 테라스에 앉았는데, 중국인이 운영하는 바르였다. 불친절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지만, 오징어 튀김과 맥주로 배를 채웠다.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고 카딸루냐 음악당의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 길을 나섰다. 친구가 선물해준 어깨가 파인 블라우스를 꺼내 입었다. 음악당 근처에 야경투어 가이드가 추천해준 타파스 맛집이 있어 걸어갔는데, 이미 만석에다 대기까지 있었다. 지나가며 보니 창가 자리에 어려보이는 한국인 여자 둘과 남자 하나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민박집에서 만났을까, 인터넷 카페 벙개일까. 참으로 젊어 보이네, 맛있니? 속으로 물으면서 지나갔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근처에 한번 찾아보았던 집이 있어 들어갔다. 자그마한 가게였는데, 사람들의 후기대로 무척 분위기가 있었다. 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역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추천을 받았다. 어떻게 먹는 거냐고 물어보니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다. 빵이나 과자 위에 얹어 와사비 소스를 얹어 먹거나, 그냥 먹거나. 말해준 대로 작은 빵에 훈제된 생선을 잘라 얹히고 와사비 소스를 조금 발라 먹는데, 와! 맛있다. 그야말로 맥주 안주구만. 뒤따라 들어온 예쁜 서양 언니와 오빠도 내가 먹는 걸 보더니 하나 시켰다. 그 언니는 어떤 샐러드도 먹었는데, 정말 맛있는지 최고의 수식어들을 다 붙여 칭찬을 하더라. 서양언니는 웨이터 언니의 신상까지 털었다. 웨이터 언니는 영국에서 왔고, 매일매일 일한다고 했다. 디저트 체리까지 다 챙겨 먹고 일어났다.

   음식이 맛있긴 했는데, 혼자 먹기엔 좀 느끼했다. 처음엔 원더풀한 맛이었지만. 돈이 아까우니 다 먹기 위해, 그리고 진짜 맛있어서 두번째 맥주까지 시켜 마셨는데, 이게 문제였다. 방금 밥을 먹어 배는 터지겠고, 맥주는 두 잔이나 마신거지. 저렴하지만 나름 좋은 좌석이라고 생각했던 음악당 좌석은 무대와 꽤 멀고, 앞 사람의 앉은 키가 참으로 중요했던 것이다. 아,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볼려면 좋은 좌석에서 보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보지 마라, 라는 나의 신념이 있는데. 그걸 바르셀로나에서 무시해버렸네. 기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분들은 아주 잘 보였는데, 정작 플라멩고를 추는 무용수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의 음악당에서 맥주 두 잔과 배가 터질 것 같은 저녁을 방금 막 먹고 온 나는, 졸고 졸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포기하고 졸아 버려서 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래도 앵콜 무대는 옆에 자리가 비어서 제대로 봤다. 잠이 달아나니 너무나 멋지더라. 티켓값 생각이 절로 났다. (다른 곳에서 다시 봐야 할 듯;;) 음악당은 내부가 무척 아름다워 가이드 투어 말고 돈을 좀더 주고 공연을 보라고 했던 가이드의 추천에 따라 보았는데, (공연은 못봤지만) 건물이 정말 아름답더라. 1층으로 내려와 마치 졸지 않은 사람처럼 천장과 벽면을 열심히 구경하고 나왔다.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은 공연비만큼 아쉽고 우울했지만, 어쩌겠어. 깨끗하게 씻은 뒤 빠빳한 이불 덮고 잤다.


바르셀로나, 다섯째 날. 오늘의 행복했던 일 : 성당에서 이소라를 들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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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도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7. 15:41


   토요일. 가우디 건물 까사밀라 썸머나잇을 온라인으로 예매해뒀다. 조식을 먹고, 어제 야경투어를 했던 고딕지구를 낮의 시선으로 되돌아보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까사밀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어제와 변함없는 조식. 오늘의 빵은 첫날과 같은 크로와상. 같은 메뉴이지만 좀 다르게 먹어보고 싶어 바게뜨의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치즈와 하몽을 넣어 샌드위치로 만들었다. 크로와상까지 다 먹으니 또 배가 엄청 불러오고. 오늘은 모자를 챙겼다. 출발해봅니다. 야경투어의 가이드님이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보는 플라멩고 공연을 추천해서 온라인 예매를 하러 들어갔더니 직접 가서 표를 사는 게 조금 싸더라. 그래서 극장에 가서 중간정도의 가격으로 티켓을 구입했다. 여기 음악당 기둥 부근에서 푸른바다의 전설이 촬영되었단다. 기둥 앞에서 셀카를 찍었는데, 셀카는 어떻게 찍든지 좀 애처로워 보인다. 인스타그램에 셀카와 함께 "나는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다들 짝이 있지만, 나는 외롭지 않다. 주문을 외운다."라는 문구를 올렸다. 현재 이 셀카문구는 시리즈가 되어 올라가고 있다. 읔- 최대한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올리는 것이 포인트!

