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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극장에가다 2014. 1. 11. 13:42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다. 다툴 때도 있었지만, 함께할 때가 많았다. 어떤 일로 마음 상할 때도 있었지만, 함께 해서 위로받는 일이 많았다. 친구가 중국에 가 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친구도 중국에서 한 번의 이별을 겪었다. 처음으로 국제전화카드를 샀는데, 전화를 하면 거의 친구의 룸메이트가 받았던 것 같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옛 일이지만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나는 내 상황을 전하며 울먹거렸던 것 같다. 친구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던 것 같다. 그때, 그리고 또 한번의 중국생활을 제외하곤 우리는 늘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하숙집 위 아래층에 산 적도 있다. 친구는 크리스마스 때면 약속이 없을까봐 신혼집인 자기네 집에 매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해 주기도 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맥주를 마시고,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도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진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뭐든지 다 잘 될 거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 꿈은 이뤄질 것이고, 니 꿈도 이뤄질 것이고,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고,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라고 생각되는 마법의 순간들.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꼭 맥주잔을 부딪쳤다. 때로는 술에 취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니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그 친구와 이 영화를 봤다. 생각해보니 친구에게도 내게도 새해 첫 영화였다. 무지하게 신났고, 유쾌했고, 뻔했지만 감동적이었다. 계속 웃다가 마음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살짝 눈물이 났다. 월터 미티는 소개를 주선해주는 만남 사이트에 꼭 입력해야 하는 '한 일', '가본 곳' 란에 쓸 말이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잡지사에 다니는데 발행하는 잡지가 이번 달에 마지막 호를 내고 폐간된다고 한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고백도 제대로 못했다. 만남 사이트에서 그녀에게 윙크를 보내려고 하는데 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잡지의 마지막 호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이 월터에게 배달되었는데, 필름이 없다. 숀이라는 사진가는 핸드폰도 없고, 작업 때문에 늘 떠돌아 다녀 쉽게 연락이 되지 않는다. 월터는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그 필름을 찾아야만 하고, 그때부터 월터의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용기 없고, 소심하고, 현실을 도피하고자 무언가 신나는 상상만을 끊임없이 하는 월터가 결국 이 여행의 끝에서 말도 안되는 생의 이력들을 만들어 내었을 때, 그리하여 상상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을 때, 칙칙한 베이지색 아저씨 잠바를 벗고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 스웨터를 입고 스케이트 보드로 텅 빈 아스팔트 도로를 신나게 질주할 때, 구르고 달리고 오르며 결국 그 필름을 찾아내었을 때, 마법의 순간이 찾아왔다. 내 꿈은 이뤄질 것이고, 니 꿈도 이뤄질 것이고,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고,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라고 생각되는 마법의 순간. 영화에도 고마웠고, 함께 봐 준 친구에게도 고마웠다. 이게 새해 첫 영화여서도 고마웠다. 그 날도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쳤다. 우린 잘 될 거다. 월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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