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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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밤길 - 낮게 거니는 비 내리는 밤길서재를쌓다 2008. 2. 13. 00:02
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기어코 맥주 2병을 사왔다. 집에서 가져온 예쁜 팔각형 유리컵에 맥주를 좔좔좔 따르고 벌컥벌컥 마셨다. 달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한 뒤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고 달려가 받아와놓고선 다른 책만 읽어댔다. 그러다 반납기간이 얼추 다가오는 것 같아 연장을 하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벌써 누군가 예약 신청을 해버린 바람에 연장이 안됐다. 연휴동안 내려가서 다 읽고 오자고 생각했는데 뒹굴거리기만 한 탓에 반납기간이 넘어서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텐데. 염치없게도 3일을 더 가지고 있었다. 내일은 꼭 반납해야지. 첫번째 단편, '꽃 진 자리'를 읽고선 맨 앞 장의 작가 사진을 유심히 봤다. 이름을 소리내어 읽었다. 공.선.옥. 두번째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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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연애중 - 밥먹고 연애하고 밥먹고 싸우고극장에가다 2008. 2. 12. 11:05
얼마 전 읽었던 전경린의 에서 왜 자신을 낳았냐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을 보고 여자와 남자가 6년의 긴 연애 중에 결혼을 했더라면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아이를 낳았을까. 그러면 그들의 결말은 달라졌을까? 그러면 뻔했겠지. 뭐. 을 보고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결말이 해피엔딩이였나. 극장에서 나와 매서운 바람을 코 끝으로 받아치며 걸으면서 나는 그것이라말로 해피엔딩,이였다고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남자와 여자는 열심히 사랑했던 시절에서 시작해서, 열심히 싸우는 시절을 거쳤다가, 열심히 살아가는 순간에 당도했다. 실제로 6년쯤 연애하다가 결혼한 친구와 함께 봤는데, 친구는 6년쯤 연애를 끝내고 결혼을 했다. 여전히 연애할 때랑 비슷하다고,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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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타임즈 - 첫 장면과 사랑에 빠지다극장에가다 2008. 2. 11. 18:23
1966년 대만의 어느 작은 당구장. 나무향과 담배냄새로 가득한 'Smoke Gets In Your Eyes'가 울려 퍼진다. 남자는 공을 치고 여자는 손을 허리에 댄 채 당구대 끝에 사각사각 초크가루를 바른다. 공들이 톡톡 부딪치고, 마음들이 퉁퉁 부딪히고.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 이 첫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극장 구석에 앉아 쉬지않고 연속으로 영화를 봤다. 허우 샤오시엔 특별전이었다. 에서 시작해서 , 까지. 까지 보고싶었는데 서기가 연속으로 출연하는 바람에 머릿 속에서 영화들이 뒤엉켜버려 포기했다. 일요일이였고, 봄처럼 따뜻했고, 오랜만의 광화문은 한산했다. 극장으로 가는 길에 커피도 한 잔 마셨다. 햇살도 정말이지 따스했다. 모든 게 영화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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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 나는 소년이 되었다서재를쌓다 2008. 1. 31. 11:26
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열림원 갑자기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내 머리카락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들을 당장 잘라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가는 길 모퉁이에 작은 동네 미용실이 있다. 늘 눈여겨 보았던 곳.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컷트를 하러 왔다고 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니 이건 너무 짧지 않냐고 한다. 그럼 그냥 컷트로 잘라주세요. 그러고보니 자르는 컷트와 짧은 머리 모양의 컷트의 말이 같다.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들을 보며 한창 읽고 있던 전경린의 을 떠올렸다. 의 스무 한 살의 주인공은 엄마가 골라주는 예쁜 여자용 옷이며 신발을 거부한다. 나랑 어울리지 않아. 정 원한다면 언젠가 입고 싶어질 때 입을게. 서른 살쯤? 아니, 마흔 다섯 살쯤? 핸드폰에 저장해 온 머리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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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필드 - 한 편의 괴수 영화극장에가다 2008. 1. 28. 17:24
를 보고 난 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미국을 습격하는 '무언가'의 이야기구나. 역시 9.11.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사람들. 아, 그때 그 '잘못했어요'를 반복했던 그 대사는 뭘 의미하던 거 아니였을까.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다는 걸까. 넌 그 때 이미 일본으로 가야했다는 대사는? 왜 하필 일본인가. 큰 괴물에서 작은 새끼 괴물들이 쏟아나오는 건? 왜 85분일까. 왜 캠코더일까. 그저 생각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뿐. 아무런 해답도 찾지 못했다. 이건 이걸 의미하는 거고, 이건 이걸 의미하는 걸 거라고 규정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머릿 속에 의 괴물이 정신없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뚜렷하지도 않은 괴물의 형태가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면서 뉴욕만큼 복잡한 내 머릿 속을 포악스럽게 파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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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것이 좋아 - 그녀들이 좋은 이유극장에가다 2008. 1. 28. 13:45
