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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아와 라떼
    모퉁이다방 2020. 3. 21. 10:43

     

      매번 혼자 남겨지는 사람에게 마음이 쓰였다. 고등학교 때는 혼자 있는 아빠에게 그랬고, 최근에는 동생에게 그랬다. 대학교 때 나도 혼자였는데 그건 괜찮았다. 지난 주에는 치과 때문에 하루 연차를 냈다. 남편이 동생집이 치과와 가까우니 하루 자고 바로 가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내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역까지 운전을 안해도 되는 것이다! 역시나 술약속을 잡았더라!) 마침 그날 휴가자가 많아 야근을 했고 동생집에 느즈막히 도착했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 통닭을 파는 트럭이 보였다. 나는 세상의 모든 전기구이 통닭트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최고는 응암역 길 건너에 있던 할아버지 통닭이다. 아주 바삭하고 아주 부드럽고. 포장해주실 때도 세심하게 까만봉지를 묶어 꽉 조여주신다. 가는 길에 냄새가 많이 날까봐, 라고 나는 생각했다. 2주 정도 안 나오셨을 때는 기다렸다고 고백까지 했을 정도. 전기구이 통닭을 사고 편의점에 들러 3개에 9900원 하는 빅웨이브 캔을 샀다.

     

      동생네 집은 골목을 여러 번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는 길이 여러가지인데 나는 늘 길이 헷갈려 멀리 돌아간다. 신축빌라에 방이 하나 있고 거실겸 주방이 하나 있다. 동생이랑 한달 넘게 돌아다니면서 집을 봤는데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여기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은 반신반의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방에는 나무침대가 있고 까만색 행거가 있고 티비가 있고 길쭉한 화장대가 있다. 티비를 제외하고 거의 다 새로 샀다. 동생은 이 집을 꾸미기 위해 엄청난 검색과 돈과 시간을 들였다. 거실 겸 주방에는 나와 남편이 사준 커다란 나무책상과 의자가 있다. 이렇게 큰지 모르고 주문했는데, 공간의 1/3 정도 차지하는 것이다. 처음엔 너무 큰 것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은 동생의 힐링포인트라고. 블라인드를 살짝 올려놓고 창밖의 야경을 보면서 술을 마신다고 한다. 라디오가 동생의 말벗이라고. 틈새 빈 공간은 수납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뒤 딱 맞는 수납장을 샀다. 방과 거실 겸 주방을 연결하는 문은 반투명 유리인데 거기에 와인을 좋아하는 동생이 와인산지 지도를 두 개 나란히 붙여뒀다.

     

      나는 통닭 봉지를 뜯었고, 동생은 맛난 화이트 와인이 남았는데 먹을겨? 하더니 잔을 내왔다. (이 와인을 어제 이마트 트레이더스 가서 총 다섯 병 구매했다. 세 병은 구매대행이지만. 진짜 맛났다.) 우리는 금요일 밤 동생이 그러듯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블라인드를 살짝 올리고 창밖의 야경을 내다보며 와인을 마시고 통닭을 먹었다. 맥주도 마셨고, 나중에 동생이 치즈와 올리브 와인을 내와서 그것들도 먹었다. 반년 정도 혼자 살아 본 동생이 혼자 사는 삶의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을 얘기해줬다. 좋은 점은 언니가 좋아하는 티비를 억지로 같이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고 (-_-;), 좋지 않은 점은 역시나 외로움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주말에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이것이 자신의 노년의 삶 아닐까 생각을 한다고.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명상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있다고 했다. 11시가 되자 동생은 침대 밑에 요를 깔아줬다. 나는 예의 티비를 억지로 같이 봐야하는 언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티비를 켰다. 그렇게 가습기 두 개를 켜놓고 함께 잠들었다.

     

      다음 날 동생은 출근을 하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차가운 라떼를 만들어 각각 텀블러 안에 넣어두고 갔다. 전날 회사에서 받아온 수제김밥 두 톨과 함께. 나는 어제치의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이곳저곳 동생에게 보이지 않는 집안 때를 조금 제거해 준 뒤에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바꿔 입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는데 집 전체가 한 눈에 보였다. 순간 동생이 잘 살고 있다, 이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 확신이 맞았다. 안락하고 따뜻한 집이었다. 동생에게 커피가 맛났다고 말하니 이렇게 답이 왔다. "또와 코지하우스. 모닝커피저녁와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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