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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체성, 허니와 클로버
    극장에가다 2013. 10. 27. 19:06

     

        휴대폰을 스피커에 연결하고 멜론의 플레이 리스트를 랜덤으로 선정하고 앉았다. 첫 곡은 내가 정한 곡. 오지은의 서울살이는. GMF에서 오지은이 이 노래를 부르다 울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쩐지 이 노래를 계속 듣게 된다. 그 다음으로 랜덤 재생된 곡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여름부터 나는 질투에 빠져 있었다. 내가 못났다는 자괴감에 이어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들이 부러웠다. 내게 없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이 부러웠다. 못난 내 자신에 화도 났다. 술자리에서 여러 번 울었다. 울고 나면 창피했다. 내 질투심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서른 네 살의 내가 너무 어른답지 못해서 두려웠다. 어느 날, 내 질투심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며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이상 남자들이 나를 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위해 가짜 편지를 쓰는 남자. 여자는 남자의 애인이다. 여자는 점점 알지 못하는 상대의 편지에 빠져들고, 남자는 자신이 만들어 낸 그 남자를 질투하게 되는 이야기. 뒷이야기가 궁금해 당장 구입해서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 내겐 좀 어려웠다. 중간부터는 글자만 읽어나간 느낌이다.

     

        추워져서 다행이다. 그동안 영화를 그 전보다 많이 봤다. 하루종일 영화만 보라고 하면 볼 수 있을 정도다. 어제는 동대문 메가박스에 가서 세 편 연달아 하는 심야영화를 보려고 하다 잠이 많은 내가 자버릴 것 같아 안 갔다. 아이맥스관에서 <그래피티>를 보고, 간만에 상상마당에 가서 카세 료가 나오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도 봤다. 우디 앨런의 새 영화 <블루 재스민>도 봤다. 좋아하는 영화인데 여러 번 보고 싶어 DVD를 사 둔 <허니와 클로버>도 꺼내 봤다. <그래피티>를 보고 산드라 블록의 옛 영화들이 생각 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다시 봤다.

     

        <허니와 클로버>에서 충동적으로 바다로 떠난 아이들이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졸업은 하지 않고 세계 각지를 떠도는 천재 모리타 선배가 소리친다. 내가 최고다. 그러자 예술대생 치고는 너무 성실하고 평범한 후드티의 남자 주인공 타케모토가 소리친다. 청춘이 최고다. 모리타 선배가 타케모토에게 말한다. 네가 말하니까 실감난다. 청춘이란 단어가. 모리타 선배는 천재 미술 소녀 하구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한다. 너를 처음 봤을 때 생각했다고. 솔직하고 흔들림이 없구나.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게 청춘인 것 같다고. 솔직하고 흔들림이 없는 것. 카세 료, 마야마는 연상의 회사 상사를 짝사랑하고, 그런 마야마를 학교 동기 아유미가 좋아한다. 어느 날 아유미는 마야마를 향한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한다. 마야마에게 차갑게 대한다. 마야마는 그런 아유미가 계속 신경이 쓰인다. 술을 깨려고 풀길을 함께 걷다가 아유미가 덜썩 주저 앉아 버린다. 취해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아유미의 등뼈가 휘었다는 말을 한 적 있는 마야마가 자신의 등을 내준다. 마야마가 아유미를 업고 풀길을 걷는다. 아유미가 등 뒤에서 말한다. 마야마. 좋아해. 마야마. 많이 좋아해. 그 고백을 등 뒤로 묵묵히 듣고 있다 마야마가 말한다. 응. 고마워. 마야마는 자신의 짝사랑을 멈출 수 없다.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어느 날 아유미에게 고백한다. 내가 아는 한 아유미도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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