   메모해두지도 않고, 지도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어제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어제는 리세우 극장에서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시작했다. 고딕지구는 정말 낮과 밤이 다르더라. 어둡고 혼자 걷기에 무서웠던 거리가 밝고 혼자 걷기에 더 괜찮은 거리로 변모해 있더라. 오래된 건물들, 오래된 골목들. 좋았다. 츄러스 맛집과 따로 구입하길 권장했던 초콜릿 맛집도 보였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사먹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 츄러스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다음번에 기회되면 먹어보자고 위안했다. 가이드가 왕의 광장 부근의 기념품 가게가 비교적 저렴하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상점직원이 있었다. 나를 보더이 단번에 꼬리아? 한국에서 '7살' 동안 살았다고 했는데, 돈을 많이 벌어서 좋았단다. 그러면서 티셔츠를 싸게 주겠다고 계속 말을 걸었다. 나는 지도가 그려진 상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귀여운 바르셀로나 상징물들이 그려진 티셔츠에 관심을 보이니 벽에 걸려있던 걸 푹 찢어서 보여준다. 아, 나는 이걸 살 수 밖에 없겠구나. 결국 티 하나랑 친구가 선물해준 캔들에 쓰려고 라이터 하나를 샀는데, 라이터는 망설이다 안 산다고 하니 깍아준다 하더니 계산할 때 그대로 받겠다고 하더라. 그냥 제값을 줬다.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티 더 사라할까봐 사실대로 없다고 말했는데, 전화번호를 물어봤다는. (그래도 고마웠다;;) 

    아까 미사 중이라 입장하지 못했던 대성당에 다시 갔다. 나는 스테인드글라스만 보면 편안해진다.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사진을 찍으면 절대 내가 보고 있는 그대로 찍히지 않는다. 훨씬 아름답다. 그냥 가만히 올려다 보는 수밖에 없다. 대성당을 나오니 광장 한 켠에서 클래식 악기들의 연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옆으로 까딸루냐 전통 춤인 사르다나를 추고 있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일요일에 엄청 큰 대열로 사르다나를 추는 광경을 이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작은 동그라미였다. 쉽고 단단한 춤. 책에서 읽은 사르다나 춤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음악이 끝나니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도, 사르다나를 추던 어르신들도 모두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음악이 또 시작되니 다른 동그라미가 금새 만들어졌는데, 한 할아버지가 한창 진행되는 춤에 슬그머니 다가가 살며시 두손을 내밀어 합류하셨다. 귀여우셨다. 

    배가 고파 타파스 맛집을 검색해봤는데, 근처에 저렴하고 친철하다는 후기의 가게가 있었다. 지도에 의하면 바로 근처인데, 도저히 보이지가 않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검색한 맛집보다 가격이 더 비싸고 그리 친절하지 않았지만, 들어왔으니 시켰다. 일단 물과 맥주. 타파스는 4개 세트를 주문했는데, 추천 받아서 그대로 주문했다. 맥주가 들어가고, 타파스를 하나하나 먹어보는데 나쁘지 않았다. 아, 괜찮네. 생각이 들 즈음 맞은편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내가 찾던 바로 그 가게였다. 아아아. 그렇지, 뭐. 내가 그렇지. 흠. 그래, 그냥 맥주나 하나 더 시키자. 세르베사 뽀르 빠뽀르. 든든해진 배로 화장실까지 다녀오고 가게를 나섰다. 고민하다가 그냥 숙소로 들어가기는 너무 배가 불러 구엘저택에 갔다. 어제 가이드가 들어가보면 참 좋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큰 감흥은 없었다. 구엘은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가우디와 동시대에 살았던 조지 오웰과 피카소가 모두 가우디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어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조지 오웰은 가우디가 부자들의 건물만 지어댄다고 싫어했다고 한다. 옥상에 오르니 바르셀로나의 강한 햇볕이 그대로 쏟아졌다. 가우디와 가우디의 꿈을 실현시켜준 구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저택을 나왔다. 

