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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스테르담 - 누가 그들이 틀렸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서재를쌓다 2008. 1. 24. 01:30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Media2.0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작가 이언 매큐언을 알게 되었다는 것. 마지막 장을 덮고 앞 표지에 씌여진 작가 소개를 다시 읽었다. 48년생의 영국 출신 작가.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작가. <암스테르담>으로는 부커상을 받은 작가. 곧 그의 다른 작품 <속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 가 국내 개봉 예정인 작가.

        표지 그림에는 매력적인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사진기 한 대. 이 여인의 이름은 몰리.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이 여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남자, 클라이브와 버넌은 이 여인을 열렬히 사랑한 적이 있었고, 소설의 결말은 모두 이 여인이 찍은 사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 사실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근본적인 원인은 이 두 당사자들에게 있었으니 남 탓 할 수는 없겠다.

       누구도 대나무처럼 정확하고 곧은 도덕적 잣대로 분명 너의 그 판단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가 다른 국가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안락사, 마약,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는 것을 두고 그들이 분명하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분별하고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 정한 틀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뿐.

        결국 클라이브와 버넌의 최후는 자신들 각자의 잣대를 상대방에게 들이민 것이다. 물론 시작은 서로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누구 잘못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니, 그 최후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로써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떄로 우리는 절망에 파묻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니까. 총리를 꿈꾸는 외무장관의 성적 취향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진을 신문 1면에 공개하든 안 하든, 한적한 산길에서 다툼을 심하게 벌이고 있는 남녀를 음악적 영감의 흐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치든 말든, 누가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언 매큐언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삭제하고 삭제해 이 짤막하고 재미있는 플롯의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이 탄탄하다. 군더더기없이. 두 주인공이 올라탄 플롯의 곡선이 함께 시작해 따로 물결치다 함께 만나는 지점까지 매끄럽게 읽힌다. 군살 없는 콜라병 같은 소설. 캔이며 패트 일색인 진열장의 콜라 행렬 속에서 매끈하게 빠진 콜라병을 발견하면 가끔 나는 묵직하고 따기 힘든 병을 살 때가 있다. 펑하고 상콤하게 마개를 타고, 긴 빨대를 꼽는다. 아랫배까지 싸해지는 탄산 덩어리들을 쭉쭉 빨아 마시고는 깨끗하게 씻어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면 고 투명하고 매끈한 병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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