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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지도를 사다
    모퉁이다방 2008. 3. 2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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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직한 세계 지도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다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등장한 어떤 나라가 어디쯤에 위치해있는지 가물가물했다. 태국이 어디쯤에 있었는지, 네덜란드 옆에는 어떤 나라가 있었는지, 남아메리카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 분명 학교 다닐 때 배웠을텐데. 왜 이렇게 고등학교 세계지리 수업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까. 아주 키가 작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매번 노란색 내셔널 지오그라피를 가지고 와서는 관심없는 우리들에게 심드렁하게 보여주는 서울말을 쓰는 세계지리 선생님이 계셨다. 어느 날 깡마르고 무뚝뚝했던 선생님이 볼이 발그레하게 웃으시면서 자신이 임신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똥배라고, 말랐지만 배는 평생 이렇게 통통했다고 부끄러워하셨다. 당시 선생님은 갓 결혼한 새색시였다.

       최대한 저렴하고 그럴싸한 것을 골랐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이 어린이용 세계지도를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추천하고 있었다. 구매평도 괜찮아서 당장 구입했다. 가지고 있던 쿠폰을 적용해서 2천원이 안 되는 돈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날 도착했다. 편의점까지 찾으러 가선 컴퓨터 옆에 김동률 앨범 포스터를 떼어내고 투명테이프 네 개로 벽면에 떡하니 붙였다. 하늘색 태평양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처음에 우리 세 자매는 가격이 싸서 이렇게 유치하다고 투덜댔다. 각 나라의 수도같은  그럴듯한 정보가 표시되어 있길 바랬지만 아이보리빛 대륙 위엔 각 나라의 유명한 유적지 그림들이 유치하게 꽉 차 있었다. 우리나라엔 첨성대, 아일랜드엔 기네스 맥주, 탄자니아의 킬로만자로 산, 브라질의 커피. 남태평양에는 상어가 헤엄치고 북극해에는 범고래가 산다.

       그렇게 지구가 꽉 차 있다.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컴퓨터 하다 한번씩 쳐다보는데, 볼수록 마음에 든다. 부시맨 마을은 나미비아에 있고, 마다가스카르라는 섬이 인도양에 있다. 프린스탄트쿠나 제도와 크로제 제도라는 이름이 존재하고, 북대서양에는 소앤틸리스 제도가 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 많고, 내가 알아야 할 세상이 이렇게 많다. 내가 못 가본 나라들이 이렇게 많고, 내가 가봐야 할 나라들이 이렇게 많다. 가고 싶었던 곳에 손가락을 집고 이 나라 저 나라 기웃거리다 행복한 상상에 빠져든다. 언젠가 꼭 가보고 말겠다고. 세상은 이렇게 넓고도 좁다고. 2천원의 행복이랄까. 하늘빛 세상을 가진 듯한. 좋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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