   그리고 숙소에서 까사밀라 입장 시간까지 쉬었다. 아, 정말이지 저질 체력이구나. 중간에 크게 쉬어주지 않으면 돌아다니질 못하겠어. 샤워를 하고,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는 원피스로 갈아 입고 까사밀라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안테나 뮤직의 워리어스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아, 신난다. 나는 지금 바다 건너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고 있다. 바람 결에 실려 내려오던 무심히 중얼대던 너의 음성. 지구는 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 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봐. 신재평이 콧소리를 콩콩 내며 여름날을 노래한다. 까사밀라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관람은 옥상에서부터 시작해서 두 층까지 내려온다. 그 밑에는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가우디의 전반적인 건축 세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둘러보는 동안 자리는 아팠지만 좋았다. 아, 구엘저택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서 내게 지루했던 걸까. 다 둘러보고 나와서 저녁을 먹을 만한 데를 찾다가 그냥 까사밀라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만석이라고 해서 테라스에 앉았다. 피곤하지만, 일단 맥주. 대구 요리를 시켰는데, 색깔이 무척 예뻤다. 맛도 근사했다. 중간에 바뀐 웨이터가 내가 읽고 있는 가우디 책을 보더니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캄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서울에서 왔냐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하니 좋아하는 뮤지션이 서울에 있다고 했다. 누구냐고 물으니, 이루마라고. 내 왼쪽 테이블에는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내 오른쪽 테이블에는 왠지 대만 사람인 것만 같은 귀여운 청년이 혼자 와서 맥주와 음식을 시켰다. 썸머 나잇 입장 시간이 되어 이루마를 좋아하는 친절한 웨이터에게 팁을 남기고 테라스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올라간 까사밀라 옥상. "특히 옥상은 카사 밀라 감상의 하이라이트로 옥상에 오르는 순간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는 사라지고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우주가 펼쳐진다. 한여름 밤에는 음악 연주회를 열어 아주 특별한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의자는 따로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앉으면 된다. (7박 8일 바르셀로나, p.142)"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잔잔한 물결을 닮은 건물과 정말 다른 세상에 온듯한 굴뚝과 구조물들이 즐비한 옥상에 앉아 밴드의 재즈 연주를 들었다. 음악이 딱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 여름밤 바르셀로나 도심 한가운데서 몇몇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이 마법같은 분위기가 무척 설레였다. 비록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밴드가 보이는 좋은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이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외롭긴 했지만, 좋았더랬다. 옆 사람이 말을 걸어주는 마법같은 순간을 꿈꿨지만, 그런 순간은 절대 오지 않았고, 모두들 삼삼오오 행복해 보였더랬다. 도시는 어두워졌고,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이 적당히 쓸쓸한 것이 괜찮았다.


바르셀로나, 넷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M사이즈를 입어야 하는 내게 S사이즈를 추천해준 고딕지구 기념품 가게 직원. 살 빼서 입어야지 했는데, 왠걸 숙소에 와서 입어보니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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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르네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6. 00:52


   슬슬 조식 걱정이 되었다. 이 조식이 12일동안 나올 것이다. 빵을 두 개 주는데 하나는 바게트, 하나는 매일 바뀌는 듯 했다. 금요일은 달달한 도넛을 주었는데, 첫날 빵 두개를 다 먹어 너무나 배가 불렀던 게 생각나 가지고 온 지퍼팩에 싸두었다. (결국 먹지 못하고 버렸다는) 너무 물리면 커피만 마셔야 겠다.

   구체적으로 하루하루의 일정을 짜두지 않아서 일단 걸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숙소에서 걸어서 19분 거리이다. 걷다 보니 시장이 나와서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수박도 사 먹었다. 무척 더웠다. 도착해보니 성당 근처의 공원에도, 성당에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역시 아침 일찍 오는 것이 좋겠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 책을 읽다 궁금했던 근처의 산트 파우 병원으로 가기로 하고, 걷는 시간이랑 똑같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 내려서 병원까지 걷는데 나즈막한 언덕 같은 곳이 있었다. 올라가면 시내가 조금이나마 내려다보일 것 같더라. 그렇지만 화장실이 급해 그냥 내려왔다. 산트 파우 병원은 건축가 몬타네르가 지은 것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책에서 읽고 가고 싶어서 검색을 해봤었는데, 가우디가 환자들이 병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볼 수 있도록 각도를 조금 틀어서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입장권을 사는데, 오늘은 어떤 행사 때문에 이 건물들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지도에 표시해줬다. 그래도 괜찮냐고. 둘러보다 보니 준비하는 것이 공연 같았다. 밤에 야간투어 때에 들었는데 아마도 산트 호안 축일 관련 행사였던 것 같다. 

