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3월 월요일의 일. 전날 그렇게 맥주를 마셔댔으니 당연하게 늦잠을 잤다. 원래 타이페이 외곽으로 나가 핑시선 타고 허우퉁이랑 스펀, 그리고 지우펀까지 갈 일정이었는데, 그러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했어야 했다. 각자의 침대에서 뒹굴고 뒹굴다가 그래도 조식을 먹어야 했기에 조식 마감시간 거의 직전에 내려갔다.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나는 속에 들어가질 않아 커피만 들이다 부었고, 친구는 이 숙소 음식도 맛나다며 맛있게 먹었다. 전날 숙소가 성대한 만찬 수준의 조식이었다면, 이 숙소 조식은 기본적이고 깔끔했다. 새벽에 숙소로 돌아간 토모상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제 즐거웠다고 연락을 했더니, 아직 타이페이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토모상은 오후 늦게 한 달 여행을 함께 할 친구가 일본에서 온다고 했다. 장소는 이리저리 검색해보다가 토모상의 숙소가 있는 중산에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샤오롱바오 집이 있다고 해서, 거기로 정했다.

 

    중산역 4번 출구에서 12시 15분에 만나기로 했다. 친구와 숙소를 나서는데 오늘도 날이 흐렸다. 숙소를 나서서 바깥 공기를 맞는 순간 (전의 숙소도, 이번 숙소도 창문이 있는데 열리지가 않았다. 이번 숙소는 통유리이기도 했고) 아, 오늘도 옷을 잘못 입고 나왔구나 싶었다. 반팔을 입고 나왔는데, 바람이 찼다. 핑시선-지우펀 일정은 하루종일 움직여야 해서 내일 가기로 하고, 오늘은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왔던 딴수이를 구경하고, 배를 타고 빠리로 들어가 대왕오징어를 먹고 오기로 했다. 거긴 강가라 바람이 더 차가울텐데.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바꿔입기에는 시간이 없기보다 귀.찮.은 거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중산역에 도착해 토모상을 기다렸다. 중산은 가이드 북에 의하면 예술가의 거리라고 했다. 높고 화려한 빌딩들이 많았고, 고풍스런 근사한 건물들을 개조한 가게들도 있었다. 20분을 조금 지나 토모상이 도착했다. 우리는 조금 어색하게 인사하고, 샤오롱바오 집을 향해 걸었다. 무슨 말들을 나눴더라. 어제 즐거웠다는 말, 우리 맥주를 정말 많이도 마셨다는 말, 잘 들어갔냐는 말, 아침밥은 먹었냐는 말, 우리가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말. 말들과 말들 사이에 알콜이 전혀 없는 어색함이 뒤따랐다. 샤오롱바오 두 접시와 볶음밥을 시켰다. 음식 맛은 보통이었다. 역시 좀 짰다. 숙취 때문에 쟈스민 차를 많이 따라 마셨다. 그 가게가 일본인들에게도 유명했던 것 같다.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하이톤으로 메뉴를 의논하고 있는데, 토모상이 그랬다. 신기하다고. 뒤에서는 일본인들이 일본말을 하고 있고, 자기는 일본인인데 우리랑 한국말을 하고 있고, 여기는 또 대만이고. 밥을 먹고 중산역으로 걸어오는 길에 오리온 맥주 광고 깃발이 보였고, 토모상은 대만에 오기 직전에 오키나와 여행을 갔었다고 이야기했다. 오리온 맥주는 오키나와 맥주인데, 무척 맛있다고. 정말요? 우리는 또 맥주 이야기에 눈이 반짝였고.

 

    중산역에 도착해서는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서양식으로 꾸며놓은 근사한 카페였다. 테라스 자리에 앉아 각자의 커피를 시켰다. 커피를 마시며 토모상이 한국에서 한국어 배운 이야기를 해줬는데, 정말 웃겼다. 어학당에서 반을 배정할 때, 동양인 서양인으로 구분해서 반을 배정하는데, 한자권 국가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서양인에 비해 굉장히 빠르다고 했다. 한자권이 아닌 동양인들이 피부색깔 때문에 같은 반에 배정되는데, 수준이 너무 뒤떨어지니 웃긴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어 줬다고 했다. 그리고 교포들이 말을 엄청 잘하는데, 쓰기와 읽기가 안 되는 이야기도 해줬는데, 웃겼다. 헤어지기 전에 가지고 다니던 셀카봉으로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카페 안쪽에 통유리를 마주하고 앉은 손님들까지 같이 앵글에 잡혔다. 그걸 보더니 그 손님들이 즐거워하며 같이 브이자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그 사진에 우리 일행이 다섯 명인 것 처럼 보인다. 토모상은 한 달동안 대만 여행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한국으로 와서 여행을 하고, 덴마크로 마지막 워홀을 간다고 했다.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 그리고 이제 덴마크어까지. 우리는 멋지다고 그리고 부럽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만나서 다시 맥주를 마시기로 하고 헤어졌다.

