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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가 와요
    모퉁이다방 2020. 9. 3. 19:35

     

     

        쏴아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어제는 비가 오고 있었고, 오늘은 숲 속 나무들이 엄청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는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었고, 오늘은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태풍에 스친 바람은 얼마나 센지 나무들이 쏴아하고 대나무 소리를 냈다. 멀리서도 그게 들렸다. 속이 시원했다. 그 바람을 다 맞고 싶어 방마다 창문을 다 열어두었다가 방문 하나가 쿵하고 큰소리를 내며 닫혀 황급히 모두 닫았다. 책방 문만 남겨두고.

     

        이번주는 재택근무 중이다. 생애 처음이다. 재택근무는. 정말이지 재택근무 체질이라고 느껴지는 일주일인데, 다음주면 다시 출근을 해야 하니 몸이 이 편안함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아침에도 원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난다. 그러고 나면 꽤 많은 시간이 남는데, 아침을 만들고 점심을 만들어 둔다. 책을 몇 장 읽고 정성스레 드립커피를 내린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샤워도 한다. 8시 40분 즈음이 되면 메신저로 출근 보고를 하고 일을 시작한다. 원격 속도가 느려 힘들지만 할 만 하다. 출퇴근 시간 자체가 없어졌으니까. 손목이 아파 마우스패드도 쿠팡으로 주문해서 바로 받았다. 12시 반 즈음이 되면 아침에 만들어 놓은 점심을 데운다. 2인분이다. 남편도 이번 주는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고 해서. 첫 날은 카레밥을 먹고, 둘째 날은 짜장밥을 먹었다. 큰 손이라 음식은 늘 많이 만드는데 이번주는 딱 2인분씩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은 회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이라 밥 먹고 후식이나 음료를 먹으면 끝. 오후 업무를 하고 5시 50분이 되면 역시 메신저로 퇴근보고를 한다. 칼퇴해도 집, 조금 더 일하고 퇴근해도 집이다. 파주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두 시간 걸리는데. 별 움직임이 없어 (방-화장실-부엌이 전부) 배가 별로 고프지 않은데도 남편이 퇴근해오면 뭔갈 챙겨먹는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이른 출근 걱정 없이 놀다 잔다. 살 찐다고 둘이 나가서 딱 하루 운동했네.

     

       회사에는 창문도 없고 조용한데, 집에는 책상 바로 옆에 창문이 있고 대체로 활짝 열어둔다. 너무 조용해서 라디오를 틀어둔다. 주로 CBS를 틀어두는데 어제는 비가 와서 그런지 좋은 음악들이 줄줄이 나왔다. 어떤 곡을 듣다가 이현우 노래인데 제목이 뭐였지, 너무 좋은데 하고 네이버를 검색 해보니 이현우의 비가 와요, 였다. 오늘 퇴근을 하고 동네 수퍼에 우유와 피자치즈를 사러 나가면서 이어폰을 끼고 이 노래를 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에 커다란 구름이 가득했다. 바람이 불어 구름도 빠르게 움직였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가 보였다. 해가 지고 있어 구름 색깔도 묘했다. 이현우가 노래했다. 또 비가와요 널 보고싶게 잊을만하면 또 비가와요. 그리고 또 노래했다. 너에게는 잘해주고 싶었는데. 아, 이 가사에 뭔가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십대로 돌아간 듯한 몽글몽글한 마음.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청 그리운 마음. 태풍이 지나간 거리를 걷는데 태풍이 지나간 마음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아, 내일 재택 마지막 날이다. 점심으로 뭘 해 먹을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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