    사실 이곳에서의 로망이 있었더랬다. 정원의 벤치에 오랜시간 앉아 병원을 보며 사색을 하는 것.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더운 것.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있어보았는데, 시원하긴 했지만 사색을 하기엔 너무나 더웠다. 얼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건물들과 공원이 참 아름다웠는데, 이런 곳에서라면 저절로 병이 치유되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광객들은 모두 다 사그라다로 간 것인지 산트 파우 병원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그래서 좋았다. 마지막 건물의 2층에 오르니 사그라다 성당이 멀리 보였다. 몬타네르 건축가에 대한 흥미가 생겨 검색해보았는데, 정보가 그다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성희가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엘 나시오날에 갔다. 해산물, 스테이크, 타파스 등 4개의 푸드 코트가 있는 곳인데, 무척 핫한 곳이라고.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다고 꼭 먹어보라고 했다. 일단 맥주를 시키고. 메뉴판을 봐도 잘 모르겠어서, 물어봤다. 친구가 지난 여행 때 여기 왔었어요. (사진을 보이며) 그 친구가 이걸 먹었어요. 그러자 잘 생긴 웨이터가 20유로가 조금 넘는 메뉴를 가르켰다. 이걸로 주문할게요. 이 분이 신입인지, 이 분 옆에 계속 매니저인 듯한 여자분이 따라 붙었다. 그는 잘 생겼으나 나의 정직한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웨이터가 가우뚱하면 매니저언니가 오더니 발음이 구리지만 나는 알아 들었다 하는 표정으로 요청들을 처리해줬다. 맥주를 작은 걸로 시켜 금새 마셔버렸는데, 왠지 스페인에 와서 와인 한 잔 안 마셔보면 안 될 것 같아 레드 와인을 시켰다. (잘생긴 웨이터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알아 듣는 척 하더니 주문을 넣지 않았다!) 매니저 언니가 한 잔만 시키는 거냐고, 강한 걸 원하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양도 많이 줘서 마시면서 머리와 속이 핑핑 도는 줄 알았다. 그래도 시킨 거는 다 마시자며 물과 함께 잘 마셨다. 스테이크도 맛있었다. 내가 미듐 웰던으로 시켜서 주인여자가 정말로?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웨이터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잘생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챙겨주었으므로 팁을 남겼다. 구린 발음 때문에 영어 울렁증에 빠져 잠시 우울했지만, 푸드 코트를 나오자 알딸딸 한 것이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저녁에 2시간 짜리 고딕뮤지컬야경워킹투어를 신청해놓아서 그때까지 숙소로 들어가서 쉬다 나왔다. 땀을 많이 흘려 씻고 누웠다. 다음에는 어떤 맛집을 갈까 검색해보고 (책을 좀 읽어라. 이 먼 곳까지 몇 권을 가지고 왔느냐.) 약속장소는 가본 곳이나 나는 충분히 헤맬 수 있는 아이이므로 좀 일찍 숙소를 나섰다. 람블라스 거리의 리세우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20분 정도 걸려 걸어갔다. 헤매지 않고 도착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어디 들어가서 뭘 마실까 했는데 번화가라 마음에 드는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는 아팠지만, 그리고 앞으로 2시간동안이나 더 걸어야 하지만, 별 수 없이 람블라스 거리를 좀 걸었다. 람블라스 거리는 어제와 느낌이 달랐다. 어제는 첫날이라 긴장해서 그런건지 실망스러웠는데, 오늘은 활기가 넘치고 괜찮더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문제였나. 구경을 하다 2분 정도의 시간동안 가위로 종이를 오려 옆모습을 만들어주는 예술가를 발견했다. 굉장히 신기해서 갈 때 보고 올 때도 또 봤는데, 갈 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올 때는 한 명도 없어서 비싸지만 돈을 내고 해봤다. 친구가 잘 돌아다니고 있냐고 물어봐서 사진을 보냈는데, 어, 이 사람 너랑 진짜 닮았다, 라고 했다.

