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에는 궁금했던 서점에 갔다. 권여선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서. 나는 일찌감치 도착해 서점 구경을 했다. 소설만 파는 서점이었다. 좋아하는 책들이 그득했다. 이미 한 권 있지만, 권여선의 새 책을 한 권 더 샀다. 책을 한 권 사니, 생맥주 한 잔을 공짜로 줬다. 권여선 작가는 아주아주 말랐다. 깡말랐다, 는 표현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뻤다. 그녀는 소설만 가득한 책장 앞에 앉아 고독과 결핍과, 끝내 명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 조금 메모를 해 놓은 종이가 어디 있었는데, 어디 갔지? 종이가 없으므로, 저 세 단어는 정확하지가 않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어들이다. ㅠ) 그리고 자신의 고독과 결핍과 끝내 명랑함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는 너무 고독하지 않다는 것. 고독해야 뭔가가 창조될 수도 있는 것. 어딘가로 가는 과정의 시간들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버리는 시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고독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우리에겐 그 시간이 꼭 필요하고, 그 시간들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 전의 시간이 자신에게 참 중요한데, 자기 전에 핸드폰도 보지 말고, 티비도 보지 말라고 했다. 그저 불을 끄고 누워서 잠을 기다리는 것이다. 핸드폰을 보고, 티비를 보면 꿈도 내가 아닌 그것들것의 꿈을 꾸게 되지만, 불을 끄고 고독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진정한 나의 꿈을 꿀 수 있다고 했다. 주정뱅이 답게, 술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행복해 보였는데, 그건 술과 '함께'하는 것들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음식일 수도 있고, 사람들일 수도 있고, 고독일 수도 있고, 결핍일 수도 있고, 끝내 명랑함 때문일 수도 있고. 

 

   옆자리에 앉았던 분이 행사 시작 전에 계속 말을 거셨다. 많이 좋아하세요? 나는 좋아하는 소설들이 꽤 있다고 했다. 나도 되물었는데, 권여선을 이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것들이 좋아서 왔다고. 혹시 백석역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충 안다고 했다. 걸어왔다고. 그러면 끝나고 같이 가줄 수 있냐고 했다. 핸드폰 밧데리가 꺼져서 그렇다고, 이 동네가 처음이라 길을 잘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의 친구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다음에 꼭 셋이 만나 술을 마시자고 했다. 친구의 친구는 이 책의 편집자였는데, 끝나고 작가와 함께 술 한잔을 한다고 했다. 나는 옆자리 분과 백석역을 향해 걸었다. 걷다 보니 이 동네에 근사한 곳이 많았다. 엘피를 가득 쌓아놓고 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작은 술집도 있었다. 바람이 선선했다. 옆자리 분이 말했다. 애가 둘이에요. 이렇게 혼자서 밤에 돌아다니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정말정말 좋아요. 나는, 애가 둘이에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말했고 몇살이냐고 물어봤다.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어쩌다 나는 내가 일하는 곳을 말했고, 옆자리 분은 부럽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화목하게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맞아요. 지금도 좋은데, 그래도 부러워요. 그 자유로움이요. 좋아하는 것 보러 이렇게 밤까지 돌아다닐 수 있고. 남편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석역까지 십 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낯선 사람과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밤길을 걸었다. 그리고 전철역 앞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 그렇지만 이 여름밤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속마음을 아주 잠깐 털어놓으며 걸었던 사이.

 

   요즘은 내 곁에 좋은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 말고, 적당한 거리가 있는 진짜 어른. 얼마 전 회사 건강검진에서 만난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은 내 이름을 한자로 적어달라고 하고 그 글자를 오래 들여다 보며 이야기하셨다. 좋은 이름이라고. 그리고 내게 잘하고 있다고 하셨다. 해조류도 많이 먹고, 햇볕도 많이 쬐고, 자주 걸으라고 하셨다. 나는 회의실을 나오며 안심이 됐다. 그런 어른을 좀더 자주, 좀더 오래 만나고 싶다. 일단은, 소설을 읽어야지. 끝내 명랑하기 위해! 안녕, 주정뱅이, 안녕, 권여선- 귀여운 주정뱅이 작가는 내게 '반갑습니다'라고 적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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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from 서재를쌓다 2015. 1. 2. 23:44

