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여행'에 해당되는 글 31건

  1. 파코 하코다테 2017.09.19
  2. 킨요비 2017.08.19
  3. 모쿠요비 2 2017.08.17
  4. 스이요비 2017.08.16
  5. 화요비 2 2017.08.10
  6. 게츠요비 2017.08.08
  7. 퇴촌 2017.07.30
  8. 아듀, 마르떼스 2 2017.07.05
  9. 루네스 2017.07.04
  10. 싸바도 2 2017.07.02

파코 하코다테

from 여행을가다 2017. 9. 19. 22:22

















   오늘 같이 흐리고, 또 비가 쏟아지는 날씨였다. 올 여름 나흘 동안 머무른 하코다테의 날씨가 그랬다. 비가 왔다 그쳤고, 흐렸다가 다시 비가 왔다. 맑은 하늘은 떠나는 날 잠시 보았다. 하코다테를 처음 간 건 친구와 함께 간 홋카이도 패키지 여행에서였다. 패키지 답게 홋카이도의 핫 스팟을 거의 다 찍었다. 서양식 건물들이 많은 모토마치 거리를 가이드와 패키지 일행들과 함께 걸었고, 세계 3대 야경이라는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러 버스를 타고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그때 연락을 하고 지내던 아이에게 야경 사진을 보내줬는데, 하코다테라는 이름이 참 이쁘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아이인 줄 알고 있었다. 작년에 삿포로에 갔을 적에는 오도리 공원으로 걸어가던 중에 커다란 건물 위에 걸려 있는 하코다테 그림을 봤다. 내가 친구에게 이게 하코다테다, 라고 하니 친구가 언젠가  같이 가자, 라고 했다. 그렇게 이듬해 우리는 하코다테에 왔다.


   숙소가 내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뒤로 더 엄선해서 숙소를 고르고 있다. 너무 비싸면 안되고, 창문이 꼭 있어야 하며, 열리는 곳이 좋다. 테라스가 있으면 그건 무조건 합격이다. 하코다테에서 그런 곳을 찾았다. 관광지와 조금 떨어져 있어 이동하기에 불편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거의 모든 평이 만족스럽다, 였다. 어차피 하코다테라는 도시 자체가 작아서 괜찮을 것 같았다. 


