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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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극장에가다 2008. 3. 6. 16:37
를 봤다. 내 주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봤더라. 워낙 잘 만들었다고, 잔인하다고, 밤길이 무서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견딜만 했다. 방금 유영철에 관한 기사들을 모은 글을 봤는데, 그것 때문에 뒷골이 설 정도로 오싹해져버렸다. 는 보여주는 건 현재다. 지영민이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도,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이유도 현재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나 그들의 행동에서 짐작할 뿐. 감독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관객이 생각하는 게 모두 다 정답입니다, 라는 입장이더라. 단지 잡을려고, 잡히지 않으려고 죽도록 뛰는 좁은 골목땅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을 죽였고,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내야 하고, 추격 당하는 이 길을 벗어나야 하고, 추격해야 하는 지금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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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 그들이 맞이한 청춘의 새벽극장에가다 2008. 3. 3. 12:42
이 길을 쭉 가면 그 마을로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인걸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자고 꿈을 꾸었어 쓸쓸함을 억누르고 강한 자신을 지켜나가자 걷다 지쳐 잠시 멈추면 떠오르는 고향길 언덕을 감는 비탈길 그런 나를 꾸짖고 있어 컨트리 로드 친구에게서 이런 문자가 왔다. '를 보고 스무살의 우리 생각이 났어. 청춘을 함께 보낸 우리 셋이 만나서 낮술하자.' 우린 조금 멀리 있어서, 낮술은 아직 하진 못했고 대신 나는 를 다시 꺼내 봤다. 청춘. 영화를 다시 보면서 정말 우리도 저들같이 푸르른 봄의 시절을 보낸걸까, 생각했다. 영화 후반부에 다케모토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 함께 차로 갔던 바닷가를 혼자 낑낑대며 자전거로 달려간다. 오르막을 여러번 지나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밤거리를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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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 - 니가 104% 부러워극장에가다 2008. 3. 1. 15:07
You're a part time lover and a full time friend The monkey on your back in the latest trend I don't see what anyone can see in anyone else.. but you 주노에게. 그래. 나는 니가 열여섯의 나이에 임신을 했으면서 아이를 낳겠다고 담백하게 결심을 해 버린 그때부터 이건 현실이 아니라 영화구나, 생각했어. 니 얘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라, 현실이 아니라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열여섯의 나이에 임신을 했다는 너의 고백에 산부인과 예약 이야기를 꺼내는 너의 부모님을 본 후로부터 그래, 이건 아주 쿨한 영화구나, 생각했지. 그래, 이건 단지 104% 쿨한 영화일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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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풍선 - 그녀는 괜찮나요?극장에가다 2008. 2. 27. 16:41
여자아이같이 예쁜 시몽이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묻는다. - 뭐가 보여요? - 흠. 글쎄. 에펠탑? 파리. 도시. 하늘? 지붕들? 빨간 풍선. 나는 송처럼 차분하게 말한다. 속눈썹이 긴 시몽이 눈썹을 내리깔며 내게 묻는다. - 뭐가 보였어요? - 흠. 착한 너. 슬픈 너의 엄마. 책이 많았던 너의 집. 현관 옆 테이블. 작은 부엌. 두 개의 복층 다락방. 아, 마지막에 본 너의 다락방은 정말 예뻤어. 나는 내내 너는 어디서 잠을 잘까 궁금했거든. 정말 아늑해보여서 예쁜 니 옆에 누워서 나도 한 숨 자고 싶었어. 정말이야. 나는 약간 들뜬 송처럼 말한다. 허우샤오시엔의 을 봤다. 언제 보았나 달력을 뒤져보니 벌써 3주 전이다. 오랜만에 종일 극장에서 보낸 날의 마지막 영화였다. 온다고 예정되어있던 감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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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톤먼트 - 속죄하기 위한 허구극장에가다 2008. 2. 26. 22:30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수 있어. 서재에서 순수한 열정으로 사랑을 나눴던 그 남자로 돌아가서, 너를 찾고, 너를 사랑하고, 너와 결혼하고, 치욕없이 살거야. 극장 안에서 유일하게 위로받았던 때도 있었는데,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극장을 안 가도 너무 안 갔다. 그 곳까지 가는 걸음이 천근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가서 보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 , 는 꼭 극장에서 보리라, 결심했다. 오늘 를 봤다. 나는 너무 좋아서 엉덩이를 들썩거렸고, 너무 좋아서 여러번 울었다. 아, 영화란 이런 존재였지.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이 이렇게 가슴 설레는 일이였지. 나는 이제 극장까지 날아서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를 보면서 내내 원작, 이언 맥큐언의 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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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보이 - 건강하게 죽음을 인식하는 법서재를쌓다 2008. 2. 25. 15:01