   고딕지구는 밤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 힘들다고 해서, 그리고 낮과 밤이 무척 다르다고 해서 2시간짜리 워킹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이름에 뮤지컬이 들어가는데, 이동하면서 가이드님이 선정한 음악을 들려준다. 그게 독특하고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 여러 야경투어 중에 요걸로 신청했다. 이벤트를 해서 반값이기도 했다. 대부분 낮에 가우디 투어를 한 사람들이 참여한 거더라. 삼삼오오. 나랑 어떤 아저씨 한 분만 혼자서 온 듯 했다. 나름 친해지고 싶었는데, 열심히 걸어다닌다고 기회가 없었다. 리세우 오페라 극장에서 시작해 구엘 궁전 앞에서 설명을 듣고, 레이알 광장에서 가우디의 가로등이 켜지길 기다렸다가, 조지 오웰 광장과 피카소의 아비뇽 골목을 거쳐 산펠립 네리 광장으로 이동을 했다. 중간 중간 맛집과 쇼핑 스팟, 현지인처럼 보이려면 이곳에서 성호를 그어야 한다는 등의 정보 등을 알려주셨다. 왕의 광장에서는 금요일마다 사람들이 연주하고 춤을 추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날도 공연이 있었다.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걸 계단에 앉아 잠시 지켜봤다. 라몽 베겡게르 광장과 대성당을 거쳐 까딸루냐 오페라 극장 앞에서 투어를 마쳤다. 가이드님은 이 코스를 다음날 똑같이 낮에 와서 걸어보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을 하다 우연히 오늘 들은 음악들을 다시 듣게 된다면 오늘 이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걸었던 밤을 기억해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말도 했다. 가우디 투어는 하루종일이고, 책도 읽은 터라 조용히 다녀보고 싶어서 하지 않았는데, 했으면 어땠을까 야경투어를 하면서 생각을 했더랬다. 뭐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다. 아무튼 야경투어는 잘 한 것 같다.

   이날 가이드님이 말해준 것 중에 오늘밤부터 내일 새벽까지 여기 사람들은 밤을 새워 놀 거란다. 산트 호안 축일이기 때문에. 성 호안은 성 요한. 어쩐지 바르셀로나에 온 첫날에도 총소리인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폭죽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찾아보니 성 호한 축일 2주 전부터 폭죽을 터뜨리면서 축일을 기념한단다. 이 날이 우리의 하지처럼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고. (응? ;;;) 가이드님은 지금 바다로 가면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볼 수 있어요, 라고 했는데 시간은 이미 11시.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거리 곳곳에서 폭죽은 계속해서 터지고 있었다. 물을 사러 슈퍼에 들어갔는데, 귀여운 라벨의 바르셀로나 크래프트 맥주가 있어서 샀다. 계산을 하려는데, (아마도 인도쪽) 11시가 되었는데도 잠을 자기는 커녕 똘망똘망한 눈빛을 빛내며 동생이랑 놀고 있던 주인집 아들은 고 귀여운 얼굴로 밤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올라! 올라. 께딸? 께딸. (아 귀여워-) 비엔? 씨, 비엔. 동생이 뭐라고 하자 단번에 달려가서 안아준다. 너무나 귀여운 것.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했다. 아디우스. 아디우스! 피곤했지만, 꽉 채운 하루를 보내 뿌듯했다. 까사밀라 썸머나잇 예약을 하고 너무나 피곤해 맥주는 한 병만 마시고 잠들어 버렸다. 새벽에 깨서 양치를 하고, 안경을 벗고, 스탠드를 끄고 잤다. 새벽에도 폭죽은 계속 터지더라.