 

 

   그들은 통성명을 하고 서로가 일곱 살 동갑내기임을 확인했다. 원은 얼마 전에 언니가 보는 만화책을 몰래 훔쳐보고 '스파이'라는 말을 새로 배웠던 터라 그 말이 써먹고 싶어 좀이 쑤셨다.
  ˝그럼 이제 우리 목숨을 바치는 스파이가 되기로 하자.˝
  ˝스파이?˝
  ˝스파이가 뭔지 알아?˝
  ˝몰라.˝
  은철이 시무룩하게 발로 땅을 찼다.
  ˝스파이는 비밀을 알아내는 간첩이야.˝
  은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27~28쪽

 

 

   권여선의 새 소설을 읽었다. 27쪽에서 28쪽을 읽을 때, 저 이야기를 하는 원과 은철이 귀여워서 아이고, 귀여운 것들, 했다. 203쪽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은철과 원은 더이상 동네 사람들 이름을 캐묻고 다니며 우물가 돌을 갈아 주문을 외우며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저주하던 신나는 스파이가 아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권여선의 전작 <레가토> 생각이 났다. 권여선은 자신이 겪어온 잔인한 현대사의 아픔과 진실을 소설로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레가토>에 이어 <토우의 집>까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현실은 너무나 잔인해서, 가슴이 먹먹해질 수 밖에 없다. 소설에서 원의 어머니는 점심 때면 계란볶음밥을 주로 원에게 해줬다. 간단하고, 찬밥으로도 만들 수 있어 네 식구 중 두 사람만 먹는 점심으로 딱이었다. 어머니는 계란을 풀어 한 번에 다 넣지 않았다. 반은 처음에 넣고, 반은 볶음밥이 반쯤 익었을 때 넣었다. 그래야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게 된다. 그래야 볶음밥이 더 맛있다. 원이는 엄마가 해줬던 이 계란볶음밥을 기억한다. 이 가엾은 아이는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던 계란볶음밥의 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엄마 만이 낼 수 있는 맛이다. 다시는 맛 볼 수 없는 맛. 권여선의 새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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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의 일들

from 서재를쌓다 2012. 7. 7. 20:01

 

    소설가 김연수는 언젠가 <폭풍의 언덕>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도입부의 목소리에 전율하지 못하고 이십대가 됐다면 그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폭풍의 언덕>을 "십대시절에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 "열병의 소설"로 설명하는 한편 "왜 숱한 대중적 멜로드라마는 고전이 되지 못했는데 <폭풍의 언덕>만은 고전이 되었느냐, 대학 시절부터 나는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문학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생각도 털어놨다.

- 씨네21 860호, '사랑은 어떻게 끝내 극렬하게 결렬되는가' 중에서

 

 