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다산책방 노무현 전대통령도 퇴임을 앞둔 고별만찬에서 이렇게 말하셨다지. "어떤 강도 좌우로 물길을 바꿔가며 흐른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여정을 강으로 비유한다. 한 줄기로 시작해서 드넓은 바다를 이루는 것. 멀리서 보기에 강은 그저 물길을 따라 흘러갈 뿐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흘러나가기위해 열심히 바위와 모래를 깍아내리고, 강약을 조절하며 힘겹게 전진하고 있는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태생에서부터 그리워한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강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작은 물줄기에 불과했던 강은 그렇게 드넓은 바다를 맞이한다. 어린 시절에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죽음을 생각했다. 늦은 밤, 도시와 도시 사이의 도로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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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 요시다 슈이치가 맞습니까?서재를쌓다 2008. 2. 23. 14:52
악인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은행나무 . . . 지금 당장 거짓말을 죽이지 않으면 진실이 죽임을 당할 것 같아 두려웠다. p.347 惡人. 요시다 슈이치가 악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요시다 슈이치 이름으로 국내에 발간된 책 제목들을 쭉 훓어보니 나는 그의 책을 반쯤은 읽었다. 그의 소설들이 좋은 이유는 그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일요일들'의 느낌 때문이다. 그의 책에는 항상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는 그 한 명 한 명의 평범한 일상을 엇갈리듯, 무심하게, 스쳐가듯 이야기한다. 마치 어젯밤 건대입구역에서 탄 7호선의 4-1에서 지하철에 올라탄 나와 4-1에서 내린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한번도 인사를 나눈 적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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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 3억엔보다 행복한 우리들티비를보다 2008. 2. 18. 17:57
을 보게 된 건 순전히 마이앤트메리의 메리진 때문이다. 그가 홈페이지에 'すいか'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드라마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메리진은 의 주인공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오니기리를 맛나게 먹는 장면을 캡쳐해놓고선 '이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또 다른 바램이라면 봄,여름,가을,여름으로 계절이 돌아갔음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찾아본 2003년 일본에서 온 이 드라마. 초여름의 산들바람처럼 고요하고 시원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던 여름 드라마를 나는 겨울에 보았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부터 이 투박한 제목의 드라마가 너무너무 좋아져버렸다. 1983년 여름. 2000년이 도래하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한번씩들 꿈꾸었던 세기말. 시험에서 28점을 맞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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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맘보 - 2011년으로부터 온 편지극장에가다 2008. 2. 17. 20:48
그녀의 이름은 비키. 그녀에겐 하오라는 연인이 있다. 그녀는 하오와 헤어지고 싶지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주술이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녀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다짐했다. 예금해둔 돈을 다 써버리는 날, 그를 떠나리라고. 이것은 세계가 축제로 들떠있던 10년 전, 2001년에 일어난 일이다. 2011년의 비키는 그녀의 10년 전 이야기라며 말문을 연다. 비키는 10년 전 자신을 '그녀'라고 말한다. 마치 10년 전 자신은 자신이 아닌 것처럼. 자신은 그냥 10년 전 비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3자처럼. 그러니까 10년 전, 그녀는 열아홉살이였고,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으나 그들은 너무나 어렸고, 그를 버리지도, 떠나버리지도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시간과 시간은 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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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 그의 문장은 빵집 주인 같아서재를쌓다 2008. 2. 15. 10:08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문학동네 커피를 내렸다. 친구가 싸 준 원두커피. 브라우니 한 조각을 냈다. 친구가 만들어 준 초코 케잌. 그것들을 야금야금, 홀짝홀짝 먹어치우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다시 읽었다. 레이먼드 카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자신이 정말 행복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두 단편을 읽으면서 그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읽게 해준 것에 정말 행복해했다. 지상의 말이 하늘까지 닿는다면,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고마워요. 당신은 글은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답니다. '대성당'의 마지막 부분도 뭉클했지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