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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날, 타이페이
    여행을가다 2015. 1. 16. 23:57

     

     

     

     

     

     

        2014년 11월 2일 일요일의 일. 타이페이에서의 둘째날. 일어났고, 내려갔다. 먹으러. 친구는 여기 숙소를 예약하면서 조식이 무척 괜찮다는 평을 보았다고 했다. 창밖을 보니 날이 흐렸다. 비가 오려는 듯했다. 커피가 딱 맛나는 날씨다.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공간이 근사했다. 낮과 밤에는 카페 겸 술집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흐린 날씨와 잘 어울렸다. 인테리어도 근사해서 어제 내려와서 생맥주 한 잔 할 걸 후회했다. 어쨌든 먹었다. 맛있었고, 배를 잔뜩 채웠다. 커피도 날씨 때문인지, 맛이 좋아서인지 입에 딱 달라붙어서 두 잔이나 마셨다. 오늘은 나의 연애운을 빌러 월하노인을 다시 한번 만나러 가고, 용캉지에에서 고기국수를 먹고, 타이페이 101 빌딩을 구경하고, 타이완 맥주 공장에 가서 생맥주를 마시는 일정. 그리고 우리는 어젯밤 알았다. 친구는 카메라를 충전한다고 꽂아두고 집에서 카메라와 충전기를 들고 오지 않았으며, 나는 우리집에 있는 수많은 충전기 중에서 하필이면 충전이 제대로 되지 않는 선을 들고 왔다는 걸. 밤새 충전했지만 핸드폰 밧데리가 30프로. 사진 몇 장 찍다보면 밧데리 없다는 메세지가 떴다. 결국 사진은 포기했다. 근사한 풍경을 볼 때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대신 눈과 마음으로 곱게곱게 담아주자고 생각(하지만 남는 건 사진인데. ㅠ)하려 했다.

     

       월하노인을 만나러 갔다. 이번엔 용산사 말고 하해성황묘라는 곳. 여행 전에 찾아본 책자에 의하면 여기가 그렇게 신통하단다. 여기서 빈 뒤, 인연을 만나고 감사하다고 다시 인사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단다. 그리고 하해성황묘가 있는 디화제가 옛날 대만의 모습을 아직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가 보니 거리는 별로였다. 우리가 제대로 못 찾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예스러운 멋은 별로 없었다. 그냥 옛날 동네 같았다. 그리고 하해성황묘도 뭐랄까.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돈의 양에 따라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이 다른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돈 많이 내면 안에서 주문(!) 외고 있는 할아저지가 어깨도 두드려준다. 어쨌든 갔으니 빌고 왔는데, 영 내키지는 않았다. (나는 돈 조금만 내서 어깨 두드림은 받지 못했다.)

     

        대만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곤니찌와' 인사도 많이 받았다. 중국 사람 아니면,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해성황묘가는 길에 한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친절함이 정말 최고였다. 역시나 여기서도 길을 한번에 찾지 못하고 헤맸다. 혹시나 해서 '하해성황묘'를 한자로 적어왔다. 길을 가다 손녀와 함께 있는 한 할아버지에게 쪽지를 내밀었는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가까운가보다, 친절하시구나 기쁜 마음으로 졸래졸래 따라가는데 길을 건너고, 모퉁이를 돌고, 또 모퉁이를 돌고, 또... 너무 멀리 가서 따라가면서도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하해성황묘 바로 앞까지 데려다줬고 우리에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는 말을 건네고 다시 길을 돌아가셨다. 너무 죄송해서 근처에서 공갈빵을 급하게 사서 달려가 드렸는데, 너무 화를 내셔서 그냥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 공갈빵은 우리가 먹었다.

     