바르셀로나, 셋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밤의 슈퍼에서 내게 말을 걸어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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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일찍 잔 덕분에 새벽부터 잠이 깼다. 새벽에 깨면 왠지 다시 잠들기가 아깝다. 새벽이 내게 주는 온전한 시간들 때문에. 숙소 테라스에 나가 해가 뜨는 걸 지켜보다가 아침산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걸어서 17분 거리에 가우디 건물 까사 바트요가 있었다. 까사 바트요까지 걸어갔다 오는 걸로 계획하고 가디건을 걸쳐입고 숙소를 나섰다. 걷다보니 가디건 걸치지 않았어도 되었더라. 아침일을 시작하는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부에노스 디아스- 



바르셀로나, 셋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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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후에베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6. 23. 07:23


    가지고 온 책에 의하면 스페인 사람들은 총 다섯 번의 식사와 간식 타임을 가진단다. 오전 7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 끝난다. 정말 이렇게 먹으면 살이 찌지 않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오늘 넘치는 두 끼를 먹고, 너무나 피곤하고 더이상 무얼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 저녁 6시부터 누워 있었다. 가고 싶었던 라이브 바가 있었는데, 오늘 쿠바음악을 공연한다고 했는데, 결국 가질 못했다. 오늘의 키워드는 조식, 헤맴, 유심, 람블라스 거리, 크루즈, 예약하지 못했던 숙소의 레스토랑이다.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5시 즈음이었다. 바로 창문의 커튼을 걷었다. 아직 어두웠다. 잠도 오지 않고, 오늘의 일정도 정하지 못해 책과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첫 시작인데 어디가 좋을까. 이동진 라디오의 여행코너의 여행잡지 편집장은 언제나 여행을 가면 처음과 끝은 전망대를 간다고 했다. 몬주익 언덕을 가볼까. 왠지 강행군이 될 것 같아 땡기지 않았다. 일단 유심을 사고, 시인과 소설가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극찬한 람블라스 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일단 씻고 조식시간을 기다렸다. 문밖의 부엌에서 달그락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9시가 되어 나가보니 각방의 바구니에 각방의 조식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식탁에 앉아 먹었는데, 혼자 먹으니 영 어색하고 인사를 하며 나온 옆방사람이 방에서 접시를 가지고 나오길래 나도 치즈와 하몽을 챙겨 방으로 들어가 먹었다. 보온병이 두 개라 2인분인 줄 알았는데, 하나는 우유였다. 빵은 바게트와 크로와상이었는데, 맛있었는데 너무 양이 많아 결국 남겼다. 나중에 먹으려고 싸뒀는데 결국 먹질 못했네.

   간밤에 바르셀로나에서 쓸 현금들을 정리해뒀는데, 1이라고 씌여진 첫번째 봉투에서 돈을 꺼냈다. 유심을 사야해서 여권도 챙겼다. 한껏 치장했지만 곧 더위에 온몸이 눅눅해지겠지. 동생이 준 핸드폰 도난방지용 줄도 챙겼고, 소매치기 방지용으로 옷핀도 가방에 꽂았다. 막내가 말한대로 크로스백의 지퍼부분에 손을 얹고 다녔다. 어제 숙소 언니가 카탈루냐 광장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해서 걸어가보려고 했는데, 너무나 소매치기를 의식해서인지 핸드폰을 절대 꺼내보지 않아서 이 방향이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 전혀 맞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정 반대방향으로 걸어왔다. 땡볕에 한 시간 넘게 헤매다 보니 너무나 지쳤다. 물을 사려 들어가서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 친절하지 않았던 수퍼마켓 직원은 결국 거스름돈 받는 걸 잊어버린 나를 이용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은 맞게 가르쳐줘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옷핀을 빼서 지갑을 재빨리 꺼내고, T-10 티켓을 사고, 지갑을 넣고 옷핀을 꽂고, 표를 쓰고, 다시 옷핀을 빼서 가방에 티켓을 넣고, 다시 옷핀을 꽂고, 손은 가방 지퍼 위에. 지하철에서 소매치기가 많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곁으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웠다. 사실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첫날 돈을 잃어버리면 너무나 속상할 것 같아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여권도 있고 해서.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카탈루냐 광장 도착. 보다폰 매장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번호표를 뽑지 않고 중간중간 끼어드는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고 다 처리해주고 있더라. 40여 분 기다려 내 차례가 왔고, 3.5기가 유심을 샀다. 이제 바깥에서도 구글지도를 쓸 수 있게 됐다.