 

    딴수이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보면 제일 위쪽. 지하철을 오래 탔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남아 있던 숙취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보지 못하고 이야기만 들었다. 아름다운 영화라고. 친구는 영화를 예전에 봤었고, 여행을 오기 전에 한번 더 봤다고 했다. 피아노 음악이 정말 좋다고 했다. 시내에서 점점 멀어질 수록 높은 산들도 보이고, 내가 생각했던 대만스러운 풍경들이 보였다. 딴수이역에 도착하니 역시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반팔 입은 내가 견딜 수 있는 바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역 앞에 있는 상가에 들어가 마음에 쏙 드는 숄을 샀다. 친구랑 나랑 대만족한 숄이었는데, 사고 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상표를 보고 엄청 웃었다. 목에 단단하게 두르니 따뜻했다. 딴수이를 먼저 와 본 토모상의 조언에 따라 강가를 걷지 않고 버스를 탔다. 어디쯤에선가 내려야 하는데, 내리는 지점은 정확하게 몰랐다. 그냥 탔고, 그냥 내렸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길래. 내리고 보니 딱 맞았다. 우리 이제 길 잘 찾는다며 좋아라 했다. 내려서 왔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걸었는데, 풍광이 멋졌다. 강인데 꼭 바다 같이 넓었다. 역시 물이 있는 곳은 근사하다. 하늘에 구름도 많았는데, 그래서 더 근사했다. 구름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심지어 우리 앞에 가던 사람들에게 어떤 모녀가 뛰어와 배를 타는 곳이 어디냐고 다급하게 한국어로 물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답했다. 한국어로. 그 덕분에 우리 앞 사람들도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고. 빠리에 들어가는 배 안에서 들리는 언어도 죄다 한국어였다. 이상하지. 반갑다고 인사라도 하면 좋을텐데, 너무 한국인이 많으니까 왠지 입을 다물게 되더라.

 

   친구가 빠리에 배를 타고 들어가길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대왕오징어였다. 그게 그렇게 맛있다고 하더라. 빠리행 배를 탔다. 딴수이와 빠리는 아주 가까워서 배를 탄 시간이 10분도 안 됐다. 배의 속력 때문에 바람은 더 세졌고,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흩날렸다. 그 가운데 해가 졌다. 와- 배 안 사람들이 모두 해가 지는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빠리에 도착해서는 배 시간이 있어서 바로 대왕오징어 가게를 찾아갔다. 헤맨다 싶을 때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보면 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많이 있는 그 곳이었다. 친구가 주문한 오징어가 포장되길 기다리는 동안, 내가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오기로 했다. 오전에 숙취에 시달렸지만, 맥주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경은 근사하고, 맛난 안주도 있으니까. 대만에서 세븐일레븐만 갔었는데, 빠리에서는 패밀리마트가 있어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 토모상이 말한 오키나와 맥주 오리온 맥주가 있었다. 완전 반가워서 생각해보지도 않고 오리온으로 2캔 샀다. 그리고 강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오징어를 먹고, 오리온을 마셨다. 한국에서 선곡해온 음악도 스피커로 들었다. 우리가 대학교 때 함께 좋아했던 영화 중에 <유리의 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한 순정파 러브스토리인데, 그때는 그게 참 좋았다. 여명이 서기에게 장미꽃 한송이를 선물하면서 아스피린 한 알을 물에 녹여 놓으면 꽃이 늦게 시든다고 했는데, 그런 대사들을 다이어리에 적어두곤 했었다. 그리고 음악. 여명이 부른 'Try to Remember'. 우리는 대만의 빠리에서 대왕오징어와 오리온 맥주를 마시며 여명의 노래를 들으며 대학교 때의 그 소녀같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다시 배를 타고 딴수이로 와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역까지 갔다. 구경거리가 많았다. 죄다 기념품샵이었는데, 가게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었다. 정말 대만 사람들은 아기자기한 것 같다. 정신을 못 차리고 거의 모든 가게들을 다 들어갔다. '아이 러브 타이완'이 새겨진 마그네틱 자석도 사고, 엽서도 몇 장 더 샀다. 그리고 친구랑 둘이서 귀걸이도 샀다. 내가 산 귀걸이는 분명 부엉이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한국에서 돌아와 가만히 보니 고양이 같았다. 친구는 남편에게 줄 육포도 한 봉지 샀다. 그리고 딴수이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먼역에 도착해서 계획했던 카르푸에 가는데, 또 한참을 헤맸다. 설마 저기까지 가는 건 아닐거야, 너무 멀리 왔어, 생각하고 다시 돌아왔는데, 저기보다 훨씬 더 많이 갔어야 했다. 카르푸에서 오늘 먹을 과일도 사고, 한국에 가져갈 자스민 차와 녹차도 샀다. 우유에 타서 먹으면 밀크티가 되는 홍차도 사고. 유통기한이 2주밖에 안 되는 타이완 생맥주도 샀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맥주 한 잔 할려는데, 맙소사 병따개가 없었다. 타이완 맥주 공장에서 먹었을 때 무척 맛있었던 맥주였는데, 따개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었다. 숙소 아래 편의점으로 내려갔는데, 편의점에도 따개는 없었다. 결국 어제 토모상과 함께 마셨던 편의점 앞 벤치에서 다시 캔맥주를 사서 마셨다. 여행의 마무리는 맥주가 최고다. 몸이 노곤해지면서 즐거웠던 그날의 추억들이 하나 둘 행복하게 떠오르니. 그리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