   첫날 치토세 공항에서 인포메이션 직원이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쓰게 될 총 교통비를 긴 시간동안, 아주 친절하게 계산해줬다. (물론 우리가 물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날 JR패스를 타러 삿포로 역에 가보니 그녀의 계산이 틀렸다. 이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패스보다 일반 표를 각각 구입하는 게 훨씬 쌌다. 역무원은 짧은 시간에 우리의 계산이 틀렸다는 걸 계산기를 두드리며 보여줬다. 지정석, 비지정석, 만석, 출발시간, 도착시간 등 점점 말이 통하지 않자 인상을 쓰기 시작하던 역무원에게 표를 각각 다섯 장씩 받아들고 기차를 타러 갔다. 자유석이라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지정석 줄에 서있다가 뒤늦게 자유석 줄에 합류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선 제일 먼저 팜플렛에 있는 에키벤 메뉴부터 훑어봤다. 낮시간이고 아무 것도 못 먹은 터라 엄청 배가 고팠다. 그런데 기차가 출발하고 1시간 쯤 지나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맙소사, 자유석 통로에 좌석에 앉지 못한 사람들이 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카트가 지나갈 자리가 없다구. 우리는 4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야 한다구. 도시락도 없고, 맥주도 없다. 결국 친구가 지갑을 달라고 했다. 오지 않는다면 찾아가보겠어. 친구의 부재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친구의 성공을 확신했다. 친구는 통로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아주 당당하게 에키벤 두 개와 맥주 네 캔을 들고서.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나니, 통로의 사람들도 어느새 빠져 나갔다. 맞은편 창가에 바다가 나타났다. 돌아올 때는 방향을 기억해뒀다가 앉자, 라고 말하며 건너편 바다를 봤다. 바다가 철도 가까이 있어, 아니 철도가 바다 가까이 놓여 있어, 건너편에서 보아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하코다테에 왔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10분 조금 넘게 걸린다고 해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보기로 했다. 역 바로 앞에 가든 비어 페스티벌을 한다는 포스터가 있었다. 광장 한 켠에 준비 중인 가판대들이 있었다. 삿포로에서 시간이 늦어 맥주 축제를 놓친 터라 나중에 와보자고 했다. 그렇게 역에서 숙소까지 쭉 직진을 하면서 생각했다. 하코다테는 바람이 세고, 조용하고, 한적하구나. 도착하고 보니 이런 곳에 머물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하도 세서,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에 있을 것이 분명한 바다가 느껴졌다.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좋았고, 일본의 숙소라 믿을 수 없이 넓었고, 화장실의 욕조도 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번화가와 떨어져 있긴 했는데, 그래서 저렴했던 것 같다. 커튼을 치고 테라스로 나가니 양 옆으로 바다가 펼쳐졌다. 오른쪽을 봐도 바다, 왼쪽을 봐도 바다였다. 여기 있었네, 바다가. 여행을 하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던 나쁜 마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그 아이들은 재생력이 뛰어나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여행하는 동안 이 공간에 좀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여행을 왔으니 돌아다녀야 했고, 친구는 바깥에서 가능한 오래 시간을 보내길 바랬다. 각자의 시간을 가져볼까 했지만, 그 이야길 좋지 않은 순간에 꺼내서 정말로 그렇게 해버리면 둘다 마음이 상해버릴 것 같았다. 결국 그러고 난 뒤에 함께 야경을 보러 산에 올라갔던 일도 좋았고 (얼어 죽을 것 같이 추워 암흑 속에서 이어폰으로 90년대 가요를 들으며 춤을 춰댔다), 다음 날에 멀리 가 자전거를 탔던 것도 좋았으며 (공원이 너무나 넓어 힘들었는데, 체력이 약하다며 평소에 운동을 좀 하라는 친구의 말에 벌컥 짜증을 내버렸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세계 음악 춤 축제를 구경했던 것도 (세일러복장을 한 일본 아저씨가 원맨쇼를 하는 것을 보다가 재미없다고 나와버렸는데, 친구 말로는 제일 마지막에 그 전에 할 것처럼 하다가 계속 하지 않던 묘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좋았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짧지 않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우리는 이 숙소에서 각자의 침대를 정했고, 세 번의 밤을 보냈고, 세 번의 아침을 맞았다. 작년 삿포로에서 사두었다가 다 쓰지 못한 입욕제를 친구가 가져왔고, 그걸 세 번 정도에 나눠서 썼다. 매일 아침, 전날 마신 맥주로 배에 가스가 가득 찬 채로 조식을 잔뜩 먹었으며, 매일 재료를 달리 하며 나왔던 냉스프가 무척 맛있어 서울에서 레시피를 찾아 해봤는데 전혀 그 비슷한 맛도 나지 않았다. 추억의 음식으로 자리잡을 듯 하다. 매일 밤 마실 캔맥주를 냉장고에 잔뜩 넣어뒀으며, 친구는 이틀은 마시지 않을까 싶었던 양을 하룻밤에 해치우기도 했다. 나는 저질 체력을 뽐내며 맥주를 많이 마시지 못하고 일찍 잠이 들어 친구를 실망시켰기도 했고, 어느 날은 조금 토라진 것 같은 친구가 먼저 잠이 들기도 했다. DVD 플레이어가 있다기에 서울에서는 거의 틀 일이 없는 DVD를 한.중.일로 엄선하여 세 개 챙겨왔는데, 일본은 재생 자체가 되지 않았고, 중국은 내 저질체력 때문에 친구 혼자 보았고, 한국만 둘이 끝까지 보았다. 간만에 만난 와니와 준하는 여전하더라. 들어가 살고 싶은 와니의 이층 집도 여전하고. 하코다테에 온 첫 날 친구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꽃을 사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마지막 밤에는 꽃과 스탠드를 테라스에 들고 나가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는데, 너무 추워 목욕 가운까지 걸치고 있었다. 결국 얼마 못 가 안으로 들어와 버렸지만. 팔월 초순에 그 정도의 추위라니. 하코다테 바다여. 그 밤을 떠올리면 코 끝이 기분 좋게 얼얼해진다. 주방이 있어 계란말이도 해 먹고, 햄도 구워 먹고, 치즈도 녹여 먹었다. 인스턴트 나폴리탄도 해 먹었다. 계란 후라이도 얹어서. 아무 것도 든 게 없는 인스턴트 카레 우동은 친구 혼자 먹었는데, 내 맛도 니 맛도 아닌 맛이라 했다. 깔끔한 친구는 세제가 없는데도 매일 깨끗하게 설거지를 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이 곳을 떠올리면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이것만 생각나면 될 것 같다. 테라스에 나가 오른쪽을 봐도 바다, 왼쪽을 봐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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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요비