   지난 토요일, 하루종일 잠을 자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자 보문역에 있는 친구집에 갔다. 친구는 회사에서 20여 분 거리의 집에 최근 이사를 했다. 집들이였다. 친구는 내 바램대로 하이네켄 생맥주통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소시지를 구워두고, 자두를 씻어뒀다. 나는 이번 여름 한정판 맥스와 튼튼한 맥주잔 두 개와 내가 사랑하는 연어와 파인애플을 가지고 갔다. 아, 와인도 있었는데 이건 결국 개봉도 못했다. 따개도 없었고, 그 밤 우리가 깨달은 건 우리가 생각만큼 술에 강하지 못하다는 것. 집에서 가져간 잠옷으로 갈아입고 친구와 마주보고 앉아 다시 시작된 우리의 서울생활에 건배했다. 어디선가 건배를 자주하면 행복해진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냥 맥주만 따라 마시다가, 조금 있다 음악을 틀었다. 조금 있다 통닭을 배달시켰고, 조금 있다 노트북으로 <화양연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친구가 잠들고, 내가 잠들었다. 중간에 깨서 친구는 상을 치우고, 이불을 펴주고, 설겆이를 했다. 친구가 설거지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다. 친구는 설겆이를 끝내고, 노트북으로 다른 영화 한 편을 보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다음 날, 내가 먼저 깼다.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잠이 안 와서, 읽고 있던 책을 꺼내 읽었다. 권여선의 새 장편을 읽고 있었다. 제목은 <레가토>.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어서 약간 흥분하면서 읽고 있던 책이었다. 누워서 책을 읽는데, 친구가 깼다. 눈을 반쯤 뜨더니 뭐 읽고 있냐고 물었다. 내가 소설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도 다시 잠들고, 나도 다시 잠들었다. 정오 즈음 일어나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하이네켄 생맥주통에 남은 맥주가 꽤 많아서, 낮술을 마시기로 했다. 어제 남긴 것들을 다 꺼내놓고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함께 봤다. 둘이서 남은 통닭 다리를 뜯으면서 <화양연화> 같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이렇게 술마시면서 보면 분명 끝까지 못 본다, 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 <화양연화>를 보기 시작한 건, 마지막에 캄보디아의 씨엠립이 나오는 부분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씨엠립까지 가기는 커녕. 읔. <코쿠리코 언덕에서>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싫어졌다면, 싫어졌다고 말해줘요." 내가 정말 좋은 대사라고 말하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구가 다시 잠들었다. 나는 다시 <레가토>를 읽기 시작했다. 남은 맥주도 마셨다. 낮술이니까, 당연하게, 금새 취기가 올랐다. 8장이었다. '꽃 핀 오월의 목장'. 광주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정연은 그 날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다시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날이 펼쳐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광주에 갔다. 광주에 갔다 서울로 갈 참이었다. 인하 선배를 만날 작정이었다. 모든 것을 말할 작정이었다.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그 날 광주에서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8장을 읽으면서 조금 울었다. 낮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낮술 때문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연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유인물을 돌리면서 무서웠던 것. 무섭다고 얘기한 것. 그 날, 그 방에서 나오지 '않은' 것도 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통닭집에서 친구들에게 했던 말들도. 그래서 8장에서 정연이 용기 내서 광주를 빠져나오지 않았을 때, 인하형이었으면, 오난이었으면, 재현이었으면, 진태였으면, 경애와 명식이었으면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 흘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에르베 교수와 동행했던 최씨도 무섭다고 했다.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했다. 정연도 대학에서 유인물을 돌리면서 무섭다고 했다.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그들이 '그 날'의 광주에서 살 떨리게 무서웠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8장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광주 이야기구나 생각했다. 권여선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구나 싶었다.

 

    친구가 일어났다. 친구가 씻는 동안 내가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이대역에서 내려 모모로 갔다. <폭풍의 언덕> 표를 두 장 샀다. 화장실에 들렀다 극장에 들어갔다. 낮술 기운 때문인지 영화의 처음 조금 잤다. 영화는 내내 어두웠다. 배경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믿어질 축축함이 그 곳, 폭풍의 언덕에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생수를 사서 한 통을 다 마셨다. 어지럽고, 답답하고 해서 일찍 헤어졌다. 나는 2호선을 타고 건대까지 쭉 왔고, 친구는 중간에 6호선으로 갈아탔다. 일요일에는 이런 어두운 영화 보지 말자고 둘이서 다짐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옷 갈아입고 그대로 누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계속 잤다. 동생이 <신사의 품격>한다고 깨웠는데, 기운이 없어서 보는 둥 마는 둥 실눈을 뜨고 약간 보다가, 계속 잤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

 

    아, 맞다. 건배 이야기는 이번주에 본 <해피해피 브레드>에 나오는 대사였다. 네이버에 나쁜 평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건 거짓말이었다. <안경>이나 <카모메 식당>을 기대하고 간 내게는, 정말 '아닌' 영화였다. 내내 예쁜 풍경에, 예쁜 생각에, 예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안 예쁜 영화였다. 오늘은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러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 동네 극장에서 이 영화가 하루에 딱 두 번 하는데, 밤 9시대가 첫 상영이다. 고걸 보고 걸어서 집에 오면 딱일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준환은 수첩을 넘기며 예전에 적어놓은 문장들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술 마실 때와 죽을 때'라고 적혀 있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게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그는 끝까지 참아낼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감당 못할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금방이라도 발작을 일으킬 줄 알고 황황히 임종의 자리를 뜰 것이다. 그와 꼭 닮은 그의 할아버지가 죽을 때도 그랬다. 눈만 조금 부릅뜨고 콧김만 세게 내뿜어도 일가 친척들은 할아버지가 곧 경련을 일으키거나 괴성을 지를 줄 알고 공포에 떨었다. 그는 '혼자'라는 부사를 첨가했다.