   람블라스 거리를 걷는데, (손을 가방지퍼 위에 얹고) 나무들이 굉장히 커다랬다. 올려다보면 나뭇잎 사이로 뜨거운 빛이 통과하고 있었는데 그게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시인과 소설가들이 극찬한 거리는 흠, 내게는 그냥 그랬다. 거리의 양옆으로 아이스크림 가게, 기념품 가게, 꽃 가게 등이 즐비해 있었다. 나무만 기억에 남는다. 보케리아 시장에도 들렀는데, 여기서도 계속 소매치기 생각을 했다. 여기도 많다고 했지, 소매치기가. 그러니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도 워낙 많고.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 책을 볼 때마다 무척 먹고 싶었던 생선튀김이 있었는데, 작은 생선을 통째로 튀긴 페스카도 프리토였다. 열빙어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생선 튀김이 얼마나 고소할까 궁금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페스카도 프리토를 팔고 있었는데, 아침을 많이 먹어 도저히 들어갈 배가 없었다. 맥주 한잔이랑 같이 먹으면 딱일 것 같은데. 작은 수박주스를 하나 사 마시고 시장을 나왔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치고, 행위예술을 하시는 두 사람에게 2유로씩 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읔, 내가 못 나왔다. 한 사람은 총을 든 카우보이였고, 한 사람은 날아다니는 공룡 비슷한 분장이었다.

   콜럼버스 기념탑을 지나 바다에 도착했다. 콜럼버스 기념판은 무척이나 높았고, 새겨져 있는 조각들이 흥미로웠다. 동그란 탑을 빙 둘러 보았다. 제일 처음 읽은 바르셀로나 관련 여행책이 <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였는데 바르셀로나의 문화재들에 대한 역사적인 세세한 설명이 있어 좋았다. 오늘은 람블란스 거리와 콜럼버스 기념탑 편을 다시 읽어보고 잠들어야 겠다.

   그리고 지중해 바다에 펼쳐진 벨 항구를 구경하다가 아침에 찾아두었던 선박회사 매표소를 찾았다. 배를 타고 40분 도는 코스와 1시간 반을 도는 코스가 있는데, 20분 후에 40분 코스가 출발을 했다. 이것으로 표를 달라고 하니 나무 보트예요, 괜찮나요? 라고 물었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하자 팜플렛의 배 사진을 찾아줬다. 아, 좋아요! 7유로를 지불했는데, 직원이 환하게 웃어줘서 좋았다. 2시부터 3번홈에서 승선이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항구를 둘러보는데, 나무 그늘에 서니 어떤 남자가 옆에 와서 철퍼덕 앉았다. 이어서 여자가 왔다. 아, 이건 소매치기가 분명해, 라고 확신하며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승선시간이 되어서 냉큼 배에 올랐다. 배는 예정시간보다 좀더 늦게 출발했는데, 배에 타서는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이번에 산 플레이어는 랜덤으로 노래가 나오는데, 김윤아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배는 물결에 조금씩 출렁거리고, 그늘에 앉아본 햇볕은 어여쁘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너무나 좋고. 좋고, 좋고, 좋다, 라고 생각했다. 2층에 승객이 1/3쯤 차자 배가 출발했다. 배 안에서 사진을 찍고 노래를 내내 들었는데, 배가 그늘에 있을 때는 바람이 서늘했고, 뱃머리를 돌려 돌아오는 방향에서는 배가 햇볕에 있어 바람이 따스했다. 그러니 두 방향 모두 좋았다. 이어폰을 들으면서 모두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보였고.

   배 안에서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벨 항구 근처에 페스카도 프리토 맛집이 있었다. 여긴 메뉴가 단 네 종류 뿐이고 현지인이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게 여길 가서 생선 튀김에 맥주를 마시자. 배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했는데, 두 사람의 어여쁜 세뇨리따가 인사를 하며 떠나가고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흥이 잔뜩 오른 세뇨르 무리들이 차우! 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걱정하면 들어갔는데, 직원이 영업이 끝났다는 손짓을 했다. 나와서 구글지도 정보를 검색해보니 브레이크 타임이 3시 15분부터였다. 그때가 딱 3시 15분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다시 오리라. 배가 고파져서 어딜 갈지 궁리하다, 원래 예약하려 했는데 하지 못한 호텔의 1층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니 조금 걸어가 H14번 버스를 타면 4정거장이었다. 가보자. 정류장에 내리니 내가 창밖 풍경으로 원했던 시우따델라 공원이 펼쳐졌다. 아, 그냥 지도로 보기만 했는데 넉넉한 부지에 단번에 마음에 들었던 곳. 역시 나의 예감은 맞았다. 좋더라. 아쉬울 정도로.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마자 물과 맥주를 달라고 했다. 아쿠아 앤(그리고는 스페인어로 찾아놔야겠다!) 세르베사 뽀르 빠뽀르. 맥주가 빅과 스몰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빅을 주문했다. 아, 시원한 것이 몸에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주문판을 한참 보다가 메뉴 델 디아를 주문했다. 스타터와 메인메뉴도 선택해야 되는 건지 몰랐는데, 사실 뭐가 뭔지 몰라 둘다 추천을 받았다. 결과는 둘다 대만족. 생선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다만 맥주를 빅으로 먹어서 그런지 배가 금새 차서 빵은 손도 못댔다. 후식으로 과일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멜론만 있다고 했다. 오케이. 아, 그런데 멜론이 정말이지 너무나 맛있었다. 구글지도로 검색해보니 숙소까지 도보로 18분이어서 힘을 내기 위해 에스프레소도 주문해 마셨다. 맥주랑 커피까지 마셨더니 예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나왔지만, 맛있는 점저였다. 내 담당 서버는 좀 무뚝뚝했는데, 중간중간 와서 맛있냐고 물어봐준 나이드신 분이 정말 친절했다. 