from 여행을가다 2017. 8. 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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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쿠요비

from 여행을가다 2017. 8. 1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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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이요비

from 여행을가다 2017. 8. 1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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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비

from 여행을가다 2017. 8. 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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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츠요비

from 여행을가다 2017. 8. 8.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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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촌

from 여행을가다 2017. 7. 30. 21:47



   "우리 셋이 같이 자야 되겠다." 말했다. 원래 친구는 나에게 아가 때문에 시끄러울 수 있으니 구석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밤이 되자, 친구는 아무래도 아가가 제일 먼저 자니 구석방에 아가를 재우고 셋이 같이 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애교를 떨면 고생하는 줄 아는지 해맑게 웃어주던 친구의 아가는 밤이 되니 예민해져서 계속 울어댔다. 오빠가 구석방에 가 아가를 재웠다. 그리고 차례차례 씼었다. 친구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S는 품평회 때문에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해서 먼저 갔다. 베를린에서 사온 선물을 남기고.

   원래 <그것이 알고 싶다>는 나를 제외한 친구부부와 S가 애청하는 프로다. 넷이서 여행을 가게 되면 이불을 깔고 누워서 함께 봤다. 오빠가 이제 이불을 깔자고 했다. 친구가 자리를 정해줬다. 금령이가 제일 안쪽에, 그 옆에 나, 오빠가 제일 바깥쪽. 오빠는 이불을 두 개 깔고 푹신하게 자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의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 티비를 봤다. 역시나 나는 보다 졸았고, 티비가 꺼지자 번쩍 일어나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확실한 증거를 못 찾아서 아직 사건이 오리무중이라고 했다. 캄보디아 여자와 결혼한 남자는 여자 앞으로 엄청나게 많은 생명보험을 들어놓았고, 남자의 졸음운전으로 임신중이던 여자가 죽었다. 남자는 90억이 넘는 보험금을 받게 되었다. 누가 봐도 계획 범죄지만 증거가 없단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걸 친구부부와 S는 매주 즐겨보다니.

   S가 준 차를 커다란 종이컵에 물 가득 담아 마신 나는 화장실이 약간 가고 싶긴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잤다. 내가 제일 안쪽에, 그 옆에 친구, 그 옆엔 오빠가 누웠다. 꿈을 꿨는데, 일을 보는 꿈이었다. 깜짝 놀라 깨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새벽이었고, 아무도 깨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친구가 나를 보고 자고 있었다. 구석방에는 아가가, 구석방이랑 제일 가까운 곳엔 오빠가, 그 옆엔 친구가, 제일 안쪽엔 내가 자고 있던 새벽이었다. 고깃집에서는 비싸서 양껏 못 먹는 항정살을 사갔는데 배가 불러 거의 남긴 게 계속 생각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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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마르떼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7. 5. 00:07