   '혼자 술 마실 때와 혼자 죽을 때.'

   한결 안정감 있는 문구가 되었다. '혼자'라는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들끓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열어놓은 차창으로 인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준환은 수첩과 펜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신이 바라는 게 어쩌면 평생 인하 곁에서 이렇게 혼자 비밀을 간직한 채 무익한 기다림만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37-38

 

   "다녀올게."

   "재밌게 놀다 와."

   언니는 은수가 누릴 몇시간의 유흥에 대한 질투와 혐오를 조금도 감추지 않은 채 메마르게 말했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은수는 언니의 어깨는 탁 풀리고 뜨개질감이 손에서 툭 떨어지리라는 걸 알았다. 이혼하기 전의 용호도 그랬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루어지는 법이니, 혼자 남겨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겨진다. 그럼 난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나, 하고 은수는 자문했다.

p. 279

 

   은수는 경애를 일으켜 발목에 걸린 팬티를 올려주고 벽에 붙들어 세워놓고 휴지로 치마를 닦아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경애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모든 시간이 첫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은수는 생각했다. 이십대도 처음이었지만 오십대도 처음인 것이다. 인생에 두번째란 없다. 그래도 만약 두번째의 이십대가 온다면 링에 모인 이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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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문학동네

 
    지난 가을 <분홍리본의 시절>을 읽었다. 아직도 나는 그 소설집을 생각하면 조건반사마냥 입 안의 침이 고인다. 수십마리의 생선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하얀 죽의 빛깔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직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뽈찜이 무슨 맛일까 궁금하고,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 김치의 반은 먼저, 반은 나중에 넣게 되었다. 그 뒤로 여기저기서 권여선의 단편을 만났다. 그러다 <소진의 기억>을 읽을 때에 나는 권여선,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자, 고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어놓았다. 그녀의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를 읽었다.

   이번 <문학동네> 여름호의 젊은작가특집에 권여선이 실렸다. 아직 자전소설은 읽지 못하고 '미인 작가 권여선을 말한다' 제목의 작가초상만 먼저 읽었다. 이런 식의 구절이 있었다. 그녀가 소주를 마시는 걸 보면 소주는 본래 저렇게 맛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 나질 않는데 아무튼 권여선 작가가 소주를 무척이나 맛나게 잘 마신다는 이야기였다. 

   작가 권여선의 본명은 권희선이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욕설도 유쾌하게 하는 사람이다. <분홍리본의 시절>을 읽을 때 한강과 비슷하게 깡마르고 여린 느낌이었는데, 정반대인가보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한 사람이다. 

    왜 내가 그녀의 소설들을 읽으며 입맛을 다지고, 그날 저녁에는 그녀가 소설 속에서 말해주었던 음식들을 하나씩 만들어보았는지 의문이 풀렸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하고, 요리를 좋아하며, 나이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푸르른 틈새>를 읽으며 여러번 울었다. 엉엉 울어버린 게 아니라,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오며 한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여자의 아버지 이야기에서 많이 울었다. 젊은 시절, 망망대해를 헤치며 호탕한 뱃사람으로 기세등등했던 그가 나이가 들고 무릎이 꺽이여 술을 먹고 '이년들아! 나, 손재우 아직 안 죽었다!'를 연거푸 외치는 외로운 사내가 되었을 때. 그와 여자가 나란히 서서 각자의 라면을 끓이고, 나란히 앉아 각자 한 병씩의 소주를 비워낼 때. 그가 여자에게 용돈을 줄 때 하던 말들. 바다를 헤쳐나가던 그가 거리 위에서 죽었을 때. 그리고 이제 여자가 '이년들아! 이년들아! 나, 손미옥이, 아직 안 죽었다!' 외쳐댈 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아버지, 정말 천하일품이예요!" 그리고 여자가 사귀던 남자의 결혼상대를 알게 되었을 때.

