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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선희
    극장에가다 2013. 11. 4. 21:21

     

     

     

        아마도. 토요일 날 집에서 뒹굴다가 <다른 나라에서>를 보지 않았다면, 일요일 날 굳이 광화문까지 나가서 <우리 선희>를 보지 않았을 거다. 토요일 날, 나는 <다른 나라에서>를 보고 핸드폰 검색 창에 '모항'이라고도 검색해 보고, '이자벨 위페르'라고도 검색해보고, '홍상수'라고도 검색해봤다. 일요일, 일어나 보니 비도 그쳤다. 맥모닝 세트 시켜먹고 뒹굴거리다 그래, 보러 가자고 생각했다. 씻고 나오니 광화문까지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탔다. 택시까지 타고 가서 볼 영화인가, 생각하다 창밖의 노오란 은행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가을이었지.

     

        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영화 속 상호가 실제 상호와 똑같았다. 핫썬 치킨, 아리랑, 카페 공드리 등등. 누군가 홍상수 여행 패키지를 만들어주면 좋을텐데. 주인공들이 앉았던 벤치들, 걸었던 길들, 보았던 풍경들, 마셨던 술과 안주들을 그대로 따라가는 패키지. 그렇게 통영도 가고, 서촌도 가고, 모항도 가고. 이번 영화에서도 치킨과 소주를 어찌나 맛있게들 드시던지. (사실 치킨을 먹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 소주를 한 잔 하고 싶어졌다.

     

        이선균은 그 장면에서 분명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아리랑이라는 술집에서 선배로 나오는 정재영과 술집 주인 예지원과 함께 마른 오징어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있던 밤. 예지원이 정말 맛있는 통닭집이 있다면서 통닭을 시킨 뒤였다. 이선균은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은 정재영에게 서운했다. 정유미로 나오는 선희를 만난 뒤였는데, 정재영에게 이선균은 선희가 정말 예쁘다고 말한다. 정말 예뻐요. 나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애가 너무 예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정재영이 그런다. 깊게 깊게 깊게 파고들다 보면 나를 알 수 있게 된다고. 깊게 깊게 파고들어서 죽도록 하고 나면 결국 잘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렇게 나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고. 그런 거라고 말했다. 이선균은 술에 취해서 충혈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깊게 깊게 깊게 파고들다 보면, (깊게 파는 팔 동작을 아주 크게 반복해서 하면서) 깊게 깊게 깊게 파고들다 보면 되지 않겠냐고 그런다. 이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번 주에는 그들처럼 꼭 통닭을 먹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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