   바르셀로나에서 암스테르담까지의 비행좌석은 중간자리라 불편했다. 양옆으로 앉은 서양인들은 열심히 핸드폰과 노트북을 했다. 나눠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 이것저것 샀더니 캐리어가 꽉 찼다. 무게에 맞추고 나머지는 에코백에 나눠 들었더니 엄청났다. 환승까지 해야 하는 터라 할 수 없이 배낭을 샀다. 커다란 걸로 샀는데, 짐을 다 넣고 나니 정말 내 상체만 했다. 보안 검색을 하는데, 나만 신발을 벗으라고 해서 기분이 상했는데, 내 뒤에 있는 샌들을 신은 사람들 모두 신발을 벗어야 했다. 흠. 벗은 발들을 보니 괜찮아졌다. 짐이 너무 무거워 공항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동생이 친구 선물로 부탁한 향수를 하나 사고, 게이트가 확정될 때까지 마지막 맥주를 마셨다. 게이트가 확정되자 근처에 앉아 엽서를 썼다. 우표는 붙였지만 보낼 수는 없는, 열 두 밤을 이곳에서 보낸 나에게로 보낸 엽서였다. '잘 했고, 더욱더 잘 하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암스테르담 비행기에 타 상체만한 배낭을 올리는데, 다정한 한국인이 도와줬다. 고맙습니다. 오른쪽의 서양여자는 이륙하자마자 가디건을 챙겨입고 추운 티를 계속 냈으며, (결국 내 자리 에어컨을 꺼 줄수 있냐고 물었다) 왼쪽의 서양남자는 긴 다리가 펴지지 않아 간신히 구겨넣은 채 노트북 작업을 했다. 유명한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가 기내식으로 나왔고, 왼쪽 남자는 다이어트 콜라를, 나는 커피를 마셨다. 오른쪽 여자는 콜라를 달라고 하고 먹지 않고 가지고 갔다. 샌드위치도 반쪽만 먹고 싸가지고 갔다.

   스키폴 공항은 성희 말대로 좋더라. 환승시간이 짧고, 전 비행기가 늦게 출발한 바람에 구경할 틈이 없었다. 네덜란드 맥주 생으로 마셔봐야 하는데. 출국도장을 찍어주는 남자가 무척이나 친절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봐주고, 캄사합니다, 라고 인사도 해줬다. 어쩐지 이런 친절 하나로 이 나라가 궁금해진다.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데, 옆으로 외국인 아저씨가 와서 앉아 책을 펼치고 숫자 놀이에 열중하신다. 옆에 앉은 또다른 외국인 아저씨에게는 술냄새가 났다. 음악을 크게 듣고 계셨다. 출발시간이 임박해서 탑승을 시작했는데, 미리 좌석을 지정한 덕분에 좋은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 뒤쪽 화장실 근처에 있는 두자리 좌석인데, 중간에 있어 나는 왼쪽 복도를 이용하면 되고, 오른쪽 사람은 오른쪽 복도를 이용하면 된다. 역시 상체만한 배낭과 막내를 위한 감자칩 페인트통을 올려놓고 누가 옆에 앉을지 안 그런 척 기대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판타지였다) 외국인 남자가 앉았다. 그때 얼굴을 마주쳤을 때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진정으로 중간중간 말을 걸고 싶었는데, 비빔밥을 시켰을 때 참기름을 넣지 않고 먹으려고 하길래 참기름팩을 찾아 디스, 라고 건네주고 땡큐, 라는 말을 들은 게 다였다. 한국음식 좋아하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그 남자와 나는 두 번의 기내식을 먹었는데, 둘 다 같은 메뉴였다. 남자는 맥주를 한캔 마셨고, (드라이디라는 라벨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나는 한 캔을 더 마셨다. 둘다 맥스였다. 승무원이 입국신고서를 나눠주는데, 남자가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냥 말을 걸지 말자, 싶었다. 남자와 나는 나란히 앉아 10시간 동안 먹고, 자고, 마시고, 영화보고, 먹고, 자고, 마시고 영화보고를 반복했다. 아, 이륙 직전에 방송이 세 번 나왔다. 지금 한 사람의 승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 승객의 짐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륙합니다. 그 사람은 어찌되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이상하게도, 뭔가 남일 같지 않았다.