    분명 십여년 전에 발표되었던 이 장편소설 후에 발표한, 그러니까 내가 이 장편소설 전에 읽었던 그녀의 단편소설들이 이 푸르른 장편소설보다 더 잘 쓴 작품이라는 건 알겠는데도 나는 이 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단편들보다 더 아껴주었다. 너는 참 좋은 책이야. 좋은 이야기야. 여러번 말해주었다. 꼼꼼하고 잘 쓰여진 단편소설들보다 그저 생각이 흐르는대로 쓰여진 것 같은 이 하얗고 긴 책에 더 마음이 갔다. <새의 선물>과 같은 시기에 문학상에 당선된 작품이라는데, 내가 <새의 선물>을 읽을 때 이 소설도 함께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지금보다 좀 더 젊은 나이일 때 읽어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인터뷰 기사도 찾아 읽었다. 여기까지 보면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하고, 요리를 좋아하며,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하고, 꿈을 이룬 사람이다. 앞으로 더 많은 소설을 읽어가면서 그녀를 더 잘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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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간 코미디언
김연수 외 지음/중앙북스


   일단 저는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 표지와 전체적인 책의 촉감이 좋아요. 전체적으로 은은한 파스텔톤이고, 작가 한 명 한 명의 캐리커쳐가 있어요. 직접 그려넣은 선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가들의 표정은 인자해 보이기도 하고, 무덤덤해 보이기도 하고, 또 새초롬해보이기도 해요. 표지는 까칠까칠하고 울퉁불퉁한 종이의 촉감으로 살아있고 내지도 가벼운 재질이라서 가방 안에 넣고 다녀도 무겁지가 않아요. 김훈 작가가 수상했던 지난해랑 비교해보면 파스텔톤의 전체적인 표지 색깔만 살짝 달라졌어요. 마음에 듭니다.


김연수 | 달로 간 코미디언
을 읽고 싶어서 구입했어요. 동생이 김연수를 좋아하는데 저는 사실 그의 작품을 산문 몇 개밖에 보질 못했거든요. 산문 몇 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굉장히 감수성이 짙고 지적이고 예민하고 섬세했어요. 소설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출간되자마자 구입했어요. 어려운 면이 없진 않았지만, 김연수 작가의 분위기를 알거 같애요. 눈물이 날똥말똥 촉촉하게 젖고, 머리까지도 촉촉하게 젖은 상태로 그의 글을 읽게 되는 것 같애요. 이번 장편도 구입했는데, 얼른 읽어야겠어요.

권여선 | 반죽의 형상
은 권여선 단편집에서 먼저 만났던 단편이예요.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제일 좋았던 단편이였는데. 일부러 다시 읽지 않았어요. 읽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한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이 단편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생각이 많이 났어요. 내가 타고 다녔던 세 자리 버스, 그리고 내 친구들. 그때는 어리고 질투도 많았고 서울 생활도 서툴렀었고 늘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었거든요. 그런 자유롭고 초조하고 긴장되던 그 시절들이 많이 생각났던 글이였어요.

칼자국 | 김애란
을 읽으면서 아, 김애란이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탄성을 질러요. 동갑내기라서 그럴까요? 김애란의 소설은 늘 저를 떠올리게 하고 제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요. 저번 낭독의 밤에서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했는데, 읽으면서 자꾸만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내가 생각이 나고, 우리 엄마도 생각이 나고. 그 때 누군가가 인천에서 자라 서울로 올라왔는데 자신은 서울에서는 늘 주변인인 것 같다면서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고 고맙다고 말한 독자가 있었는데 저도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정말. <침이 고인다> 바로 읽을 거예요.

박민규 | 깊
는 정말 좋았어요. 글 속에서처럼 제가 심해 속을 우주 위를 둥둥 유영하는 것만 같았어요. 아무도 소리내어 말을 하지 않는 그 깊고 먼 곳에서 둥둥 빛도 없고 머리도 없이 마음만 가지고 잠수도 하지 못하는 제가 오랜시간 잠수를 하는듯한 느낌. 적어두고 싶은 글귀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삼미..>를 읽고 단편 한 두개만 읽었는데, 못 읽은 박민규 소설을 다 찾아서 읽어야겠어요.