   전망대고 나발이고 너무 힘들어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눕고 싶었다. 걸어가는 길에 제법 큰 마트가 있어 물 세병과 맥주 네 캔, 과자 하나를 샀다. 숙소는 역시 나답게 단번에 찾지 못하고 한 바퀴 돌아 찾았다. 열쇠가 세개 있는데, 하나는 건물 대문 열쇠, 하나는 현관 열쇠, 하나는 방문 열쇠이다. 어제는 건물 대문이 늦은 시간이라 닫혀 있었는데 오늘은 나갈 때도 들어올 때도 열려 있었다. 들여다 보니 건물 전체가 숙소는 아니었다. 2층까지 올라가 현관문을 여는데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열리지가 않는 거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마트 봉지를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열쇠를 돌려보는 데도 열리지가 않았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없는지 기척도 없었다. 어쩌나. 어쩌나. 어제의 긴장이 되풀이되고 있네. 이게 뭐라고 안 열리나. 열쇠가 안 열린다고 매니저한테 또 전화를 해야 하나. 어제는 벨을 제대로 못 눌러서 전화하고. 그러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사람이 나왔다. 익스큐즈 미. 익스큐즈 미. 그 분은 내 말이 아예 안 들리는 듯 했다. 다시 오른쪽, 왼쪽, 진땀. 아래층 분이 다시 돌아왔다. 익스큐즈 미. 익스큐즈 미. 아래층 사람은 그냥 들어가고 잠시 뒤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올라다봤다. 문이 안 열려요. 열쇠가 있는데, 문이 안 열려요. 아저씨는 올라다 보며 뭐라고 했는데, 내가 라이트? 라고 하니까 오케이라고 했다. 오른쪽으로 돌려봤지만 열리지가 않는 문. 안 열려요, 다시 말하자 아저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2층으로 올라와줬다. 쏘리, 쏘리를 연발하는 나의 열쇠를 받아들고 왼쪽으로 두번을 돌리니 문이 열렸다. 맙소사.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왼쪽인 게 분명한 단어와 두번인게 분명한 단어를 말했다. 땡큐 쏘머치,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아저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씩 웃으며 내려갔다. 아, 살았다.

   나의 101호 냉장고에 사가지고 온 물 세 병과 맥주 네 캔을 채워넣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속옷과 오늘 입은 티셔츠를 빨아 널었다. 테라스로 나가봤다. 아직 6시인데 누워도 될까. 부지런한 여행자가 되지 않아도 될까 고민했지만, 너무나 피곤한 것. 내일도 모레도 돌아다녀야 하니 일단 눕자했다. 피곤하면 아픈 부위가 있는데, 거기가 아프기 시작해서 걱정이 됐다. 냉장고에서 물을 가져와 발포 비타민을 넣었다. 오마이갓. 물이 탄산수였어. 그것도 엄청 달달한 탄산수였어. 실수 연발이구만. 그렇게 누워 자다 깼다 자다 깼다를 반복했다. 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마음에 드는 티비채널을 발견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깼는데, 완전히 깨어버렸다. 시차 적응이 안되고 있는 건가. 맥주 한 캔을 땄고, 오늘밤에는 헤밍웨이 소설을 시작 할 거다.


바르셀로나, 둘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유람선에서 바르셀로나 바람과 햇살을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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