        타이페이의 삼청동이라 불리는 용캉지에에서는 친구가 그렇게 원했던 차도 구입하고, 맛집으로 유명한 국수집에 가서 고기국수도 먹었다. 고기국수의 고기는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았고, 이거 다 먹으면 엄청 걸어야겠구나 생각이 단번에 들 정도로 기름져 보였지만, 무척 맛있었다. 같은 시킨 찐밥이랑 국물이 없었던 국수(자장면 종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도 맛있었는데, 음식들이 대체로 짰다. 이래서 대만 사람들이 차를 많이 마시나. 용캉지에에서 엽서 쇼핑도 하고, 부엉이 목걸이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무척이나 망설였으며, 가이드북에서 보고 찾아간 커피집은 커피 가격이 너무 비싸 그냥 나왔다. 그리고 배가 꺼지기를 바라며 계속 걸었다. 걷고 걷다 해가 언제 지나, 아직 멀었네 싶었지만 타이페이 101 빌딩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 원래의 계획은 타이페이 빌딩 야경이 무척 잘 보인다는 샹산에 올라가는 거였는데, 이게 거의 등산 수준이라고 해서 저질 체력인 우리는 그냥 빌딩 가까이에서 불빛을 구경하기로 했다. 친구는 이제 버스길도 잘 찾아냈다. 용캉지에에서 타이페이 빌딩 근처로 가는 버스를 단번에 찾아내서,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탔다. 하루가 지나서 익숙해진건지 아니면 날이 흐려진 탓인지 이제 버스에서 땀내가 나지 않았다.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타이페이 빌딩에 빨리 도착했다. 해가 질 때까지 뭘 하나 싶었는데, 근처에 쓰쓰난춘이 있었다. 옛군사시설 공간을 그대로 살려서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 곳이야말로 예스런 멋이 그득한 곳이었다. 옛건물을 보수해서 특색을 그대로 살려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프리마켓이 열려 있었는데,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많고 지역 특산물들도 있었다. 여기서 나는 또 엽서 쇼핑을 했는데 (친구는 말했다. 또 사?) 한자를 이렇게 예쁘고 귀엽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여기저기 너무 귀엽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아서 정신을 못차리고 구경했다. 쓰쓰난춘을 나와 타이페이 빌딩에 갔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고, 우리는 둘다 밧데리가 0이었으며, 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35층 스타벅스 명당 전망대는 당연하게도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그냥 맥주나 마시러 가자 싶어서 빌딩에 불이 켜진 것만 보고 지하철역으로 들어왔다. 타이페이 101 빌딩은 요일마다 불빛 색깔이 다르다. 7일동안 무지개 빛깔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이 날은 보라색이었다.

     

       아주 간단한 가이드북의 설명을 보고 타이완 맥주공장을 찾아갔다. 설명에 의하면 맥주 공장 안에 바가 있었다. 맥주공장의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가다 설마 여기에 바가 있었어? 하는 지점에 바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공장의 신선한 맥주를 바로 마실 수 있고, 주말에는 라이브 공연도 한다는 설명. 맥주공장은 진짜 공장 같았다. 날도 어두워진 상태라 을씨년스러웠다. 공장 안에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주변을 맴돌았는데, 옆에 편의점 같은 건물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몇 번을 왔다갔다 하다 공장 입구의 경비원에게 물어봤다. 경비원 말이 최근에 바가 없어졌단다. 맙소사. 대신 아까 우리가 봤던 그 곳에서 생맥주를 팔고 있으니, 거기 가서 마시라는 말. 갔다. 아쉽긴 하지만 생맥주 한 잔씩 사가지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마셨다. 생맥주는 한 종류인데, 병맥주는 다양했다. 저걸 다 마셔보고 가자고 비장한 마음으로 짠- 건배를 했다. 저녁이 되어서 바람이 적당히 불었고, 야외라 어두워서 맥주 마시기 딱 좋았다. 다른 테이블에는 무척 취해보였던 여남 커플, 혼자 마시는 할아버지와 역시 혼자 마시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 젊은이는 우리가 밖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웃으면서 우리를 쳐다봤고, 맥주를 사가지고 나오니 또 싱긋 웃으면서 우리를 쳐다봤다. 뭐지? 저 대만 실실남은? 왜 우릴 보고 웃지? 라고 생각하며 심심한 생맥주를 끝내고 맛난 병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실실남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한국 분이세요? 라며.

     

       이름은 토모유키. 1년에 눈이 한두번 오는 후쿠오카 출신의 일본인이다. 호주-중국-한국 이렇게 워킹을 하며 20대를 보냈단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 일을 했는데, 7년인가 있었단다. 일하면서 어학원 다니며 한국어 공부하고. 그래서 얼마 전까지 들었던 한국어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니 반가워서 실실 웃고 있었던 것. 대만은 한달 동안 여행할 거라 했다. 같이 맥주를 마시다보니 잘 웃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맥주공장 가게가 문이 닫을 때까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했고, 샤오롱바오를 먹으러 택시를 타고 딘타이펑에 갔지만 마감 시간이 되어서 먹지 못했고, 기대했던 훠궈를 먹으러 갔지만 배가 불러 거의 먹질 못했다. 마무리로 숙소 앞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마셨다. 친구와 토모상은 중국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었다. 나는 토모상이 한국에 있을 때 일했던 가게에 갈 뻔 했다. 토모상은 서울이 정말 춥다고 했다. 영하 이십도 가까이 내려간 적도 있었잖아요, 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동시에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한겨울을 지내다 보니 토모상이 지냈던 7년 안에 그런 일이 있었을 것 같기도 했다. 서울에서 마시던 것처럼 맥주를 잔뜩 마신 날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있을 이 숙소는 특이하게 방이 세로로 길게 이어져 있는 구조다. 침대도 두 개가 길쭉하게 이어져 있다. 2인실이지만 개인공간이 확보되는 구조랄까.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좋다고 감탄하고 바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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