백가흠 | 루시의 연인
은 뭐랄까 그냥 조금 불편했어요. 주인공의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인간이 아닌 물건이여서 그런지, 그게 나 같아서 그런지,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었어요. 단편이 끝나는 곳에 찍혀져 있던 빡빡 문질러 지워야 하는, 거실에 찍혀진 두 개의 목발 자국처럼요.
 
성석제 | 여행
은 그 부분이요. 생난리를 치루면서 사이는 틀어질대로 틀어지고 몸은 지칠대로 지쳐버린 세 친구가 여행길에 만난 부유한 도련님들이 제공해준 진수성찬을 먹기 시작하는 그 부분이요. 파, 터뜨리면서 한참을 웃었어요. 눈 앞에 그 광경이 딱 펼쳐지는 거예요. 매일 물에 밥 말아 먹으면서 죽도록 걸어대던 세 사람이 고기와 술을 마구마구 몸 안으로 집어 넣는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서. 이게 성석제의 매력인 거 같애요.  
     
윤성희 | 이어달리기
도 역시 유쾌했어요. 자꾸만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져 나왔어요. 엄마와 세 딸의 대화들이, 엉뚱한 상황들도 그렇고 유쾌하고 명랑해서요. 저도 이제 우울해질 때면 제가 아는 사람 스무명을 등장시켜서 운동회가 벌어지고 있는 운동회 한 가운데서 줄다리기를 하는 상상을 해 보려구요. 저는 심판 보구요. 금방 즐거워질 거 같애요.

은희경 | 고독의 발견
은 오랜만이예요. 은희경. 마지막이 인상적이였어요. 모호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결말. 결국 모든 건 레스토랑 안에서 한 상상이였다는 거 맞나요? K도 외롭고, S도 외롭고, 난쟁이 여자도 외롭고, 가난한 기타맨도 외로운. 모두가 외롭다는 고독의 발견, 맞나요?