   착륙 즈음, 그냥 이렇게 내려 버리면 아쉬울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생긴 아주 소량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지하게 단단한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말을 하려는 찰나, 옆을 보니 남자가 눈을 감고 있다. 1차 실패. 남자가 모니터 화면을 껐다. 나도 껐다. 그리고 옆을 보고 말을 건넸다. 2차에 성공. 일본으로 가세요? 처음부터 착해 보였던 남자의 표정은 기뻐 보였고, 네, 라고 말했다. 왜 기뻤는지는 그 뒤 짧디 짧은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스웨덴 사람이고 스웨덴에서 세 번의 환승을 해서 오사카로 가는데, 고베가 최종 목적지라고 했다. 세상에, 환승 세번이라니. 와이프가 일본사람이란다. 아, 힘들겠어요. 그렇다고 한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해서, 더듬더듬, 와따시모 벤쿄우 시마시따. 순간 남자가 당황했다. 아무튼 남자는 한국에 한번도 와본 적이 없고, 언젠가 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러길 바란다고 했다. 4시간을 더 기다려 환승을 해야 하는 남자와 헤어지며, 사요나라, 라고 말했다. 그도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하더니, 사요나라, 라고 말해줬다. 나는 다시 상체만한 배낭을 들춰매고 감자칩 페인트통을 들고 (어떤 사람은 포테이토? 라며 신기하게 물어봤다), 에코백 하나를 또 들고, 엄청나게 무거운 캐리어를 찾아서, 와인과 까바 두 병을 샀지만 신고하지 않고 무사 통과했다. 보경이가 마중을 나와 함께 깐풍기와 백짬뽕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헤어졌다. 고마운 보경이는 지난 열 두 밤동안 자신도 나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해줬다.

   여행이 끝났고, 어마어마했던 짐도 정리했고, (정리하니 별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무거웠을까) 빨래도 돌린 뒤 널었다. 소윤이의 편지가 와 있어 폭풍 감동을 했다. 이렇게 사려깊은 소노스케라니. 내일 회사사람들에게 줄 작은 선물들을 포장하고, 동생이 싸인까지 받아놓은 스페인 책을 보다 잠들 거다. 내일의 출근이 무지하게 걱정이 되지만, 별일 없겠지.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혼자서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었던 때를 추억할테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준비해나가겠지. 영어를 꼭 공부하고 싶은데, 이 결심과 노력이 지속적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화를 보고, 불광천을 걷고, 책을 읽어나가는 일상을 즐겁게 잘 해 나갈 것이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여행은 일상을 잘 보내기 위한 작지만 큰 통로라는 걸 새삼 깨달았으니까. 바르셀로나의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나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게 되는 차도의 풍경들. 이건 사진으로 찍을 수가 없으니까, 내 마음 속에만 있다. 그 풍경은 정말 쨍하고, 반짝반짝 빛난다. 그 순간들이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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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네스

from 여행을가다 2017. 7. 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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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도

from 여행을가다 2017. 7. 2. 15:09


   어제는 티비다보 놀이동산에 다녀왔다. 혼자서 신나게 놀았다. 한국이름이 소현이라는 소피 덕분에 반값 할인을 받았고, 백화점 지하 식료품 코너에선 일본인이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아, 와따시와 칸코쿠징데스. 일본인은 한국말을 조금 배웠다면서, 그런데 분위기가 일본 사람 같아요, 라고 한다. 그런데 왤까. 이런 소릴 몇번 들었다. 한국어를 왜 배웠냐고 물어보니 재일교포라고 했다. 마트에서 계산을 하다가 커리가루를 깨뜨렸는데, 직원이 정말 괜찮다고 계속 웃으면서 가루와 파편을 아주 천천히 닦아냈다. 덕분에 커리 냄새는 진동을 하고, 내 전에 계산한 할머니는 계속 기다려서 화나 나고. 직원은 끝까지 친절하게,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해줬다. 돌아오는 길엔 돼지고기 튀김 그림이 있어 이끌려 바르에 들어갔는데, 엄청 먹고 나왔다. 그 과자는 이걸 본떠서 만든 거였어!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맥주안주야! 아저씨에게 이름을 물어봤지만, 검색해보니 안 나오는 게 잘못 받아 먹은 게 분명했다. 과자에 있는 이름으로 검색해봤더니 신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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