나난이 돌아왔다. 뜨거운 것이 좋다면서. 29살, 더이상 서른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화이팅을 외치며 상콤한 발걸음을 내딛었던 의 나난. 이번에는 아미라는 이름으로. 27살의 나이로. 일년내내 똑같은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정몽주의 일백번 고쳐 쓰는 정신을 본받아보라는 PD에 귀싸대기를 올리고 싶은 아직 입봉하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 아미는 말한다. 여자에겐 절대 들켜선 안될 세 가지가 있어. 바람, 주름살, 그리고 속마음. 나난과 아미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녀의 곁을 맴도는 사람들도. 서른이 가까워지는 위태위태하고 불안한 나이의 삶은 다들 비슷비슷한 걸까. 나난의 불알친구 동미는 아미의 언니, 영미를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쿨한 척, 나이에 맞게 질퍽거리지 않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실제로는 누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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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 누가 그들이 틀렸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서재를쌓다 2008. 1. 24. 01:30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Media2.0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작가 이언 매큐언을 알게 되었다는 것. 마지막 장을 덮고 앞 표지에 씌여진 작가 소개를 다시 읽었다. 48년생의 영국 출신 작가.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작가. 으로는 부커상을 받은 작가. 곧 그의 다른 작품 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 국내 개봉 예정인 작가. 표지 그림에는 매력적인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사진기 한 대. 이 여인의 이름은 몰리.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이 여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남자, 클라이브와 버넌은 이 여인을 열렬히 사랑한 적이 있었고, 소설의 결말은 모두 이 여인이 찍은 사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 사실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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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나잇 -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다면극장에가다 2008. 1. 23. 02:49
안녕. 당신. 을 보고나서 당신 생각이 났어요.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선 우리가 처음 만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봤어요. 여름이였나, 봄이였나, 가을이였나. 꽤 오래되었죠? 그 때 처음 만났지만 당신은 우리가 여러 번 만나온 것처럼 내게 다정하게 대해줬어요. 꼭 여러 해 알고 지내온 것처럼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내가 아는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나를 꼭 안아줬을 때 그 품이 낯설지 않았거든요. 당신이 나를 토닥거려주었을 때 그 손짓이 왠지 익숙했거든요. 그 사람인가라고도 잠깐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아니였어요. 그건 확실해요. 그 사람은 쨍하고 눈부시게 스윙을 날린 뒤로 더 이상 나를 안아주지 않거든요. 누굴까. 당신이 누굴까. 왜 얼굴이 이리 보이지 않는걸까, 얼굴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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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 서울내기같은 그녀의 소설들서재를쌓다 2008. 1. 15. 22:25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에 이어서 두번째예요. 첫번째 단편집 은 읽을 생각만 하다가 아직까지 못 읽었어요. 지난 여름 강연회에서 새 책에 사인까지 받아와 놓고서는 고이 책장에 모셔두다가 얼마 전에 잃어버렸어요. 마침 동생이 이 책을 선물받아 왔던 게 있어서 바로 읽긴 했는데, 한 집에 같은 책 두 권이 뭐가 필요있냐고 그렇게 된건지. 누군가 주워서 읽고 있겠죠? 잃어버리니 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마저 사라지기전에. 정이현 작가는 서울내기 같아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을 한번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요. 실제로 프로필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구요. 제가 지방에서 올라와서 그런지 서울내기들은 딱 보면 알 수 있어요. 저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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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 그녀들이 사는 곳서재를쌓다 2008. 1. 14. 03:49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신경숙.츠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현대문학 책을 읽으면서 12월에 다녀왔던 신경숙 작가님의 강연회 생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넓고 넉넉한 공간이였는데 마이크가 안되는 바람에 작가님 곁으로 다들 옹기종기 의자를 끌어다가 둥그렇게 앉았어요. 첫 줄이라 작가님의 얼굴이 바로 코 앞에 보였어요. 마이크는 금방 해결이 됐지만 그 거리 그대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죠. 고백하건데 강연회를 들으면서 울어본 건 처음이예요. 더군다나 그게 한 번에 그친 게 아니였어요. 슬픈 이야기도 아니였는데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아무도 모르게 슬쩍 눈물을 닦아냈는데, 얼마 안 있어서 또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 날 이후로 작가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은 거죠. 그런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