이혜경 | 한갓되이 풀잎만
은 흘러내보내는 우리들의 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줬어요. 그냥 내가 공기 중에 뱉어내어 어느 공기쯤에선가 사라져버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것이 어느 녹음기에선가 멈춰서 영원히 저장되어지는 소리. 그렇지만 소리의 주체는 그걸 모르고. 얼마나 많은 나의 소리들은 사라져버리거나 저장되었을까요. 예전에 아주 어릴 때 비디오테이프 속의 저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속의 나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같지가 않아서, 몇번을 돌려보면서 내가 저런 행동을 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던 적이 있어요. 단편의 마지막 구절이 좋았어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전경태 | 남방식물
로 몽골을 생각해 봅니다. 한번도 가지 않았지만, 글 속에서 느껴지는 공기, 그 공기를 양분삼아 키워나는 고구마 순, 가정을 버린 남자, 자신을 버린 북한의 여자. 이 곳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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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동네에 생긴 조그마한 주점은 통영에서 직배송한 싱싱한 해산물들을 내어놓습니다. 어느 날 주점 앞을 지나가다가 원목의 기둥 위에 커다랗게 써져 있는 '활우럭구이+생맥주, 환상적인 조합'이라는 메뉴를 보고 동생과 입맛을 다지며 들어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바삭하게 구워지는 생선구이를 보면서 생맥주 500cc를 나란히 마셨습니다. 생선의 살점과 맥주의 조합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제법 통통해보였던 생선의 살점이 숯불 위에서 바삭하게 구워지면서 날씬해져버리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점점 줄어가는 살점을 아쉬워하며 맥주를 들이키고 있을 때, 주점의 주인이 와서 생선을 뒤집어주며 말합니다. 머리에 붙어 있는 살이 제일 맛있으니 꼭 챙겨먹어요. 나는 그만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을 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분홍 리본의 시절>을 읽으며 참 많이도 침을 삼켰습니다. 7편의 단편 속 인물들은 늘 무언가 요리를 하고 그것들을 맛깔스럽게 먹어 치웁니다. <가을이 오면>에서 밥과 김치만으로 아삭하고 물컹하게 만든 김치볶음밥,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서른이 된 주인공이 매일 프라이팬 위에 구워 먹었던 비릿한 조기 두 마리, <약콩이 끓는 동안>에서 순천댁이 매일 새벽 끊여대던 약콩물, <솔숲 사이로>에서 사내와 함께, 그리고 사내가 떠난 후 구워댔던 고기와 솔잎 술, <반죽의 형상>에서 주인공이 끊여먹던 흰죽은 책을 읽은 그 날 집에 돌아와 뚝배기에 긴 시간 들여 끓여 먹기도 했습니다. <문상>에서의 맥주와 곱창, 그리고 <위험한 산책>에서의 매콤한 뽈찜과 소주.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당장 소설 속 그네들 틈에 끼여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그네들이 먹고 마시는 그것들을 고스란히 나도 맛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음식들을 먹고 나면 세상이 좀더 편안해질까 하는 생각, 적어도 이 음식들을 먹는 순간에는 세상이 좀더 아늑할 거라는 생각, 그래서 이 음식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어 삼키고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소설들을 천천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들에서 어김없이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은 나를 불쾌하게도 만들고, 나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것들은 못난 나였기 때문이예요. 못난 내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어 나는 그런 나를 읽어나가는 것이 불편하고 불쾌했고, 그런 나의 모습이 작가에게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있을 거란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에서 변화가 싫어 대학원에 그대로 진학했고, 어느 순간 보니 곁에 아무도 없더라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랬고,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선배의 아내가 '내가 그렇게 만만했니, 니들?' 이라고 뱉은 후의 주인공이 말하는 건지, 선배의 아내가 말하는 건지,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말하는 건지 헷갈려고 뜨끔했던 긴 문장들이 그랬고,  <약콩이 끓는 동안>에서는 밑줄을 어중간하게 그었던 여학생이 그랬고, <솔숲 사이로>는 사내가 온 뒤 그를 질투하고 사내가 떠난 후 그를 그리워하던 단식원 식구들의 막막함이 그랬습니다. <반죽의 형상>은 정말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이 짧은 단편을 읽는 동안 지난 6개월 동안의 나와 내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대학시절을 생각했고, 우리가 함께 타고 다녔던 지금은 사라져 버린 725버스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재의 뒤편에서 내리는 일이 없기를 바랬습니다. 언젠가 소설 속 N와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늘 내리던 정류장이 아닌 집의 뒤편의 정류장에서 내려 오랜시간을 헤맨 적이 있어요. 집과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1시간 동안 헤매고 있었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서, 이제는 또렷하게 알고 있는 집 뒤편의 길을 오랜만에 한번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문상>에서의 선배니임도, 선배니임이라고 바짝 달라붙는 그녀도 모두 나와 같아요. 그리고 <위험한 산책>에서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도.

   나는 작가가 채식주의자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책을 읽는 틈틈이 앞장으로 넘겨 작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몇 년전, 한강의 소설집을 처음 읽을 때도 그랬어요. 고기를 먹지 않고 심지어 화분의 식물로 변해버리는 주인공이 담긴 글을 읽어나가면서 계속 앞장을 넘겨 작가의 얼굴을 자세하게 들여다 봤습니다. 한강도 그랬고 권여선도 조그마한 체구에 굉장히 말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빛이 아파보여요. 어쩌면 고기를 즐겨 먹고, 조그만 체구도 아니고, 무언가를 늘 탐하는 눈빛을 가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녀들과 같은 글은 쓰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젯밤 악몽을 꾸었어요. 괴물이 쫓아오거나 어딘가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그런 꿈은 아니었는데,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등장했고 그녀가 내 마음에 상처를 냈어요. 꿈 속의 나를, 아니 현실의 나를 치욕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깨어난 일요일 오전,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여전히 마음이 찢어지는 이런 날, 나는 <분홍 리본의 시절>을 다시 꺼내 들고 어떤 부분을 읽어내려갑니다. 이 문장들이 내게 위로가 됩니다. 조기의 검붉은 혀가 괜찮다고 잘 될거라고 말하면서 사라지는 것만 같은 아득한 느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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